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두번째 나사로

2008.08.05 16:4908.05

소설

두번째 나사로




  학교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다. 나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무임승차’이다. 무엇이 필요할 때 그것을 꼭 내 힘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다리면 다른 사람이 해 놓을 테니까 말이다. 좀 비겁해 보이긴 하지만 이러한 내가 나는 오히려 자랑스럽다. 또 어딘가에 소속한다는 것, 무언가에 얽매인다는 것 질색이다. 즐겁게 살다 늙기 전에 죽는 것이 내 꿈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 생각을 바꿨다. 이제 가능성을 믿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제2교육관에서 시체를 봤을 때부터 시작한다. 5층 화장실에서 그 시체를 봤을 때 나는 웃었다. 왼쪽 옆구리부터 피투성이가 된 채로 화장실 한 칸에 처박혀있었다. 허리부터 피로 물든 것으로 보아 옆구리에 자상을 입은 것이 분명했다. 문득 예수 생각을 했다. 예수도 옆구리를 찔렸다고 들었다. 변기와 어깨동무를 한 망인이 예수와 이율배반이 돼서 웃음이 나온 것 같다.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의 의무를 위해 죽었다. 저기에 있는 시체는 무엇을 위해 죽었을까.

  시체는 얼굴 전체가 씰룩거리며 일그러져 있다. 고통 때문이라기보다는 만족스러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얼굴이 부풀어 오른 듯하다. 특히 두피와 목의 피부는 눈에 띄게 푸른색을 띤다. 드라마 CSI에서 봤다. 저것은 청색증이다. 이 푸른색은 산소가 결핍된 헤모글로빈의 색깔이다. 명백하게 질식사임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헝클어진 머리에 젊은 남자 놈이다. 눈꺼풀이 반쯤 열렸지만 시각을 관장하는 뇌신경의 중추는 어두운 강을 한참 전에 거슬러 올라갔을 것이다.

  나는 화장실 칸막이 손잡이를 얼른 옷소매로 닦았다. 당장 도망칠 궁리부터 하였다. 내가 시체의 최초 목격자가 된다면 경찰과 언론에게 시달릴 것이고 지금 유지하는 조용한 학교생활은 산산조각날 것이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가기위해 제2교육관의 꼭대기 5층 화장실로 온 것도 그것 때문이다. 이 화장실은 인적이 드물다. 혼자서 조용히 일을 보고 나올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유기화합물이 내 공간을 깨버렸다.

  흠칫 고개를 돌렸다. 남자화장실로 고개를 쑥 넣고 있는 단발머리 안경잡이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바로 사라졌지만 나는 얼어버렸다. 고막으로 혈액 뛰는 것이 느껴졌다. 죽은 남자는 누구고 저 여자는 누군가. 저 여자가 남자를 죽였나. 나를 왜 봤을까. 내가 죽였다고 누명을 씌우기 위해서? 나도 죽이려고? 결론은 하나였다. 내 흔적이 없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혹시 내 뒷모습이라도 본 사람이 있을까봐 계단에서 강의실 구석 의자까지 단숨에 뛰어 내려갔다.

  오후 4시쯤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담배를 피우러 올라간 일련의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이 발견했다고 나중에 들었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 했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유는 졸업장 때문이고 그것을 위해선 출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강 신청을 할 때 전공과목은 필수 학점에 맞추고 나머지는 교양으로 채워놓았다. 시험을 볼 때는 당연히 커닝을 했고 교수 특성에 따라 출석을 부르는 시간에 맞춰 수업에 들어갔다. 스쿨버스에서, 매점에서 빵을 사면서, 도서관의 소변기 앞에 창문을 내다보며 계속 그 여자를 찾았다. 철학과 삶을 가르치는 정지련 교수는 두 시간 수업을 끝내고 출석을 부른다. 학교에 늦게 도착해서 강의실로 들어갈 시간을 엿보며 운동장을 내려다보는데 관람석을 서성이는 여자를 보았다. 잠깐 눈이 마주쳤을 뿐이지만 절대 잊을 수 없다. 화장실에서 만났던 계속 찾아다닌 그 여자였다.

  평범한 청바지, 단발한 머리, 맹한 표정에 작고 맵시 없는 몸. 주근깨. 거울을 보며 옷매무세를 정돈 했을까 하는 옷차림. 입을 열면 강철 젓가락을 씹어 먹을 치아 교정기를 달고 있을 분위기를 풍겼다. 또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모습이 나와 같은 그림자 족속 그러니까 아웃사이더 같이 보였다.

