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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잉여인간

2010.05.15 21:0405.15

                                                잉여인간

배원은 친구인 수태의 술주정을 들어주러 서면에 나갔다. 수태는 그런 배원을 붙잡고 주정을 부리면서 말했다.

“망할! 이놈의 세상은 왜 나 같은 사람을 알아주지 않는 거냐고! 안 그려? 왜 나 같은 사람을 잉여로 만들어 가지고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지 않는 거냐 이 말이야.”

술에 취해 두 눈이 풀린 수태의 주태를 보면서 배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의 생각이 이해는 갔지만, 무엇이든 하다보면 수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타이르며 말했다.

“쯧, 뭐 어쩌겠냐? 열심히 하다보면 뭔가 나오지 않겠어? 알바나 열심히 하자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잖아?”

수태는 손을 젓고는 배원의 말을 걷어차 버렸다. 그리곤 경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생각을 나도 안 해본 줄 아냐? 그 생각? 아냐, 틀린 생각이야. 이 세상은 우릴 잉여로 만들어 버릴 계획을 가진 걸 거야. 특히 교과부가 그런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으로 옮기고 있을 거야.”

그런 허무맹랑한 얘기를 듣던 배원의 머릿속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사는 이 나라의 학생들은 죽어라 공부를 열심히 해도 써지질 않는 잉여인간이 되어버리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입시가 치열하다고 해도 그런 잉여인간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현재에서는 그렇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역시 그건 아무리 봐도 억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동조 할 수 없었다. 누가 무슨 이유로 이 나라의 학생들을 잉여로 만드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 것 같고, 오히려 자신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한참을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12시를 넘겨서야 호프집을 나왔다. 배원은 술을 적당히 마셔서인지 멀쩡했지만, 눈이 풀렸던 수태는 대화를 나누면서 그냥 벌컥 술을 넘겨서 위태위태한 걸음걸이를 선보였다.
수태는 그런 와중에도 배원에게 술을 딱 한잔만 더 하자며 꼬득였다. 배원은 그런 그를 보면서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너 술 많이 취했다. 그리고 이 늦은 시간에 또 어디서 술을 마시겠다는 거냐?”
“아냐, 나 하나도 안 취했어.”
“거짓말 하지 마. 너 술 취했거든? 그러니까 썩 집에 들어가.”
“쳇 치사한 넘.”

수태는 그렇게 그를 노려보며 흔들흔들 거리면서 네온사인 사이를 걷기 시작했다. 배원은 그런 그를 혼자 보낼 수 없어서 얼른 뒤따라 그를 부축했다. 둘은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러다 아무 인적 없는 곳에 다다르자 수태가 말했다.

“야, 우리 정말 딱 한 잔만 더 하면 안 되냐?”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마셔대 놓고는 또 마시자고? 너 제 정신이야?”
“쳇, 정말 치사한 놈이네. 너 학교 다닐 때부터 그랬잖아? 원칙주의자였던가? 정말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학교 전체에 파다했었는데...”

수태의 갑작스러운 옛날 얘기에 배원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는 휘청거리는 수태를 다시 한 번 바로 잡으면서 말했다.

“그럼 넌 어떻고? 학교에서 사고 하나는 잘 친다고 소문 났었잖어.”
“쳇, 그건 어디까지나 내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었다고. 아니 아니지. 그건 아니었던가? 하, 뭐, 지금이나 그때나 난 잉여인간인 걸, 욱.”

수태가 말하다가 속이 안 좋았는지 배원을 밀어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골목길로 가 속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토해냈다.
배원은 토하는 수태를 기다리며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보름이어서 그런지 보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밝은 달은 주위에 푸른빛 같은 걸 내뿜는 듯 했다. 그래서 그 빛이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래서 한기가 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배원은 그건 어디까지나 기분 탓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터벅터벅 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골목에서 수태가 나왔다. 속에 있던 것을 전부 비워서 편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눈웃음을 지으면서 배원에게 말했다. 배원은 그런 그가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전부터 그는 그런 표정을 지으면 뭔가 일을 터뜨렸거나 터뜨릴 거라는 걸 암시했기 때문이었다.

“야. 우배원, 저 골목 안에 좋은 술집이 하나 있던데? 한 잔하고 가자.”

그 말을 들은 순간 배원은 역시나 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저 놈의 자식은 그렇게 쳐 마셔놓고도 또 마시고 싶나? 라 생각했다. 그는 일그러지는 표정을 애써 웃게 만들며 말했다.

“야, 이제 그만 마셔. 내일 알바 안 나가냐?”
“알바? 그딴 거 때려치웠어. 한 동안은 나 백수다? 크흑크크.”

수태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처지가 한탄스러웠는지 웃어버렸다.

“그래서 나도 같이 마시자고? 안 돼. 나 내일 일 나가야 하거든.”

그러자 수태는 배원을 노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표정은 마치 ‘그래 너 혼자 돈 벌어서 잘 살아라’ 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냐? 그럼 나 혼자 마시고 갈란다. 너는 집에 들어가. 토하고 나니까 정신이 드는 것 같거든, 집에는 혼자서 들어갈 수 있어.”

그렇게 말하고는 수태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배원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비틀거리는 그 모습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배원은 한 발짝 수태에게 다가서려했다. 그러자 어떻게 알았는지 오른 손을 들며 그에게 그냥 집에 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원은 차마 발을 땔 수 없었다. 그는 수태에게 말했다.

