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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충(蟲)

2010.06.27 02:4106.27



#Prologue

실수.

인류의 첫 고향 지구가 있던 태양계는, 태양이 파괴되면서 완전한 파멸이 되었고  그 후 첫번째로 찾은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은 A1(제로 행성이라고도 불렸다). A1행성은 지구와 비슷한 온도, 물의 존재 등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었지만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다. 첫 고향에 비해 행성 크기도 작고 온도도 낮고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행성이지만 인간이 두번째로 발을 붙인 행성은 A2.

보호 구조물의 안에서만 사람이 생활 할 수 있었지만, 그곳엔 거대한 도시가 생겼다. 광산에 마을이 생기듯, A2행성에 사람이 살 수 있는 이유는 연료로 사용되는 거대한 고체 수소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각층이 두꺼웠기에 거대한 무게와 그에 맞는 압력이 고체 수소층을 만들었고 그 수소들은 연료로 사용되었다. 그게 어떻게 해서 상업적으로 활발할 수 있었냐하면, 제로 행성에선 물이 부족했다. 2억의 인구가 소비할 '물'은 겨우 가질 수 있었지만, 수소로 분해해 연료로 사용할 '물'은 거의 없었다. 지구가 파괴되기 전까지 제일 발전했던 연료는 수소였다. 확실히 수소는 구하기 쉽고 친환경적이었다.

제로에서 마음껏 얻지 못하는, '수소'를 마음껏 얻을 수 있는 곳이 바로 A2행성이다. A2가 발견되면서 인류는 연료를 얻게 되었고 빠르게 살 수 있는 곳들을 늘려나갔다. 그러면서 생겨난 용어가 '외곽'. 아직 태양계가 있었던 우리 은하의 중심부에 제로가 있었기에 은하의 나선축에 각각 이름을 붙였다. 제로와 A2행성이 있는 곳을 A외곽. 그로부터 인류가 살 수 있는 혹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에 외곽과 번호를 붙였다.

최근 발견된 행성은 E외곽의 다섯번째 행성. 'E5' 그곳은 인류의 첫 고향, 지구와 너무 닮아있었다. 생명체들은 산소 호흡을 했고 지구의 파충류과와 비슷한 동물이 발견 되기도 했다. E5가 발견될 당시 각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직 출입이 불가한) E5에 달려들었다. 골드러쉬처럼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얻어보고자 기업들은 무섭게 달려들었다. 정부에 출입을 허가해 달라고 엄청난 로비도 하였지만, 그런 기업들을 뿌리치고 우주 연합 정부는 그곳을 보호행성으로 정하고 특수 요원 두명만 배치하였다. 지구에게서 버림을 받은 인간이 가진 마지막 죄책감이자, 자연에게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해답'을 가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제부로 제로행성에 식물을 키우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특정 구역에서만 길려오던 지구의 씨앗들을 드디어 제로행성 내 어디든 자유롭게 키워지는 법안이다. 그로인해 많은 자료가 필요했고 생명의 보루인 E5행성으로 A2출신의 정부 요원이 발령났다. 알았을까? 그 발령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1화 룡(龍)

차락, 착.

“거참. 오늘은 쫙쫙 붙는구마이!”
“허, 자네 났네. 그려…….”
“푸하하, 어째서 자네가 내 판 점수를 계산하고 있능가?”

파란색 난초부터 붉은 장미, 검은 덤불을 헤치는 멧돼지, 검은 동산 위를 거니는 새들. 그 오색찬란한 그림들을 물결형의 매끈하고 잡기 편한 붉은 판에 팍! 박고는 한손 가득 쥐어 잡으면, 그 위세 어느 천하 대장군이 무릎 꿇지 아니하고 날고 기는 짐승들이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느냐. 물론, 이기고 있을 때 이야기지만…….

“고! 하하, 쓰리고!”
“으흠!”
“자네, 내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차락, 착.

“기억하고 있네. 근데 자네, 이걸 어쩌나? 내가 났네.”
“뭐, 뭐시여? 뭐가 났다 그러능가! 어디, 그… 그림이 11장이고 피가 5장…….”
“스톱! 허허, 내기는 기억하고 있겠지?”

어느 푸른 숲, 만물이 순수하게 제 모습을 가지고 있고 당연한 자연의 순리에 질서가 유지되는 이 숲. 그 숲 정 가운데에는 커다란 산이 하나 있는데, ‘개만봉(開萬峰)’이라 하여 만물이 열리는 봉우리라는 의미를 가진 이 산엔 두 명의 선인이 산다. 백과 천. 각각 그 숲의 순리를 책임지고 있다. 숲의 순리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금 사는 행성 E5의 대표를 맡고 있다.

“A2행성인은 그 정신머리가 맘에 안든단말이여!”
“그래서 내기한 것 아니겠어?”
“으으, 자네 조금만 도와주지 않을랑가?”

천은 백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조근조근 타이르기 시작했다. A2행성사람이라고 꼭 불같은 것도 아니며, 생각해보면 자네도 불같지 않은가 어이쿠 잘못 말했네 그려, A2행성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올 것도 아니며 단순히 이곳 생물을 탐구할 박사 한명이 올 것이니 걱정 말라고. 백도 천천히 듣더니 알았다며 그래도 곤란한 일이 생기면 도와 달라하였다.

“그려, 당연히 내가 도와주지. 늙은 자네를 위해서! 어이쿠, 잘못 말했네 그려. 하여튼, 곤란한 일은 안 생길 터니 걱정 말게나.”

A2행성 사람이 온건 그 내기가 있은 지 3일이 지나고서였다. 이름은 요한. 파란색 긴 로브에 황금색 허리끈을 차서인지 사제 같은 행색이었고 피부는 깨끗하고 흰 편에다 눈은 바다같이 파랬고 키도 크고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이 '팥으로 메주를 쓴다' 해도 믿을 만큼 정직해보였다. 그는 A2행성의 환경을 담당하는 곳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하였고 백과 천만큼 자연에 대해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

개만봉에서 아니, E5행성에서 단 하나 이질적인 것이 있다면 타 행성사람을 접대하는 바로 이 흰색 건물이다. 4층에 300평은 될법한 공간을 가진 원기둥모양의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옥상엔 스페이스쉽(Spaceship)을 정박하는 곳이 있었다. 뒤쪽엔 하천이 있어 식수로 사용하고 접대 음식은 자연에서 얻었다.

“1층은 홀이고 2층과 3층은 객실이고 4층도 1층과 같은 홀이우다. 물은 펌프식으로 1층 홀에서 퍼다 사용하셔야 할 것이오.”
“아, 꽤나 오래된 건물이군요.”
“뭐, 우리가 짓고 싶어서 지은 게 아니니께, 청소를 자주 안하우다. 이만, 이 늙은이는 물러가겠소.”
“네, 들어가세요. 일은 내일부터 하겠습니다.”

백이 가려다가 고개만 돌려 요한에게 물었다.

“얼마나 있다 가실꺼우?”
“아마 나흘정도 있다가 갈 겁니다.”

백은 씨익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나흘이면 사고도 안날 것이고 2년 전에 왔던 B1행성 사람들을 천이 한 달 동안 접대한 것에 비해 비교되게 적은 기간이었다. 거기에 흔히 냄비성격으로 불리는 A2행성사람치곤 확실히 조용한 성격이었다. 백은 기분 좋게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정상에 있는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요한은 2층 계단 바로 옆 201호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카메라와 홀로그램 팔찌, 식물의 표본을 채집할 급속 냉각제와 냉각병. 전형적인 환경 전문가의 짐이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E5에도 통신위성은 설치되어 있기에 그는 매끄럽게 통화를 시작했다.

"도착했습니다."

수화기 저편에서 대답한다. 제대로 들리지는 않지만 많이 격양된 목소리였다. 요한이 다시 입을 연다.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이곳에 그 해답이 있을 겁니다. 성지(聖地)지 않습니까!"

