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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INA - 믿음과 영웅

2020.12.23 22:5912.23

하얀 물소가 이끄는 행렬은 험준한 산마루를 타고 있다. 전쟁에서 잡힌 인간들이 몸을 오들오들 떨며 기침을 하였다. 높고 거친 땅으로 커다란 우리는 넘어질 듯 잔뜩 기운 채 옮겨졌다. 한나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나무로 엮어진 우리의 틈을 노려보았다. 작고 좁은 틈. 아이 하나 정도는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틈. 손 안으로 부러진 화살촉을 꼭 쥔다.

 

[젠장, 거기서!]

 

사자 수인이 우리의 좁은 틈으로 도망가는 한나의 팔을 붙잡는다.

 

[아악!]

 

손마디를 부여잡는 수인. 핏방울이 묻은 화살촉. 마른 가지와 먼지를 밟아 도망치는 소녀. 우리를 끌던 수인들이 걸음을 멈춰 한나가 도망친 곳으로 달려간다. 하얀 물소가 올그를 본다. 올그는 도끼를 들어 발을 굴렀다. 그녀가 도망친 산비탈을 거칠게 내려오는 수인들. 손마디가 잘린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눈을 치켜뜬다. 굵은 팔과 억센 마디의 손아귀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다. 비탈을 내려가던 한나가 발을 헛디딘다.

 

땅으로 구르는 한나. 그 뒤를 사자가 바짝 좇는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한나의 등으로 발톱이 다가간다.

 

올그가 도끼로 사자를 막아선다. 분노로 가득한 울음을 내며 올그를 보지만 뒤로 걸음을 무른다. 한나는 작은 화살촉을 품에서 꺼내 앞으로 휘둘렀다.

 

[꺼져, 오지 마!]

 

올그의 손이 베인다. 팔과 어깨가 베인다.

 

[이거 놔, 더러운 새끼들!]

 

한나를 어깨에 인 올그는 그녀가 쥐고 있던 화살촉을 뺏고 내던졌다. 한나의 악이 시끄럽게 퍼진다. 올그는 담담이 한나를 들고서 우리로 돌아온다. 우리에는 마법사, 벨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물소가 길을 비킨다.

 

[이런 말썽꾸러기가 있었나 보군요.]

 

올그가 무릎을 꿇는다.

 

[다시 잡아왔습니다.]

[심려를 끼쳐 드렸군요.]

 

사자 수인이 한나에게로 다가가고 나르가 창을 들어 그를 막는다. 사자가 다시 울음을 울며 나르를 노려본다.

 

[됐어요.]

 

벨바가 몸을 숙여 한나를 받았다. 한나가 벨바에게 주먹을 휘두른다. 하얀 물소가 성큼 다가와 두꺼운 손을 펼쳤다.

 

[놔둬요.]

 

벨바가 한나를 바라본다. 눈에서 눈으로, 빛에서 빛으로. 벨바의 눈을 들여다보던 한나의 몸이 굳는다. 벨바는 한나를 품에 안으며 인형처럼 껴안았다.

 

[이제, 가죠.]

 

[그 아이는.]

 

올그가 묻는다.

 

[괜찮아요.]

[제가 잘 훈련시킬 테니.]

 

우리가 다시 옮겨진다. 갇혀있던 인간들의 고개가 땅으로, 땅으로 꺼진다. 올그는 그들을 보다 벨바의 뒷모습을 보았다. 하얀 물소가 올그를 끈질기게 지켜본다.

 

 

한나는 벨바의 품속에서 눈을 떴다. 그녀가 비명을 지른다. 벨바는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한나의 입을 막는다.

 

[걱정 말아요.]

[해치지 않을 테니.]

 

벨바의 손에 막힌 입으로 힘에 겨운 비명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나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벨바의 손이 그녀의 몸을 훑는다. 꼼짝도 하지 못하는 몸을 원망하며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벨바의 손길이 그녀의 아랫배에서 멈춘다.

 

[궁금했던 게 있어요.]

[인간이란 생명체는 마법을 쓸 수 있을까.]

