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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도시 물고기의 고발

2021.01.05 01:0401.05

내가 원상시에 올라온 것은 한 달 전 여름이었다. 처음 본 원상시의 풍경은 삭막하고 우중충하기 짝이 없었다. 기차역 근처로는 논밭이 전부였고,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를 강 옆으로는 가건물 같은 공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그 위로 높게 솟은 굴뚝들에선 시커면 연기가 쉴 새 없이 빠져나왔다. 차로 조금만 나가면 바다까지 있는 동네여서 바람엔 소금기가 사려 있었다. 여기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서 어떻게 우울증 없이 평생을 사셨나요?"라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물론 그들이 내 고향에 온다면 아마도 똑같은 질문을 되돌려줄 것이지만.

나는 원상시에서 유일한 대학인 원상대학교 대학원 과정에 진학했고 거기서 환경과학을 전공 중이다. 세부전공은 수질오염 및 관리다.  공업이 지역 경제의 대부분인 이 도시를 생각해 본다면, 환경과학과 하나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교수들의 수업은 재미없고 어렵고 가끔 보면 잡다해 보이기까지 한다.

품위 있게 살고 싶다면 필요한 학문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 학문이 인기가 많거나 재정적 지원이 넉넉한 것은 아니다. 내가 처음 교수의 소개로 연구실에 들어왔을 때 연구실에는 나를 포함해 셋이 전부였다. 게다가 나 또한 박사과정으로 들어왔으므로 석사는 한 명도 없었다. 박사를 졸업하고 여전히 연구실에서 일을 돕는 연구원 한 명과 나를 포함한 박사과정생 둘이 이 연구실을 이루고 있다. 연구원을 우리는 랩장이라고 불렀고 나와 같은 박사과정생을 나는 응구라고 불렀다. 응구의 본명은 '응오 씨 떤 린'이었다. 응구는 본인이 직접 응구라고 불리길 원했다. 원래라면 린이라고 불러야 했지만 자신은 Ngo를 콩글리시 식으로 발음한 응구가 더 좋다고 했다.

응구는 베트남에서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유학길에 올랐다. 그녀는 영어를 꽤 잘했고 한국어는 가끔 보면 나보다도 잘했다. 내가 응구에게 왜 미국이 아닌 한국으로 유학을 왔냐고 물으니, 응구는 간단히 대답했다. “후배씨, 여기가 그나마 싸니까, 장학금도 주고”. 나를 부르는 후배씨라는 호칭이 나쁘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 학기가 시작할 무렵, 원상시에서 거대한 뉴스 하나가 터졌다. 앞서 말한 원상시의 중심을 가로지는 강을 사람들은 성운천이라고 불렀다. 원상시를 지나니 원상천이라고 불릴 만도 하지만, 아쉽게도 성운천의 하류엔 원상시보다 5배는 인구가 더 많은 도시인 성운시가 있었다. 하여간 이 성운천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성운천의 중류인 원상시에서부터 성운천 하류인 성운시 초입새까지 장장 12 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가 새하얗게 뒤덮였는데, 그건 죽은 잉어와 누치, 메기의 배가 하얀색이었기 때문이다. 성운천 되살리기는 원상시의 오랜 과업 중 하나였는데, 순조롭던 일이 이렇게 돼버렸으니 시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강물 문제는 도시 하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 환경청에서도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만에 하나 시의 관리 소홀이 밝혀진다면 관련자 처벌은 물론이고 원상시는 중앙정부로부터의 예산 삭감도 각오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곧바로 물고기 떼죽음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시의 하수사업부와 국가 환경청 조사관들로 TF팀이 꾸려졌고, TF팀에서 우리 연구실로 자문을 맡아 줄 것을 요청해 왔다. 이를 교수가 수락하여, 우리 셋은 한시적으로 공무를 수행하게 됐다. 환경청 직원 중 한 명인 윤 과장이 우리에게 환경수사관이라는 직함이 적힌 목걸이 카드를 나눠줬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이걸 목에 걸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윤 과장에 의하면 우리의 주요 업무는 수질 분석과 더불어 오염원 파악 및 탐문 수사였다. 말만 자문이지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일이 더 많아 보였다.