“내일 일을 가야해서 술은 같이 못 마셔도 옆에 있어줄 순 있어.”
“칫 됐네요, 이 사람아. 술친구가 어디 너뿐 인줄 아냐? 태준이 불러서 같이 한 잔 하면 되네요. 얼른 집에나 들어가라고.”

수태는 그렇게 말하며 손을 흔들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배원은 잠시 한 숨을 내쉬고는 그곳을 떠났다. 떠나면서도 그는 마음이 편치 안았다. 저 하늘의 달이 그렇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달을 보고 있자니 느껴지는 나쁜 기운 같은 것은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배원은 다시 한 번 더 기분 탓이라 넘기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쯧, 뭐 알아서 하겠지.”


다음 날, 그는 힘겹게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그렇게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머리가 띵했고, 어쩐지 잠을 한 숨도 못 잔 것 같이 어깨가 결리고 쑤셨다. 이불에서 꿈틀거리며 기어 나와 아직 쌀쌀한 밖에서 세수를 하고 이빨을 닦았다. 그런데 그 순간 배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배게 옆에 놓아둔 휴대전화의 화면에 비치는 발신자 번호를 보았다. 발신자는 수태였다. 배원은 잠시 자명종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배원은 통화버튼을 눌리고 전화를 받았다.

“야, 아침 대 바람부터 웬일이냐? 이 시간에는 자야할 녀석이.”

그렇게 배원이 말하자 휴대전화 너머로 수태의 섭섭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 날 그런 녀석으로 보지 마. 난 이제부터 달라질 거니까.]

수태는 전화너머로 그런 말을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배원은 그런 그가 한심스러웠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이 이번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대학 졸업 후 한동안 알바만 하던 수태는 가끔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지켜지지 않았고, 끝내 며칠 가지 않고 똑같이 잉여생활을 하며 살아갔다.

“또 그 소리냐?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다. 그리고 그 말 한지 얼마 안 되서 너 또 이전처럼 생활할 거잖아.”
[걱정하지 마셔. 그때처럼 그런 생활은 이제 안녕이야. 어제 술 마시면서 네가 한 말을 생각해봤거든? 그러니까 다 맞는 말이더라. 그래서 뭔가 해보려고, 그러면 네 말대로 뭔가 소득이라도 생기겠지.]

배원은 수태의 고분고분한 긍정에 놀랐다. 수태가 자신의 말을 긍정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배원이 뭔가 조언 같은 걸 하기만 하면, “됐네요. 이 사람아. 본인이나 잘 하세요.” 라고 말하기일 수였다. 그러니 그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자, 아무리 생각해도 수태 그 스스로가 알아서 태도를 달리 했을 리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래, 그걸 이제 알았냐? 뭐, 그것도 태준이가 너한테 설교해서 그렇게 된 거지?”
[태준이의 설교로 내가? 허, 참. 내가 그 녀석 설교로 이렇게 된 거라고? 아냐, 나 그 놈하고 어제 술 같이 안 했어. 어제 녀석한테 전화했는데, 아니 이놈이 전화를 받아야지. 그래서 나 혼자 마셨지롱. 그리고 술 마시고 나니까. 네 말이 다 맞다는게 깨달아지더라.]

수태는 그렇게 배원을 약 올리는 말투로 말하다가 이내 정색을 했다. 정색을 하는 수태의 목소리를 듣고 배원은 그를 믿어보기로 생각했다. 수태의 정색은 정말로 진지할 때가 아니면 하지 않는다. 싸울 때도 그는 약 올리는 말투로 상대방의 화를 돋아 싸움을 심하게 벌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겉으로 수태를 본다면 껄렁껄렁한 불량배 같이 보였다. 그렇지만 그의 정색은 그런 그의 모습을 한 번에 바꿀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너 이번에는 착실하게 일할 거지?”
[그렇다니깐.]

배원의 확답을 묻는 질문에 수태는 짜증을 냈다.
그러자 배원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배원은 수태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그래서 직장 없이 알바만을 전전하는 친구의 모습이 그 동안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래, 아무튼 열심히 하고, 오늘은 이만 끊자 나도 일 나가야 하니까.”

그렇게 전화를 끊은 배원은 잠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녀석도 정신 차리고 일자리를 구하려고 하니까. 나도 이렇게 있을 순 없어. 조만간 직장을 구해보는 거야.’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서 집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배원이 일하는 편의점은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넘어져 코 다을 곳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점 때문에 그는 그곳을 선택해 1년 동안 일하며, 웬만한 일들은 척척해냈다. 그래서 그는 편의점 점장에게 많은 칭찬을 받고, 알바는 좀처럼 손에 쥘 수 없는 보너스까지 받기도 했다.
배원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문을 열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며 큰 소리로 아침인사를 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자 저녁 타임 알바인 민테가 졸음에 찌든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아, 형 좀 일찍와주세요. 그래야지 제가 집에 빨리 가잖아요.”
“임마. 아무리 내가 일찍 온다 해도, 물품수량 확인 안 하면 집에 못 가는 거 알잖아? 그런 투정은 그만 해.”
“칫, 형은 정말 원칙주의자 인 것 같에.”

민테가 입을 쭉 내밀며 말했다. 배원은 그런 그를 보고 살짝 미소 짓고 카운터로 향했다. 카운터에는 이미 민테가 내놓은 물품수량 확인서가 있었다. 그는 그걸 들고 진열대로 가 진열대위의 물품수량이 맞는지 확인했다. 그런 다음 다시 카운터로 와 남은 물품수량과 계산기 속의 잔돈들과 맞춰 보았다.
계산과 물품수량은 일치했다. 그는 민테를 보며 말했다.

