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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극우 더 라이징

2012.12.14 13:1712.14

극우 더 라이징



“다래 본부장님, 들어가 계시라니까요.”

“아따, 또 실없는 소리한다. 내 고집을 누가 꺾어?”

까무잡잡한 피부에 검은 단발의 미녀인 다래는 이마를 적신 땀을 소매로 슥 닦아 내면서 답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쓰레기장을 헤매면서 재활용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해서 수거함에 손수 옮기고 있었다. 인공지능 로봇이 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인간이 더 싸구려였기에 인간을 시키고 있었다. 쓰레기는 끊임없이 태우고 있었기에 그을음과 연기가 광대무변한 쓰레기장 전체를 휘덮고 있었다. 허파가 타들어가고 늪처럼 빠져 들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인간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래는 갈고리로 음식물 넝마에 음식물 쓰레기를 집어넣었다. 인간의 주식인 돼지를 키우기 위한 사료였다. 다래가 알기로 더 이상 강화인간들은 음식물을 먹지 않는다. 이 음식물들은 강화인간들의 애완동물들이 먹다 남긴 것들이었다. 주울 때마다 느끼지만 강화인간들의 생명공학으로 조작된 애완동물들은 호사스럽게 먹었다.

한동안 청소 노동을 한 뒤 다래는 장구를 챙겼다. 아까 다래에게 쉬자고 했던 청년이 실없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다래도 마주 손을 흔들어 주었다. 청년은 5시간 밖에 자지 못 했고 개인 생활 없이 일했지만 최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얼마든지 인공지능 로봇에게 대체될 수 있고, 다른 인간들에 의해 대체될 수 있다는 이른바 시장 원리가 청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다래는 겉보기엔 아름다운 여자였지만, 기계공학으로 강화된 몸을 갖고 있었다. 다래는 지구를 지배하는 총자본의 하나인 삼천그룹의 노조원 출신이었다. 다래는 자신만 8시간 밖에 안 일한다는 것이 죄송스러웠지만 그것은 다른 청소 노동자들과의 약속이었고 또한 나름의 시간 배분이기도 했다. 다래는 청소 본부로 순식간에 달려 들어갔다. 다래는 물수건으로 몸을 대강 씻고 본부 지하로 내려들어갔다.

본부 지하엔 비밀 시설이 있었다.

“음, 다 제대로야.”

비밀 시설엔 강화복, 휴대용 미사일, 레일건이 잔뜩 비치되어 있었다. 다음 순간 기계적 감각이 다래를 긴장시켰다.

“누구냐!”

어둠 속에서 한 거대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화인간이었다. 그가 말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면 나 밖에 더 있나, 다래야?”

“베가냐.”

“고집 그만 피우고 나랑 같이 돌아가자.”

“왜 내 의지를 꺾으려는 사내놈을 둘이나 만나지? 오늘 안에 말이야.”

다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다래는 동작과 표정이 풍부한 여자였다. 그 점이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베가였다.

“다래, 네 꼴을 봐. 점점 낡은 존재가 되어 가고 있어. 우리 노조가 모든 구성원이 똑 같이 업그레이드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어서 발전이 느리지만, 그래도 너의 모습은 지나치게 낡았어. 한때 동지였던 이들이 점점 우수한 존재가 되어 가는 걸 보는 것이 내게는 고문이나 다름없어. 나의 너를 향한 사랑을 더 이상 저버리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난 인간을 위해 삶을 바치기로 했어. 너는 아직도 인간인 자들을 거지라면서 경멸하겠지만 내 생각은 달라. 그들은 우리 인간성의 최후의 보루야. 너희처럼 도덕적 인공지능을 윤리적 세뇌 수술을 통해 주입해서 내보내는 작전을 전 인류적으로 행함으로서 인류를 전체주의의 늪에 빠뜨려서 결국 우주에서 오는 자원을 독식하겠다는 음모를 꾸미고 있지 않아. 너희 노조나 기업이나 기계가 추구하는 힘에 매몰되어 있고, 그것은 인간만이 지닌 인간성을 드높이지 못 하고 있어.”

“역시 넌 예전부터 진상이었어. 하.”

베가는 고개를 흔들었다. 다래가 말했다.

“자 탁상공론은 집어 치우고 물건이나 내 놔.”

베가는 펌웨어 키트를 다래에게 내밀었다.

“휴대용 미사일, 레일건, 강화복, 무엇보다도 네 몸을 강화시키는 나노 전자기 정보가 가득 들어 있어. 빼돌리느라 고생했다고.”

“고마워, 베가.”

달래는 베가의 볼에 뽀뽀했다.

“하, 황홀한데. 이런 맛이 있으니까 네 프락치 노릇하는 것이지!”

다래는 펌웨어 키트를 검사 분석한 뒤 이상이 없자 차례로 장비들을 강화했다. 펌웨어 키트는 자가 복제하는 방식으로 장비들을 강화시켜 나갔고 그 과정은 다래가 통제했다. 베가는 다래에게 작별을 전하고 헤어졌다. 베가의 마음은 복잡했다. 베가는 다래를 노조에 다시 들이고 싶었지만, 다래는 강요한다고 굴복할 사람이 아니었다.