  그 시체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저녁시간을 꼬박 텔레비전 앞에서 버티며 뉴스를 보았다. 학교 전경을 배경으로 부검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스물네 시간에서부터 길면 사나흘이 걸리겠다고 나왔다. 학교 내 살인사건에 모두 경악하고 있으며 어서 범인을 잡아달라고 총장이 인터뷰를 했다. 총장은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선출 당시 신학부 쪽 교수와 접전을 치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과학수사 조기를 입은 사람들이 넓고 높은 제2교육관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보도는 끝났다.

  여자를 몇 번 더 발견하였다. 등교시간 때 신학관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봐서 신학부 학생으로 생각했다. 출결 상황이 괜찮은 수업 몇 개를 빼먹으며 관찰한 결과 가끔 학교 뒷산에서 나타나서 뒷산으로 사라졌다. 뒷산에는 수풀이 있을 뿐이다. 나는 미행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여자는 공사를 하고 있는 학생회관과 신학관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갔다. 장안대학과 경계를 둔 철책이 이어졌다. 잠시 한눈을 팔았을 때 여자는 사라졌다. 두리번거리는데 나무 뒤에 숨었던 여자가 내 앞을 막고 섰다.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 눈이 맞았다. 저격소총의 고성능 조준경 사선에 사로잡힌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호기심 때문에 쫓긴 했지만 무슨 말을 할지 미처 생각해두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무슨 과세요?”

  “죽고 싶냐?”

  여자가 물었다. 순간 화장실에서 죽은 그 남자가 생각났다. 나도 곧 쇠파이프가 꽂힌 옆구리를 움켜쥐고 쓰러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가 나보다 키 작은 여자였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따라오지 마라.”

  평범한 아웃사이더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웃사이더는 절대로 이런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아웃사이더라면 벌써 경계하고 내뺏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사내 앞을 오히려 자기가 가로막았다. 그런 채로 나를 노려봤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찌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조금 들어 멀뚱멀뚱 섰다. 여자 등 뒤로 숲 속에서 빛이 내어나오는 구멍을 발견했다. 그리고 기독교 노랫소리가 나직이 들렸다. 어불성설처럼 숲속에 자리한 기독교 동아리 실을 발견한 것이다.

  “꺼져라, 애송아.”

  여자는 다시 말하고 나를 쓱 훑으며 가타부타 말없이 뒤로 돈다. 이런 극단적인 말 폭격을 얻어맞으니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래서 다급히 어깨를 잡았다. 그때 제3의 인물이 내 옆구리를 걷어찼다. 나는 나뒹굴고 말았다.

  그 얼굴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져버렸다. 깊숙이 박힌 눈, 네모진 턱, 거의 직각으로 튀어나온 귀, 왼쪽 눈에서부터 광대뼈를 가로질러 윗입술까지 그어진 좀 흐릿해진 흉터. 그 남자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어깨도 팔뚝 하나만큼 더 넓었다. 다시 내 몸은 허공으로 들어올려졌고, 뜬 것을 느낀 순간 이미 바닥에 사정없이 패대기쳐지고 말았다. 이 모습을 멀리서 봤으면 내가 정석으로 업어치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등허리가 모조리 쪼개져 나가는 고통 속으로 도도히 걸어가는 여자 뒷모습을 보았다.

  “또 오면 널 죽이겠다.”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에서 감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은행 자동화기기의 응답 목소리처럼 그것은 무조건 불가침 될 진리처럼 느껴졌다.

  학보사 홈페이지에서 뉴스를 계속 보았다. 구익이는 언제나 솔선수범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과학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광보홍보학과에 들어갔다고 눈이 시뻘개진 누나가 말했다는 기사가 있다. 기자는 피해자가 외상에 의한 쇼크로 질식사 했다고 했다. 워낙 착해 원한을 살 사람도 없고, 강도를 당한 것도 아니라서 수사가 난항을 겪는다고 말했다.

  다음날에도 등교를 하였다. ‘경상학부 광고홍보학과 김구익 학생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나는 점심을 예술관 옥상에서 먹는다. 예술관은 이 대학교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이다. 예술관으로 오면서 다리가 아프다고 다들 투덜투덜하기 때문에 예술관에서도 가장 높은 이 옥상은 거의 누구도 올라오질 않는다. 매점에서 산 빵과 우유를 먹으며 어제 일을 되짚었다.  

