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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좀비같은 것은 없어

2020.04.01 05:4304.01

좀비같은 것은 없어

해망재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사, 사라이 무에 바져서."

혀가 반토막이 나면 저런 소리가 날까 싶은, 그런 소리. 
추웠다. 온 몸이 춥고, 오한이 났다. 무슨 일이지. 열이 나는 건가. 바이러스가 돈다고 집 밖으로 나가지도 말라고들 그랬는데, 설마 내가 감염이라도 된 건가. 생각하다가 나는 눈을 번뜩 떴다. 

낯선 천장이 아니라,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하늘....?"

하늘 정도가 아니다. 여긴 갈대밭 한가운데였다. 어디선가 쾨쾨한 냄새가 났다. 바닥에는 거적때기가 깔려 있고, 주위를 둘러 보니, 온통 갈대 뿐이었다. 나는 내 티셔츠와 바지가 아직 눅눅하게 젖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문득 몸을 일으켰다. 추웠다. 갈대밭 사이로 스미는 바람에, 살갗이 그대로 얼어붙을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아까 한강으로 뛰어내렸는데, 여긴 어딜까. 한강공원 어디쯤일까. 살아있는 걸 보니 멀리 떠내려 온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양화대교 근처에 이렇게 갈대가 우거진 데가 있었나? 

나는 옷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은 흐리고 넓었고, 멀리 지평선이 보였다. 무척이나 아름다은 풍경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뭔가 이상해...."

양화대교에서 서해바다 사이에, 이렇게 건물이 하나도 안 보이는 데가 있었나? 

뭔가 잘못되었다. 김포까지 오다 보면 그렇게 텅 빈 데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그만큼을 떠내려 왔다면 내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을 수가 없지. 물에 빠졌다가 강 기슭으로 기어올라와 살아남을 만한 거리면 뻔하다. 무엇보다도 저기 북한산도 보이고. 그래, 북한산이 보이는 걸 보니 여긴 서울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하다못해 여의도 63스퀘어나, 저기 강남의 롯데월드 타워조차도 없는, 건물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곳. 서울특별시를 그대로 땅 위에서 벗겨낸 듯한 날것의 땅이라니.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설마. 

죽기를 각오하면 살아날 길도 열린다더니. 설마 나는 다른 세계로 와 버린 건가.

***

오늘, 2020년 4월 1일, 만우절. 나는 거짓말처럼 한강에서 뛰어내렸다. 

이유를 말하자면 길다. 이게 다 기성세대 잘못이다. 어디로 봐도 내 탓은 아니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도는 것도 내 탓은 아니다. 그것때문에 개강도 못 하고 학교도 가면 안 되니까, 그냥 집에 얌전히 앉아서 인터넷으로 수업을 들으라는 어거지도 내가 부린 것은 아니다.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도 다들 잔소리를 하길래, 인터넷에 좀 시간을 쏟은 것도 내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도 전부 기성세대의 잘못 아닌가? 나는 시국을 걱정하는 지성인답게 나라를 걱정하는 글을 잔뜩 올렸다. 하지만 그조차도 지루해져서 곧,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을 하며 좀비들을 때려잡으니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그런데 어디서 길을 잃은 뉴비년이 하나 들어와서, 내가 다 잡은 좀비를 자꾸 타겟팅 하는 거였다. 딱 보기에도 게임 시작하고 며칠 안 된 뉴비길래, 실컷 걔네 엄마 욕을 해 줬더니 징징거리며 도망갔다. 그러자 다른 유저가 내게 뭐라고 했다. 말을 그렇게 하면 안된다나 뭐라나. 감고 있는 걸 보아하니, 게임에 돈 깨나 쏟아부은 아재인 것 같았다. 평일 대낮부터 집에서 게임이나 하는 아저씨가 어디서 잔소리를 하고 지랄인지 모르겠다. 