하수사업부 권 주무관이 전해준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9월 6일 19시 20분, 시청에 처음으로 강에서 물고기가 죽었다는 시민의 제보가 접수되었고, 잠시 뒤 19시 52분, 출동한 경찰과 시의 긴급처리반에서 실제 폐사한 물고기들을 확인하였으며, 21시 30분, 시민들의 성운천 출입을 금하는 시장발 행정 명령이 발효되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에 TF팀 결성이 발표되었고, 그다음 날인 9월 9일 오전, 우리가 이렇게 모여 앉아 권 주무관의 발표를 듣고 있었다.

"현재 폐사한 물고기가 떠오른 구간은 상류인 원상시 중심부에서부터 하류인 성운시의 초입까지이며, 죽은 물고기 외에 악취나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민원은 접수된 바 없습니다. 성운천 주변을 따라 원상시에는 공업지대가 밀집해 있으며 원상시와 성운시 사이에 하수처리장 1기가 운영 중에 있습니다. 성운시는 대부분이 주거밀집지역이고 다행히 상수도 취수는 성운천이 아닌 인근 저수지에서서 이루지고 있습니다."

"아직 추정되는 오염 또는 독성물질은 없으며, 물고기 폐사가 상류인 원상시 중심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보아 정화되지 않은 공업폐수가 성운천으로 흘러든 것 아닐까 추측할 뿐입니다. 우리 TF팀은 환경 사고처리 절차에 따라 물고기 폐사의 원인 물질을 먼저 밝혀낼 것이고 그 뒤 해당 물질을 배출한 것으로 의심되는 공장들을 추려내 탐문수사 및 필요하다면 전수조사에 착수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 연구실은 최대한 빠르게 원인 물질이 무엇인지 특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나와 응구는 준비해 온 채수(採水) 장비 챙긴 뒤 곧바로 성운천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조사하기로 한 곳은, 원상시에서 성운천을 건너는 두 개의 다리 중 하류에 위치한 하곡교였다. 

하곡교 가운데서 바라본 성운천의 모습은 조금 기이했다. 당연히 물고기들이 배를 뒤집은 채 둥둥 떠 있으니 기이하지 않은 것이 이상할 것이나, 왠지 모를 평화와 적막이 이곳을 텅 빈 무(無)의 지대로 느껴지게 했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죽은 지 삼 일 된 물고기라면 썩어들어가는 살점이 파리떼를 거느리며 악취를 풍기고 있어야 정상일 테지만, 지금 여긴 파리는 고사하고 마치 미라가 될 채비를 하고 있는 양 물고기들은 상처 하나 없이 새하얗게 바래 있었다. 이들은 썩는 방법을 까먹은 것일까. 흙으로, 공기로, 물로 돌아가는 법을 잊은 물질들 같았다. 호수만치 잔잔한 물이 극적인 분위기를 더하고 있었다.

"응구, 베트남에서 이런 광경 본 적 있어요?"
"아뇨, 날씨가 추우면야 모르겠지만, 어떻게 파리 한 마리 없을 수 있죠?"
"그러게요, 우리 연구실만 해도 곰팡이가 한가득인데 말이죠"
"일단 우리 할 일이나 해봅시다"

나는 챙겨 온 두레박에 플라스틱병을 고정하여 그것을 다리 밑으로 내려 죽음의 강물을 받았다. 물 색깔은 옅은 초록빛을 띠었고 가끔 조류 덩어리가 떠다니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내가 반복적으로 물을 받는 동안 응구는 가져온 장비로 물의 산성도와 온도, 산소포화도를 측정했다. 물의 산성도는 pH 9.2로 평소보다는 살짝 강한 염기성 상태였다. 수온은 25℃이었고씨였고, 굉장히 낮을 줄 알았던 산소포화도는 의외로 대기와 큰 차이 없는 정상 상태였다. 응구가 의아해하며 말했다.

"수온이 낮은 것도 아니고, 강물에 이렇게 사체가 많은데도 산소포화도는 이상하리만치 정상이네요?"
"혹시 기계 이상일 수도 있으니, 한 번씩만 더 재보는 게 어떨까요?" 

응구가 몇 차례 측정을 다시 하는 동안, 나는 강변으로 가서 죽은 물고기 세 마리와 강바닥에서 진흙을 퍼 올려 비닐에 담았다. 우리는, 기계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음 채수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공장과 제련소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중곡교에서 우리는 동일한 작업을 반복했다. 세 번째 채수지는 하수처리장과 성운시 사이에 위치한 양일교였다. 마찬가지로 강 표면의 20 퍼센트가 죽은 물고기로 덮여 있을 만큼 처참한 모습이었다. 

