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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별 헤는 밤

2019.08.31 16:5308.31

*

하필이면 1호선이다. 한 겨울에 지상 승강장인 신길역 영등포 방면에 배치된 효길은 아침 9시에 자판기 커피만 벌써 세 잔 째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호호 불며 귀중하게 마시고 있는 모습은 뭇 커피 광고 못지않게 절실해 보인다.

지하철에서 내리고 타는 한복 차림의 사람들이 저마다 입출구를 찾아가는 와중에도 효길만은 1-3 승강장 앞에 서서 그들의 수를 세느라 여념이 없다. 이번엔 내리는 사람 7명, 타는 사람은 13명이다. 사람들의 수를 서류에 적는 효길은 금세 미지근해져 버린 커피를 마저 마신다.

철도공사에서 설 연휴에 지하철역들의 이용객 수를 통계화하는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경쟁률이 높았다. 남들 다 쉬는 연휴 4일 동안 첫차부터 저녁 시간까지 해야 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에 급여도 상당한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연휴에 고향에 갈 일도, 할 일도 없는 사람이 많다고도 이해가 되겠다. 운이 좋아 지하의 따뜻한 승강장으로 배치된 사람들이 부럽긴 하지만 아침 시간이 지나 해가 중천으로 오르면 오히려 해가 비치는 지상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쉽게 생각했던 어제 첫날은 귀가 뜯겨져 나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추울 때도 있었지만 핫팩과 귀도리 등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나온 오늘은 충분히 할 만했다. 비교적 한가한 정오쯤에는 이어폰을 귀에 꽃은 채 핸드폰을 보면서도 능숙하게 사람들의 수를 적을 수도 있었다.

핸드폰 게임도 지겨워질 즘에는 지하철 안에 누군가 보고 두고 내린 신문을 재빨리 들고 나와 보기도 했다. 신문 1면에는 설 귀경길에 대한 기사들로 가득했다. 올 설에는 어떤 선물들이 인기가 좋고 가격대가 어떻다는 내용이나 연휴에 집에서 볼 만한 특집 영화에 대한 기사도 제법 볼 만했다. 그리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어. 어. 내 못 간다니까. 다음 주쯤에 봐서 가던가 할게. 정길이는 올 거 아이가. 아니래? 어. 안 들리나? 잠시만.”

 

효길은 이어폰을 빼고 전화기로 직접 통화를 받았다.

 

“뭐라구? 금마는 무슨 명절마다 출장이야. 나 연휴 다음날 끝나. 다음 주에 갈게요. 그래. 작은아버지 오시면 됐네. 그냥 여자들끼리 해도 되지. 요즘 세상에 제사가 무슨…”

 

전화를 끊을 때쯤 옆 벤치에 앉아있던 물건 파는 아주머니가 카트를 끌고 와 효길의 옆에 앉는다. 아주머니는 효길이 전화를 끊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천 원.”

“네?”

“에버랜드, 서울랜드에서 오천 원 하는 건데 이천 원.”

 

아주머니가 내밀고 있는 것은 축구공 모양 팽이였다. 버튼을 누르면 바닥으로 쏘아져 빠르게 돌아가는.

 

“이게 돌면서 반짝반짝 불도 들어오고, 설날 애들 선물용으로다가.”

“네. 괜찮아요.”

 

어느새 아주머니가 작동시킨 축구공 팽이가 바닥에서 사정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2002 월드컵 때나 유행했을 것 같은 응원가 멜로디가 함께 나왔다. 아마도 그때 생산된 것일까. 요즘 애들이 이런 걸 가지고 놀 것도 아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빙글빙글 도는 것 이외엔 무슨 소용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그런 팽이였다. 심지어 그 흔한 애니메이션 캐릭터도 도용되어 있지 않은 게으른 제품 같아 보였다. 반짝반짝 들어온다는 불빛도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도 그것이 신경 쓰였는지 먼저 변명을 해 보였다.

 

“이게 지금 밝아서 안 보이는 건데. 밤에 보면 불빛이 별처럼 반짝반짝한다니까. 이뻐.”

“그냥 망가진 거 같은데요. 배터리가 없던가.”

“불 들어와 있는 거래두. 이 아저씨 참, 별이 밤에만 떠요? 지금도 다 떠있는데 해가 밝아서 안 보이는 거지.”

 

그건 아주머니 말이 맞았다. 솔직히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그랬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로는 밤새 켜진 도시의 환한 불빛들로 인해 밤하늘의 별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저기 있다고 하니까 많다고 하니까 그런 줄로 아는 거지.

특별히 대꾸할 말이 없는 효길이 무시로 일관하자 아주머니도 판매는 그만두기로 했는지 회전하던 팽이를 집어 든다.

 

“근데 여기 역 직원도 아니고 뭐 하는 거래? 아까 반대편에서도 볼 때도 있더만.”

“아. 저요? 저는 그냥…”

 

마침 열차가 들어온다는 방송과 함께 효길의 대답은 마저 듣지도 않고 카트를 끌고 가버리는 아주머니. 아르바이트 중이라고 말해야 했을까. 불법적인 게 아니라고 해야 했을까 뭐였든 설 연휴에 꼴사나워 보일까 망설였던 게 맞았다.

