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달콤한 죄를 지었습니다

노말시티

 

 

달콤함에는 죄가 없다

 

민정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테러처리반에 연락했다.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지하철 낙서는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그럼 이걸 누가 처리해요. 이제 곧 운행 시작하는데 이거 이 상태로 그냥 시내 돌아다녀도 괜찮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걸 왜 우리에게 물으시냐고요. 설탕단속반에서 제대로 처리 못 해서 벌어진 일을 무턱대고 떠넘긴다고 될 일입니까. 하여튼 저희는 모르니까 시청 시설관리과에 연락하든 지하철공사에 연락하든 아니면 뭐 직접 닦든 알아서 하세요.

뚝. 연결이 끊겼다. 민정은 괜히 죄 없는 헤드셋을 빼서 집어 던지려다 말고 입술을 깨물며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런 민정을 달래며 선우가 말했다.

"아. 팀장한테 엄청 깨지겠네. 얘네는 또 여길 어떻게 들어온 거야. 하여간 지독한 놈들이라니까."

"시청하고 지하철공사에 다시 연락해 봤어? 뭐래?"

"똑같지 뭐. 시청도 지들 소관 아니래고. 지하철공사는 오히려 피해 보상 청구하겠다고 길길이 날뛰고. 결국 우리 비용으로 처리해야 할 것 같은데."

그까짓 설탕쟁이들 하나 못 잡아들여서 이 난리를 만들어? 니들 거기서 잠복하고 있으면서 뭐한 거야? 일을 제대로 하긴 한 거야? 나한테 뭐 불만 있어? 나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이러는 거 아니냐고! 자동 재생되는 팀장의 목소리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선우가 민정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어쩌겠냐. 깨질 때 깨지더라도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설탕단속반. 설탕을 비롯해 단맛을 내는 모든 인공감미료가 3급 마약으로 지정된 건 꽤 오래전이었다. 사실 모든 인공감미료라고 할 것까지도 없었다. 카르파탐(Karpartame)이라는 감미료가 개발된 이래 다른 감미료들은 생산되지도 않고 사탕수수 농장도 죄다 갈아 엎어졌으니까.

그 어떤 감미료보다 입에 착 붙는 달콤한 맛을 내지만 칼로리도 부작용도 없다. 심지어 아무리 많이 먹어도 질리지도 않는다. 카르파탐이 개발되면서 각종 디저트 시장은 그야말로 급성장을 했다. 달콤한 디저트는 메인 디시를 마치고 입맛을 마무리하기 위한 보조적인 음식이라는 개념이 깨지고 디저트만으로 식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아침으로 바닐라 푸딩 점심으로 라즈베리 파이에 민트초코 아이스크림 저녁으로 풀플레이트 초콜릿무스 케이크를 먹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디저트를 마음껏 즐기던 사람들이 이유 없는 죄책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달콤함을 즐기는 것 자체가 끔찍한 죄라도 되는 양 스스로를 탓하고 심하면 학대하기까지 했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달콤함을 즐기는 것도 못 참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자신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급기야는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나자 결국 카르파탐은 마약류 물질로 지정되었다.

그렇다고 단맛을 완전히 금지할 수는 없었다. 단맛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만큼이나 그걸 절실히 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결국 모든 생산과 유통을 감시하면서 일정량 이상은 섭취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당연히 암시장에서 카르파탐이 거래되기 시작했고 그걸 단속하는 게 바로 설탕단속반이었다. 정확히는 마약수사대 카르파탐팀이었지만 다들 그냥 설탕단속반이라고 불렀다.

 

카페테리아에서 민정은 입맛이 별로 없었다. 야채 샐러드가 곁들여진 스파이시 누들에 미트 소스를 끼얹는 것으로 칼로리와 영양소를 대충 맞췄다. 샐러드를 끼적거리던 민정은 맞은편에 내려놓은 선우의 식판을 보며 경악했다. 두툼하게 튀겨진 치킨커틀릿과 감자 믹스볼 옆에는 초콜릿 쉐이크가 가득 담긴 잔이 놓여 있었다.