세 시간에 걸쳐 시료 채취를 마친 우리는 수집한 샘플들을 가지고 연구실로 복귀했다. 나와 응구는 시료를 잠시 냉장고에 넣어 두고 선반에서 손바닥만 한 두께의 “환경독성물질 백서”를 꺼내어 펼쳤다. 그러고는 “공장 및 산업 단지에서 배출되는 대표 오염물질”이라는 제목의 3장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공장에서 나오는 ‘대표’ 오염물질만 해도 거의 수십 종에 이르렀다. 운이 나쁘면 지금 이 사태를 일으킨 물질은 이 안에 없을 수도 있었다. 대표 물질들은 크게 유기 오염물과 중금속 오염물로 분류돼 있었다. 하여 내가 유기 쪽 22종을 맡았고 응구가 중금속 쪽 15종을 맡아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세상에 이런 기계가 있다. 그 기계의 벌어진 입구에 어떤 물체를 넣는다. 가령 아까 강에서 떠온 진흙 같은 혼합물을. 5분 뒤, 진흙을 받아먹은 기계가 이 진흙은 어떤 물질들로 또는 어떤 분자들로 구성돼 있는지를 우리에게 낱낱이 읊어준다. 예를 들어, “이 진흙은 질량의 68%는 물(H2O)이고, 18%는 모래(Fe-Al-SiO2)이며, 나머지 14%는 유기물(CHONPS)입니다. 14%의 유기물은 다시 2%의 탄수화물, 1%의 섬유질, 0.3%의 단백질, 0.15%의 지방, ......, 마지막으로 0.0041%의 클로로페놀이 함유돼 있습니다.”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기계가 실제로 있다면 나는 악마와 계약을 해서라도 그 기계를 얻고 싶은 심정이다. 놀랍게도 내 친구 몇몇은 이런 기계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다. “아니, 달에도 가고, 핵융합도 하고, 2억 년 전 모기 피에서 공룡도 만들어 내는 세상인데, 그런 거 하나 없는 게 말이 되냐?”라는 말을 남기면서 말이다. 인간의 무지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여간 그런 게 있다면, 나와 응구가 지금 책이나 뒤적거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인간에겐 불굴의 의지라는 차선이 있다. 어떤 악마의 기계가 있어서 혼합물의 모든 세부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은 어떤 단일 물질 하나를 상정해서 그 물질이 혼합물 속에 과연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어느 정도 알아낼 수는 있다. 존재 여부뿐만 아니라, 얼마나 그것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역시 상당히 정확한 값으로 추정해 낼 수 있다.

그래서 지금 나와 응구가 하려는 일은, 책 속 수십 종의 오염물들이 우리가 떠온 강물, 진흙, 그리고 물고기 몸속에 실제로 존재하는지, 있다면 얼마나 많은지를 분석하여 추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하고 반복적이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다. 포장하자면 불굴의 의지이고 전문 용어로 하면 노가다다. 첨단이나 하이테크 같은 단어를 떠올려선 안 된다. 그보다는 땀, 체취, 식초향, 구역질, 향긋한 꽃내음, 간이침대, 허기, 졸음, 추위, 벌레, 캔커피 같은 단어들이 조금 더 연관이 높다. 여기서 서로의 체취에 이끌린 이들은 높은 확률로 인생의 동반자들이 되고 만다. 하지만 조금 더 높은 확률은 한쪽이 한쪽의 냄새를 맡고 구토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무튼 나와 응구는 역할이 정해지자마자, 떠온 시료들을, 분석하기 직전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가다’에 돌입했다. 동시에 나는 윤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바로 물질 분석에 돌입했으니 5일 후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아, 이거 참, 그럼 너무 늦는데......” 어쩌고 하는 권 주무관의 투덜거림이 들려왔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밤샘 작업이 진행되는 나흘 동안(응구의 비위가 강해서 조금 고마웠다), 강에선 드디어 물고기들이 썩고 있었다. 악취와 함께 파리떼가 들끓기 시작했고, 사체에서 나온 선홍빛 침출수가 강물을 핑크빛으로 빛나게 했다. 시청에 민원이 쇄도하자 시에서는 마지 못해 고무보트를 동원하여 사체를 건져 올리는 시늉을 했다. 시장이 직접 고무보트를 타고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그때 고무보트에 구멍이 나서 전원이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수영 실력이 빼어난 시장이 홀로 뭍으로 올라와, 시장의 리더십이 한동안 뉴스 거리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다행히 죽음의 강물에 빠졌던 이들은 전원이 무사하였고 이후 어떠한 통증이나 증상도 호소하지 않았다.

