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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새벽부터 황혼까지

2008.07.27 03:0907.27

  새벽부터... 황혼까지



"그래서 말이야. 대체 민이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끔 모를 때가 있단 말이야. 한 번씩 다른 생각을 할 때면 한참을 불러대야 제정신을 차린다니까. 어디다가 정신을 놓고 온 건지 모르겠어."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서 머리를 식히고 편안한 잠옷차림으로 침대에 드러누운 아련은 휴대전화로 친구 민정이에게 오늘 오후에 만남을 가졌었던 어느 남정네에 대해서 말문을 열었다. 아무리 민정이와 막연한 친구사이라고는 하지만 남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평소라면 어느 정도는 생각을 하고 입을 다물었겠지만 현재 그녀는 그만큼 신중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은 평온치 못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민정이가 입을 연것은 그녀의 한탄을 한동안 들어준 후였다.

「 음, 어쩌면 그 소문이 정말인지도 모르겠네. 」

"...무슨 소문?"

아련은 침대에 드러우눠워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유민이에게 소문이라니. 처음들었다. 무언가 나쁜 소문에 얽힐 정도로 행실 나쁜 짓은 하는 일이 없는게 유민이니까. 그런 나쁜 류의 소문은 아니겠지. 다행히도 친구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나쁜 류의 소문은 아니었지만, 분명 그녀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기에는 충분한 내용이었다.

「 유민이 말이야. 고등학교때 좋아하던 여자애가 있었다던걸. 사이도 무척 좋았다는 모양인데 같은 학교 다니던 애들 말 들어보면 사귀는 건 같던 분위기라던걸, 그런데 그 여자애가 아무 말도 없이 전학을 가버렸던 모양이야. 그 이후로 성격도 좀 변한건 같다던걸. 」

유민이가 좋아하던 여자애? 어떤 여자아이였을까. 물론 예뻣겠지? 나보다 예뻣을까? 아냐아냐 유민이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분명 마음씨가 고운 여자애였을거야.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전학을 가버렸다니. 즉 그 여자애 쪽에서 유민이를 찼다는 말인가? 바보가 아니었을까. 유민이 같은 남자를 놔주다니 나 같으면 절대로 안그랬을텐데, 왜 나랑 유 민이는 같은 고등학교가 아니었던거지. 등등 미묘한 생각으로 차오르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어서 가까스로 제동을 건 아련은 다른 쪽으로 생각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

"성격? 차분하고 지적인게 지금도 무척 멋진데 예전에는 어쨌을까? 그런데 그런 얘기를 누구한테 들은거야?"

「 우혁이 한테 들었는데... 지금 유민이랑 다투고 온거 아니었어? 벌써부터 헤롱거리면 어쩔건데? 」

민정은 친구의 어리숙함을 안타까워하며 쓴소리를 남겼다.





『 시끄러운 아이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시간을 공유했으며
    화창한 여름날의 오후에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었으나
    어둠이 깨어나는 밤의 아침 속에서 이별했다.

    그래. 그것은... 예고 없이 찾아온 이별이었다.』





유민은 거듭되는 물음에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저기 유민아, 내 이야기 듣고 있어?"

건너편에 앉아있던 아련이가 테이블에 바짝 붙어서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런, 너무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나. 이렇게 한 번씩 깊이 생각에 빠져버리는 버릇이 생긴건 언제부터 였을까. 싶다. 예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지만 언젠가 이렇게 정신을 놓는 일이 빈번해졌다. 그래, 그건 분명히 그날부터 였을 거다. 황혼이 내리던,그  밤이 깨어나던 그 날 이후부터.

"미안, 다른 생각하고 있었어."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아련은 정직하게 고백하는 유민에게 한껏 심술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아마도 친구인 미정이가 본다면 '너 그런 표정도 지을줄 아는 구나!' 하면 경탄했을게 분명한, 상황 모르고 봤더라면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모습이다. 어린애가 부모에게 투정부릴때 짓는 표정과 흡사할지도 모르겠다. 아련은 가끔식 정신을 놓아버리는 유민에게 실망감 비슷한 느낌을 느끼는 중이었다.