"뭐야! 설탕주의자들 때문에 그 고생을 하고 나서 그걸 먹을 생각이 들어?"

"괜찮잖아. 일일섭취량 이하니까. 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때는 당분을 먹어도 부작용이 없는 거 몰라? 너도 한 컵 가져와. 오늘 네가 받은 스트레스면 초콜릿을 통째로 들이부어도 아무 문제 없을 거다."

카르파탐이 죄책감을 유발하는 이유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뇌에서의 복합적인 호르몬 작용이 심리적인 요인과 결합하여 발생하는 부작용일거라고 추측하는 정도였다. 한 가지 명확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연구 결과는 있었다.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에서 섭취하는 카르파탐은 죄책감을 유발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았다.

실제 연구에서 계산된 상관 계수 값보다도 그 결과가 주는 메시지가 훨씬 직관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말하자면 고생하지 않고 달콤함만 얻을 수는 없었다. 뿌리치기 힘든 카르파탐의 달콤함은 사람들을 더 극심한 스트레스로 몰아넣는 명분이 되었다. 나태함은 비난받고 스스로를 혹사하는 열정이 치켜세워졌다. 카르파탐이 유발하는 죄책감은 역설적으로 사회의 톱니바퀴에 사람들을 갈아 넣을 때 마땅히 느껴야 할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됐어. 난 단 거 싫어해."

"싫어해? 죄책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까짓 단맛 대문에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야 해? 나쁜 게 설탕이지 나야?"

"아하. 그런 식이군. 그럼 반설탕주의자?"

"그냥 내가 싫은 거야. 다른 사람들이야 알아서 먹든 말든. 이렇게 지독한 당분 냄새만 안 풍기면 네가 뭘 먹든 내가 간섭할 이유가 없지."

"냄새가 나 봐야 얼마나 난다고... 카르파탐이... 잠깐. 좀 이상한데."

선우는 초콜릿 쉐이크 컵에 코를 바짝 가져다 댔다. 손을 몇 번 까닥거려 쉐이크에서 스며 올라오는 당분 냄새를 맡아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선우의 쉐이크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란 뜻이었다. 민정은 의아해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럼 대체 어디서... 조심해! 카르파탐 가스야!"

옆 테이블 바닥에서 무언가가 굴러나오는 것과 동시에 민정이 외쳤다. 조각이 맞물린 틈새로 가스가 새어 나오는 주먹만한 갈색 공이었다. 민정이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자 펑 소리와 함께 공이 터지며 카페테리아 전체가 달콤한 냄새로 가득 찼다. 민정의 입에 자신도 모르게 침이 고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장에 달린 스프링쿨러가 튀어나오더니 사방으로 진한 초콜릿 물을 쏟아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느라 카페테리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테이블과 바닥에 흩어진 음식들 위로 카르파탐이 가득한 인공 초콜릿이 비처럼 내리면서 표면을 반짝반짝 빛나는 진한 갈색으로 코팅했다.

사람들을 대피시키느라 온통 초콜릿을 뒤집어써 버린 민정은 선우가 내민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입술 위로 문질러진 초콜릿이 입안으로 녹아들며 달콤한 맛이 감돌았다. 민정은 인상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역시 민정에게 초콜릿의 맛은 달콤함도 죄책감도 아닌 분노였다.

 


마약수사대에 속해있는 팀이었지만 설탕단속반의 업무는 사실 대단치 않았다. 카르파탐에는 중독성이 없었다. 유일한 부작용은 죄책감이었고 불법 카르파탐을 먹는 사람들은 대체로 조용하고 얌전했다. 죄책감에 못 이겨 스스로 경찰서로 달려온 사람들의 신고를 접수하는 게 일과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였다. 케이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케이크(CAKE; Critical Action for Karpartame Emancipation). 카르파탐 해방을 위한 결정적 행동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나타난 이 비밀단체는 카르파탐 섭취 제한을 철폐하고 모든 사람이 저렴한 카르파탐 디저트를 마음껏 즐겨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습적인 시위와 홍보 활동을 끈질기게 펼쳐 나갔다. 최근에는 시위가 점점 과격해져서 설탕단속반은 이들의 행동이 테러로 변질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핵심 간부 몇 명에게 감시가 붙었고 민정과 선우는 그 중 김아린이라는 사람을 쫓고 있었다. 그런데 어젯밤 잠시 눈길을 뗀 사이 김아린이 사라졌다. 그리고서 새벽에는 지하철에 낙서가 그려지고 아침에는 카페테리아에서 카르파탐 테러가 발생했다. 누군지 몰라도 치밀하게 계획된 범행이 분명했다. 누군지 모를 것도 없이 김아린일게 뻔했다.