자기들이 어렸을 때는 우리보다 더 하지 않았나? 그 사람들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얼굴을 시커멓게 칠하고 입술을 두껍게 그리고는 시커먼스라며 낄낄거리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고 웃었다는데. 젊었을 때에는 성의 엄숙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야동 같은 것도 실컷 다 보고 그랬으면서. 우리가 욕할 때 이년 저년 하는 거, 악질 페미 물이 잘못 든 우리 누나가 내가 입에 올릴 때 마다 치를 떠는 김치년 된장녀 그런 말도 자기들이 다 만들었으면서, 이제와서 젊은 세대들이 걱정이라고,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말하는 걸 보면 웃기지도 않았다. 나는 재수가 없어서 내 발 앞에 떨어진 아이템도 둔 채로 그냥 나왔다. 꼰대새끼, 그냥 주섬주섬 먹고 떨어지라고. 

집에서 방바닥이나 긁다가, 잠깐 나가서 친구들이랑 옆 단지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초딩 둘을 둘을 조금 놀래켜 주고는, 친구놈들이랑 미끄럼틀이나 그네 위로 기어올랐다. 우리는 여기저기 놀이기구의 일부인 것 처럼 걸쳐져 있었다. 초딩 꼬맹이들은 겁이 많아서 탈이다. 중학생 여자애나 하나 오면 좋을 텐데, 살살 구슬러서 같이 놀게. 우리는 낄낄거리며 농담을 했다. 그때였다.

"저기 저 아저씨들이에요!"

아까 쫓겨갔던 초등학생 중에 누나가, 우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리고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달려오셨다. 그 뒤쪽에는 아마도 아이들의 부모인 듯한 중년도 있었다. 재수 옴 붙었네. 우리는 얼른 놀이기구에서 뛰어내려, 네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쳤다. 이래서 여자애들은 안 되는 거다. 뭐 조금만 불편한 일이 있어도 쪼르르 달려가서 일러바치고 있다. 저런 꼬맹이도 프로 불편러예요. 인생 그따위로 살면 안 돼, 미친년아. 나는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 우리 단지로 향했다. 주머니에는 아까 초딩들에게 받아낸 5천원짜리가 들어 있었다. 짜증이 났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알바도 못 하고, 엄마는 학교도 안 가는데 돈이 어디 필요 있느냐고 그러시는데. 어디 건방지게 초딩들이 율곡선생을 모시고 다녀. 나는 겨우 집으로 뛰어들어오며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어.... 삼촌. 무슨 일이세요."

집에는 지난 설날 이후 처음 보는 작은아버지 가족이 와 있었다. 사촌 세빈이도. 

무슨 일인가 생각하는데, 갑자기 작은아버지가 다가와 내 뺨을 때렸다. 나는 깜짝 놀라 아버지를, 그리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두 분 모두 어쩔 줄 몰라 할 뿐, 작은아버지를 말리진 못하셨다. 

그리고 우리 누나가 나를, 더할 수 없이 불결한 것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세빈아, 고소해 버려."

누나는 세빈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버지가 헛기침을 하셨지만, 누나는 눈치도 없이 계속 떠들어댔다. 

"삼촌, 저거 조카라고, 장손이라고 봐주실 것 없어요. 세빈이는 삼촌 딸이고요, 저 새끼는 그냥 범죄자예요."
"세진아!"

아버지가 소리치셨다. 그러자 누나가 오히려 아버지를 쏘아보며 말했다. 

"왜요, 가족이니까 참으라고요? 우리 집에서 똥을 못 치워서 지금 세빈이한테까지 똥이 튀었는데, 우리가 지금 염치가 있으면 저 새끼를 꽁꽁 묶어서 경찰서에 갖다 버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너 좀 너무 한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동생에게...."
"저 새끼가 날 누나 취급을 안 하는데 내가 왜 저걸 동생 취급을 하는데요? 내 방에 몰카 설치했던 거, 그거 엄마한테 말했을 때 저걸 단도리를 했어야지. 그걸 그냥 모르는 척 내버려 둬서 저 새끼가 이젠 세빈이까지 찍고 있었는데!"
"동생에게 저 새끼가 뭐야, 저 새끼가!"
"저 씨발새끼 아직도 아들이라고 편 드는 거 봐!!!!"

