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그 수인을 정말 믿으시는 겁니까?]

 

남정네가 물었다. 구원자의 습격에서부터 기분 나쁜 괴물의 나무 둥지에 까지, 살아남은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뿔뿔이 흩어져 붙잡히던가, 다 함께 모여 전멸당하던가. 타인투이의 눈에 인간들이 수인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확률은 보이지 않았다. 협곡의 나락만큼이나 턱없어 보였다.

 

[물론 믿지 않네.]

 

사람들은 회색 늑대와 타인투이의 악수로, 수인이 발톱으로 새긴 판자의 이름으로,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목숨을 위협하는 불안함은 발밑에 남아 사람들 사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은가.]

 

남자가 말한다.

 

[간밤으로 몇몇이 또 떠났습니다.]

 

타인투이는 그들을 동정하거나 이해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그들의 도망은 그저 스스로의 목숨을 버리는 불온한 행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버릇처럼 답하였다.

 

[어차피 여기에 남아있어 봤자.]

[도움도 되지 않을 인물들이야.]

 

회색 늑대의 등장으로 생존자들은 흩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무리 내부로 퍼지는 헛소문과 노래가 사람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소문이 도는가?]

 

[네.]

[몇몇은 그 노래를 진심으로 믿더군요.]

 

타인투이가 허리에 찬 돌검을 들어 훑어보고는 나직이 이야기하였다.

 

[우리는 뭉쳐야 해.]

[그 쓸데없고 허황된 노래가 아니라.]

 

타인투이가 굴에서 나와 벌판으로 선다. 거대한 암석 벽 곳곳에 난 작은 굴들로, 피난을 온 인간들이 밥을 짓고 자리에 누워 쉬고 있다. 이 굴들 역시 주인이 따로 있을 것이다. 나무 둥지에서 맞은 재앙을 똑같이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타인투이가 암석 벽의 굴들로 인간들을 부른다.

 

[동지들이여.]

[이 썩은 세계의 생존자들이여.]

[나 타인투이는 그대들에게 고하고 싶습니다!]

 

굴 밖으로 빼어나오는 고개들. 타인투이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진다.

 

[땅을 파고 내려가 숨고.]

[좁은 굴속에 몸을 감추어 숨고.]

[정체도 알 수 없는 생명체의 둥지를 빌려 숨고.]

[이런 짓거리에 신물이 납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녀의 소리에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가 하는 말들이 귀에 닿지만 그 누구도 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울부짖음은 메아리도 치지 않는다.

 

[우리는 뭉치고 싸워야 합니다!]

 

인간들의 사이로 도는 소문 하나. 힘도, 집도 없는 그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노래하나.

 

[우리는 강해져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맞서 싸워야 합니다!]

 

아무도 그녀의 말에 반응 하지 않는다. 아무도 그녀의 간청에 대답 하지 않는다. 그녀의 성난 외침이 맥없이 허공을 젖다 저 혼자서 툭 떨어진다. 타인투이는 사람들의 대답 없는 반응과 무기력한 얼굴에 염증을 느꼈다.

 

[젠장!]

 

타인투이가 몸을 홱 돌리고서 제 굴로 들어간다. 이제 인간 중 그 누구도 싸우려 하지 않는다. 이제 인간 중 그 누구도 일어서려 하지 않는다. 숨을 죽여 자세를 낮추고 모습을 감춘 뒤 같은 노래만 주절거린다.

 

빛으로 가는 그대여.

꿈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천국은 없지만

노래를 불러드릴게요.

 

트라나의 옆에서 소년이 흥얼거렸다. 트라나는 등을 돌려 굴로 들어가는 타인투이의 모습을 죽 지켜보았다. 그녀가 한 말,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트라나는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몰랐다. 정말 그녀는 마녀를 잡으려 하는 걸까.

 

어둠으로 가는 그대여.

꿈으로 간다고 생각해요.

천국은 없지만

지옥 역시 존재하지 않죠.

 

소년의 콧노래가 좁은 굴속을 가득 채운다. 자리가 없어 멋대로 찾아온 트라나를 소년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 노래는 뭐야?]

 

소년은 손으로 흙을 주물 대며 모양을 빚었다.

 

[꿈으로 가는 노래.]

 

트라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년의 손에서 빚어진 흙더미들은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 갔다. 사람 모양과 더 작은 사람 모양의 인형.

 

[이 세계에는 수인도, 마녀도 없는 낙원이 있대.]

