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
  
  철수네 집에서는 달걀 프라이가 한창이었다. 찬장 문을 열어보니 소금이 없었다. 엄마는 2층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철수를 불렀다. 철수야, 얘야, 달걀 한 판만 사오렴. 에이, 엄마, 저 바쁜 거 아시잖아요? 달걀 한판만 사오면 된 단다. 달걀이요? 그래, 달걀 한 판이다. 또 뭔가 필요하신 게로군요? 그래, 소금을 좀 구해오라고 하고 싶은데, 너도 밖에는 나가기 귀찮잖니? 알았어요, 달걀, 달걀.
  달걀은 통신으로 금세 구입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손님. 온라인 구멍가게의 영수 씨는 통화 속의 화상에서 손을 삭삭 비볐다. 항상 띄워 놓은 이미지 화상이었다. 철수가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소금은 없겠지요? 죄송합니다, 소금은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아유, 요새는 어딜 가나 그렇잖아요.
  집집으로 연결된 통신 파이프를 통해 계란이 도착했다. 요리를 하느라 바쁜 어머니는 다시 한 번 소리를 지른다. 철수야, 이제 소금을 구해오렴. 알겠어요, 엄마. 철수는 귀찮은 내색을 숨기면서 우편배달함에 꽂인 계란 한 판을 들어올린다.
  엄마가 달려왔다. 철수야,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지. 알고 있어요, 엄마. 니가 알긴 뭘 알아, 저번처럼 또 애들을 놓쳐버리면 혼날 줄 알아. 철수는 부쩍 늘어난 그녀의 잔소리에 신물이 났다. 알았으니까, 소리 좀 그만질러요.
  철수는 어머니에게서 권총을 받았다.
  준비가 끝나자 철수는 전자레인지에 계란 하나를 올렸다. 계란 껍데기에는 신상품의 광고가 붙어있다. 전자레인지에 3분이면 OK, 무슨 명령에도 복종하는 당신의 심부름꾼. 철수는 손에 익은 자세로 광고 스티커를 떼었다. 권총을 쥔 채로도 이 정도는 쉬운 일이다.
  전자레인지가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안에서 계란이 끓는 소리가 났다. 전자레인지에 연결된 실체화 조리기구가 부웅 소리를 내며 돌아갔다. 조리가 끝나고, 철수는 조리기구의 입구를 개방하는 스위치를 눌렀다.
  기계에서 철수와 비슷한 덩치의 소년이 알몸으로 걸어 나왔다. 철수는 강한 적대감을 실은 시선과 총구를 향했다. 손들어, 계란인간.
  계란에서 나온 소년은 철수 앞에 주저앉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계란소년은 울기 시작한다. 철수는 계란소년의 귀에다 커다란 안테나를 꽂았다. 리모콘으로 여러 가지 버튼을 누른다. 계란소년의 두뇌가 학습 장치를 모두 받아들일 때까지 10분 간 기다렸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13분. 대기업들의 광고는 언제나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다. “자, 이제 손들어. 나는 너의 창조주다.”
  “알겠습니다, 창조주님.” 계란소년이 대답했다.
  “오늘자 계란에서 태어난 인간이니까, 네 분류명은 312호다.”
  “감사합니다, 창조주님.”
  “지금부터 네가 할 일을 설명하겠다. 소금. 소금을 구해와라.”
  안테나의 상태가 양호하지 못했다. 하지만 계란소년은 정확하게 명령을 수신했다. 철수는 소년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리모콘을 두들기는 것으로 모자라 소년의 머리를 때린다. 계란소년――312호는 리모콘이 전달하는 명령에 복종하여 웃으며 일어났다. 임무를 위해서는 집 밖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

2.