정확히 4일 후인, 9월 13일 오전, 나는 쉬어 버린 목으로 윤 과장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충격적이면서 짜증나는 결과에 대해 장황히 설명했다. 요지는, 강물에서는 어떠한 오염물질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분석한 항목들에 대해서는 말이다. 다만 기준치를 초과하는 물질들은 몇 있었다. 문제는 이 물질들이 기준치만 살짝 초과할 뿐, 강물 내에 대량 살상을 일으킬 만큼 많은 양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곧바로 오후에 TF 팀 회의가 열렸고, 그곳에 참석한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신조는 TF라는 기구의 오랜 전통과도 같은 것이다. TF팀은 원인 물질을 찾지는 못했지만, 기준치를 초과한 물질을 배출한 공장이라도 우선 색출해 내자는 데 의견의 합치를 보았다. 물론 나와 응구는 잠자코 있었다. 이것은 광기였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광기에 기꺼이 동참하기로 했고 저들보다 더 무서운 광기를 보여주기로 했다. 내 어릴 적 꿈이 경찰이었다는 걸, 아니 그보다는 탐정이었다는 걸 여기에 아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TF팀과 함께 원상시 중심부로 가 의심되는 공장을 일일이 조사하기로 했고, 응구는 연구실로 돌아가 다른 원인 물질에 대해 더 분석하기로 하였다. 

기준치를 초과한 물질 중 가장 대표적 독성물질은 비소였다. 독성을 나타낼 만큼 높은 농도는 아니었지만, 예년의 측정치보다는 살짝 값이 살짝 높았다. TF팀은 비소가 나올 만한 공장 50여 곳을 추린 다음 흩어져서 조사하기로 했다. 기준치를 초과한 다른 물질들도 있었지만, TF팀은 사람들이 그나마 들어보기라도 한 비소를 우선으로 선정한 것이다. 내가 맡은 곳은 파워제련, 에이플가죽, 당밀화학, 최가피혁 총 4곳이었다.

원상시의 공장 대부분은 영세하고 가치 창출이 높지 않았다. 처음 간 파워제련엔 경비실조차 없었다. 나는 현관을 통과해 사무실로 직행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멀리 보이는 사장실로 향하는 동안 아무도 나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대로 사장실 앞까지 온 나는 사장실 문에 세 번 노크하고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사장은 두 다리를 책상 위로 뻗은 채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 급습에 당황했는지 바로 전화를 끊고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그가 내게 말했다.

“당신 뭐요?”
“네, 환경부에서 불시 단속 나왔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오폐수 정화 장치까지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장은 쌍욕 반, 정치 욕 반인 말들만 계속 뱉어냈고 나를 안내해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이에 나는 “단속에 불응하는 것만으로도 영업 정지 6개월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공무집행방해죄는 덤이고요.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폐수 시설로 나를 안내하세요.”라고 윽박질렀다. 이런 법이 실제 있는지 없는지는 몰랐지만, 나는 바빴다. 사장이 잠잠해지더니 최 부장을 불러, 나를 안내하게 했다. 

오폐수 처리실은 거대한 터빈이 돌아가는 소리 때문에 귀가 먹먹했다. 나는, 처리된 물이 방출되고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겨 거기 비치돼 있는 두레박으로 물을 한 바가지 퍼 올렸다. 그런 뒤 가방에서 1 리터 플라스틱병과 약식으로 비소 농도를 추정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를 꺼냈다. 가장 높은 농도를 감지하는 리트머스지를, 퍼낸 물에 적셨으나, 리트머스지의 색깔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은 중간 농도를 탐지하는 리트머스지를 물에 적셔보았다. 파랗던 리트머스지가 곧바로 빨갛게 변했다. 비소 배출 기준치를 초과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결과를 최 부장에게 설명했고 최 부장은 근심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초과한 범위가 높지는 않고 그동안 한 번도 환경 검사에 걸린 적이 없으니, 아주 큰 징계가 내려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용히 처분을 기다려보시지요.”라고 말한 뒤, 나는 다음 공장인 에이플가죽으로 향했다.