조금 차림새가 안좋았나. 하고 속으로 속상해하는 건 자신밖에 모를거다. 유민과의 단둘의 데이트라고 해서 아침부터 차림새에 신경쓰느라 약속시간에도 간신이 도착한 그녀였기에 부드러운 재질의 면바지와 하얀 블라우스와 하늘하늘한 얇은 조끼에 정성들여 단정하게 가라앉힌 머리를 핀으로 고정시킨, 무척이나 단아한 모양새의 여인으로 보이고 있다. 그 매력에 길을 지나가더라도 지나가던 남자 중 태반은 한번쯤 다시 뒤를 돌아볼 법한 미인이었지만 유독 그녀 앞에 앉아있는 이 남자에게만은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

"대체가 말이야. 남이 진지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데 다른 생각하는건 실례라니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마음속은 부글부글 쓰려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오고 말았다. 대체가 이 남자는 여자의 마음을 몰라준다니까. 속으로 투덜거리리는 아련에게 유민은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미안."

"대체 그 미안이라는 말은 언제 그만할거야?"

유민으로서는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지만 아련으로는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꼴이었다. 유민은 도대체 배려라는걸 모르는 걸까. 아니면 너무 정직해서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걸까. 허물없이 진실한게 유민의 매력이기도 했지만 남녀간 애정사에는 아무래도 지나가는 바람이 부는 이유로도 싸움으로 번지는게 허다하니까. 대수롭지 않은 부분에서 티격태격하게 되어있는 모양이다.

더 이상 앉아있다가는 유민에게 심한 말을 할수도 있기 때문에 아련은 자리에서 일어나기로 했다. 정말, 기분좋게 데이트를 즐기고 싶었는데 오늘은 날이 아닌 모양이다. 약속시간에 만난 이후부터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다. 아련이 열과 성을 다해 즐기려고 해도 두 손이 부딪혀야 박수소리가 나는 법이다. 유민은 아무래도 자신과의 만남을 데이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저 친한 친구랑 만나는 것 같이 편한 느낌이다.

"어디가?"

"집에, 학교에서 보자."

자리를 일어서는 아련에게 유민이 물었지만 아련은 체념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카페를 나가버렸다. 혼자 남아있는 유민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생각했다. 역시 대화 도중에 다른 생각을 하는건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수 있는 일이다. 아무래도 아련과는 앞으로 사이가 서먹해질지도 모르는 일이겠네. 그런데 대체 왜 만나자고 한걸까. 나사 하나가 바닥을 구르는 듯한 유민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페를 나간 아련은 곧장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은 불쾌함도, 분노도, 그렇다고 체념도 아니었다. 그건 틀림없는 패배감이었다.





『 …그리고
    새벽의 새소리와 함께 재회했으며,
    황혼을 배웅하는 노을과 함께 작별했다. 』





"난 니 녀석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네 녀석을 이해하기가 싫어."

핸드폰으로 들려오는 친구의 목소리는 분노에 차있었다. 이 녀석 지금 누구에게 무엇때문에 분노하는걸까. 신기한 녀석이라니까. 가끔 고등학교 때부터 알아왔지만 친구 우혁이에 대해서는 가끔식 이해하지 못하는 면을 느끼고는 한다. 대체로 이성간의 교제에 대해서 특히 더 그런데, 오늘도 마침 발작이 시작된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걸려온 우혁의 전화를 받는게 아니었다. 덕분에 쓸데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뭐, 덕분에 집까지 오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유민은 적당히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으며 재주좋게 계속해서 통화를 계속했다.

"대체가! 우리 기수에서 제일로 인기많은 여자애가 누군지 알아? 아니 그냥 모른다고 해라 내가 가르켜 줄테니. 너랑 사귀고 있는 아련이란 말이야! 감사합니다 하지는 못할 망정 여자를 돌로 보라는 명언을 쓸데없는 곳에서 실천하는 녀석이라니!"

과연 쓸데없는 정보력. 그런 걸 조사할 시간에 공부라도 더 했으면 학점 모자라서 간당간당하고 있지는 않았을텐데. 민은 쓴웃음을 지었지만 핸드폰 너머의 친구에게는 전해지지 않을 미소였다.

