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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마법사의 소굴

2010.06.26 01:1906.26





pilza2.compilza2@gmail.com

 아동 및 청소년 소설 시장이 커지는 가운데 판타지, SF 등 장르소설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영미권과 일본 등 외국도 마찬가지인데, 아무래도 이러한 현상을 말할 때 '해리 포터 붐'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본서 역시 이러한 붐의 영향력 하에서 초등학생 정도의 연령층을 대상으로 기획된 판타지 단편집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마법과 마법사를 중심으로 아동과 학교 등이 주요 소재로 나오는 판타지 단편을 골라 모은 리프린트 앤솔로지다.
 무려 15편이 실려 있어 볼륨도 충실한데, 일본어 번역판에는 그 중에서 장편의 일부를 채록한 한 편을 제외한 14편을 싣고 [마법사가 되는 14가지 방법(오오토모 카나코 번역, 토쿄소겐샤)]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을 달았다. 역제에 걸맞게, 본편의 단편들은 각기 독특한 마법이나 마법사(혹은 마녀)가 등장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줄곧 유지시킨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다. 최면술, 소환마법, 비행마법, 변신술, 투명마법, 꿈속에 들어가는 마법 등등 작품마다 다채로운 소재와 독특한 인물들이 이어진다.
 한편 상기 언급했듯 편집자의 서문에서부터 해리 포터 시리즈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단편집임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해리 포터로 판타지의 매력과 재미에 눈 뜬 아동 및 청소년 독자층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려는 의지가 뚜렷하게 보인다.
 [톨킨의 환상 서가]가 그랬듯, 대부분 작품이 해리 포터 탄생 이전에 창작되었으며, 작가의 명성과 실력도 롤링의 대중적 인지도에서 밀렸을 뿐 판타지 소설에서 유명한 작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어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 드라라 교수와 2펜스 마법 / 이디스 네스빗

 '말썽꾸러기 오빠 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루시는 드라라 교수의 가게로 가서 가진 돈 2펜스를 주고 오빠를 혼내줄 흑마법을 산다. 다음날 루시는 힘이 세지고, 해리는 나약하고 소심해져 있었다. 대신 루시는 학교에서 못된 장난을 일삼다가 붙잡혀 퇴학당할 위기에 처하고, 해리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데……'

 네스빗은 현대적 의미에서의 아동소설을 거의 최초로 쓴 선구자이며 현대적 의미의 판타지 소설을 이끈 작가이다. 흑백 양쪽 마법에 정통한 마법사 드라라 교수는 그의 인기 캐릭터 중 하나로 다수의 작품에 등장한다고 한다. 이 글은 간편하게 얻은 마법에 대한 대가와 부작용에 대한 이야기로, 아동에게 교훈을 주는 아동도서의 본령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소원 / 로알드 달

 '소년은 양탄자에 스스로 룰을 정해 검은색을 밟지 않고 건너려 한다. 단순한 장난으로 시작했던 양탄자 건너기는 점차 목숨을 건 모험이 되고, 양탄자는 뱀과 같이 소년을 탐하며 도사린다.'

 수록작 중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 소개된 작품으로 로알드 달의 단편집 [당신을 닮은 사람]에 수록되어 있다. 등하교시 타일의 금을 밟지 않고 간다든지 하는 간단한 '법칙'을 만들어본 기억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런 간단한 자신의 룰이 강박관념처럼 자신을 사로잡고 결국 현실이 되어버리는 환상적 체험을 다룬 작품으로, 짧지만 상당한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주고 있는 인상적인 이야기.

