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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랜드 개발에 부치는 제안서

 

 

(칙-.)

 

아- 아- 보이십니까. 카메라 이거 켜진 건가.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아스라 왕국에 거주하는 56세의 의사 홍천수입니다, 의과학자이기도 하고요, 물론 박사고.  귀사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제가 누군지도 알고, 귀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아실 거라 사려합니다. 망명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는 귀 사의 좀비랜드 개발 소식을 귀국의 정보국으로부터 들었습니다. 평생을 의업에 종사해 온 제가 지금부터 획기적인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받아들일 만 하시다면 저도 망명하는데 귀사로부터 민간차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거 알아보려고 정보국에서도 비디오 찍어 보내라고 했겠지요?

 

주제 넘는 말씀을 드리자면, 귀사의 프로젝트는 지속 불가능한 것입니다. 제 안을 채택하신다면 훨씬 더 큰 성공을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먼저 제 소개를 드리자면, 아스라 왕국의 명문 의과대학을 혜종 10년, 그러니까 왕국력 83년에 졸업했습니다. 저희는 서기를 안 써서 그 쪽 년도 계산은 잘 모르겠네요. 여튼, 이후 5년간의 수련으로 내과전문의가 되고, 내시경으로 소화기내과학 전임의 코스를 밟았습니다. 당시 본국에서는 귀사가 소재한 공화국에 비해 위장관 내시경 가격이 터무니 없이 낮았지만, 그래서 의사의 경험치가 올라가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싸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없이 검사받고, 저도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삶을 꿈꿨지요. 인공지능 영상판독이 의료계 전반을 덥칠 때까지는요.

 

인공지능 영상판독으로 일자리 잃은 의사들 많습니다. 그간 먹는 캡슐내시경을 일반적으로 시행할 수 없었던 이유는, 카메라가 장착된 캡슐이 장을 지나가면서 찍어대는 수천장의 사진을 의사가 하루 온종일 판독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실수도 안 할 수는 없고요. 그런데 지금은 인공지능이 몇 분이면 의사보다 더 정확한 결과를 내버리니 대중화되지 않을 수 없지요. 막말로 누가 힘들게 내시경 하겠습니까? 노인들은 수면내시경 하다가 위험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고요. 장에 구멍 나는 위험도 높습니다.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연하게도 제가 일자리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저희 모국 속담에 ‘기술 있으면 굶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 믿고 내시경같은 사양기술을 배웠다가 망한 거지요.

 

결국 저는 다른 살 길을 모색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실업자 의사 중 젊은 축에 속했어요. 의학 전반에 대한 리뷰를 시작했지요. 혈액학, 감염학, 심지어 타과영역인 신경과학까지······. 20년이 넘는 고난의 시간 끝에 의학의 제너럴리스트가 될 수 있었습니다. 뒤에서도 설명드리겠습니다만, 이론 뿐 아니라 임상적으로도 실험을 거듭해 얻은 지식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래의 제안서는 이런 저의 배경을 압축해 넣은 열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안의 배경

 

 

귀사가 비밀리에 진행중인 맥도날드 주(州)의 거대 좀비소재의 놀이공원 (이하 ‘좀비랜드’) 개발 건과 관련하여 아래의 제안을 드립니다.

 

먼저, 성인을 위한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놀이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은 담대하고도 가히 천재적입니다. 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지속 불가능한 계획임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좀비랜드를 찾는 방문객들은 기본적으로 억압된 영혼으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들이 좀비랜드를 찾는 이유는 오랜 평화시대의 지속, 시스템이 옭아맨 자유를 정신적으로 환기(ventilation)시키고자 하는 욕구의 자연스러운 발현입니다.

 

사람이 로봇에게 위해를 가해 얻는 만족감은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경험가능한 것입니다. 좀비랜드를 꼭 방문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들이 방문을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정신적 만족은 실제로 적다고 봅니다.