  그 시체와 작달막한 여자를 연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 또 그 우락부락한 남자에게 살해당할 것이라 협박을 받은 사람도 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숲속에 있는 기독교 동아리 실은 완전히 폐쇄되어있어 그것의 존재를 폭로할 사람도 나뿐일 것이다. 경찰에 알릴까. 그러면 왜 처음부터 알리지 않았는지, 혹시 증거를 훼손하진 않았는지 추궁당하고 심하면 구류처분까지 받을 수 있다. 또 경찰 수사가 틀어질 경우 오히려 나를 용의자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때 웃음이 나왔다. 무임승차가 내 인생 철학인데 생판 모르는 사람을 위해 무언가를 하려고 고민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냥 모르는 척 하면 그만이다. 화장실과 학교 뒷산에서 생긴 일을 한순간의 꿈처럼 기억 저편으로 흘려보내면 상황은 끝난다. 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꺼림칙했다. 양심과 자존심이 섞여 유령이 되어 하루 종일 귓불을 간질이는 것만 같았다. 만약에 내가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평생 이때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살 것이라는 망상 덩어리가 나를 뒤덮었다.

  ‘증거를 찾아볼까.’

  점심 쓰레기를 에어컨 냉각기 위로 버렸다. 쓰레기를 마음대로 버릴 수 있는 것은 아웃사이더의 특권이다. 내심 결론을 내렸다. 김구익인가 뭔가 하는 녀석이나 그 가족을 위해서는 아니다. 나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아이를 보고 고백하지 않으면 생길 찜찜함 같은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학교 시설관리과로 갔다. 교직원 나머지는 자리를 비웠고 차재근 계장이 커피를 먹고 있었다. 빛이 내어나오던 곳의 대략적 위치를 설명했다.

  “동아리 실이라, 그런 것이 그런 곳에 있을 수가 없잖아.” 계장은 커피를 한 먹음 더 하더니 말을 이었다. “아, 거기에 벙커가 있어. 총장님이 새로 부임하시고 명지건설사에 직접 지어달라고 하셨어. 사실 벙커는 아니고 콘크리트 벽돌 반지하 구조물이야. 그거를 말하는 것 같구나.” 계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나에게 되물었다. “거기 불이 켜졌다고? 전기가 없을 텐데. 사람도 있어? 그건 폐쇄 시설이야.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데.”

  “…….”

  “내가 가 봐야겠다.”

  “아니에요. 됐어요.”

  나는 빛도 사람도 없었다고 둘러대고 나왔다. 그리고 오후 수업을 중간에 빠져나와 구글 어스로 뽑은 사진을 보고 걷기 시작했다. 학교 정문으로 나와 아파트 공사장을 통과해서 크게 바른쪽으로 돌았다. 동화리와 분천리를 지나 학교를 뒤에서 접근했다. 거의 뛰다시피 걸었는데도 그 벙커에 가까이 가자 땅거미가 졌다. 길에서 벗어나 산을 타기 시작했다. 산성화 된 토양이 물러 발이 미끄러지고 썩지 않은 낙엽이 꽹과리 같은 소리를 내며 부스러졌다.

  밤이 되었다. 기독교 노래 소리를 향해 천천히 접근했다. 나무 사이로 숨어 다니며 그 덩치가 나타날 것을 경계했다. 그러면서 새어나오는 빛에 도착했다. 그것은 콘크리트 벽돌로 지은 가건물이다. 유리창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인도자 앞에 군중이 십여 명 앉아 있다. 선반이며 카펫이 깔린 바닥이며 사방에다 촛불을 피워놓았다. 맨 앞에 그 땅딸보 여자는 두 손을 들고서 황홀경에 빠진 것처럼 몸을 떨어대고, 나를 때렸던 그 놈은 맨 뒤에 서 있다. 인도자는 기타를 내려놓고 열변을 시작한다.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의 병을 주님은 ‘죽을 병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처음에는 ‘그래도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오빠는 죽지 않을 거야’라고 막연하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병세가 점점 나빠지자 ‘이러다가는 우리 오빠가 죽겠구나’하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결국 나사로도 죽습니다.”

  인도자는 회중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저 정도 실력이면 서울 큰 교회에서도 충분히 밥벌이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믿음이 약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미 그들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은 죽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흔들리는 마음속에서는 절대로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 부활연구회는 믿음을 더욱 곤고히 해야 합니다. 나사로처럼 예수님처럼 부활하려면 우리는 더욱 투철하게 믿어야만 합니다.”