요한은 몇 마디 더 쏟아내더니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를 건 곳은 제로행성, 우주 연합 정부이다. 이번에 통과시킨 법안 때문에 확실히 골치를 앓고 있다. 식물 아니, 생명체가 하나 없는 제로 행성은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데 모든 것이 있을 뿐. 인간이 혼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행성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구에서 우리 인간이 버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생명체를 만날 수 없었기에 남은 인류는 곧 고독의 늪에 빠져버렸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만이 겨우 몇 그루의 나무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생명은 오직 '노아의 방주' 계획에의해 냉동 보관된 식물들의 씨앗들뿐이고 아주 조심스럽고 비밀스럽게 다뤄졌다. 계획의 특성상 식물 당 2개의 씨앗만 보관해 뒀기 때문에 급하게 태양계에서 탈출했던 인류에겐 그것이 인간이 아닌 생명의 전부였다.

이제야 그 씨앗들은 생존가능식물과 생존불가능식물로 구별되어 제로행성의 수도, 인류의 수도, '화(花)'. 그 안에 거대 보호구역안에 심어질것이다. 공원이란 이름하에 나무 한 그루 없이 개발되어 오다가 드디어 공원의 꽃, 식물을 심게 되었다. 이 일은 확실히 연합정부의 ‘명성’을 드높여주지만 자칫 일이 잘못된다면 충분히 연합정부의 지지도는 낮아 질것이다.

요한은 침대에 걸쳐 앉아 창문 너머를 바라보았다. 바로 저곳이 생명이 존재하는 곳, 낙원이자 고향. 식물 생명 공학을 담당하는 그에게 있어 이곳은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곳이다. 그는 학구욕을 못 참고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어째서 내일부터 일을 시작하라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개만봉에는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푸름’은 안개 속에서 요한을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똑. 똑. 계십니까라는 소리가 문을 넘어 들려왔다. 요한이 문을 열자 천이 들어왔다. 긴 수염에 이미 세월에게 검음을 바친 그는 부드러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백과 같이 이 E5를 맡는 천이라 합니다.”
“설마?! <식물의 비밀>의 저자 맞으신지요? 아! 존경합니다! A2행성 출신 정부박사요원 요한입니다.”
“하하, 그런 부끄러운 책을 존경하다니. 과찬 일세. 그나저나 무슨 일로 온 건가?”

요한은 공원을 만들려는 정부의 계획에 대해서 천에게 설명했다. 천은 놀란 표정을 짓더니 다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문제가 있는가? 내가 알기론 제로행성은 생명이 없을 뿐 지구랑 거의 유사한 상황이라 식물이 충분히 자랄 탠데?”
“사실은 식물이 문제가 아닙니다.”

요한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는 천에게 '판도라상자'라 설명해주었다. '판도라상자'란 것은 연합정부의 '일급비밀'을 말한다. 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가 하는 게 뭐 그렇지라며 일어섰다.

“내일 조사는 백이 아니라 내가 맡을 것이여. 백이 담당하는 구역에 문제가 생겨서 아마 계속 이 늙은이가 맡을 지도 모르겠구먼.”
“아, 저 혼자서 해도 되는 일인데….”

천이 요한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자네는 ‘세카’의 먹잇감일 뿐이야. 길도 모르지 않나?”
“세카?”

요한이 되물었다. 천은 눈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E5. 이곳을 너희가 부르는 그런 딱딱한 숫자보다는 하나의 제대로된 이름을 가지고 있지. 우리가 지은 이름이지. '충(蟲)'이라 지었네. 이름처럼 이곳은 확실히 벌레의 세상이야. 내가 담당하는 것도 벌레이지. 식물, 벌레가 아닌 동물은 발견된 개체가 2가지뿐이지. 아니, 3가지라해야되나? 어정쩡하군. 포유류의 피부와 골격을 가졌지만, 그 속은 벌레인 놈이 있지. ‘세카’라 불리고 이곳 충에 최상위 포식자야. 생긴 건 4족보행하는 개과지만 사냥을 시작할 땐 다리주변에 벌레다리가 나와 근력을 강화시키고 빠르게 움직이지. 그 밖에도 ‘린린’이라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순한 놈이 있지. 높은 하늘의 벌레를 잡아먹으며 다니지. 굉장히 아름답게 생겨서, 가끔 떼로 다니면 그 모습은 정말… 웅장하지. 하지만 진짜 웅장한 건 마지막 놈이야. 룡(龍)이라고 이곳에 꽤 오랫동안 엉덩이를 붙인 우리도 본적이 손에 꼽을 정도지. 그것도 제대로 본적도 없어. 존재는 확실하지만 늘 안개와 함께 다니지.”

천이 눈을 감고 말을 이었다.

“ 가끔 그놈들이 위로 지나가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어. 비늘들이 차라락, 차라락하면서 소리를 내는데… 정말 오줌 지릴정도로 무섭지. 보이면 돌이라도 던질탠데…….”

천이 창문너머를 바라봤다.

"꼭 오늘 같은 날, 이정도로 짙게 안개 낀 날 안개속을 날아다니지."

  요한은 침을 삼켰다. 두려움과 경외감이 온 몸을 훑고 다녔다. 천은 창문을 닫았다. 이만 자게 그럼 내일 봅세라며 방문을 나갔다. 요한은 천을 따라 방문을 나오며 물었다.

“혹 꽃이 E5에 자랍니까?”
“그럼. 물론 자라나지.”
“바람이 아닌 벌이나 나비 같은 벌레로 번식합니까?”

요한의 질문에 천은 크게 웃었다.

“하하, 자네 보기보다 꽤 똘똘하지 못하구먼. 꽃은 번식을 위해 난다네, 지구에서도 꼭 꽃이 벌레의 도움을 받았던 건 아니지. 하지만, 여기는 충. 당연히 대다수의 꽃들이 번식을 위해 벌레의 도움을 받는다네.”

천의 말에 요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천은 그런 요한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피식 웃었다. 요한이 멋쩍게 천을 향해 웃었다.

-쿠쾅!!

거대한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이 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충격음이었다. 천이 주머니에서 흰색의 두꺼운 팔찌를 꺼내 들었다. 바로 손목에 끼우고는 백! 이라고 외쳤다. 이네 팔찌는 부르르 떨더니 파란색 입체 영상을 뿜어냈다. 그 영상은 백의 얼굴이었다. 백은 거의 울상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드디어 시작했당께!”
“으으, 망할 놈의 세카들!! 어째서 여기까지 넘본단 말인가! 백! ‘쇄’들을 풀어!”
“‘쇄’라니! 그 여파는 어쩔 것이여! 주변의 벌레가 달아날 것이여!”

천이 답하기도 전에 영상은 사라져버렸다. 어리둥절한 요한에게 천은 따라오게나!라고 크게 외치고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평생을 산에서 보낸 천은 빨랐다. 나름 요원 기초 훈련을 받은 요한도 그 백발노인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겨우겨우 쫓아갈 수 있었다.

-끼이이익

한참 산길을 달리다보니 거대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라 멈춰선 요한에게 천이 외쳤다.

“시간이 없어! 이제 곧 시작한단 말이다!”
“대체 무엇입니까!”
“‘쇄’들의 노래!”

-삐이이

갑자기 고막을 강하게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면은 흔들거렸고 나무들은 몸서리쳤다. 주변에 벌레들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천이 못 이기고 손으로 귀를 막고 몸을 웅크렸다.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몇 초가 더 지나자 소리가 멈췄다.
그 몇 초 사이에 주변의 안개가 더 짙어졌다. 요한의 자리에서 겨우 천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짙어졌다. 천이 신음을 내며 옆의 나무를 붙잡고 일어날 쯤에 또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차라락, 차라락.

그리고는 머리위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날아가는 듯 했지만 바람은 일어나지 않았고 마치 부유해가듯이 미끄럽게 반짝이며 흘러갔다. 천이 요한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저게 바로 룡이여.”

5분쯤 더 걷자 천과 백이 사는 보금자리가 나타났다. 백이 천을 보자마자 마구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이여! 보통 ‘파’까지 끄집어내야 조용해지잖어? 그런데 갑자기 조용해져 부렀당께!”
“오다가 룡을 봤어! 분명 관계가 있을 것이여.”
“룡? 왠지 안개가 낀 것이 룡이 나올 것만 같더라만 결국 나와 버렸구먼. 어서 따라가야 되는 것 아니여?”

