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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서는 같은 날 출간된 '다른 늑대도 있다'와 형제자매와도 같은 관계다. 원서 자체부터 동일한 편집자가 청소년을 위한 선집이라는 동일한 기획 하에 만들어졌고 번역서도 원서의 의도를 충실히 따랐기에 둘을 따로 나누어 언급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단편집 출간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는 전작에서 했으므로 개별 작품만 살펴보았다.


 개들 몸은 고깃덩어리래 / 테리 비슨

 과거 PC통신 시절부터 아마추어 번역본이 인기를 끌었고 정크SF를 거쳐 현재까지도 블로그 등지에서 출처도 모른 채 '펌질'되고 있는 전설적인 명작이 정식 번역본으로는 처음 선보였다. 짧지만 더 덧붙일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SF의 정수를 담고 있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조슈아 삼촌과 르루글맨 / 데브라 도일, 제임스D.맥도널드

 비현실적이거나 공상적으로 여겨지던 사건이 끝에선 결국 논리적/과학적 이유가 있었음이 밝혀지는 형식의 글은 제법 있다. 주로 추리소설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가령 귀신의 소행인 줄 알았으나 범인의 속임수였다든지) 이 단편은 판타지로 시작해서 SF로 끝난다. 박상준이 편집한 호러SF 단편집 '토탈 호러' 해설에서 강조한 "가장 무서운 존재는 결국 인간"이라는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브라이언과 외계인 / 윌 셔털리

 표면적으로 보면 SF독자들이 싫어하는 용어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명칭이 어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는 작가가 의도한 바로, 코믹하고 발랄한 작풍을 통해 청소년에게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좋을 것 같다. 팬덤이나 비평자는 SF를 세간의 편견에서 비호하기 위해 과학적 외삽, 알레고리, 사변 같은 '딱딱한' 요소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사실 이렇게 유치하면서도 즐거운 면모도 SF의 한 축임은 분명하다.

 다른 종류의 어둠 / 데이비드 랭포드

 '다른 늑대도 있다'에 실린 '땅의 뼈'와 마찬가지로 중복 수록된 작품(행복한 책읽기에서 나온 '하드SF 르네상스'에도 수록되어 있다). 중복되는 글이 하나둘 발견되는 것은 한국에도 단편이 제법 많이 소개되고 있다는 반증일까. 사실 번역물만 따지자면 장르소설 시장이 상당히 커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아직 일부 퍼블릭 도메인의 중복 출간(그렇지만 아직 소개되지 못한 명작도 많다), 인기작이 하나 뜨면 아류작이 쏟아지는 유행 좇기, 작품 자체보다 유명 작가의 이름값을 중시하는 경향 등 성숙기라고 하기엔 이른 느낌이 있다.

 탄젠트 / 그렉 베어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하드'하다고 볼 수 있다. 이론상으로만 다루는 4차원이 실제로 있어, 우리가 사는 3차원과 연결된다면, 4차원의 존재가 3차원에 나타난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발상을 과학적 근거를 통해 소설로 멋지게 구현했다. 두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음악이라는 작가의 상상이 이 딱딱해질 수 있는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외계인의 생각 / 필립 K.딕

 분량부터 내용, 간결한 문체 등 전체적인 모습이 프레데릭 브라운이나 호시 신이치를 연상시킨다. 호시 신이치의 경우 무모할 정도의 분량으로 거의 전단편이 출간되었는데 막상 영미권 엽편 소설의 대표자인 프레데릭 브라운은 '마술 팬티'의 절판 이후 소개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저 반짝이는 별들로부터 / 낸시 크레스

 고풍스럽다 못해 낡았다는 느낌이 든다. 1985년작이라는 걸 감안해야 겠지만, 그래도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냥 백인 마을에 왔다간 유색인 이야기를 SF로 번안(?)한 듯한 느낌. 다만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와 증오는 세계화 시대를 산다는 우리조차도 아직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 아마도 인간 본연의 원초적 감정일지도 모른다.

 링컨 기차 / 머린 F. 맥휴

 미국 근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서 그런지 대체 역사라는 느낌이 잘 와닿지 않았고, 그런 만큼 SF라는 느낌도 들지 않는 이질적인 작품이다. 미국 독자를 위해 만든 선집의 번역물에서 느껴지는 한계이자 문제점이라고나 할까. 가령 한국 기획자가 SF단편집을 만든다면 절대로 실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위대한 이별 / 로버트 찰스 윌슨

 아서 클라크를 연상시키는 도입부에 마지막엔 서술 트릭에 의한 반전이 돋보인다(아차, 반전이 있다는 발언 자체가 스포일러라고 했던가?). 이 단편집엔 5 페이지 이하의 짧은 글이 몇 편 있는데, 재미와 내용 모두 상당히 만족스럽다. 특히 단편집의 처음과 끝에 이렇게 짧고 강렬한 글을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또렷한 인상을 주는 등 두 권 모두 작품 수록 순서가 상당히 잘 짜여져 있다. 이는 편집자의 실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시로, 작가 이름순으로 글을 싣는 등 나태하고 무능한 기획력을 보여주는 일부 한국 장르소설 편집자들이 눈여겨보고 배워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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