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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별의 바다에서 교신하기

해망재

“사실 셔틀이라고 해도 그냥 기계일 뿐이야. 전자렌지나 토스터와 다를 게 없어.”

수동 셔틀면허 연습교관인 순이 씨는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그저 그렇게만 말했다. 

“수동 운전석이 달린 셔틀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버튼 한 번만 누르고 기다리면 빵이 되어 나오는 것을 처음부터 밀가루 하나하나 계량해서 반죽부터 해서 넣는다, 그 정도 차이인 거니까. 좀 번거로운 것 뿐이야. 절대 못 한다, 그렇게 말할 만한 것은 아니고. 물론 굳이 그런 일을 감당할 만큼 스페이스 셔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굳이 수동 면허를 따긴 하지. 시동도 걸 줄 모르는,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 시험이나 쳤을까 싶은 놈들이 수동 면허를 따러 오는 건... Z염색체가 두 개거나 Y염색체가 있는 놈들이 괜히 허세를 부리는 거든가, 아니면 너 같은 빌라르반 인들의 성년식이지. 보통은 말이야.”

안 될 거라거나, 어려울 거라거나, 지금이라도 포기하라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순이 씨는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도 않는 듯 태연하기만 했다. 내 신분증에 적힌 내 출신 행성은 분명 빌라르반 성이지만, 외견은 순이 씨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지구인이라는 사실은 아예 생각도 나지 않는다는 듯,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면허를 따는 데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만 간략하게 설명했다. 뻔히 지구인의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빌라르반 출신이라는 신분증을 내밀다니, 그것만으로도 내게 물어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텐데. 진기한 표본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늘 익숙해져 있던 나는, 그런 순이 씨의 태연한 얼굴에 조금은 놀랐다. 사실은 언제나 갈망해 오던 일인데도, 어쩐지 조금 소외된 듯한 느낌마저 받았다. 

굉장히 낯설고 묘한 기분을 곱씹고 있는데, 순이 씨가 말했다.

“그럼 일단 앉아 봐.”

“예?”

“가서, 시동 걸라고. 빌라르반 출신이면 학교에서 기초 강습은 받았을 텐데.”

“아, 그게...”

“어디까지 할 줄 아는지는 알아야 서로 편하지. 다 배운 것을 다시 하면 너도 시간 낭비 돈 낭비잖아? 모르는 부분은 창피해 하지 말고 말 해. 우주에 혼자 나가기 전에, 배울 건 확실히 배워야지. 셔틀은 그냥 기계일 뿐이지만, 전자렌지와 확실히 다른 게 하나 있어. 뭔지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자렌지는 사람을 죽이지 못하지만, 셔틀은 잘못 몰면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을 죽일 수 있다. 특히 성년식에서 셔틀 레이싱을 벌이는 빌라르반 인들은, 종종 면허를 따고 처음으로 셔틀을 몰다가 죽거나, 다른 사람들까지 사고에 휘말리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이런 짓을 시작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건 제정신인,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지구인”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파라샤, 네가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내 열 일곱 번째 생일이 지나자마자, 그 말씀부터 하셨다. 

빌라르반의 아이들은, 열 여덟 번째 생일이 지나기 전 추수감사 주간에 성인식을 치른다. 지금은 이렇게 고도의 문명 속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빌라르반 인들이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그렇게 평화로운 존재들이 아니리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5백년 전에만 해도 빌라르반 인들은 싸움과 노략질로 먹고 사는, 전형적인 우주해적들로 악명높았다. 그 중에서도 이름높은 열네 가문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히 열대여섯 살만 되어도 셔틀을 몰고 우주를 가로질러 어지간한 중규모 상선 한두 척은 납치해 오는 게 기본이었다. 여자아이, 남자아이 할 것 없이, 적어도 작은 상선 한 척이라도 제 손으로 납치해 와야 혼담이 들어올 정도라 했으니, 그 용맹함, 아니, 흉폭함을 짐작할 만 하다. 