에이플가죽과 당밀화학에서 나는 똑같은 일을 반복했고 둘 다 비소 배출 기준치를 2배 정도 초과하였다. 조사한 세 곳 모두 환경 기준을 지키지 않았으니, 지금까지는 원상시의 공장들은 100% 위법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었다. 표본 수가 적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100%는 충격적 수치 아닌가. 이쯤 되니 성운천에서 발견된 비소는 원상시 대부분 공장들의 합작품일지 몰랐다. 나는 마지막 최가피혁에 희망을 걸며 최가피혁으로 운전대를 잡아 돌렸다.

‘나는 대체 왜 비소 배출 범인을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는가.’ 비소는 이번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나는 그저 팀의 명령을 따라 일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못된 명령을. 그런데 참 희한했다. 이 일이 싫지 않았다. 모든 사람을 범인 취급하며 증거를 찾아 나서는 일이 이리도 재밌을 줄이야.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최가피혁의 강 대표는 이전 사장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마른 체구에 190cm는 돼 보이는 장신이었고 동그란 안경을 썼으며 나이가 많아야 50을 넘길 것 같지 않았다. 심문에 자신감이 붙은 나는 아예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선생님, 요즘 공장 배출 물질들에는 분자 하나하나에 전부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생님 공장에서 비소를 무단 배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시료 채취에 협조해 주시고 어떻게 된 일인지 경위를 말씀해주시지요.” 그야말로 아니면 말고 식의 함정 수사였다. 게다가 거짓말과 헛소리까지 추가된. 그런데 밑져야 본전인 이 말에 강 대표가 보인 반응은 놀라웠다.

“역시 그렇게 된 것이군요. 그치만 우리 공장을 수사해 봐야 얻을 것은 많지 않을 겁니다. 나는 살 만큼 살았고 가족도 없는 몸입니다. 더 이상 협박 따위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군요. 우리 사원들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그들 역시 옳은 편에 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황 사장을 찾아가세요. 내가 그에게 비소를 공급해 왔어요. 지금까지 넘긴 양만 해도 수십 킬로그램은 될 겁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나는 철봉에 머리를 받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황 사장이라면 성운하수처리장의 대표를 말하는 것 아닌가. 그는 몇 해 전 세운 하수처리장으로 인근 도시의 하수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받기까지 했다. 현재는 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선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하필 그의 이름이 여기서...라고 생각하는 중에 응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후배씨, 떠온 물의 이온 농도 분석 결과가 나왔어요. 결론만 말씀 드리면 나트륨 농도가 분석 범위를 초과할 정도로 높아요.”
“뭐죠? 누가 소금이라도 부은 거예요?”
“잘 들어 보세요, 만약 소금이라면 염소 농도가 높아야 하잖아요? 놀랍게도 염소 농도는 평소보다도 낮은 수준이에요. 이쯤 되니 짐작 가는 게 있지 않아요?”
“염소가 낮다고요? 그럼 설마...(솔직히 잘 몰랐다)”
“맞아요. 이건 차아염소산 나트륨이에요. 락스 원액이라고요. 염소이온 농도가 낮은 것도 락스 때문에 물속 염소이온들이 기체로 변해 대기로 빠져나갔던 거라고요.”
“락스요? 그럼 물고기들이 썩지 않았던 것도 다 그 때문이었군요.”
“맞아요, 락스 때문에 곰팡이와 세균들이 전혀 자라지를 못했던 거예요.”
“근데 락스라면 도대체 어디서 배출된 거죠? 이 동네엔 락스 공장도 없고, 락스를 쓸만한 데라곤 하수처리장뿐인데 거긴 사고 지점의 상류가 아니잖아요.” 이때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하수처리장이라는 단어에 한 번 더 머리를 얻어맞았다.
“후배씨 그거 알아요? 여기가 바다랑 20km밖에 안 떨어진 거? 랩장이 그러는데, 밀물 때가 되면 강물이 거꾸로 흐른대요. 생각해봐요, 밀물 때에 마침 하수처리장에서 락스가 방출된다면?”
“상류가 오염되겠죠.” 응구와의 시료 채취 당일, 잠잠했던 물의 흐름을 떠올랐다. 
“응구씨, 지금 당장 성운하수처리장 앞으로 올래요? 당신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당신의 무력이요.” 이 일을 혼자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나는 든든한 조력자를 불러내기로 했다.

