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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부인

2010.05.15 18:4005.15




부인





“오, 나의 주여! 당신의 케파- 반석이 여기 있나이다. 저를 버리시고 날름 승천하시여 하나님의 왼편에 앉으시고는 어제와 같이 오늘도 기꺼이 저를 굽어보시는 나의 주여, 들리시나이까? 진정 날 보고 계시나이까? 주여, 들어주소서. 오늘의 나, 이토록 기쁘고 영광 된 날에야 당신께 고백하나이다. 당신께 감히 고백할 것이 있나이다. …예? 이미 다 알고 있다고요? 전지전능한 당신의 아버지, 천지를 창조하시고 내게 당신을 내려주시고는 삼년 만에 도로 빼앗아 가신 그 쪼잔한 분께서 다 살피셔서 귀띔해주시었다고요? 아아, 그래요, 그랬겠지요. 나의 평생 따위? 늙고 병들어서도 전전긍긍, 당신께 나의 이 마음을 들킬까 안달복달 도망 다니던 나를 여지건 실컷 즐겼겠군요. 그러고 보면, 당신은 미리 내게 말해주었었지요, 내가 당신을 세 번, 자그마치 세 번. 그것도 해 뜨기 전 하나의 새벽동안 세 번! 세 번이나 당신을 부인할 거라는 걸. 빌어먹을. 그럼 이 나의 감회도, 주 나의 여호와, 나의 사랑,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도- 그 분, 당신의 아버지시라는 그 위대한 분께서 미리 알려주시던가요? 부디 저 치의 마음 또한 내가 창조한 것이니라, 하고 말하진 않으셨으리라 믿고 싶군요. 하지만 나의 주, 나의 여호와여, 내가 말하고자 하니 당신은 들어주겠지요? 이미 알고 있어 따분하고 지겨울지라도 당신은 나의 고해를 들어주겠지요. 그래요, 그거예요! 그겁니다, 주여. 당신은 그런 사랑이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그 선한 마음을 이용해 이 척박하고 쌀쌀맞은 땅, 그것도 말똥 냄새나는 더러운 마구간에 던져주어도, 아니아니- 그 훨씬 이전에 선량한 처녀 한 명이 방탕하다는 누명을 쓰고 죽을 뻔 했을 때도 하나님 몰래 천사를 보내주셨던 그 마음으로 기쁘게 태어나 응애응애 하고 우셨으니까요. 예? 뭐라구요? 당신은 하나님과 하나라고요? 오오, 나의 주여. 그게 참말입니까? 예? 사실은 아니라구요? 아아, 그렇군요. 예? 뭐라구요? 사실은 맞다구요? 오오, 나의 주여. 그 딴 건 아무래도 좋나이다. 나를 통해, 나로 인해 당신을 사랑하고 부인하게 될 당신의 신도들이! 더럽고 비겁하고 비열하고 방탕한 당신의 백성들이! 서로 갈리어 치고 박고 싸우고 회의하고 쫓아내고 복수하고, 그렇게 할 테니까. 그건 그 때 하도록 놔두소서.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란 말입니다, 사랑하는 나의 주여. 뭐, 좋아요. 좋습니다. 아무튼 나는 믿사옵나이다. 나의 주 당신은 따분하고 당연한 나의 고해도 그냥 들어주시리라는 걸. 아니, 아니요, 나의 주여. 사실 오늘의 내 고해는 그렇게 따분하고 당연한 건 아닌데, 말입니다. 아니지, 여호와여, 당신에겐 따분할지도?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분명, 그럴 지도 모르겠나이다, 주여. 하지만 감히 아닐 거라 맹세하나이다. 아시겠지요? 아닐 겁니다. 아니랍니다. 어제와 그제처럼, 내가 몇 번이나 나의 평생을 저주하지는 않을 겁니다. 내 스스로 수음하고, 당신을 생각하며 몸을 떨었는지, 수줍게 털어놓으려는 게 아니니까, 오늘 단 하루만큼은. 오오, 주여. 언제나 바라노니, 오늘도 여전히 기도드리노니- 당신을 세 번이나! 하룻밤 새 세 번이나 배신하고 그 죗값으로 평생을 떠돌며 살아야 했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유다, 그 놈은 일찌감치 자신의 죗값을 용서받고 당신의 발아래 있겠지요? 당신의 발을 씻어드리며, 그 발에 입을 맞추어 주의 영광을 찬양하며, 늙고 병든 저를 비웃고 있겠지요. 