“계산은 맞는 것 같고. 그래, 수고 많았다. 들어가서 쉬어.”

민테는 이제야 해방이라는 표정을 짓고, 곧바로 휴게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그러고는 예의 바른 말투로 조롱이 담긴 말을 배원에게 내뱉었다.

“형, 오늘 하루도 고생 많이 하세요.”

그 말에 배원은 잠시 얼굴이 찡그려 졌지만, 그게 악의가 담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도 똑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 오늘 저녁 너도 고생 많이 해라.”

그러자 민테는 얼굴에 웃음을 뛰며 “네!” 라고 말한 뒤 문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나자 한 동안의 평화로운 고요가 일렀다. 그는 그 고요 동안 수태의 말을 잠시 생각했다.

‘일단 믿기로 했지만, 그래도 믿기지가 않은데? 열의에 찬 건 많이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떻게 생각해도 믿음이 가지 않았다. 대체 무슨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걸까? 배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수태의 앞으로의 행보를 예상해보았다. 하지만 역시 그의 생각에 수태는 금방 그 마음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그는 일하는 동안 수태가 포기할 때를 생각해, 그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그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친구를 놀리는 것보다 웃긴 건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며칠 후,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버렸다. 예상과는 달리 수태는 괜찮은 계획을 수립해 놓은 상태였다.
여느 때처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8시에 귀가한 그는, 간단하게 씻고 수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였기도 했지만, 만약에 포기를 했다면 실컷 골려줄 생각으로 말이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수태의 목소리는 생각과는 달리 꽤 밝은 목소리였다. 배원은 수태에게 그 동안 무슨 일을 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수태는 의기양양해 하며 말했다.

[일단 주차도우미 아르바이트를 구했어. 주당 급료는 한 30만 원 정도던데? 꽤 쓸 만할 것 같더라. 그 보다 이 형님 말씀 좀 들어봐라. 내가 괜찮은 중소기업 하나 알게 됐거든? 거기 학력 안 따진다더라. 그래서 말야. 너 나하고 같이 거기에 서류 넣어보지 않을 라냐?]
“무슨 회산데?”
[별 회사는 아니고, 무슨 무역을 한다던데? 회계인턴이던데 어때?]
“무역 회사의 회계라… 그런데 난 회계는 좀… 그렇다.”
[회계가 어때서? 게다가 이 회사 소문이 좋아. 일 잘하면 인턴에서 정규직도 될 수 있다고.]

수태의 설득에도 배원은 끝끝내 그의 제의를 거절했다. 그러자 수태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그래? 암튼 너 후회해도 몰라. 너 그래도 공부하나는 괜찮게 했잖아.]
“별 걱정을 다한다, 걱정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니까.”

그 말과 함께 그는 전화를 끊었다. 배원은 전화를 끊고 정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빨라도 한 몇 달 정도는 아무런 계획 없이 지낼 것 같았던 수태가, 꽤 빠르게 직장을 알아보고 알바자리를 구했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뭐, 물론 그가 미련 곰탱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여태 수태를 알아왔기 때문에 그의 성품으로 봐서는 그렇게 한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수태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신이 이렇게 있다가는 그에게 잡혀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그에게 설교를 늘어놓으면서 타일렀는데, 오히려 이제는 자신이 그에게서 조언 같은 걸 들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뭐, 그게 무슨 상관이야? 녀석이 먼저 직장을 얻으면 좋은 거지.’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그런 느낌을 억눌렀다. 사실이 그렇다. 남한테 설교 듣는 것과 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랴, 옛말에도 아무리 못한 사람이라도 배울 점이 있다면 배워라, 라는 말이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래도 배원은 수태에게 설교를 듣는 자신이 떠오르자 못내 웃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아침 편의점에 출근을 하는데, 편의점 출입구에 아르바이트생 공고가 붙어있었다. 배원은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며 민테에게 물었다.

“저 밖에 뭐야? 알바생을 뽑는다니 누구 잘리나봐? 설마 내가 잘리는 건 아니겠지?”

그러자 민테는 고개를 젓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좋겠죠? 하지만 누가 잘린다나 그런 건 아니에요. 형, 제가 말이죠. 취직을 하게 됐어요!”
“뭐!? 네가 취직을 했다고? 설마…”
“설마가 뭐예요, 설마가. 정말 저 취직했어요. kt 전화상담원이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 취직하기 어려운데 그거라도 어디에요?”

민테는 그렇게 말하며 입을 쭉 내밀었다. 하긴 그거라도 어딜까? 자신은 아직 아르바이트생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그런 생각을 하자 배원은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그는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띠며 민테에게 말했다.

“그거 정말 잘 된 일이네. 방금 건 미안다. 그래서 언제까지 일하게?”
“통보는 어제 받았지만 출근은 다 다음 주부터 하래요. 그래서 일 할 사람 구하고 출근할 때까지만 하려구요.”
“그래? 그렇구나. 에휴~”

그 말과 함께 배원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을 본 민테가 그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물었다. 배원은 그의 친절이 담긴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냐, 아무것도.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거 있지? 내 친구 녀석은 일자리 알아봐서 이력서를 넣었고, 넌 취직해서 알바를 그만두자나.”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요. 형도 조만간 좋은 곳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래야 할 텐데…”

배원은 풀죽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직원휴게실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나왔다. 민테는 그런 그를, 다시 한 번 웃는 얼굴로 위로를 하고 편의점을 나갔다.
그날 오후 3시 편의점 점장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점장은 40대의 인자한 얼굴의 전형적인 모습의 아저씨였고, 그의 성격도 그런 모습과 어울리는 화 잘 안내는 스타일이었다.
점장은 보통 한 시쯤 돼서 가게에 나오는데, 오늘은 보통과는 달리 두 시간이 지난 세 시에,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청년 한 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배원은 점장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청년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점장은 공고를 보고 전화한 대학생이라고 말했다. 청년은 자신을 00대학 00과 10학번, 윤제빈 이라 소개했다. 배원은 그런 그에게 어색한 웃음을 뛰어보였다.
점장이 말했다.