 

소년이 노래의 다음 구절을 부른다.

 

가고 있다면 불러요.

마녀가 없는 곳으로

슬픔이 없는 곳으로

 

소년의 손에서 사람 모양의 인형 두 개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 부모가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것처럼.

 

[다들 그곳으로 가려 해.]

 

[어디로?]

 

트라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사람들은 그런 노래에라도 기대어야 할 만큼 약해져 있는 것은 분명했다.

 

[낙원으로.]

[노래를 부르면 찾을 수 있대.]

 

트라나가 건조하게 말을 뱉는다.

 

[바보 같아.]

 

제 말에 놀란 표정을 짓고서 소년을 살펴보았다. 소년은 다른 흙더미를 쥐어 열심히 반죽을 쳤다. 그는 화를 내지도, 맞장구를 치지도 않았다. 그의 눈은 흙에 꽂혀 모양을 빚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래도.]

 

소년은 분명한 말투로 또박또박 말하였다. 소원을 빌 듯, 약속이라도 하듯, 다짐이라도 하듯.

 

[꼭 있었으면 좋겠어.]

[준비가 되면 찾아 갈 거야.]

 

[낙원으로?]

 

[응.]

 

노래를 부르며 숲과 절벽 사이를 헤매는 소년. 그는 있지도 않는 장소를 찾아다니다 수인들에게 붙잡힌다. 그들이 낙원을 찾는 인간 소년을 곱게 돌려보내어 줄까. 어떻게 생각해도 정말 바보 같은 망상이다.

 

트라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굴 밖으로 나갔다. 소년이 얼빠진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고 트라나는 타인투이가 묵는 굴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트라나가 외친다.

 

[함께 하고 싶어요.]

[수인들과 싸우고 싶어요.]

 

 

 

 

 

 

 

 

눈을 떴다. 기나 긴 어둠의 끝에서 한낮의 햇살이 부서진다. 체스가 누워있던 수레와 캐시, 타냐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기대고 있던 나무 둥치로 잎사귀와 가지들로 엮은 벽이 내 몸을 가려주고 있었다. 내 옆으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일어나셨군요, 이나 양.]

 

가터 아저씨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대꾸하였다.

 

[마녀를 만났어.]

 

[그랬군요.]

[전 이나 양이 어떻게 되는 줄 알았답니다.]

 

예의 그 공손한 말투. 허튼 말 하나 없는 깔끔한 문장들.

 

[왜 나야?]

[인간들이라면 이렇게나 많은데.]

 

[단순히 인간들을 데려가는 게 아니에요.]

[저는 이나 양이 필요해요.]

 

[왜?]

 

[글쎄요.]

 

그는 뜸을 들였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뭘까. 그의 대답으로 나의 여정은 달라질 것이다. 그가 대답한다.

 

[당신은 절박했으니까요.]

[제대로 이야기 하죠.]

 

등 뒤로 들려오는 말. 침착하고 여유로운 목소리.

 

[이나 양, 당신이 절 불렀어요.]

[어떤 대가이든 감당하겠다고 하였죠.]

 

소원, 나의 소원. 나에게 건네어진 손. 날 부르는 가족. 불쑥 등장한 편지 한 장.

 

딸아.

 

[정말 마녀가 소원을 들어줘?]

 

[물론이죠.]

 

[가족을 만드는 것도?]

 

[그럼요, 이나 양.]

 

[당신 소원도 마녀가 들어주었어?]

 

[궁금한가요?]

 

[믿을 구석은 있어야 하니까.]

 

가터 씨의 얼굴을 잎사귀로 가렸다. 부신 햇살로 곤히 잠든 꿈을 깨어서는 안 되니까.

 

[그럼요, 이해해요.]

[나도 당신과 같은 소원을 빌었답니다.]

 

그가 나와 같은 소원을 빌었다면, 만약 그렇다면.

 

[가족이 필요했어요.]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전 친절한 사람이에요.]

 

그가 내 뒤로 몸을 숙인다. 그의 숨이 귓가로 닿는다.

 

[모든 이에게는 항상 기회란 게 주어져야 하니까.]

 

그가 다시 몸을 일으켜 태연하게 말한다.

 

[기회를 잡을지, 말지는 당신의 선택이에요.]

 

그의 목소리가 멀어진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나요, 이나 양?]

 

목소리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바람이 불 듯, 모습을 감춘 그의 말이 아직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마음속에서 내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선택을 하고 싶어?

