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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달로 가는 티켓

2010.05.05 19:3505.05



아버지는 말없이 치킨을 뜯고 있었다. 페스트푸드점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대체로 한가했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둘뿐인 것 같았다. 나는 먹던 햄버거를 마저 집어삼키고 콜라를 한입 가져가 입안에 털어 넣는다. 아버지는 닭날개를 들어보이곤 이 닭에 대한 심각한 장광론을 펼치기 시작하셨다.
“이 닭들도 진화에 성공해 날아다녔다면 못 먹었을지 몰라.”
“날아다닐 필요가 없었던 거겠지. 먹이는 땅에 널려있으니까.”
“흥. 눈에 띄고 시대에 도태되는 것들이 먹잇감이 되지. 늘 그래.”
아버지는 혼자 자랑스러운 듯 뽐을 냈다. 그가 입은 알로하 티셔츠가 오늘따라 그의 허세를 더욱 배가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옷에 후광효과가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기라도 한건가?
“그럼 우리는 진화에 성공한 쪽이겠네. 이런 여행까지 올 정도로 잘 살고 있으니까.”
아버지는 닭날개를 이빨로 뜯어내며 내 말에 긍정을 해주었다.
“그렇지. 세상의 속도에 빨리 적응할수록 얻는 것이 많아진다고. 그건 자연의 이치와도 같은 거야.”
나는 마시던 콜라를 쟁반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눈가에 비춰지는 아버지의 늙어버린 모습을 말없이 바라본다. 아버지와 이렇게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의 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동안 일로 서로가 바쁘게 살아오다가 여행을 핑계삼아 만나게 되었으니까.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실제로 아버지를 만나고 나니 귀찮은 일도 많아졌다. 60이 다 되어가는 어른의 투정을 하나하나 받아주기가 약간은 벅찬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의 기분을 업시키려고 넌지시 운을 띄워준다.
“아무튼 기대되네. 곧 출발이니까.”
“그래. 아버진 어렸을 때부터 달에 가보는 게 꿈이었다고. 과학책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이뤄졌으니 얼마나 감동적인지 아냐.”
그렇게 말하는 아버지는 게걸스럽게 치킨의 닭다리를 먹고 있었다. 아직 식사가 끝나려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런 페스트푸드점엔 사람들이 비교적 적었다. 다들 달에 간다고 하면 최소한 부자라는 티를 내기라도 하는 건지 이런 가게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족만 해도 이번 여행에 재산의 5분의 1정도는 써버렸는데. 나는 없는 재산이라도 아껴 여기에 왔는데. 남들은 더 멋진 가게에서 밥을 먹으며 잘 살고 있으니 우리도 아직 진화에 성공한 축에는 끼지 못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달 여행은 민간인들에게 사치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는 가고 싶다고 늘 말했다. 국내 최초의 달 여행이 시작된 5년 전부터 같은 말을 입에 담고 살았다.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부부동반으로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서도 아버지의 달에 대한 욕심은 끊이지가 않았다. 언제는 전화를 걸어와 암에 걸릴지도 모르니 죽기 전에 한번쯤은 보러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고, 명절에 내 집에 찾아와서는 함께 가자고 어린애처럼 칭얼대길 일수였다. 명절이 끝나고 석 달이 지나 병원으로부터 정말로 위암판정을 받게 되었을 때에는 거보라며 나에게 일갈했다. 아버지의 항암치료는 고작 1주일만에 끝났지만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며 성화를 부렸다. 아버지의 고집은 그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다. 늘 그랬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도 우주비행선을 만든다며 집 앞에 난장판을 벌이시던 분이었다. 나는 그 모든 과정을 잠자코 지켜보았지만 아버지는 자기가 하는 일만큼은 늘 남다른 관심을 쏟던 양반이었다. 그 결과물이 대부분 실패작이었다는 것이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한번은 과학교재에서 그대로 본 따 만든 3단 분사로켓을 가져와 집 앞에서 발사한 적이 있다. 로켓이 마당을 박차고 동네전체에 울려퍼지도록 큰 소리를 내며 올라가는 그 모습에 어머니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했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날아가는 로켓을 보며 혼자 신나했었다. 그날 밤 경찰의 신고를 받고 아버지는 출두해야 했다. 벌금을 내고도 돌아올 때는 웃으며 “경찰도 꿈이 있어서 다 이해해 주더라.”라고 천연덕스럽게 받아넘겼다.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져 뭐라 야단을 칠 기세도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아버지는 같이 입관식을 지켜보았는데 언젠가는 유골을 우주에 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일로 결국 나와 한판 싸우고 말았고, 그 때만큼은 나도 지지않고 아버지에게 맞섰다. 결국 자식인 내 의견을 존중해 어머니의 유골을 고이 모시게 되었지만 내가 죽었더라면 어떻게 했을지는 또 모를 일이었다.