당신을 팔아치우는 그 쉬운 운명도 감당치 못해 주의 뒤를 따라 뒈져버린 그 염병할 놈을 거두시고, 어째서 저를 이토록 모질게 다루시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나이다. 뭐, 오늘은 이쯤 하겠나이다. 이 자질구레한 건 내일부터 다시 털어놓을 테니까, 염려 마소서. 오늘은 큰마음 먹고 내 평생을, 나의 기쁨 충만한 죄를 고해하고자 합니다. 예? …예. 오, 그래요. 빌어먹을. 염병스럽게도 슬프게도 기쁘게도 황홀하게도 주여, 당신은 언제나 날 사랑해주었지요. 나는 당신의 케파. 당신은 고작 어부였던 내 그물에 고기를 가득 쏟아 넣어 내 그물을 찢었고 나를 케파라고 불렀지요. 아아, 다시금 생각해도 황홀하옵나이다. 몸이 떨려옵니다. 내가 당신의 케파? 그래, 나는 당신의 케파. 당신의 반석. 당신의 방패! 기꺼이, 당신을 체포하려는 병사의 귀를 자를만한 당신의 반석이었나이다. 주여! 주여, 주여! 그렇다면 당신은 내게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언제라도, 단 한 번이라도 궁금하시지 않으셨나이까? 발톱의 때만큼이나 잠깐이라도 나를 돌아본 적이 있으셨나이까? 오오, 주여- 염려는 하지 마소서. 물론 주는 나의 주였나이다. 여호와였나이다. 딴 놈들에게 당신은 그저 구세주였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주였나이다. 여호와, 진정한 여호와였나이다. 혼인 전에 몸을 더럽혀 배불렀다는 여인의 아들이며 손에 굳은살이 그득한 나사렛의 목수. 거기에 더하여 막달라 마리아? 날 놔두고 그런 계집이나 가까이하는 당신은 나의 주였습니다. 빌어먹을. 그래요, 빌어먹게도 당신은 날 사랑했을지 모릅니다. 아니, 아니 난 느꼈습니다. 당신이 날 사랑해주었다는 걸요. 하지만 내가 사랑한 것만큼은 아니었어요. 너무나 부족 했나이다, 주여. 평등하고 고루한 사랑? 아아, 거룩하여라, 엿이나 먹으라지? 당신은 나를, 마리아? 그런 계집과, 고작 기적 따위나 바라고 당신을 쫓아다니는 더러운 잡것들과, 일어서고 싶어 당신의 손을 더럽히는 앉은뱅이와, 고맙다는 인사 한 번 하러 올 줄 모르는 거지 염병놈들과, 당신을 사특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저 율법가들과, 똑같이 사랑했어요. 맙소사! 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내가 누군데? 나는 당신의 케파인데. 당신 때문에 그물을 찢어먹고, 그래도 기꺼이 당신을 따랐던 당신의 케파인데. 그것도 모자라 당신은, 심지어 다른 제자들과 나를 한데 묶어 데리고 다녔나이다. 기억하시지요? 나는 그저, 당신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일 뿐. 다른 제자들은 당신이 유다를, 그 더러운 상인 잡놈을 좀 더 아낀다고 수근 거렸지만, 무엇이든 그와 의논하려든다고 슬퍼하였지만, 그리고 마리아에게 달라붙어 당신이 남몰래 가르침을 주었다면 부디 나눠달라 간청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나이다. 당신은 유다와 마리아를 그들과 똑같이 사랑하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의 주, 여호와여. 부디 잊지는 말아주소서, 나는 여전히 당신을 찬양하나이다. 그 때, 당신에게서 배반당한 그 마음을 고스란히 품고서 당신을 따랐던 것처럼, 당신을 세 번 부인하고 목숨을 구걸하여 여태 살아남은 지금도, 당신은 여전히 나의 주이나이다. 보십시오. 봐 주셔야 합니다요. 당신의 케파는 이리도 당신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몸을 짓이기며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주여. 주여? 지금 내 기도를 잘 듣고 있으시지요? 믿나이다. 암요, 당신은 나를 외면치 못하실 겁니다. 