그들을 말을 듣던 요한이 끼어들어서 물었다.

“파는 무엇이고 쇄는 또 무엇입니까?”
“‘파’는 벌레고…….”
“‘쇄’도 벌레여.”

요한이 그들을 어이없다는 듯 바라봤다. 그들은 조금 멋쩍게 머리를 긁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파’는 수컷인 벌레고 ‘쇄’는 암컷인 벌레다. ‘파’는 번식기가 되면 소리를 내는데 같은 ‘파’끼리 있으면 서로 큰소리를 내려고 경쟁한다. 보통 ‘파’보다 ‘쇄’의 개체가 많아 소리는 듣기 힘들다고 한다. E5내 무기를 최소화하기위해 고의적으로 ‘파’를 모아두었다고 했다. 보통 ‘파’의 무리와 ‘쇄’의 무리를 곁에 두지만 필요에 따라서 떨어트려놓으면 바로 큰 소리가 난다.

“아, 맞다맞다! 룡! 요한, 자네는 무기 보급을 연합 정부에 쫌 부탁 하지랑가? 우린 지금 바로 룡을 쫓아가야허여! 그럼 부탁 쫌 허이!”

  그들은 요한의 의사와 관계없이 뛰기 시작했다.

2화 파공음(破空音)

요한은 주위를 살폈다. 아직까지 안개는 짙게 끼어있었다. 그들은 보금자리는 생각대로 조촐했다. 많은 컨테이너가 덩굴식물에게 포위당해있고 그들이 자는 침실도 나무들로 얼기설기 만들었을 뿐, 동물들의 잠자리와 비슷했다.

그러나 요한은 부러웠다. 그들의 곁엔 흙이 있었으며 자연이 숨 쉬고 있었다. 요한은 심호흡하더니 주머니에서 수화기를 꺼냈다. 다행이 개만봉 정상이라 그런지 전파는 닿았다. 수화음이 세 번 울리기전에 통화가 연결됐다. 연합정부는 무성의한 말투로 이틀의 시간이 지나야 보급이 도착한다하였다. 시간을 줄일 수가 없었다. 네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야.”

너무 정신이 없어서 상황은 물어보지 않고 벌레만 물어봤으니, 요한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그물 침대에 걸터앉았다. 연합 정부는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 지구에서 탈출 후 우주선에서 인공적으로 만든 식량을 배분하는 일이 전부였던 그들은 행성에 도착 후 많은 것을 통제했으며 정부라는 틀을 쓰고 시민들의 위에 섰다. 식량 때문에, 인간이 존재할 때 가장 필요한 음식. 그들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했다.

그렇기에 그들이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바로 식물이었다. 식물은 식량이 될 수 있었다. 즉, 그들이 시민을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구부양력이 가장 높은 작물, 밀과 쌀. 그것들은 노아의 방주에 한포대 가까이 저장되어 있다. 그러나 연합 정부는 이렇게 말한다.

-안타깝게도 밀과 쌀의 씨앗은 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유기화학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음식 밖에 없습니다.

정부요원인 한 식물학자를 알았었다. 그는 연합정부가 틀렸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모두에게 알리려 노력했다. 하지만 연합정부는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한 행성에 버려버렸다. 그 다음을 이은 것이 나였다. 정부는 나에게 많은 요구와 많은 시도를 부탁하면서 또, 많은 감시를 붙였다.

“요한! 무기 보급 신청은 했는가?”

천이었다. 백은 보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백 어르신은 또 어디 가셨구요?”
“그 늙은이. 룡을 쫓으러 갔어. 아, 생각해보니 너에게 상황설명을 안 해줬구나.”

천은 목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

“세카는 충의 거의 모든 영역을 자신들의 영역으로 삼고 있어. 그들의 천적은 린린과 예상이지만 룡이지. 초식성인 린린은 자신들의 영역을 들어오는 세카들에게만 공격을 가해. 그러니 충은 세카와 린린의 영역뿐이지. 사실상 룡은 영역을 갖고 있지도 않아. 아니, 충의 모든 안개 낀 곳이 룡의 영역인지도 모르지. 그 세카들이 또 영역으로 삼으려는 곳이 바로 이 개만봉이야. 이곳은 그 누구의 영역도 아니었지. 세카들도 이곳은 오지않았어. 무슨 이유인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그렇기에 우리가 이곳에 보금자리를 핀 것인데… 이제 그놈들이 이곳까지 넘보고 있어. 아까도 세카가 몰려오기에 ‘파’의 도움을 받은 것이야.”
“그럼 이곳은 위험합니까?”
“그래. 위험하지. 파가 있더라도 곧 이곳은 세카의 영역이 될 것이야. 그놈들 매우 끈질긴 놈들이니까.”

천은 덩굴식물을 뜯어내고 상자를 끄집어냈다. 상자엔 두 자루의 라이플이 있었다. 천은 하나를 요한에게 던졌다. 그리고 하나를 꺼내 어께에 둘러맸다.

“살려면 어쩔 수 없어. 지구가 우리의 세상이었듯. 이곳은 세카의 세상이야.”
“이게 총의 전부라면 백 어르신은 어쩔 겁니까?”
“그 늙은이…….”

-끼익.

천이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카 이놈들!! 벌써 다시 오다니! 이쪽으로!”

천은 가파른 내리막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내려갈 수 있을까 걱정하던 요한도 다시 들려오는 파공음에 천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공기를 찢는 파공음은 여러 방향에서 들려왔고 그 의미는 한두 마리가 아니란 소리였다. 천이 허공을 향해 한발 쏘자 파공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카들은 확실히 총소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카들은 총을 겁내지 않았다.

옆에서 튀어나온 세카에 의해 천이 바닥을 굴렀다. 요한은 겨우 나무를 잡고 멈춰 섰다. 세카는 천에게 들었던 것 같이 확실히 개같이 생겼다. 4개의 다리에 섬뜩한 벌레다리는 다리 근육하나하나 지탱하고 있었다. 얼굴은 늑대형이었지만 귀 대신 나방의 더듬이 같은 수염더듬이가 나있었다. 꼬리는 없었다. 전체적인 색은 회색에 가까운 것이 언뜻 보면 개과였다.

-끼이익!

관찰도 잠시, 요한은 총을 어깨에 둘러메고 천에게서 세카를 떼어냈다. 세카에서 탈출한 천은 바로 세카에게 총알을 박고는 그 순간을 멍하니 바라보는 요한을 잡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이럴 때를 대비한 벙커가 나와! 그곳에 가기 위해선 다리를 지나지! 그곳을 지나자마자 바로 다리를 끊을 거야! 알겠어?!”
“네!”
“곧 도착이야! 힘내!”

세카의 울음을 한 번 더 들었을 무렵, 다리에 도착했다. 거대한 절경이었다. 절벽과 절벽이 마주보고 있었고 서로 그 위용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거대한 위용에 하나의 아슬아슬한 다리가 놓여있었다. 굵은 끈과 나무로 그래도 꽤나 단단하게 묶어놓은 듯 보였다. 다리의 아래엔 큰 강이 보였고 저 멀리 폭포까지 보였다.

천이 먼저 다리 위를 달려갔다. 흔들거렸지만 위험해보이지는 않았다. 천이 짙어진 안개 속으로 사라질 무렵 요한도 다리 위로 올라섰다. 순간 다리의 흔들거림에 손에 힘이 들어갔지만 이내 중심을 잡고 걸을 수 있었다. 짙은 안개의 너머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 뛰어!”

-끼익!

세카는 어느새 다리 앞까지 도착했다. 뒤돌아 세카가 다리에 올라오나 살폈지만 놈들은 겁을 먹고 있었다. 요한의 걸음이 빨라졌다. 세카의 무리 뒤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다른 회색 놈들과는 다르게 덩치도 더 크고 붉은 세카가 나왔다. 입을 크게 벌려 파공음을 내면서 다리 위로 발을 올렸다. 뒤이어 두 번째 발까지 나무판 위로 올렸다. 그리고 요한을 한번 흘겨보더니 요한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흔들거리는 다리에 주춤됐지만 꽤나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다리가 갑자기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카들이 붉은 세카를 따라 다리로 올라섰다. 안개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적은 수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요한은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처럼 혼자 가는 상황도 아니고 세카들 때문에 다리가 격하게 요동쳤기에 요한은 몇 걸음마다 멈춰 섰다. 그리고 세 번째로 멈춰 섰을 땐 붉은 세카가 요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자신의 얼굴을 향해 달려드는 세카를 보며 요한은 몸이 굳어버렸다.

