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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여우 고개

전건우

에고, 나는 늙어서 그런 거 잘 몰라. 남는 땅 놀리기도 뭣해서 그냥 소일거리로 밭뙈기나 가꾸는 거지.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뭐 이것저것 다 심어.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내가 먹기도 하고 자식새끼들한테 보내 주기도 하고. 고놈들, 따박따박 받아는 먹는데 빈말로라도 고맙다는 이야기 한 번 안 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어미니까 해 주는 거지.

대박은 무슨 대박이야. 진짜 대박은 건넛집 용순 언니가 대박이지. 저 짝에 차 타고 오다 보면 매화나무가 지천이지? 올해는 매실이 대풍이라 6월인가 7월에 싹 걷어가고도 아직 남았다지 뭐야. 며칠 후면 마을 사람들 죄다 모아놓고 매실주라도 담글 모양이던데 나야 이 모양 이 꼴이니 갈 수가 있어야지. 쯧쯧.

매실이 뭐에 좋은지도 모르면서 도시 사람들은 매실액이다 매실주다 잘도 담가 먹더구먼. 거기다가 설탕인지 사카린인지 모를 것들을 푹푹 처넣어가지고. 매실의 역할은 따로 있어. 덜 익은 매실의 고 시큼하고 떫은맛이 악귀가 붙는 걸 막아준다 이 말이여.

내 어릴 적에는 산길을 두 개나 넘어 학교까지 왔다갔다는 거 아녀. 갈 때야 우르르 몰려다니니 좀 덜했는데 올 때는 무섬증이 들 때도 많았지, 하모. 산속은 어찌 그리 해가 빨리 지는지 친구들이랑 고무줄 같은 걸 몇 번 하고 보면 벌써 어둑어둑한 거야. 그럴 때마다 큰일 났다 싶어서 부리나케 달리곤 했는데, 역시 애새끼들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같아.

정말로 뭔 일이 터지기 전에는 말이야.

 

그 날은 푹푹 찌는 한여름이었지. 내가 똑똑히 기억하는구먼. 며칠만 있으면 방학이라 우리 모두 반쯤 풀어진 상태였지. 남자 새끼들은 일찌감치 멱을 감으러 가고 여자애들은 고무줄에 공기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지. 아이고, 그러다 고개를 들어보니 해가 꼴딱꼴딱 넘어가는 거 아니겠어? 우리는 큰일 났다 싶어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집으로 내달렸지. 산을 넘는 것도 무섭지만 어머니 지청구 들을 생각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어.

나는 같은 마을에 사는 여자애 하나랑 산길로 들어섰지. 금세 어두워졌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둑어둑해 진 거야.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림자가 쭉 늘어났지. 지금은 이름도 까먹었는데, 하여간 그 애랑 나는 손을 꼭 잡고 잰걸음으로 걸었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의 어둠은 뭣인가 이상했어. 그걸 미리 알아챘어야 하는 건데 어린 우리들이 안다한들 뭘 어쨌겠나?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서, 그러니까 유독시리 어둠이 짙게 깔린 숲속 저 안쪽에서 캥캥 하는 소리가 들렸지.

분명해. 내가 그 소리를 잊을 정도로 노망이 나지는 않았어.

캥캥.

그건 여우 소리였어. 그때만 해도 마을 뒷산에 여우가 살았으니까 별다른 일도 아니었지. 여우는 사람한테 안 덤벼. 얼마나 똑똑한데. 기껏해야 닭장을 뒤져서 닭 몇 마리 잡아가는 게 다고 겨울에는 포수들한테 잡혀서 털을 뽑히기 일쑤였지. 그래도 말이여, 그때는 참 무서웠어. 그제야 어떤 이 발동한 거지.

보통 여우가 아니다.

우리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했다니까. 우리는 달리기 시작했어. 캥캥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지. 울러 메고 있던 가방에서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지. 사실 그날 내 책가방에는 친구의 색연필 한 자루가 들어가 있었어. 빨간 색이었나, 노란 색이었나 아무튼 그랬을 거야. 별다를 것도 없는 색연필인데 나는 그게 그렇게 갖고 싶었지 뭐야.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웃긴 일인데 그 어린 시절에는 한 번 눈독을 들이니 안 갖고는 못 참겠더라, 이 말이여. 그렇게 켕기는 일이 있으니 더 무서웠어. 나를 잡으러 뭣인가가 달려온다고 생각했던 거지.

얼마나 달렸을까, 우리는 나무뿌리에 걸려 동시에 넘어졌어. 아픈 줄도 몰랐지. 왜냐하면 고것이 바로 앞까지 왔거든. 어두워서 하나도 보이지는 않았어. 네 발 달린 짐승이 아니라는 것만 알겠더라고. 치렁치렁 기른 머리가 내 얼굴을 스쳤지 뭐야. 나는 오줌을 지리고 말았어. 그때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호호호.

고것이 이래 말하더라고.

너희 중 한 명이 날 불렀어. 누구지? 누구지?”

누구겠어? 난 바로 알아차렸지. 이상한 행동을 한 건 바로 나였거든. 눈독을 들이던 색연필 한 자루, 빨간 것인지 노란 것인지도 생각 안 나는 그것 때문에 요물이 쫓아왔다는 걸 내는 알고 있었지. 나는 그 순간에 기똥차게 머리를 굴렸지.