 * 투명 소년 / 레이 브래드버리

 '할머니 집에 놀러온 찰리. 자칭 마녀인 할머니는 찰리와 함께 놀아줄 속셈으로 보이지 않는 마법을 걸었다고 말하고 찰리가 보이지 않는 척을 한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찰리가 진짜로 믿고 심각하게 대하자 마법이 거짓임을 밝혀 찰리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할머니는 마법의 힘이 사라지며 점점 찰리의 모습이 보인다고 말하는데……'

 브래드버리다운 시적 감수성과 애잔함으로 가득한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수록작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활기찬 소년과 상냥한 노인의 만남, 무대로 펼쳐진 미국 시골의 정경 같은 외적인 면에서 [민들레 와인]을 연상시킨다. 현실 속의 마법과 마법 같은 현실을 소박하지만 아름답게 그려낸 걸작 단편이다.

 * 내 이름은 돌리 / 윌리엄 F. 놀란

 '의모가 죽은 후 의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돌리는 마녀 메그를 찾아가 가진 돈 5달러로 마법을 걸어달라고 부탁하고, 마녀는 돌리와 꼭 닮은 인형을 준다. 일요일, 인형이 갑자기 움직이더니 자기 등의 태엽을 뽑아 의부를 막 찌르고, 분노한 의부는 인형을 벽난로에 던져 불태우고 숨진다. 경찰이 와서 범인인 소녀를 소년원으로 데려가지만……'

 수록작 중에서도 진정한 흑마법을 선보이는 단편. 상대를 저주하고 목숨을 빼앗는 흑마법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강렬한 반전이 인상적이라 내용 소개를 어디까지 해야 할지 망설였지만 이 정도만 봐도 결말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추리·스릴러 단편집에 수록되어도 좋을 정도로 피가 튀고 반전이 돋보이는 글이다.

 * 읽을 만한 것 / 필립 풀먼

 '아나벨은 활자중독 소녀. 학교에서는 파티가 열리고 있지만 참여하기 싫어서 책을 찾아 헤맨다. 그 와중에 동급생 린다와 만나 말다툼을 하게 되고, 화난 린다가 아나벨의 책을 수영장에 던지자 책을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든다. 하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는 아나벨은 그대로 숨지는데, 유령이 되어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오히려 기뻐한다. 잠긴 도서관의 문을 통과하여 들어간 아나벨. 하지만 유령은 덮여진 책을 읽을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한다. 눈앞에 있지만 읽을 수 없는 책으로 가득한 이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황금 나침반 시리즈로 유명한 필립 풀먼의 단편으로 아동용으로 나와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절망적인 결말이 인상적이지만, 아동용이라고 해서 밝고 교훈적인 이야기만 나오라는 법은 없다. 재미와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만한 작품도 찾기 힘들다.


 * 캐롤 오니르의 백 번째 꿈 / 다이애나 윈 존스

 '영화와 같이 재미있는 내용의 꿈을 만들어 파는 인기 작가 캐롤. 연달아 베스트셀러 꿈을 꾸던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온다. 기념비적인 100번째 꿈을 꾸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던 것. 부모의 권유로 대마법사 크레스트만시를 찾아가는데, 그의 상담을 받고 마침내 꿈을 꾸게 되지만 평소완 달랐다. 꿈속의 배우들이 배역과 처우에 대한 불만을 품고 파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꿈을 병에 담아서 마치 책이나 DVD처럼 파는 세상을 무대로 최연소 베스트셀러의 영예를 누리던 꿈 작가 캐롤의 이야기. 흔히들 작가들이 소설을 쓸 때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생각과 달리 멋대로 움직이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심지어 인물들이 움직이는 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자신은 받아 적기만 할 뿐이라고 말하는 작가도 있다.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에게 이 글은 정말로 공감이 가는 멋진 이야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사실 작가에게 반기를 들고 파업을 하는 등장인물이 나온다면 작가에게 있어서는 끔찍한 악몽이 되겠지만, 캐롤은 그런 위기 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도움을 얻고 마음의 성장을 이룬다. 언젠가 성숙해진 캐롤이 돌아온 꿈속 배우들과 함께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이게 될 거란 기대를 품게 만드는, 마음 따뜻한 여운을 주는 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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