그때였다. 형형색색의 무언가가 다리 밑에서 날아오더니 붉은 세카를 밀어 날려버렸다. 휘릭휘릭하는 소리를 내면서 공중에서 요한을 보고 있었다. 공작 같았다. 광이 나는 보라색 깃털이 가슴에 있고 날개는 눈동자 같은 무늬가 있었다. 크기는 날개까지 3m쯤 되어보였다. 얼굴은 검은 색이었지만 이마 부분에 빨갛게 점이 보였다. 충의 세상에서 하늘을 나는 포유류는 단 하나. 린린이었다. 린린에게 정신 팔려 있을 때, 안개 너머에서 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긴 린린의 영역이야! 린린이 막아줄 때 빨리 뛰어와!”

그때서야 굳었던 요한의 몸이 풀렸다. 그리고 한 손으로 줄을 잡고 일어섰다. 끼익하고 파공음이 더 들려왔다. 세카의 무리가 도착한 것이다. 린린은 부리를 열어 여자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었다. 꺄악하는 소리. 선두의 세카가 멈추자 뒤이어 세카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멈췄다. 내가 발걸음을 때자 린린이 다리 아래로 떨어지듯 날아가 버렸다. 세카들이 주위를 살피더니 요한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서로들 먹잇감 앞에서 경쟁하듯, 공기를 찢는 듯한 울음을 내면서 요한을 향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요한이 뒤돌아 봤을 때,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뒤를 돌아 봤을 때, 엄청난 장면이 연출되었다.

린린의 무리가 아래서 솟아오르는 창살 함정처럼 솟구쳐 날아올랐다. 세카들은 이런 공중에서 린린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하나둘 다리 밖으로, 계곡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린린들의 지능은 높아 보였다. 한꺼번에 솟구쳐 올라오지 않고 일정한 수로 모아서 공격했다. 그런 공격은 세카들에게 더욱 혼란을 안겼다. 끈이지 않는 공격에 세카들은 벌레다리를 줄에 고정 시켰다. 돌기가 난 벌레다리는 한번 줄에서 떼어질 때마다 줄들을 갉아먹듯 뜯어 냈다. 요한이 알아차렸다. 이대로라면 곧 다리는 끊어질 것이다. 요한은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리는 끊어져 버렸다. 한쪽의 줄이 끊어졌을 때 요한은 다른 줄에 간신히 매달려있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줄까지 끊어졌다. 세카들의 파공음, 린린의 비명소리. 천의 목소리까지 한 대 모여 소용돌이처럼 휘몰아 쳤다. 그리고 잡고 있던 줄과 같이 요한은 절벽을 향해 돌진했다.


3화 꽃과 나비의 동산

노래를 불러줘. 노래? 응, 노래.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파도가 들려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엄마. 응? 지구엔 뭐가 남아있어? 지구엔 꽃이 남아있지. 꽃? 응, 식물이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것. 얼마나 아름다워? 인간이 만들어 내는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워. 미술작품보다? 그래, 음악보다. 엄마는 어떤 꽃이 제일 좋아? 엄마는 안개꽃이 가장 좋아. 어떻게 생겼는데? 하얗고 수수하게. 히히, 엄마처럼?

“하, 여기가 어디지?”

식은땀이 척추를 타고 흘러 내렸다. 엄마에 대한 단 하나의 기억이자, 꿈이었다. 나중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정원사였고 제로행성에서 가장 먼저 자살한 사람이라는 것. 그녀는 식물 없이 살 수 없었다. 아들대신 식물을 선택했고 그 결과는 죽음을 가져왔다.

요한은 주위를 살폈다. 날이 저물었는지 주변은 깜깜했다. 주변은 고요했다. 똑. 똑. 똑.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주변에 찬란하게 흩뿌려졌다. 분명 줄을 잡고 절벽을 향할 때까지만 해도 정신은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색찬란한 린린과 공포의 제왕인 세카. 그 둘의 거대한 전투가 다시 생각났다. 그리고 이내 천이 생각났다. 많이 걱정할 탠데…….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께가 아파왔다. 왼쪽 어께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붕대가 묶여있었다. 그리고 확! 하고 불꽃이 타올랐다. 그리고 보였다. 누군가가 불꽃의 너머에서 날 바라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군.”

그는 사람이란 단어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는 천도 아니고 백도 아니었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인 머리카락, 수염도 마찬 가지었다. 옷가지는 두꺼운 천처럼 보였지만 다 헤져있었다. 누렇게 때가 띈 걸 보아 한동안 제대로 빨지도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갑자기 내 집에 날아오더니 잠까지 푹 자고. 자네, 뻔뻔하다 생각은 안 해봤는가?”

주위를 살피자 요한이 있는 곳은 동굴이었다. 불의 주변으로 각종 생활도구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그가 지내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절벽에 이런 동굴이 있었다니. 요한이 왼쪽 어께를 만지며 그에게 물었다.

“어르신께서 제 어께를 치료해주신 것입니까?”
“생각보다 피 냄새를 좋아하는 벌레가 많아서 묶어서 피를 못 흐르게 했을 뿐이야.”

그는 다른 곳을 보며 말하고 있었다.

“어쩌다 이곳으로 오게 된 겁니까?”
“내가 자네에게 어떻게 내 집으로 쳐들어왔는지 물어도 시원찮을 판에.”

요한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요한의 시선을 피했다. 한참을 그를 바라보던 요한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거의 몸서리치듯 더듬으며 말했다.

“마,만이십니까?”
“드디어 알아보는 군.”

그의 이름은 만. 타 행성으로 퇴출된 비운의 식물학자요원. 요한의 선임이자, 반(反)정부 세력의 주축이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쌀과 밀의 번식이 제로행성에서 가능한지 비밀리에 연구하다가 결국 발각되어 퇴출된 것이다. 그가, 세상의 새로운 축을 형성한 그가 이곳에 있다니. 요한은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요한. 아직도 정부의 꼭두각시 노릇 중인가?”
“꼭두각시라니요!”

만은 그럴 테지라며 혼잣말하고는 일어나 옷을 털었다. 그리고 요한을 응시했다. 하나하나 전부 꽤 뚫어보듯 그렇게 노려보다시피 바라보다가 요한에게 물었다.

“이 곳에 온 목적이 나비인가? 맞지?”
“어, 어떻게?!”
“자네는 단순해. 왠지 뻔하지. 그리고 정부도 그것을 원하겠지. 눈속임. 자네는 모르겠지만, 난 이 순간을 기다려왔네. 그리고 내가 맞았다고 생각하네.”

요한은 침을 삼켰다. 목은 타들어갔고 등 뒤론 팔 할의 먼지를 가진 땀이 등줄기를 따라 떨어졌다.

“정부가 식물을 풀 것을 말입니까?”
“그래. 그들은 시민들에게 눈속임이 필요할 시기가 되었어. 더 이상 유기화학을 통한 음식물의 공급만으로는 시민을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지. 그래, 그들은 올바른 판단을 내린 것이야. 식량인 식물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그들에게 있어 가장 좋은 것은 꽃이지. 꽃은 아름답지, 그 아름다움은 곧 식물의 존재의미가 되는 것이야. 아주 큰 존재의미가 되는 것이지. 그에 더불어 꽃을 수분시키고 더 멋진 환경을 만들려면?”
“나비죠.”
“그래. 바로 나비야. 금상첨화. 비단 위에 꽃을 더하다. 화상첨접(花上添蝶). 그들은 꽃 위에 나비를 더하려하고 있어. 하하, 푸하하!”

만은 말하다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웃기는 상황이야라며 어느새 주저앉아 땅을 치며 웃기 시작했다. 큼. 큼. 한참 웃던 그는 헛기침으로 목을 다잡고, 요한에게 더 자라라고 말했다. 불이 꺼질 무렵, 그의 입가엔 짙은 미소가 걸터앉아 있었다.