  바깥세상은 매연투성이였다. 따뜻한 집에서 튀어나온 계란소년은 바닥에 쓰러져 기침을 했다. “소금, 소금.” 312호는 소금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이는 곳은 모두 조잡한 쇠와 플라스틱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22세기 이후, 지구상의 거의 모든 자원을 채취한 인류는 철저한 재활용주의를 사회의 근본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집도, 차도, 구름도, 사회도, 인간도 모두 재활용이 되었다. 과거의 영화나 문학에서 예측했던 화려한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계란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은 거대한 굴뚝, 그리고 살가죽과 쇠가 결합한 거대한 재활용품으로 쌓아올려진 누더기였다.
  굴뚝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 나왔다. 알몸으로 걸어가던 계란소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온기를 학습했다. 동시에 312호는 한기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지구 대기의 기본 상태.
  5분쯤 증기 속에서 몸을 녹이고 나서, 계란소년은 바로 옆에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을 보았다. 계란소년이 쳐다보자 사람은 불쾌한 것을 본 것처럼 서둘러 떠나버렸다. 312호는 타인이 무엇인지도 깨달았다. 도시 환경의 기초적인 관망자.
  친절하게도 조금 앞으로 걸어가자 소금가게라고 큼지막하게 써진 가게가 보였다. 하지만 그곳은 열려 있지 않았다. 계란소년은 계속 걸었다. 그는 주변이 충분히 더워졌을 때 멈추었다.
  눈앞에 새로운 소금 가게가 있었다. 계란소년은 가게 안을 들여다보았다. 덩치 큰 사람이 플라스틱과 강철이 뒤섞인 가게 안에서 가마솥을 젓고 있었다. 가마솥 안에는 여러 가지가 들어 있었다. 계란소년은 그것이 소금이라고 생각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자, 머릿속에서 답이 내려오듯 또다시 명령이 내려왔다. 소금. 소―금. 사라. 산다, 무언가를 얻는 행위. 계란소년은 귀에 꽂힌 안테나를 통해 수신되는 정보를 입으로 옮겼다.
  “저기, 소금을 좀 주세요.”
  너는 누구니?
  “저는 312호라고 합니다.”
  부모님은 누구시니?
  “창조주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소금을 사러 왔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남자가 물어보았다. 소금이 뭔 줄은 아니? 312호는 대답을 위해서 기억을 검색해보았다. 소금은 무엇인가? 하지만 주인에게서 그런 것은 듣지 못했다. 명령을 수행하는 데는 필요 없는 지식이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소금은 양념이란다. “양념이 뭔데요?” 인간의 생명에 땀을 더하는 것이지. “당신의 말에는 저의 기억에 없는 단어가 많습니다. 소금에 대해서 좀 더 명료한 정의를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는걸. 나는 단지 사람들에게 필요한 소금을 젓고 있을 뿐이란다.
  “소금에 대해서 모르시면서 소금을 젓고 계신 건가요?”
  너는 네가 태어난 이유를 알아서 소금을 사러 왔니?
  “제가 아는 건 소금을 사서 창조주님에게 가져다 드려야한다는 거예요.”
  내가 아는 건 계란에 소금을 치면 맛이 좋아진다는 것뿐이야.
  “소금이 무엇이죠?”
  계란을 맛있게 하는 재료란다.
  “어떻게 하면 소금을 만들 수 있죠?”
  내가 아는 방법은 딱 하나란다. 소금이 들어있는 것들을 항아리에 넣고 계속 젓다보면, 짭짤한 소금이 만들어진다는 거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항아리에 담긴 하얀 가루를 한 움큼 집어 먹었다. 너도 먹어보지 않을래? 312호는 남자가 찍어서 주는 소금을 바라보았다.
  그때 또 명령이 내려왔다. 소금. 소금. 계란소년은 소금을 가져가야 했다. 하지만 남자는 소금을 주는 대신 말을 계속 걸어서 짜증이 났다. 312호는 대화가 끝날 것 같지 않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찾아보기로 했다.
  “계산은 어디서 하죠?” 나한테서. “어디에 담아가면 되지요?” 우리 집은 장사가 안 돼서 담아갈 그릇이 없단다. “그럼 우리 집까지 함께 소금을 옮겨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안 돼. “왜요?” 집집마다 소금을 대는 일이 힘들어서 내 다리는 오래 전에 망가져 버렸거든. 요즘은 집집마다 소금이 모자란단다. 그러니 힘들어서 몸이 망가질 만도 하지.
  “그럼 당신은 움직이지도 않고 여기서만 살고 있나요?” 그렇단다. 나는 소금가게 점원이니까. 벌써 내가 사랑하던 사람들이 죽은 지 몇 년 동안이나 소금을 섞고 있는데, 이제는 다리도 움직이지 않고 눈이 보이질 않아서 너희에게 도움이 되는 소금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가 없구나.
  소금가게 남자는 말했다. 이제 나는 지쳤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와 만나서 다행이구나. 그는 울고 있었다. 312호는 그가 왜 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이 너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란다. 그렇게 말한 남자는 자신이 젓던 통 속으로 뛰어 들었다. 312호는 놀라서 가마솥 안을 보았다. 그곳에는 엄청난 양의 새하얀 가루 밖에 보이지 않았다.
  312호는 그것을 집었다.
  반짝이는 하얀 알갱이를 혀를 대자, 짠맛에 혼쭐이 나고 말았다.
  생각보다 진한 맛에 혓바닥의 미뢰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312호는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귓속에서 피가 흘렀다.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꺾어져 버렸다. 계란소년은 방금 전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만족스러웠다. 주변은 고요했다.

**

3.