내 주머니에는 어머니가 챙겨 준 매실 한 알이 꼭 들어있었거든.

다른 건 몰라도 요것은 잃어버리지 말거라.”

어머니는 그리 말씀하셨어.

나는 그 매실을 꺼내며 소리를 질렀어.

쟤야! 쟤가 내 색연필을 훔쳤어.”

어찌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목이 칼칼하고 눈앞이 아득해지더라고. 나는 눈을 감았어. 거짓부렁이 들키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쉬익. 쉬익. 고것이 내뿜는 차가운 숨이 목덜미에 닿았어. 분한 듯 중얼거리는 소리도 들었지.

나쁜 년이구나. 매실을 들고 다니니.”

그러고는 캥, 소리가 한 번 들린 후 모든 게 사라졌어. 알겠소? 모든 게 사라졌다 이 말이요. 내 친구까지 싹 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지. 나는 반쯤 혼이 나간 채로 마을로 돌아왔고 집에서는 난리가 났지.

매구라고…… 아시오?

천 년 묵은 여우가 변한 것이 매구라는데, 구미호와는 또 다른 것인가 보오. 동네 어르신들은 내 친구가 사라진 사건을 두고 매구의 짓이라고 수군거렸지.

하모. 그 언덕이 여우 언덕이었으니 그리 생각할 법도 하지.

 

아이고, 시간도 얼마 없는데 쓸 데 없는 이야기가 길었구먼. 아무튼 매실은 꼭 익은 걸로 드시구려. 덜 익은 건 귀신들한테나 줘 버리고.

이제 본격적으로다가 이야기를 해야 쓰겠지?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다들 궁금해 하더라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역시 잘 모르겠어. 딱딱 경우가 맞는 이야기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안 그려? 듣는 사람들이 잘 가려서 들어야지.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런 것들이라 말이요. 뭣인지는 모르겠는데 어쨌든 일어나 버린 이야기. 나는 전후관계만 설명할 테니 빈틈은 듣는 당신들이 알아서 메우소.

그럼 시작하겠소.

마을 입구에 커다란 당산나무 보셨지? 그것이 수령이 백 년이 넘는 나무요. 영험하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소원인지 뭔지 빌러오고 하는, 아무튼 대단한 나무지. 우리 노인네들한테야 여름에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고마운 나무고.

몇 달 전, 그러니까 여름 새벽이었소. 밭에 물을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날따라 허리가 영 마뜩찮게 아픈 거지. 그래서 당산나무 아래서 좀 쉬자 싶었지. 에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지나쳤으면 될 텐데 그게 안 됐던 거요. 지랄 맞은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그러려고 허리가 아팠던 건지. 내 그것은 아직도 모르겠어. 아직도…….

나무에 몸을 기대고 있으니 통증이 좀 사라집디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설핏 졸음도 밀려오고, 어딘가에서 깨로롱, 깨로롱하고 새소리도 들렸지.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일어서려는데 그게 바로 거기 있었소.

요즘 사람들은 단추가 앞에 달렸다 뭐다 해서 카디건이니 뭐니 부르더니만, 우리는 다 한 가지로 이래 불렀지.

스웨타.

곱디고운 빨간색 스웨타가 나뭇가지 위에 보란 듯이 걸려있었다오.

처음에는 뭔가 싶었지. 바람이 불 때마다 한 마리 나비처럼 폴락폴락거리는 스웨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같았지. 아니면 바람에 날려 당산나무까지 왔거나. 어쨌든 신기한 일이었고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지 뭐요.

스웨타는 이 늙은이가 보기에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웠지. 새초롬하게 빛나는 빨간 색하며 앞쪽에 자리한 꽃모양 자수까지, 게다가 두께도 적당한 것이 초가을부터 입기에 딱 좋더구려. 나는 손을 뻗어 보았소. 닿을 리가 없었지만 허공에 대고 손짓이라도 해 보고 싶었지. 더워서 그랬겠지만 나는 마른침을 삼켰소. 거머리처럼 부풀어 오른 혀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지.

어느새 나는 입맛을 다시고 있던 거요. 빨간 스웨타는 그만큼 매혹적이었지. 늙은이가 매혹적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놀라지 마시오. 나이가 들수록 그런 말을 할 순간이 줄어드는 것일 뿐 단어를 까먹는 건 아니니.

얼마쯤 그 스웨타를 바라보고 있었을까, 뒤쪽에서 목소리 하나가 날아들었지.

예쁘기도 해라.”

고개를 돌리니 숙희 할망구가 서 있더군. 나랑 갑장인데도 숙희 할망구 그년은 허리도 꼿꼿하고 피부도 고왔지. 서울에서 의사선생으로 있는 아들이 관리를 해 준다나 뭐래나.

이게 여기 걸려있더라고.”

나는 그렇게 말했지. 말을 한 직후 아차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버렸지. 욕심쟁이 숙희 할망구의 눈알이 스웨타에 콕 박혀 버렸거든. 금방 쥐새끼를 잡아먹은 고양이 주둥이처럼 루주로 떡칠을 해 놓은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나는 당신 카디건인 줄 알았네.”