날이 밝으며 햇살이 요한의 얼굴에서 춤을 췄다. 간지러웠던지 요한은 금세 일어났다. 동굴은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붙어있었다. 요한이야 공중곡예하며 들어왔다지만, 그냥 들어오기엔 장비가 있더라도 힘들 정도로 가파른 곳에 동굴은 위치해있었다. 동굴의 끝에선 두 절벽이 만들어낸 거대하고 웅장한 협곡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녹색의 나무들은 흐드러지듯 강을 향해 잎을 늘어트렸다. 간간히 오색의 날아다니는 공작새, 린린도 보였다. 이곳은 지구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절경이었다.

뒤로 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밥을 먹고 너 친구들을 보러가자. 그들의 도움을 받아야 성공할 것이야.”
“백과 천 어르신요? 도대체 무엇을 하실 생각인겁니까?”
“꽃이 피는 동산을 가진 세상을 만들겠어.”

요한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의 입엔 요한의 어머니가 가졌던, 지구의 안개꽃이 가졌던, 충의 린린이 가진 온화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식단은 색달랐다. 혀끝이 간질이던 과일에 입 안 가득 텁텁했던 스프까지. 그동안 먹어오던 인공식품과는 맛의 차원이 달랐다. 식사하며 만이 물었다. 천과 백은 어떤 사람인지 요즘 정부의 근황이라든지 딱히 말 못할 이유도 없었고 그도 예의상, 기본적인 상식상, 물은 듯 했다.

만을 처음 만난 것은 요원 기초훈련이 끝나고서 일주일간의 직무수업에서 스승과 제자사이로써 만났다. 그때의 만은 연합 정부를 무조건적으로 동의하던 나에게 그 어떤 설득도 하지 않았다. 그는 지식만을 가르쳐주었다. 마치 책같이, 지혜가 아닌 지식만을 가르쳤다. 그가 일주일을 채 못 채우고 떠났을 때, 요한은 그에게 일주일 이상의 지식을 전수 받았다. 허나, 그에게 받은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덴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바이어는 잘 지내냐?”

바이어는 연합 정부의 수장을 맡고 있었다. 대머리에 키가 작고 배가 불룩한 것이 꼭 베트맨 영화에 나오는 ‘펭귄’같았다. 생각도 펭귄과 비슷해서 악랄한 짓은 골라서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꽃과 나비도 그의 머리에서 나온 계략이었다.

“아직도 식물공학에 얼굴 비추러오지? 그게 다 자기 얼굴보고 딴 짓 하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야.”
“이젠 전화도 시키십니다.”
“푸하하, 그래. 나 때문에 더 신경이 쓰이겠지.”

만이 신맛 나는 과일을 한입 깨물더니 요한을 보고 물었다.

“정부에 반하는 일을 해볼 생각 없는가?”
“‘꽃이 피는 동산’을 만드는 일을요?”
“작전명일 뿐이야. 네가 오지 않았었더라도 이 일은 진행되었을 일이야. 다만 네가 있으면 더욱 좋아지겠지.”

요한은 이마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목적이 뭡니까?”

요한의 목소리는 서늘했다. 허나 만은 눈 하나 꿈쩍 않고 답했다. 그건 그가 가진 진실이었다.

“연합 정부는 썩었어. 그들이 가진 쌀과 밀은 제로행성에서 충분히 제배될 수 있어. 허나 없는 척 그리고 그것을 의심하지도 못하게 떡하니 수도인 ‘화(花)’의 정 가운데에 꽃동산을 만들겠다니!”

만의 목엔 핏줄이 튀어나왔다.

“난 그들의 꽃밭에 밀을 심을 것이다. 밀 씨앗 하나를 내 볼펜 속에 숨겨뒀었지. 그리고 그것을 이곳에 와서 심었어. 하지만 흙이 다른지 공기가 다른지 얼마 크지 못하고 썩어가더라고 망연자실 할 때쯤 룡이 나타났어.”
“룡이라구요?”
“그래. 룡. 룡은 이곳의 신이야. 모든 것을 주관하지. 침묵으로 다스리는 것이야. 룡이 나타나면 주위에 짙은 안개가 끼지. 이유가 뭔지 아나?

요한은 고개를 흔들었다.

“식물들이 룡에게 수분을 바치는 것이야. 식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수분이지. 아, 이야기가 샜군. 룡이 단순히 지나갔을 뿐인데 밀이 싱그럽게 자라기 시작했어. 그리고 결실을 맺었지. 그 이후로 밀은 순조롭게 재배되었지. 난 한 포대정도의 밀 씨앗을 가지고 있어.”
“당신은 그것을 정원에 풀길 원하는 군요.”

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요한은 수긍할 수 없었다. 인공식품이라고 나쁠 것이 있는가? 오히려 불안정한 작물보다 더 시간이 단축되고 영양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은가? 만의 계획은 오히려 세상에 큰 혼란을 가져올 것 같았다.

“저는 아직 수긍할 수 없습니다.”
“역시 자네는 아직도 변한 것이 없어. 이제 자네의 도움을 필요 없다네. 그들은 내가 만나겠어. 동굴의 끝으로 나가면 자네가 처음 도착한 건물이 나올 걸세.”

만은 물건 몇 개를 천 가방에 쑤셔 넣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출발해버렸다. 그의 뒷모습을 보던 요한은 왠지 모를 갈등을 느꼈다. 입안에서 신맛이 휘몰아쳤다.

요한은 주변의 과일을 조금 챙겨 동굴의 끝으로 걷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이 그의 다리를 무겁게 했다. 이런 저런 감정이 단단히 얽혔을 때 동굴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동굴은 만의 말대로 손님맞이용 건물의 뒤뜰과 연결되어있었다. 아마 개만봉을 가로지르는 동굴일 것이다.

요한은 건물의 2층, 짐을 놓았던 그곳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가방에 짐을 챙겨서 나왔다. 그가 할 일은 단 하나. 나비를 잡는 것이었다. 최대한 많이. 그것이 연합 정부가, 바이어가, 그에게 내린 지시었다.

만이 가진 감정은 그저 반발 감정일 뿐이다. 연합 정부는 그들에게 봉사를 약속했고 그에 합당한 룰을 원했을 뿐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으로 선과 악을 구분 지으려 노력할 뿐이다.

백과 천이 올린 보고서 중 B 구역에 ‘큰 날개 나비’라 명명된 벌레가 있다. 요한은 가방에서 홀로그램 팔찌를 꺼내 찼다. 그리고 맵이라 말하자 파란 불빛이 솟아오르며 주변지형을 보여줬다. 개만봉 정상의 보금자리부터 건물까지가 A구역. 그리고 건물을 넘어서 거대한 숲이 B 구역이었다. 요한은 손목을 흔들어 홀로그램을 껐다. 그리고 숲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비가 오려는지 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숲은 지구의 밀림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나무마다 덩굴식물들이 휘감아 올라갔고 이끼는 나무든 돌이든 가리지 않고 자생하고 있었다. 요한은 흥분했다. 확실히 이곳은 낙원이었다. 정부의 목적이 어떻든 이곳은 확실히 보호되어야할 행성이었다. 너무 완벽했다. 생명이 자유롭게 자라고 꽃을 피우고 시들어갔다. 완벽한 자연의 순리. 요한의 팔엔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가 왜 자신이 아닌 식물을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숲은 홀로그램에서도 봤듯이 엄청 넓었다. 거기에다 이 행성의 이름은 충. 엄청나게 다양한 벌레가 주변을 날아다녔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놈부터 팔뚝만한 크기의 벌레까지. 색깔도 다양했다. 그러나 나비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요한은 근처의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그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지금 그들을 막아야할까? 아니면 나비를 잡아야할까. 어째서 작물을 원하는 건지, 결국 수요량을 채우지 못한다면 또 인공음식을 원하게 될 탠데, 그리고 지금을 그리워할 탠데……. 요한은 손으로 얼굴의 열을 식혔다. 그리고 마음을 정했다. 그들을 막자고 다짐하며 얼굴에서, 눈을 가리던, 손을 떼어냈다. 그런 다짐을 무색하게, 한 나비가 그의 눈앞에 아른아른 거리며 날고 있었다. 요한이 빠르게 가방에서 병을 꺼냈다. 그리고 천천히 뚜껑을 열고 나비의 뒤를 밟았다.