아직까지 나를 사랑해주시니까요. 이 세상 만물- 그 모든 것 만큼. 똑같이. 지금도 저 문 밖에서 감히 나와 같이 당신께 기도드리는 다른 잡것들의 고해도 귀담아 들으시고 있겠지요? 아아, 나의 주여. 당신은 너무나 위대하십니다. 그 끝없이 평등한 사랑에 눈물이 날 만치 화가 나고 제단을 불태우고 싶을 만큼 구역질이 나지만, 나의 주는 이만큼이나 위대하시군요. 그래요, 위대한 나의 주. 나의 여호와여, 주여, 부디 알아주소서. 나는 누구보다 당신에게 특별해지고 싶었나이다. 진정 바랐나이다. 단지 기적만 바라며 당신을 구세주라 떠받드는 자들을 모조리 죽여서라도, 나는 당신을 기쁘게 하고 싶었나이다. 당신은 진정 나의 주인이셨고, 나는 명만 내리시면 주인의 포도밭에서 제 목을 베어 포도나무의 거름이 되기를 기쁘게 섬길 노예였나이다. 주의 진정한 종이었나이다. 결코, 주의 다른 제자들, 그 비열하고 속이 시꺼먼 놈들과는 달랐나이다. 그들은 언제나 당신을 슬프게 했지요. 당신이 말하고자하는 하나님, 그 빌어먹을 아버지와. 천국, 그 빌어먹게 풍성한 하늘의 나라와. 성전, 그 화려하고 누추한 당신의 침실을. 누구도…그 누구도, 누구도! 누구도! 들으려하지 않았나이다. 당신은 자존심을 깎아 가며 너무나도 유치하게 말씀하셨고 그들의 귀에 속삭였지만, 그들은 단지 물고기와 빵, 그리고 기적을 바랄 뿐이었나이다. 잔칫집에서는 포도주를 바랐지요. 다른 제자들은 불경스럽게도, 슬퍼하는 당신을 보질 못하고 그저 당신의 빵과 포도주, 기적을 바라고 몰려드는 거지 떼를 보며 기뻐했나이다. 보아라, 베드로야. 우리 스승님께서 저리 많은 군중들에게 사랑받으신다. 보아라, 진정 저들의 왕이 되실 요량이신가 보다. 그가 새 나라를 세우면 너는 대신이 될 터이고 나도 큰 자리 하나쯤은 차지할 수 있겠지. 보아라, 베드로. 스승님께서 기적을 베푸신다. 다리를 절며 걷던 거지가 절뚝이며 뛰고 있지 않냐. 스승님께서 고쳐주신 거구나! 라니. 나는 그들의 어리석음에 동조하였지만 그들의 어리석음에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나이다. 주여, 나는 언제나 속으로 화를 냈사옵니다. 이 병신들아, 보이지 않느냐? 저 거지 군중들 속에서 홀로 고독하신 나의 주가. 너희는 그저 너희의 스승님만을 보는구나. 저들은 그저 저들의 구세주만을 바라는구나. 오직 나만이, 나만이 주를 바라보는구나. 내 주는 저리도 작으시고 쓸쓸히 웃으시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구나. 아아, 주여. 하지만 주는 진정- 주의 고독을 아는 단 하나의 나를 알지 못하셨나이다. 막달라 마리아, 그 더러운 여자마저도 저만큼 사랑하시여 곁에 두셨지요. 그 더러운 창녀는 밤마다 주의 침실 발아래 찾아들어 주를 괴롭혔음을 나는 알고 있었나이다. 다른 계집도 있었지요, 감히 주여, 당신의 발아래 엎드려 그 더러운 머리카락으로 당신의 발을 짓이긴 추접스러운 년. 주여, 당신은 그저 사랑하시기에, 그년들도 나와 똑같이 사랑하셨지요? 아니, 아니지.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말도 안 돼. 아닐 거야. …나의 주, 나의 여호와여, 정말 나를 그들과 똑같이 사랑하셨나이까? 진정, 나를 그들과 똑같이 사랑하셨나이까? 주여, 주여…나의 주여. 그래요, 알고 있나이다. 어찌 모를 수 있을까요. 당신은 그런 사랑이니까. 나의 사랑. …하지만 그건 너무 심했나이다. 내가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나이까? 왜 내게, 그런 짐을 지워주셨나이까! 오직 당신의 하나 뿐인 케파를, 당신을 부인하고, 당신을 잃고, 당신 떠나신 이 더러운 땅을 떠돌며 평생을 죽지 못해 살게 하다니! 그렇게 살라 하다니, 당신은 참으로 짓궂으셨나이다. 마른 빵을 떼어 당신의 살점이라 입에 넣어주시고, 포도주를 따라 당신의 피라 내어주시니, 나는 왈칵 눈물이 날 뻔 했습지요. 