 

때문에 좀비는 로봇이 아닌 진짜 사람으로 구성되어야 합니다. 진짜 사람으로 운영되었을 때 만이 비로소 사용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습니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란 뜻으로 정의대로 매우 아이러닉합니다. 삶과 죽음 사이의 개체, 좀비는 공포를 주는 존재입니다. 좀비랜드의 좀비는 이용자들이 이들을 맞닥뜨렸을 때 자신도 같이 구천을 떠도는 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인간 근원적인 두려움을 줄 수 있는 존재여야만 합니다. 로봇 좀비는 미래에서 온 먼치킨 터미네이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사람 좀비는 자살폭탄같은 존재입니다. ‘나와 같이 내가 있는 저승에 가자’ 얼마나 무섭습니까? 이 두려움에서 극복하는 경험(놀이동산 체험)을 통해 자신이 살아있다는 큰 만족감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로봇은 이런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모두에게 내재된 살인의 본능, 그 본질은 이것에 있습니다. 남을 죽일 때 자신이 살아있다는 안전의 기쁨.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 살아있는 건강한 사람을 죽이지는 못할 테지만, 그 대상이 좀비라면 어떨까요? 좀비는 수많은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이 ‘식인을 일삼는 악한 생명체’입니다. 사회적으로 질타받는 악의 근원으로 볼 수 있지요. 이런 좀비를 죽이며, 악을 타도하며 자신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얻고, 궁극적으로 기쁨을 얻는다······. 이것이 진정한 ‘스릴’ 아닐까요? 이 정도의 쾌감을 느낀 사람은 한 번만 오고 말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중독됩니다. 도파민의 노예가 되어 좀비사냥을 하러 맥도날드 주로 이사까지 올 수도 있을 겁니다.

 

 

로봇 좀비의 예후

 

 

귀사에서 고심끝에 내린 결정을 폄훼하는 듯 하여 조심스러운 면이 있습니다만, 로봇 좀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꾸며도 로봇은 인간처럼 역할이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이유 외에 몇 가지를 덧붙여 보겠습니다.

 

일단 로봇을 아무리 좀비처럼 꾸며도 좀비가 된 사람보다 진짜같지 않습니다.  혜종3 년경 포드 대학교의 닥터 에릭 카슨이 개발한 인공피부 덕택에 로봇들은 인간에 거의 진배없는 외모를 갖게 되었지만, 이들이 생활하는 것을 볼 때 미세하게 우리와 다름을 느낍니다. 시선과 손놀림, 화법, 심지어 섹스까지, 잘 아실 겁니다. 섹스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많은 사람들이 섹스로봇이 성공하고 로봇매춘이 합법화되어 가정이 붕괴될 위험이 있다 했지만 결국 그 정도 성과는 못 거뒀지요? 왜 그랬겠습니까. 아무리 테크닉이 훌륭하더라도 로봇이 인간에게 주는 만족감에는 한계가 있어요.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성행위가 갖는 본질적 목표는 후손에 자신의 유전자 발자국을 남기는 일입니다. 로봇은 그 일을 대신해 줄 수 없지요.

 

물론 기술적으로는 해결 가능한 일입니다. 지금까지 발전해 온 로봇기술이 더 발전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로봇이 사람을 세부적으로도 완전히 닮으려면 아직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꼭 그렇게 닮지 않아도 우리들 잡일을 대신해 주는 존재로 다들 큰 불편이 없어들 해요. 그런데 0.1%의 어색함이 다 망쳐버린단 말이에요. 그 미묘한 차이를 위해 엄청난 돈이 들어갈 텐데, 기업들이 그 차이를 위해 투자할지는, 글쎄요.

 

다른 얘기를 해 보죠. 만일 좀비 역할에 로봇이 한 역할을 한다 합시다. 이용자들의 즐거움은 이들을 파괴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좀비가 나오는 게임을 당연히 해 보셨겠지만 파괴하는 것은 대체로 화기에 의해서입니다. 육탄전이 주는 스릴보다도, 화기가 주는 박살낼 때의 쾌감이 훨씬 크기 때문이지요. 운영도 효율적이며, 경제적으로도 이롭습니다. 로봇은 육탄전의 디테일을 살릴 수 있겠습니다만, 화기에 의해서 부서지면 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즉, 좀비를 사람으로 구성하는 게 여러모로 좋습니다.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게 훨씬 쌉니다. 더 리얼하고. 그래서 제 도움이 필요한 것이고요.