나비는 천천히 공기를 밀어내며 날고 있었다. 날개는 눈 모양이었고 더듬이에 영락없는 호랑나비였다. 날개가루가 공기를 타고 코를 간질였다. 시간이 조금씩 느리게 가고 있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천천히, 우아하게 느려지고 있었다. 나비는 천천히 하강했다. 꽃을 발견했는지 날갯짓을 줄이며 아래로 내려와 꽃 위에 앉았다. 요한이 재빠르게 유리병으로 나비를 낚아챘다. 그러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굴러버렸다. 욕를 내뱉으며 일어났을 때, 그는 그 광경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광활한 안개꽃초원이 있었다. 밀림 속에 그런 초원은 엄청 이질적이었지만… 정말로 아름다웠다. 코 속 가득 꽃내음이 들어찼을 땐, 요한은 울어버렸다. 잊고 있었다. 어머니가, 그녀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 것은 인공이 아니라 생명이었다는 것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 안의 그녀가 울라고 부추기고 있었다. 더 쏟아내라고 그리고 일어나라고 말했다.

요한은 다짐을 고쳤다. 그들을 도와 생명이 자라기를, 그녀의 꽃내음이 퍼지기를.

한참을 울던 요한은 잠이 들어버렸다. 하루 종일 숲을 떠도느라 고생하고 울기까지 했으니 바로 골아 떨어져 버렸다. 요한은 알지 못하겠지만 밤새 많은 벌레들이 그의 주변에서 잠을 잤다.

요한은 가방에서 사과 비슷한 빨갛고 단맛이 나는 과일을 꺼내 깨물었다. 달콤한 과즙이 입 안 가득 퍼졌다. 그리고 천과 백의 보금자리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건물까진 달렸지만 그이후로 산길이라 요한은 나무를 붙잡고 쉬는 일이 많아졌다. 한참 쉬고 있는데, 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스락, 바스락.

-끼익!

“젠장!”

세카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요한은 다시 달렸다. 세카들은 본격적으로 요한을 뛰 쫓기 시작했다. 개가 쫓아오면 달리기가 빨라진다고 요한은 천에게 꾸지람을 듣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산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보금자리가 보였다. 요한은 남아있는 공기를 쥐어짜네 소리쳤다.

“세카가 온다!”

그리고 몇 초 후 강렬한 파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은 두 손으로 양 귀를 막은 채 달려 보금자리 입구에서 넘어지며 구르듯 들어왔다. 그러자 파의 노래가 멈췄다. 대(大)자로 뻗어 숨 쉬는 요한을 백과 천, 만이 위에서 바라보았다. 그리고 셋이 쑥덕이더니 마구 웃기 시작했다. 요한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왜 웃어요! 죽을 뻔 했는데!”
“웃기니까…”
“웃지.

천과 백의 웃음소리 너머로 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맘이 변했나?”
“네. 저도 돕겠습니다.”

만이 작전을 설명했다. 두 시간 후 보급이 도착한다. 그러면 그 보급비행선에 긴급구조를 알리고 그 비행선을 타고 제로행성으로 돌아간다. 도착 후 너와 천, 백은 바이어를 만난다. 너는 나비를 구했으니 나비를 그에게 주고 천과 백은 보고한 후 꽃동산으로 온다. 그 사이엔 나는 반정부세력의 도움을 받아 밀의 씨앗을 꽃동산에 뿌린다.

“정부엔 내가 발명해 두었던 식물성장촉진제가 남아있을 것이야. 그것을 사용한다면 한 시간의 시간만으로도 꽃이 필정도로 자라게 되지. 그것을 뿌리기 전에 밀의 씨앗을 뿌려 둬야해.”
“그렇다면 꽃밭이 아니라 밀밭이 되겠네요!”
“그래! 바로 그거야! 내가 식물성장촉진제를 발명할 때 사용했던 개체가 밀이야. 충분히 효과 있을 것이야!”

만은 어께에 메고 있던 보따리를 요한의 앞에 쿵하고 떨어트렸다. 요한이 열자 그곳엔 가득하게 밀의 씨앗이 들어있었다. 요한은 닭살이 돋았다. 이것은 제 2의 농업혁명일 것이다.

“우리는 잊지말아야한다! 룡의 도움을, 이곳의 흙을!”
“룡의 도움을! 이곳의 흙을!”


4화 꽃 화(花)

“두 시간 후면 비행선이 도착해! 일단 그곳에 밀을 숨기면서 들어갈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천과 백, 만은 회의를 시작했다. 요한은 가방에서 유리병에 갇힌 나비를 꺼냈다. 그 정신에 뚜껑을 닫았다니, 조금 그 자신에게 놀라는 눈치였다. 나비는 날개를 접고 가만히 유리병에 붙어있었다. 벌레를 목적으로 뚜껑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게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가방에서 과일 하나를 꺼내고 손톱으로 조금 뜯어내 병 안으로 넣었다. 나비는 기다란 관 비슷한 주둥이를 과일조각에 끼워 빨기 시작했다. 요한도 과일을 한입 베어 물었다.
우리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는 의문이다. 확실한 것은 그 결과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곧 방아쇠는 당겨질 것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기다린다면 그 총알이 어떤 결과를 나을지 까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게 그 나비인가?”
“네.”
“확실히 아름다워. 어째서 바이어가 나비를 원한 줄 알겠어. 이제 30년이야, 지구에서 우리가 버림받은 기간이. 우리가 서있는 이 조그만 행성이 우리의 지구를 다시 만들 씨앗이 아닌가 싶어. 조건은 갖추어졌다. 너희 인간이 파괴만이 아니라 창조를 할 수 있는 것을 보여라. 라고 신이 말하고 있는지 모르지.”
“꽤나 인자하네요. 신이란 사람.”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이 아닌 신이라서 인자할지도 모르지.”

만은 요한에게 건네받은 과일을 깨물었다. 아삭하고 과즙이 터져 나왔다. 천과 백이 다가왔다. 요한이 가방에서 과일 하나씩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아삭. 아삭. 달콤한 향이 진동했다.

자, 이제 시작이다.

만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할 놈들은 세카야. 건물로 가려면 세카들이 나오는 영역을 통과해서 가야하는데 그러려면 파의 도움을 받거나 총으로 그놈들을 밀어내는 수밖에 없지. 둘 다 그리 좋지 못한 방법이야. 총은 한 자루뿐이고 (요한은 다리에서 떨어질 때 잃어버렸다.) 파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우리가 정상적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그래서 회의를 했고 결과는 돌진!”

요한이 멍하게 만을 바라봤다. 농담이시죠라고 말까지 건넸다. 만은 고개를 흔들었다.

“수가 없어. 오직 달리는 방법뿐이야. 내가 밀을 들쳐 메고 천 요원님은 총을 가지고 뒤에서 보조. 너와 백 요원님은 내 주변에서 달린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밀의 공수야. 이게 성배라 이거지.”

만은 밀 포대를 흔들었다. 백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이래뵈도! 공수도 3단이랑께. 그놈의 세카들 다 때려눕히는 건 시간문제여!”
“개뻥치네.”

천이 맞받아쳤다.

“뭐여! 한번 맞아볼텨? 일로와! 어디가! 일로오랑께! 시방, 요한 저놈 잡아봐!”
“워매, 저거 봐! 혼자 못 잡으니 요한까지 끌어들이는 거. 잡아봐라, 요놈아!”


요한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만이 천막하나를 가져와 밀 포대위에 덧씌워 크로스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요한에게 건냈다.

“다 늙어가는 나보단 네가 잘 뛰겠지. 어벙하게 잃어버렸다간 보급품을 받아다 그 총으로 쏴 버릴 터이니 알아서 해! 자, 이제 출발하자고!”

만과 백이 요한의 곁에 서고 천은 총을 받잡았다. 내리막으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일단은 체력을 비축해 둬야한다. 내리막이라 오히려 뛰는 것이 조절하기 힘들 것이다. 들리지 않았던 풀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세카들일 것이다. 시선이 빨라졌다. 심장도 위험을 느꼈는지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끼이익!

