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솔직 유쾌한 이야기.
1. 어린 아이, 김xx.
초등학생 3학년 과정의 미술 시간이다. 담임선생님이 자유롭게 상상화를 그리라고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항상 그림은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술 수업마다 교과서에 나오는 교과과정 순서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정물화 과정에서는 자유롭게 정물화 그리기. 수채화 과정에서는 자유롭게 수채화 그리기. 담임선생님은 미술 쪽으로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이런 미술 교육도 뭔가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그림을 다 그리면 선생님께 검사를 맞고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빨리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가지고 온 준비물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다. 이것들은 사용하기 편해서 좋다. 물감은 사용하기가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웬만하면 가지고 오지 않는다. 역시 난 똑똑하다.
나는 잠시 무엇을 그릴까 고민한다.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아이들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옆 자리의 아이는 우주 그림을 그린다. 나도 우주 그림을 그려야 갰다고 생각한다. 태양과 별들을 그린다. 옆 자리 아이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을 그린다. 이것까지 따라 그린다면 선생님께 혼이 날 것이다. 예전에 다른 사람과 똑같이 그려서 혼이 난 적이 있다. 똑같은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 나는 창밖을 본다. 운동장 밖의 도로에 차들이 지나간다. 나는 별들 사이에 도로를 그리고 차를 그린다. 별과 도로, 차만 있으니 그림이 허전하다. 나는 도로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도로위의 무엇인가가 반짝인다. 자세히 보니 버려진 깡통이다. 나는 도로 옆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그린다.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니 너무 쓰레기가 많다. 나는 쓰레기를 청소하는 로봇을 그린다.
담임선생님께 그림을 검사받는다. 무사통과, 자유 시간이다.
2. 담임선생님, 이xx.
오늘도 즐거운 미술 시간이 왔다. 나는 미술 시간이 너무 좋다. 대충,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니라서 대충 가르쳐도 티가 안 난다. 티가 나도 학부모에게서 항의가 올 일은 없다. 미술 따위는 대학 가는데 필요 없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은 국어 영어 수학처럼 수업 시간 내내 떠들며 가르칠 필요도 없다. 나는 오늘 가르칠 내용인 상상화를 그리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를 켜고 놀기 시작한다.
놀다 보면 아이들이 그림을 완성해 가지고 온다. 대충 훑어보고 너무 성의 없이 그린 그림만 아니면 통과시킨다. 아이들이 떠들지만 않는다면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수업을 진행시키는 나는 정말 똑똑하다.
3. 교장선생님, 박xx.
전국 어린이 상상화 대회가 열렸다. 선생들에게 자기반에서 적당히 좋은 그림을 하나씩 뽑아오라고 해야겠다. 당선이 되면 좋고, 탈락해도 상관없다. 역시 난 똑똑하다.
4. 담임선생님, 이xx.
교장이 전국 어린이 상상화 대회에 낼 그림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나는 얼마 전 수업에서 상상화 그리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역시 난 똑똑하다. 굳이 아이들 귀찮게 상상화를 다시 그리게 하는 것 보다는 있는 것 중에 하나를 내야겠다. 나는 그림을 모아둔 파일의 가장 위에 있는 그림을 뽑아 교장에게 제출한다. 어차피 아이들의 수준은 다 비슷비슷하다.
5. 교장 선생님, 박xx.
각 반으로부터 하나씩 뽑아온 그림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이런 일은 영리하게 아랫사람을 시켜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선생이 미술 쪽 대학을 나왔다. 이 선생을 불러서 가장 좋은 그림을 세 개 정도 뽑으라고 명령해야겠다. 역시 난 똑똑하다.
6. 담임선생님, 이xx.
교장 선생이 날 부르더니 잡일을 시킨다. 짜증난다. 대충 우리 반 아이 그림 하나, 아무 그림 두 개를 뽑는다. 미대를 나온 나의 안목을 의심할 사람도 없으니까 대충해도 상관없다. 게다가 우리 반 아이의 그림이 만에 하나 상을 타면 좋은 것 아닌가. 역시 난 똑똑하다.
7. 미술 전문가, 김xx.
전국의 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그림들이 몰려왔다. 미술 전문가인 내가 이런 아이들의 저질 그림이나 보고 있어야 하다니. 나는 대충 그림을 둘러보며 있어 보이는 그림을 세장 뽑는다. 그리고 그림을 해설할 문구를 만들어낸다. 어차피 아이들 그림이라고 해봐야 수준이 다 비슷비슷해서 해설만 그럴듯하게 해주면 모두 “아, 그렇군요. 역시 전문가 선생님은 보는 눈이 다르시네요.”라고 해 준다. 어서 해설 문구를 만들자. 역시 난 똑똑하다.
금상, “삐리, 삐리.”
