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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10.05.28 23:4105.28





felias@naver.com


“모두들 잠든 새벽 세 시 나는 옥상에 올라왔죠
하얀색 십자가, 붉은빛 십자가
우리 학교가 보여요
조용한 교정이 어두운 교실이

엄마, 미안해요
아무도 내 곁에 있어주지 않았어요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 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사실은 난 더 살고 싶었어요
이제는 날 좀 내버려 두세요

모두들 잠든 새벽 세 시 나는 옥상에 올라왔죠
하얀색 십자가, 붉은빛 십자가
우리 학교가 보여요

내일 아침이면, 아무도 다시는 나를 나를”

자우림, <낙화>



 여기 우울한 얼굴의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열 일곱 살이고, 매일 자살을 생각하며 살아간다. 어느 날 사고가 소년을 덮친다. 커다란 텔레비전이 소년을 향해 낙하했고……. 짧고도 긴 순간 소년은 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아직은 아니다.” 소년은 커다란 손에 채여 그대로 꿈의 세계로 이끌려 갔다. 이제 소년은 이곳 꿈의 세계에서 어린 시절의 친구인 로봇과 고양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된다.

 등 떠밀려 여행을 시작했지만 소년은 잘해냈다. 집채만한 거미들에게 잡아먹힐 뻔하고 거짓 인도자에게 속기도 했지만 소년은 게임의 단계를 클리어해나가듯 하나하나 위기를 잘 모면했고,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미로를 헤쳐 나왔고 눈 덮인 산을 지나며 늑대와 고양이도 구했다. 유리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친구들과 함께 착한 고래를 골탕먹이기도 했다. 마침내 소년은 돌로 된 사람이 이야기 한 모든 시험을 다 통과하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서른 일곱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이 글은 성장 소설이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이 글 속에 있다. 이 글은 장황하다. 그리고 상식과 다른 ‘꿈의 세계’는 읽는 이를 당혹스럽게 하며, 작가의 논조는 시종일관 회고조이다못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는 어떤 독자도 이러한 느낌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필자는 김이환 작가의 이전 작품 중 하나인 [양말 줍는 소년]에서 이미 환상의 나라를 경험했다. [절망의 구]의 스피디한 긴장감도 알고 있다. 그러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다른 방법을 취했다면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선택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좋은 선택이었는지에 대한 답을 할 생각은 없다. 결국 최종적인 선택자는 개개인의 독자이므로…….


 1) 열일곱 살의 소년, 자살을 꿈꾸다 ――― 자살과 싸우다

 태어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단지 누군가의 아들 혹은 딸로, 손자, 손녀, 조카로 태어나 자랄 뿐이다. e-편한 세상에서 "임페리얼 골드 프리미엄"를 먹고 자란 아이도, 재개발 빌라에서 부모님의 싸움 소리를 들으며 자란 아이도 조금씩 한국 사회에 적응해나간다. 그들은 똑같이 배운다. 용기 있게 행동해라, 친구와 친하게 지내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거라. 착한 사람이 되어라.

 모난 돌은 일찍 정을 맞고 될성부른 잎은 떡잎부터 알아본다지만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은 보통 사랑을 주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열심히 노력하는 법이다. 받아쓰기 100점 맞기, 착한어린이상 타오기처럼 처음의 관문은 제법 크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준은 가파르게 높아진다. 이제 착한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아이들도 알기 시작한다. 옆집 순이는 전국 피아노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아오고 엄마 친구 아들은 전교에서 손에 꼽을 등수라고 한다. 언제나 기준은 아이들의 키보다 높고, 넓다. 모든 과목에서 수도 받아야 하고 미술과 피아노와 태권도도 배워야 한다. 한 가지만 잘해도 된다. 김연아나 박세리처럼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높은 기대치는 아이들마다 다르게 걸려 있다. 시험에서 80점을 맞는 아이는 90점을 맞고 싶어하고 90점을 맞는 아이는 100점을 맞기를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을 정말 아이들이 꾸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 학습지 광고에서처럼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를 외치는 아버지에게 시니컬하게 “그건 아빠 때 얘기지.”라고 교묘하게 아이의 입에서 놀고 싶다는 ‘욕구’가 아닌 경쟁하는‘현실’이 나오게 하는 세상이다. 모두가 자신만의 돌을 굴리고 있다. 수능을 향해, 취업을 향해, 결혼을 향해서. 어른이 되면 좀 더 경험이 많아지고 간간이 요령도 피울 수 있게 되겠지만, 아직 그들은 어리다.