 

 

이 일을 시작한 계기

 

제가 이 연구를 시작한 데는 다소 비극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 왕국의 왕께서 제게 한 지시를 내리신 때문이지요. 귀국의 정보국을 통해서 들으신 바 있다면 아시겠지만, 그는 전 세계를 자기 지배하에 두는 굉장한 포부를 가지고 있으십니다. “세계정복! 그것만이 나의 꿈이야!” 라고 자주 말씀하곤 하셨죠.

 

하지만 제 입장에서 그 분이 정확히 어떤 의미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되묻기는 어렵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시는 느낌은 좀 다를 것 같긴 합니다만, 왕에게 잘 이해하지 못한 어떤 것을 되묻는 것은 굉장한 실례이고, 잘못 했다가는 제 목이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한 번은 그 분이 제게 이런 지시를 하셨죠.

 

 

“박사. 그대의 솜씨를 믿노라. 좀비를 만들어라. 비용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다.”

 

“예, 전하. 분부 받들겠사옵니다. 황송하오나 어떤 의미이신지.”

 

“과인은 전 세계를 지배할 사람이다. 그에 합당한 좀비를 만들도록 하라.”

 

“예, 전하.”

 

 

저는 홀웨이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그 분의 의중을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일단 저는 그 분의 평소 잔인한 성품에 주목했어요. 본인이 키우고 있는 개가 왕비를 자신보다 더 따르자 질투해 직접 살해하기도 하셨고, 선왕에게 혼나자 화풀이로 내시를 때려 죽이신 적도 있지요. ‘나는 전세계를 지배할 사람이다’는 말은 ‘나는 큰 사람이다’로 해석했고, ‘그에 합당한 좀비를 만들라’는 ‘죽은 자를 살려 내 다시 죽일 수 있게, 그리고 나를 강한 사람처럼 보이도록 적당히 약하게 만들어라’로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죽은 자를 어떻게 살립니까?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저는 귀사에서 지금 제작을 꿈꾸고 있는 로봇 좀비를 왕국대학의 연구원들과 함께 만들어냈습니다. 이게 정말 큰 실수였어요. 겉모습은 똑같으니 죽일 때의 느낌만 비슷하면 되고, 감쪽 같을 것만 같았죠. 우리가 살아있는 시체를 만들 수는 없단 사실은 왕도 아실 테니, 비슷하게 만들어 올 거란 것도 이해하시리라 생각했고요.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마침내 로봇 좀비를 왕 앞에 데려갔습니다.

 

일단 생긴 거나 움직임은 완벽한 좀비였어요. 철장을 나선 좀비는 왕을 향해 걸어갔죠. 왕은 준비하시고 있다가, 멋지게 점프하여 대검으로 좀비의 목을 날렸습니다. 그 분이 착지하셨을 때 다들 박수를 치고 아무튼 난리가 났는데 왠걸, 기분이 영 안 좋아 보이시는 거에요. 그래서 왕의 총애하는 왕비께서 살짝 눈치 보며 물어보시더군요.

 

 

“전하. 심기가 불편해 보이시옵니다.”

 

“저 놈들을 모두 묶어라!”

 

“예이-.”

 

 

나졸들이 달려들어 저와 연구원들을 묶는데 아주 혼비백산했습니다. 아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요? 정말 억울합디다. 왕께서는 제 앞에 서더니 묵직한 펀치를 배에 날리시더군요. 너무 아팠습니다.

 

 

“그대는 과인을 속였다. 기만의 결말이 뭔지는 알 터! 각오했기를 바란다.”

 

“전하!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과인이 굳이 의사인 그대에게 일을 맡긴 이유를 모르겠는가? 누가 로봇 따위를 만들으라 했던가? 세계 멸망을 위해 좀비를 만들란 과인의 뜻을 못 알아들었단 말인가? 과인의 1년이라는 귀하고 긴 시간을 허비하게 한 죄!”

 

 

그 때에서야 알아챘습니다. 그 분은 실제로 좀비바이러스를 만들어 내서, 그 상상속에나 있던 공포를 전 세계에 풀어 혼란스럽게 하고, 세계정복을 현실화하라는 말이었죠. 진짜로 좀비를 만들란 말이었습니다.

 

 

“여봐라! 이 놈을 능지형에 처하라!”