"코팅된 두께나 건조 속도로 봐서 카르파탐 원액이 아니라 가루로 말린 걸 스프링쿨러 배관에 탄 거야. 색소도 섞고.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 거겠지."

선우는 테이블을 뒤덮은 초콜릿을 손가락으로 슥 문질러 입안에 넣으며 그렇게 말했다. 진한 갈색으로 코팅된 치킨커틀릿을 크게 한 입 베어 물기도 했다. 조사를 위해 맛보는 수준은 한참 넘어선 정도였다.

"그만 좀 먹어. 증거 훼손이야. 그거."

"널린 게 증거인데 뭐. 일단 우리부터가 초콜릿으로 코팅됐는데. 뱃속도 코팅한다고 뭐 문제 될 거 있어?"

"일일섭취량 벌써 초과한 거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스트레스 받았잖아. 날 봐. 내가 죄책감 느끼는 거로 보여?"

"...아예 스프링쿨러에 입을 벌리고 있지 그랬냐."

"그 생각을 못 했네."

선우는 남아 있는 초콜릿 치킨커틀릿을 한입에 쓸어 넣고 우적우적 씹었다. 민정은 혀를 차고 돌아서며 말했다.

"알아서 해라. 대테러처리반 올 때까지 기다릴 거지? 난 가서 팀장한테 죽여달라고 빌어야겠다. 그전에 일단 이거 좀 씻고."

 


"그까짓 설탕쟁이들 하나 못 잡아들여서 이 난리를 만들어? 엉?"

팀장의 반응은 민정의 예상과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일치했다. 이렇게 뻔한 욕이면 그냥 가상으로 먹었다 치면 안 되나. 어차피 머릿속에서 저절로 재생됐던 건데. 혹시 팀장 자체가 빅데이터에 기반해 만들어진 인공 지능 욕 머신은 아닐까. 다행인 점도 있었다. 팀장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 없이 정해진 말로 마무리 지으면 되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입으로만 하지 말고! 발로 뛰어 발로! 나가 봐!"

뒷걸음질로 빠져 나와 조용히 문을 닫고 나자 그제야 억눌렸던 스트레스가 치밀어 올랐다.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그러고 보니 밤을 새우다시피하고 아침으로 샐러드 몇 조각 끼적거린 게 다였다. 입맛이 없어도 배는 채워야 했다.

다시 식당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즉석식품 코너를 둘러보았다.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는 현실이 무색하게 진열장 안에는 카르파탐이 함유된 디저트들이 가득했다. 치즈케이크 티라미수 슈크림볼 에그타르트 딸기오믈렛 크림롤케이크 푸딩 젤리 아이스크림. 끝도 없었다.

물론 모든 디저트는 카르파탐 함유량이 표시된 채 단단히 잠긴 유리 진열장 안에 들어 있었다. 성인 일일제한량 30% 함유. 사람들은 저런 디저트 세 개를 먹기 위해 하루를 살았다. 그것도 평균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가정하에서였다. 하루 6시간의 규정 근무 시간을 채우지 않는 사람들은 제한량이 더 줄어들었다. 직업이 없는 사람들의 제한량은 일반인의 30%였다. 즉 하루에 디저트 하나 이상을 먹을 수 없었다.

민정은 옆 선반에 있는 샌드위치 하나를 대충 집어 밖으로 나왔다. 출구에서 딩동 소리가 나며 안내음이 들려왔다. 오천 원 결제되었습니다. 해당 식품의 카르파탐 함유량은 5%입니다. 오늘 남은 제한량은 95%입니다.