9월 13일 20시 20분, 나와 응구는 성운하수처리장 앞에서 작전을 모의했다. 사실 앞이라기보다는 위가 맞는데, 이 하수처리장은 국내 최초로 처리 시설이 지하에 매립돼 있고 지상은 공원화해서 시민에게 개방된 형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수처리장이 높은 확률로 오염원일 거라는 사실을 TF팀에게 알리지 않았다. 가난한 공장이나 들쑤시는, 전시 행정에 미친 자들이 우리를 막으면 막았지, 수사를 지원해줄 것 같지 않았다. 우리가 생각해낸 최종 해법은 처리 시설 서버실에 몰래 진입하여, 차아염소산나트륨의 방출 유량과 방출 지속 시간 데이터를 빼내오는 것이었다. 그 뒤 빼돌린 데이터를 언론과 인터넷에 뿌릴 계획이었다.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진상 규명의 불씨로 작용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대게 이런 기록 장치들은 모인 데이터를 삭제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수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데이터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도 기록 후 7일이 지나야 발생하므로 오늘 밤이 손대지 않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나와 응구는 몰래 잠입하기로 했다. 하수처리장에서는 매시간 발생하는 슬러지를 반출하기 위해 거대한 트럭이 드나들었다. 우리는, 트럭이 출입검문소 앞에 잠시 정차할 때를 틈타 재빨리 트럭 옆면에 들러붙었다. 트럭과 함께 들어 온 하수처리장 내부엔 좁은 콘크리트 길들이 격자형으로 넓게 짜여 있었다. 그 길 밑으로는 호수만큼 거대한 수조가 쏟아져 들어오는 하수를 끊임없이 처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마치 천장과 외벽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지하 속 거대한 공동과도 같았다. 지금 시간이면 잔디 깔린 콘크리트 천장 위로 강아지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을 터였다.

이 거대한 공동에 시야를 가릴 것은 없었고, 하수가 처음 유입되는 저쪽 끝으로 서버가 있을 통제실의 창문이 보였다. 창문으로는 아직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통제실 앞까지 가는 동안 수조 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물소리만이 모여드는 정적을 헤치고 있었다. 통제실 옆 거대한 배관에선 하수가 맹렬한 기세로 쏟아져 들어 왔고 그 맞은 편에는 문제의 차아염소산 탱크가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못해도 수십톤은 돼 보이는 거대한 크기였다.

통제실 문 손잡이를 돌리자, 손잡이가 돌아갔다. 열린 문틈 사이로 센서 음과 쿨링팬 돌아가는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문을 전부 열자 5미터 남짓한 거리에 수많은 레버와 각종 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왼쪽으로 알루미늄 프레임에 담긴 검은색 서버들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 누가 봐도 사람인 검은 형체가 있었다.

검은 형체는 우리를 발견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로 서버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나와 
응구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검은 형체를 향해 달려들었다. 왼쪽으로 돌아간 내가 그와 먼저 맞닥뜨렸다. 그는 내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파이프를 휘둘렀다. 첫 번째 파이프는 운 좋게 피할 수 있었지만, 두 번째 파이프는 왼팔로 막는 수밖에 없었다. 왼팔에 파이프가 꽂히는 순간 나는 너무 아파서 조금 이상한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왼판을 내주긴 했으나 동시에 나는 재빨리 오른손으로 파이프를 잡아챘다. 나의 괴소리와 잡힌 파이프에 주의가 팔린 검은 형체는 그의 오른쪽에서 날아오는 응구의 발차기를 피하지 못했다. 응구가 냅다 꽂은 발차기는 검은 형체를 3미터 이상 날려버렸다. 일반인의 발차기였다면 나가떨어진 이를 확실히 잠재우기 위해 급히 뛰어갔겠지만, 지금은 별로 그럴 필요가 없다. 응구에겐 무에타이 경기를 50전이나 치러낸 특이한 경력이 있으니까. 보아하니 갈빗대 하나가 부러졌는지 검은 형체는 수그린 채 겨우 숨만 쉬고 있었다.