자기가 죽고 난 뒤에 유골은 우주에 뿌려달라고 버릇처럼 말하는 만큼 아버지는 우주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 꿈을 쫒느라 기꺼이 가난을 가까이 한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집안 살림은 항상 어머니의 몫이 되었고 그래서 어머니는 집안살림을 거덜 내는 아버지를 가끔 원망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뜻에는 어기지 못했고 그 고집을 꺾지는 못하는 어머니였다. 나는 이 두 사람의 관계가 불평등하게만 보여서 아버지를 별로 좋아하진 않았다. 솔직히 지금도 그렇다. 내 눈앞에 있는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에게 기대면서까지 우주여행을 하고싶어 하는 아버지인 것이다. 아직 은퇴할 나이도 되지 않았건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재작년부터 일선에서 물러나 퇴직금으로 현재까지 버티고 있다. 자기 재산도 있는데 왜 나한테까지 빌붙어가면서 달 여행을 가고싶어 하는 건지 솔직히 알 수가 없었다. 나에게 귀찮은 존재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그러나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였으니까.

달이라고 하니 혼자 보내드려도 괜찮겠지 싶었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아버지와 여행을 같이 갈수 있을까 싶어서 나도 따라 나서기로 했다. 암이 언제 재발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충고가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회사에는 특별히 달 여행을 간다는 이야기따윈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했다간 부잣집 자식으로 오해받기 십상이었으니까 간단한 여행이나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휴가를 신청했다. 내가 회사에 어렵사리 휴가신청을 하는동안 아버지는 내 집에서 여행정보지를 손에 들고 달의 크레이터나 바다의 종류를 외워가며 어디어디에 가보자는 이야기를 계속 해댔다.
“티코가 좋아. 티코 말이야.”
아버지는 새로운 발견을 한 학자처럼 매일매일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떠들어 댔다.
“전부 예정된 경로에 포함되어 있으니 호들갑 좀 그만 떠세요.”
나는 들떠있는 아버지를 진정시켰고 내방으로 돌아가 그동안 결제된 여행비와 남아있는 통장잔고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지구관광코스를 할 걸 그랬다는 후회도 남았지만 기왕 달까지의 여행길이 열린 현재에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할 마다할 핑계를 찾기는 어려웠다.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왜 그렇게 아버지에겐 약한 것일까.

아버지는 한때는 닭이었던 치킨을 전부 먹어치운 참이었다. 알로하셔츠의 불룩 튀어나온 배에 힘을 주고 아버지는 말했다.