 

벨바의 손이 한나의 살갗을 더듬으며 위로 올라간다. 한나가 고개를 흔들며 비명을 지른다. 힘이 빠진 소리가 두발자국을 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 눈을 피해 마녀와 만난 인간이 있었죠.]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인간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구나.]

 

벨바의 손가락이 한나의 가슴께로 올라 둔덕을 훑는다. 눈물방울들이 아래로, 아래로 떨어진다.

 

[그렇다면 혹시.]

 

한나의 몸이 작게 떨린다. 벨바가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는다. 도망치지 못하게, 반항하지 못하게.

 

[인간이 마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벨바의 빨간 눈망울이 코앞으로 다가와 영롱하게 빛이 난다. 벨바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가슴에서 갈비뼈로.

 

[수인은 마녀가 될 수 없어요.]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실패만 하였죠.]

 

갈비뼈에서 치골로. 치골에서 허벅지 안으로.

 

[그때 실패했던 쓰레기들은 전부 애벌레에게 주었죠.]

[꽤 많은 수인들을 사용했어요.]

 

벨바의 손이 한나의 옷 안으로 들어간다. 한나가 몸부림친다.

 

[낭비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벨바의 가슴골 사이로 파란색 보석 목걸이가 흘러내린다. 금줄을 단 목걸이는 불을 받아 반짝거렸다. 벨바가 한나의 몸으로 제 살을 붙이며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다 저의 지식과 유희가 되어 주었으니까.]

[당신도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벨바의 조용한 목소리와 천 너머로 움직이는 손 하나가 한나를 끝없는 어둠너머로 잠식시켜 갔다. 한나의 허리가 휜다. 벨바가 미소를 짓는다.

 

[제 지식과 유희가 되어주세요.]

 

임시로 바위벽에 걸쳐진 천막에서 달빛이 비추어진다. 벨바의 파란 보석 목걸이가 빛을 낸다. 눈을 꼭 감은 한나의 눈꺼풀을 강제로 열어 벨바는 빛이 그녀의 눈동자에 닿게 하였다.

 

[걱정하지 말아요.]

 

한나의 눈이 파란 빛으로 물이 든다.

 

[저만 믿어요, 모든 게 괜찮아 질 테니.]

 

 

 

 

 

 

 

 

캐시는 자신의 볼품없는 발톱을 들어 구르고 뛰어 다녔다.

 

[더 빨리!]

 

나무 사이를 돌고 가지 위를 튀어 오르다 땅위에 세워둔 장작들을 향해 공격한다.

 

[더 빨리!]

 

다시 위로 튀어 오르고 가지 위로 몸을 돌린다.

 

[더 세차게!]

 

기합 소리를 내며 캐시는 있는 힘을 다해 장작으로 발톱을 휘둘렀다. 체스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다시.]

 

캐시가 어깨를 늘어뜨리며 흙 위로 주저앉는다. 체스가 쏘아 붙였다.

 

[그런 식이면 살아남을 수 없어.]

 

타냐가 캐시를 따라 하기 위해 나무를 오르다 팔에 힘이 풀려 넘어진다. 크게 넘어진 타냐는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캐시가 타냐를 일으켰다. 체스는 그런 타냐의 몸부림을 못 본 척하였다. 타냐를 도우며 캐시는 이나가 잠든 나무 둥치 쪽을 보았다. 밤중으로 나타난 인간 마법사와 폭발음. 그 후 이나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체스가 재촉하였다.

 

[계속해, 지체할 시간이 없어.]

 

이나가 깨어나 보석을 사용하기 전까지는 누구 하나 다쳐서는 안 된다. 타냐가 나무를 타고 뛰어 오른다.

 

[앗!]

 

다시 고꾸라지길 반복하는 그녀. 호된 훈련에도 타냐는 물러서지 않았다. 캐시가 타냐에게 다가가 손을 뻗는다.

 

[인간들을 잡으면 포상을 준다지.]

 

[포상은 개뿔, 그 신봉자들끼리 나눠 먹을 거야.]