숙희 할망구는 스웨타를 카디건이라고 했어. 나는 기분이 나빠졌지. 내가 그려 놓은 그림에 다른 이가 마구 낙서를 한 느낌이었다면, 쉽게 이해를 하겠는가?

그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이네만, 나는 학창 시절에 곧잘 그림을 그렸어. 학교 대표로 뽑혀서 읍내 미술 대회에 나가기도 했지. 지금은 요렇게 할망구가 되어서 수저도 제대로 못 쥘 정도로 손을 떨어대지만 그때만 해도 스케치북 위에 마음껏 그림을 그렸다네. 가만, 내가 색연필 이야기를 했었나? 내 친구의 색연필 말일세. 내내 눈독을 들이던 그 색연필을 훔쳐서 가방에 넣었던 날이 똑똑히 생각나는구먼. 친구는 아무 것도 몰랐어. 그 후로도 영원히. 무슨 말인지 알겠나?

켁켁. 이거 미안하이. 며칠 전부터 가래가 끓어서 말이야. 목구멍 안이 간질간질한 게 꼭 내 몸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 있는 느낌이야.

아차, 이야기를 계속 해야지.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구먼.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소상하게 이야기를 해야 내 마음도 편해지지 싶어. 시작은 아까 말했던 빨간 스웨타 때문이었네. 당산나무에 걸린 고운 그 스웨타 말일세. 나는 물론이고 숙희 할망구까지 아쉬운 눈빛으로 스웨타를 바라봤지. 노인네 둘이서 혀로 입술을 훔치며 나뭇가지를 멍하니 보는 모습은 아마 제법 웃겼을 걸세. 그랬기에 슈퍼 사장인 여수댁과 봉자 할망구까지 왔던 거겠지.

우리 넷은 평소에도 잘 어울려 다녔어. 이러니저러니 해도 집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심심했거든. 마을회관이나 당산나무 밑에 모여서 성냥개비로 화투도 치고, 자식새끼들 자랑도 하고, 그러다가 국수 한 그릇 말아서 후루룩 먹고 나면 해가 뉘엿뉘엿 졌지.

참말로 곱네.”

여수댁이 쭈글쭈글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하더군.

저런 건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 아녀?”

봉자 할망구가 목소리를 잔뜩 낮춰서 말했지. 고 년 고거는 화투를 칠 때도 사기질을 워낙 해댔어. 젊었을 적에 술집을 전전하며 고런 기술들을 배웠다더군. 그것 때문에 나랑 대판 싸운 적도 있었어.

남 물건에 함부로 손대면 쓰나. 분명 임자가 있을 거여.”

내가 못을 박아버리자 봉자 할망구는 입을 삐죽거렸지. 그 모습이 얼마나 꼴 보기 싫던지 순간 한 마디를 더하려다가 참았지.

글쎄. 주인 없는 물건 같기는 한데…… 좀 찜찜하네.”

숙희 할망구가 고개를 갸우뚱하더군. 뭣이 찜찜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심정도 비슷했어. 누군가 일부러 높은 나뭇가지 위에 걸어놓은 것 같았거든. 우리는 스웨타를 한참 바라보다가 마을회관으로 갔어. 내 고개는 자꾸만 돌아갔어. 빨간 스웨타가 날 부르는 것만 같았거든. 다른 할망구들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고개를 돌렸다가 눈이 마주쳐 어색하게 웃기를 몇 번이나 거듭했지.

우리 모두, 그 빨간 스웨타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거지.

 

스웨타는 이틀이 지나도 그 자리에 있었지. 마치 누군가가 금방 널어놓은 것처럼 그 위치 그대로, 아름다운 붉은 빛을 내뿜으면서. 나는 그 이틀 동안 매일 스웨타를 보러 갔소. 아니, 하루에도 수십 번 목이 뻐근해 올 때까지 나뭇가지를 올려다봤지. 다른 할망구들도 나와 같았는지 그건 확인할 수 없었소. 적어도 마주친 적은 없으니까.

이틀이 지나고 삼일 째 되는 날, 우리는 마을회관에 모였지. 그런데 봉자 할망구가 몸이 아프다며 빠졌지 뭐야. 어허, 이거 큰일이네 하면서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뻔히 보였어.

빨간 스웨타.

혹시라도 그게 없어지지 않을까 다들 노심초사했지. 물론 모두 태연한 얼굴로 화투를 치긴 했지만 정신은 딴 데 가 있었지. 결국 참다못한 숙희 할망구가 벌떡 일어나더니 말을 하더군.

이럴 게 아니라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떻겠소?”

염병. 산책은 무슨.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따라나선 건 역시 빨간 스웨타 때문이었어. 만약 누군가가 그걸 가져야 한다면 우선순위는 처음 발견한 내게 있어야지, 암 그렇고말고. 누군가가 따지고 든다면 나는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소.

괜스레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당산나무까지 왔을 때는 우리 모두 지쳐 있었지. 다행히 스웨타는 멀쩡했어. 빨간색도 그대로였고 올이 풀리거나 먼지가 묻은 흔적도 없었지.

