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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계 : 가족의 유산

 

달콤한 잠을 부숴버리는 것은 매일 들어도 적응이 되지 못 하는 휴대폰의 알람 소리였다.
"으. 출근…… 끔찍해."
푹신한 베게에 파묻은 머리를 든 그는 팔을 뻗어 자신의 휴대폰을 찾기 위해 침대 옆의 탁자 위를 훑었고, 그러던 중 무언가 툭 하고 떨어졌지만 꺼지지 않는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묻혀버렸다.
그는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휴대폰을 찾아 간신히 끈 다음에 출근해야 하는 짜증을 내면서 벗어나기가 싫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빠직!

 

"응?"
땅에 발을 내딛자마자 들린 소리에 그가 고개를 내려 바닥을 바라보니, 분명 탁자에 올려두었던 시계가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유리가 깨진 채로. 그뿐만 아니라, 시계의 초침이 기괴한 방향으로 뒤틀린 형태가 된 채.
"으아악!"
발 밑에서 발견된 시계가 망가진 것을 본 그는 경악을 내지르며 무릎을 꿇고는 시계의 본체를 조심스럽게 주워든 다음에 유리만 깨졌을 거라고, 아무것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으며 시계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믿음과 달리 시계는 전혀 돌아가지 않았다. 아예 고장이 난 모양이었다.
"아이고……."
시계의 초침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된 그는 안타까워하느라 자신이 출근을 준비할 시간을 이미 훌쩍 넘겼다는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 * *

 

"오늘 지각했던데, 무슨 일이야?"
점심을 같이 먹은 동료와 커피 한 잔을 마시고자 카페를 찾았을 때 불쑥 묻는 동료의 질문이었다.
그는 아쉬워하면서 솔직하게 시계를 망가트린 것에 정신이 팔려 출근할 채비를 미처 못했던 것이라고 대답한 다음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을 본 동료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지각한 이를 보며 되물었다.
"겨우 시계가 고장 난 것 때문에, 지각했다고?"
"... 그게 '겨우 시계가 아니니까' 그러지."
"호오?"
시간을 알려주는 도구, 시계는 널리고 널렸건만 그는 시계가 그런 흔한 것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한 대답에 호기심이 생겨난 동료는 대체 무슨 시계이기에 그를 지각하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대체 무슨 시계이길래 그래? 유명한 S사의 명품 시계 같은 그런 거?"
"그런 거라면 A/S를 받을 수가 있을 테니까 지각하지도 않았을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그는 가방에서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내 열어 동료에게 주워 담은 부서진 시계를 보여주었다. 그 시계를 본 동료는 유별난 것을 봤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우울해 하는 상대를 보았다.
"뭐야, 평소에 매일 차고 다녔던 낡은 시계잖아?"
"어."
"그런데 그게 출근보다 중요하다고?"
"어. 나한테는."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면서 쓰게 우려낸 커피를 마신 이는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하아…… 우리, 아버지의 유품. 아니, 어머니의 선물…… 이라고나 할까."
항상 팔목에 차고 다녔던, 지금 시대에서는 보기 힘든 아주 낡은 시계.
매번 배터리를 바꿔 끼워줘야 하고, 편리한 기능 하나 없이 오직 '시간만을 알려주는 것밖에 못 하는' 그러한 물건. 하지만 그는 그러한 시계를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언제나 팔목에 차고 다녔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동료는 그가 왜 시계가 망가진 것에 침울해졌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래. 그런 거면, 좀 흔한 물건이 아니네."
"…… 오늘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볼 거야. 고칠 수 있는 곳을 찾아봐야지."
"그래……."
동료는 빛을 반짝이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았다가, 그것과 비교해 보면 기능이라곤 하나뿐인 망가진 시계를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과연 저것을 수리할 곳이 지금 시대에 남아있기나 할까.

 

* * *

 

벌써 5번째 가게다. 그는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가게의 문을 열었다.

[시계 전문 수리점]이라는 간판만 보고 찾아다닌 지 벌써 8번째, 그중 3곳은 벌써 폐업해서 가게 문이 닫혀 있었다.
평소 출퇴근만 하던 도시의 거리란 거리를 '시계 고치는 곳'을 찾아 샅샅이 살펴보고 다니면서 몰랐던 길까지 알게 되었을 정도였다. 그만큼 열심히 발품을 팔았건만 상황은 최악이었다.