물론 지금의 빌라르반은 평범하게 우주 이곳저곳의 중계무역을 주로 하는 평화로운 행성이다. 한편 현재 전체 인구의 60% 정도는 중계무역과 상관없이, 지상에서 농사를 짓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이런저런 생산업이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사실 그런 사람들은 우주에 나간다고 해도, 주로 여객셔틀을 이용하지, 자기 손으로 셔틀을 몰아 대기권을 돌파할 일은 어지간해선 없을 것이다. 아니, 자기 손으로 셔틀을 몰 수 있는 사람도 백이면 백, 자동조종장치가 달린 셔틀을 이용하지, 굳이 수동조종으로 셔틀을 몰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르반 사람들의 99.9%는 수동 셔틀면허를 갖고 있었다. 

“음, 이건 네 생물학적 부모가 지구인이기 때문에 네가 우리와는 다르다거나, 그런 이야기와는 아주 다른 문제야. 파라샤, 너도 알고 있지? 엄마가 무슨 말 하려는지.”

“알아요.”

특별한 사유, 그러니까 장애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빌라르반의 아이들은 수동 셔틀을 몰아 레이싱에 나선다. 설령 평생 수동 셔틀을 몰 일이 없어서, 자격만 따서 어떻게 대기권만 돌파하고 바로 기권하더라도 말이다. 요식행위로라도 레이싱 예선에 참가하여 대기권을 돌파하고 돌아와야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고, 그 중에서 몇 번의 예선을 거쳐 지역 대표나 대륙 대표로 선발된 사람은, 성년이 되는 즉시 빌라르반의 최상위층으로 올라설 엘리트 후보로서 대접을 받는다. 그것이 우주해적이자 전사이며, 파일럿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가진 이곳 빌라르반의 전통이었다. 

특히 빌라르반의 역사와 함께 하는 이름높은 열네 가문 출신이라면, 이 레이싱은 피할 수 없다. 가문의 명예가 걸린 일이니까. 차라리 이 레이싱에 참가했다가 사고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기권하는 불명예 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리고 나의 어머니, 레트리샤 빈니 오르세츠나는 이 열네 가문 중 여섯 번째인 오르세츠나 가문 사람이었다. 그것도 가문의 종가를 구성하는 열네 명의 장로 중 한 사람이자, 행성연방의 연방군 사령관을 지낸 영웅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가문의 전통에 따라 여러 배우자를 들여 각각 배우자 당 한 명씩 총 일곱 명의 자식을 얻었는데, 여덟 번째로 얻은 배우자, 그러니까 나의 아버지에 해당하는 나르산 빈크람 오르세츠나가 그만 행성연방의 지구 지부에서 일하다가 순직하고 말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러 지구에 왔다가, 마침 행성연방에서 구조한 지구인 고아를 입양했는데, 그게 바로 나였다는 이야기다. 당연히 나는 나르산 빈크람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랐고, 장차 나르산 빈크람의 제사를 모시게 될 것이었다. 

그러니까 만약에 내가 무사히 성인이 된다면 말이다. 

“물론 성인식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제대로 된 성인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일이 있을 거야. 살면서 이런저런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구나. 하지만 설령 오르세츠나 가문이 불명예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너를 잃는 슬픔에 비하겠니.”

어머니는 다정하게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어쩐지 한 마디 한 마디 가시처럼 가슴에 박히는 것 같았다. 처음부터 내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만 같아서, 그저 살아서 나르산 빈크람의 제사를 모시는 것이 내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인 것 같아서.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알겠어요, 어머니.”

모두가 말했으니까. 