저건 그대로네.”

여수댁이 새삼 발견했다는 듯 능구렁이 같이 고개를 돌리더구먼. 나는 안심이 되는 한편 안타깝기도 했지. 저거, 저 스웨타, 저 빨간 스웨타를 가지면 좋겠는데, 내가 제일 먼저 눈독을 들였는데 가질 수가 없는 거요. 그 답답한 마음을 알겠소? 무언가를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건 친구의 색연필 이후 처음이었소. 몸 속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채근을 해댔지. 저건 원래 네 물건이었다고, 그러니 오늘 밤에라도 당장 걷어 가라고.

밤이 됐소. 이 늙은이는 저녁도 먹지 않고 어둠 속에 오도카니 앉아만 있었소. 잠 같은 건 아예 찾아오지도 않았지. 나는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억지로 굴리고 굴려 계획이란 걸 짰소. 시골에 살아보면 알겠지만, 여기서는 생각할 틈이 없소. 손바닥 만 한 텃밭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하거든. 잡초도 뽑고, 웃자란 가지도 처 주고, 농약도 뿌리고…… 유기농이니 무농약이니 떠들지만 그런 것들은 일손 많고 젊은 것들이나 할 수 있는 거요. 우리 같은 늙다리들은 몸이 힘드니까 쉽게 농약을 쓰지. 그렇게 일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참을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지는 거요.

그러니 자정이 다 되도록 깨어 있었다는 건 참말로 신기한 일이었지. 내 머릿속에는 온통 빨간 스웨타밖에 없었소. 장롱 속 깊숙이 넣어놓아도 좋으니 제발 가지고 싶었다오. 딱 한 번, 몇 분이라도 만져보고 싶었지. 그러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소.

나는 창고로 들어가 잠자리채를 꺼냈지. 가끔 손자들이 놀러 올 때면 사용하던 것이었소. 그걸 휘두르면 얼추 맞겠다 싶었지. 빨간 스웨타를 순식간에 낚아 채 집으로 달려오는 걸 상상하며 나는 밤길을 걸었다오. 잰걸음이었어, 잰걸음. 그러다가 점점 발걸음이 빨라집디다. 나중에는 숫제 달리기 시작했지.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는지 모를 정도로 달리고 또 달렸다오. 관절염 걸린 무릎 따위 아프지도 않았소. 다만 명치가 답답할 뿐이었지. 내 안에서 옹송그리고 있던 무언가가 명치 끝까지 밀고 올라오는 느낌이었소.

시커먼 무언가가 튀어나온 건 당산나무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이었지.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 넘어져 뒹굴고 말았소. 온몸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아픕니다. 간신히 일어나서 보니 시커먼 것은 개였소. 언제부턴가 마을과 산을 오가며 밤마다 우우, 짖어대던 놈. 그것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혀를 쭉 뺀 채 헐떡이고 있었지. 내게는 그놈이 귀신같아 보였소. 빨간 스웨타를 가지러 가는 나를 방해하는 악귀.

.

개가 한 번 짖었지.

캥캥.

어딘가에서 그 소리가 들렸소.

나는 머리가 아득해졌소. 수십 년 만에 듣는 소리였지만 그 정체는 바로 알 수 있었지. 그러고 보니 사방이 캄캄했소. 암흑 천지였지. 전봇대 꼭대기에 매달린 가로등들이 죄다 꺼진 거요.

.

개는 또 한 번 짖었소. 아까보다 큰 소리로, 이 늙은이의 몸 뒤쪽을 보며. 뒤에 무언가가 있었지. 사르르. 까끌까끌하면서도 풍성한 털이 목 뒤를 스치고 지나갔어. 소름이 돋았지. 엉금엉금 기어서 도망을 쳤소. 차가운 손이 내 다리를 낚아챘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지. . 그것이…… 매구가, 내 등을 내리누르며 귓속에다 속삭였소. 아가야 오랜만이구나, 라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녘이었지. 나는 논두렁에 쓰러져 온몸이 진흙투성이였소. 여름인데도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 시커먼 개는 배가 찢긴 채 죽어 있었소. 나는 돌덩이처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당산나무로 향했어. 그 어떤 것보다 빨간 스웨타가 중요했으니까. 다른 건 다 상관없었소. 그때는 매구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도 생기지 않았지. 사람이란, 참 이상한 생물이란 말이지. 이처럼 탐욕스러운 존재가 또 있을까 싶소.

당산나무가 보였지. 어슴푸레 해가 떠오르는데 당산나무 주위만은 시커먼 보자기로 싸놓은 듯 어두웠다오. 목적지가 보이자 다리가 풀리면서 호흡도 가빠졌소. 칠십이 넘게 살아오는 동안 숨이 차도록 달린 건 그때가 두 번째였지. 첫 번째는 다시 말 할 필요도 없을 거요. 매구가 쫓아왔던 바로 그날이니까.

빨간 스웨타는…… 없었소.

내 눈을 의심했지. 매구가 나를 덮쳤던 간밤에 할망구 중 누군가가 스웨타를 가져가 버린 거요. 그때의 심정을 짐작이나 하겠소? 캥캥. 매구가 짖어댔소. 캥캥. 어디서 짖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그런 소리를 내며 펄떡펄떡 뛰어다녔소.