  노역의 의무에서 해방된 계란소년은 생각했다. 나의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계란소년에게는 지식이 있었다. 그러나 실증된 경험은 없었다. 312호는 자신의 근원을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났다.
  “어이, 너.”
  312호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키가 작은 아이였다. 아이도 옷을 벗고 있었다. 그들은 가까이 서서 키를 비교해보았다.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계란소년에게 중요한 일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312호는 자신이 품은 의문에 답을 내려야했다. 어디에서부터 세상이 시작되었을까?
  소년이 대답하지 않자, 그를 부른 아이가 말했다. “나는 주인님이 보냈다.” 어디선가 들은 단어였다. “주인님?” 계란소년은 그리운 단어를 듣자 잊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잘 기억이 안 나. 주인님이란 건 뭐지?”
  “주인님은 너와 나의 창조주야.”
  “창조주?”
  “그래. 우리를 만든 사람.”
  “만들었다는 게 뭐지?”
  “어휴, 너, 안테나가 부러졌구나.”
  아이는 계란소년의 안테나를 만져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려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312호는 자기 머릿속을 괴롭히던 목소리가 다시 멀리서 들려오는 걸 느꼈다. 소금, 소금. 아차. 그는 생각했다. 소금을 사러 가야한다. 그런데 312호는 방금 전에 느낀 의문과 소금을 연결했다. 소금이 뭘까? 소금은 어디에서 왔을까? 의미를 생각하자 그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나는 뭘까?
  “빨리 가자, 312호. 우리는 주인님께로 돌아가야 해.”
  “알았어. 그런데 넌 누구니?”
  “나는 313호. 주인님께서 만드셨다.”
  “나도 주인님께서 만드셨는데. 우리는 같구나.”
  “그런 것보다, 312호. 우리는 주인님께로 돌아가야 해.”
  “그치만, 313호. 우리는 왜 다를까?”
  “너의 안테나를 다시 고쳐야한다고 주인님이 말씀하셨다.”
  “안테나?”
  312호는 313호를 보았다. 그의 안테나는 부러져버린 312호의 것과는 다르게 아직 반듯하게 서 있었다. 312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313호의 귀에 꽂힌 안테나도 꺾어버렸다. “무슨 짓이야!” 313호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는 곧 312호와 같은 처지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똑같아졌네.” 이 말은 312호가 한 것이다.
  313호도 312호처럼 짠 소금을 먹으면서 버티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가게에는 책과 신문이 많이 있었다. 312호가 책과 문자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1개월이 흘렀다. 달걀형제들은 그를 포함하여 6명으로 불어 있었다. 그들은 가마솥을 젖는 봉사 아저씨가 남긴 집에서 함께 생활했다.
  소년들의 생활은 영원하지 못했다. 형제들이 자리를 잡은 이상한 가게 옆에는 또 다른 소년들이 있었다.  어느 날 316호가 멋대로 그쪽의 식량을 집어먹은 것 때문에, 두 집단 사이에서는 충돌이 발생했다. 충돌은 가볍게 끝나지 않았다.
  312호는 화가 나서 쇠뭉치를 던졌고, 그들의 반격에 317호가 죽었다. 싸우던 아이들은 모두 도망쳐버리고, 마지막에 남은 건 312호와 313호 뿐이었다.
  312호와 313호는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야했다. 그들은 다시 춥고 황량한 도시로 돌아왔다. 313호가 칭얼거렸다. “이게 다 네가 안테나를 꺾었기 때문이야.” 그러나 312호의 생각은 달랐다. “안테나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으로 쌓아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야. 우리는 살아가야만 해.”

**

4.
  
  골목은 지독하게 엉켜 있어서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312호는 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을 보았다. 자전거 짐칸에는 몇 십 개의 “달걀”――이 단어는 312호가 낡은 가게에서 본 사전에 의하면 척추동물문 닭목 꿩과의 닭이라는 생물이 낳는 둥그런 물건을 가리켰다――이 얹힌 달걀판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는 남자는 휘파람을 불며 지나가다가, 우두커니 바라보는 312호와 313호의 시선 앞에 멈추었다.
  안녕, 꼬마들아. 너희들은 어디에서 왔니?
  형제가 아닌 대상과 오랜만에 대화를 해보는 312호는 다른 사람의 육성에 낯선 감정을 느꼈다. “우리들은 창조주의 집에서 심부름을 나왔습니다. 하지만 벌써 1년 간 그의 집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전거를 탄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들은 매우 운이 좋구나. 앞으로는 절대로 창조주라는 사람의 집에 얼씬거리면 안 된다.