다른 제자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꾹, 참았나이다. 나는 끝내 빵을 씹어 넘기지 못했고, 당신의 피를 마시지 못했나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 수 있나이까. 당신의, 당신의 피와 살을…….  …예? 사실대로 말하라고요? 다 알고 계시다구요? 아아, 나의 주. 참으로 전지전능하나이다. 그렇습지요, 나는 기꺼이 주의 살점을 씹고 피를 마셨나이다. 주의 살은 참으로 찰지고 쫀득쫀득했지만 비리고 텁텁했고, 주의 피는 달았지만 미지근하고 시었나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있겠어요, 모두 다 주님의 것이라는데. 주여. 당신의 모든 것에 굶주린 나는 다른 제자들의 것까지 빼앗아 씹고 마셨나이다. 그런 나를, 막달라, 그 더러운 계집은 눈살을 찌푸린 채 봤지만, 나는 상관도 하지 않았나이다. 그 계집은 우리의 만찬에 초대되지 않아 앉지도 못했는데. 주님의 살점과 피를 입에 대지도 못했는데, 그런 주제에 만찬에 나타나 분위기를 흐리며 나를 질투하였나이다. 눈치도 없는 더러운 계집 같으니라고! 필경 나를 부러워해 그리 눈을 흘겼음을 나는 알고 있나이다. 주님도 보셨지요? 그리고 말씀하셨지요, 나에게? 유다가 주님의 명을 받고 지가 해야 할 일을 하러 나갔을 때, 저는 누가 감히 당신을- 영광스럽고 부럽게도- 당신을 팔아넘길지 몸이 달아 있었나이다. 오오, 당신을 팔다니? 나의 주를 팔아넘기다니! 그 영광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임을 나는 믿었나이다. 나의 주를 판다는 건 나의 주를 가진다는 거지요, 나의 주를 배신한다는 건 나의 주가 믿고 있었다는 거지요? 누가? 누가! 누가! 대체 누가! 나의 주에게 그토록 사랑받고 신뢰받는다는 거지요? 모든 걸 사랑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나의 주가, 감히, 나 말고 누군가의 것이 되었단 말이었습니까? 내게 따로 언질을 주지 않았으니까 나는 감히 나라고 생각할 수 없었나이다. 부끄럽고 비참하고 화나고 슬펐습지요, 그저 당신의 살점과 피를 물고 울음을 참을 뿐이었지요. 그래도 믿었나이다. 나의 주가 나를 기쁘게 하려 말없이 준비한 걸지도 모른다고. 그런데 나의 주는 내게 말했어요. 내가 세 번이나 나의 주를, 나의 주를, 그러니까 나의 주를……. 어째서? 어째서, 내가 그러리라 말씀하셨나이까. 내가 나의 주를 위하여 그리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셨나이까. 입 밖으로 내뱉은 그 저주의 말이 나를 휘감아 나의 평생을 저주롭게 만들도록 하셨나이까. 차라리 내가 나의 주를 판다고 말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다면 나, 기꺼이 당신을 팔아넘겼을 텐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나의 주를 기쁘게 전송하고 기꺼이 목 메 뒤따를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 유다 놈 따위에게! 나중에야 유다가 나의 주를 팔아넘겼음을 알았나이다. 그렇다면 나의 주는 유다를, 나보다 사랑하셨…아니, 아니. 그럴 리 없어요. 그저 당신은 아무나 찝어 그 성스럽고 아름다운 임무를 맡겼던 거겠지요. 나의 주는 언제나 그랬으니까. 그래, 항상 그러셨나이다. 나의 주는. 나를 놔두고, 다른 누구를 모두 다 나만큼이나 공평하게 사랑했으니까. 하지만 부디 이제라도 알아주소서, 주여, 나는 나에게 그 성스러운 임무를 실수로라도 맡기지 않은 당신에게 절망하였나이다. 매달려 울 수밖에 없었나이다. 고작, 당신을 세 번 부인하는 저주 밖에 약속 받지 못한 나는, 정말, 정말이지, 정말로- 견딜 수 없었나이다. 나는 실의에 빠졌지요. 실망했어요, 슬펐습니다. 정말입니다요, 이번에는 거짓이 아닙니다. 그래서 당신의 그 말을 믿지 않았나이다. 