나는 당산나무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오. 빨간 스웨타가 널려 있던 나뭇가지에는 어둠이 오독하니 앉아서 나를 비웃는 중이었지. 숙희일까, 여수댁일까, 아니면 봉자일까? 셋 중 한 명이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마을 사람이 그랬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지. 빨간 스웨타가 사라졌다는 사실만은 틀림없었지만 말이요.

매구는 욕심이 많아서…… 눈독을 들인 사람을 찾아온대.

우리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야기가 그제야 생각났소. 늙으면 깜박깜박하기 마련 아니오? 허지만 아무리 잊음이 헐어도 화나는 일만큼은 절대 잊지 않는다오. 화와 욕심은 뼈에 사무치는 법이거든. 옛 이야기를 또 하자면 시어머니는 말년에 풍을 맞고 치매까지 걸리셨소. 자식은 물론이고 손자 이름도 기억 못하는 양반이 내가 모질게 했던 일은 하나하나 다 기억해서 일러바치곤 했소.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 이 썩을 년이 기저귀를 안 갈아줘. 밥을 안줘. 이렇게 말이오. 죽기 전까지 시어머니한테 남은 건 분노와 식탐뿐이었지.

그러고 보면 말이오, 눈독에는 화와 욕심이 같이 들어가 있는 거요. 가질 수 없으니 화가 나고 욕심이 생기고 끝내는 눈독을 들이니까.

매구는 그 눈독을 먹고 자라는 요물이었소.

나는 당산나무 아래 앉아 한참을 눈만 감고 있었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톱을 빠드득, 빠드득 물어뜯고 있더군. 살점이 뜯겨나가고 피가 맺혀도 멈추지 않았소. 점점 짧아지는 손톱을 보며, 일흔넷의 몸뚱이에는 화와 욕심이 쌓여갔소. 뼛속 깊숙이 사무쳤소.

꼭 찾아내 요절을 낼 것이여.”

그렇게 중얼거렸던 것 같소. 허나, 내 목소리 같지 않았지. 나는 일어섰소. 그 길로 집으로 향했지. 온몸이 아프고 눈앞이 흐려졌거든. 머릿속인지 몸속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소. 이 늙은이 안에 숨어 있던 무언가가 뚜껑을 여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소.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심코 거울을 봤지. 입 주위가 피범벅이었소. 상처는 없었지. 문득 배가 갈린 채 죽어 있던 시커먼 개가 생각났소. 혀로 입술을 핥으려는데 또 다시 구토가 몰려와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소.

비로소 그때야 봤지.

목구멍 안쪽에서 슬금슬금 뻗어 나오는 비쩍 마른 손을.

다섯 개의 손가락이 혀를 내리 누르며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거울에 똑똑히 비쳤소.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소.

하루를 꼬박 누워 있었던 가 보오. 눈을 떴을 때는 불그스름한 노을빛이 창문을 통해 비쳐 들었으니까. 몸을 움직이려는데 저절로 끙,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더군. 그래도 일어나야 했소. 나는 다시 한 번 당산나무로 가서 빨간 스웨타를 찾아볼 생각이었소.

그때 숙희와 봉자가 내 집으로 찾아왔소.

아이고. 이게 뭔 꼴이야? 밭에서 굴렀어?”

숙희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지.

당장 병원으로 가야겠구먼.”

봉자도 거들었어.

괜찮아.”

나는 손사래를 쳤소. 중요한 건 병원 따위가 아니었으니까 말이오. 숙희와 봉자의 손을 나눠 잡고 물었소. 최대한 침착하게, 매구가 엿듣지 못하도록 조용히.

그 스웨타 못 받는가?”

스웨타?”

숙희가 물었소. 고 년이 나랑 갑장이란 말은 했소? 그날도 역시 루주를 새빨갛게 바르고 앙큼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더라 이 말이오. 누구를 홀리려고 그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며 숙희를 뺀 우리 셋은 곧잘 그렇게 흉을 봤었지. 아무튼 숙희는 다시 물어왔소.

무슨 스웨타 말이야?”

당산나무에 걸려 있던 빨간 스웨타!”

나는 소리를 빽 질렀어.

아이고 우리 성님. 많이 아픈가 보네.”

봉자가 바투 다가오며 내 손을 꼭 잡았소. 나는 그 손을 뿌리쳤지. 이년들이 장난을 한다 싶었소.

그거 내 스웨타니까 빨리 내 놔. 어떤 년이 가져갔어?”

내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니까 숙희고 봉자고 모두 얼굴이 파랗게 질렸지. 나는 둘 중 한 년이 싹싹 빌며 나올 줄 알았소. 헌데 웬걸, 둘 다 싹 잡아떼는 거 아니겠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성님. 어떤 스웨타 말하는 거요? 누가 성님 걸 가져갔소?”

이년들이! 나는 말리는 숙희와 봉자를 밀쳐버리고 신발을 꿰신었소. 그러고는 곧장 여수댁이 있는 슈퍼로 갔지. 그 두 년이 아니라면 남은 건 여수댁뿐이니 당연한 일이었지.