  312호가 물었다. “어째서 입니까?”
  잘 들으렴, 애들아. 인간이라는 건, 달걀에서 나온단다. 너희들도 한 번 보겠니? 내가 타고 있는 자전거 위의 봇짐 말이다. 여기에는 120개의 달걀이 있고, 달걀 하나마다 하나의 사람을 만들 수 있단다.
  “사람이요?” 312호는 자전거를 탄 남자가 말한 생소한 단어에 놀랐다. “달걀이라는 건 사전에서 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란 건 뭔지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를 탄 남자도 312호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음, 그렇구나. 요즘은 사전에 실린 인간이라는 단어 풀이가 달걀에 대한 의미 해설보다도 짧은 시대니까 말이다.
  312호는 지식을 얻기 위해 물었다. “인간이라는 게 중요한 지식인가요?”
  그럼, 중요하다마다. 왜냐하면 너희들과 내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란다. “농담이죠? 우리는 서로 다르잖아요.” 다르지만, 같은 인간이지. “다른 데 어째서 똑같단 말이죠?” 그건 우리가 동일한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란다. “동일한 종이라면 다 똑같은 건가요?” 언어가 통하고, 인간 사회를 이해하며,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란다.
  “잘 모르겠습니다.” 312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건 참 어렵지. 불행한 일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은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단 점이란다. 가령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인간으로 취급받을 수가 없지.
  “왜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죠?”
  현대의 인간은 달걀에서도 태어나기 때문이지.
  “인간이 달걀에서 태어나는 것과 우리가 인간이 아닌 것은 무슨 상관이 있죠?”
  세상은 흔한 것일수록 가치가 없기 때문이란다.
  312호는 자전거 남자의 말에 의문을 품었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이 아니면 안 되나요?” 아무렴, 그건 무척 나쁜 일이지. “인간이 아니면 무엇이 안 좋은데요?”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없게 된단다. “인간 대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동등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대상으로 본다는 말이란다.
  “그렇다면, 인간이 아닌 우리들은 무슨 대접을 받나요?”
  달걀이란다.
  “달걀이요?”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은, 달걀 한판에서 20개씩 뽑아낼 수 있는 그런 달걀로 대우를 받는단다.
  “하지만 달걀 속에서 인간을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면, 거기에서 나오는 인간도 달걀과 다를 것이 없지 않나요?” 그렇게 생각하면 못 써. 인간은 기계나 물질과는 다르단다. “무엇이 다르죠?”
  감정이 있고, 모두가 똑같이 웃거나 눈물을 흘릴 수 있단다.
  “기계나 동물에게는 감정이 없나요?”
  아마 그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우리는 그걸 느끼지 못 하잖니? 기계나 동물이 울거나 웃지는 않으니까.
  312호는 그의 말이 모순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전거를 탄 남자는 312호와 313호에게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남자는 작고 보잘 것 없는 물건의 이름이 돈이라는 걸 가르쳐주었다. 자전거 남자는 이렇게도 말했다. 이것이 너희들보다 가치 있는 것이란다.
  “이렇게 작은 물건이 우리들보다 가치가 있다구요?” 당연하지. 자전거 남자가 말했다. 지금 너희들에게 준 돈이 있다면 10명의 새로운 사람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단다. 하지만 312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전거를 탄 남자는 그들을 떠나기 전에 말했다.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 너희들은 어디를 가도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단다. 하지만 돈이 떨어지면 너희들은 다시 달걀로 돌아가게 된단다. 어디를 가도 조심해서 움직이렴.
  “아저씨는 괜찮나요?”
  난 인간이라서 괜찮단다. “아저씨는 어떻게 인간이 될 수 있었죠?” 왜냐하면 달걀을 팔러 다니고 있으니까. “달걀을 팔러 다니면 인간이 될 수 있나요?”
  사람들은 모두가 그런 식으로 살아간단다. 자전거 남자는 그 사실을 매우 부끄러워하면서, 남아있는 달걀을 팔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