 

 

능지라뇨! 그 고통스러운 형을 당할 정도로 잘못했다는 말입니까! 어쨌든 저는 그 순간을 모면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되는 대로 아무 말이나 소리쳐 질러 댔죠.

 

 

“전하! 전하! 제가 전하의 높은 뜻을 소인이 잘못 알아들었나이다! 제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세계 최강의 좀비부대를 만들겠사옵니다!”

 

 

여기서 ‘세계 최강’이라는 단어를 말하길 잘했어요. 그 분의 마음 속에 꽂혔는지 미소를 짓고 돌아보시더군요. 다행히 저는 1년의 시간을 추가로 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살 떨리는 순간이네요.

 

 

좀비 제작과정 

 

 

큰 소리 치기는 했지만 제게 최강의 좀비군을 만들 기술력 따위는 없었습니다. 일단 살고 보려고 아무렇게나 내던진 말이었죠. 아니, 실은 좀비 하나를 만들 능력도 없었습니다. 시체를 살리는 건 현대 의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저도 나름 왕립의과대학 수석입학을 한 사람입니다. 위기 상황이 닥치니 엄청난 창의력을 발휘되더군요.

 

 

「살아있는 시체를 만들 순 없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을 시체처럼 일단 보이게 하자.」

 

 

였던 것이죠. 그렇게 시간을 벌고, 왕께서 제가 속인걸 알아차릴 때쯤 도망하겠다는 계획이었죠.

 

각설하고, 어쨌든 좀비 비슷한 걸 만들어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좀비라는 생명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일 존재한다면 다음과 같은 큰 두가지 특성이 있을 겁니다.

 

 

첫째, 피부색이 시체의 느낌이 있음

 

둘째, 보행이 부자연스러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두가지 특징을 자연스럽게 사람을 통해서 구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성공의 경험이 없다면 이렇게 당당히 제 제안을 말씀드릴 수 없겠지요.

 

당시 제가 발견한 신종 바이러스 중 몇 개 쓸모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일단 하나는 꼴레스톤 바이러스라고 백 살 넘은 노인한테서만 발견된 바이러스인데 이름처럼 담관에 돌이 생기는 바이러스죠. 보통 담관에 돌이 생기면 배가 엄청 아픈데 노인들은 원래 증상을 느끼는 게 무딥니다. 그런데 백 살 넘은 노인한테만 생기니까 지금까지는 발견이 어려웠죠. 그러다가 패혈증으로 죽으면 다들 그런가보다 하지 누가 바이러스를 추출하려고 합니까. 하지만 저는 역학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고 추출해 냈습니다. 그 때만 해도 쓸데없는 발견이라고 생각했는데. 뭐, 백 살 넘어 돌아가시면 다들 감흥이 잘 없습니다. 그리고 돌이야 그냥 꺼내면 되는 거구요.

 

그런데 이 바이러스를 지금 상황에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일단 시체의 피부색은 까무잡잡하면서 뭔가 황갈색입니다. 그렇죠! 황달이 심하면 시체같습니다. 담관에 돌이 박히면 담즙이 정체되고, 그게 혈액으로 역류해서 황달이 생길 테니까요.

 

저는 실험에 참가할 사형수 너덧을 불러놓고 바이러스를 투여했습니다. 다들 젊은 사람들인데 노인한테 발현되는 증상이 과연 생길지 두근두근하더군요.

 

결과는 성공이었습니다. 네 명의 투여군에서 황달이 생겼죠.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요. 피부색이 너무 옅었습니다. 충분히 일반피부색과는 달랐지만 시체느낌으로는 좀 모자랐어요. 그리고 아마도 왕께서 보신다면 경을 칠 일이었죠.