“앞으로 민테 파트에 들어갈 건데, 이 녀석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한 번도 안 해 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네가 민테가 나갈 때까지 잘 좀 가르쳐줘. 베테랑만 믿는다?”

점장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은 볼일이 있어 나가봐야한단 말을 남긴 뒤 편의점을 나갔다.
점장이 나가고 나자, 배원은 편의점 알바 생 초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고민해보았다. 그러고는 일단 계산기 사용법과 카드결제 법을 알려주기로 결정했다. 그런 다음 담배 이름들을 외우게 하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는 제빈을 부르며 앞으로 그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했다.

“일단 내 이름은 우배원이고, 이 편의점에서 일 한지는 1년 정도 됐거든. 그런데 네가 명심해야 할 게 있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만만한 게 아니야.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보기에는 편해보여도 여러 잡일들이 많아. 그리고 종종 취객도 상대해야 해. 게다가 물품 수량과 판매량이 일치하지 않으면 그 시간의 아르바이트생이 책임 저야 하고. 또…”
“그래서요? 그래서 요약하자면요.”
“요, 요약…하자면?”

배원은 당돌하게 자신의 말을 자르는 제빈의 행동에 잠시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네가 알아야 할 걸 가르쳐줄 거라는 얘기야.”
“뭐, 관리나 그런 거요?”

배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뭐 설명보다는 직접해보는 게 낫긴 한데, 그래도 일단은 들어두는 게 좋을 거야.”

배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카운터로가 담배 진열대를 가리키며 말했다.

“담배 종류들은 다 알아야 돼. 손님들이 어떤 걸 찾을지 모르니까. 담배 이름 줄인 말도 알아야 하는데, 그건 점장님이 만들어놓은 매뉴얼이 있으니까. 그거 보면 돼. 그리고 바닥 청소는 쓸고 나서, 밀대걸레에 물을 듬뿍 먹이고 꼭 짜서 닦으면 돼. 이건 알겠지?
아, 그리고 우리 편의점은 물건 들어오는 시간이 7시고, 진열 품목 리스트는 카운터 아래에 있어. 그리고 또…”
“유통기한 지난 음식은 먹어도 된다는 거요?”
“어? 어. 그래, 뭐 잘 아나보네.”
“이 정도는 이제는 편의점 알바 상식 아니에요?”

제빈은 그까짓 거 별거 아니라는 말투로 배원에게 말했다. 배원은 좀 전처럼 당황했지만,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애써 그런 표정을 숨겼다. 그러면서 제빈을 보며 생각했다.

‘이 녀석 입만 산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제빈은 입만 산 녀석이 아니었다. 같은 파트에서 일하면서 서툰 것들을 가르쳐주자 제빈은 곧잘 그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은 쩔쩔매던 신용카드 결제조차 한 번 일러주자, 쩔쩔매는 기색 없이 전에도 해봤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그 일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이 일하면서부터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퇴근하기 전 매출을 정산하는데 판매품목들과 계산기 속의 액수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물건을 훔치는 것일까? 라고 생각했지만, 감시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찍혀있지 않고, 손님들이 물건을 집어 계산을 하는 것과, 제빈과 배원 그 자신이 일하는 모습만이 찍혀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제빈과 배원의 월급에서 충당하고, 일부는 점장이 대신 맞지 않은 매출의 돈을 댔다. 그러나 그런 일이 빈번해 지자 점장이 배원과 제빈을 물러 물었다.

“요즘 매출액수와 팔린 물건들의 수와 일치하지 않다니, 대체 어떻게 된 겐가?”

그 물음에 배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왜 판매품목과 매출이 맞지 않는 것일까? 그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자신은 계속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고, 제빈은 가게 안을 돌아다니면서 물건의 수량을 확인하고 진열대를 청소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물건을 훔치기라도 한다면 금방 들킬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감시카메라에 찍힌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계산기에서 돈을 빼갔다는 소리가 된다. 그러나 감시카메라 때문에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대체 그 돈들은 어디로 갔다는 말인가?

“저희도 그게 궁금해요. 형과 전 계속 가게에서 일했어요. 쉴 때도 한 눈 판적도 없고요.”
“허허. 그것 참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안 그래도 요즘 불경기라 매출도 줄어드는 판인데,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다간 자네들 월급도 주지 못할 판국까지 가는 건 아닌가 싶네.
뭐 어찌됐든, 자네들이 좀 더 가게 보안에 신경써줬으면 하네.”

점장의 신심당부에 둘은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점장은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이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판매물건들과 매출이 맞지 않고 오히려 더 차이가 났다. 게다가 물건까지 없어지기까지 했다.

“이번엔 물건까지 없어졌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아니 자네 둘은 계속 가게에 있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물건이 없어질 수 있다는 건가? 어디 설명 좀 해보게.”

점장의 말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물건들을 훔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자리를 비우지도 않았는데…’

배원이 입술을 깨물며 그렇게 생각했다.