그러니까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지난 설날에 세빈이 사진 찍어서 올린 것을 누나가 찾아낸 모양이다. 애미애비 없는 씨발년이. 

어쨌든 세빈이 사진을 찍은 것은 실수였다. 작은아버지는 우리 집과 사이가 별로 좋지도 않았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유언으로 제발 형제간에 싸우지좀 말라고 하시는 바람에 설하고 할머니 제사에만 오시는 분이었다. 그것도 세빈이까지 데려오는 건 설날 뿐이다. 그러니 모처럼 온 김에 좀 찍었는데, 그걸 누나년이 발견했을 줄은 몰랐다. 중요한 것은 지난번에  누나 방에 카메라 설치한 걸로 내게 원한을 있는대로 품고 있던 누나가 그걸 작은아버지께 그대로 꼰질렀다는 거다. 집안 망신인 줄도 모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작은아버지께 싹싹 비시는 걸 보고도 저 미친년은 생각이라는 게 없나?

"안 됩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는 단호했다. 

"세형이가 귀한 아들인 건 형님 생각이고, 그럼 내 딸 세빈이는 안 귀합니까?"
"세형이는 우리 집안 장손이야!"
"무슨 뼈대있는 양반 자손도 아닌데 장손을 따지고 있어. 거, 됐습니다 난 형님 안 보고 살아도 됩니다. 됐고, 경찰에 신고할 테니 형님은 그리 아시오."

그때 어머니가 일어나 현관문을 여셨다. 분명한 신호였다. 나보고 어디든 도망쳐 있으라는. 나는 얼른 밖으로 뛰어나왔고, 작은아버지가 뒤따라 나오는 것을 어머니가 허리춤을 붙잡고 매달렸다.

"삼촌, 그러면 안 돼요. 삼촌!"
"아, 형수님! 야! 양세형! 너 거기 서!"

아파트 복도가 시끄러웠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틈도 없이, 계단을 세 단 네 단 밟아서 뛰어내려갔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아파트 정문 쪽에서 경찰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그저 뛰었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누나는 어떻게 될까? 작은아버지는? 죄책감을 느끼진 않을까? 한 순간의 실수를 한 양씨 집안 장손을 죽게 만들었다고, 두고두고 후회하진 않을까?

죽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요즘 분위기가 흉흉하긴 했다. 지금같은 때, 불법 촬영으로 잡혀가면 아주 본보기삼아 제대로 걸릴 거라는 말도 나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 한강에라도 들어가야 하나. 생각하며 이것저것 찾아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한강에서 뛰어내리자고. 

옛말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 하였다. 죽을 각오로 자신의 죄를 반성하며 자살을 택했다가 살아나면, 분명 정상참작이 되지 않을까? 그럴 듯 했다. 결심하고 갔다가 막상 뛰어내리려 할 때 못 뛰어들면 쪽팔릴 것 같아서, 나는 편의점에 들어가 소주를 한 병 까서 마셨다. 그리고 나는 양화대교에서 비틀거리며 뛰어내렸다. 차가운 강물이 몸에 닿기도 전에, 나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거지같은 만우절, 누가 와서 서프라이즈! 하고 외치며 다 거짓말이니까 어서 나오라고, 어서 물에서 기어나오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

어쨌든 나는 살아났고, 분위기를 보아하니 타임슬립을 했든가, 이세계로 넘어온 것 같았다. 