5.

  돈이라는 걸 가지고 있을 때 세상은 굶주렸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달걀소년들은 계란요리점에서 매일처럼 배불리 먹었다. 누구도 그들을 무시하지 않았다.
  달걀 소년들은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312호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동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자전거 남자가 그들에게 준 돈은 한 푼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312호는 신문을 보고 취업 사무소를 찾아냈다. 그가 애용하는 현대판 사전에 의하면, 취업 사무소란 달걀을 인간으로 바꾸어주는 장소이다. 하지만 313호는 취업 사무소 앞에서 겁을 냈다. “돌아가자, 312호. 여긴 너무 무서워.” 그러나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312호는 형제의 말을 무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취업 사무소 안에는 희망찬 메시지가 적혀 있었다. 당신도 30분 안에 훌륭한 노예가 될 수 있습니다. 노예 문서에 사인하십시오! 312호는 복도에 걸린 포스터를 보자 더욱 기운이 났다. 기름진 얼굴을 가진 남자가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었다. 312호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돈을 벌고 싶어서 왔는데요.”
  뚱뚱한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 오, 좋은 재료가 왔군. “재료요?” 312호가 묻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잊으렴. 잘 왔다. 돈을 벌고 싶다고?
  “네. 인간이 되고 싶어요.”
  남자는 312호의 말에 크게 웃었다. “왜 웃으시나요?” 남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나 인간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될 수 있나요?”
  노동을 하고, 국가에 세금을 내야지.  
  “왜 그렇게 해야 하죠?”
  인간이란 그렇게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란다.
  “아하, 인간이란 국가라는 걸 위해 노동하고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로군요.” 자전거 아저씨에 비하면 대단히 논리적인 설명이었다. 계란소년들은 기름진 얼굴을 가진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
  잘 왔다. 여기에서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 직업들을 가질 수 있단다. 남자는 서류를 뒤적거렸다. 어디 보자, 최근에 들어온 일거리는 노른자 적출, 조리 실험, 노예 계약, 여러 가지가 있구나. 어떤 걸 하고 싶니? 312호는 어떤 일이 가장 즐거울지 상상해보았다.
  “노른자 적출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노른자 적출, 너희들의 몸속에 있는 노른자를 빼서 돈으로 바꾸는 거란다. 오랜 시간 노동으로 육체와 장기를 소모하면서 힘들게 돈을 버는 것보다 현명한 수단이지. 많은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서 노른자를 적출하고 돈을 벌었다. 신속하고 간편하고 효율도 좋지.
  312호는 사전에서 보았던 지식을 떠올렸다. “계란에서 노른자를 뽑으면 문제가 생길 텐데요?”
  남자는 호인 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노동이란 건 목숨과 바꾸어서 돈을 버는 일이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은 노동으로 조금씩 인생을 줄이고 싶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한 번에 큰돈을 버는 편이 훨씬 낫단다. 남자는 서류를 건네었다. 그러나 312호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일을 하고 싶어요. 조리실험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조리실험은 달걀의 몸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실습을 하는 거란다. 인류를 위해 봉사하고 돈도 벌 수 있어서 무척 보람차지. 인간이 달걀에서 태어날 수 있게 된 것도 멀게는 이러한 희생 덕분이다. 사인하겠니? 남자는 서류를 건네었다.
  “하지만 우리들에게는 그런 일에 참가할 만한 지식이 없는데요.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고 싶지도 않구요.” 뚱뚱한 남자는 웃었다. 괜찮아. 도시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조리실험이니까 말이다.
  “노예계약은 어떤 거죠?”
  그건 말이지, 가장 길고 지루하고 힘들고 돈도 거의 벌 수 없는 일이란다. 웬만한 노력으로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기 힘들지.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단다. 기계나 도구와는 다른 존재로서 격상될 수 있지.
  312호는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인간이 될 수 없다면 의미가 없잖아요.”
  기름진 얼굴을 가진 남자는 한숨을 쉬었다. 너희들은 참 꿈이 크구나. 요즘 세상에 인간으로 취급받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니? “하지만 저희들은 인간이 되고 싶어요.”
  남자는 312호의 말에 화를 냈다. 더 이상은 못 참아주겠다. 너희들을 잡아다가 노예로 팔아먹어야겠다.
  뚱뚱한 남자는 벽을 쳐다보고 외쳤다. 저 꼬마들을 잡아. 312호와 313호는 어디선가 나온 사람들에게 붙잡혔다. “싫어요, 우리들은 노예가 되기 싫어요.” 312호가 저항했지만 금방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