"음, 여자를 돌로 보아라인가. 좋은 명언이구나. 아, 그리고 한가지 틀린게 있어. 나랑 아련이는 사귀는 사이 아니야."

민의 말에 핸드폰 저 너머에서 분노에 찬 외침이 울려처져 왔다.

"뭐어라아아아! 그럼 너와 아련이 사이의 그 애정 행각들은 뭐냔 말이다!"

실로 커다란 성량을 자랑하는 친구 녀석의 외침에 민은 핸드폰을 귀에서 상당 거리를 :떨어트리고 있어야 했다. 그냥 끊어버릴까 싶었지만 녀석의 성격상 그런 짓을 했다가는 이 시간에 집으로 쳐들어올 위인이기 때문에 참을 수 밖에 없었다. 저런 불같은 성격을 식혀버리는 여자를 만나야 할텐데. 민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핸드폰 너머에서는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연이어 들려오고 있었다.

"나랑 아련이가 애정행각 같은걸 한 기억은 없는데."

"…그랬나? 하지만! 네 녀석 오늘처럼 아련이와 단둘이서 데이트를 즐기고 있잖아!"

"그냥 심심하다고 하길래 마침 나도 시간이 남는터라 만나서 이것저것 돌아다닌것 밖에 없는데?"

"그걸 데이트라고 하는거야!"

"아. 그런가?"

"아. 그런가? 라니 정녕 네 녀석의 죄를 모른단 말인가! 아무리 바보 멍청이라도 그런게 여자가 좋아해주는데 몰라주는 녀석은 없어! 넌 머리가 돌이냐!"

"그래. 아무래도 돌이 모양이다. …그만 끊는다. 그렇다고 집으로 쳐들어오지는 말고, 문 잠그고 안 열어줄테니까. 그럼 학교에서 보자."

"어이 어이!"

민은 과감하게 통화를 끊었다. 저렇게 말해놨으니 집으로 쳐들어오지는 않겠지. 물론 학교에서 만나면 어떤 보복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점심 한끼 정도 사주면 어떻게든 무마가 되지 않을까. 하는 낙천적인 생각을 해본다. 의외로 단순한 점이 있는 녀석이니까. 먹을걸로 입을 막아버리고 먹느라고 하려던 말을 다 까먹기를 빌어야지.

"여자가 좋아해주는데 몰라주는 녀석은 없어. 라고? 바보같긴. 여기 있짆아? 천하에 둘도없는 바보 멍청이가."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 멍청이가 되어버린건 언제였을까.
답은 뻔하다. 삼년전 가을 이후겠지.




『  이 세상은 양면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신에게 악마가 있듯이
     사랑에 증오가 있듯이
     삶에... 죽음이 있듯이. 』



스산한 느낌에 잠에서 깨었을때는 삐- 하는 신호음과 같은 소리만이 텔레비전에서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집에 돌아와서 텔레비전을 본다고 소파에 앉아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스산한 느낌은 거실에서 이불같은 것을 걸치지 않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일러를 틀어놨다고는 하지만 겨울이 다되가는 계절에 거실에서 이불도 없이 잠을 청하는건 조금 무리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것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건 아니었다. 분명 잠에서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그 때 띵동- 하고 초인종 벨소리가 들려왔고, 이 소리였구나. 민은 자연스럽게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야 밖이 푸르스름하게 새벽을 맞이하고 있는 무척이나 이른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남의 집을 방문하다니 예의가 없는걸. 하고 생각했으나 다시 한번 들린 초인종 소리는 분명 자신의 집의 초인종 소리였다. 문득 머리속에 친구인 우혁이 꼭두새벽부터 쫓아온것인가. 싶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친구인 우혁이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고, 만약 신문 배달부 같은 잡상인이면 따끔한 소리를 해야지. 하는 마음도 가지고 현관으로 가서 자물쇠를 푼 다음 문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민의 물음에는 끊김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찾아온 손님이 전현 예상할수 없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깨 위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의 소녀였다. 그리고 또한 민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문을 반쯤 열다가 소녀를 본 민은 그대로 얼어붙어버렸다. 반쯤 열려 있는 문을 마저 연 것은 문 밖에 서있던 소녀였다.