여수댁네 슈퍼까지 가는 동안 심장이 벌렁거렸소. 몸뚱이는 천근만근이었지만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지. 한여름 뙤약볕이 정수리 위에서 패악을 부렸지만 나는 더운 줄도 몰랐소. 오히려 목덜미가 서늘합디다.

나는 헐레벌떡 슈퍼로 들어갔소. 의자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던 여수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봅디다.

성님 뭔 일 났소?”

나는 그렇게 말하는 여수댁을 향해 냅다 소리를 질렀지.

어쨌어?”

어쩌긴 뭘 어째요?”

아무 것도 모르겠다는 듯 앙큼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더 부아가 치밀었소.

스웨타!”

스웨타라니, 뭔 소리요?”

당산나무에 걸려 있던 빨간 스웨타 가져갔잖아!”

이 성님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여수댁이 그리 말하는 순간 나는 똑똑히 보았소. 고 년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방을 바라보는 걸.

옳거니 싶었지. 손바닥만 한 저 방구석에 내 스웨타를 숨겨놓았구나, 그리 생각했지.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었소. 신발도 벗지 않고 냅다 고 년 방으로 뛰어 들어갔소. 여수댁이 뒤에서 뭐라 소리를 질렀지만 그게 내 귀에 들어올 리 없었지.

워낙 자주 드나들던 곳이니까 방에 뭐가 있는지는 훤했지. 나는 옷장 문을 열어젖히고 뒤지기 시작했소. 스웨타…… 그 빨간색 스웨타…… 그것만 찾으면 된다 싶었지. 이 늙은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소. 옷장을 헤집고 또 헤집었지.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끄집어냈다 이거요. 스웨타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 같았지.

결국 옷장 바닥이 훤히 보이고 나서야 나는 뒤지는 걸 포기했소. 마음 같아서는 온 가게 구석구석을 다 헤집고 싶었지만 그때쯤에는 나도 지쳐서 더는 움직일 수 없었지. 그 사이 고 년이 뭔 소리를 질러댔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마을 사람들이 죄다 몰려와 구경하고 있습디다.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도 사람들 얼굴을 똑똑히 노려봤소. 스웨타를 가져간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 숙희와 봉자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게 아니겠소.

성님. 이제 나오소. 안 나오면 내 순경 부를 거니까 빨리 나오라고!”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여수댁이 버럭 소리를 지르지 뭐요.

나는 무릎을 짚고 일어나 거기 구경 나온 사람들한테 단단히 으름장을 놨소.

누구든 내 빨간 스웨타 제자리에 안 갖다 놓으면 동네에 불을 싸지를 거니까 그리들 알아!”

사람들을 헤집고 나오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다 들렸소. 미쳤다고, 노망났다고,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러는데 순간 또 화가 나서 한마디를 더 하려고 고개를 홱 돌렸소. 그때 말이오, 고개를 돌리던 바로 그때 슈퍼 기둥에 달아놓은 거울을 봤지 뭐요.

거울 속에는 눈은 번들거리고 피부는 쭈글쭈글한데 주둥이가 툭 튀어나온 여우 한 마리가 서 있었소.

.

나를 향해 그렇게 짖으며 웃어대는 그것은 분명 매구였소.

그걸 보니 소름이 돋습디다. 그대로 슈퍼를 나와서는 도망치듯 집으로 갔소.

.

.

.

매구가 따라오면서 짖어대는 것 같았소만, 그게 내 숨소리라는 걸 안 거는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이었지. 그러니 이 늙은이가 얼마나 놀랐겠나? 혹시 싶어 엉덩이 근처를 만져봤는데 다행인지 꼬리는 없었소. 나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지. 종일 굶었는데도 배고프다는 생각도 없었소. 다만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 수돗가로 가서는 물을 틀어놓고 정신없이 마셨다오. 그제야 조금 살 것 같더군. 그런데 말이오, 찬물에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문득 낯이 확 뜨거워졌지 뭐요.

내가 미쳤구나, 진짜 그런 생각을 했소. 허탈하고 무섭더이다. 제정신을 차린 것이지. 매구고 뭐고 그런 건 다 핑계고 내 욕심 탓에 모두를 괴롭힌 것 같아 낯짝이 화끈화끈 달아올랐소.

빨간 스웨타는 분명 탐이 나고 여전히 가지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일단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소. 아니, 그렇게 사과를 해서 잘 구슬리면 셋 중 누가 슬그머니 스웨타를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사실은 좀 했소.

나는 그 길로 다시 집을 나섰소. 그 전에 냉장고에서 커다란 사이다 한 병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지. 원래라면 다 같이 마을회관에 모여 연속극을 볼 시간이었거든. 내가 없지만 나머지 셋은 여전히 회관에 모여 있을 것 같았소. 사이다를 나눠 마시면서 슬그머니 미안하다고 말하고 같이 연속극 보면서 나쁜 년 욕 좀 하고 그러면 풀어지는 게 또 노인들 아니겠소? 그리 생각하고 같지.

조금이나마 욕심을 버리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더이다. 히히히. 웃음이 새어 나왔지 뭐요. 히히히. 다시 웃었소. 허파에 바람이 든 것처럼.