나는 검은 형체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권 주무관 님, 여기서 뭐 하고 계세요? 설마 강에 락스를 푼 범인을 주무관님 본인이라고 하실 건 아니죠?”
“아니요, 내가 범인입니다. 내가 강에 락스를 풀었어요. 아주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어서 경찰을 불러 주세요. 이제 그만 자수하고 싶습니다.”
“실수였나요?”
“맞아요, 실수였어요. 하수 방출 레버와 락스 방출 레버를 헷갈렸어요. 결국 락스 한 탱크가 비어 버릴 때까지 락스를 내보내고 말았어요.”
“광범위 환경 범죄로 감옥에 가면 최소 7년인 건 알고 계세요?”
“네 물론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 같은 경우는 3년입니다.”
“정말 확실합니까?”
“부러진 뼈가 폐를 찌른 것 같아. 제발 구급차 좀 불러...”

나는 감옥에 가겠다는 그를 굳이 말리지 않았다. 뒷일을 경찰에게 맡기고 돌아온 다음 날, 매스컴에서는 락스 방출 사건을 일개 직원에 의한 단순 해프닝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경찰에선, 락스 밸브를 장시간 열어 놨다는 권 주무관의 주장과 서버의 기록이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어제 응구가 찾아낸 통제실 CCTV 영상에는 사고 당일로 추정되는 날의 기록이 통째로 사라진 상태였다. 또한, 어제 권 주무관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실제로 맞은 것은 서버가 아니라 서버를 둘러싼 알루미늄 프레임뿐이었다. 락스 밸브를 풀려면 다섯 단계를 거쳐야 하는 반면, 처리된 하수를 방출하는 데는 두 단계면 된다. 두 단계만 거치면 쏟아져 나가는 하수의 우렁찬 소리가 들릴 텐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고 그런데 또 세 단계를 더 거친 뒤 락스를 내보내며 하수라고 생각한다? 둘을 실수로 헷갈리는 것은 애투브를 보며 별풍선을 날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권 주무관은 그 시설의 감독관이지, 운용자가 아니다. 그리고 권 주무관이 정말로 범죄를 덮을 생각이었다면 왜 하필 서버 기록이 공개되기 직전인, 아슬아슬한 어제를 범죄 은닉의 시기로 잡은 것일까. 권 주무관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경찰의 발표가 있고, 매스컴에서 한껏 떠들어대던 그 날 밤, 나는 우연히 읽게 된 석간신문에서 아주 조그마한 부고를 보았다. 

“최가피혁 강 대표 별세”

락스가 강으로 흘러들던 밤, 나는 그 며칠 전 성운천에서 떠온 갓 부화한 물고기들이 어항 속을 누비는 모습을 보았다. 물고기들은, 어항을 쳐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놀라기는커녕 물 위로 올라와 먹이를 내놓으라고 시위하기 바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항을 치며 물고기처럼 사고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걸 '물고기 사고법'이라고 이름 붙였고 대충 다음과 같다.

내 삶은 왜 이리도 무료했을까, 아니 정말 내 삶은 무료했던 걸까, 혹은 나라는 인간에겐 애초에 소소한 일에는 흥미와 만족을 느낄 재능이 없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애초에 인간에게 생기는 일이란 것은 소소하고 거대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아닐까.

근 며칠 간 물고기들이 죽고 사람이 갇히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죽었다. 공교롭게도 하수처럼 새까만 이 이들이 내 안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전두엽이 망가진 말 같지만(어쩌면 강대표의 죽음에 내 헛소리가 일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졌다. 강 대표는 똑똑한 사람이니 내 헛소리는 그냥 흘려보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일평생 처음으로 재미 또는 흥미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 이런 기분이 재미 또는 흥미라고 일컬어지는 것일까 하고 추정하고 있었다.

권 주무관이 우리를 기다려 준 만큼 나 역시 이 사건을 통 속의 술인 양 더 숙성시키기로 했다. 일련의 사건들, 이 암흑의 연결고리를 아는 이는 나와 응구뿐이었다. 고리의 끝엔 무엇이 달려 있을까. 아니 무엇을 달아야 할까. 응구는 다음 주, 하노이로 떠날 예정이지만 나는 응구에게 말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나와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그러니 돌아가는 것을 조금만 늦출 수 있겠느냐고. 그러면 응구는 답할 것이다. “후배씨, 두 말 하면 삽소리지”, 한 손에 환불받은 비행기표를 흔들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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