"안녕 민아. 오랜만이야.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문전 박대할 생각은 아니겠지? 그럴줄 알았어. 그럼 사양않고 들어갈께."

소녀는 상황을 자기 페이스로 만들러버리고는 얼어붙어 있는 민을 스치듯이 지나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벙어리처럼 "어, 어" 거리던 민은 황급하게 문을 닫고는 소녀를 따라 들어왔다.

"너 어째서, 아니 어떻게?"

"어머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놀러왔는데 뭘 그리 호들갑이야? 그보다 차라도 내오는게 예의가 아닐까?"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하는 소녀는 말 그대로 무대포였지만 민은 그녀의 말대로 즉시 부엌으로 가서 아주 간단하게 만들수 있는 티팩 녹차를 들고 왔고, "간식은?" 이라고 말하는 소녀의 말에 의해 부엌을 뒤져서 예전에 사놓았던 과자를 찾아내어 접시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과자를 한입 베어물고는 홀짝홀짝 녹차를 마시는 소녀에게 민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 그… 반장 맞아? 정말로?"

"그럼 넌 내가 누구로 보이니? 못 보던 사이에 눈이 조금 나빠진거 아니야? 안경도 쓰고."

물론 눈이 나빠지기는 했다. 무언가 몰두할 것이 필요했던 차에 입시가 있었고, 그래서 공부를 미친듯 했고 부작용으로 눈이 조금 나빠져 안경이 쓰게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사람 얼굴을 못알아볼 정도로 형편없이 떨어진 건 아니다. 안경 없이도 무난하게 생활할수 있는 수준이니. 하지만 실제로 이런걸 지적하는건 아니었다.

"그래. 반장이 맞구나. 나한테 이렇게 막대하는건 너밖에 없으니까.."

"사람을 꽤나 나쁜 쪽으로 몰아가는듯 한데. 오랜만이니까 용서해줄께."

  민은 말없이 그녀가 과자를 입에 넣으며 차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녀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과자가 담긴 접시와 찻잔을 비웠다. 그리고 나서야 후- 하고 만족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자, 그럼 갈까?"

"무슨 소리야? 이 시간에 어딜간다고?"

"학교!"

은혜는 벌떡 일어나서는 민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무작정 민을 끌고서 집을 나왔다. 밖은 이제서야 동이 터오고 있는지 어스름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의 차가운 바람이 휩쓸려왔다. 그녀에게 붙잡혀서 끌려가다시피 가고 있는 민은 잠시 그녀를 멈춰세우고는 입고 있던 점퍼를 그녀에게 건냈다.

"음, 신사인걸?"

"이 추위에 그렇게 입고 있다간 감기 걸리잖아."

민과 은혜가 학교에 도착한건 갓 해가 떠오를 때 쯤이었다. 그녀가 말한 학교는 민과 그녀가 다니던 고등학교였다.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도착하는데까지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열려있는 교문을 지나서 교정으로 들어간 뒤에도 은혜의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이윽고 그녀는 2학년 3반 펫말이 걸려있는 교실문 앞에 가서야 멈춰섰다. 교실문은 당연하게도 잠겨있었다. 아직 학생들이 등교할때 까지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교실문은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할때 정도에 수위아저씨가 문을 열어놓으니까. 잠겨있는게 당연하다.

"음... 잠겨있네."

은헤는 아쉬운듯 교실문을 응시했다. 교실의 복도 벽면에는 신발장이 있고 그 위로 창문이 나있다. 민은 신발장 위로 올라서고는 창문으로 손을 뻗었다. "잠겨 있지 않을까?' 하고 은혜가 물었지만 민은 잠겨 있는 창문을 최대한 옆으로 당기고서 안쪽으로 밀었다. 그러자 안쪽에 걸려있는 고리가 풀리면서 창문이 스르륵 열렸다.

"와, 마술 같아."

