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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리프레인

2008.07.23 01:0507.23




        <리프레인>




  작곡가 마샬 뒤프레인의 피아노 독주곡 25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작품번호 13-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이다. 마샬 뒤프레인은 일생에 걸쳐 수많은 여자들과 정신적 우정 ― 마샬 뒤프레인은 그 여자들 중 누구와도 육체적으로는 관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을 나누며 그를 통한 음악적 영감을 얻은 것으로 유명했다. 그 여인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마샬 뒤프레인이 일생 동안 <내가 가장 숭배하는 여신>이라 공언했으되 그 이름도 인적사항도 알려지지 않은 한 여자이다. 마샬 뒤프레인은 그녀를 <13번째 소녀>라 칭했고, <작품번호 13-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은 오로지 그녀에 의해 탄생했고 그녀에게 바쳐진 작품이라고 하였다.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은, 듣는 이를 매혹시키는 음악적 아름다움과 구성의 정밀함과 함께, 그 작품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요구되는 묘한 징크스로 이름이 높았다. 곡의 제목은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이고, 실제로 곡은 13개의 작은 부분으로 나뉘며 각 부분의 끝에는 동일한 구성으로 12회 조바꿈하다가 13번째에 처음과 똑같은 형태로 돌아와 전체를 마감하는 후렴(refrain)이 있다. 피아니스트에게 요구되는 징크스는 바로 이 13개의 리프레인, 그 중에서도 마지막인 13번째 리프레인에 있었다. 개인적인 연습에서는 어떻게 연주하든 상관 없고, 아마추어의 연주에서도 어떻게 치든 마찬가지로 상관 없다. 그러나 연주회의 레퍼토리로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이 들어간다면, 어디서 누구의 연주회이든 간에 ― 심지어 어린 학생들의 예술제나 발표회에서조차 ― 예외 없이 징크스가 발동했다. 바로, <리허설에서는 13번째 리프레인을 연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징크스이다. 만약 리허설에서 13번째 리프레인을 연주하면, 본연주에서는 반드시 믿을 수 없는 실수가 일어나 전체를 망치게 된다. 전세계에서 <작품번호 13-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을 연주한 피아니스트치고 이 징크스를 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프란츠 리스트가 환생한 피아노의 파가니니>라 불린 천재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라빈이 그 징크스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알프레드 라빈은 독주회의 레퍼토리 다섯 곡 중 마지막으로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을 넣었고, 리허설에서 마(魔)의 13번째 리프레인을 완전히 연주했다. 그리고 본연주에서, 알프레드 라빈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손가락, 환생한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를 치는 니콜로 파가니니로서 폭풍우처럼 건반 위를 휩쓸어 나갔다. 그렇게 네 곡이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소리의 구조물이 되어 연주회장에 솟아올랐고, 드디어 마지막으로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에 도달했다. 알프레드 라빈은 허공에 손가락을 잠시 흔들어 열을 식히고는 힘차게 건반을 내리짚었다.

  알프레드 라빈의 열 손가락은 건반 끝에서 2밀리미터의 오차로 허공을 지났고 뒤이어 알프레드 라빈의 턱이 손가락을 대신하여 건반 위에 떨어졌다.

  세기의 천재 피아니스트였던 알프레드 라빈이 그 때의 충격을 극복하고 다시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기까지는 무려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마샬 뒤프레인의 피아노 독주곡 <작품 번호 13-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에 얽힌 징크스는 부동의 저주가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징크스로 가장 고통을 겪은 사람은 마샬 뒤프레인 자신일 것이다. 그는 평생에 걸쳐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으며 문제의 13번째 리프레인에 붙은 징크스를 슬퍼했고 그 징크스로 피해를 본 피아니스트들을 동정했다.

  만년의 마샬 뒤프레인은 죽기 전에 그 징크스의 원인을 찾고 말겠다고 결심했다. 마샬 뒤프레인은,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에 붙은 징크스의 근본은 자신의 무의식에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전세계의 심리 치료사 및 최면술사, 전생체험 전문가 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세계적인 최면술의 권위자, 한국의 홍태양 박사를 만났다.

  홍태양 박사는 마샬 뒤프레인을 라꾸라꾸 침대에 눕히고는 최면을 걸기 시작했다.

  "편안해집니다……. 눈이 감깁니다……. 다리가 무거워집니다……. 팔이 무거워집니다……. 온몸이 가벼워집니다……. 점점 가벼워집니다……. 깃털 같습니다……."

  "……."

  "이제 과거로 돌아갑니다……. 당신은 점점 젊어집니다……. 계속 젊어집니다……. 당신은 지금 몇 살입니까?"

  "…… 서른다섯……."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 작곡……."

  "무엇을 작곡하고 있습니까?"

  "…… 이슬의 영혼과…… 13개의 리프레인……."

  "자, 그 순간에 이미지를 고정하십시오."

  "……."

  "이제 당신은 자신의 마음 속으로 들어갑니다……. 점점 들어갑니다……. 점점 더 들어갑니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갑니다……. 무엇이 보입니까?"

  "…… 기억……."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 내…… 전생……."

  "당신은 전생에 누구였습니까?"

  "…… 한국인…… 남자……."

  "전생의 무엇을 기억합니까?"

  "……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고…… 누가…… 소리치는데…… 무섭고…… 힘들고…… 너무너무…… 괴로워요…… 엉엉엉…… 엄마……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엉엉엉…… 엉엉……."

  "진정합니다, 진정합니다. 무엇이 그렇게 괴롭습니까?"

  "…… PT 8번…… 엄마…… 엉엉…… 너무 힘들어……."

  "왜 그렇게 괴롭습니까?"

  "…… 어떤 개새끼가…… 자꾸…… 마지막 번호 복창해…… 힘들어 죽겠어…… 엄마……."




* 2008. 2. 21. 목.
황당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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