“대답을 못하는 거 보니 하는 수 없이 월급을 깎을 수밖에 없겠네.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손실이 크다네. 그런데 물건들까지 도둑맞았는데 어떡하겠나, 아르바이트생 월급이라도 줄여야지. 안 그러면 수지를 맞출 수가 없는데. 이해해주게나.”

점장의 말에 배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들이 가게를 잘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돈과 물건이 도둑맞았다. 그런데 월급을 내린다는 말에 어찌 반대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아르바이트에서 잘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배원은 점장님에게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하며, 다음번에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점장은 고개를 까닥거리면서 알겠다고 말하면서 시계를 보았다.

“이런 시간이 벌써. 약속시간 늦겠다.”

그렇게 말하며 점장은 급히 편의점을 나갔다. 그런데 점장이 나가고 나자 제빈이 짜증난다는 말투로 배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휴, 이제 좀 살 것 같네. 젠장, 왜 요따위 일이 생겨서 내 월급이 깎이는 거냐고. 이건 다 형 때문이에요. 형이 가게를 잘 지켰으면 이런 일 따윈 없었을 거 아니에요?”
“아니, 그게 어떻게 나 때문 인 건데?”
“왜냐고요? 전 한 눈 판적도 없고 열심히 일했으니까요. 하지만 형은 다르잖아요. 가끔 손님이 없을 때, 형은 멍 때릴 때가 많았어요. 안 그래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것 때문에 다 내 탓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그럼 제 탓이라는 거예요?”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누구 탓이라는 거예요. 가뜩이나 궁핍한데, 더 궁핍하게 생겼잖아요. 게다가 월급도 아직 받기 전인데 깎이게 되다니…”

갑자기 돌변한 제빈의 태도에 배원은 당황했다. 그래서 한 동안 머뭇거리며 제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월급이 깎였기 때문에 그러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날에도, 점장에게 얘길 듣고 난 후 태도 그대로였다. 거기다가 그는 배원을 무시하는 말투를 사용했다.
처음에 배원은 화가 덜 풀려서 저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무시하는 말투와 함께 버릇없이 행동했다. 그러다가 점장이 잠시 편의점에 들리거나 편의점에 있을 때는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게다가 가게 감시를 강화했는데도 계속 팔린 물건과 매출이 일치하지 않자, 제빈은 그걸 배원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리고 그것은 민테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둘 시기가 다가오자 더 심해졌다.
배원은 그런 그의 행동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손님이 뜸한 3시에 제빈을 불러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너 자꾸 나한테 왜이래? 내가 너한테, 무슨 죽을죄라도 지었냐? 아니면 돈과 물건을 네가 훔쳤다고 말했냐.”
“왜 이러냐고요? 형이 훔쳤잖아요. 제가 봤는걸요.”
“뭐?”

배원은 제빈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어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배원은 심호흡을 한 번하고 제빈에게 증거를 대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의기양양하며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건넸다.
그에게서 사진을 건네받은 그는 사진을 보았다. 사진에는 오늘 자신이 입고 온 복장에다 자신과 똑같은 머리를 한 남자가 찍혀있었다. 그 남자는 진열대에서 뭔가를 훔치는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배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빈을 보았다. 제빈은 싹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점장님! 제가 범인을 잡았어요, 여기 사진도 있어요!”

제빈의 말에 배원은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인자한 얼굴의 점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그러고는 제빈에게 되물었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범인을 잡았다니, 대체 그게 무슨 소리냔 말이게.”
“그게 말이죠, 점장님. 제가 잠시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아니 글쎄 형이 물건을 훔치고 있는 거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범인이 보이면 찍으려고 들고 다니던 디카로 그 장면을 찍었죠.”

점장은 그 말에 눈이 휘둥그레 해지면서 고개를 배원에게 돌렸다. 배원은 그런 그의 눈빛에 입의 침샘이 마를 정도로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는 아닌데, 난 아닌데 왜 내가 그런 누명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점장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정말로 자네가 훔쳤나? 정말, 자네가 훔친 겐가?”
“아뇨! 전 절대 훔치지 않았어요. 제가 왜 편의점 물건을 훔치겠어요?”

배원은 목소리를 높이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내 그 주장은 무의미 해졌다.

“저와 형이 점심 먹고 화장실에 갔거든요. 그런데 전 배가 아파서 좀 있다가 나갔어요. 그런데 화장실에서 나와 보니 형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먼저 갔나 싶었는데 가게에 와보니까 형이 물건을 훔치고 있던 거예요.
전 조용히 디카로 사진을 찍었죠.”
“배원아 그게 정말이냐?”
“네, 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그래서 먼저 나왔죠. 하지만 배가 아픈 거예요. 그래서 화장실로 다시 갔어요.”
“거짓말! 거짓말 하지 마세요. 분명 제가 갔을 때 형은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있었어요. 감시카메라에도 다 찍혀 있을 거예요.”

그 말에 배원과 제빈, 그리고 점장은 감시카메라를 확인하기 위해 직원 휴게실로 들어가, 휴게실 한쪽에 나 있는 문 하나를 더 통과했다. 그 문을 지나자 바로 감시카메라 장비가 비치된 좁은 방이 나타났다. 그러고는 감시카메라가 찍은 화면들 중 문제의 화면을 재생시켰다.
배원은 감시카메라에 자신이 찍혀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감시카메라가 찍은 장면에는 배원의 모습이 분명하게 찍혀 있었다. 제빈은 그걸 보여주며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웃고는 말했다.