수동 셔틀을 모는 것은, 아주 고도의 복합적인 감각과 운동능력을 요하는 일이라고. 눈이 네 개에, 벡터인식능력을 지닌 이곳의 사람들조차도 성년식을 치르다가 종종 죽거나 다치는데, 하물며 눈은 두 개 밖에 없고 초상능력도 없는 지구인은, 여기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처음부터 감각기관을 반 밖에 갖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이곳 사람들은 내게 다정했지만, 그것이 ‘나’를 향한 관심이나 애정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내게 보이는 관심의 절반은 오르세츠나 가문에 대한 관심이고, 나머지 여기 기준으로는 사는 데 턱없이 불편한 지구인의 몸이 신기해서다. 뻔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은 생각했다. 그냥 지구에서 자랐더라면, 아무도 내 몸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멀쩡히 보이는 두 눈을 갖고 “눈이 두 개 밖에 없는 불쌍한 녀석”이라는 취급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고, 사물의 이동방향과 속도를 눈에 보이기 전에 예측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치 눈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지도 않았을테지. 나는 위대한 영웅 레트리샤 빈츠 오르세츠나의 딸인 것이 자랑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그 이름은 내겐 너무나 무거웠다. 나는 나 어머니에게 입양된 그 순간부터, 언젠가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떠다 안기기로 예정된 자식이었다. 그것이 나는 늘 끔찍하도록 싫었다. 

***

“반편이 지구인이 왜 수동 셔틀 면허를 따려는 건데?”

“쉿, 듣겠다. 저 친구 저래 봬도 오르세츠나 가문 사람이라던데.”

“이름만 오르세츠나면 뭘 해, 어차피 지구인인 걸. 쟤가 걔지? 오르세츠나 장군이 입양했다는 그 애. 예전에 한참 떠들썩 했잖아?”

“거, 사람 참.”

내 귀는 두 개 밖에 되지 않았지만, 가청범위는 빌라르반 인들이나 펜줄 인들 보다 넓었다. 교습소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온갖 이야기들이 다 들려오곤 했다. 이미 셔틀 조종에 도가 틀 대로 터서 수동 면허도 따 보겠다고 오는 사람들. 혹은 우주군에 입대하기 위해 가산점을 노리고 수동 면허를 따는 사람들. 남자라면 수동을 따야 한다며 굳이 수동을 따러 오는 이들까지, 이 곳에 모인 별별 사람들에게는 공통 관심사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고, 그러다 보니 그들 대부분은 지구인이고, 젊은 여자인 나를 부담없이 화제로 삼았다. 나의 불편함은 아랑곳하지 않고.

빌라르반에서 내 또래의 아이들이 멋대로 떠드는 거야 그러려니 했다. 설령 아무리 점잖은 종족이라고 해도, 일생일대의 시합을 코 앞에 둔 청소년이 제정신이기를 바라는 건 무리니까. 하지만 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기를 좋아하는 것은 어른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듣기 싫어 굳이 빌라르반을 벗어났는데도.

성인식을 앞둔 마지막 방학 때 까지, 나는 수동 셔틀 면허를 따지 못했다. 자동 면허를 따긴 했지만, 그런 것은 빌라르반에서는 쳐 주지도 않았다. 사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모든 속도와 궤적을 시스템이 자동 계산하고, 사람이 할 일은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그런 것을 조종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진 않았다. 일껏 따 봤자, 오히려 조롱거리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볼라르카사에게 이 일에 대해 의논한 것은.

“여기서 정 신경이 쓰이면, 방학때 펜줄 행성에서 면허를 따는 건 어때?”

어머니의 세 번째 배우자인 볼라르카사는 펜줄 행성 출신이었다.

“펜줄 행성에는 셔틀 레이싱 경기가 유명하다 보니, 셔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펜줄 행성에 관광을 왔다가 아예 셔틀 레이싱 체험도 하고 가는 사람이 많거든. 온 김에 초급제한으로 수동 면허를 따는 사람도 많고. 그러다 보니 초보자도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는 교습소들이 꽤 많아.”

“여기보다 쉽게요?”

“여기서는 숨 쉬듯이 당연하게 수동으로 조종하니까 그걸 못 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 거긴 아무래도 우주 여러 곳에서 온 사람들이다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방향감각도 없다고 생각하고 가르치지. 네가 어찌 들을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네게는 그쪽이 더 맞을 지도 몰라.”

내가 어머니께 입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볼라르카사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언니는 연방군 사관 후보생이 되어 집을 떠났다. 나는 지금까지 세 번인가 네 번 밖에 만나지 못한 셋째 언니 칼라샤는, 성인식 레이싱에서 빌라르반 전체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더니, 연방군 사관학교에서도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지금은 붉은바다 성운 쪽에서 탐사 활동에 나서고 있었다. 볼라르카사는 칼라샤 언니가 떠난 뒤, 아버지 없이 오르세츠나 가문의 아이가 된 나를 친자식처럼 예뻐해 주었다. 