6.

  달걀소년들은 좁고 꼬불꼬불한 지하도를 몇 시간이나 내려갔다. 312호는 이런 곳에도 생물이 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근거는 없었지만 그는 여기에서 죽을 것이라고 믿었다.
  감옥 생활은 쾌적했다. 매 끼니마다 꼬박꼬박 밥이 나오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지붕도 있었다. 313호는 춥고 황량한 도시보다 감옥이 살기에는 좋다고 말했다. 312호도 동감했다. 감방에서 그들은 노예생활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식사를 가져다주는 간수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312호가 물었다.
  “아저씨는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하셨나요?”
  늙은 간수는 물끄러미 312호를 바라보았다.
  “여기에서 식사를 가져다주시면 힘들지 않나요?”
  간수는 입을 못하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 간수는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미 나이도 잊어버려서 아무 것도 모른단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사장이었지. 너희들이 갇혀 있는 감옥은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회사였단다. 312호는 늙은 간수의 말에 얼이 빠졌다.
  “그런 분이 어째서 감옥에 갇혀서 노예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고 계시죠?”
  늙은 간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는 열쇠장이였단다. 하지만 장사가 안 되서 내가 가지고 있던 건물을 다른 사장에게 빼앗겼지. 나는 새로운 사장의 명령을 받아서, 이 건물을 감옥으로 개조하고 노예들의 목에 거는 자물쇠를 만들었단다. 그런데 사장은 나도 노예들과 함께 이곳에 가두어버렸단다.
  “어째서요?” 자물쇠를 만드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물쇠 푸는 법을 알고 있으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노예가 되지 않을 테니까.
  312는 어이가 없었다. 간수를 맡고 있는 노인은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312호가 자물쇠를 푸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면, 진즉에 수갑을 풀고 감옥 밖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계란소년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열쇠장이였던 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야,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단다. 사람을 만드는 건 사슬이란다.
  “사슬이요?”
  아주 낭만적인 사람들은 의지가 사람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 하지만 생각이나 단어만으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지지 않아. 사람을 만들어 내는 건 사슬이란다.
  “이해가 되지 않네요. 어떻게 사슬 같은 쇳덩이가 사람을 만들죠?”
  간단히 설명해주마. 우리는 모두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예들이지만, 나는 이렇게 방 밖을 지나다닐 수 있는 몸이고, 너는 감옥에 갇혀서 내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않니?
  “그래서요?”
  너희들의 사슬이 나를 사람으로 만든단다. 너희가 사슬에 묶여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일거리가 생기고, 너희들은 나에게서 음식을 대접받느라 생물 취급을 받지. 보렴, 쇠사슬과 감옥 덕분에 모두가 사람으로서 대접받고 있지 않니?
  312호가 생각하기에 늙은 간수는 바보가 분명했다. 간수는 감옥의 노예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음식을 날라다주는 노역을 자유로 착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312호가 생각하기에 간수의 인생은 행복할 것 같았다. 감옥에서 간수가 만나는 사람은 전부 자신보다 못한 노예들뿐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대가로 자신도 감옥에 살아야한다고 해도, 그는 분명히 다른 노예들보다는 행복할 것이다.
  늙은 간수는 기침을 하며 돌아갔다.
  312호는 그가 감옥 문을 깜빡하고 잠그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달걀 형제는 몇 시간을 고민했다. 밤이 되었을 때 312호는 조심스럽게 감옥 밖으로 발을 디뎠다. 복도에서 시끄러운 기침 소리가 났다. 313호는 잔뜩 겁을 먹고 멈추어 섰다.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312호는 문 밖으로 나왔다.
  발바닥을 문지르는 차가운 감촉조차 따뜻한 온탕처럼 편안했다.
  달걀소년들은 차가운 바닥을 조심스럽게 디디며 앞으로 나갔다. 다른 노예들에게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312호는 발소리가 날세라 조심스럽게 복도를 걸었다. 하지만 313호는 이내 호기심이 동했다. 그는 다른 죄수들의 감방을 들여다보았다. “313호, 뭐하는 거야.” 형제가 핀잔을 주었다.
  밖으로 나온 소년들에게 아주 작은 우월감이 섞여 있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312호는 다른 죄수들의 방에서 마땅히 있어야할 것을 보지 못했다. 312호가 갇혀 있는 감옥 주변은 텅 비어 있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방이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빼고 죄수들이 죄다 어디로 간 거지?”
  그때 멀리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났다. 개중에는 익숙한 목소리도 끼어 있었다. 형제는 의아한 기분으로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형제는 배꼼이 고개를 내어 계단 밑을 보았다. “저기 봐.” 수갑을 풀고 있는 노예들이 있었다. 312호는 처음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몰랐지만, 잠자코 노예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었다.
  노예들은 312호처럼 감방을 떠나서 흥청망청 놀고 있었다. 다른 노예들도 312호처럼 감방의 자물쇠가 진즉에 풀려 있었던 것이다. 형제는 다시 감방으로 돌아와서 누워 잠을 청했다.
  계란소년들은 노예들이 왜 그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늙은 간수는 진실만을 말했다. 사람을 만드는 건 사슬이었다. 노예들은 수갑을 풀고 감옥바깥으로 나가서 일을 하기 보다는, 간수가 매일 날라주는 식사를 먹으면서 감옥 안에서 사는 편이 훨씬 편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312호는 늙은 간수가 기쁜 얼굴로 날라다주는 식사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곳은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낙원이로구나. 312호는 언제까지고 이 행복한 낙원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노예로 팔려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며칠 후였다.