 

캐시가 재빠르게 몸을 낮추어 소리를 죽였다. 타냐가 이나를 끌고 나무 뒤로 숨는다. 체스는 발톱을 꺼내 귀를 기울였다.

 

[글쎄 그 회색 늑대가...]

 

수인 둘이 숨어있던 체스와 캐시를 발견한다. 수레에 눕혀진, 다리를 다친 하얀 늑대와 어정쩡하게 서있는 갈색 줄무늬 고양이. 수인들이 다가온다.

 

[거기서 더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체스가 경고의 어투로 날카롭게 말하였다. 두 수인이 걸음을 멈추고 머뭇거렸다. 캐시가 팔을 흔들며 말들을 꺼내었다.

 

[저희는 마을로 가다 쉬고 있는 중이예요.]

[그게 친구가 다치는 바람에.]

 

[인간들 때문인가?]

 

귀가 큰 사막여우 수인이 고개를 빼어 체스를 관찰하였다. 부러져 파랗게 물든 발목. 사막 여우의 질문에 캐시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네, 인간들에게서 도망쳐 나왔어요.]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바람에.]

 

사막여우 옆에 있던 코뿔소 수인이 캐시를 노려본다. 캐시는 주저하며 말을 버벅거렸다.

 

[그게 친구가 인간들한테 그만...]

 

[너는?]

[너는 그동안 뭐했지?]

 

코뿔소가 삐딱한 자세로 팔짱을 꼈다. 사막여우가 제 등에 멘 커다란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조립하였다. 캐시는 눈을 돌리며 변명거리들을 찾으려 애썼다.

 

[저는 그게...]

 

[저 녀석이 날 발견하고 옮겨 준거야.]

 

체스가 대신 대답하여주었다. 코뿔소는 코웃음을 치며 캐시를 위아래로 훑어 내렸다.

 

[긴 꼬리가 어련하시겠어.]

 

캐시가 주먹을 쥐어 고개를 숙인다.

 

[다 됐어.]

 

사막 여우가 조잡한 물건들을 손에 들며 체스가 앉아 있는 수레 쪽으로 다가갔다. 체스가 팔을 들어 경계하였다.

 

[괜찮아, 도움이 될 거야.]

 

코뿔소가 말을 거든다.

 

[코체의 발명품은 여러모로 도움이 돼.]

[믿어도 되니, 그냥 맡겨봐.]

 

체스가 발톱을 감추고 팔을 내린다. 사막 여우가 장치들을 체스의 부러진 발목에 대어 감싼다. 나무 부목이 체스의 발목 위로 자리를 잡는다.

 

[조금 아플 거야.]

 

사막여우, 코체가 부목을 조인다. 체스가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돌아간 발목을 바로 맞추고 부목을 조인다. 사막여우는 체스에게 똑 부러지는 말투로 충고하여 주었다.

 

[잠시 동안은 움직일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의사를 꼭 찾아가.]

[그대로 두면 정말 걷지 못하게 될 테니까.]

 

밭은 숨을 내쉬며 체스는 몸을 뒤틀었다. 사막여우가 캐시를 돌아본다.

 

[너 싸울 수 있어?]

 

[네?]

 

코뿔소는 금방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렸다. 코체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물건들을 뒤적거렸다. 코체가 짧은 단검 두 개를 꺼내었다.

 

[너희 종족들 발톱은 약하잖아.]

 

캐시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손을 감추었다. 코체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였다.

 

[우리 사막여우들도 변변치 않아.]

[그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코체가 단검을 건네어 준다. 그의 손에 들린 두 개의 단검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고 물결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캐시가 주저한다.

 

[제가 받기에는.]

 

[받아.]

 

코체의 얼굴이 캐시를 바라본다. 동정이나 측은함은 보이지 않았다.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라는 말처럼 들려 캐시는 덥석 그의 손을 잡았다.

 

[친구는 지켜야지.]

 

코체의 말에 캐시는 얼굴이 발갛게 익어 고개를 푹 숙였다. 코뿔소가 큰 소리로 경고하였다.

