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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모으다

2008.08.02 03:3908.02




          <모으다>



  매드 사이언티스트 H박사는 극단적인 육체 혐오주의자였다. 이것만으로도 H박사가 왜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70%의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H박사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정신이 고작 몇십 킬로그램밖에 안 되는 단백질 덩어리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몇십 킬로그램의 단백질 덩어리가 정신의 활동을 방해하고 심지어 지배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증오했다.

  육체에서 H박사가 더욱 혐오하는 것은 성욕이었다. 고상하게 말하면 번식욕이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것쯤은, 자동차에 기름을 넣고 엔진이 과열되면 식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이 내리는 명령을 육체가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H박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적당한 운동 또한, 자동차가 더 잘 달릴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H박사는 용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욕 즉 번식욕에 대해서만큼은 H박사는 결코 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정신의 명령을 육체가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보급하거나 열을 식히는 것도 아니고, 육체 그 자체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번식이 필요하다면 고대 스파르타에서 그랬듯이, 철저한 시험과 검증을 거쳐 가장 우수한 정신과 가장 우수한 육체를 가진 자들끼리만 교합시켜 최고의 자손을 생산하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개체의 번식욕 따위는 하등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번식욕이 식욕과 수면욕만큼이나 육체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것인가? H박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혐오했다. 그런 혐오스러운 번식욕이 본능 수준으로 자신의 몸에까지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오했다.

  그래서, H박사는 번식욕을 빼낼 수 있는 기계를 발명했다.

  그 기계는 사람 하나가 들어가 누울 수 있는 라꾸라꾸 침대 사이즈의 캡슐과, 방 하나를 꽉 채울 만한 크기의 본체로 이루어졌다. 사람을 캡슐에 눕히고 본체와 연결한 후 스위치를 넣으면, 그 사람에게서 번식욕이 추출되어 본체 안에 모인다.

  완성한 기계를 스스로 시험해 본 H박사는 그 결과에 만족했다. 극복할 수 없었던 한계는, 그 추출이 영구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번식욕은 육체가 생명을 유지하는 한 계속 만들어지는 것인지, 기계로 추출한 직후에는 0 상태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회복되어 최고 1년이면 평소 수준의 번식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러나 H박사로서는 그 정도로 충분했다. 1년마다 기계에 들어가 번식욕을 빼내면 되는 것이므로.

  H박사는 번식욕 추출기를 상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법원이 기존의 처벌과 함께 의무 번식욕 추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세상은 한결 평화로워졌고 H박사의 명성은 자자해졌으며 재산도 쑥쑥 불어났고 연구 자금 조달도 훨씬 순조로워졌다.

  그러나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연구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금을 필요로 하는 법이다. H박사는 모자라는 자금을 마저 조달하기 위해 새로운 거래를 생각해 냈다. 번식욕 추출기로 빼내어 모은 번식욕을,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 수요자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번식욕 그 자체를 이용하는 것이라 약물에 비해 아무런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이 없었으므로.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번식욕을 투여받은 사람들은 그 결과 반드시 임신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현대의학이 발명한 모든 종류의 피임 수단을 강구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무정자증의 남자와 난소 미성숙증의 여자 사이에서까지 임신이 성공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이 부작용이 H박사의 장사를 망치지는 않았다. H박사는 발빠르게, 불임 클리닉과 손잡았던 것이다. H박사로부터 번식욕을 제공받은 불임 클리닉은 간절히 아기를 원하는 불임 부부들에게 그 번식욕을 투여했고, 결과는 거의 백발백중이었다. 여성의 몸에 임신을 유지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단 임신은 100%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성공률을 보였다. 번식욕을 투여받으려는 불임 부부들이 몰려들어 투여할 번식욕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H박사는 번식욕 추출과 번식욕 투여 양쪽에서 올린 수입으로 돈방석에 올랐고, 평생 동안 자금 걱정 없이 연구에 몰두하다가 마침내 영면에 들었다.

  친인척이 한 명도 없었던지라 H박사의 유산 및 연구 업적은 모두 국가로 귀속되었다.



* 2008. 6. 10. 화.

황당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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