드디어 나타났다. 천이 뛰어오르는 놈에게 한방 쏘자 넷은 달리기 시작했다.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세카들은 소수로 무리지어 조직력 있게 쫓아왔다. 세카들의 파공음이 아닌 우주선의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저 멀리 건물위에 착지하는 하얗고 거대한 군용 우주선이 보였다.

“우주선이다!”

라고 외치자마자 세카의 한 무리가 우리 넷을 덮쳤다. 너무 우주선에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백이 붙은 세카를 밀어내고 욕을 지껄이며 만에게 붙은 녀석도 발로 차서 걷어냈다. 요한은 세카들에게 튕겨나가 내리막 아래로 굴렀다. 그러다 밀 포대를 놓치고 말았다. 밀 포대는 천막이 찢겨질듯 아슬아슬하게 나무에 걸려있었다. 요한은 기다시피 나무를 향해 달렸다. 하지만 세카 한 마리가 뛰어와 요한을 덮쳤다. 다리에 붙어있던 벌레다리들이 마구 난동을 부리면서 요한의 옷에 엉켜 감겼다. 요한은 다리를 가슴까지 끌어당겨 세카를 밀어내면서 옷을 벗었다. 건장한 그의 신체가 들어났다. 옷이랑 실랑이를 벌이는 세카를 발로 걷어차고 밀 포대를 향해 달렸다. 나무에 걸린 밀 포대를 잡는 순간 눈앞에 붉은 세카가 보였다.

-끼익!

다른 세카보다 더 큰 파공음을 내며 요한에게 달려들었다. 요한은 밀 포대를 어께에 둘러메며 달리기 시작했다. 세카가 뛰어올라 요한에게 덮칠 때 쯤.

-탕!

총성이 울리면서 붉은 세카의 머리통이 피를 튀기며 부서져 버렸다. 몸뿐인 붉은 세카는 쓰러져 헐떡이고 있었다. 총성에 뒤를 돌아본 요한이 본 것은 천이었다. 그리고 천의 뒤로 다수의 세카가 달려오고 있었다.

“천! 뛰어요!”
“젠장!”

뒤를 바라본 천이 총을 마구 쏘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천이 위험하다! 요한은 천을 향해 달리다가 만에게 의해 저지당했다.

“그럴 시간 없어! 우주선으로 뛰어!”
“천이!”
“뛰란 말이다!”

만이 강제로 요한을 끌어당겼다. 요한은 크게 천이라 소리쳤다. 천의 곁으로 백이 달려갔다.

“혼자 멋지게 죽을 것이더냐!”
“늙은이 주제에! 요한! 우주선으로가! 여기 충은 우리가 맡으마!”

요한은 이 악물고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만이 요한을 쫓아왔다. 천과 백은? 그들은 자연의 순리를 지켰고 또 자연의 순리에 순응했다. 금세 요한과 만은 건물에 도착했다. 가방도 밀 포대도 지켰다. 만이 요한의 어께를 잡으며 말했다.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말자.”

비행선에서 군인들이 보급물품을 내리고 있었다. 요한이 달려가 자초지종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원 하나는 죽었으며 (만을 요원 하나라고 말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급품이 아니라 구조라고. 그들은 본부와 연락하더니 타라고 했다.

“제로행성으로 가주세요! 제가 연합 정부 수장님과 연락하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요한은 바이어에게 전화를 걸었다.

“요한! 어제는 왜 연락하지 않은 것이야!”
“죄송합니다. 지금 구조요청하고 제로 행성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나비는? 나비는 잡은거야?”

바이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네. 구했습니다.”
“휴. 다행이군. 다행이야. 내가 군에게 연락해서 바로 제로행성으로 올 수 있게 해주지! 역시 요한, 자네는 내가 믿을 만해. 수고했네. 그럼 이따 보게나.”
“네.”

요한이 전화를 끊었다. 바로 군으로 연락이 왔고 아까 그 군인이 찾아와 제로행성으로 바로 간다 말하고 객실로 요한과 만을 안내했다.

“자네가 없었다면 이 비행선을 뺏을 작정이었는데……. 일이 편해졌군.”
“에? 그건 너무 무모하지 않습니까?”
“그 방법밖에 없었어.”

E5에서 제로행성까지는 스타게이트를 이용했을 때 20시간이 걸린다. 스타게이트는 웜 홀(Worm Hole)을 이용해서 만든 기술로 우주에서의 이동을 도와주는 거대한 우주시설물이다. 하나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인데다가 출발지와 도착지에 2개가 건설되어 있어야하기에 초기 설치 땐 엄청난 시간, 기술, 자원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설치를 통해 E 외곽을 발견하고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스타게이트는 인류의 무대를 우주로 옮기는 데에 있어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다.

“눈 쫌 붙여도 되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아요.”
“너 역시 배짱이 부족해. 한바탕하고 와서 또 거하게 한잔할 생각이면 지금 자두지 않는다면 몇 잔 못 마신단 말이야. 그걸 생각해둬야지.”

만은 객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다.

“도착했을 때, 그때 바이어가 마중을 나온다면 꽤나 골치 아파질 거야.”
“안 나올 확률이 높아요. 누군가를 조종하기 좋아하는 인물이라.”

그래라며 만은 옆으로 머리를 돌렸다. 요한도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았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폭풍전야. 요한도 침대에 눕는다. 이 긴 폭풍전야에 잠이 올 듯싶지만, 이내 숨을 고르게 쉬며 꿈속을 유영한다.

엄마, 제가 옳은 거죠? 아들아,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도움하나 주지 못하는 어미가 돼서 미안하단다. 아니에요. 엄마, 난 나를 버리고 식물 택한 엄마가 너무 미웠었어요. 그래서 식물도 미워할 줄 알았는데… 저를 보세요. 전 이렇게 식물학자가 되어버렸어요. 그래, 아들아. 식물을 미워할 수는 없어. 그들에게는 죄가 없었잖아. 나에게 죄가 있는 것이야. 이제야 사과하는 이 못난 어미를 용서하렴.

용서는… 이미 했어요.


“요한! 일어나!”

꿈을 뚫고 만의 얼굴이 보인다.

“도착했나요?”
“그래. 도착했다. 그리고 창문너머로 바이어가 보여!”
“네? 진짜 바이어가 왔나요?”

요한은 일어서 창문 너머를 살폈다. 있다. 바이어가. 요원 하나를 데려간다고 보고했으니 지금 만이 사라져도 문제가 된다. 하지만 바이어가 만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 이제 와서 만이 도망가면 내 입장이 난처해진다.

“내가 몰래 나가겠어. 네 입장이 조금 난처해지더라도 곧 정신없어질 터이니.”
“밀은 챙겼죠?”
“그래. 그럼 곧 보자고!”

만은 비행선의 짐을 빼는 곳으로 몸을 숨겼다. 짐이 나갈 때 같이 나갈 심산이었다. 요한은 가방을 챙기고 출입구로 나갔다. 바이어가 검은 양복을 입은 보디가드 요원 셋을 대리고 서있었다.

“오우, 요한! 자넨 영웅일세!”
“과찬이십니다.”

바이어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걸렸다.

“자, 일단 우리 가서 차나 한잔하자고.”

-지잉.

큰 소리가 들리면서 화물칸의 출입구가 열렸다. 요한은 놀란 척 뒤를 살펴보았다. 그의 머리카락이 보였다. 휴. 요한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바이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제이콥.”
“네, 수장님.”
“잘 모르겠다만, 저기 화물칸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살펴봐.”

요한의 눈동자가 커졌다. 만이 위험해.

“수장님. 저 매우 배고픕니다.”

요한은 속으로 타들어갔다. 이 상황에서 나온 말이 배고프다는 말이라니. 그러나 요한의 걱정도 잠시. 바이어가 반응을 보였다.

“그래? 허긴. 변변찮은 음식도 못 먹었겠지. 제이콥, 그냥 와. 우리의 영웅께서 배가 고프다는 데. 일단 밥을 먹으러 가자꾸나.”
“네, 수장님.”

요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쿵.