“보세요, 이래도 발뺌 하실 건가요?”
“정말 자네가 훔친 거였다니… 난 믿을 수가 없네.”

그 말에 점장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배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원은 고개를 저으며 필사적으로 항변해보았다. 하지만 감시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한 남자가 분명하게 찍혀 있는 상황에서 어떠한 말도 변명에 불과했다. 그는 철썩 바닥에 주저 않으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난 아닌데… 왜 어째서…”

그가 허탈에 빠져있을 때, 점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상한 얼굴을 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배원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얼마나 상황이 어려웠으면 물건과 돈을 훔치겠나. 나도 이해하네, 요즘 세상이 불황이라서 이것저것 물가가 다 올랐지. 그래서 편의점 월급만으론 생활하기가 힘들게야. 하지만 물건과 돈을 훔치는 건 아니지 않나? 안 그런가.
뭐, 자네의 사정을 봐서라도 내가 이번만은 넘어가 주겠네. 하지만 다음부터는 어림도 없네. 하지만 일단 경찰에는 신고를 해야겠지.”

하지만 그건 위로의 말이라기보다는 배원을 더 처량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내 사정을 봐서? 난 아닌데… 게다가 봐주겠다면서 날 신고하겠다고? 그건 봐주는 게 아니잖아.’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제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미소 짓고 있었다. 배원은 그 모습에 이를 악 깨물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왜 웃는 거지? 내 꼴이 우스워서? 아니면 내가 이렇게 되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어서?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였다. 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의 전화를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 그리고 잠시 뒤, 순경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와 배원을 연행해 갔다. 그러면서 경찰들은 점장에게 참고인으로 같이 서로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점장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원은 연행되면서 계속 생각했다. 자신이 왜 경찰들에게 끌려가는 것일까? 여태 열심히 일해 온 내가 한 순간에 도둑이 되어버리다니 라고 말이다. 그래서 경찰에게 항의라도 해볼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항의조차도 현재로선 자신에게 불리하단 걸 깨달았다. 경찰들은 자기가 범인이라고 인정하는 거라고 생각 할 테니까.
배원은 초조함에 입술을 깨물며 창밖을 보았다. 창밖의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하늘에서 초승달이 떠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달을 보면서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밤하늘만은 아름다운 자신이 사는 옥탑 방에 누워 있기를 소망하면서.


배원이 눈을 떴을 때는 인근 파출소에서 앞에서였다. 순경이 순찰차 뒤 자석의 점장과 배원을 돌아보며 내리세요, 라고 말했다. 그 말에 배원은 자다 깬 멍한 상태로 순찰차에서 내려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파출소는 아무도 없는 썰렁한 분위기로, 몇 명의 순경들이 잡무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하품을 찍찍해대며 다음 당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배원과 점장,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온 두 명의 순경들을 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경례했다. 배원과 점장의 옆에 있던 순경들은 그들의 경례에 답례하고 둘을 자신의 자리 앞에 앉혔다.

“그래, 당신이 훔쳤다고요? 그리고 그걸 당신이 보았고.”

순경이 배원과 점장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그러자 점장이 고개를 젓고, 자신들에게 질문하는 순경에게 말했다.

“아뇨. 제가 본 게 아니라, 아르바이트생이 목격했어요. 게다가 감시카메라에도 찍혀 있었고요.”
“그래요? 그럼 경의서 작성해야 되는데… 처벌은 어떻게?”

순경의 그 말에 점장은 편의점에서 배원에게 말했던 것처럼, 순경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그러자 순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키보드를 쳤다. 그리고 잠시 후, 프린터로 순경이 작성한 경의서가 출력되었다. 순경은 출력된 경의서를 둘에게 내밀었다. 그러면서 경의서에 작성된 상황이 맞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점장은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배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조사를 마칠 때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파출소를 나왔다. 그러고는 점장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펴고, 옷도 가라입지 않은 채 옆에 휴대전화를 베개 옆에 놓고,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잠을 잔지 얼마가 지나서 베개 옆에 놓았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배원은 신음소리를 내며 휴대전화의 발신자를 보았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고 전화를 받으며, 일어서 불을 키고 시계를 보았다. 시계는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휴대전화 너머에서는 흥분한 듯한 민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원은 민테에게 대체 무슨 일이 길래 그렇게 흥분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민테는 흥분한 목소리를 좀 더 높이며 말했다.

[형! 형이 도둑이라고 하던데? 나 참 기가 막혀서. 내가 그 소릴 듣고 바로 편의점으로 갔거든요? 그런데 제빈이 녀석, 내가 들어온 지도 모르고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들어보니까, 그 녀석이 형한테 누명을 씌운 거였어요.]

그 말에 배원은 멍한 정신이 돌아온 것 같았다.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민테에게 물었다.

[그게, 그 녀석 친구한테 형 자리를 줄려고, 여태껏 편의점 물건과 돈을 빼돌렸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녀석한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까. 아니 글쎄, 그 녀석이 시치미를 뚝 때는 거 있져? 그냥 친구하고 영화얘기 했다면서 말이야.]

그 말에 배원은 실소가 터졌다. 그러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오늘 자신이 생각한 것이 사실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고는 제빈이 자신보고 물건을 훔쳤다고 할 때를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제빈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머금어 진 것이 보인 것이 생각났다. 그 생각에 다시 한 번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휴대전화 너머의 민테가 무슨 일이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배원은 휴대전화를 바로 잡으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민테에게 내일부터 알바 안 나갈 거라고 점장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테는 놀라면서 소리쳤다.