“닭은 참 불쌍한 동물이란 말이야. 날고 싶어도 날지 못하니.”
“그 이야긴 아까 했잖아.”
“결국 생각해 보면 미래에 태어난다고 해도 별 이득은 없는 것 같아. 이렇게 사육되다 우리의 배속에 들어가는 걸 보면 말이야.”
“늘 이득을 보는 건 인간의 몫이지. 아버지도 오래 살아서 달 여행을 가는 거니까 미래에 사는 보람은 있다고 생각해 봐요.”
“미래에 태어나는 인간들이야 말로 삶의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존재란 거야?”
“그래요. 나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이만하면 좋은 미래에서 태어난 것 아니겠어?”
“흥. 나는 기왕이면 은하여행정도는 가능한 시대에 태어나고 싶었다고.”
나는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산다니깐. 아버지도 그래.”
“나는 좀 더 현명한 미래를 바랬을 뿐이야.”
내가 반론을 펼쳤다.
“지금처럼 전쟁도 없고 기아로 죽는 사람도 없는 시대에 태어나 공부하고 직장다니고 잘 살다가 죽는데 뭐가 더 불만이에요? 더 좋은 미래는 우리가 만들어 가면 되는 거예요. 후세대를 위해서.”
“그래. 너도 내가 죽고 난 다음에는 화성여행이라도 갈 수 있을 테지.”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아버지 욕심이 과한 거 아니에요?”
“아버진 솔직히 지금 태어난 게 약간은 아쉬워서 그래. 아니면 인류가 덜 발달한게 아쉽기도 하고. 좀 더 젊었을 때 달 여행을 갈 수 있었다면 네 엄마하고도 같이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침울해지는 나로서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저 마시던 콜라나 빨고 빨리 우주선을 타고 싶었다. 아버지와 계속 말을 나누는 것이 오히려 불편하게 여겨져 시선을 돌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마다 자사의 광고를 해대는 전광판의 벽들을 지나 화장실로 향했다. 집에서부터 공공장소에서는 자동으로 온수가 나오도록 설정해 놓았는데 여기는 냉수가 나온다. 그 차가운 물에 손을 씻으며 나는 아버지의 앞날을 걱정했다. 앞으로 5박6일의 여행을 떠나고 와서도 꿈을 가지고 사실까. 지금으로서는 그러실 것 같았다. 하지만 동력을 잃은 채 헛된 꿈만 쫒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평생 한결같은 꿈만 쫒던 분이었다. 손을 말리고 화장실을 나와 페스트푸드점으로 돌아가니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간 걸까? 당황하여 나는 두리번 거리며 그의 모습을 찾았다. 아까 앉은 자리를 돌아보기도 하고 점원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알 길이 없자 공항 복도로 뛰어가며 그를 찾았다. 내가 2층 복도를 건너뛰어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창가에서 우주로 향해 발사되는 로켓을 보고 있는 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단박에 달려가 아버지의 등을 후려쳤다.
“한참 찾았잖아요! 뭘 하고 있었던 거에요.”
“로켓을 보고 있었어.”

“예?”

아버지는 넋을 잃고 날아가는 로켓을 바라보며 말을 잊었다.
“어렸을 때에는 꿈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이 되고 말았어.”
“그야 당연하죠.”
그는 이번엔 눈시울을 붉히며 모니터를 응시한 채 내 바지를 붙잡고 물었다.
“얘야. 꿈이 이뤄졌을 때 그 순간 너는 뭘 하고 싶니?”
“네?”
“꿈이 뭐냐고 묻는 거야.”
“그야 제 꿈은….”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 앞에선 한 번도 입 밖에 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내 꿈은 뭐였더라. 지금 그게 중요한가? 그보다 아버지가 왜 이런 걸 묻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혼자 센티멘탈 해진 아버지를 바라보며 나는 뒤늦은 혼란에 휩싸였다. 혹시 암세포가 재발한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었는데 그보다도 정신이 어디 안 좋으신 건 아닐까 염려스러웠다. 일단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의자로 가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계속 모니터에 열중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마냥 그져 지켜볼 따름이었다.
“어디 아프시진 않으세요?”
그러자 아버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쌩쌩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곤 그저 말없이 모니터에만 시선을 두고 계셨다. 평생 이뤄내지 못한 꿈이 이뤄진 것이 감격스러워 그러시는 걸까. 나는 아버지가 눈시울을 밝히시는 모습을 보곤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얘.”
“네. 아버지. 말씀하세요.”
“사이다 좀 사다다오.”
아버지는 끝까지 아버지였던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아버지에게 여기 꼭 계시라고 단단히 일러둔 다음 말없이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가 사이다와 내가 씹을 껌을 한통 샀다. 껌의 포장지를 벗겨내 휴지통에 버리고 말없이 껌을 씹으며 아버지의 인생은 뭐였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달 여행에 오지 않았더라도 아버지의 꿈은 이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아버지의 꿈을 이뤄드린 셈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아무렴 어때. 곧 출발이니 내가 저 어리고 경망스런 아버지를 더 챙겨드릴 수 있는 여유만 찾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씹던 껌을 질겅질겅 더 씹고 난 뒤 포장지에 싸서 던져버렸다. 이제 곧 출발 시간이다. 나는 아버지를 모시러 아까의 복도로 향했다. 그러나 그 사이 아버지는 아까와 달리 팔을 추욱 늘어뜨린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계셨다.
“아버지!”
입에 거품을 문채 내가 있는 쪽으로 쓰러지는 아버지를 부축하고 황급히 전화를 꺼내어 119를 눌렀다. 이 근처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아 나는 전화에 대고 최대한 빨리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혼절한 아버지를 입구까지 업어 모시고 가 속절없이 기다렸다. 대낮인데도 날씨가 얼어붙듯 추웠다. 오히려 몸이 편찮아 지시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되었는데 왼편 멀리서 구급차가 달려오자 나는 그 방향으로 달려가 한달음에 태웠다. 병원으로 가는 길까지 응급차 안에서 체크를 해본 결과 몸에 별 이상은 없고 갑작스런 심장마비증세가 온 것뿐이라고 하였다. 차가 응급실에 도착하자 의사들이 아버지의 알로하셔츠를 벗겨내고 가슴에 청진기를 대어 진찰을 했고, 내가 조급해서 의사에게 상태를 물으려는 참에 아버지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일어나며 말했다.