그러는 사이 마을회관에 도착했지. 과연 불이 훤히 켜져 있더구먼. 나는 조용히 입구로 다가갔소. 내가 왔다고 떠드는 것도 좀 웃긴 꼴이었으니까.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모기장을 닫아 놓았더구먼. 숙희 붕자, 여수댁이 둘러앉아서 지들끼리 뭐가 그리 좋은지 웃어젖히는 게 똑똑히 보였소.

아까 그 성님 하는 꼴 봤소?”

고 년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더구먼.”

난 옷장 다시 정리하느라 혼났잖아요. 노망이 나도 곱게 나야지. . 이제 똥오줌도 못 가릴 거 아녀요.”

크하하하.”

고 년들이 내 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었소. 내 이야기를 하며 비웃고 있었단 말이오.

이제부턴 그 성님이랑은 상종도 맙시다.”

. 그래야지. 미친년이랑 어울리면 우리도 그리 된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하하하.”

나는 당장에 쳐들어가서 저년들 머리채라도 잡을까 싶었지만 그 마음은 곧 식었소. 그 정도로는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다스릴 길이 없었지. 모기장 너머로 한참 노려보다가 발길을 돌렸소. 갑자기 사이다가 엄청 무겁게 느껴지더란 말이오. 사이다만이 아니었소. 무릎도 다시 쑤시고 허리도 아프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 그래도 나는 이를 악물고 집으로 갔소.

그 이후 이틀을 앓아누웠는데 이번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더군. 나는 졸지에 마을에 없어도 그만인 존재가 된 것이오. 내가 잘못한 게 뭐 있소? 먼저 눈독 들인 빨간 스웨타를 찾으려 했을 뿐인데. 안 그렇소?

나는 앓는 동안 이를 바득바득 갈았소.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거든.

이틀째 밤에 누군가 찾아왔소.

스웨타는 찾았니?”

그자는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내게 물었소. 섀시문에 달린 간유리로는 그자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없었지만, 나는 대번에 알아챘소. 매구였던 거요. 훌쩍 큰 키에 너울너울 날리는 머리카락, 튀어나온 주둥이, 그리고 어른거리는 꼬리까지, 그게 매구가 아니면 뭐였겠소?

매구가 다시 말했지.

사실 그 스웨타, 세 명이 돌려 입으려고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거야.”

그제야 이 늙은이 머릿속도 시원하게 정리가 됐소. 그렇지. 그런 게 아니고선 하나같이 다 모른다고 할 수 없지! 그 생각을 하자 부아가 치밀기보다는 오히려 머리고 마음이고 차갑게 식었소.

널 속여 먹은 인간한테는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지.”

매구는 그 말을 남기고 떠나갔소.

그 이후로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소. 퍼뜩 정신을 차리니 간유리에 울퉁불퉁 비친 내 얼굴만 보였으니까. 하지만 매구가 했던 말은 꿰매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에 박혀 있었지.

 

다음 날 나는 또 마을회관으로 갔소. 점심 무렵이었지. 우리는 늘 아침 일을 좀 해 놓고 점심때 모여서 국수를 말아먹곤 화투 한판을 쳤거든. 그때는 여수댁도 슈퍼를 잠시 닫고 함께 모였지.

내가 들어서자 나머지 셋은 놀라더군.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라 기분이 팍 상했지만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소.

그때 일도 사과하고 얼굴도 보고 싶고 해서 겸사겸사 와 봤네.”

그래도 봉자가 제일 싹싹했지. 바로 다가와서는 묻더군.

성님. 이제 좀 괜찮소?”

괜찮네. 다 괜찮으니까 요거나 좀 받으세.”

봉자는 내가 내민 사이다를 받아서 바로 냉장고에 넣었지.

얼굴이 많이 상했네. 그러게 왜 그 난리를 펴. 쯧쯧.”

숙희가 국수를 내오며 말했어. 네 그릇이더군. 나는 자연스레 밥상에 들러 앉았지. 여수댁은 여전히 새침한 표정을 지었지만 뭐라 하진 않더군. 삶은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이상하게 울컥해. 나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지. 그러고 보니 거진 사흘 만에 끼니를 때우는 거였어.

어때?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지?”

숙희가 묻기에 나는 헤벌쭉 웃기만 했지.

성님. 아프면 병원도 좀 가고 그래요. 걱정하잖아, 모두.”

여수댁이 뚱한 말투로 한 마디를 했어. 나는 또 웃기만 했어. 사실은 말일세, 크크크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고 있었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상황이 웃겼어. 꼭 코메디를 볼 때처럼 웃겼다, 이 말이지.

국수를 다 먹고 드디어 화투판이 벌어졌어. 에이, 화투라 해봐야 몇백 원 놓고 치는 건데. 누가 손해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 따는 사람은 먹을 걸 사거나 해서 결국 그 돈이 그 돈이 됐거든. 나는 뭐 잘 치는 것도 아니고 못 치는 것도 아니었지. 화투는 여수댁 고 년이 잘 쳐. 요로코롬 패를 숨겼다가 자기 먹을 때만 번개같이 내놓는데 아무도 못 당하지.