[내가 점장님께 말하면, 그 녀석 잘리는 건 시간문젠 데 왜? 그만두려는 거예요?]

그렇게 묻는 민테에게 배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봤자 자신이 도둑이라는 소문은 금세 퍼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누명이 벗겨졌다고 해도,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더 이상 편의점에서 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지만 분함은 삭일 수가 없었다. 그는 휴대전화 너머로 떠드는 민테를 뒤로 한 채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휴대전화를 아무데나 집어던지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면서 좀 전의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다. 요즘 알바자리 구하기도 어렵기도 하고, 그 편의점이 편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휴대전화가 울렸다. 배원은 고개를 돌려 휴대전화를 보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휴대전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울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수태였다. 수태의 목소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라앉아 있었다.

[뭐 하냐?]
“뭐하긴 그냥 있지… 그런 넌 왜 전화했냐?”
[오늘 꿀꿀한 일이 있어서 말야. 그래서 같이 술이라도 할까 싶어서.]
“그렇냐? 나도 그런데…”

배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태에게 어디로 나가면 되는지 물었다. 그러자 수태는 그 물음에 “서면에서 만나면 술 마시는 그곳 앞에서 만나자, 내가 좋은 술집 알려줄게. 그 술집에서 술 마시면 금세 힘이 솟아오르거든” 이라고 말했다. 배원은 그곳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예상 할 수 있었다. 그곳은 아마도 수태 혼자 술을 마신 곳일 것이다.
배원은 수태에게 알겠다고 말한 뒤 밖으로 나와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제빈이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일에 대한 화도 조금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그 화는 여전히 건재했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잊지 못할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방의 불을 끄고 문을 잠갔다. 그러고는 서면의 호프집으로 향했다.

호프집 앞에 도착했을 쯤에는 9시를 조금 지났을 때였다. 호프집 앞에는 수태가 미리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원은 그에게 다가가 애써 반가운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수태도 배원의 인사에 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수태도 하루가 고되었던 지 애써 미소 짓는 것 같았다.
배원이 수태에게 물었다.

“대체 그 술집이 어딘데?”

그러자 수태가 입 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너도 짐작은 했잖아. 어딘지 말야.”

배원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수태에게 왜 우울한 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 내가 하는 아르바이트에 같이 하는 녀석이 있거든? 그런데 그 녀석이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고 내게 자랑을 늘어놓는 거야. 그래서 그 녀석한테 축하한다고 말하니까 뭐라는 줄 알아?
나 참, 그 말 듣고 기가 막히더라. 나 같은 삼류 대학 나온 놈은 안 될 거라나 뭐라나, 정말이지. 그 녀석은 금방 잘리게 될 거야. 분명해. 그리고 난 회사에 취직하고 오랫동안 직장을 지키겠지.”

그의 불평을 묵묵히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배원은 실없이 웃었다. 배원은 그런 불평이라도 할 수 있는 수태가 부러웠다. 그에 비해 자신은 아직 어떤 회사에 이력서를 넣지 않고 아르바이트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태는 그렇게 한 동안 자신은 안 될 거라고 말한 사람의 뒷담을 했다. 그러다가 풀 죽은 듯 가만히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배원을 보고, 그제야 배원에게도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그는 조심스레 배원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냐? 이 형님한테 다 말해봐.”

그 말에 배원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최근 들어 일하는 편의점에서 일어난 일과 오늘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들을 수태에게 상세하게 전달했다. 수태는 그 얘기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 나 원, 나 살다 살다 그런 얘기는 처음 들어본다. 알바자리 구하려고 그런 짓을 하다니, 아니 요즘 알바 구하기 힘들어도 그렇지. 그런 짓까지 하는 녀석이 세상에 어디 있어?
그리고 넌 또 왜 그리 물러 터졌냐? 그럴 때는 말야. 주먹이라도 써야 되는 거야. 어떻게든 네가 아니라는 걸 증명했어야지. 이 물러터진 자식아!”

수태는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배원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배원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가만히 그의 호통을 들었다. 수태는 그런 그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리 물러터진 성격이라도 무슨 반응이라도 보여야 하는 데, 그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수태는 그런 그의 답답한 성격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골목에 들어서자 수태는 배원의 손목을 놓았다. 그러자 배원은 인상을 구기며 수태에게 성질을 부렸다.

“갑자기 손목을 끌고 빠르게 걷는 거야?”

수태는 그렇게 말하는 배원에게 주위를 둘러보라고 했다. 배원은 수태의 말에 잠시 화를 가라앉히고는 고개를 돌려 골목을 둘러보았다. 골목은 이전에 수태가 토를 하러 들어간 곳이었다. 그 순간 배원은 수태를 보았다. 그러자 수태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오른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러면서 배원에게

“술이라도 하면서 답답함을 좀 풀어야겠다. 너도 나도.”