 방송, 영화, 만화, 책에서 본 죽음이란 그래서 매력적이다. “힘들지도, 더 이상 슬프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겠지, 모든 것이 편안하겠지,(p.44)" 물론 모든 아이들이 자살을 생각한다는 것 역시 언어도단일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게임을 하거나,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면서. 혹은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그것은 주변의 어른이 될 수도 있고 동네 형이나 교회에 같이 다니는 사촌 언니가 될 수도 있다)와 이야기하면서. 하지만 그런 해소방법이 없는 아이들은, 일단 참겠지만,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자살에 대한 생각은 비밀스럽고, 터부시되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소년 ――― 김정우 ――― 은 편안한 죽음과 불편한 현실 속에서 갈등한다. 어느날부터인가 든 자살의 유혹은 쉽게 뿌리쳐지지 않는다. 소년은 대화상대가 없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좌절감이 깊게 골이 패여 늪이 되어 가고, 현재의 부담이 무겁게 소년을 조일수록 자살은 점점 ‘선택’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이 되어간다. 이 압박감은 무섭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를 자신이 용서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년은 ‘보통 사람이었던 윗집 아주머니’가 정신이 나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기피의 대상이 되는 것을 어렸을 적에 목격했다. 차근차근 밟고 넘어가야 하는 삶의 패턴에서 어딘가 잘못되어 데굴데굴 떨어져 내린 사람을.‘악’이 될 의도가 없었는데도‘악’이 되어버린 사람을. 소년은 두렵다. 자신도 데굴데굴 굴러 떨어지게 될 것이. 그렇게 되기 전에…….


 압박감은 한계에 다다라 마침내 검은 직육면체의 출현으로써 실체화되었으며, 소년은 그날 밤부터 이 적극적인 자살의 압박감과 매일 밤 싸우기 시작했다. 소년은 매일 밤 소리없이 운다. 소년은 반문한다.


 “정말 자살해야 하는 걸까?
 나는 그냥 행복하게 살면 안되는 걸까?”(p.44)



 요구에 응할 수 없어 좌절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다. 이게 정말 ‘자살’일까?


 2) 일그러진 꿈의 세계 ――― 이상과 실제 간 도덕의 괴리

 소년은 소극적인 자살을 선택했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데도 피하지 않았다. 현실에서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을 맺기 마련이다. 그러나 작가는 소년을 꿈의 세계로 데려다 놓았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아홉 살, 혹은 열 살 쯤 거쳐 지나간다는 꿈의 세계이며, 이 꿈의 세계의 모든 과정을 거치면 아이는 ‘제대로 된 어른’이 된다고 한다.

 이 꿈의 세계는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전형적인 사회화의 과정이다. 뛰어 넘지 못할 것 같은 계단 사이를 ‘용기’를 내어 뛰어넘고, 좋아하는 딱지를 가지고 신나게 논 뒤에는 마지막 딱지까지 반드시‘던져 버려야’ 한다.(그건 더 이상 어른에게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마을에서는‘친구들과 사이좋게 협동하여’살아가면서 오랜 시간 동안 씨앗 만 개를 심는 일을 ‘참고 견딘다’. 눈 덮인 산에서는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 기억을 ‘뉘우치고’, 자신의 음식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는 ‘희생’을 한다. 지혜롭게 미로의 문제들을 풀고 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는 소원을 하나 얻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아이들은 ‘빛의 공’과 함께 한다. 빛의 공은 아이들이 배고파하면 먹을 것을 주고, 잠자리를 내어주며, 아이들이 힘들어 하면 격려하고 상황에 적절한 조언을 아끼지 않으며 아이들이 꿈의 세계의 모든 관문을 통과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빛의 공이 아이들에게 원하는 건 한 가지 뿐이다. 솔직하게 말할 것.

 그러나 열일곱 살의 소년이 겪는 꿈의 세계는 소년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그로테스크하기까지 하다. 그것은 소년이 순종하는 아홉 살이 아니라 착한 것만으로는 안된다는 걸 아는 열 일곱 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이 겪는 꿈의 세계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숲은 친절한 동물들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소년을 잡아먹을 ‘집채만한 거미들’도 있었다. 황금 딱지(그에게 가장 소중했던)를 버리지 않아도 소년은 감옥을 나올 수 있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서로 화목하지 않았으며, 더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었고,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경쟁하는‘사회’였다. 모두가 씨앗 만 개를 심어야 했지만 씨앗을 나눠주는 기준은 불공평했다. 눈덮인 산에서 만난 생명은 소중히 해야 하는 생명이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 짓밟고 지나간’생명들이었다. 비밀스러운 성적인 경험도 했다. 그건 결코 어른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것들이었다. ‘인도자’인 빛의 공이 침묵했기에, 소년은 모든 어려움을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갔다.