은상, “이 그림은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간단한 크레파스만으로 그린 그림임에도 뛰어난 상상력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특히 현재의 환경오염을 넘어서, 우주 오염까지 상상하고 걱정한 점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는 그런 우주 오염을 로봇이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해결 방법 제시가 훌륭합니다. 현재와 미래, 문제와 해결을 동시에 표현해낸 좋은 그림입니다. 약간의 단점이 있다면 표현력이 아직 숙달되지 않아서 미흡한 점이 보인다는 건데요. 이것도 그린 이가 아직 초등 3학년임을 고려한다면 훗날 대단한 화가가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쉽게도 은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다음 대회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동상, “삐리, 삐리.”
7, 8. 교장 선생님, 박xx. 담임선생님 이xx.
우와, 우리 아이가 은상을 받았다. 이게 웬 떡이냐! 역시 난 운이 좋아! 내 경력에 한 줄 추가된다. 이런 일이 생긴 것도 다 내가 똑똑하기 때문이다.
9. 아이 어머니, 이xx.
우리 아이가 은상을 받았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거 미술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 가 생각된다. 대충 상을 몇 개 따두면 대학 갈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부녀 회의에서 자랑할 거리가 생겨서 기분이 너무 좋다. 역시 내 아이는 뭔가 다르다. 이런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시킨 나는 정말 똑똑하다.
10. 어린 아이, 김xx.
어느 순간 상이 손에 쥐어져 있다. 난 그림 대회에 나간 적도 없는데, 뭐 일단 상이니까 받아두어야겠다. 뭐, 나는 똑똑하니까 이런 상도 굴러들어오는 거다. 에, 뭐 상품이 그림물감? 정말 싫다. 물감 따위 어디다 쓰라는 거야!
11. 교장 선생님, 박xx.
다른 그림 대회에도 내보내면 되지 않을까. 일단 상상화 대회를 찾아봐야겠다. 근 시일에 열리는 상상화 대회, 아 찾았다. 이 선생에게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하라고 말해야겠다. 역시 난 똑똑하다.
12. 어린 아이, 김xx.
담임선생님이 또 다른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덕분에 나는 방과 후에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아야 했다. 아, 이게 뭐야! 어서 집에 가고 싶다. 이럴 거라면 상을 안 받는 게 좋았을 거다. 똑똑한 것도 탈이다. 이번에도 대충 그림을 그리고 집에 가야겠다.
13. 담임선생님, 이xx.
아이가 그린 그림은 또다시 상을 탈 것 같지 않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교장의 기대가 대단한데. 인터넷으로 아이가 받은 상의 해설을 읽어본다. 아하, 요즘 미술 전문가들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말이지. 나는 아이에게 우주의 쓰레기와 청소 로봇을 그린 그림을 그리게 한다. 역시 난 똑똑하다.
14. 또 다른 미술 전문가 박xx.
전국의 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그림들이 몰려왔다. 미술 전문가인 내가 이런 아이들의 저질 그림이나 보고 있어야 하다니. 나는 대충 그림을 둘러보며 있어 보이는 그림을 세장 뽑는다. 그리고 그림을 해설할 문구를 만들어낸다. 어차피 아이들 그림이라고 해봐야 수준이 다 비슷비슷해서 해설만 그럴듯하게 해주면 모두 “아, 그렇군요. 역시 전문가 선생님은 보는 눈이 다르시네요.”라고 해 준다. 어서 해설 문구를 만들자. 역시 난 똑똑하다.
금상, “삐리, 삐리.”
은상, “삐리, 삐리.”
동상, “이 그림은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간단한 크레파스만으로 그린 그림임에도 뛰어난 상상력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특히 현재의 환경오염을 넘어서, 우주 오염까지 상상하고 걱정한 점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는 그런 우주 오염을 로봇이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해결 방법 제시가 훌륭합니다. 현재와 미래, 문제와 해결을 동시에 표현해낸 좋은 그림입니다. 약간의 단점이 있다면 표현력이 아직 숙달되지 않아서 미흡한 점이 보인다는 건데요. 이것도 그린 이가 아직 3학년임을 고려한다면 훗날 대단한 화가가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쉽게도 은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다음 대회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15. Happy Ending.
아이는 그 후로 여러 그림 대회에 나가게 되지만 어떤 상도 타지 못했다. 게다가 훗날 대학을 지원할 때,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은상과 동상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이는 3류 대학에 들어갔다.
1. 어린 아이, 김xx.