창문 안으로 들어가서 잠겨진 교실문을 열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은혜가 감탄의 말을 건냈다. 민은 쑥쓰러운듯이 뒷목을 긁적였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모르겠지만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럭저럭 알려진 창문 여는 방법이었다. 남자란 뭐든지 이상한 장난을 치는걸 좋아하니까. 이 방법은 민이 초등학교때 알게된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체육시간에 문을 잠그고 나왔는데 교실 열쇠를 가지러 오는 아이가 늦자 심심해서 아이들이 창문을 열어보려고 했던 일에서 기인했었다. 쉽사리 열리는 것으로 보건데 그다지 교실 안도 안전한 곳은 아니다.

"왜 여기로 온거야?"

민의 물음에 은혜는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 그 자리는 예전 민이 앉았던 자리였다.

"추억을 되새기려고. 오늘 하루는 나랑 같이 추억 찾기를 해줬으면해."

그녀는 앉아있는 책상 위를 가볍게 쓸었다.

"기억나? 너랑 처음 말 했던 게 여기였어. 넌 여기서 멍~하게 앉아있었지."





『  갑자기 궁금해졌다.
     어째서 태양이 터오는 때를 새벽이라고 부르고
     어째서 태양이 저무는 때를 황혼이라고 부를까. 』




내가 처음 그녀를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그럭저럭 대인 관계를 가지고, 적당히 어울려주고 추미도 대중적은 것을 한다. 예를 들어 축구다. 고등학생 중에 축구를 싫어하는 남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분위기를 보아서 싫다는 내색을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언제나 축구 시합에 참가하는 나도 축구를 좋아한다고는 할수 없다. 단지 적당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 축구를 좋아하는 척 하고 있을 뿐이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무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거다. 마치 사람이 잠을 자듯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동이기 때문에 이 사실을 깨달은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간단하다. 나는 지금까지 좋아한다고 했던 것들이 정말 좋아했던 것인지 확신 할수 없었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간단하다. 좋아해. 그 아주 간단한 한마디일 뿐이다. 그런데 그 말을 내뱉는 시점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모두가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말과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스스로가 느끼는 점이 없다면 그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후부터 모든 것이 다르게 보였다. 나에게 친하게 구는 이들, 친구라던가. 선생님 혹은 가끔 나를 몰래 훔쳐보는 여학생들. 그들이 하는 행동 모두가 그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을 아닐테니까. 살아가면서 마음과 반대되는 행동이나 말은 누구나가 하게 되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점에서 방구석 폐인 같은 인간들이 도리어 순수한게 아닐까? 그들은 남들에게 거짓을 보이는 것을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1학년때 같은 반에서 있었던 왕따를 통해서 알게된 사실이다. 그 녀석은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전학을 가버렸다. 하지만 나는 다른 학교에 가서라도 그 녀석이 잘 적응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힘들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은 심성이 착하고 거짓을 말할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이 언제나 보이는 거짓에 물들어서 착한, 거짓을 할줄 모르는 아이들에게 본능적으로 적대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벌레를 보면서 징그럽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다시 서두로 돌아가보자.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반편성에서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들은 몇명 보이지 않는다. 학교 시스템이 장점도 가지고 단점도 가지는 점이 있다면 학년이 올라가면 다른반 아이들과 섞어버린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도 필요한 배움이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일년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금 관계를 만든다. 이 행위를 우리는 12년 이상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얼굴도 낯설은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애써서 친근하게  굴어야 한다. 실제로는 그러고 싶은 마음따위는 없는데도.

박은혜. 그것이 그녀의 이름이다. 용모는 꽤나 귀여운 편으로 인기도 많은 모양이다. 바뀐 반에서 여학생들 대부분이 은혜에게 친근하게 대했던 점을 본다면 말이다. 실제로 느낀 거지만 그녀는 거짓따위는 보이지 않는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앞의 왕따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모두가 그녀를 좋아한다. 앞서 왕따를 당했던 아이가 흰색에 가까웠다면 그녀는 흰색, 빛 그 자체였다. 마치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치유해 지는것 같은 기분이다. 그녀 앞에서는 거짓따위는 제쳐두고 본연의 말과 행동을 보일수 있으니까. 그녀를 좋아한다. 는 것으로.

처음 반 배정은 제비뽑기로 결정되었는데. 나는 왼쪽 창가의 뒤쪽에서 부번째였고, 내 바로 뒤의 최고의 명당에 앉게된게 그녀였다. 운명도 참 너무하시지. 그 당시에 나는 그녀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저 '꽤나 사교성 좋은 여자애구나' 하는게 감상의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건 몇일이 지나지 않아서 부터였다.