  이들 단체 이름이 부활연구회라는 것을 알았다. 단체 이름처럼 소속원은 모두 죽음에 대한 히스테리 환자들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지난번 사고는 사고가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이 부족해서 생긴 일입니다. 지난번 믿음이 부족하던 우리 청년에게 기회를 주는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나와 안면이 있는 덩치가 남자 하나를 끌고 왔다. 인도자가 말 했다.

  “지난번 이 형제가 믿음이 부족하여 우리 동지를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이제 참회를 증명하기 위해 직접 죽음을 맛보려고 합니다.”

  그 남자는 앞 단상에 눕혀 졌다. 가슴에 심전도계를 연결하는 것이 보였다. 인도자는 비닐봉지를 남자 얼굴에 씌웠다. 몸부림이 점점 잠잠해 졌다. 일직선 그래프를 뜻하는 기계의 경고음이 들렸다. 나는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들은 목숨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다.

  “심장이 멈췄습니다.” 인도자는 봉지를 풀고 기계를 들여다봤다. “기도할 때입니다. 아버지여 주여, 믿습니다.”

  이때부터 그들은 병적인 혼란에 빠져 스스로의 신을 불러 제끼기 시작했다. 손뼉을 치고 가슴을 두드리고 닭처럼 펄럭거리고 제자리에서 뛰고 벽에 머리를 찧고. 놀라움을 떠나 공포까지 느꼈다. 주여 믿습니다. 목숨을 돌려주십시오. 이런 소리가 가득했다. 7분 정도가 지나고 누워있던 남자가 뒤척이기 시작했다.

  인도자가 심전도계를 봤다.

  “심장이 뜁니다.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믿습니다, 주님.”

  말 그대로 특별한 소생술이나 전기 충격을 주지 않았는데도 남자가 살아났다. 허리를 숙이고서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기침을 했다. “기적이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이런 소리가 솟구쳤다. 그때 내가 잡고 있던 콘크리트 벽돌이 무너지며 유리창을 깨고 나는 그들 예배실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십 여개의 가시광선이 내 모든 숨구멍을 가로막았다.

  나랑 친한 덩치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단숨에 홀을 가로질러왔다. 우리 둘은 잠시 후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어느새 덩치는 말의 뒷다리 같은 한 손으로 내 목을 휘감았고, 다른 손으로는 사정없이 내 얼굴을 내리쳤다. 놈의 주먹은 살과 뼈를 으스러뜨려 당장 내 명줄을 끊으려는 결의로 피스톤처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주위에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아무 상관없었다. 덩치는 정말 자기 손아귀에 잡은 것을 영원히 끝장내려고 작정한 듯이 보였다.

  팔을 엑스자로 모아 얼굴을 가리고 잠깐 호흡을 고르고서 두 무릎을 가슴까지 들어 올려 덩치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군 생활을 버틴 힘으로 다리를 세워 어렴풋이 보이는 출구를 향해 돌진을 했다. 다른 놈들이 나를 붙잡으려고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나는 살기 위해 뛰고 있었다. 한쪽 어깨를 떨어뜨리면서 가로막은 사내의 가슴을 힘껏 들이받았다. 녀석은 다른 놈들에게 밀쳐 쓰러지며 여러 명과 함께 코미디에서처럼 요란스럽게 출구 주위에 차곡차곡 쌓이듯 쓰러졌다.  

  도망치는 것이 그때만 해도 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내 턱 밑과 겨드랑이 사이로 파고들어 사정없이 뒤로 힘껏 내던졌다. 뭔가 단단한 것에 부딪혀 쓰러지면서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위를 보자 얼굴에 흉터가 있는 덩치가 버티고 서 있었다. 주위의 얼굴들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모든 것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눈을 감은 채로 정신을 차렸다. 남자 몇이서 이야기를 하였다.

  “어디까지 알까, 저놈 말이야.”

  “그냥 죽이지 그래. 먼저 놈 죽일 때처럼 말이야.”

  손과 발 신경계통의 전기신호를 확인했다. 손목과 발목이 묶여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정신이 든 것을 알까봐 움직이지 않았다. 아드레날린 때문에 급격해지는 호흡을 죽이느냐고 폐를 있는 힘을 다해 쥐어짰다.

  “회장, 주사를 넣으면 간단할 거야. 이놈 없애버리자.”

  “그나저나 오늘 그놈은 어때? 계획대로 됐나?”

  “아까 눈물을 흘리며 회개 기도를 하더군. 믿음이 부족했다고 말이야.”