카르파탐이 들어 있는 줄 몰랐지만 이미 게이트를 빠져나온 후였다. 카르파탐이 든 제품은 환불 절차도 번거로웠다. 오늘 정말 되는 일이 없어. 민정은 울컥 치밀어 오른 화를 씹어 삼키며 근처 공원 벤치로 향했다.

날씨는 정말 좋았다. 돈을 주고 행복을 사는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날씨만큼은 공짜였다. 민정은 비닐을 뜯고 감자샐러드와 딸기잼이 발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폭신한 빵이 눌리며 고소하고 부드러운 감자샐러드가 빠져 나와 은은하게 입안을 채웠다. 약간 밋밋하다고 느낀 순간 카르파탐의 달콤함이 녹아들며 깔끔하게 혀를 자극했다.

맛있다. 단 걸 싫어한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었다. 아니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민정은 카르파탐을 싫어했다. 하지만 단맛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민정에게는 언니가 하나 있었다. 피를 나눈 언니는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서로를 아꼈다. 다정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열심히 살았다. 사실 그래야만 했다. 갚아야 할 집안의 빚이 있었고 언니에게 의지하는 무능력한 애인이 있었다.

몇 번이나 관계를 다 끊어 버리라고 했지만 언니는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그러고 사냐고. 안 힘드냐고. 괜찮아. 네가 있잖아. 난 너만 있으면 돼. 언니가 끊지 못한 건 하나 더 있었다. 카르파탐이었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그러면 다 정리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밀어붙이던 언니에게 일반인의 카르파탐 제한량은 너무 적었다. 밤마다 어디선가 몰래 사 온 디저트를 먹는 언니를 막을 수 없었다. 나만 있으면 된다며. 왜 그걸 못 끊어. 너도 힘들잖아. 이게 젤 편해. 이걸 먹으면 힘들고 골치 아팠던 일들이 다 녹아 없어진다. 나까지 다 녹아서 바다로 흘러가 섞여 버릴 것 같아. 너도 한 입 먹어 볼래. 싫어. 난 단 거 싫어해.

언제부터 죄책감이 나타나기 시작했는지 민정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좀 더 신경 써서 지켜보지 못한 것 같아 민정은 아직도 가슴이 콱 막혔다. 그렇게 단 디저트를 먹으면서도 언니는 점점 말라갔다. 다 내 책임이야. 내가 바보 같아서. 이런 거나 먹어대고. 미련하게. 너도 내가 싫지. 힘들지. 미안해. 힘들게 해서. 다 나 때문이야. 너도 내가 없는 게 나을 거야.

그렇게 언니는 떠났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벤치 옆자리로 느닷없이 밀고 들어오며 던져진 말에 민정은 깜짝 놀랐다. 재빨리 기억을 흩어 버리고 살짝 배어 나온 눈물을 찍어 내며 고개를 돌린 민정은 다시 한번 놀랐다.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민정 옆에서 초롱초롱하게 눈을 굴리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김아린이었다. 케이크의 핵심 멤버 김아린. 오늘 새벽과 아침에 벌어진 테러 용의자.

반사적으로 허리로 가던 손을 멈추고 민정은 잠시 아린을 노려보았다. 도망갈 생각도 민정을 공격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식사 시간이었다. 민정은 마지막 샌드위치 조각을 입에 넣었다. 민정이 샌드위치를 씹어 넘기고 입을 닦는 걸 기다리던 아린은 은박지로 감싼 동그란 초콜릿 하나를 내밀었다.

"디저트예요."

"미쳤어 정말. 내가 누군지 알아요? 알죠? 이거. 무슨 뜻이에요?"

"무슨 뜻일까. 그거 비매품이에요. 일일제한량 상관없이 먹을 수 있다는 뜻이죠. 한 가지 더. 부작용도 없어요. 죄책감 같은 거 느끼지 말고 마음껏 먹어도 돼요."

"왜 자기 무덤을 파죠? 증거가 없어서 못 잡아들이고 있었는데. 뇌물공여죄 현행범이에요."