화물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만이 실수로 화물을 밀어 넘어트린 것이다. 큰 소리에 바이어와 요원들 모두 집중되었고 그 화물 뒤에 숨어있었던 만에게 바로 이목이 집중되었다.

“만? 저게 만이야? 요한!!”

바이어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의 목엔 핏줄이 지렁이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네가! 네가 나를 배신할 줄이야!! 제이콥! 저놈을 잡아! 미카. 이놈도 잡아.”
“네, 수장님.”
“수장님! 오해입니다!”

바이어의 눈빛이 바뀌었다. 마치 원래 이럴 셈이었는지. 갑자기 큰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닫혔던 우주선의 출입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 왠지 보이지 않았던 군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백과 천의 시체를 들고 내리고 있었다. 당했다. 이 모든 것이 계산되었던 것이다. 바이어의 손아귀에서 우리가 놀고 있었던 것이다.

“그거 아나, 요한.”

요원에게 붙잡혀있는 요한에게 바이어가 다가섰다. 그리고 손목을 들어올렸다. 홀로그램 팔찌가 붙어있었다. 아. 모든 상황은 이 팔찌로 알려졌던 것이다.

“고맙네, 요한. 나비도 잡아주고 반정부세력의 대가리도 잡아주고. 내 자네는 사형에 처하지 않고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주지.”

-탕!

바이어의 말이 끝나자마자 큰 총성이 들렸다. 요한이 뒤돌아봤다. 만의 가슴에… 총알이 박혔다. 붉은 피가 만이 숨을 쉴 때마다 솟구쳐 올라왔다.

“너! 바이어!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요한의 눈이 벌게졌다. 목소리는 천둥같이 커졌다. 쿵쾅쿵쾅. 심장이 빨라진다.

“오우, 그래서 어쩔 셈인가?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미카, 대리고 정원 근처 경찰소의 철창 안에 두고 감시해. 죄인이라도 축제를 구경할 자격은 있지 않나? 크크. 아! 그 가방은 내게 넘겨주게.”
“바이어!!”
“제이콥. 군인들의 도움을 받아 그 시체들 정원 아래 묻어버려. 크크. 식물은 양분이 많이 필요하단 말이야.”

요한은 발버둥 쳤다. 자신의 잘못으로 끝이 나다니. 요한의 눈에선 붉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안구의 모세혈관이 높은 혈압에 터진 듯. 요한은 붉은 눈물을 흘리며 검은 요원에게 끌려갔다. 그저 바이어에게 욕만 퍼붓고 있었다.

요한은 속이 뒤틀렸다. 먹은 것이라곤 과일뿐이었으니 위도 요동치며 먹을 것을 달라 시위했다. 하지만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분노와 죄책감. 붉은 감정들 속에서 그는 헐떡이고 있었다. 아까부터 흐려오던 두 눈은 이내 어둠을 가져왔다. 깜깜했다. 손을 뻗어 주위를 만져본다. 차가운 벽과 창살. 그리고 창살 너머로 만져지는 차가운 바람.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연합 정부의 수장. 바이어라고 합니다. 기나긴 기다림 끝에 오늘에서야 이렇게 공원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이 원했던 지구로 다가가는 첫 발걸음이라 생각됩니다!

환호성이 들려왔다. A2에서도 찾아 왔을 것이다. 엄청난 인파가 있겠지. 그들은 이제 피어올라올 꽃에 열광하겠지. 그 붉은 장미가 붉은 피 위에 피어지는 데, 그들은 좋아하겠지. 문 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요원이 들어와 요한을 잡는다.

“수장님이 오라는 명령을 했다. 뭐야. 눈도 보이지 않나? 이 애꾸에게 뭘 보여준다는 거야.”

요원의 말투엔 거부감이 역력했다. 이딴 병신을 데려가는 자신을 한탄하듯 거칠게 요한을 끌어 당겼다. 요한은 반항했다. 하지만 힘이 더 큰 쪽에게 끌려가는 것은 자연의 규칙. 요한은 그에게 끌려 나갔다. 바깥은 폭죽소리에 시끄러웠다. 요원이 멈췄다.

“장님이니 그냥 둬도 되겠지.”

요원은 수갑을 꺼내려다 다시 넣었다. 감은 두 눈에서 붉은 피가 흐르는 것을 요원이 본 것이다. 동정심인지 거부감인지 요원은 요한을 보지도 않고 단상위에 서있는 바이어를 바라봤다. 바이어는 나비가 든 유리병을 들고 있었다.

-여러분!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비입니다. 꽃을 쫓아간다는 나비. 그 나비가 이곳 화(花)에 찾아왔습니다! 자, 날거라 나비야. 그곳으로 가면 네가 기다리는 꽃이 피어올라올 것이야. 여러분 나비에게 꽃을 선물하시고 싶습니까?

네라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아까 뿌려둔 촉진제 아시죠? 그것이 짙은 안개를 만들 겁니다. 수증기라 몸에 유해하지 않습니다. 안개가 끼고 2분정도가 지나면 안개를 걷겠습니다. 이제 10초 남았다는 군요!  자, 같이 세어주세요! 10, 9, 8, 7, 6, 5, 4, 3, 2, 1. 피어올라라!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들려온다.

어머니. 누가 이런 결과를 원한 것일까요? 그 누구도 아니란다. 그럼 어째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인가요? 신이 원했기 때문이야. 자, 요한아. 이리오렴. 이제 엄마의 품으로 와야지.

요한이 정원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요원들이 발견하고 뒤 쫓아왔다. 하지만 짙은 안개가 낀 탓에 요원들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서로를 쫓았다. 안개 속에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락, 차라락.

안개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붉은 눈이 보였다. 그리고 거대한 사슴뿔도. 안개가 제대로 걷히지 않아서 흐릿하지만 빛에 반사된 비늘들이 보였다. 빛이 분산되면서, 비늘들이 흔들리면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차라락.

그것은 ‘룡’이었다. 기다란 몸체와 강인한 독수리의 발을 닮은 발에, 오색찬란한 비늘이 난 붉은 눈을 가진 얼굴이었다. 여의주는 물고 있지 않았지만 그것은 확실한 동양의 용이었다. 바이어는 룡을 보고 주저앉더니 공포에 질려 기다시피 도망가기 시작했다. 룡이 바이어를 발로 잡았다. 그리고 짓눌러 버렸다.
관객들이 경직되었다. 누구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너무 우월한 존재 앞에서 몸이 굳어버렸다. 제이콥이 찢겨버린 수장을 보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았다. 그리고 얼굴을 겨냥했다.
제이콥이 룡과 눈이 마주쳤다. 제이콥이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혼이 빠져나간 얼굴로 반정신 놓아서야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

-탕.

총알은 아주 빠르게 룡의 눈을 향했다. 공기를 휘감아 뚫고 지나가는 총알은 룡을 뚫고 지나갔다. 하지만 총알이 채 닿기도 전에 룡의 모습은 사라져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수천마리의 나비가 보였다.

안개가 걷혔다. 정원엔 엄청난 꽃들과 함께 네그루의 사과나무가 서있었다. 꽃마다 나비들이 춤췄고 안개가 남긴 수분은 자연스럽게 꽃잎에 그리고 사과에 올라앉아있었다.

그곳은 낙원이었다.


#epilogue

“자자, 어린이 여러분. 저 네그루의 나무가 무엇일까요?”
“생명수요!”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네그루의 나무 곁에 서 있었다. 그리고 한 선생님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분들은 영웅이에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우리에게 식량을 주었죠. 우리가 먹는 빵 있죠? 그것도 이들이 가져오신 것이에요. 우리는 이분들에게 감사해야겠죠?”
“네!”

정원 사건이 있고 난 후 세상엔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요한의 팔찌에 기록된 영상은 전 행성으로 퍼져나갔고 사과나무가 된 그들의 모습을 전 행성에서 애도하러 찾아왔다.
E5행성으로의 출입이 영원하게 금지되었다.
인공식품은 점점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린이가 가장 되고픈 직업은 농부가 되었다.
사과나무 주변으로 안개꽃이 자라기 시작했다.
그들 넷의 손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그게 결과였다.

신이 아닌, 그들의 손으로 바꾼 결과.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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