“하지만 무리하지는 마라. 나도 레트리샤 님의 생각에 동의해. 너 한 사람이 성인식에 도전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르세츠나 가문이 어떻게 되진 않아. 네 언니들은 전부 성인식 레이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는데, 눈이 두 개 뿐인 네가 성인식 레이싱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서 사람들이 오르세츠나 가문을 두고 의무를 소홀이 했다고 말하진 못할 거야.”

“그건 저도 알아요.”

내가 고민 끝에 펜줄 행성에 가겠다고 말했을 때, 볼라르카사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머니와 볼라르카사의 걱정을 이해한다. 정말로 나를 사랑하니까, 나를 걱정하니까, 내가 죽거나 다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안다.

“...네가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말이야.”

하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이 복잡해졌다. 

내게 가문의 이름을 주었지만 나는 지구인이니까, 내게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어디보자, 파라샤 빈니 오르세츠나.”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걸걸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순이 씨였다. 

“얼른 나와, 얼른. 시간이 없어요. 저 사람들처럼 초급제한면허만 따고 말 것 아니잖아.”

순이 씨는, 아까 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던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 한 마디 하며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순이 씨에게 밀려 나오며, 그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건 그랬다. 나는 관광객도 아니고, 이곳에서 셔틀 레이싱 체험을 하기 위해 초급제한면허를 받으러 오는 사람과는 입장이 달랐다. 

누구도 내게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대기권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여기까지 온 거다. 어떻게든 내 상태를 이해할 만한 교관을 찾아서, 내게 맞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아보기 위해. 

***

“원래 사람은, 남들이 하는 건 다 쉬워 보이는 법이야. 그래, 거기. 가속하면서 겁먹지 말고.”

순이 씨는 내게 가속 페달을 밟게 하고는, 충분히 가속이 될 때 까지 발을 떼지 못하게 했다. 엔진이 충분히 출력을 내자, 연습용 셔틀의 창 밖에 펼쳐진 우주가 갑자기 지상에서 버스를 타고 다닐 때의 창 밖 풍경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대로 유지해. 그래, 갑자기 속도 줄이지 말고. 이 속도를 쭉 유지하는 연습을 해 봐.”

“아, 그게...”

“다른 거 조작한다고 발에서 힘 빼지 말고. 다시.”

순이 씨는 엄격한 교관이었다. 그는 벡터인식능력이 없는 사람이 수동으로 셔틀을 모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벡터인식능력을 타고 난 빌라르반 출신 교관들은 간과하는 부분이었다. 

“예측을 하려고 애쓸 필요 없어. 예측은 빌라르반 출신들이 하는 거지. 파라샤, 당신 호적이 빌라르반에 있다고 해서 당신이 눈이 네 개인 게 아니잖아. 괜히 있지도 않은 초상능력 흉내내다가 사고 내지 말고, 당신 눈과 귀에 집중해. 계기판은 장식으로 달려 있는 게 아니야.”

나는 분주하게, 계기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연습용 셔틀은 완전수동식이었고, 계기판도 최소한의 것들만 갖춰져 있었다. 이 정보만을 보고 돌아가는 상황을 전부 파악하는 것은 무리일 것 같았는데, 순이 씨는 계기판을 흘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상황이 다 머릿속에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시동음, 비프음, 엔진 소리.”

“아, 예!”

“지구인들도 연방군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동 면허를 따. 긴급 상황에서는 자동조종장치는 물론 자동항법장치까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지구 출신이라고 못 딴다는 말은 개소리니까, 그냥 익숙해져.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것 뿐이야.”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아무리 움직여도 손이 하나 모자란 느낌이 났다. 원래는 손이 세 개, 발도 세 개쯤 필요한 게 아닐까. 정신없이 손을 움직이다 보면, 뭔가 놓치는 부분이 생겼다. 그때마다 순이 씨는 교육용 브레이크를 대신 밟으며 내 움직임을 교정해 나갔다. 