아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초콜릿을 다시 가져가서는 껍질을 벗기고 자기 입에 쏙 넣었다. 체온에 스르르 녹아드는 초콜릿을 음미하는 듯 눈을 슬쩍 감으며 벤치에 잠시 기댔던 아린은 민정을 돌아보며 말했다.

"세상에 어쩌나.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도 위반해 버렸네요."

"이거 음모예요? 일부러 들어가려고? 아니면 혼자가 아닌가?"

"혼자가 아니냐고 물어보면서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네요. 혼자인 거 아는구나. 역시. 제가 촉이 좀 좋아요. 사실 초콜릿은 장난친 거였고.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말이 통할 것 같아서."

"난 취조실에서 하는 대화가 좋던데. 속마음도 다 털어놓게 되고."

아린이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는 어이없어하는 민정을 보며 말했다.

"언니 재밌다. 역시 내 예상대로야. 좋아요. 우리 시원하게 얘기 한 번 해봐요. 취조실 말고 어디 분위기 좋은 데서. 얘기 다 끝나고도 마음이 안 변하면 잡아가세요. 좀 살다 나오지 뭐. 사람 잘못 본 죄로."

언니. 거리낌 없이 튀어나온 언니라는 말에 민정의 가슴이 다시 조금 아릿해졌다.

 


아린이 민정을 데리고 간 곳은 뜻밖에도 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로변에 위치한 카페였다. 의아해하는 민정을 보며 아린이 말했다.

"어디 비밀 아지트라도 데려가는 줄 알았어요? 언니를 어떻게 믿고. 나중에 잡혀가더라도 나 혼자 가야죠. 이쪽으로. 여기가 전망이 좋아요. 햇볕도 잘 들고."

아린은 창가 쪽 자리로 민정을 안내했다. 반쯤 걸친 햇볕이 포근해 보이는 소파를 딱 좋을 정도로 따뜻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린은 테이블에 설치된 스크린을 클릭해 민정 방향으로 메뉴판을 띄워 주며 말했다.

"뭐 드실래요? 여기 다 맛있어요. 아. 합법적인 디저트 들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전 됐어요. 단 거 싫어해요."

"그래요? 그럼 제가 고를게요. 나중에 뺏어 먹을지도 모르니까 두 개 시켜야지."

아린은 메뉴판을 자기 방향으로 돌리고는 콧노래까지 불러 가며 메뉴들을 살피더니 바닐라 에끌레어와 밀크 크레이프를 주문했다. 둘 다 카르파탐 제한량 45%의 달디단 디저트였다. 그렇게 단 걸 먹어대면서도 죄책감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아린을 보며 민정은 카르파탐이 정말 죄책감을 유발하는 건지 의심해야 했다. 뭐. 사람마다 다른 거겠지.

"정부가 왜 카르파탐을 규제한다고 생각해요?"

디저트를 주문하고 민정을 향해 돌아본 아린의 눈은 놀랍도록 진지해져 있었다. 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목을 가다듬고는 대답했다.

"부작용이 발견됐잖아요. 죄책감을 유발하는. 몰라서 물어요?"

"그걸 정말로 믿으세요?"

믿을 수밖에요. 제가 직접 봤으니까. 민정은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자 아린이 다시 말했다.

"일단은요. 부작용은 발견된 게 아니에요. 발명된 거지."

"뭐라고요?"

"죄책감을 유발하는 부작용은 만들어진 거예요. 일부러 만들어서 카르파탐에 넣은 거라고요. 원래의 순수한 카르파탐에는 아무런 부작용도 없어요."

아린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너무도 확고한 모습이라 민정은 살짝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놀랄 것도 없었다. 케이크라는 단체. 엉뚱한 주장을 하는 사이비 단체일수록 신념이 강한 법이니까. 민정은 차갑게 되물었다.

"그걸 어떻게 믿죠?"

"내가 만들었으니까."

이 대답은 의외였다. 민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허리를 바짝 세웠다. 아린의 표정은 여전히 진지했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요."