 

어느새 해가 져버린 있는 지하철 승강장.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도 홀로 벤치에 남아있는 효길의 모습. 졸고 있는 모습이다.

 

*

버스가 텅 빈 시내를 빠르게 달렸다. 꼭꼭 껴입었던 옷들을 팔에 가득 들고 좌석에 앉은 효길. 핸드폰 배터리가 없어 더 이상 음악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어폰은 여전히 귀에 꽂은 채다.

문득 바라보게 된 창밖의 모습엔 한 아이가 아까 지하철역에서 팔던 축구공 팽이를 바닥에 돌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밤이면 별처럼 반짝일 거라던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주말이면 주변 교회의 주차장으로 쓰이곤 하는 중학교 운동장을 반 바퀴 정도 돌아걸으면 멀리 효길의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에 올라온 뒤 계속해서 살고 있는 월세집이다. 금방 더 크고 좋은 집으로 이사 갈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세를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하나를 메꾸면 하나가 비었다. 늘 그랬다.

운동장의 담벼락 밖으로 삐져나온 나뭇가지에 웬 축구공이 하나 걸려있는 것이 보인다. 텅 비어 보이는 운동장을 보니 필시 낮에 축구를 하던 아이들이 잃어버렸으리라 생각되는 것이었다. 축구공을 탐낸 건 아니었지만 나뭇가지에 아슬아슬 걸려있다 보니 괜스레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동해 나뭇가지를 흔들어 보게 되었다. 축구공은 너무 쉽게 효길의 앞으로 떨어져 내려 몇 번 힘없이 튕기다 멈추었다.

 

입구 쪽에 주차된 몇 대의 차량을 제외하면 아무도 없는 어두운 운동장에 공을 차는 소리와 효길의 호흡소리만 들린다. 한편에 벗어둔 두꺼운 옷들 너머로 하얀 숨을 내뿜으며 홀로 드리블을 하고 있는 효길이었다. 발재간 솜씨는 나쁘지 않다. 어릴 적에는 가능했었던 것도 같은 현란한 기술을 성공할 때까지 몇 번이나 계속해서 시도하며 골대를 향해 나아가는 효길은 보이지 않는 수비수를 제치며 캐스터라도 된 양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효길 선수, 대단합니다. 수비수 셋을 한꺼번에 제치고 들어가는데요, 빠릅니다!”

 

빠르진 않았다. 흥분한 캐스터 흉내인지 실제로 그 잠깐에 지쳐버린 것인지 숨이 가빠진 효길은 굳이 먼 쪽의 골대까지 드리블 해나가서는.

 

“슛! 젠장!”

 

어렵지 않은 거리였지만 빗맞은 공은 골대를 비껴나가 골대 뒤 담벼락에 맞고 튕겨져 나온다. 인상을 구긴 채 천천히 다가가 공을 줍던 효길은 갑자기 반대편으로 공을 뻥 차 놓고는 달려나간다.

 

“마지막! 역습 찬스!”

 

이번엔 아까보다도 더 격렬하게 반대편 골대로 공을 몰았다. 현란한 드리블도 별다른 혼잣말도 없이 묵묵하고 빠르게 골대를 향한 드리블이었다. 효길의 상상은 다음과 같았다. 추가시간에 다다르자 심판은 경기를 마치기 위해 휘슬을 입에 물었다 뗐다 하고 있었고 그때 마지막 찬스가 주어졌다. 반드시 넣어야만 하는 운명의 갈림길과 같은 그런 마지막 순간의 찬스 말이다. 온몸의 감각이 발끝에 모아지고 방아쇠를 당기듯 슛을 날리려 했지만 슛을 차야 할 타이밍이 되자 역시 급격히 지쳐버렸다. 평소에 운동을 좀 할 걸 하고 후회하면서 과하게 쥐어짠 강슛은 골포스트에 맞고 커다란 소리와 함께 높이 튀어 올라 버린다.

그 자리에 지쳐 누워버리는 효길. 숨을 고르기 바쁘다. 어두워야 하는 밤 하늘에는 새어 들어온 도시의 불빛들 때문인지 흐릿해져 보인다. 호흡이 잦아드는 동안 아무리 찾아봐도 반짝여야 하는 별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잖아. 밤에도.”

 

땀과 흙으로 지저분해진 자신의 옷을 보니 문득 한밤중에 이게 뭐 하는 짓인가도 싶다. 생각해보면 축구공을 차 본 지도, 이렇게 땀을 흘려본 지도 오래되었다.

괜한 감상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공을 찾는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또 나뭇가지에 걸려 버린 건 아닐지 골대 부근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중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 효길은 고개를 들어본다.

무언가 자신의 머리보다 한참 위에서 공중에 뜬 채 멈추어져 있었다. 그건 분명 골포스트에 맞고 튀어 올랐던 축구공이었다. 밤하늘에 떠있는 공은 어쩐지 별처럼 밝게 빛이나 보이기도 했다.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린 효길은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아 버렸지만 여전히 밤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공을 응시한 채였다.

 

멀리서 보면 축구공을 비롯한 많은 별 볼일 없고 반짝이는 것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도시 곳곳에 떠올라 있는.

서울 도시의 설 전야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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