“우주선 탈 수는 있겠소?”
그러자 의사는 이런 상태로 우주선은 아직 무리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단을 끝내고 말하기를 회복되려면 내일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낙담했고 갑작스런 예정변경에 나로서도 난감해했다. 그토록 바라던 우주여행이었는데 이렇게 갈 수 없게 되다니. 나는 두 손을 모아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데 내가 붙잡은 두 손을 보고 아버지는 오히려 내 얼굴을 바라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빨리 너라도 가라. 지금이라면 출발시간에 맞출 수 있을 거야”
갑작스런 전언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할 말을 잃었다. 아버지란 분은 원래 늘 고집이 세고 자기생각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보고 혼자 달 여행을 다녀오라 하신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물론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 여행에 아버지를 두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보다 그토록 우주에 집착하던 아버지인데. 이렇게 두고 가면 또 후회가 될게 뻔했다. 나는 응급실을 빠져나와 당장 회사에 전화를 걸어 휴가를 하루 더 연장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몇 분만에 OK사인이 떨어지자 바로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일정을 내일로 미루겠다는 연락을 넣었다. 다행히도 문제없이 일정변경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안도한 나는 일정에 맞추어 아버지와 함께 갈 수 있을 거라 믿고 그에게 달려가 말해주었다.
“내일 같이 가면 된데요.”
그러자 아버지는 끊어질 듯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손을 붙잡고는 “고맙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평소엔 보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의사가 찾아와 아버지가 오늘은 뭘 드셨냐고 물었다. 내가 치킨을 먹었다고 대답하자, 의사는 콜레스테롤 섭취 과다로 인한 심장마비라고 진단을 내려주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되고 내일 달 여행에 가게 되더라도 기름진 음식은 피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의사는 자리를 떴다. 나는 아버지를 응급실에서 데려와 일반병실로 모신다음 간병인 침대에 자리를 펴고 누워 병실을 지켰다. 창밖에서는 멀리 날아가려는 비행기의 소리가 깨알같이 들려오고 있었다. TV에서는 액정속의 인물들이 너나할 것 없이 숨가쁘게 웃고 떠드는 가운데 나는 그 TV의 볼륨을 줄였다. 방 안이 고요해지자 아버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의 안색을 살핀 뒤,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시간은 고요하고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어느 덧 날은 저물어 저녁이 되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는 어느 때보다 야위어있었고, 늙그수레 보였고 병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눈가에 잡힌 주름이 나를 향해 쳐다볼 때마다 일그러졌다. 나는 냉장고에서 우유 하나를 꺼내어 아버지의 입가에 가져다주었지만 이는 싫다는 표정으로 입을 삐죽 돌렸다. 그리고는 방구를 뿡 하고 뀌었다.
“뭐하는 짓이에요!”
“하하. 속이 안 좋아가지고.”
나는 토라져 그만두고 가방을 챙겨 일어섰다.
“밥은 알아서 챙겨 드세요. 저도 먹고 올 테니까.”
내가 나가려는데 아버지가 나를 향해 돌아보고 한 마디 건낸다.
“그래도 고맙다. 같이 간다고 말해줘서.”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하며 한 마디를 남긴다.
“별로 아버지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그리고 문을 닫아 나는 식당으로 발을 옮겼다. 식당 안에 들어섰을 때 눈에 보이는 아무자리에나 앉고는 곧바로 매뉴판을 살펴보았다. 병원이기도 해서 거창하게 먹을 생각은 없었고 간단하게 육개장이 어떨까 싶어 나는 호출버튼을 눌러 육개장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나는 육개장을 먹었다. 그저 장례식의 문상객들을 위해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진 음식 중 하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입맛이 돌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나는 그 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알 수 없는 고독감에 사로잡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혼자 남을 자신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창밖에 보이는 수많은 별들을 보면서 이 넓은 우주에 혼자라는 생각이 문득 들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헤어진 애인에게 연락이라도 넣을 것을 그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떠난 사람이고 굳이 이런 순간에 연락을 하는 것은 감상적인 행동일 뿐이야. 이러면서 내 이성이 감정을 가로막았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손가락을 식탁위에서 두드리며 간단하게 리듬을 탄 부드러운 연주를 했다.
연주는 즉흥적이었지만 매끈했으며 가벼웠고 단조로우면서도 기분을 상큼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의 불안이 씻겨 나가라는 듯이. 설령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우주에 혼자 남더라도 이제 생활은 구시대의 사람들만큼 불행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해가 뜨고 달이지는 동안 하루 종일 사람들은 재미있게 살 수 있는 여유를 저마다 가지고 있었다. 단지 뗄레야 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고독감을 제외하자면 인간은 언제나 자유롭고 행복해 질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누구나가 그렇다. 가난해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카운터의 밸이 울리고 육개장이 나왔을 때 나는 입맛을 다시고 뚝배기를 가져와 밥을 한 번에 털어넣었다. 슥슥 비벼가며 밥을 먹는 동안 바깥에선 또 한 번 로켓이 우주를 향해 발사되고 있었다. 달로 가는 티켓은 내 주머니에 고이 모셔져 있었다. 외로운 아버지와 나를 위하여.

