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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a (pena9.egloos.com)



논어 옹야편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즉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즐길 때에 가장 큰 경지를 성취할 수 있다는 이 말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것을 즐길 수 있었다면 싫은 음식, 시련, 점수가 반토막난 시험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는 떫어서, 써서, 시어서, 차가워서, 뜨거워서, 힘들어서, 당기지 않아서, 지나쳐서, 어려워서, 복잡해서, 멀어서, 가까워서, 해묵어서, 너무 날것이라서 등의 이유로, 때로 이유 없이 즐길 수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러나 내가 당연히 이러하므로 즐길 수 없고 어렵다고 하는 것에 대해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컨대 나는 과학이 말해주는 사실, 과학적 사고방식은 아름답고 좋다고 생각하지만 어렵고 접근하기 힘들다고 느낀다. 기초적인 과학적 지식이 없어도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엔 모자람이 없으며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정도나 잠시 설정처럼 이해를 하면 된다고. 그런데 과학이 너무나 좋다는 저자는 당당하게 외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과학을 알아야 한다고. 다른 수많은 실용적인 이유가 있을지 몰라도 저자가 대는 이유는 “과학이 재미있으니까”이다. 과학은 재미있다. 재미있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과학을 알아야 한다. 뭣이?


▲ 재미있는 과학 ①
([The Incredible Machine], 자료발췌 MobyGames)


애정 탓에, 애정 덕에

이 당당함과, 보라고 보라고, 아름답다고, 재미있다고, 좋다고 열심히 과학을 소개하는 입담이 이 책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장점도 이것에서, 단점도 이것에서 나온다. 마치 소개팅 주선을 나온 아줌마처럼, 맘에 드는 처자에게 아들을 붙여주려고 소개하는 어머니처럼, 부모님께 애인 좀 잘 보이려고 설명하는 처녀처럼, 연예인에 관심 없는 친구에게 우리 ‘오빠들’의 우월함을 각인시키려는 팬처럼 과학의 좋은 점을 이야기한다. 평소에 관심없었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소개하듯이, 또는 예전에는 잘 지냈지만 멀리 떨어져 살게 되어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편지하듯이 요새 과학은 뭘 하고 지내는지, 뭐에 제일 사로잡혀 있는지 안부를 전한다.
그 애정 탓에 쿨한 독자라면 서문에서 나가떨어질 수 있다. 뭐야, 이 부담스러운 수다와 남발하는 하트는? (아, 물론 정말로 책에 하트가 돌아다니는 건 아니다. 행간마다 애정이 뚝뚝 떨어질 뿐이다.)
그 애정 덕에 공식과 그래프와 표 때문에 과학에 경기를 일으키던 독자는 과학의 다른 면에 눈을 뜰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이란 생각보다 훨씬 생활과 가까운 것, 아니 사실 오늘날에는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착된 사이라는 것, 딱딱하고 엄밀하고 냉정해보이는 과학의 눈을 통해서 문학과 철학과 종교에서나 볼 법하던 아름다운 진리를 볼 수 있다는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너무 작거나 커서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많은 것을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과학이란 딱딱하고 굳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접근하려는 하나의 도구이자 방법이며 영원히 정답이란 없다는 것에 조금씩 젖어들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


▲ 재미있는 과학 ②


성인을 위한 과학책

이 책은 과학의 전반적인 분야를 살피고, 어떤 식으로 이론과 발견이 이루어져왔는가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과학교과서와는 많이 다르다. 그보다는 흔히 역사채널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피 채널 같은 곳에서 접하는 다큐멘터리와 많이 닮았다. 이 책은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 소위 자연과학이라고 일컬어지는 기초과학 분야를 다루고 있는데, 그런 분야들이 본질적으로 다루는 주제가 무엇인가, 지금 그 분야는 어디까지 왔는가, 우리 생활과 연결되어 있는 부분은 어디인가,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되도록 눈에 보이듯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한다. 작은 문제들에 대답하면서 커다랗고 광활한 과학의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미국의 현역 과학 교수들이 강의에서, 일상에서 쓰는 교수법을 따오기도 하고, 그들과 나눈 대화를 삽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더 다큐멘터리 같은 인상이 강하다. 왜, 다큐멘터리 보면 중간중간 권위자들의 코멘트를 삽입해서 부연설명을 하지 않던가? 대신 이 책은 처음부터 책으로 기획된 것이므로 모든 것을 말로, 글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만이 다르다. 또한 저자 나탈리 앤지어가 썩 훌륭한 작가인 덕에 글로써만 가능한 쾌감도 느낄 수 있다. 이 책 곳곳에 아름다운 글이 숨어 있다는 뜻이다.

목차에서부터 일단 인문학적이고 시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모호하고 겉멋 들어 보이는 제목이지만 이 제목은 장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제목과 함께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0. 서문
- 여기가 위에서 경고한, 과도한 애정 탓에 중언부언도 약간 하고 있는 저자의 애정고백란이다.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줘야 할 독자도 있을 것 같다.