초등학생 3학년 과정의 미술 시간이다. 담임선생님이 자유롭게 상상화를 그리라고 하셨다. 담임선생님은 항상 그림은 그려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술 수업마다 교과서에 나오는 교과과정 순서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정물화 과정에서는 자유롭게 정물화 그리기. 수채화 과정에서는 자유롭게 수채화 그리기. 담임선생님은 미술 쪽으로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 이런 미술 교육도 뭔가 생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그림을 다 그리면 선생님께 검사를 맞고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빨리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가지고 온 준비물은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다. 이것들은 사용하기 편해서 좋다. 물감은 사용하기가 너무 번거롭기 때문에 웬만하면 가지고 오지 않는다. 역시 난 똑똑하다.
나는 잠시 무엇을 그릴까 고민한다. 딱히 떠오르는 생각이 없다. 주위를 둘러본다. 다른 아이들은 무슨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옆 자리의 아이는 우주 그림을 그린다. 나도 우주 그림을 그려야 갰다고 생각한다. 태양과 별들을 그린다. 옆 자리 아이는 우주복을 입은 사람들을 그린다. 이것까지 따라 그린다면 선생님께 혼이 날 것이다. 예전에 다른 사람과 똑같이 그려서 혼이 난 적이 있다. 똑같은 그림을 그리면 안 된다. 나는 창밖을 본다. 운동장 밖의 도로에 차들이 지나간다. 나는 별들 사이에 도로를 그리고 차를 그린다. 별과 도로, 차만 있으니 그림이 허전하다. 나는 도로를 주의 깊게 살펴본다. 도로위의 무엇인가가 반짝인다. 자세히 보니 버려진 깡통이다. 나는 도로 옆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그린다.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니 너무 쓰레기가 많다. 나는 쓰레기를 청소하는 로봇을 그린다.
담임선생님께 그림을 검사받는다. 무사통과, 자유 시간이다.
2. 담임선생님, 이xx.
오늘도 즐거운 미술 시간이 왔다. 나는 미술 시간이 너무 좋다. 대충,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되기 때문이다. 국어 영어 수학과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니라서 대충 가르쳐도 티가 안 난다. 티가 나도 학부모에게서 항의가 올 일은 없다. 미술 따위는 대학 가는데 필요 없는 과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술은 국어 영어 수학처럼 수업 시간 내내 떠들며 가르칠 필요도 없다. 나는 오늘 가르칠 내용인 상상화를 그리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컴퓨터를 켜고 놀기 시작한다.
놀다 보면 아이들이 그림을 완성해 가지고 온다. 대충 훑어보고 너무 성의 없이 그린 그림만 아니면 통과시킨다. 아이들이 떠들지만 않는다면 수업 시간에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이렇게 효율적으로 수업을 진행시키는 나는 정말 똑똑하다.
3. 교장선생님, 박xx.
전국 어린이 상상화 대회가 열렸다. 선생들에게 자기반에서 적당히 좋은 그림을 하나씩 뽑아오라고 해야겠다. 당선이 되면 좋고, 탈락해도 상관없다. 역시 난 똑똑하다.
4. 담임선생님, 이xx.
교장이 전국 어린이 상상화 대회에 낼 그림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나는 얼마 전 수업에서 상상화 그리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역시 난 똑똑하다. 굳이 아이들 귀찮게 상상화를 다시 그리게 하는 것 보다는 있는 것 중에 하나를 내야겠다. 나는 그림을 모아둔 파일의 가장 위에 있는 그림을 뽑아 교장에게 제출한다. 어차피 아이들의 수준은 다 비슷비슷하다.
5. 교장 선생님, 박xx.
각 반으로부터 하나씩 뽑아온 그림의 수가 어마어마하다.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이런 일은 영리하게 아랫사람을 시켜야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선생이 미술 쪽 대학을 나왔다. 이 선생을 불러서 가장 좋은 그림을 세 개 정도 뽑으라고 명령해야겠다. 역시 난 똑똑하다.
6. 담임선생님, 이xx.
교장 선생이 날 부르더니 잡일을 시킨다. 짜증난다. 대충 우리 반 아이 그림 하나, 아무 그림 두 개를 뽑는다. 미대를 나온 나의 안목을 의심할 사람도 없으니까 대충해도 상관없다. 게다가 우리 반 아이의 그림이 만에 하나 상을 타면 좋은 것 아닌가. 역시 난 똑똑하다.
7. 미술 전문가, 김xx.
전국의 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그림들이 몰려왔다. 미술 전문가인 내가 이런 아이들의 저질 그림이나 보고 있어야 하다니. 나는 대충 그림을 둘러보며 있어 보이는 그림을 세장 뽑는다. 그리고 그림을 해설할 문구를 만들어낸다. 어차피 아이들 그림이라고 해봐야 수준이 다 비슷비슷해서 해설만 그럴듯하게 해주면 모두 “아, 그렇군요. 역시 전문가 선생님은 보는 눈이 다르시네요.”라고 해 준다. 어서 해설 문구를 만들자. 역시 난 똑똑하다.
금상, “삐리, 삐리.”