밤이 깊어졌을 때 나는 병원의 옥상으로 올라가 조용히 문을 열었다. 이곳 로켓발사장이 있는 곳에서는 많은 별들이 수없이 보인다. 어머니가 어렸을 적 내게 가르쳐 준 북극성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북두칠성을, 또 카시오페아 자리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수많은 별자리를 눈에 두고 찾아다녀 보았다. 기억나는 것은 많지가 않았고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별들뿐이었다. 나는 별을 보기를 그만두고 벤치에 앉아 아까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던 꿈에 대한 이야기를 곱씹어 보았다. 내 꿈은 무엇이었을까. 이제와서 굳이 고민한 들 답이 있으리랴만 내 꿈은 지금처럼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는 것은 아니었다.
문득 달 여행을 앞두고 아버지의 꿈이 내 꿈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앞서 들었다. 아버지는 참 대단한 사람이지만 나의 야망도 막아버려 서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등 뒤로 불쑥불쑥 올라왔다. 아버지에게 말하지 못했던 내 꿈은 바로 동물조련사였다. 어릴 적부터 개나 고양이를 길러 왔던 것이 계기가 되어 동물원에서 일하는 것이 하나의 바램이었다. 그러나 집안 사정을 생각하면 조련사보다는 좀 더 수입이 많은 일을 택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게 어머니의 조언이었고 대학을 선택해야 할 무렵 나는 별 수 없이 사무와 관련된 학과를 택했다. 그래도 고양이는 계속 기를 수 있었는데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키우던 고양이가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사라지고 나자 우습게도 더 이상 동물을 기를 여력을 잃고 말았다. 그 후론 아무 동물도 키우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생각도 눈녹듯 사라져 버리고 혼자있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 듯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3년을 홀로 살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의 나는, 회사에서 우주여행같은 건 생각하지도 못한 채 일에 매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끔 명절마다 집에 얼굴을 내비칠 때면 부모님께 인사치례만 한 채 집에 머물기가 일수였다. 한 번은 TV를 틀어놓고 정원을 가꾸던 도중 어머니가 밝게 웃으며 아버지에게 “우리도 우주여행정도는 갈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하며 웃었던 게 기억이 난다. 화초에 물을 주던 아버지는 “당신하고 내년엔 지구궤도까지 한 번 다녀오자고.” 그 말들은 결국 하나의 바램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어머니가 병환에 걸리셨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었지만, 때는 이미 늦어 몇 달 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조용히 묘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 무렵이었다. 더 늦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싶었고 한 달에 몇 번정도는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아버지에 대해 더 잘 알게 될수록 나는 아버지의 꿈도 한 번쯤 이뤄드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쉽지는 않았다. 아버지에게 처음 달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을 때에 아버지는 싫다는 내색을 내비치셨고 내가 해오는 제안들에 대해서도 냉담한 반응만을 보이셨다. 그래도 내가 두 세번에 걸쳐 의사를 타진하자 그제서야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회사를 퇴직한 후, TV로 대학공부를 하며 시간여행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인류가 언제쯤 광속여행을 하게 될 수 있는지를 다루는 게 포인트였다. 아버지는 흥분하며 나에게 말했다.