1. 과학적으로 생각하기: 유체 이탈 체험
- 과학은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오히려 활동적인 자기 발견의 과정이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이다. 느끼지 못할 뿐 사람들은 누구나 매순간 과학을 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품고 있는 생각이 편견이나 오해임을 깨닫고 어떻게 무슨 이유로 그런 생각을 품게 됐는지 근원을 추적해가는 과정이야말로 그 대표이다.

2. 확률: 누구를 위한 종형곡선인가?
- 사람들은 무작위성에서도 패턴을 찾고 싶어 한다. 우연은 흉조로, 길조로 변형된다. 그러나 확률을 이해하면, 어떤 우연이나 상황이 종형곡선에서 어느 자리를 차지하는지를 알고 추적하게 되면 세상을 좀 더 효율적이고 긍정적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 보인다.

3. 척도: 크기와 놀다
-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크기를 마이너스제곱을 사용하여 나타내는 것, 눈으로 보이지 않는 광활하고도 무한해 보이는 우주를 숫자 몇 개와 비유로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 그 모두가 척도와 관련된 놀라운 기쁨이다. 우리를 이루는 기본요소라는 원자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4. 물리: 그리고 내게는 공허가 가득 차 있네
-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에서, 원자의 안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공허, 없음, 무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 침대나 의자 같은 가구, 건물과 돌, 나무를 볼 때 그것이 ‘비어 있다’고 느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일까? 비어 있는 그 많은 공간을 채우거나 이동하면서 생명을 활동하게 하고 사물을 이동하게 하는 힘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런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이 물리학이다.

5. 화학: 불, 얼음, 스파이, 그리고 생명
- 매드 사이언티스트, 마법의 약을 만드는 마녀, 헛된 꿈을 좇는 연금술사가 화학자의 표상이고, 화학물질은 각종 질병과 환경문제의 원흉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엄밀한 관념으로 말하자면 모든 물질은 화학물질이며 사실 사람도 탄소 화합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모든 결합에서 생명은 시작되며, 주기율표는 그냥 표가 아니다. 화학은 정말 근본을 파헤치는 학문이며 과학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다.

6. 진화생물학: 모든 몸들의 이론
-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창조론 교과서를 쓰는 곳은 없는 것 같은데, 미국은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이 상당히 격렬한 모양이다. 진화란 의견이 아니라 수많은 증거를 댈 수 있는 이론이라는 것, 의견과 이론이란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라는 것, 생물이 진화한다는 것은 기적과 관계가 없다는 느낌이 들기 쉽지만 사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적인가를 말한다.

7. 분자생물학: 세포와 부속품
- 세포가 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지 아는가? 사람이 잠을 자거나 쉴 때에도 한순간도 쉬지 못하는 게 세포라는 것을 아는가? 사람의 행동은 어디까지가 본성이고 어디까지가 후천적인 것일까? 생물학은 과학의 한 분야이므로 딱딱하고 냉담하고 어려운 것이라 느껴질지 모르지만 이 장을 읽고 나면 생물학은 문학적이고, 생물 안의 움직임이란 감동적이며, 몸은 고마운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8. 지질학: 세계의 조각들을 상상하기
- 지구는 살아 있다. 그 위에 온갖 식물과 동물, 생물이 태어나고 살고 자라고 죽어 순환에 들어가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산과 강과 바다, 바위와 돌에 새겨진 역사를 보며 지구가 그동안 행상 자체가 변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일어나는 이유 또한 역설적으로 지구가 살아 있고 활동적이기 때문이다.

9. 천문학: 천상의 피조물들
- 가장 먼 곳에 있으면서도 얼굴만 들면 보이는 저 하늘을 채우고 있기에, 천문학은 가장 쉽게 일반인의 관심에 드는 과학분야이다. 그런 만큼 오해와 편견에 고생하기도 한다. 천문학의 도움으로 보는 밤하늘은 신화와 점성술의 낭만 같은 건 걷어버리고 도플러 효과나 타원궤도 같은 도식으로 뒤덮인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천문학은 저 별들과 우주에 대해, 진실이기에 더욱 아련하고 애달픈 사실을 전한다.


그래서 그 뒤에는

이 책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낚시’이다. 과학은 이렇게 재미있고, 과학은 이렇게 우리와 밀접한 사항을 다루는 학문이며, 과학은 이렇게 아름다운 진리와 세상을 달리 볼 수 있는 눈을 주는 도구라고 말하면서 사람을 끌어들인 후 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뒤에는? 그 뒤에는 어쩌라고? 흥미를 끌었으면 그 뒤도 책임져야지!
하지만 이 책이 성인을 위한 과학책이라는 것을 상기하자. 산책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저자가 보여주는 풍경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중 특별히 더 끌리는 것이 있었다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가서 무엇을 더 파고들지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럴 능력 또한 충분하다. 나는 역시 별의 역사와 생물의 진화 부분이 끌리는데, 여러분은 어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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