'이 시계... 엄청 오래전에 생산된 것 같군요. 요즘엔 이런 시계에 적합한 부품이 나오질 않아요.'
'어디 보자... 에이그. 엄청 옛날에 단종된 제품이네! 이제 버려, 이런 거 고쳐봤자 얼마 못 가.'

여러 가게를 다니면서 보이는 수리공들은 하나같이 부모님의 유산으로 남은 시계를 버리라고, 기껏 고쳐봤자 얼마 가지도 않고 다시 고장 날 것이라고, 그냥 관상용으로만 상자에 넣어 보관하라는 둥 소식만 전할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오늘 아침의 자신이 실수한 것만 아니었더라면 여전히 자신의 팔목에서 열심히 작동했을 시계였기에, 이제는 손목에 늘 차고 다녀서 손에서 뺀 자체로도 손목이 허전했고 부모님의 추억이자 자신에게 남은 부모님의 흔적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5번째 가게에 희망을 품고서 들어갔지만, 지겨워질 정도의 소리를 다시 듣고 나서야 그는 가게를 나올 수 있었다.
'내일은 휴일이니까…… 오늘 조금만 더 돌아보고 안 되면 내일 다른 도시로 가서 찾아봐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그의 눈에 후미진 곳에 감춰져 있는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달았는지 모르게 빛이 희미해져서는 전등이 깜빡깜빡, 금세 꺼질 것처럼 빛나고 있는 가게의 간판이었다.
그는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자꾸만 꺼지는 약한 빛의 간판 아래로 걸어가 그것의 이름을 읽어보았다. 간판에 달려있는 가게의 이름은 너무도 짧고 간단했다. 수리점.
'수리점이라니? 뭘 수리한다는 건데?'
그는 간판의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무엇을 수리하는지 적히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황당했던 감정을 추스린 다음에 도전해보자는 정신으로 가게의 문 앞에 섰다.

끼기긱.

광속 통신의 시대.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기계를 작동시키고 예민해진 센서에 의해 허공에서의 손짓만으로도 수화가 자동으로 통역되는 그런 시대이건만, 지금 그가 들어가려는 가게의 문은 손으로 밀어서 열어야 하는 아주 옛날 시대에 만들어진 문이었다.
'... 뭘 수리하기도 전에 문부터 바꿔야겠는데?'
거기다가 문이 열리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오래된 곳으로 보이는 만큼이나 문 역시 낡았기 때문일까? 문을 열려고 할 때마다 금속이 마찰하는 빡빡한 소음에 그는 가게를 들어갈 마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 하긴 이런 낡은 가게에서 내가 가진 시계를 고칠 수 있을 리 없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문을 밀던 것을 포기하고 돌아섰을 때였다.

 

"뭐여? 돌아갈겨?"

 