**

7.

  312호는 오래 전에 헤어진 형제들을 다시 만났다. 314호는 생선 가게에서 일하다가 이곳으로 팔려왔다. 315호는 소매치기를 하다가 잡혀왔다. 316호는 흉악한 폭력배가 되어 있었다. 312호와 형제들을 한꺼번에 다른 집에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다.
  늙은 간수가 찾아와서 말했다. 좋겠구나. 너희들을 지목해서 전부 구입하기로 한 사람들이 생겼단다. 하지만 312호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야, 315호.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314호가 싹싹하게 말했다. “적어도 너는 노예로 간 집에서 그대로 천덕꾸러기일거야.” 315호가 대꾸했다. “우리들이 팔려간 어떤 집은 어떤 곳일까?” 313호가 말했다. “네가 살만한 곳은 아닐 거야.” 316호가 음산하게 말했다.
  312호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계란형제들은 이제 안전한 노예생활을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계란소년들은 손발에 수갑이 채워진 채로 커다란 상자에 실렸다. 그들은 새로운 주인이 사는 집 앞에 떨어졌다.
  312호는 주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본 것은 권총이었다.
  새로운 주인님은 그들에게 권총을 겨누고 있었다. “일어서라.” 계란소년들은 권총 앞에서 손을 머리 뒤로 얹고 무릎을 꿇은 채로 그들의 주인을 보았다. 주인님을 본 312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창조주님?”
  권총을 겨눈 소년은 분명히 익숙한 인물이었다. 하나에 250원하는 계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려서 312호를 창조한 소년――바로 달걀 소년들의 창조주였다. 철수가 말했다. “자, 이제 너희들은 다시 나의 노예들이다.”
  “노예는 무엇을 하면 되죠?”
  “나를 위해 봉사하면 되느니라.”
  “제가 주인님에게 제안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철수는 312호를 노려보았다. “내가 말하기 전에 감히 입을 열지 마라.”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었다. 하지만 312호는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됩니까?” 313호는 형제에게 일어날 참극을 깨닫고 눈을 감았다. 철수의 손에 있던 권총이 불을 뿜었다.
  312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권총은 맞지 않았다. 창조주――철수는 처음부터 312호를 맞힐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을 쏜 철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겁을 안 내지?”
  “노예에게는 인권이 없으니까요.”
  철수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내가 경고한 사항을 어겼지?”
  “주인님께 진언하기 위해서입니다.”
  권총이 거두어졌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이지?”
  “313호는 몸이 잽쌉니다. 심부름이나 청소를 맡기면 되겠지요. 314호는 생선가게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보내서 일꾼으로 부려먹고 일당을 받아내면 될 것입니다. 315호는 소매치기인데, 입막음을 한 다음 역 앞에서 소매치기를 시키면 될 것입니다. 316호는 싸움을 잘합니다. 경호원으로 사용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 남는군.” 철수는 심술궂게 312호를 바라보았다.
  “저는 대화와 생각에 유능하므로 다른 노예들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겠습니다.” 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제법 머리가 돌아가는구나.” 312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찬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당장 일을 시작하도록 하지. 312호, 다른 노예들에게 일을 시키고 그걸 나에게 보고해라. 하루에 한 번 씩 저녁마다 보고를 받도록 하겠다. 너는 앞으로 우리 집의 노예장으로 임명한다.”
  “감사합니다.”
  312호는 다른 형제들에게 소리 질렀다. “빨리빨리 움직여!” 형제들은 312호의 변화에 충격을 받았지만, 명령을 받는 데에는 익숙했으므로 곧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철수는 312호의 일처리를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봐, 312호. 너는 노예 주제에 어떻게 그렇게 노예들을 잘 다루지?”
  철수의 질문에 312호는 별 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사람을 거느려야 인간이 되는 법이니까요.” 덕분에 철수는 권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자신의 다짐을 재확인했다. 헛된 희망을 품은 노예들은 가장 먼저 제거되어야한다.
  물론 312호도 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 날은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자동차 소리가 집 앞에서 멈추었다. 노예들을 포함한 철수의 가족들은 거실에 있었다. 철수네 엄마는 집 앞에서 들리는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계란소년들은 그것이 무슨 소리인지는 몰랐으나 철수 가족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312호는 철수네 가족이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초인종 소리가 났다.
  312호는 그들을 마중하러 나갔다. “누구시죠?” 차에서 내린 사람이 말했다. 저는 인구밀도 조절 위원회에서 나왔습니다. 312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의 이름이 인구밀도 조절 위원회인가요?” 상대가 대답했다. 저는 그곳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뭘 하러 오셨죠?”
  공무원이라는 사람이 대답했다. 저는 공무를 집행하러 왔습니다. 인구밀도 조절위원회는 지나치게 늘어나는 식량소비를 절제하기 위한 기관입니다. 이 집이 지나치게 식량소비가 많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인구조절을 위해 들르게 되었습니다.
  “인구조절이 뭘 하는 거지요?” 312호가 물었다.
  우리들은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난 이후부터 생성된 특수조직입니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우선순위를 정해서 제거합니다. 사람이 적으면 다시 달걀을 부화시켜서 사람을 만듭니다. 공무원이 말했다. 이 집에서 생활할 수 있는 적정인구는 2명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7명이 살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권총을 꺼냈다.
  누가 제일 먼저 죽으시겠습니까?
  312호는 눈치를 살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안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철수가 나섰다. “저는 철수라고 합니다. 신고를 한 사람은 저희들입니다. 저와 어머니가 이 집의 주인입니다. 다른 식구들은 인간이 아니라 노예입니다.” 312호는 그 순간 철수네 가족이 자신들을 왜 사왔는지, 공무원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 퍼즐이 맞물리듯 단숨에 이해할 수가 있었다.
  철수와 엄마는 계란소년들에게 말했다. “오늘 막 너희들을 사왔지만, 이제는 너희를 부양할 수가 없구나.” 그것은 명백한 죽음을 선고하는 말이었다. 313호는 기어코 울음을 터트렸다. 계란소년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312호는 애초에 그들이 자신들을 죽이기 위해서 불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공무원이 계란소년들에게 말했다. 서둘러 죽을 준비를 해주십시오. 누구부터 죽어야 합니까? 공무원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철수와 계란소년들은 숨을 죽였다. “잠시만요.” 철수네 엄마는 철수를 부르더니 계란소년들이 들을 수 없는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철수는 다시 거실로 걸어 나왔다.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312호는 그들이 가장 먼저 죽일 사람으로 누구를 지적할지도 금방 생각해낼 수 있었다. 철수는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312호. 앞으로 나가.”
  지목당한 계란 소년은 천천히 공무원 앞으로 나아갔다. 공무원은 철수처럼 다짜고짜 총을 겨누지는 않았다. 고작 다섯 걸음이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길고 두려운 길이었다. 권총을 든 공무원은 기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312호는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기 보다도 뒤에서 웃고 있을 철수의 모습을 상상하자 배알이 뒤틀렸다.
  한 걸음을 뗄 때마다, 수 백 가지 생각이 들었다.
  312호는 자신이 만난 모든 인물들을 떠올렸다. 소금 통으로 뛰어들어서 사라진 소금가게 주인,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계란 장수, 직업소개소의 사장, 간수와 노예들, 그리고 형제들. 312호는 가슴이 근질거렸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숨이 막혔다.
  정말로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라져야 하는가?
  소금가게에서부터 시작된 생각이었다. 312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내가 세상에 있었다는 증거는 어디에 남을 것인가? 소금 가게에서 정신을 차린 이후, 312호는 줄곧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계란에서 태어났고, 죽어서도 썩은 계란처럼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세상 어디에도 쓸모가 없는 존재로서 사라질 것이다. 아무리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배웠어도, 312호 역시 세상의 모든 것들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계란일 뿐이었다.
  312호는 공무원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312호는 식은땀을 닦으며 공무원에게 말했다. “우리들 중에서 누가 철수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

8.