이세계에서 떵떵거리고 살려면? 역시 영웅이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달걀과 식초를 섞어서 마요네즈 만드는 법이라도 설명하는 수 밖에 없는데,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나도 해본 적이 없다. 웹소설을 읽다 보니 그런 게 있었을 뿐이다. 그게 아니면, 차라리 타임슬립을 했으면 그 뒤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면서 예언자로 이름을 날려야 하나? 그러기엔 솔직히 국사 성적이 영 자신이 없다. 뭐, 임진왜란 전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큰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예언하거나, 아니면 이순신 장군을 찾아가서 부하가 되면 안 죽지 않을까. 어쩌면 이순신 장군을 위험에서 구해주고, 내가 이순신 장군 다음 가는 영웅이 되는 전개도 가능할 지 모른다. 나쁘지 않은 걸. 

스마트폰이 멀쩡했으면 좋았을 걸. 그러면 내가 미래에서 온 사람인 걸 증명할 수 있었을 텐데. 강물에 떠내려오느라 푹 젖어서 켜지지도 않는다. 이번에 대학 합격했다고 바꾼 건데, 좀 아까웠다. 수리가 되면 좋을 텐데. 이런 이세계에서 고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건 그렇고, 내가 운이 좋긴 좋았던 모양이다. 양화대교 가운데에서 뛰어내렸는데. 어떻게 갈대밭까지 떠내려 온 거지. 

그것도 푹 젖은 강변이 아니라, 비교적 바닥이 단단한 강둑 위란 말이다. 

어떻게 된 걸까....

"사아.... 나써.....! 사아나꾸마!"

그리고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이 세계 사람이 날 구해준 건가? 고맙다는 말 정도는 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려 온 쪽에는, 한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아니, 그건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키는 작고, 코는 떨어져 나가 얼굴 한 가운데에 진물이 흐르는 구멍이 나 있고, 손가락도 네 개 밖에 없었다. 마치 게임 속에 나오는, 코볼트나 고블린같은 괴물이 한복을 입고 나를 향해 비척비척 걸어오고 있었다. 

"으, 으악! 괴물이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뒷걸음질을 쳤다. 괴물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무, 문둥이... 겁... 먹지 말고..."
"싫어! 가까이 오지 마! 저리 가!!!!!"
"먹... 을 거.... 가져.... 왔으니.... 밥.... 술이라도...."

괴물이 뭐라고 자꾸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봤자 괴물이다.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것 같은데, 한국인이 아무리 밥에 환장을 했다지만, 이런 상황에 누가 밥을 먹자고 순순히 따라가겠냐. 괴물새끼들이 사람을 호구로 봐도 분수가 있지! 나는 문득 화가 치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초등학생들에, 사촌동생에, 누나년까지 날 무시해서 한강에 밀어넣었는데, 이젠 저런 괴물새끼까지 날 무시해? 나는 발에 치이는 아무 돌이나 집어들었다. 

"으아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그 괴물을 향해 덤벼들었다. 처음 한 방이 무서웠을 뿐이다. 돌을 휘두르자 퍽 하는 소리가 났고, 괴물의 눈깔이 튀어나왔다. 괴물은 손을 내저으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이 괴물이!!!!!!"
"주이.... 지.... 마라...... 제발....."

하지만 나는 자비심이라고는 없이, 돌을 휘둘러 괴물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때가 꼬질꼬질한 한복에서는 썩은 듯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전에 학교 화단에서 고양이 새끼를 때려 죽였을 때, 그 고양이가 썩어 문들어지는 냄새와 비슷한 냄새였다. 시체가 썩는 냄새였다. 그렇다면 이 놈은 좀비인가? 좀비가 나를 구해 준 거야? 그놈의 혀가 반토막이 나 있었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코는 이미 없는, 그런 괴물일 뿐이다

"사, 사, 살... 려... 줍시오..."

고통스러운 신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사람의 말을 한다고 다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입을 향해 돌을 내리찍었다. 나름 운동으로 단련된 몸에, 수능 끝나자마자 헬스도 열심히 해서 몸도 키워놓은 덕분인지, 좀비들은 금세 죽어 나자빠졌다. 이세계에 떨어지자마자 만렙을 찍었다는 게 이런 기분일까. 