베가는 여러 경로의 세탁을 거쳐 혹시 있을지 모를 미행을 방지해서 삼천그룹의 기숙사에 되들어갔다. 베가는 네트워크에 접속해 전 지구적으로 중산층의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잠시 우려했다. 어떤 사회든 사회가 결속이 단단하려면 중산층이 두터워야 하는 법이었다. 베가는 거의 모든 인공지능과 로봇을 지배해서 노동자를 몰아내고 직접 자원을 뽑아 쓰고 있는 총자본의 일부인 삼천그룹에 붙어살고 있었다.

삼천그룹의 노조는 인공지능과의 결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삼천그룹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챙기고 있었다. 삼천그룹은 다른 노동자에게 그랬듯이 해고를 시도하고 있었지만, 노조의 조직적인 반대로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다. 이 점 때문에 삼천그룹은 경영 위기에 봉착해 있었다. 회사가 노동자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세상이 아닌 이상 삼천그룹의 행동은 노조원들에게 문자 그대로의 사형 선고였다. 노조원이 아닌 노동자들은 해고되어 굶어 죽거나 가장 값 싼 노동으로 밀러난 상태였다. 노조는 이들 비노조원 노동자들은 굳이 적극적으로 지키려고 하지 않은 바 있었다. 그야말로 귀족 노조적인 작태였지만 인공지능이 없던 세상에서와 같이 비난을 퍼부을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베가는 보고 있었다.

베가는 아버지로부터 노조원 자리를 세습 받았다. 이는 5대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음서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기회를 빼앗는 전형적인 기득권의 작태였다. 부모가 부자일수록 자식도 부자가 될 확률이 높은 법이었지만, 베가는 그룹 CEO 보다는 가난했기 때문에 자신을 서민이라고 보고 있었다.

직장에 나가보니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무슨 일인가요?”

삼천그룹은 단 1명의 부자가 경영하고 있었다. 그 부자가 좌파였는지 우파였는지, 근로자였는지 사용자였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지금 부자인 것이 중요했다. 부자는 마음껏 인공지능과 로봇을 조종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노조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한 노조 지부장이 우려 섞인 전파를 보냈다.

“균형이 깨졌어. 자네도 무장을 갖추게.”

베가는 강화복을 입어 더욱 전투력을 높이고, 휴대용 미사일과 레일건도 챙겼다.

일단 무력시위를 좀 더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선거로 파업이 결정되자 노조는 통제 가능한 모든 기계를 꺼버리고 일부 기물을 파괴했다. 파업은 노동자가 기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있던 낡은 시대의 유산이지만, 삼천그룹과 같은 특수 상황에선 힘이 되리라고 그들은 판단한 것이다.

삼천그룹 CEO인 부자의 인공지능 로봇 군단이 일터 코앞에 다가왔다. 부자의 거대한 외침이 들려왔다.

“너희 근로자들은 무기를 버려라. 이것은 명령이다! 근로계약을 준수해라!  너희는 정리해고 당해라! 아니면 죽어라!”

노조 지부장이 외쳤다.

“지금 계약을 어긴 건 사장 네 놈이다! 임금이든 복지든 대가를 지불받지 못 한다면 사회의 규칙을 지킬 이유가 우리 피지배층에겐 없다. 그것이야말로 계약이다. 지배층이 계약을 어기면 그것은 자유방임의 범죄자일 뿐이고, 그럼 그때엔 피지배층에겐 폭도로 변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다. 전투다.”

노조원들이 둘로 갈라졌다. 사측에 선 노조원들이 적은 걸 보고 베가는 외쳤다.

“병력을 보존해야 합니다. 3호 작전을 쓸 순간입니다. 견제하면서 빠져나갑시다!”

노조원들끼리 전투가 벌어졌다. 해일처럼 폭풍처럼 사장의 인공지능 로봇 군단이 그 뒤로 달려들었다. 베가는 도망치면서 휴대용 미사일을 발사했다. 일터를 빠져나갔다. 거대한 공장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최근에 형식적으로 돌아다니기만 했지만 그래도 정 든 일터였다. 베가는 감상적이 되려는 마음을 부여잡고 도망쳤다.

베가는 다래와 미리 약속된 접선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건물 몇 개를 폭발시켰다. 봉화 역할을 하게 하려 함이었다.

그곳에 다래가 강화복을 입은 적잖은 병력과 함께 있었다. 다래는 레지스탕스 중산층 조직에 속해 있었다. 중산층들은 탁월한 전투 경험을 지닌 다래에게 기대는 바가 있었고, 또한 부자들의 전횡에 생존을 위협받고 있었다. 다래가 베가에게 말했다.

“부자들, 그들 자본주의자들은 오직 효율과 원가 절감만을 내새워 모든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어.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인간적인 자본주의가 세워져야 했어. 삼천그룹의 귀족 노조 당신들은 좌파 정책을 앞세워 피지배층을 분열시키고, 노조의 과잉보호를 통해 비노조원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어. 언젠가는 그 책임을 물을 거야.”

삼천그룹의 인공지능 로봇 군단이 지평선을 까맣게 휘덮으면서 밀려왔다. 다래는 휴대용 미사일 발사기에 소형 원자폭탄을 실었다. 다래에겐 삼천그룹과는 달리 지켜야 할 자본이 없었다. 인류 최종 기업과의 전쟁은 이제 시작이었다.


Fin
201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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