“광속여행을 하면 늙지 않는데!”
“그러면 여행을 못하는 사람들만 손해겠네.”
“그렇다면 미래인들이야 말로 광속여행을 해 지구에 도착한 이들이 아닐까?”

우리는 긴 시간을 여행하여 마침내 지구에 당도한 이들이구나. 그렇다면 지금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돋았다. 그래도 아버지는 불만이 많은 얼굴로 혀를 차며 현대에 태어난 것을 불행이라고 여기셨다.

“조금 일찍 태어나서 인류에 공헌한다고 생각하면 되잖아요.”
“우린 아직 작은 부품에 불과할 뿐이야. 애석하게도.”

아버지는 운전을 하시며 그런 이야기를 곧잘 꺼내셨다.
그런 아버지였다.

나는 가방 안에서 담배를 찾아내 입에 물고 천천히 불을 피웠다. 재와 함께 날아올라가는 연기가 공기 중으로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져 갔다. 나는 다시 한 번 저 하늘에 높이 피어오른 별들을 보고 가슴 깊이 새겨 넣었다. 언젠가는 우리의 자손들이 저 별들에 당도할 날이 있겠지. 그런 꿈을 가지고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리라. 손이 별들이 있는 자리로 허공을 휘젓는다. 갑자기 내일의 달 여행을 앞두고 내 자신이 숙연해 지는 느낌을 받았다. 인류가 달 여행에 도달했을 때도 다들 이런 기분이었을까? 언젠가 나에게도 자식이 생긴다면 똑같은 꿈을 기대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 때를 넘어 미리 아이가 보지 못한 미래의 모습을 보고 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발사장에선 또 하나의 로켓이 우주를 향해 발사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담배를 끄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병원의 옥상을 내려왔다.

병실에 돌아왔을 때는 아버지는 이미 곯아떨어지셨다. 나는 이불을 가져다 추위에 타지 않도록 제대로 덮어드리고는 간병인 침대에 몸을 맡겼다. 하루의 피로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잠이 들기 전 일기를 쓰기로 했다. 가방에서 노트와 라이트 팬을 꺼내어 손에 쥔 뒤에 등을 벽에 기대고 한글자씩 또렷이 적어나갔다.
오늘은 아버지와 여행하기로 했던 날이다. 우리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잠시 쉬려던 와중에 갑작스레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달 여행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않으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가 안쓰럽고도 애처로웠다. 검사결과 별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니, 내일이라면 예정대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버지를 병실에 모시고 식당으로 가 밥을 먹었으며 밥을 먹는동안 어머니가 생각나서 잠시 울적해졌다. 어머니는 지금쯤 머나먼 곳에 계시겠지….
나는 이 부분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일기를 적어나가기로 했다. 일기는 보다 간결하고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으며 다 쓴 다음에는 가방에 집어넣어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가방을 잠가두었다.