"왜 못 믿죠? 내가 너무 어려서? 뭐 그래서 논문 제1 저자도 뺏기긴 했죠. 얼마나 억울하면 몰래 내 이름을 따서 카르파탐이라는 용어를 만들었겠어요. 카르파탐의 첫 세 글자. K. A. R. 제 이니셜이에요. 김. 아. 린. 핑계는 분자 구조하고 원재료명에서 적당히 갖다 붙이긴 했지만."

"...지금 그걸 믿으라는 거예요?"

"내가 여기서 카르파탐 강의라도 해야 믿겠어요? 아니 그래도 안 믿겠지. 뭐 내가 그걸 만들었다는 건 사실 중요한 건 아니에요. 나한텐 중요하지만. 다 지난 얘기고. 중요한 건 왜 카르파탐에 일부러 죄책감을 유발하는 부작용을 집어넣었느냐. 이거겠죠. 그쵸?"

민정은 여전히 미심쩍은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까닥했다. 아린이 말을 이었다.

"그냥 먹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행복을 주는 물질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아무런 부작용도 없고. 중독성도 없고. 게다가 엄청 싸. 그럼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모든 사람이 거기에 빠져서 아무 일도 안 하고 세상이 돌아가질 않겠죠. 그게 마약이잖아요."

"부작용도 없고 중독성도 없다니까요."

"간단하게 행복을 주는 것 자체가 중독이죠. 그렇게 간단히 행복을 얻을 수 있으면 누가 열심히 일하겠어요?"

"왜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요?"

어이가 없었다. 민정은 이야기를 계속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아무리 주고 받아봐야 허공을 맴돌 뿐이었다. 무엇보다 피곤했다.

"주문하신 디저트 나왔습니다."

언제 다가왔는지 허리 높이의 원통 모양 트레이 하나가 테이블 옆에 서서는 초록색 불빛을 깜박였다. 크림이 탱탱하게 채워진 기다란 슈 위에 바닐라와 블루베리가 몽글몽글하게 올라간 바닐라 에끌레어와 종이처럼 얇은 노란색 크레이프가 겹겹이 쌓아 올려진 삼각형의 밀크 크레이프가 트레이 위에 얌전하게 올려져 있었다. 아린이 에끌레어와 크레이프를 테이블 위로 옮기자 트레이는 딩동 하고 알림음을 울리고는 주방을 향해 굴러갔다. 여기서 끊자. 민정은 달그락거리는 접시 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서둘러 말했다.

"괜히 시간을 끌었네요. 나머지 얘기는 서에 가서 하시죠. 이건 제가 살게요."

"네? 먹지도 않고요? 그건 디저트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세상에 어떻게. 언니 듣던 것보다 엄청 쌩하다. 전 이거 다 먹을 때까지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니까 잡아가든 끌고 가든 맘대로 해요."

아린이 포크를 집어 든 기세가 너무 단호해서 민정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걸 물러섰다는 신호로 들었는지 아린은 활짝 표정이 펴지며 포크를 크레이프의 뾰족한 끝에 세로로 찔러 넣었다.

"언니는 크레이프를 한 장씩 떼서 먹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요? 설마 언니가 그렇게 먹는 건 아니겠죠? 그럼 나하고 결투예요."

"단 거 싫어한다니깐."

"그럼 언니는 무슨 낙으로 살아요? 매운맛? 고기? 파는 아이돌 있어요? 책이나 영화 좋아해요?"

"인생에 낙이 어딨어요. 그냥 사는 거지."

"그럼 왜 열심히 일하는데요?"

이야기가 다시 돌았다. 민정은 어쩌면 대답할 말이 없어서 이 자리를 뜨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 열심히 일하지. 갚아야 할 빚도. 뒷바라지할 혹도 없는데. 아린이 다시 말했다.

"제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요. 세상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돼요."