 

[인간들이 무리를 지어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어.]

[언제 어디서 습격 받을지 모른다고.]

 

[이언, 얘들도 알고 있어.]

 

[흥.]

 

코체가 주섬주섬 가방을 싸며 일어난다. 캐시가 둘을 향해 꾸벅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여러 가지로.]

 

[됐어, 남는 물건들인걸.]

 

[당신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체스가 묻는다. 코체와 이언이 서로를 보며 같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어디든.]

 

코체가 가방을 메며 차분하게 말하였다.

 

[우리는 마을을 떠나 방랑하며 살고 있어.]

[대부분이 그렇고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

 

코체의 수수께끼 같은 말에 멍한 표정을 짓는 캐시를 보고 이언은 심통이 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알다시피 그 마녀 때문이야.]

[마을에 남아있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캐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다른 마을로 가면 되지 않나요?]

 

캐시는 쭉 제 마을에서 나와 다른 마을로 전전하며 살아왔다. 그런 캐시의 말에 이언은 기가차다는 투로 한숨을 쉬었다.

 

[마을 주민 전체가 다른 마을로 대 이주를 한다?]

[그걸 마법사가 지켜만 보겠어?]

[하물며 마녀를 신봉하는 자들이 천지인 곳에.]

[어느 마을에서 좋다구나 하고 받아주겠어.]

 

캐시가 주눅이든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코체는 똑 부러지고 다정한 말투로 캐시를 달래주었다.

 

[그래서 수인들은 지금 자기 마을에서 나와 마녀의 땅을 방랑하는 쪽과.]

[마녀와 마법사를 섬기며 마을을 지키는 쪽으로 나뉘어져 있어.]

 

[긴 꼬리가 그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이언!]

 

[맞잖아, 긴 꼬리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캐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수인들을 보았다. 저들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내 마을이 어떻게 되었다고 말하는 걸까.

 

[정말 모르는 거야?]

 

이언이 어이없다는 얼굴로 캐시를 마주 보았다. 캐시의 어리둥절한 얼굴을 이언은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코체가 눈을 피하며 얼버무렸다.

 

[듣지 않는 게 좋아.]

 

캐시가 코체의 양 어깨를 붙잡아 소리쳤다.

 

[대체 뭔데요, 가르쳐줘요!]

 

이언이 캐시를 말리려 하였고 코체는 고개를 완전히 돌려 버린 채 중얼거렸다.

 

[너희 종족.]

[고양이, 특히 갈색 줄무늬 고양이들이 먼저 나섰어.]

 

[뭐가요, 제 마을이 어떻게.]

 

[그 마을 주민들 모두 마녀를 신봉하고 있어.]

[그리고 마녀를 받들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인간을 두둔하는 마을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찾아가 학살하고 있어.]

 

캐시의 다리가 떨린다. 분명 어린 시절, 마을을 떠나기 전에도 자신의 마을 사람들이 인간들을 노예처럼 부리기는 하였다. 하지만 학살이라니.

 

[모두 그 마을을 이렇게 불러.]

 

이언은 코체의 말에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정신 재판관들.]

[혹은 마법 광신도들.]

 

캐시의 몸이 얼어붙는다. 캐시의 반응에 코체는 조심스럽게 단어를 골라 말해주었다.

 

[그래서 수인들이 그 마을을 무서워해.]

코체가 이언을 흘깃 훔쳐본다.

 

[몇몇 마을과는 원한을 가지고 있기도 해.]

 

[당연하지!]

 

이언이 씩씩거렸다. 그가 거칠게 말을 뱉어대었다.

 

[그 자식들이 우리 마을과 어머니의 집들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어!]

[마녀라는 작자 하나 때문에 이미 수많은 마을들이 사라지고 없어졌어.]

[그런데 웬 같잖은 것들이 심판이랍시고.]

 

[이언, 그만!]

 

이언이 발로 땅을 차며 성큼 등을 돌려 너머로 걸어간다. 코체는 가방을 고쳐 메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난 그의 분노를 이해해.]