그리고 병실의 불을 끄고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게 조용히 잠에 빠져들었다. 깊은 어둠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듯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밝아오는 아침이었다. 시간은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고 병실 밖에서는 아침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나는 아버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일어나 가방 안에서 담배를 챙긴 뒤,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는 너나 할 것없이 병원의 사람들과 입원한 환자와 그 외에 병문안을 온 사람들과 간병하는 가족들로 가득했다. 나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와서는 편의점에 들려 간단한 도시락을 사가지고 운동삼아 아버지병실이 있는 7층까지 걸어서 올라왔다. 올라가는 동안 힘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되겠지만,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병실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벌써 아침식사를 하고 계셨다.
“벌써 밥 먹고 있었어요? 같이 드시지.”
“네가 없길래 혼자 먹고 있던 참이다.”
아버지는 국을 한웅큼 퍼서는 입안에 가져가셨다. 나는 도시락의 포장을 뜯고 젓가락을 손에 쥐어 밥을 펐다. 아침은 텁텁한 모래와 같은 맛이었고 기대이하의 품질과 용량을 지닌 것이었다. 그래도 배고픈 배를 쥐어짜며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억지로라도 밥을 삼켰다. 하나하나 들이킬 때마다 맛이란 게 무엇인지도 느끼지도 못하고 뱃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고 난 나는 먼저 식사를 다 마친 아버지를 모시고 퇴원 수속을 밟기 위해 수납과로 향했다. 퇴원수속이 끝난 후에야 아버지는 환자복에서 다시 알로하셔츠로 변신하여 연신 웃어대셨다. 그런 아버지를 본 채 만 채 하고 나는 가방 속 물건들을 하나 둘씩 챙겨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병원 밖으로 나와 택시를 잡은 뒤, 다시 발사대가 있는 공항으로 향했다. 나는 창문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고는 말없이 창밖의 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불안이 뒤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혹시 비가 오거나 해서 출발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불안한 소리는 하지도 말아라.”
아버지는 나에게 그렇게 일갈하고는 혼자 무엇이 즐거운지 입에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셨다.

택시는 드넓은 도로를 지나 저수지 위의 다리를 건너고, 섬이 보이는 그 곳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저편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 한명이 손을 흔들면서 우리와 마주쳐 지나갔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어제보다 부푼 꿈이 한 없이 다가와 내곁에 다가섰다. 나는 아버지의 손을 맞잡고 그 손을 쓰다듬었다. 우주여행을 그토록 바라던 그 손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는 푸르고 맑았으며 비가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식당코너로 가서 어제 의사가 주의한 대로 기름진 음식을 제외한 점심식사를 마련해 두었다. 아버지는 치킨이 먹고 싶다며 투덜댔지만, 나는 어제 먹었지 않냐며 나름대로 성실한 반박을 해댔다. 잠시 뒤에 출발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우리차례가 되었음을 알려주었을 때, 나와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개찰구를 향하여 걸어 나갔다. 아버지는 이미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였고 나 역시 모든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우리는 티켓을 건네주고 개찰구를 통과했다. 안내원이 친절한 태도로 우리를 환송해 주었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우리는 밝은 컨테이너 통로를 지나 탑승구에 다다렀고 한발 짝 내딛어 로켓 안에 진입했다.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차례로 탑승해 주십시오.”
나는 복도를 걸어간 끝에 우리 자리를 찾고는 창가쪽 자리를 아버지에게 양보해 드렸다. 아버지는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그 옆에 앉아 두숨을 내쉬었다. 가방을 손에 꼭 쥐고는 지구에서 잠든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런 나의 생각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아버지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말씀해주었다.
“괜찮아. 네 어머니도 지금쯤이면 편히 있을 거다.”