 소년이 겪는 꿈의 세계는 현실과 괴리된, 위선적이면서 기만적인 도덕성을 폭로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다가 좌절하고 집으로 돌아가 버린 아이는, 꿈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곳에서‘죽음’을 맞이한 아이는 정말 ‘제대로 된 어른’이 못 되었을까. 꿈의 세계를 모두 거치고 거울 길을 통과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아이는 정말‘제대로 된 어른’이 되었을까.

 소원을 들어주는 할아버지 곁에 모인 아이들이 내놓는 소원은 클라이막스를 달린다. 아홉 명의 아이들은 제각기 소원을 말한다. “로또 1등에 당첨되고 싶어요.”,“대통령이 되고 싶어요.”,“서울대에 들어가고 싶어요.”,“강아지를 살려주세요.”,“(동생다리를 고치는 것보다) 부자가 되고 싶어요”, “얼짱에 몸짱이 되고 싶어요.”,“소설을 잘 쓰는 재능을 갖고 싶어요.”  정말 자기가 원하는 소원도 있고 누군가가 입을 빌려 말하게 한 소원들도 있다. 지금까지 열심히 꿈의 세계를 여행하며 겪은 교훈들에 부자가 되라고, 권력이나 지위를 얻으라는 말이 있었던가. 아이들은 어디서 그런 것들을 배운 걸까. 언제부터 이상적인 도덕이 현실적인 목표로 대체되었던 것일까.  

 현실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그가 죽어야 하는 이유였기 때문에 소년에게는 살기 위한 정당성이 필요했다. 소년은 꿈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신이 죽어야할 정도로 스스로의 ‘도덕성’이  훼손되지 않았음을 재확인한다. 누구보다도 로봇을 소중히 다루었던 소년의 로봇은 꿈의 세계에서 가장 강한 존재 중 하나인 늑대가 되었고, 남의 시선을 무릅쓰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새끼고양이에게 먹이를 줌으로써 살아났던 새끼고양이는 꿈의 세계에서 누구보다도 강한 표범이 되었다. 두 친구는 그의 도덕성이자 그가 옳다고 믿은 것의 상징이었다.

 소년은 꿈의 세계를 여행하며 스스로를 구했다. 그는 높은 도덕성을 가지며 그것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현실적인 목표를 ――― 돈, 명예, 권력 같은 것 ――― 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조금씩 자신의 도덕성과 타협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물론 도덕성도 훼손하지 않고 현실적인 목표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는 경우가 있을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그런 선택지가 없는 경우를 말하기로 한다) 소년의 다짐은 일반성을 벗어난 것이기도 하다. 소년의 새로운 삶은 현실을 수용하는 자신을 용서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제한 속에서 더 높은 도덕성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년은 이제 자신의 삶에 있어 당당하다.

 3) 자살하다 ――― 잃는 것, 남는 것, 선택한 것

 소년은 본래 죽어야 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두 친구의 도움으로 그는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선택권’을 가졌다. 소년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죽이고 그 결과를 지켜보기도 했다. 자살하는 것은 그의 고통을 몰랐던 모든 이에 복수하는 동시에 그가 가졌던 모든 이를 잃는 것임을 ‘죽지 않은 상태에서’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최종적으로 선택했고, 결국 살아남았다.
 이 글은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다.




 “내가 하려는 말은, 나도 더 이상 열일곱 살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모험을 통해서 어른이 될 준비를 약간이나마 하게 되었고, 몸도 마음도 나이를 먹었다.
 주변 세상이 변했다. 이해 못할 수천만 가지 이상한 것들로 가득했던 세상을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은 이해할 수 있었을망정 결국 변하지는 않았다.
 슬플 때도 있고, 좌절할 때도 있었다. 물론 행복할 때도 있었다. 그건 내 삶이었다.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고, 이해할 수도 없는 삶이 아닌 나의 삶이었다.
 내가 가질 가치가 있는 그런 삶이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나는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른이 되고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했음을, 그 주체가 나였음을 잊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내 삶을 선택했다.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뒷 표지 中




 이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책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예쁜 일러스트나 문체, 시점, 플롯과 캐릭터 같은 것. 그건 날카롭게 날을 세워야 하는 얘기고, 이 책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다. ‘솔직하기 위해’ 작가는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 판단이 옳은 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밤중에 끝없는 절망과 불안감에 몸을 떨며 소리 없이 울어본 적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의 머리맡에 이 책을 놓아주고 싶다. 이 책은,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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