우리 넷은 자연스레 앉아서 각자 패를 받고 화투를 치기 시작했어. 그런데 그거 아시오? 말로는 설명을 못 하지만 똥 누고 밑 안 닦은 것처럼 찜찜한 기운이 흐르는 거. 다들 평소보다 말이 없었지. 그게 다 나 때문인 걸 어찌 모르겠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셋은 아직 날 무시하고 있던 거지. 스웨타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던 참에 마침 봉자가 사이다를 마시겠냐고 묻더군.

여태 넣어뒀으니 시원할 텐데 한 잔씩 하실라우?”

안 그래도 속이 갑갑했는데 한 번 줘 봐.”

나도.”

다들 마신다고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소. 마실 생각이 별로 없었거든. 봉자는 맥주 컵에다가 가득 차게 사이다를 따라서 숙희와 여수댁에게 나눠 좋소. 셋은 뭐가 그리 목이 말랐는지 사이다를 벌컥벌컥 마시더군.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찬찬히 바라봤소.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으니까. 크크크.

아이고. 속이 왜 이래?”

여수댁이 그 말을 하자마자 나머지 둘도 얼굴이 허옇게 질리지 않겠소. 참으로 약효가 빠릅디다. 그러니 벌레들이 얼씬도 못 하지.

처음에는 셋 다 배를 움켜쥐고 꼼짝도 못 하더니 곧 하나둘 게워내기 시작했소. 온몸을 비틀면서, 버둥거리면서, 손가락이며 발가락을 배배 꼬면서 말이오.

.

.

.

질세라 서로 그런 소리를 냅디다.

크크크.”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오. 숙희와 봉자는 이미 눈이 희뜩 뒤집혔어. 특히 숙희는 아예 등을 활처럼 구부린 채 오줌까지 질질 싸지 뭐요. 봉자는 자기 가슴을 어찌나 세게 쥐어뜯는지 손톱이 빠질 정도였고.

성님. 구급차…… 구급차 좀.”

얼마라도 더 어리다고 여수댁이 좀 버팁디다. 고 년은 내 다리를 붙잡고 신고를 해달라 난리였지. 하도 애원을 하기에 내 신고를 했수다. 119에도 신고를 하고, 112에도 신고를 했지. 그래요, 맞소. 뭐라고 하더라…… 그래! 최초 신고자가 바로 나요.

나는 고 년들이 게워내고 싸지른 냄새가 워낙 고약해 마을회관 밖에 나와 있었지. 얼마 안 있어 구급차가 먼저 오더군. 무슨 일이냐고 묻는 그 사람들한테 나는 회관 안을 가리켰어. 그러고는 말했지.

뭘 잘못 먹었는지 다들 배가 아프다네.”

, 내 말이 틀리진 않았잖소. 크크크.

 

아이고. 할 말이 없다 하면서도 오래도 떠들었네. 이제 마지막이오. 숙희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더구먼. 봉자랑 여수댁은 병원에 실려 가서 죽었고. 그래도 여수댁이 사흘이나 버텼다니 대단한 일이지. 안 그렇소?

나는 경찰에다가 모두 이야기를 했소. 내가 갔을 땐 이미 저러고 있었다고. 경찰은 대번에 날 의심하더군. 여수댁 고 년이 죽기 전에 한마디를 했다나 봐. 내가 사이다를 가져왔다고. 그리고 그 사이다에서 농약이 나왔으니 빼도박도 못 하게 된 것이지. 허허. 경찰이 묻더군. 왜 그런 거냐고. 나는 빨간 스웨타 이야기를 해줬소. 고 년들이 내 스웨타를 훔쳤다는 이야기. 그랬더니 이 경찰 양반들이 나를 노망난 노인 취급하네? 억울했지만 아무도 내 말을 안 믿어줬어.

그래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이오. 의사 선생을 만나 이야기하게 된 것도 다 그 때문이라고. , 내 이야기는 끝났소만 혹시 더 궁금한 게 있소?

? 후회? , 그거야 당연히 후회를 하지. 빨간 스웨타 말이오, 그걸 본 바로 그 순간에 그냥 걷어왔으면 됐을 텐데, 하는 후회는 매일 하지. 여기 4층에서 내려다보면 쇠창살 사이로 큰 나무들이 보이지 않소? 가끔은 그 나무마다 빨간 스웨타가 걸려 있는 걸 본다오. 하지만 눈을 감았다 뜨면 없어지지. 그런데 의사 양반, 그 스웨타는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내가 경찰한테 사정사정해 조사인지 뭔지 해 봤지만 죽은 년들 집에선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거든. 그러면 그건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을까, 매일 밤 그 궁금증에 시달린다오. 매구도 끝내 대답을 안 해 주거든.

누구? 매구? 그럼. 매구는 매일 찾아오지. 저기 저 창문에 매달려서 매일 밤 내게 속삭인다오.

여기서 나가고 싶지?”

크크크. 매구란 참 요상하지 않소. 잠시만, 목에 가래가 걸려서…….

.

.

.

아이고, 이제 좀 살 것 같구먼. 어때요, 의사 양반. 난 물 한 잔 마셔야겠는데 의사 양반은 시원한 사이다 한 잔 하실라우?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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