더군다나. 임시반장으로 박은혜. 그녀가 뽑히게 되었는데 1학년 때에도 반장이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반장 경력이 있는 아이는 별다른 이유가 없을 경우에 다시 반장을 하게된다. 아직 어색한 사이의 아이들이 누구를 추천하고 몰표를 할만한 이유도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꽤나 몰이라고 생각되는 표수로 반장에 취입했는데. 어째서인지 내가 부반장이 되고 말았다. 망할 친구들이다. 축구를 하면서 아이들을 우르르 데리고 다니던 나였기 때문에 리더쉽이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중 하나가 나를 반장 후보로 추천했고. 은혜에게 보내지 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표가 나에게 오게되었기 때문이다. 간단하다. 추천된 사람이 그녀랑 나뿐이었기 때문이니까. 그런데 1학년때 같은 반이었던 인원수보다 더 많은 표수가 나에게 나왔다는 점이 미스테리였다.

그 미스테리는 얼마 후에 풀렸다. 나에게 표를 보냈던 이들은 새로 배정된 반의 여학생들로, 아무래도 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조금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왜 몰랐냐고 한다면 나는 발렌타인 사랑의 초콜릿 같은것을 받아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우정 초콜릿이네 하면서 받은 초콜릿은 상당히 많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숭이 섞여 있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남학생들을 몰고 다니는 모습과 축구도 잘하고 성적도 그럭저럭 좋은편에 생긴것도 괜찮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에 필요한건 외모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꾸미는것도 신경쓰기 때문에 어느새인가 나는 여학생들 사이에서 잘생긴 축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그리고 싸움도 잘한다. 라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주먹을 날렸던 기억은 없다. 누구나와 친분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숭 덩어리로군.

그렇게... 은혜는 반장이 되었고 부반장은 내가 되었다. 처음 그녀와 나누었던 대화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안녕 부반장! 잘부탁해. 박은혜야.]

[아...그래. 잘 부탁해. 반장]

이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지만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불리는 일은 없었다. 언제나 그녀는 반장이었고 나는 부반장이었다. 그런 관계였을까. 아니면 앞뒤로 붙어있는 자리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양이 점점 많아졌다. 반은 나와 은혜를 필두로 하고 있다. 소풍도, 수학여행도 체육대회도. 모든 일들에 나는 은혜와 함께하게 되었다. 그녀와 대화를 하는게 잦아진 뒤였다. 그녀가 누구에게나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라는걸. 그리고 본심이 너무나도 착하다는 사실을. 그녀는 빛이었다. 너무나도 밝은 빛이어써 스스로 어둡다고 생각하고 있던 나는 그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반의...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나의 고백과 함께.




『 그래서 아련이를 더 대하기가 어려운 지도 모른다.
    그녀는 너무나 닮았기 때문이다. 그녀, 반장, 반은혜와. 』




"와아~!"

나는 난간에 기대서 환호를 지르는 은혜를 지켜봤다. 나타나서 지나가고 사라진다. 다시금 나타나서 지나가고 사라진다. 그녀는 모형 말 위에서 좋아라 하면서 즐겁게 환호를 지르고 있다. 저런 속도에서 환호를 지르는건 주변에 민폐. 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놀이공원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큰 놀이공원도 아니고 유원지에 자리하고 있는 놀이공원이니까. 평일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놀이기구들이 운행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평일에 자주 놀이공원을 움직이지 않으니까. 오늘도 열지 않았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음. 다음에는 뭘 타러갈까?"

회전 마차가 끝나서 나온 은혜는 즐겁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하루는 그녀에게 끌려다니는 일들 뿐이었다. 처음으로 갔던 학교에서는 몰래 교실에 들어간 것은, 교실문을 열려고 온 수위 아저씨에게 들켜서 사과의 말과함께 줄행랑을 쳐야만 했었다. 이년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졸업을 한 이상은 외부인이 된거니까.

