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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뮤지컬 로봇이 23세기까지 살아남은 것에 대하여

 

 

1.

  감정가는.. 3400 달란트입니다. 말도 안 되다니요. 어떻게 이 가격이 나왔는지 궁금하신 건가요? 제가 왜 웃느냐고요? 제가 골동품 감정만 24년차입니다. 연배로만 보면 의뢰인하신 분보다 10년 정도 위에 불과하지만, 꽤 어린 나이에 이 일을 시작했고, 제 나이에 저만큼 평가받는 사람도 드물지요. 전 전문가 중에 전문가입니다. 아시다시피 저희 분야는 아직도 인공지능이 보조수단으로 사용되는 몇 안 되는 분야고요. 골동품판매는 물건이 사람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가 중요하단 의미입니다. 물론 처음이시라 이해가 어려우시겠죠.

  무려 21세기 후반 물건이죠. 알고 있어요. 200년 전 물건이라는 건. 여전히 잘 작동하고요. 저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보십시오. 죄송하지만 할머님의 유품이라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아요. 저희 집에도 제 할아버지가 남기신 나노신경 낚시기계가 있지만, 별 평가를 못 받습니다. 그건 그저 구식 장비에 불과하니까요. 자. 집중하십시오. 의뢰인이 맡기신 물건의 버튼을 눌러보겠습니다. 아. 성량도 좋고, 움직임도 힘이 넘치네요. 특히 이 음색은..

  제목이요? 20세기 빅히트작 ‘캐츠’의 ‘메모리’입니다. 하나 더 들어볼까요? 이건 ‘사랑은 비를 타고’란 뮤지컬영화의 ‘싱 인 더 레인’이란 노래에요. 비속에서 우산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죠. 명장면을 기막히게 따라하네요. 최상급 뮤지컬 로봇입니다! 끝내준다고요. 훌륭한 바디라인과 움직임. 어떻게 톱니바퀴의 연결만으로 저런 얼굴 근육의 작동을 만들어냈는지, 표정이 살아있죠? 정말 작품의 희열을 그대로 느끼는 것만 같아요. 인간과 똑같은 사이즈였을 경우 느껴질 거부감을 고려해 크기를 인체의 사분의 일 정도로 맞춘 것도 절묘한 느낌이고, 사람의 외양을 따르지 않고 기계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편안한 느낌의 증기기관 스타일 디자인 역시 일품이죠. 사실 저도 뮤지컬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보면 압니다. 훌륭한 성능을 지녔고, 보관상태도 최상급입니다! 이럴 수가. 정말 신이 나죠? 싱 인 더 레인~ 이야!

  정말 좋네요. 하루 종일 작동시키고 싶은 기분이에요. 사실은 어제 내내 이것만 쳐다봤지요. 17세기 조선도공이 남긴 백자가 들어왔지만, 전 이 기계가 노래하고 춤추는 것만 봤다고요. 무려 500년 이상을 흠 없이 보존된 도자기를 두고 저 뮤지컬 로봇을요. 하지만! 음.. 솔직히 말씀드려서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23세기입니다. 원하면 원하는 뮤지컬배우가 되는 가상현실에 접속하면 되고, 얼마든 춤과 노래에 특화된 유전형으로 사람 자체가 개량이 가능한데, 이런 로봇이 이제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긴 골동품 가게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다만 이 기계의 현재적 가치는 철저하게 골동품으로써만 판별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씀드렸을 뿐이에요. 예술작품으로 봐선 안 된다고요.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의뢰인들이 제 감정가에 설득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지금부턴 요점만 말씀드리죠. 예를 들어볼까요? 이 기계와 비슷한 시기에 잠시 유행했던 ‘로봇 펫’이란 제품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펫 산업이 유전공학의 영역으로 들어가면서 사양 산업이 됐습니다. 효용이 떨어진 거죠. 하지만 로봇 펫은 지금 골동품시장에서 엄청난 고평가를 받습니다. 어린 사내아이들이란 얼마나 잔인합니까? 워낙 함부로 취급받고, 사냥을 당하다보니 ‘로봇 펫’ 자체가 얼마 남지 않은 거예요. 게다가 실제 반려동물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 가벼운 소재를 쓴 덕에 특유의 통통거리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그게 뒤늦게 평가를 받은 거죠.