세 번이나, 세 번이나? 세 번이나! 오오, 나의 주는 시시 때때로 재미없는 농담하기를 좋아했으니까. 그럴 때마다 억지로라도 하하 웃어 주는 건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 내 몫이었으니까. 나의 주여, 나는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나이다. 진정 울고 싶었지만 힘들게 참아야 했고, 그래서 나의 주- 당신의 간결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산에 오른 뒤 잠들어 버렸지요. 절대적으로 주의 탓이었나이다. 나의 주가 당신을 팔 수 있는 그 권리를, 임무를 내게 주지 않아 나는 정신적으로 매우 피곤했나이다. 게다가 당신은 오직 나에게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당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지요? 바보 같은. 그런 잡것들, 머리가 비어 오직 당신을 구세주로만 생각하는 저들에게 나와 같이, 어찌 당신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나이까. 그래서 나는 더욱 슬퍼 그들과 같이 잠들 수밖에 없었나이다. 주여, 어찌 유다에게, 아니 당신이 나와 똑같이 사랑했던 거지 떼에게? 아니, 그들은 당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그 흉악한 살인범을 살려주었지요. 유다는 결국 당신이 자신을 특별히 생각해 그 성스러운 임무를 준 게 아니었다는 걸 알고 목을 맸고. 떽떽 소리 지를 줄 밖에 모르는 율법가들이 당신을 잡아갔고, 나의 주는 그래도 고결하게 잘린 병사의 귀를 붙여주고, 빌라도에게 가셨나이다. 그리고, 그리고 나는 빌어먹을, 그래요, 나의 주의 뜻대로 였나이다. 나는 곧바로 나의 주를 그리 했나이다. 부인했지요, 세 번이나. 하나의 밤 동안, 닭소리를 들으며 세 번이나. 세 번, 세 번. 한 번도 두 번도 네 번도 아닌 세 번. 단 세 번, 세 번이나! 오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던 것일까요? 주여, 내가 나의 주- 당신을 부정하다니? 그것도 세 번이나! 그건, 결코 나의 뜻이 아니었나이다. 주여, 당신의 뜻이요, 당신의 아버지- 하나님의 저주였나이다. 나는 결코 원치 않았나이다, 당신을 부인하고 싶지 않았나이다. 당신과 함께 죽고 싶었나이다, 당신의 십자가를 나눠지고 싶었나이다. 하지만 나의 주는 마지막 가는 길도 함께 하려하지 않으셨고 나는 나의 주를……. 주여, 나는 당신을 뵐 낯이 없어 사람들 틈에 숨어들어 당신이 헐벗고 굶주린 채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걸 보았나이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대신 지어주겠다 나서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나이다. 당신은 나와 똑같이 모두를 사랑하니까, 내가 특별히 나서도 기뻐하지 않았겠지요? 날 똑바로 보며 물어보려 하셨지요? 나를 세 번 부인하고 왔느냐? 라고. 그러면서 나 말고 다른 놈이 십자가를 대신 질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나이다, 주는. 끝내 나의 주는 당신께서 나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들 속의 나를 보지 못하고 떠나셨습지요. 두 명의 죄인과 함께 당신의 아버지께로. 빌어먹을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의 주, 여호와여. 그러고 나서 당신께선 사흘 만에 다시 일어나셨음을 나는 믿사옵니다. 그래요, 믿나이다. 당신께선 날 한 번 찾아주시지도 않고 하늘로 돌아가셨습지요. 그래요, 믿나이다. 