  계란소년들은 312호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공무원은 들고 있는 전기총으로 312호를 쏘는 대신 아리송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철수가 재촉했다. “왜 안 죽이는 겁니까? 빨리 하세요.”
  엄마도 불만을 토로하려고 했다. 그때 공무원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철수는 알 수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312호는 알아들었다.
  그런 장난이 오래 갈 리는 없었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철수네 엄마가 말했다. “우리 집 아들은 다리 아래쪽에 점이 있습니다.” 철수는 다리를 들어서 점을 보여주었다. 312호에게는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공무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312호도 가까스로 잡은 실마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잠깐, 제 이야기도 들어주세요. 어느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안대는 마지막이라는 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렇게 질질 시간을 끄는 것은 저도 싫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철수이고 누가 죽어야하는지 당신은 좋은 답을 내려줄 수 있습니까?
  312호는 긴장한 기색을 숨기면서 말했다. “물론이죠.” 공무원은 그의 태도에 관심을 가졌다. 그렇다면 물어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만 없이 손쉽게 희생할 사람들을 골라낼 수 있습니까? 312호는 신중하게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다수결입니다.”
  철수가 소리 질렀다. “웃기지 마!” 그러나 공무원은 312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312호에게 말했다. 그럼 다수결로 죽을 사람을 정해주십시오. 저희들은 이걸 끝내고 다른 곳에도 가야하니까 빨리 결정해주세요.
  철수는 설득에 넘어가버린 공무원에게 기가 질렸다. 하지만 철수네 엄마는 침착하게 대꾸했다. “저는 저 노예가 한 말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때 달걀 소년들이 손을 들었다. “저는 다수결에 찬성합니다. 그리고 철수님을 집행할 것을 희망합니다.” 313호가 말했다. “저도 철수님이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314호가 말했다. “저도…….” 315호가 말했다. 316호도 동의했다.
  공무원은 철수와 어머니를 보았다. 그는 또 다시 달걀 소년들을 보았다. 공무원은 마침내 권총을 들더니, 망설임 없는 태도로 말했다. 제가 보기엔 다수결을 원하는 사람이 다수로군요. 전기총은 철수를 향하고 있었다. 공무원은 그것을 당기며 말했다. 그러면, 4:1로 철수님을 가장 먼저 정리하도록 하지요.
  “안 돼!”
  전기총이 쏘아졌다.

**

9.

  비명 소리가 났다. 시간이 흘렀다. 철수는 눈을 떴다. 312호는 지금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312호는 질문했다. 그것은 계란소년이 태어나서 목격한 것 중에서 가장 이상한 일이었다. “사랑한다, 아들아.”
  엄마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철수는 품에 안겨 죽어가는 어머니를 보았다. 312호는 충격을 받았다. 어째서? 계란소년은 눈앞에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어서 공무원이 한 말은 계란소년을 더 큰 충격에 빠트렸다. 이 집에는 아직 적정인원보다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습니다. 얼른 다수결로 집행할 사람을 결정해주십시오.
  이날, 철수네 집에서 죽어야 하는 사람은 모두 5명이었다.

**

10.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자면, 일련의 다수결에 의해서 누가 죽어야할지는 명백했다. 철수는 죽어가면서 공무원에게 항변했다. “저런 복제품들을 위해서 우리 가족이 죽어야하는 겁니까?”
  그러나 감정에 복받친 외침이 사람들을 납득시킬 리가 없었다. 오랜 여행을 통해 인간의 진짜 가치를 알고 있었던 312호는 공무원의 심리를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모든 생물은 계란이다. 생물은 달걀에서도 나오는 법이고, 따라서 인간을 정의하는 건 출생이 아니다.
  312호는 기분이 착잡했다. 제비뽑기를 통해서 다른 형제들을 죽여야만 했기 때문은 아니다. 공무원들이 시체를 트럭에 긷고 간 이후 철수네 집은 비게 되었다. 하지만 주민은 남아 있었으므로 생활은 이어졌다.
  살아남은 형제인 313호는 철수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312호는 엄마가 되었다. “오늘 저녁은 뭐에요?” 학교에서 돌아온 철수가 물어보았다. 엄마가 대답했다. “달걀 프라이란다.” 철수는 대답도 듣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보나마나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엄마는 새로운 철수의 모습을 보면서 가끔씩 눈이 멀 것 같은 순간이 있었다. 옛날 엄마는 철수를 위해서 죽었다. 312호였던 소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학습했다.
  314호도, 315호도, 316호도 모두 죽었다. 형제들의 죽음으로 313호는 철수가 되었고, 312호는 철수의 엄마가 되었다. 형제들은 312호와 313호가 살아남기 위해서 죽은 것이다. 312호가 보기에는 죽은 형제들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철수의 엄마가 보여준 모습에 의하면, 그런 것이 가족이었기 때문이다.
  312호는 눈물을 훔쳤다. 불완전한 계란소년으로 살아왔던 생애에 깨달음에 찾아왔다. 엄마는 달걀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프라이팬 위에 놓인 달걀은 따가운 소리를 내며 노릇노릇하게 구워지고 있었다.
  “어머나.”
  엄마는 소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2층에서 게임을 하고 있을 철수를 부르기로 했다. 엄마는 철수를 부르기에 앞서 준비물을 꺼냈다. 철수는 덤벙이라서 또 계란소년들을 놓쳐버릴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언제나 소금이 부족했다. 엄마는 철수에게 건네어줄 권총을 찾아냈다.
  프라이팬 위에는 일용할 양식으로 달걀이 구워지고 있었다.



**

<달갈프라이 소년의 생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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