신이 나서 내 옷깃을 붙잡고 걸어가던 은혜가 멈춰섰다. 그녀는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새 하늘은 붉은 빛을 띄기 시작하고 있었다. 겨울이 다 되어가기 때문에 태양은 여름때보다 일찌 저문다. 하, 하고 불면 입김이 보일 정도로 날씨는 추워져 가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나를 보면서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그녀가 바라보던 하늘의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관람차가 있었다. 저 위에서 본다면 황혼이, 선양의 노을빛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수 있겠지. 나는 그녀의 생각을 짐작하고는,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쓰고는 그녀와 관람차로 향했다. 앞에서 서있던 직원이 문을 열어주고 나는 그녀와 함께 관람차에 탔다. 의자에 마주 앉아서 그녀는 말없이 창 밖을 보고 있었다.

해가... 태양이 저물고 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반쯤 올라왔을까. 그녀는 석양에서 눈을 떼고는 나를 보았다. 나는 관람차에 탄 이후부터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염없이. 그리고 이 순간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아이들로 가득한 교실에서 만났다.

그저 같이 이야기 하는게 좋았을 뿐.

조금의 두근거림을 가지고 지냈을 뿐이었는데.

어느새인가 그녀는 마음 속에서 커져버렸다.

빛처럼, 그리고 마음을 따스하게 해주는 태양같이…

그 따스함에 취해버려서

그래서 나는 이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그녀에게 전했었을 뿐이다.

단지 그 뿐이었다.




"오늘 정말로 재미있었어. 정말... 어느새인가 신사가 됬구나."

"넌 어엿한 아가씨가 됬잖아?"

내 말에 그녀는 힘없이 웃었다.

"그럴리가 없잖아. 난 삼년 전이랑 변한게 없는걸. 그 이상 나는 될수가 없어. 안타까운 일이야. 아직 어리던 남자가 어느새인가 잘생긴 총각이 되있으니까. 에이. 부러운걸?"

"무슨 소리야. 너도 컸잖아."

그녀는 내가 단언하자 풋, 하고 웃었다.

"어디가?"

"거기가."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가슴께를 가리켰다.

"변태였었어?"

"이상한 상상은 하지마. 마음이 자랐다는 거야 마음이. 음, 과학적으로 표현하면 정신연령일까?"

"이상해 그거."

헤에. 하고 그녀는 무방비하게 웃었다. 처음보는 모습이다. 오늘 은헤가 보여준 모든건. 예전의 그녀와 같았지만 그러면서도 달랐다. 어쩌면 그녀는 변하지 않았는데 변해버린 내가 변하지 않은 그녀를 다르게 느끼는 건지도 모른다.

"오늘 정말로 고마웠다."

"별 말을 다하는구나."

관람차는 어느새인가 제일 위쪽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그때. 덜컹, 하고 움직이던 관람차가 멈춰섰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은헤가 놀라지 않았으니까 내가 놀랄 이유같은건 없다.

"...다 알고 있지?"

"응."

"내가 가장 싫었던건 네가 꽃을 들고 찾아왔을 때였어."

그리고선 내 양볼을 쥐었다. 볼을 감싼 부드러운 손에서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차갑다.

"너... 아직 대답 안해줬잖아."

그녀의 손이 떨어져나갔다. 그 아쉬움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바보구나. 여기서 대답해버리면 미련이 남아버리잖아."

무엇을, 같은 물음 같은건 필요없다. 단지 이 상황이, 현실이 그리고 이 환상에게 고마울 뿐이니까. 그녀는 일어서고선 기지개를 켰다. 뭉친걸 풀듯이. 기분좋은 신음을 내고서는 허리에 두 손을 처억, 하고 올렸다.

"사람은 언제나 만남을 가지고, 그리고 이별을 해. 그건 당연한거야. 기뻐하고 슬퍼하지만 그건 시간이 지나면 떠올리면 기분 좋은 추억이 되어있을테니까. 넌 지금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지 못해서 괴로운 것 뿐이야. 곷이 피어나고 저무는 것처럼. 그렇다고 잊지는 마. 나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고 싶으니까. 알겠지?"




그리고... 그녀는 사라졌다.