아버지란 어떤 사람일까. 아버지의 꿈은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가만히 복도를 바라보고 심호흡을 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곧 로켓은 엄청난 열량을 내품으며 속도올리기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육중한 가속도와 함께 내 몸은 천천히 지구를 떠나 달을 향해 솟구쳤다. ‘안녕 내가 태어났던 세계야. 5일 후에 다시 보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우리는 달을 향해 나아갔다. 로켓의 분사는 천천히 이루어졌으며 현재의 고도를 통해 우리가 있는 위치가 어디쯤인지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로켓이 대류권을 벗어나 성층권에 진입했을 때 차츰 하늘의 색깔이 바뀌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로켓은 꾸준히 솟고 있었고 나는 나대로 열심히 이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잘되지만은 않았다. 내 안에서 갑자기 코피가 나온 것이다.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나는 SOS요청을 했고 안내원이 달려나와 응급조치를 해주었다.
“기압차로 귀가 먹먹해지거나 코피를 흘리는 분들이 간혹 계세요.”
나는 코를 에워싸며 여행 첫날 치고는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과 내가 살아온 길이 그랬고 지금까지 달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겪었던 일이 그랬다. 달에 도착하고 나면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나도 모르는 사이 조심스런 기대가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곁에서 신나했고 나는 나대로 여행이 즐거웠다. 마침내 로켓이 열권을 벗어나 대기권을 돌파하자 창가에 앉은 사람들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고 마침내 보이기 시작하는 별들과 지구, 달을 바라보느라 정신을 빼앗겼다.

아버지가 내 옷소매를 잡아끌며 저길 보라고 했다. 나는 못이기는 척 끌려가서는 보이는 별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다들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모두 아름다웠지만, 무엇보다도 지구를 가장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나는 창가로 다가가 서서히 멀어지는 지구의 모습을 보았다. 그동안에도 지구는 점점 하나의 세계로 통일되어가고 있었고 스스로의 모습을 하나 둘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세계는 구체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서 몸을 떼고 그 모습들을 그저 관조하기에 이르렀다. 회사사람들에게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다들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이 놀라하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나는 혼자 웃었다. 다음엔 회사차원에서 지구궤도여행을 가자고 제안해 보면 어떨까 싶기도 했다. 한 번 달에 갔다 왔다고 뽐내던 박대리는 좋아할 것이고, 이과장도 싫어하진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야 바랄 것이 더 없겠지. 나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로켓은 어느새 지구의 정지궤도를 벗어나 지구와 달 사이를 잇고 있었다. 우리의 몸은 이제 완전한 무중력이 되어 있었고 나는 더 계속 창밖을 바라보려 애썼지만 아버지의 몸이 거의 다 가리는 바람에 포기하고 반대편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지구는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고 보이는 것은 은하에 수놓아진 별들과 목적지인 달의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거대해져가는 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구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달이 없었다면 인류의 밤은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시간은 어느새 저녁이 다 되었다. 우리들은 기내식을 받아들고 조심스레 한입한입 가져가 밥을 떠먹었다. 우주에서 먹는 밥이라고 해도 아침에 먹은 찰흙같은 밥과 맛이 별 다를 바 없었다.
“우주식은 맛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걸 놔두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아버지는 나를 야단쳤지만 내 입에선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푸석한 느낌의 밥이 나로서는 여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더 먹기를 포기하고 그만 입을 뗐다. 그러자 아버지는 뭐가 그리도 맛있는지 내 몫의 식사까지 가져가 드시기에 이르렀다. 연신 입을 우물거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가까워져 가는 달을 바라보았다. 곧 도착시간이다.

정거장에 도착해 도킹을 마치고 엔진이 정지했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여행객들은 저마다 안도와 환희의 기쁨을 나타내었다. 알로하셔츠를 입은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먼저 짐을 챙기고 일어나 아버지를 모시고 탑승구를 향해 걸어나갔다. 우리는 곧 머물게 될 호텔을 향해 조심스레 이동했다.
호텔로 가는 동안 달에서 지구를 올려다보며 지구의 모습에 경탄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기가 무섭게 우리를 태운 레일은 빠르게 호텔에 도착했고, 관광객들은 저마다 배정받은 호텔로 들어갔다. 우리들도 카운터에서 키를 받고는 아버지와 함께 호텔 방 안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는 창밖의 지구를 바라보고 낮에 흥얼거리던 가락을 다시 흥얼거렸다.

오늘의 여정이 끝나고 모두가 잠이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샤워를 마치고는 그동안 있었던 일에 피로를 느끼는 듯 곤히 잠드셨다. 내일이 우리 여행의 진정한 시작임을 깨달은 나는 그의 곁 작은 책상에 앉아 라이트 팬과 노트를 꺼내어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일기로 적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버지와 여행하는 첫 번째 날이다. 아마 내 생애에서는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가 되리라고 곧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달에서는 새로운 내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터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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