 

난, 난, 난. 어쩌면 지하 단칸방에서, 창도 없는 가난에서, 일상조차 누릴 수 없는 세상에서. 이미 난 결정을 한 것은 아닐까. 부모도 없이 정도 붙이지 못한 친척들의 손에서 정처 없이 방황한 세 평짜리 방에서, 난 선택을 이미 하지 않았을까. 가터 씨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가야만 하는 곳이 생겼어요.]

 

가야만 한다. 그 전에 수인들에게 붙잡혀서도, 죽임을 당해서도 안 된다. 내 손과, 내 힘으로 찾아가 만나야 한다.

 

마녀가 있는 곳으로.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곳으로.

 

 

 

 

 

체스가 멀리로 자신들을 보고 있다. 타냐가 그녀의 붕대에 가려진 시야로 손을 흔들었다. 체스가 잠시 코를 좌우로 킁킁거리고는 제 발목에 감싸인 부목을 만지작거린다.

 

[그때 그 수인들이 말하던 긴 꼬리는 뭐예요?]

 

캐시가 들로 피어난 풀을 쓰다듬는다. 부드러운 감촉 덕에 캐시는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긴 꼬리는 우리 고양이들을 얕보는 멸칭이야.]

 

[멸칭이요?]

 

[그게 우리 고양이들을 수인들은 좋게 보지 않거든.]

[사기꾼이나 도둑, 광대나 협잡꾼 같은 거 말이야.]

 

타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캐시를 보았다. 그녀는 캐시에게로 걱정이 담긴 말을 건네었다.

 

[정말 그런가요?]

 

[그런 이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어.]

[뭐, 낭트나 피어리처럼 유명한 인물들이 있어서.]

[안 좋은 쪽 이미지가 굳어진 건 맞지만 말이야.]

 

[그 사람들이 무얼 했는데요?]

 

캐시가 고개를 올려 바람을 맞았다. 마을에 있었을 때 들었던 유명한 고양이 수인들. 자신의 마을에서는 그들의 일화를 떠받들고 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 같은 고양이 수인들 사이에서도 그 두 수인들을 두고 내리는 평가는 늘 엇갈렸다. 캐시가 어릴 적 어른들에게 배웠던 말씀 중에는 낭트처럼 행동하고 피어리처럼 생각하라, 와 같은 말도 있었다. 물론 그 때문에 옆 마을과 사이가 나빠져 곡식 수확 기간만 되면 싸웠던 기억도 있었다.

 

[낭트는 온갖 물건들을 훔치고 다녔어.]

[날렵하고 조용하고 참을성이 많은 인물이지.]

 

[피어리는 뛰어난 장군이었어.]

[적들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기막힌 획책으로]

[적들을 궁지에 몰아넣고는 하였대.]

 

아. 캐시는 자신이 뱉은 말에 귀가 빨개져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어릴 적 마을 어른들에게 들었던 얘기들을 그대로 말하고 말았다. 낭트는 뛰어난 도둑이었다. 다만 그가 훔친 물건은 모두 마을에서 중요한 물건들이었고 이웃 마을과 다른 종족의 생존과 관련한 물건도 있었다.

 

몇 마을은 낭트가 훔친 물건 때문에 아직도 고생하고 있다고 하고 마을 하나가 괴멸 직전까지 갔다고 하였다. 지금도 낭트에 관련해서는 복수를 준비하는 종족이 있을 정도로 악질인 범죄자였다.

 

피어리는 갈색 줄무늬 고양이들의 상징과도 같은 수인으로. 질 나쁘고 해괴한 소문들을 퍼뜨리는 데에 능한 자였다. 남들을 속이고 앞뒤 구분 없이 제 이익만을 취하는 악명 높은 자로, 그가 전쟁을 일으키면 적군들은 먼저 병사들의 귀를 자르고 나서야 전장으로 간다는 소문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 두 수인의 활약으로 타 종족의 수인들은 언제나 고양이 수인들에게 비열한, 더러운, 비겁한 따위의 말들을 붙여 부르고는 하였다.

 

[그렇지만 요새는 긴 꼬리라는 멸칭으로 부르고 있지.]

[꼬리가 길면 밟혀 잡힌다는 말에서 따온 거래.]

 

체스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타냐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타냐는 체스와 마주본 채로 말하였다.

 

[캐시는 어떻게 하고 싶어요?]