[그리고 마녀를 신봉할 수밖에는 그들도 이해해.]

 

체스가 심드렁하게 대꾸하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코체는 체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포프 마을의 전투에 대해 들었을 땐 가슴이 설렜어.]

[정말 구원이 있는 걸까, 하였지.]

 

체스가 몸을 틀어 등을 돌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포프 마을 전쟁은 마녀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전쟁에서 패배한 포프의 맹세를 수인들은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포프의 생존자조차.

 

[난 그런 영웅들이 또 나오리라 믿어.]

[그땐 내 발명품들로 작지만 도움을 보태고 싶어.]

 

[가자고, 코체!]

 

코뿔소가 멀리로 사막여우를 부른다. 코체의 커다란 가방이 기우뚱 중심을 잡는다. 캐시가 코체의 가방을 잡아주며 물었다.

 

[정말 그런 마을이 또 나오리라 생각해요?]

 

사막여우의 맑은 하늘색 눈동자가 확신에 차 반짝거린다.

 

[물론, 꼭 나타날 거야!]

 

 

 

체스는 제 발목에 감긴 부목을 손으로 만져보고 땅으로 발을 디뎌보며 저 혼자 감탄에 빠져 있었다.

 

[체스, 다시 훈련할게요.]

 

캐시가 벌떡 일어난다. 타냐도 함께 그와 선다. 체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타냐를 부른다.

 

[타냐, 정말 강해지고 싶어?]

 

[체스를 지킬 수 있을 만큼 강해지고 싶어.]

 

[좋아.]

 

체스는 엄격한 말투로 강하게 몰아붙였다.

 

[힘들다고 울어도 안 되고 포기해서도 안 돼.]

 

[그렇게 안 해, 약속할게.]

 

타냐의 자신감 있는 말투에 체스는 바람이 부는 곳으로 코를 들었다. 공기가 차다. 하지만 훈련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씨이다.

 

[캐시.]

 

[네!]

 

[타냐와 함께 훈련해줘.]

 

[문제없어요.]

 

타냐와 캐시가 나란히 서서 체스를 보고 있다. 체스가 입을 연다.

 

[그럼, 이번 훈련은...]

 

부스럭.

 

수풀 사이의 움직임. 체스가 부목을 짚으며 일어날 준비를 하였다. 체스는 단 검을 어설프게 쥐어 소리가 나는 곳을 노려보았다. 이나가 아직 둥치에 누워있다. 타냐가 이나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지만 수풀에서의 움직임이 더욱 가까워진다. 체스가 몸을 일으킨다. 타냐도 똑바로 서서 부지깽이를 들어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모두 한 곳을 보며 각자 무기를 쥐어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익숙한 얼굴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인간이야.]

 

캐시가 안도하는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심하기 일러, 인간은 우리를 죽이려 한다고.]

 

체스가 코를 벌름거리며 발톱을 꺼내었다. 그런 둘의 앞으로 타냐가 반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안심해요, 아는 사람이에요!]

 

쓰러진 남자를 붙잡아 끌며 모닥불 가까이 눕힌다. 그의 얼굴이 불을 받아 환하게 밝아진다.

 

[가터 아저씨, 무사하셨군요!]

 

남자의 온 몸이 먼지와 피로 얼룩이 져있었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연신 신음을 내던 그는 타냐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얼굴로 금방 풀어졌다.

 

[잠들었어.]

 

이나와 함께 나란히 남자를 눕히며 캐시는 수인들이 습격한 거대한 땅벌레를 곱씹었다.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빠져나왔을까. 얼마나 많은 인간들이 붙잡혔을까. 그리고 드는 의문. 마녀는 인간들로 무엇을 하려는 걸까. 체스가 허리를 꼿꼿이 핀 채 남자가 있는 곳으로 코를 대어 냄새를 맡았다.

 

[훈련은 내일부터 하자.]

 

타냐가 잠에 들고, 캐시도 눈이 슬슬 감기는 그 순간까지 체스는 곧게 편 허리를 눕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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