은상, “이 그림은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간단한 크레파스만으로 그린 그림임에도 뛰어난 상상력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특히 현재의 환경오염을 넘어서, 우주 오염까지 상상하고 걱정한 점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는 그런 우주 오염을 로봇이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해결 방법 제시가 훌륭합니다. 현재와 미래, 문제와 해결을 동시에 표현해낸 좋은 그림입니다. 약간의 단점이 있다면 표현력이 아직 숙달되지 않아서 미흡한 점이 보인다는 건데요. 이것도 그린 이가 아직 초등 3학년임을 고려한다면 훗날 대단한 화가가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쉽게도 은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다음 대회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동상, “삐리, 삐리.”
7, 8. 교장 선생님, 박xx. 담임선생님 이xx.
우와, 우리 아이가 은상을 받았다. 이게 웬 떡이냐! 역시 난 운이 좋아! 내 경력에 한 줄 추가된다. 이런 일이 생긴 것도 다 내가 똑똑하기 때문이다.
9. 아이 어머니, 이xx.
우리 아이가 은상을 받았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줄 몰랐는데, 이거 미술 학원에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 가 생각된다. 대충 상을 몇 개 따두면 대학 갈 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쨌든 부녀 회의에서 자랑할 거리가 생겨서 기분이 너무 좋다. 역시 내 아이는 뭔가 다르다. 이런 아이를 낳고 기르고 교육시킨 나는 정말 똑똑하다.
10. 어린 아이, 김xx.
어느 순간 상이 손에 쥐어져 있다. 난 그림 대회에 나간 적도 없는데, 뭐 일단 상이니까 받아두어야겠다. 뭐, 나는 똑똑하니까 이런 상도 굴러들어오는 거다. 에, 뭐 상품이 그림물감? 정말 싫다. 물감 따위 어디다 쓰라는 거야!
11. 교장 선생님, 박xx.
다른 그림 대회에도 내보내면 되지 않을까. 일단 상상화 대회를 찾아봐야겠다. 근 시일에 열리는 상상화 대회, 아 찾았다. 이 선생에게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하라고 말해야겠다. 역시 난 똑똑하다.
12. 어린 아이, 김xx.
담임선생님이 또 다른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 덕분에 나는 방과 후에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남아야 했다. 아, 이게 뭐야! 어서 집에 가고 싶다. 이럴 거라면 상을 안 받는 게 좋았을 거다. 똑똑한 것도 탈이다. 이번에도 대충 그림을 그리고 집에 가야겠다.
13. 담임선생님, 이xx.
아이가 그린 그림은 또다시 상을 탈 것 같지 않다. 흠, 어떻게 해야 할까. 교장의 기대가 대단한데. 인터넷으로 아이가 받은 상의 해설을 읽어본다. 아하, 요즘 미술 전문가들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말이지. 나는 아이에게 우주의 쓰레기와 청소 로봇을 그린 그림을 그리게 한다. 역시 난 똑똑하다.
14. 또 다른 미술 전문가 박xx.
전국의 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수의 그림들이 몰려왔다. 미술 전문가인 내가 이런 아이들의 저질 그림이나 보고 있어야 하다니. 나는 대충 그림을 둘러보며 있어 보이는 그림을 세장 뽑는다. 그리고 그림을 해설할 문구를 만들어낸다. 어차피 아이들 그림이라고 해봐야 수준이 다 비슷비슷해서 해설만 그럴듯하게 해주면 모두 “아, 그렇군요. 역시 전문가 선생님은 보는 눈이 다르시네요.”라고 해 준다. 어서 해설 문구를 만들자. 역시 난 똑똑하다.
금상, “삐리, 삐리.”
은상, “삐리, 삐리.”
동상, “이 그림은 상상력이 매우 뛰어난 작품입니다. 간단한 크레파스만으로 그린 그림임에도 뛰어난 상상력을 잘 표현하고 있네요. 특히 현재의 환경오염을 넘어서, 우주 오염까지 상상하고 걱정한 점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는 그런 우주 오염을 로봇이 막아낼 수 있을 거라는 해결 방법 제시가 훌륭합니다. 현재와 미래, 문제와 해결을 동시에 표현해낸 좋은 그림입니다. 약간의 단점이 있다면 표현력이 아직 숙달되지 않아서 미흡한 점이 보인다는 건데요. 이것도 그린 이가 아직 3학년임을 고려한다면 훗날 대단한 화가가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쉽게도 은상에 그치고 말았지만 다음 대회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15. Happy Ending.
아이는 그 후로 여러 그림 대회에 나가게 되지만 어떤 상도 타지 못했다. 게다가 훗날 대학을 지원할 때, 초등학교 시절에 받은 은상과 동상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이는 3류 대학에 들어갔다.
대한민국 입시교육의 현실이지요. 흙-
두렵네요.-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