배부른 소리야. 저런 대책 없는 낙관주의가 카르파탐의 진짜 부작용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세요. 너무도 간단한 방법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어요. 이런 디저트만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음식. 옷. 집. 문화생활. 전부 다. 생각해 보면 정말 간단하게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해 줄 수 있어요. 이 카르파탐이 얼마나 쉽게 만들어지는 줄 아세요? 누가 계산했는데 현재의 기술력이면 옛날에 농사 짓던 사람 백 명만 있어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필요한 카르파탐을 생산할 수 있대요."

"그건."

그냥 무시하려던 민정의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반박이 튀어나왔다. 아린이 눈을 반짝이며 민정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정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건 말 그대로 최소한이잖아요. 멋진 차. 커다란 집. 이렇게 화려한 카페. 아린 씨가 들고 있는 휴대폰. 이런 걸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전부 다 카르파탐에 만족하고 디저트만 먹으면서 일을 안 하면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겠어요?"

"그렇게 멋진 걸 갖고 싶으면 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되죠. 누가 말리나. 그런데 지금 봐요. 진짜 엄청난 걸 누리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요? 그 사람들은 오히려 편안하게 그걸 얻어요. 지금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게 필요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을 디저트도 못 먹게 억지로 막으면서 하루에 여섯 시간씩 꼬박꼬박 스트레스 받으며 일하게 만들고 있는 거라고요."

"그건..."

이번에는 민정의 반박이 쉽게 튀어나오지 않았다. 내가 왜 팀장에게 그런 말을 들으며 계속 일해야 하지. 돈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디저트도 안 먹으면서.

아린은 조그만 나이프로 에끌레어를 한 조각 잘라 민정에게 내밀었다. 터져 나올 듯 가득 찬 크림에서 반짝 윤기가 흘렀다.

"먹어 봐요. 행복해지는지 아닌지."

단 거 싫어한다고 했잖아요. 왠지 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어디. 민정은 자기도 모르게 아린이 내민 포크를 덥석 물었다. 달콤함이 금세 입안에 번졌다. 슈는 자글거리며 녹아들고 크림은 미끄러지듯 퍼졌다. 산뜻한 바닐라의 향이 코를 간질였다. 이걸 먹으면 힘들고 골치 아팠던 일들이 다 녹아 없어진다. 언니가 속삭였다.

"너까지 다 녹아서 바다로 흘러가 섞여 버릴 것 같지 않니?"

익숙했던. 그리운 목소리가 귀에 들렸다. 민정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니였다. 소식도 없이 떠나버렸던 언니가 민정의 옆에 서 있었다. 언니는 아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민정에게 살짝 윙크했다.

"언니...? 언니 좀... 살쪘다. 근데 보기 좋아. 정말 보기 좋아."

왈칵 눈물이 솟았다. 크레이프가 너무 달콤해서 그래.

 


"저는 지금 카르파탐 해방을 위한 결정적 행동. 케이크 회원들이 집회를 벌이고 있는 광화문에 나와 있습니다. 당초 정부는 오늘 집회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참석자들을 전원 연행하겠다는 초강수로 대응했었는데요. 정부 예상보다 너무 많은 수의 회원들. 지금 제 뒤로 보시면 아마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인 사람들을 보실 수 있을 텐데요. 경찰 추산 오만 명. 주최측 추산 이십만 명의 사람들이 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있습니다."

사람들 틈에서 겨우 버티며 카메라 앞에 서 있는 기자 뒤편으로 사람들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부작용 없는 카르파탐 공급 제한 철폐하라! 철폐하라!"

"카르파탐 부작용 조작 관련자들 처벌하라! 처벌하라!"

"고생 끝에 골병든다! 노동 강요 그만둬라!"

"달콤함은 죄가 없다! 억지 누명 집어쳐라!"

"네. 지금 구호를 들으셨을 텐데요. 오늘 이렇게 예상 밖으로 많은 인원이 모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네 시간 전에 기습적으로 발표되었던 전 카르파탐 개발 연구원 김모 씨의 폭로 때문이었습니다. 카르파탐의 부작용으로 알려졌던 죄책감을 사실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심어 넣었다는 주장이었는데요. 같이 공개한 자료들로 보아 상당한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지금 제 옆에는 케이크의 대표라고. 오늘 처음 밝히셨죠. 네 케이크의 대표이신 백나현 선생님이 나와 계십니다. 백나현 선생님?"