  “그 미친놈만 아니었어도 일이 커지진 않았을 텐데. 젠장” 회장 목소리가 말했다. 아까 인도자였던 인간이다. “회개 기도를 했다고? 그날 말이야, 죽은 걸 확인하겠다고 칼로 쑤시다니. 맹랑한 놈. 자수도 하겠데?”

  “응. 자기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겠다는군. 혼자서 저지른 걸로.”

  난 옆으로 눕혀져 있었다. 실눈을 떠 봤지만 보이는 것은 카펫이 깔린 바닥과 걸어다니는 신발뿐이다. 왼쪽 눈은 퉁퉁 부어올라 거의 떠지지도 않았고, 입술은 그 난폭한 주먹으로 윗니에 찍혀 계속 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보나마나 얼굴 전체에 시커멓게 멍이 들었을 것이다.

  “계획대로군. 하지만 그놈 입에서 우리의 비밀이 새나가지 말라는 보장은 없잖아. 제군들, 지금 우리에겐 한 놈이 더 생겼어. 이 새끼 죽이고 죄책감에 자살한 걸로 꾸미자. 어때?”

  “괜찮군.”

  회장이 다른 사람 모두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했다. 모두 좋다고 대답했다.

  “그럼 머리를 빗겨, 손톱 청소하고. 증거 될 걸 다 털어내. 난 주사기를 가져올게.”

  ‘좆 됐다.’

  처음에 든 생각이다.

  “신발 벗길까?”

  “물론.” 회장이 멀리서 대답했다. “발가락 사이에 주사를 찔러야 부검에 안 걸린다고.”

  그 주사는 무엇일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나오는 잠시 죽게 되는 묘약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줄리엣도 아니고, 지금 상황이 그렇게 로맨틱하지도 않았다.

  눈을 떠서 손목 매듭을 보았다. 나일론 호줄로 꽝꽝 동여매놓았다. 신발을 벗기려고 하는 녀석이 내 움직임을 보고 멈칫 했다. 나는 코를 정통으로 걷어찼다. 코뼈를 부러뜨렸나보다. 코뼈가 밀리는 느낌과 함께 녀석은 두 갈래로 피를 뿌리며 자빠졌다. 얼굴에 흉터 있는 덩치가 달려들었다. 발목이 묶였지만 무릎을 최대한 이용해 뛰어오르며 턱을 이마로 찧었다. 이빨과 핏줄기가 허공으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한 명이 더 있었다. 점프를 해서 체중으로 덮쳐버렸다. 놈이 쓰러지며 뒤쪽 선반이 박살났다. 양초들이 떨어지며 카펫에 불이 붙었다. 뒤에 인기척이 나서 돌아보니 회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오른쪽으로 달려들어 청바지건 뭐건 다 뚫고서 오른쪽 궁둥이 위에다 주사 바늘을 힘껏 찔러 넣었다.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치며 그 주사기를 빼냈다. 반 밖에 못 눴다는 회장의 푸념이 들렸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주저앉았다. 놈들은 나를 관찰했다. 그들은 약효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놈이 불을 끄려고 카펫을 발로 밟아 댔다. 엉덩이의 얼얼함을 떠나 모든 것이 얼떨떨했다.

  주사제는 정확하게 1분이 지나고 효력을 보였다. 일단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그래서 산소부족으로 허파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옆으로 허물어졌다. 손과 발이 묶여졌다. 질식이 돼서 손 하나 꼼짝할 수 없게 되어 이제껏 살아온 동안 어느 때보다도 더 겁에 질렸다. 얼굴로 피가 몰리며 터질 것처럼 혈관이 팽창했다. 차라리 죽여 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숨이 떨어져 말도 안 나왔다.

  회장이 말했다.

  “약이 다 안 들어가서 힘든 거야. 다 들어갔으면 오히려 편했을 텐데 말이야.”

  카펫에서 불이 번지며 연기가 벙커를 채우기 시작했다.

  졸개 하나가 비닐봉지를 가지고 왔다. 내 얼굴을 감싸면 내가 죽기 전에는 그 봉지를 풀지 않을 것이다. 봉지가 문젠가, 타죽게 생겼는데. 졸음이 몰려 왔다. 두 발로 발버둥질을 쳤다. 신발이 벗겨졌지만 멀리 날아가지 않았다. 얼굴이 봉지에 담겼지만 반항하지 못했다. 카펫에 붙은 불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일당들 도망가려는 순간 입구에서 랜턴 불빛이 들어왔다.

  “뭐야! 이거!”