 

그래서 저는 왕립병원 병동에 가서 황달이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관찰했습니다. 시체 사진 하나 찍어가서 다 비교했던 거에요. 정말 힘든 일이었지만 살기 위해 해야만 했죠. 그런데 조도 명도 이런 게 다 맞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런데 이상했어요. 그런 시체색의 피부를 제가 분명히 본 적이 있거든요. 놓친 게 뭘까 그 원인을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결론은 이랬습니다. 빌리루빈 양이 부족하다. 무슨 말이냐? 돌이 껴서 생긴 황달은 보통 빌리루빈 수치가 대략 10-15mg/dL정도 되죠. 그런데 제가 예전에 봤던 그런 황달 느낌을 만들려면 30mg/dL이상은 되어야겠더라고요. 아마도 그 환자들은 돌 정도가 아니라 담관암같은 큰 덩어리가 밖에서 누르는 그런 병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또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와서 담관암을 만드는 바이러스를 찾을 수는 없고, 돌이 더 꽉 막히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라고요. 결론이 안 나니까 잠도 안 오고······. ‘난 이렇게 죽는 것인가? 연구 도중에 도망치면 왕께서 금방 알아차리실 텐데······.’ 미치겠더라고요.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렇게 힘들어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는데, 출근해 보니 실험군 중의 하나 피부색이 제가 원하는 정확히 그 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저는 놀라 연구원에게 물었죠.

 

 

“야, 인마.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박, 박사님. 죄송합니다. 제가 통증조절을 한다는 걸 착각해서 기존 바이러스를 투약해 버려서······.”

 

 

 

그렇습니다. 투약 용량과 돌 크기가 비례하는 신기방기한 능력이 있었던 것이지요! 이 귀여운 바이러스같으니! 저는 기뻐서 연구원 녀석을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좀비 제작과정 : 예상치 못한 문제들

 

 

그렇게 끝났다면 정말 해피엔딩 이었겠지만, 쉽지만은 않았죠. 먼저 통증이 문제였습니다. 좀비라면 맛이 약간 간 얼굴을 하고 “끄으으으······.”하고 돌아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 담석이란 게, 엄청 아프거든요. 피부는 다들 딱 좀빈데, 아파서 데굴데굴 구르는 게 영락없이 그냥 살아있는 환자였습니다. 저는 또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운명처럼 구내식당에서 의대동기 녀석을 만나 밥을 먹게 됩니다. 정형외과 교수인데 이 녀석 평소에 잘 못 보거든요. 워낙 바빠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날 따라 “여어! 홍교수!”하고 손을 번쩍 들고 다가오더니 재미있는 말을 하는 겁니다.

 

 

“너희 내과 놈들, 맨날 우리 무식하다고 놀리는 데 말야. 실제로 무식한 게 맞는 것 같아. 하하하! 똑똑한 척 좀 해보려고 NSAID도 좀 덜 써보려고 하는데, 학회 차원에서 신약개발에 나섰는데 수포로 돌아갔지 뭐야! 하하하!”

 

“뭔데 그래?”

 

“우리 과는 역시 제일 중요한 게 통증조절이니까. 신약이 탈신경화(Denervation)를 만들어서 통증을 약 안 쓰고도 없앤다고 해서 천문학적인 연구비가 들어갔다더군? 그런데 통증만 없어지면 좋은데 감각도 다 없애 버렸다지 뭐야! 하하하!”

 

 

저는 그 말을 듣고 한 줄기 희망을 보았죠. 사지의 탈신경화를 만드는 약을 복강신경에 적용하도록 한다면? 담석 때문에 아픈 환자들도 결국 신경통이니까요. 저는 정형외과 교수 친구를 통해 그 약을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벌써 실험군이 50명을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좀비 군단을 만든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왕께서 제공해 주시는 실험군이 넘쳐났죠. 그만큼 잘못되면 제 모가지가 달아날 확률도 커지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성공적으로 최초 바이러스를 투여할 때 이 약의 성분도 콤비네이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처음 한 번만 주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이었죠. 예상외로 쉽게 해결될 문제였던 겁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피부 말고는 시체 느낌이 너무 안 나는 거에요. 몰래 고용한 미술팀들이 몸에 기름을 발라 뒀고, 계속 씻지도 못하게 한 터에 다들 벅벅 긁어대는데, 오히려 더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여서 저로선 몹시 짜증이 나더군요. 그런데 시간이 이 문제를 해결해 줬습니다. 앞서 말한 탈신경화가 뜻하지 않게 도왔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실 것 같은데, 예를 한 번 들어보죠. 예전에 나병, 그러니까 문둥병이라는 전설속의 병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손끝 발끝이 문드러져 보기 흉해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런 병이었는데 말이죠. 이게 병균때문에 생기는 증상이 아닙니다. 바로 신경조절의 문제인데요. 예를 들어 손가락을 두 개 모아 집는다고 한다면 적당한 힘으로 두 손가락이 맞닿았을 때 사람은 힘을 더 주지 않아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 나병균은 이 신경조절이 다 날아가 버리게 때문에 감각을 못 느끼게 해요. 그래서 환자들은 느낌이 없으니까, 더 세게 발을 디디고, 더 세게 집고, 더 세게 들고 하면서 관절이 망가지고 손가락 발가락이 문드러집니다. 제가 쓴 그 탈신경화 약 때문에 제 환자들한테도 그런 일이 생긴 겁니다. 시체 느낌이 좀 더 많이 나게 된 거죠.