"헉!"
뒤를 돌았을 때,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람이 바로 등 뒤에 있었기에 그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 다음에 작게 기침을 한 다음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던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키는 아주 작았고, 몸도 상당히 앙상했고, 무엇보다도 아주 오랫동안 살았던 나무처럼 온몸이 쭈글쭈글 주름으로 뒤덮인 노인이었다. 이제는 뽑아낼 양분이 없었기에 변한 것처럼 새하얀 백발을 곱상히 빗어 넘긴 노인이 잔주름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 일로 찾아왔뎌. 갈 겨? 어서 가부러. 여기 돈 없어, 도둑놈아."
"윽! 도…… 도둑이라뇨! 도둑이 아닙니다!"
"하아? 그럼 왜 잠가놓은 문을 억지로 열려구 지랄이여, 지랄이!"
"아……."
문이 열리지 않았던 것은, 고장났기 때문이 아니라 잠갔기 때문인 것을 깨달은 그는 민망함에 고개를 숙여 노인에게 사과했다.
"무, 문이 잠겨있는 줄 몰랐습니다…… 간판, 불이 켜져 있어서…… 영업하고 있는 줄 알고……."
"…… 뭐 땀시 여기 왔어?"
괄괄한 목소리를 가진 노인은 용건을 물으면서 눈을 홉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따가운 시선에 그는 머쓱함을 느끼면서 솔직하게 가게를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자신에게 아주 소중한 시계가 있는데, 그것을 고치려고 퇴근한 이후 계속 수리할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고. 그러던 중에 여기도 '수리'를 할 수 있다는 간판의 글자를 보고 찾아왔다고.
"흐음……."
자초지종의 상황을 듣게 된 노인은 찾아온 방문객을 퍽! 소리가 나게 밀치더니 그대로 가게 문 앞에 다가갔다. 그런 다음에 가게 문틈에 난 조그만 구멍에 막대를 밀어 넣고는 돌렸다.
 그러자 짤칵하고 경쾌한 소리와 함께 금속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그러자 연로한 노인이 밀었음에도 쉽사리 문이 열렸다.
그는 요즘 시대에 보기가 정말 힘든, 박물관에나 가야지 볼 법한 열쇠로 여는 문과 노인이 주머니에 갈무리해서 넣는 열쇠를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 공간은 '요즘 시대'에 걸맞지 않게 너무도 낡은 것들로 가득한 것이었다.
"뭐여. 안 들어올겨?"
문을 연 노인은 뒤를 돌아보고는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는 상대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 때문에 가게 문을 다시 열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부랴부랴 노인을 따라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 앞에서도 느꼈었지만, 가게 안은 더욱 바깥보다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오래전에 사라진 것으로 보이는 기구들이 가득 쌓여있었고, 종종 정체를 알 수 없는 부품들이 사람이 누워도 무리 없을 긴 탁자 위에서 잔뜩 굴러다니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로 사라진 옛날의 잔재들로 가득한 박물관 같은 공간이자, 아수라장을 노인은 천천히 걸으면서 그나마 깨끗한 탁자를 찾아내어 그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내놔 봐."
"예? 아…… 예."
자리에 앉은 노인이 내놓으라는 말에 그는 잠시 벙 쪄서 바라보다가 황급히 가방 속에 소중하게 넣어 놓았던 망가진 시계를 꺼내어 내밀었다.
그러자 노인은 앙상한 손으로 시계를 들어서는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혀를 차기 시작했다.
"쯧쯧쯔…… 야, 이놈아. 이거 진짜 내 나이랑 비슷한 놈을, 어쨌길래 이리 처참히 죽였냐?"
"윽…… 그, 그건…… 실수로……."
"실수? 실수라고오? 에라이. 이미 지가 뒈지게 해놓고는 살려보겠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안 그래도 이미 여러 가게에서 들은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말에 속상하던 찰나 처음 보는 노인이 대뜸 쌍욕을 하고 있으니 그는 끓어오르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노인을 보고 목소리를 조금 높여 말했다.
"아! 알고 있다고요! 이미 충분히 들었고요! 못 고칠 거라고, 오래된 거니까 그냥 버리라고! 그런 말을 자꾸 들었는데 어르신까지 이러십니까! 됐습니다, 시계 돌려주세요!"
시계를 돌려 달라며 손을 내뻗은 방문객을 보면서 노인은 눈을 가늘게 옆으로 뜨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하! 이놈아. 내가 니보고 못 고친다고 그랬냐?“

"예?"
시계를 돌려주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빼앗아야 하나 생각하고 있던 순간, 생각지 못한 말을 듣고 그는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고, 고칠 수 있으십니까? 어르신은!"
"…… 쯧쯧. 더 까봐야 알것어."
조심스럽게 유리가 깨진 시계의 몸통을 앞뒤로 살피던 노인이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확대경, 배율은 2가 나을려나? 근디 이놈 시끼는 보니까 좀 많이 옛날 거 같은디 3배율이 좋을 거 같기두……."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있던 노인의 머리 위로 네모난 금속의 상자가 불쑥 내려왔다. 그것은 곧 좌우로 펼쳐지더니 노인의 머리를 감싸고, 앞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기계를 흥미롭게 지켜보던 방문자는 방금 펼쳐진 기계가 노인이 부른 '확대경'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햐아…… 아. 얼마만의 수술인지 모르것네."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노인이 소맷단을 걷어붙이고는 탁상을 더듬자, 판판하던 책상이 꺼지면서 드라이버와 같은 정밀 제품을 조립할 때에 쓸 법한 공구가 담긴 서랍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을 노인은 보지도 않은 채 손끝의 감각에 의지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드라이버를 찾아내서는 손쉽게 시계의 부품들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댓글 1
  • No Profile
    글쓴이 미네나인 19.08.18 15:06 댓글

    늘 SF 작품을 보는 걸 좋아하고, 동경했었는데 이번엔 직접 써보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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