“그게 아니야. 파라샤 씨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잤어?”

“음악시간요?”

“따따따, 가 아니라 따닥, 이라고.”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해 보면 알아. 이거 된다. 내가 파라샤 씨 보다 팔다리가 이만큼씩 짧은데도 하는 거 봐라.”

순이 씨는 다시 시범을 보였다. 따따따, 가 아니라 따닥, 이라고. 가만히 보니 순이 씨가 손을 움직이는 것이, 대략 그런 박자를 이루는 것 같기도 했다. 

“내가 말이야, 병원에 가 보면 왼팔이 오른팔보다 조금 길다고 그래.”

“팔이 길어요?”

“어, 이쪽 보조 브레이크 밟으면서 연습생이 잡고 있는 조종간 붙잡으려다 보니까, 팔이 길어졌어. 몸이 좌우가 비대칭이면 안 좋다는데. 그래도 사람이 많이 쓰면 그만큼 발달한다고, 팔이 늘어나다니 신기하지 않아?”

순이 씨는, 내가 겨우 속도를 유지하기 시작하자 옆자리에서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괜히 일찍 와서, 대기실에서 남들 말에 신경 쓰고 그럴 것 없어. 거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 초급제한면허만 딸 거잖아. 그 사람들은 대기권 돌파 안 해. 수동으로 몰긴 하지만, 우주까지는 여객셔틀로 나오고, 무중력 상태에서 모는 거라고. 딱 행성균형점에서. 그런 건 지상에서 하는 거랑 별로 차이도 없고, 오히려 지상에서 바퀴 달린 자동차로 레이싱 하는 것보다 쉬워. 괜히 자랑하느라고, 사진 찍고 영상 찍고 인증하려고 하는 거지. 안 그래?”

“그런가요...”

“개인 셔틀을 조종한다고 하려면, 역시 대기권을 뚫고 나가야지. 그런 점에서 파라샤 씨는 지금 그 사람들보다 나은 거야. 자동 면허는 있잖아.”

“그치만...”

“그치만, 뭐.”

“그건 조종이 아니잖아요.”

나는 조심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순이 씨가 기가 찬 듯 나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미친...”

“아니, 그게요... 그거 시스템이 다 하는 거잖아요. 사람은 그냥 앉아 있기만 하는 건데...”

“빌라르반 놈들이 멀쩡한 애 하나를 아주 망쳐 놓았네.”

순이 씨가 혀를 찼다. 그러더니 천정 쪽에 손을 대고, 안쪽 뚜껑을 벗겨냈다. 그러자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스위치가 드러났다. 

순이 씨는 스위치를 손으로 만지더니, 시동을 걸었다. 갑자기 무시무시한 충격이 전신을 덮쳐왔다. 

“우우우욱!!!!!”

얼굴도, 뺨도, 살가죽도, 배도, 가슴도, 갈비뼈도, 전부 짓눌리고 으깨지는 느낌이었다. 순이 씨는 그 상황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조종간을 잡았다. 그렇게 30초쯤 날아오르다가, 순이 씨는 스위치를 내렸다.

“...이게 뭔지 알겠어?”

“가속도 제어 장치잖아요...”

“그래, 가속도 제어지. 대기권 탈출하고 돌입하고 할 때 이거 꺼져 있으면, 중력가속도가 그대로 느껴질 거야. 근데 말이야, 자기들이 조종 잘 한다고, 마치 태초에 조종간부터 잡았던 것 같이 구는 빌라르반 놈들도 이 가속도 제어 장치는 다들 켜고 다닌다. 웃기지 않냐?”

“예...?”

“시스템이 다 하는 거라며. 이 가속도 제어 장치며, 항온항습장치는 시스템이 제어하게 두면서, 엔진 점화하고 균형 잡는 몇 단계 좀 기계에 맡긴다고 그게 조종하는 게 아니냐?”

“...그게요.”