"어디서 살아 돌아다니는 시체 주제에 사람인 척을 하려고 들어."

나는 쓰러진 괴물의 머리를 몇 대 더 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옷에 더러운 피가 묻은 게 짜증이 나서, 나는 괴물의, 돌에 찍혀 뭉개진 머리통을 한번 더 콱 밟아버렸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좀비도 식구가 있었는지, 저쪽에서 치마와 저고리를 입은 여자 좀비가 제 새끼들을 데리고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도망도 치지 않은 채. 

"야, 씨발. 뭘 잘했다고 꼴아봐."

나는 돌을 들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어린 좀비들이 제 어미의 치맛자락에 달라붙어 있었다. 전부 얼굴이 썩고 눈이나 코가 없었다. 여자 좀비는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좀비새끼도 여자를 달고 다니는게 짜증이 나서, 나는 그 여자 좀비의 목을 졸랐다.

볼 것도 없다. 이 놈들은 괴물이다. 괴물을 때려잡고, 이 세계에서 영웅 취급 받으며 잘 먹고 잘 살아 보리라. 그러면 되는 거다. 나는 용감하게 그 좀비들에게 덤벼들었다. 피가 튀었다. 내게 맞아 죽어가면서도 좀비의 눈은 멍했다. 아마도 썩어버려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나는 무심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눈물만 흘리는 여자 좀비의 면상을 돌로 찍고, 어린애들을 집어 바닥에 내던졌다.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도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들 모두를 저기, 저 강물에 집어던졌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가야지, 가서 내가 이 마을을 좀비들로부터 구한 영웅이라고 말해야지. 생각해보니 그 괴물놈의 목이라도 잘라서 들고 왔어야 하나. 아니, 칼이 없으니 자를 수가 없었지.  괴물 시체를 통째로 마을로 끌고 들어가는 건, 좀비물의 클리셰 같고. 별 수 없다. 어쨌든 그런 괴물들이 마을 근처까지 왔다갔다 했다는 건, 사람들도 그 존재를 알고 있다는 거겠지. 나는 영웅이 될 거다. 이곳에서 영웅 대접받으며 편하게 살 수 있다. 마을을 보호해 주겠다면서 맛있는 것 먹고, 여자들 끼고 지내면서, 사람들에게 우러름 받으며 살 수 있는 거다. 나는 이제야 내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신이 났다. 아까같은 상황에서 폰이 살아있었어야 했는데. 그래야 동영상으로 내 호쾌한 액션을 찍어서, 게시판에도 올리고 했을 텐데. 마지막에는 인증샷도 찍고. 

"문둥이떼가 요 근처까지 왔다면서요."
"애들 단속해야겠구만...."
"문둥이들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게 정말이오?"
"가끔 어린애를 잡아먹는다는 말은 있는데, 걱정할 것 없어. 보통은 민가 근처에 잘 안 오니까."

저쪽에서 지게를 진 사내들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소리가 났다. 나는 가슴을 쭉 내밀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이만큼 벌크업을 한 몸이면 이 세계에서는 천하장사와 겨뤄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순신 장군을 한 주먹에 쓰러뜨린 뒤 내가 이순신이 되어도 괜찮은 게 아닐까. 어쨌든 나는 이곳에서 존경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니, 여자들도 지금같지 않고 다들 얌전하고 고분고분할 것이고.

"이봐, 내가 좀비를 잡았어!"

나는 소리쳤다. 두 남자가 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에게 내 업적을 알려주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했다.

"내가 저기, 살이 다 썩어 들어가는 좀비새끼들을 다 죽여버렸다니까. 배 고픈데, 어디 밥 먹을 데 없나?"

나, 인간 양세형, 그동안 내게 맞지 않는 옷 같은 세계에서 고생이 많았다. 나는 한강에서 죽을 각오로 뛰어내렸고, 그 보상으로 이제야 내가 살 곳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두 남자를 가로막으며 문득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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