  차재근 계장 목소리다 하고 생각했다. 불길은 계속 타올랐다. ‘날 좀 구해줘요라고 부르짖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한 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병원에서 정신을 차렸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손과 다리 부분에 화상을 입어 노란 화상거즈가 얹어져있다. 숨쉬기가 따끔거렸는데 간호사가 기도 화상 때문이라고 그정도면 경미한 거라고 알려주었다. 경찰이 왔다. 나는 사실대로 숲속에서 그 벙커를 발견했고 엿보다가 일이 커졌다고 말했다. 화장실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한 내용, 간호사와 의사에게 들은 정보, 인터넷 서핑과 내 추리를 더해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썩시닐콜린은 극히 짧은 시간에 작용하는 소멸성 근육 이완제이다. 근육 주사를 통해 약물이 신경 세포체에 닿으면 수의근의 신경이 전달 장애를 받는다. 이때 1분 이내에 일어나는 전반적인 이완과 더불어 마비는 75초에서 7분까지 지속된다.

  일종의 합성 쿠라레(식물의 독)인 썩시닐콜린은 의식에 영향을 끼치거나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다만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근육, 턱 근육, 사지 근육, 복 근육, 횡경막근, 그 외의 골격근 또 심장 근육의 이완제로 작용한다. 내가 숨을 못 쉬어서 타는 것 같은 질식을 느낀 것, 부활연구회의 집회 중에 심전도계로 죽음을 꾸민 것은 이러한 효과 때문이다.

  이 약물은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골격근을 이완시키기 위해 사용한다. 수술용 마취재인 것이다. 0.3㎎에서 1.1㎎을 1회 주사할 경우 효과가 3분에서 7분 동안 지속된다. 이 약물은 장애를 일으키거나 병리학적으로 분명한 증거를 남기는 법 없이 곧 체내에서 분해된다. 썩시닐콜린의 분해 산물인 썩신산과 콜린은 인체 내에 정상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절한 양의 썩시닐콜린을 주사하면 일시적인 죽음을 일으키고 체내에서 분해되면 다시 살아난다. 부활연구회의 회장은 이 점을 이용해서 부활 놀이를 해 왔다. 정신 나간 광신도들이 모여들었고 개중에는 이 사도에게 몸을 허락한 여자도 있다고 한다. 경찰은 하나씩 이름을 대라 그래서 모두 잡아들였다. 회장은 자신은 목회할 능력이 충분히 있는데 교회에서 전도사로 써주지를 않아서 스스로 개척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스로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고 했다나 뭐 그렇다.

  김구익도 이 단체에 빠졌고 스스로 기적의 대상이 되길 원한 것이 틀림 없다. 그때 맹랑한 1학년 녀석이 김구익 배에 칼을 꽂았다. 죽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심장이 박동하지 않으면 혈관에 압력이 없으므로 자상을 입어도 피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김구익이 살아났다는 것이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돌아오고 칼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한 중추신경은 심장을 흥분시키고 폐는 더욱더 공기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하지만 횡격막은 아직 자기 기능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혈액의 산소를 모두 소비하고서 김구익은 쇼크로 사망했을 것이다.

  내가 깨어난 날 저녁 학보가 기자가 왔다. 학생회에서 총장을 검찰에 송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총장실 압수 수색도 했다고 했다. 이 부활연구회의 존재를 총장은 알았다는 것이다. 신학대학의 알력에 대한 일종의 생색내기를 하기 위해 사태를 방관했다는 정황 증거가 있다고 했다. 또 신축 신학관을 사회복지학과 학부와 사회과학대학원 전용 건물로 전용하려는 계획서까지 발견했다고 했다.

  학교 교무처에서 전화가 왔다. 입원 기간 동안 수업은 출석으로 처리해 주겠으니 걱정 말고 쾌유하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내 존재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제는 어떠한 일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능성을 믿는다. 무엇이든 희망이 있다. 나는 어떠한 일에도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간호사 몰래 병원 1층 편의점에 가서 빵과 우유를 샀다. 병원 밥은 맛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맛을 내는 성분이 들어있지를 않은 것 같다. 빵 봉지를 뜯으면서 스스로 기특해 했다. 사건을 파헤치지 않았으면 화상을 입지도 죽을 뻔 하지도 찰과상을 입지도 얼굴이 터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학교 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네 깡패에게 매일 돈을 뜯기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않은 삶이다. 점심 쓰레기를 평범하게 편의점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내심 결론을 내렸다. 누구에게나 의무가 있다. 이제 나는 그것을 피하지 않으면서 스스로에게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이며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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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김봉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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