"네. 백나현입니다. 케이크는 사실 많은 사람이 공동으로 이끌어 나가는 조직인데요. 오늘은 제가 대표 역할로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한 가지 질문드릴 게 있는데요. 만일 정부가 카르파탐에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심은 게 사실이라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대체 왜 그런 일을 했을까요."

"네. 간단히 말씀드려서 현대 사회가 자동화와 인공 지능을 통해 인간의 노동이 그다지 필요 없는 기술 발전을 이룬 건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현대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노동력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런 고도의 물질문명을 누리고자 하는 계층과 노동력을 제공하는 계층이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인데요. 과거에는 생계를 담보로 저소득층에게 노동을 강제하는 게 가능했지만. 말하자면 먹고 살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단 말이죠. 현대의 기술 발달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수준을 이미 달성했단 말입니다. 이러면 문제가 뭐냐면 저소득층에게 더이상 노동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거죠."

"네... 당장 납득하기에는 좀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만. 어쨌든 그런 게 카르파탐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카르파탐은 어찌 보면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요.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굉장히 행복해집니다. 과거에는 여기에 살이 찐다거나 건강이 안 좋아진다는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쉬운 행복을 금지하는 어떤 사회적인 울타리를 세우기가 쉬웠는데요. 기술의 발전으로 그런 부작용이 다 사라져 버린 거죠. 말하자면 달콤함은 반드시 일정 수준의 고통을 견뎌내고 얻어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고 그 고통을 빌미로 노동을 강제할 수 있었던 건데요. 그게 끝난 거죠. 불필요한 고통 없이도 달콤함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이미 우리 앞에 와 있었던 겁니다. 이걸 억지로 막고 있었던 거죠. 간단히 말해 더 이상 달콤함에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마음껏 달콤함을 누릴 자유가 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은 사람들의 함성에 묻혔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 이제 거의 삼십만 명에 가까워졌다. 수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에서 케이크의 핵심 멤버들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린아! 준비 다 됐어?"

"응! 잠시만! 이것만... 연결하면... 됐어! 발사 준비 끝! 민정 언니. 그거. 그거 당기면 돼!"

"좋아. 간다. 으... 꽤 뻑뻑한데. 언니! 이것 좀 도와줘! 여기!"

"여기? 이렇게 잡으면 돼? 그냥 당겨?"

"응! 하나 둘 셋!"

펑 소리와 함께 상자에 담겨 있던 초콜릿들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반짝이는 은박지에 싸인 작은 달콤함들이 별처럼 하늘을 수놓았다. 오늘 그 달콤함들은 공짜였다. 어쩌면 앞으로도.

 

- 끝 -

댓글 0
분류 제목 날짜
pena 유령도시의 서점 by pena 2020.07.01
노말시티 접근 한계선 2020.07.01
아이 집을 짓다가 2020.07.01
곽재식 곰과 대통령과 나4 2020.06.30
노말시티 네 글자로 줄이면10 2020.06.01
이로빈 청룡가도 2020.05.31
곽재식 삼월이의 돌멩이7 2020.05.31
괴이학회 여우 고개 by 전건우 2020.05.04
노말시티 몽선잡문 2020.05.01
pilza2 네거티브 퀄리아 2020.05.01
곽재식 팔당 처리소2 2020.04.30
해망재 좀비같은 것은 없어 2020.04.01
노말시티 그래도 체온이 있으니까 2020.04.01
이경희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2 2020.03.31
곽재식 제발 정신 좀 차려라4 2020.03.31
해망재 먼 별의 바다에서 교신하기 2020.03.01
노말시티 달콤한 죄를 지었습니다 2020.03.01
pilza2 세 가지 소원을 이루는 방법 2020.03.01
이경희 게으른 사관(史官)과 필사하는 목각기계 2020.02.29
곽재식 신들의 황혼이라고 마술사는 말했다2 2020.02.29
Prev 1 2 3 4 5 6 7 8 9 10 ... 44 Next

게시물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