“너 포함해서, 빌라르반에서 학교 다닌 애들은 워낙 익숙해져 있어서 덜 그럴 것 같지만, 사실은 이 대기권 돌파하는 것 부터가 다른 데 애들은 공포야. 자동이든 수동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가속도 제어 장치를 쓴다고 해도, 익숙한 행성의 중력권을 벗어나 우주로 나가는 것 자체가 겁이 나서 못 한다니까. 그러니까 다들 바깥까지 나와서, 딱 제한된 서킷 안에서만 운전할 수 있는 초급제한면허를 자랑스럽게 따서 돌아가지.”

순이 씨의 투박한 손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파라샤 씨, 당신은 이미 면허가 있어요. 그러니까 조작만 익숙해지면 돼. 계기판 여덟 게 한 번에 보는 것 좀 익숙해지고.”

“너무 넓은데요.”

“안 넓어. 이것도 나름 연방군 표준안을 따르는 거라서, 지구인들의 평균 시야 안에 여덟 개 다 들어 와. 다시 한번 봐 봐.”

***

처음에는 그냥, 어머니의 말씀대로 하려고 했다. 

성인식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건 자존심이 상하긴 했다. 지구인으로서는 한없이 멀쩡한 내가, 이곳에서는 장애를 가진 사람, 배려받아야 마땅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이 싫었다. 그런 것이 싫어서, 사고로 눈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보조 감각기 이식 수술을 남몰래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일단 처음부터 눈이 두 개밖에 없는 사람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는 말에 좌절했었다. 

그래도 성인식을 포기하려고 한 것은, 오르세츠나 가문의 명예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구에서 고아가 된 것을, 어머니의 양자가 되어 이곳까지 왔다. 살아남았고, 사랑받으며 자랐다. 작게는 어머니의 여덟 번째 배우자인 나르산의 제사를 모실 후사로서, 크게는 다른 언니 오빠들과 마찬가지로 오르세츠나 가문의 후계자 후보로서 엄격하게 교육받으며 자랐다. 그랬는데 이 승산없는 일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가 개죽음을 당하면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로 포기하려고 했었다. 

“그럼 뭐야, 넌 오르세츠나 장군의 애완동물이냐?”

그런 말을 듣기 전까지는. 

“애완동물 맞지. 야, 네가 아무리 오르세츠나 장군의 양자면 뭘 해. 네가 빌라르반 사람이야, 뭐야.”

같은 학교 녀석들이 그런 말을 하기 전까지는, 정말로 포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같은 빌라르반 사람도 아니고, 하다가 죽으면 우리 가족 모두가 슬퍼할 테니까 성인식도 하지 말라고 하고. 그거 그냥 예쁜 애완동물이잖아. 왜, 장군님이 개목걸이 같은 건 안 해 줬어? 왈왈!”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듣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멀쩡한 사람이다. 남부럽지 않게 교육받았고, 남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 학업 성적이나 뭐나, 그런 말 하는 놈들보다 못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셔틀을 몰고 수동으로, 대기권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해서,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도 알고 있다. 어머니께 그런 말씀을 드렸다면 화를 내시겠지. 학교에 찾아오실 지도 모른다. 볼라르카사도 마찬가지다. 나를 걱정하고, 그런 놈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가치가 없다고 말했을 거다. 나의 언니 오빠들 중 그 누구도, 그런 말에 감히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오르세츠나 가문의 명예를 걱정하는 사람이 없진 았지만, 그럼에도 가문의 명예보다는 동생인 내가 소중하다고 기꺼이 말해 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이 불명예를 감당할 수 없었다.

내가 성인식을 포기한다면, 사람들은 나를 두고 애완동물이라고 조롱할 테니까. 어머니께는 취미가 독특하시다고 빈정거릴 테니까. 오르세츠나 가문을 두고 겁쟁이, 비겁자를 배출했다고 조롱하는 대신, 지구인을 희귀한 애완동물로 삼은 모양이라고 수군거릴 테니까. 나는 지구인으로서도, 오르세츠나 가문 사람으로서도, 그런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런 이중의 불명예를 감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 이 짓을 하고 있다고?”

순이 씨는 물론, 그런 내 고민 따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어지간한 셔틀 강사의 반 년치 수입을 털어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돈 많네.”

“놀리지 말아요, 같은 지구 사람 끼리.”