 

여기까진 좋죠? 그래도 제가 보기엔 아직 뭔가 부족했습니다. 다들 너무 멀쩡히 직립보행을 하는 게 디테일이 떨어지더라고요. 시체 얼굴에 눈빛을 하고, 손발도 문드러지고 썩은 내도 나고, 다 좋은데······. 너희들 왜 두 발로 멀쩡히 걸어다니는 거니! 좀 절뚝거리고 하란 말이야!

 

 

“박사님. 그냥 이대로 내보내면 안 되요? 「새벽의 저주」같은 고전 좀비영화보면 막 뛰어다니잖아요. 저는 좀비도 충분히 두 발로 뚜벅뚜벅 걸을 수 있다고 봐요.”

 

 

박사과정 연구원 하나가 말하더군요. 참고로 이 친구는 저랑 로봇좀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가 죽을 뻔한 고비를 같이 넘겼죠.  살기 위해 이 두 번째 음모도 같이 하고 있었습니다. 죽어도 같이 죽는 그런 운명인 거죠. 그런 이 녀석도 이제는 지쳤는지 약한 말을 하는 겁니다.

 

 

“야, 인마. 나도 편하게 가고 싶어. 그런데 왕께서 알아차릴 건덕지를 조금이라도 드리면 안 돼. ‘끄으으으’ 소리 내며 한발로 다른 발 끌기는 좀비 모폴로지(Morphology, 형상)의 절대조건이야. 타협할 수가 없는 문제라고.”

 

“아, 그럼 그냥 다리를 불편하게 하면 되잖아요.”

 

 

그런 간단한 방법이! 이 녀석, 천재인 걸까요? 역시 생사의 문제 앞에선 자기 능력이 극대화되나 봅니다. 어쩄든 저는 바이러스 근주 방식을 이 때문에 변경하게 됩니다. 원래는 어깨에 했었는데 지금은 허벅지나 종아리에, 그리고 신체에서 흡수되지 않는 이물도 같이 주사했죠. 다리에 이물이 들어가니 역시나 불편한지, 다들 절뚝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대성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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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앞에 나가던 날이 기억나는군요. 8개월만의 성공이었습니다. 그 분께서는 200여 명의 좀비부대를 보고 정말 흡족해하셨습니다. 물론 이 부대는 그 분이 생각하는 진짜는 아니죠. 하지만 아실 방법은 없었습니다. 사형수 및 중범죄인으로 이뤄진 좀비들이었습니다. 그 중 몇몇을 꺼내 왕 앞에서 시범을 보이자 그는 대검을 들어 베고, 샷건으로 머리통을 시원하게 날리셨죠. 모든 일격이 성공적으로 들어간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기쁘셨던 것 같아요. 좀비를 모두 쓰러뜨리신 후 결국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셨습니다.

 

 

“크하하하하! 과인, 박사가 결국 해 낼 줄 알았소! 이 좀비 부대라면 세계인에게 과인의 무서움을 보여주기 충분할 터! 여봐라! 풍악을 울려라! 오늘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잔치를 열 것이야!”