나의 주가 사랑하시는 나는 이 세상, 지옥과 천국의 잡탕을 떠돌았습니다. 나는 이제 나이 먹고 병들어, 당신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보이시이까? 사랑하는 나의 주, 나의 여호와여. 지금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지금 내 눈앞에 무엇이 있는지 아시겠나이까? 빌어먹을 당신의 종이, 염병하며 당신을 위한 첫 교회를 세웠나이다. 그 앞에 엎드려 당신께 고해란 걸 하고 있나이다, 당신께 모든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말입니다. 이 더럽고 폼 나는 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셨지요? 이미 알고 계셨다구요? 물론 그러시겠지요, 당신은 나의 주니까. 하지만 이것도 알고 계시는지요, 주여.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께서 말씀하신 모든 걸 부인하려 하나이다. 나의 주여, 당신께선 말씀하셨나이다. 내가 고작 세 번, 단 세 번만 당신을 부인하리라. 오오, 내가 고작 세 번만 나의 주를 부인할 거라고요? 내 사랑, 나의 주여. 천만에. 보소서, 보이시이까? 나는 나의 주의 모든 걸 부인할 겁니다. 나의 평생을 걸고, 당신을 세 번 부인해 연명한 이 목숨이 다하는 그 마지막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나의 주의 공평하고 평등한 사랑? 나의 주를 배신하고 믿지 않고 부인한 자들에게까지 베푸는 나의 주의 사랑? 오오, 그런 건 저들이, 앞으로 감히 당신을 사랑하려하는 저 치들에게 들려주지 않으려 하나이다. 보소서, 저들이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아버지께 닿으려 하고 있나이다. 나의 주가 흘린 피를 믿는다면서, 나의 주의 피 흘린 땅 위에 황금과 말똥으로 성스러운 주의 집을 세우고 주의 사랑을 가두려 하나이다. 저들은 넘쳐나는 돈을 짤랑이며 주의 제단에 바치고 그 만큼의 죄를 사함 받고자 하나이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나의 주를 사랑한다면서 나의 주를 욕보일 겁니다. 열흘에 한 번- 평생에 두어 번 주의 집에 찾아와 달달한 숨으로 무언지도 모르는 제 죄가 있음을 고백하고 스스로 지옥에 걸어 들어갈 겁니다. 부디, 지켜봐 주소서. 나의 주여. 나의 주 당신께서 하나님, 탐욕스런 아버지의 왼편에 앉아계실 때 나는 저들에게 천국이란 성의 문지기가 될 겁니다. 젠장, 그렇게 내려다보지 마소서. 알고 있나이다. 알고 있사옵니다. 천국엔 높은 성벽 따위, 도타운 성문 따위는 없다는 걸. 그저 나의 주, 당신의 사랑만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나를 통해 당신의 사랑을 배우는 저들에겐 성벽과 성문이 보일 것입니다. 당신을 믿지 않는 자들을 지옥으로 내던지고 걸러낼 성문이, 성벽이, 성이. 있을 겁니다. 그럴 리 없다고요? 걱정 마소서. 내가 남은 생을 바쳐 그렇게 만들고야 말 터이니. …주여, 주여? 어찌…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주여, 혹여- 당신을 세 번이나 부인한 이 비루한 종이, 나의 발을 어루만져 씻겨주신 나의 주를 슬프게 하나이까? 아아, 이런 송구할 대가.
하지만 어쩔 수 없나이다. 나의 주,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당신의 미천한 종은 주어진 평생을, 그 모든 것을 당신을 부인하는데 바치겠나이다.
이것이 나의 네 번째 부인이니.
보우하여 주소서, 나의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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