 

캐시가 들로 불어오는 바람을 느긋하게 맞았다. 내가 정말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까. 볼품없는 발톱과 약한 몸으로 버틸 수나 있을까.

 

[글쎄, 난 모두가 평화롭게 살았으면 해.]

 

어릴 적, 마법사의 집에서 같이 놀았던 인간 아이들. 인간들을 가축처럼 취급하던 자신의 마을에서 주민들은 캐시를 별종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였다. 자기 영역을 철저히 지키는 습성 때문에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 고양이 수인들 사이에서 마을을 떠나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캐시는 제 스스로 정말 별종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인간을 지키고 싶다니.

 

코체나 이언이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하였을까. 베스 혹은 포프의 무너진 마을 옆으로 새롭게 탄생한 올그의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그게 다야.]

 

분명한 건 더 이상 인간이나 다른 수인들이, 제멋대로 구는 이상한 조물주의 손에서 사라지는 건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캐시.]

 

타냐가 캐시에게로 똑바로 서서 손을 뻗었다.

 

[어제 캐시와 그 수인의 대화를 듣고 결심했어요.]

 

캐시가 타냐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결심이라니, 뭔지 궁금해지는 걸.]

 

타냐가 가슴을 핀 채 당당히 말을 한다.

 

[마녀를 만나러 갈 거예요.]

 

캐시의 얼굴이 굳는다.

 

[마녀를 막을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안 돼. 캐시는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이 아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어떻게....]

 

타냐가 체스에게로 고개를 돌리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짓는다.

 

[마녀를 만나면 분명 무슨 수가 있겠죠.]

 

[그래서 마녀가 있는 곳으로 가게?]

 

[갈 거예요, 꼭.]

 

캐시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린다. 체스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체스의 살랑거리는 꼬리가 바람에 따라 얌전히 움직이고 있다.

 

[체스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아니요!]

[그렇게 두지 않는 건, 저예요.]

 

타냐의 눈이 너무도 밝게 차올라 캐시는 제 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그대로 전할 수 없었다. 넌 죽을 거야. 수인들의 손에서, 마녀의 손에서.

 

[제가 마녀를 막을 거예요.]

 

캐시는 어설프게 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격려하였다. 격려하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내가 이나를, 타냐를 지킬 수 있을까. 정말 인간과 수인이 친해질 수 있을까.

 

 

 

 

 

 

 

 

벨바는 자신의 실험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마녀의 힘을 담은 수정으로 벨바는 새로운 존재를 만들고 싶어 했다. 수많은 수인들이 그녀의 손을 거쳐 갔고 대부분은 견디지 못해 정신과 본래의 형체를 잃고 말았다.

 

마녀에게 소원을 빈 최초의 인간. 동족을 배신한 인간. 그의 등장으로 벨바는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인간에게 실험을 하면 어떨까. 거대한 벌레의 껍질 속에 숨어 사는 인간들은 그녀에게 좋은 양분이 되어주었다.

 

불안에만 떨고 두려움에 기도만을 하던 여사제를 구슬리는 건 쉬운 일이었다. 인간들을 돕고 수인들에게서 그 벌레 둥지를 숨겨주는 대신 몇몇의 인간들을 훔쳐 자신의 방으로 데려 간다.

 

실험은 막바지에 다다랐고 마지막 재료만 남아 있던 차였다. 실험이 끝난 그 지독한 벌레 둥지를 부수고 인간들을 학살하면서 벨바는 저 스스로 기쁨에 도취 되어 있었다.

 

[지식과 유희가 되어주세요.]

 

벨바의 그림자로 소녀가 눈을 뜬다.

 

[당신은 이 세계의 새로운 마녀가 되는 거예요.]

 

푸른빛의 마력이 도는 눈동자. 한나가 벨바를 따라 일어난다. 그녀의 온 몸을 묶은 족쇄들이 벨바의 손에서 풀어진다. 토끼 수인이 손을 뻗는다. 그녀의 손을 잡고서 한나가 벨바에게 기대어 품에 안긴다.

 

 

트라나는 복수를 위해 모든 수인들을 죽이려 한다.

타냐는 수인들의 세계에 살기 위해 방법을 모색하려 한다.

이나는 마녀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어 가족과 만나려 한다.

한나는 세계의 파멸을 이끄는 존재가 되었다.

 

네 명의 소녀가 서로 다른 맹세와 약속을 가지고서 새로운 세계의 끝으로 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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