 

 

저는 그 분의 웃음에 화답하면서도 속으로는 셈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다행히도 그는 시체가 다시 살아난 메커니즘이나, 바이러스가 혹여나 감염되지는 않을지, 같은 중요한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으셨죠. 어쨌든 제게 중요한 것은 이 좀비들이 실제로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는 것이었으므로, 발각까지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비디오를 찍습니다. 지금 화면에는 저 혼자만 나오겠지만, 저는 그저 대표로 말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달린 식구는 총 열 둘 입니다. 여섯은 순수의학 박사과정의 연구원, 여섯은 여러 임상분과의 전문의들입니다. 임상 비임상 모두를 합쳐 모두 의사들이고 뛰어난 인재들입니다. 저희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저희들을 받아주신다면 귀사의 좀비랜드 개발에 모든 힘을 쏟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시도록 하겠습니다.

 

정보국과의 연결 또한 모색하고 있습니다만, 망명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지라 답변을 기다리고만 있습니다. 저희는 모두 공화국의 시민이 되기를 간절히 원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말씀드립니다. 저희가 귀국의 발전에 쓸모있는 인재임을 정부측에 주장해 주시기를 간청드리옵나이다.

 

긴 영상 봐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3 ·~·~·~·~·~·

 

 

스크린 앞에 세 명의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회색의 유니폼을 입은 중년의 남성들이었다. 영상이 끝나자 곧 암전상태로 들어가고 자동으로 방 안의 불이 켜졌다. 여전히 이 셋은 멍한 표정을 했다. 그 중 하나가 분위기를 전환해야겠단 생각을 했는지, 고개를 휘이 휘이 돌리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서, 다들 본 소감은?”

 

“허허, 거 특이한 사람이네.”

 

“조금 그렇지?”

 

“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정보국에 뭐라고 해?”

 

“그것도 그렇고 저건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진지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완전 미친 놈이야. 자기네가 무슨 엄청 하이테크인 줄 알고 있네. 뭐? 캡슐내시경? 우리나라는 그거 한 백 년전쯤 쓰던 의학기술 아니냐? 그리고 우리 좀비랜드에 필요한 좀비가 수백은 될 텐데 수백명의 사람을 죽으라고 투입한다고?”

 

“수백명 뿐이겠습니까. 플레이어가 사살하면 계속 채워 넣어야지.”

 

“수백명? 한 명도 어디서 구해?”

 

 

다들 ‘한 명도 못 구한다’는 말에 동시에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나저나 저 나라는 정말 인권이란 게 없는 데로구만. 그러니까 사람이 더 싸니 이런 헛소리를 하지. 소문만 들었지, 역시 전제군주국가는 무시무시하네. 그야말로 판타지랜드네.”

 

“역시 왕이 짱이네요. 사람 하나 죽이는 건 일도 아닌가 보네.”

 

"근데 진짜로 아스라 왕국이 우리나라 침략하고 싶어해요?"

 

"왕이 미쳤다잖아. 군사력 차이가 얼만데 말도 안되지. 쟤들 군대 우리나라 상륙하려면 수영해서 와야 해. 지금 우리가 굳이 염려를 해 줘야 한다면 불쌍한 애들 익사할까 걱정하는 정도지.  "

 

“자자, 그래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들? 결론이 뭡니까?”

 

“뭘 어떻게 해요. 이사회에 알리긴 해야겠고. 그냥 이걸로 끝이지 뭐.”

 

“정보국은?”

 

“정보국 쪽엔 제가 말할게요. 어차피 이거 정보국에서 준 거에요. 거절하기도 그렇고 하니까 우리한테 책임전가하는거죠. 결론은 좀비랜드에 쓸모없는 인력이다. 끝.”

 

“오케이.”

 

“그럼, 밥 먹으러 가시죠. 에이, 이거 땜에 늦었네. 오늘은 30분밖에 못 쉬겠네.”

 

 

남자들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나가면서 영사기 전원을 끄는 것을 깜박했다. 이 영사기란 물건이 후진국 자료 열람을 위해 먼지 털고 꺼낸 오래 된 기계였기 때문이다. 문이 닫히고 방의 불이 꺼졌다. 불이 꺼지니 영사기 전원이 저절로 다시 켜졌다. 화면에 아까 봤던 마른 체형의 안경 쓴 대머리 남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안경을 고쳐 올리며 흠 흠 목소리를 가다 듬었다.

 

 

“아- 아- 보이십니까. 카메라 이거 켜진 건가.”

 

 

 

 

-끝-

비나인

소승, 하드SF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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