“이봐, 지구 출신이라도 나하고 그쪽은 살아온 스타일이 천지 차이야. 어디서 같은 지구 사람이라고 은근슬쩍 비비려고 들어. 떽.”

나는 순이 씨가 기분이 상한 것인가 싶어서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순이 씨의 표정을 잘 읽을 수가 없었다. 희한한 일이었다. 같은 지구 사람 끼리면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눈이 네 개씩 달린 빌라르반 사람들의 표정은 보면 바로 알 수 있었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눈이 두 개 달린 순이 씨의 얼굴에서는 표정을 제대로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마음에 안 드시면 어쩔 수 없지만요, 저는 나름 절박해서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지내기는 어디서 지내는데?”

“친척집요.”

“굉장하네, 펜줄에 친척이 있는 지구인이라니.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할 거면서, 왜 물어봤어요.”

“대체 왜 이 개고생을 사서 하나 싶어서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듣고 보니 내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꼬인 이유라서 그런다. 왜.”

“그럼 뭘 생각했는데요.”

“네가 죽든 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 네 양부모가, 억지로 널 셔틀에 태우려나보다 했지.”

“우리 어머니는 그런 무식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받아치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한 마디도 안 지고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종간을 제대로 잡고 있다는 것을. 

그때 순이 씨가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그런 무식한 놈들 의외로 많아. 조종은 타고 난 빌라르반 인이 다른 행성계 사람을 양자로 삼았다가, 자기들같이 조종을 하지 못 해서 성인식 레이싱에 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는 죽든 살든 억지로 내모는 놈들도 있고.”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하지만 순이 씨는 꽤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뿐이야? 매년 성인식 레이싱에서 죽는 애들 있잖아. 빌라르반 사람이라고 전부 조종을 잘 하는 건 아니지. 아닌데, 자기 새끼가 조종을 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포기하겠다는 애들을 쪽팔리게 굴지 말고 일단 나가서 하라고 밀어붙이다가 애가 큰 사고를 낸 다음에야 후회하는 놈들도 있고. 그렇게 해서 지 새끼 혼자 죽기나 해? 몇 집 애들을 떼죽음을 내는데도 그러고 있단 말이야. 나는 빌라르반은, 이 무지막지한 성인식을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어. 지금이 우주력 몇 년인데 아직도, 무슨 성인식 한다고 바다에 다이빙으로 뛰어들고, 그러는 짓을 우주 단위로 하고 있어.”

마치, 이런 일에 진심으로 넌더리가 난다는 듯한 말투였다. 

“그렇게 죽을 뻔 한 애들을... 많이 살려 내셨던 거예요? 여기서 가르쳐서?”

“그랬으면 좋았게?”

그게 아닌가? 그러면 행성연합의 조사반 출신이기라도 했던 걸까? 

지구 출신인데 굳이 수동 조종면허를 갖고 있는 것을 보면, 연합군 출신일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쪽에 발령받았다가 성인식 사고에 대해 조사했을 수도 있겠지.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순이 씨는 소리내어 웃었다.

“내가 연합군 출신 같다고? 아이고, 미안하지만 난 그런 엘리트가 아니라네.”

“그럼 어떻게 수동 조종을 하시게 된 건데요?”

“먹고 살려고.”

“예?”

“이혼은 했고, 애는 셋인데, 먹고 살려면 기술이 확실하게 있어야 할 것 같아서.”

***

조심조심, 셔틀에 시동을 걸었다. 페달을 밟자 엔진이 돌았다. 엔진의 RPM이 올라가는 것을 보다가 조종간을 붙잡고, 순이 씨가 말한 대로 따따따, 가 아니라 따닥, 하고 조종간을 밀어올렸다. 박자를 맞추듯 페달을 바꾸어 밟고, 왼손으로 계기를 조작한다. 

그 모든 움직임이 물 흐르듯이 이루어졌다. 벡터인식에 기반한 천부적인 예측 능력 같은 것은 없었지만, 여덟 개의 계기판들은 내가 사고를 내지 않기 위해 최소한 알아야 하는 정보들을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아야 했다. 천천히, 무리하지 않을 만큼, 하지만 대기권을 충분히 탈출할 만큼의 속도를 끌어올렸다. 