'나 말이야. 반장 좋아하나봐.'
'무... 무슨 엉뚱한 소리야?'
'넌 내가 싫어?'
'으응, 딱히 싫어하는건 아닌데. 갑자기 그렇게 말하니까...'
'나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꺼낸 말이야. 반장도 버벅거리지 말고 조금 소녀처럼 얼굴도 붉히고 부끄러워 하라니까.'
'이 바보 부반장!'
'반장? 어디가! 대답은 해줘야지!'
'지금 대답해 줄까봐? 조금 고심해봐 내일 내가 뭐라고 답해줄지!'




마치 한 여름날의 꿈처럼. 가을의... 이별의 기억. 그 속의 마지막을. 아아, 괜찮아 나는 이미 대답을 들었는걸. 그렇지? 반장, 아니 은혜야.




'잘 들어! 한번만 말할테니까! NO 는 부반장! 그리고 YES는 ....!'





처음 그녀가 했던 말.

  "안녕 '민'아. 오랜만이야."




'...민이야! 알았지?'




나는 바닥에 떨어진, 내가 그녀에게 걸쳐주었던 점퍼를 들어올렸다. 처음 그녀를 봤을 때부터 깨닫고 있었다. 오늘, 이 하루를 나는 잊을 수가 없었으니까. 더군다나 헤어진 그날과 똑같이, 변함없이 차장왔으니까.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 때는 지금보다 따스했던 가을의 초입이었다. 지금처럼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가을의 끝이 아니었다. 알고 있다. 그녀는 나와 헤어진 이후에 집으로 가던 와중 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혼수상태애 빠져있다가 가을이 끝나갈 무렵 숨을 거뒀다. 그녀가 말없이 사라진 이후 그녀를 찾아나선 뒤, 찾아간 그녀의 부모님에게 들을 이야기.

혼자서 관람차에서 내리는 나를, 직원은 잠깐 미심쩍게 바라본다. 그래, 그녀는 분명 이곳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했던 그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녀는 같은 장소에서 나와 이별을 하게 된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이별을 넘어선 작별.

관람차를 올려보자 어느새 그 뒤로 별이 보이려고 하고 있다. 은헤는 석양의 노을이, 환혼이 저무는 것과 함께 사라졌다. 마지막의 미소는, 분명 그녀의 말처럼 아름다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따스해지는 추억이 되어 남아 있을 거다. 영원히.

하지만, 그것은 추억이다. 더 이상 얽매이면 안된다. 그 말을 그녀는 나엑 ㅔ하고 싶었던 걸거다. 그녀는 이미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곳에 존재한다.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다. 그리고 그 이별 뒤에 새로운 만남이 있기 때문에 사람은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이미 새로운 만남이 다가와 있다. 단지 인정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다.

울리는 벨소리에 핸드폰을 꺼내보니 낯익은 이름으로 저장된 번호가 적혀 있었다.

"...여보세요?"

「아, 민아 나야 아련이. 저기, 어제는 미안했어. 오늘 강의에 안나왔기래 걱정되서 전화했어. 출석은 우혁이가 대출해줬으니까 걱정 안해도 돼.」

"...그래?"

나는 미소지으면서 다시한번 관람차 위를 올려다 봤다. 별은 이제 눈에 선하게 보인다.

"아련아."

「응? 왜?」

"내일 나랑 유원지에 올래?"

「으응? 갑자기 무슨 소리야?」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핸드폰 너머로 허둥지둥 거리는 아련이 상상이 갔다.

「응! 갈래  갈께! 가자!」




이미 만남은 나에게 다가와 있다. 만남이 있고 이별이 있지만 그 뒤에 다시 새로운 만남이 있듯이. 꽃이 피어나고서 지지만 그 씨앗이 다시금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듯이. 그리고 석양의 노을 속에서 이별한 우리가 새벽에 재회하고, 다시금 석양 속에서 작별한 것처럼.

태양은 저물고 밤이 되었지만 다시금 해는 떠오르며 새벽을 불러온다. 자, 다시 한번 도전하자. 다시금 나애게 다가온.

"재회의 새벽이, 작별의 황혼이  아닌, 새로운 여명의 새벽에서 석양의 노을이 드리워진 황혼까지."
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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