  라 말했다. 배원은 그 말을 듣고, 수태의 오른손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을 보았다. 오른손이 가리키고 있었던 곳은, 불 켜진 ‘희망주 파는 곳’ 이라는 초라한 간판을 단 7,80년대에 많이 보였던 판자 집이었다. 수태는 배원의 등을 툭 치며 고개로 가자고 했다. 그리고 배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판자 집으로 들어가자 입구부터 작은 둥근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그들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수태가 “이모!” 라고 부르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한쪽에서 주문을 받고 있던 파마머리의 여자는 수태를 돌아보고는 “알았다!” 라고 크게 외쳤다. 그리고 잠시뒤 그녀가 그들의 탁자로 와 호탕하게 웃으며 수태와 인사를 나눴다. 그러다가 는 수태에게 뭘 시킬 거냐고 물었다. 수태는 배원의 눈을 살피고는 이모라 부르는 여자에게 귓속말로 술과 안주를 시켰다.
주문을 받은 여자는 곧바로 상표 없는 플라스틱 병 두병과 사발 두 그릇, 그리고 깍두기를 들고왔다. 그러고는 배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희망 없을 때 마시는 희망주 두병과 깍두기다. 이 술 마시고 힘 좀 내라고. 우리 집 술은 무슨 걱정이든 싹 없애주니까. 그러니까 젊은이 쭉 들이켜.”

  배원은 여자의 말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여자가 돌아가자 수태는 배원의 사발에 술을 부으면서 말했다.

“얼른 마셔. 이 집 술 정말 최고라니까. 다른 데서 마실 수 있는 술이 아니라고. 내가 여기서 술 마시고 요즘 버티고 있잖냐. 평소 때 같았으면 네 녀석 훈계나 듣고 있을 내가 이렇게 펄펄 하잖아.”

배원은 수태의 위로에 씁쓸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사발에 담긴 술을 들이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술은 식도를 따라 위로 이동하며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오던 피곤이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배원은 놀랍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수태를 보았다. 수태는 전에는 짓지 않던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카- 정말 이름 잘 지었다니까. 힘들고 지칠 때 이 술 한 번만 마시면 끝이야. 끝.”
“그래, 피곤이 가시네. 하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야.”

그 말에 수태는 기운이 빠지는 것 같았다. 애써 이 술집에 데려다 놓았는데 그런 푸념을 늘어놓으려는 배원이 마땅치 않았다. 수태는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배원을 응시했다. 배원은 그런 그의 행동이 부담스러웠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왜 그래?”
“왜 그려나니, 모르겠어? 사는 건 다 마찬가지잖아.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너 그때 네한테 뭐라 했는지 생각해봐. 뭐라도 하면 된다고 했잖아. 너도 그러면 돼는 데, 뭐가 걱정이야?”

그렇게 말하자 배원은 불쾌한 듯 수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눈을 풀고는 그렇지 라고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지금 자신이 수태에게 뭐라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는 플라스틱 병을 잡고 사발에 술을 따라 마셨다.
수태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계속 나왔다. 그는 배원에게서 플라스틱 병을 뺏어 자신의 사발에 술을 따라 들이키고는, 그런 다음 배원에게 자신의 푸념을 조금 늘어놓았다.

“나도 너처럼 공부 좀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더라. 그런데 나 공부 못했어도 이렇게 살고 있잖아. 그리고 아무리 낭떠러지로 떨어져도 올라올 방법은 있는 거 아니겠냐? 자, 한 잔 더 해.”

그렇게 말하며 수태는 배원의 사발에 술을 따랐다. 배원은 수태가 따른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낭떠러지로 떨어져도 올라올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수태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는 싫은 소리를 내뱉었다.

“뭘 그리 심각하게 고민 하냐? 떨어져도 올라갈 방법은 있다니까.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 안 날 때는 그냥 하다보면 될 거 아니야.”
“그럴까?…”

배원은 수태의 말에 힘없게 대답했다. 그러자 수태는 짜증을 부리며 배원에게

“아, 진짜 그렇다니까. 그리고 우리가 누구야? 우리는 교과부가 만든 더러운 잉여인간이잖아. 그런 우리에게 뭐가 두려워?”

라 말했다. 배원은 그 말에 피식하고 웃고는 수태를 바라보았다. 수태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어쩐지 그의 미소에서는 씁쓸함이 묻어 배어 나오는 것 같았다. 배원은 속으로

‘그래, 우린 잉여인간이었지. 뭔가 할 수는 있지만 하지를 못하는 그런 인간.’

라고 생각했다. 그런 배원의 생각을 읽었는지 수태가 배원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뭔가 하자고. 매일 밤 이곳에서 술을 마시는 거야. 내가 이 집에서 술을 마시고 무엇이든 하자는 생각을 했듯이, 너도 이 술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그런 마음을 갖는 거야.”
“칫, 잘난 척 하기는, 임 마. 2주 전까지 내한테서 설교 듣던 걸 생각해라.”
“정말 고지식한 녀석이라니까. 야, 내가 폼 좀 잡으면 안 되냐?”

그러자 배원은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 민망해서 말야. 내가 너한테 설교를 듣다니.”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언짢은 듯 말했다. 그러자 수태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미안하다, 앞으로는 그렇게 안 할 게 됐냐? 그런데 너 전화 안 할 거야?”
“무슨 전화?”

배원은 그 말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수태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그의 볼을 꼬집었다. 그러자 배원은 잠시 생각에 잠기고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아!” 라고 외쳤다. 그러고는 수태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전화해야지. 그 녀석 걱정시킬 수도 없는 일이고, 잉여생활 벗어나려면 무엇이라도 해야지. 자, 그런 의미로 건배!”

배원은 그 말의 끝과 동시에 남은 술들을 각자의 사발에 따르며 외쳤다. 그들은 힘차게 사발을 부딪치고는 목구멍으로 희망을 넘겼다. 잉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희망을, 잉여가 아니게 될 거라는 희망을 말이다.
그리고 술을 다 마신 후 그들은 한 마음으로 외쳤다.

“더러운 잉여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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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8 단편 달로 가는 티켓 이터너티 2010.05.0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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