좋아, 하고 순이 씨가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레버를 잡아당기며 분사각도를 조정했다. 수동조종장치를 사용해도 자동화된 몇몇 안전장치들이, 내가 손을 대지 않아도 차례대로 내 셔틀에 보호막을 쳤다. 

순이 씨는 군인 출신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외계인 영업사원과 결혼하여 펜줄까지 왔고, 배우자와의 사이에 아이는 셋을 낳았는데, 이 배우자가 순이 씨가 세 아이를 키우는 사이에 총각 행세를 하며 어디 가서 다른 외계인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하다못해 지구인 비슷한 종족하고 만나기라도 했으면 내가 이해를 한다. 그 새끼는 변태라서, 이번에는 촉수 여덟 개 달린 여자를 만나더라고. 바람피운 여자 데리고 와서 이혼해 달라고 하는데, 아, 진짜. 그저 초장 생각만 나더라.”

초장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너무나 한심해서 일단 순이 씨는 이혼을 했다. 하지만 전남편은 양육비를 제대로 주지 않았다. 영업사원이라고, 이름도 못 들어 본 먼 행성으로 도망가 버리니 쫓아가서 받아낼 수도 없었다.

셔틀 조종을 배운 것은, 그래서라고 했다. 

펜줄에서 유명한 것은 역시 셔틀 레이싱이고, 이곳에서 초급제한, 그러니까 대기권 돌파는 빼고, 지정된 코스 안에서 수동으로 셔틀을 조종하는 면허를 따서 셔틀 레이싱을 체험해 보려는 사람은 언제나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모든 종족이 셔틀 면허를 따기에 적합한 몸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 중에서도 지구인은, 꽤나 불리한 존재였다. 

눈도 두 개, 귀도 두 개, 손도 두 개 밖에 없는데다, 눈과 귀를 보조할 만한 감각기나 초능력도 없는 종족이었으니까. 

하지만 순이 씨는, 바로 그 점에 주목했다고 한다. 

지구인이 셔틀 면허를 따고 또 가르칠 수 있다면, 어지간한 종족들은 다 가르칠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순이 씨는 셔틀 면허를 따고, 강사까지 되었다고 한다. 셔틀을 몰고 별이 가득한 우주를 끝없이 누비는 대신에, 이곳 교습소에서, 우주 저 편에서 날아온 사람들에게 수동 조종을 가르치면서 세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그러니까 파라샤도 할 수 있어. 나도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응?”

나는 순이 씨의 이야기가,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부터가 과장이 섞인 것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지구인의 얼굴은 내게 익숙하지 않아서, 나도 그런 얼굴을 하고 있지만 굉장히 무표정하게 보인다. 얼굴에서 뭔가 빠져 있는 것 같은 것이, 가끔은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뭔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제정신인, 평범한 지구인들이, 어쩌다가 우주 저 편에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막한 우주에서 스친 작은 셔틀들처럼,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항로를 잠시 비추어주며 지나칠 수 있는 거라고.

“이건 정말, 그냥 기계야. 다들 만지는 기계라고 생각하면, 좀 덜 무섭지 않아?”

기억에도 없는 나의 모성, 지구에서 470광년 떨어진 이 곳에서, 가장 낯설고 결여된 얼굴을 내 동족의 얼굴이라 인식하면서, 나는 가속 페달을 꾹 밟았다. 어쨌든 지금의 내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제 막 출발한 성인식 레이싱의 예선전에서 어떻게든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르세츠나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도, 또 지구인의 명예를 위해서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살아남아서 그저 나로 살아가는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또 한번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이 먼 먼 곳, 지구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이 곳에서는, 그저 무사히 숨을 쉬며 가급적 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의 의지가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남들보다 눈이 두 개쯤 부족하고, 어쩐지 한참 둔한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그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한동안은, 아무 일 없이 잘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기기도 하니까.

내가, 어쩌면 나와는 아주 상관없을 것 같은 순이 씨의 이야기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귀를 기울였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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