  그에 비해 이 뮤지컬기계는 상대적으로 많이 살아남았습니다. 제 동생도 하나 가지고 있어요. 요즘 유행하는 네오-고딕 메탈밴드인지 뭔지를 하는데.. 치기어린 자기 음악처럼 키치적인 것을 좋아하더군요. 목욕도 안 하는 놈이. 암튼.. 중요한 것은 뮤지컬 로봇은 로봇 고양이만큼 귀엽지 않다는 것이겠죠. 이건 반려생물로써 성격보다는 가사로봇의 변종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물론 여흥을 가사의 일부로 볼 것이냐는 따져볼 문제지만요. 어차피 집안에서만 쓰인 물건이잖아요. 가만히 두면, 장식품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 뮤지컬로봇을요? 글쎄요. 음.. 인형으로 보기엔 별로죠. 역시 뮤지컬 로봇은 뮤지컬 로봇답게 춤추고 노래해야 빛이 납니다. 버튼을 다시 눌러보죠.

 

2.

  궁금하실 겁니다. 그럼 왜 이렇게 높은 가격을 책정하게 되었는지요! 3400 달란트면 요즘도 번화가 집 한 채 값은 되죠? 이 흔한 뮤지컬로봇이 왜 이 가격을 받았을까? 이것 때문이에요. 의뢰인분도, 의뢰인의 할머님도 이것을 발견하지 못 했어요. 이 제품은 고려다이아몬드라는 회사의 한정 수량 판매 제품이었습니다. 이 기계의 왼쪽 눈을 보세요. 유난히 번들거리죠. 렌즈가 박혀있어서 그렇습니다. 예. 맞아요. 카메라가 내장되어있는 거예요. 춤추고 노래하면서 자길 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들을 찍는 거죠. 모를 수 있어요. 고려다이아몬드에서 일부러 숨겼거든요. 깜작이벤트로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는 이벤트를 기획했던 거죠. 하지만 아쉽게도 고려다이아몬드는 마지막 석유파동 때 도산합니다. 아. 단지 이것 때문에 고가로 평가 드린 것은 아닙니다. 일단 내장 카메라에 담긴 사람들의 수가 엄청나게 많아서 사료적 가치가 있더군요. 무려 삼천여명의 얼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사고, 판 주인들이 어지간히 사교적이었나 봅니다. 하긴 뮤지컬로봇이 어디 필요하겠어요. 명절이나 잔칫날 써먹는 거죠. 일단 이 로봇이 남긴 자료만으로도 200여년에 걸친 명절 복식사 자료가 대량 발굴된 셈이죠. 그 사진들을 보여드리죠. 모니터를 봐주세요. 일부러 필름느낌을 주는 필터를 사용했어요. 아. 그건 22세기 초까지 남아있던 벽지란 것인데, 그땐 벽에 무늬가 그려진 종이를 붙였어요. 벽이 자동으로 세척이나, 온도조절이 되지 않던 시대의 유물이죠. 관점이 독특하시네요.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을 보세요. 누군가는 우울하고, 누군가는 행복하죠.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렇게 훌륭한 뮤지컬 기계가 변함없이 작동하고 있는데도, 전 웃고, 의뢰인은 심각하시잖아요. 배경만 바뀌고, 우릴 둘러싼 기술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죠. 사람은 똑같아요. 저는 직업 특성상 화상대면보다는 직접 대면을 많이 해요. 물론 감정가가 불러질 물건을 사이에 두고요. 감정이 이렇게 생생하게 드러난 얼굴들을 본 것이 얼마만인지. 이 여자를 보세요. 요즘 사람들은 이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요? 선물이라도 받은 걸까요? 골동품이 높은 감정가라도 받은 걸까? 놀랍지 않으세요?

  아. 똑똑하시네요. 제가 잠시 딴 곳에 정신이 나가있었네요. 맞아요. 찍힌 사진이 가치가 있으면 사진만 따로 평가 받으면 되는데, 왜 이 기계가 값어치를 지니는가? 맞다. 우린 뮤지컬 로봇의 감정가 얘기를 하고 있었지? 사실.. 사진도 그렇게 값이 나가진 않습니다. 하. 잠시만.

  요즘도 교과서에 ‘22세기 혁명가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실려 있나요? ‘우린 과거문명과의 완벽한 단절을 꿈꾼다. 다시 인류를 생각할 때다!’라고 시작되는? 아. 대학입시에 나왔다고요. 하긴 명문이니까요. 여기 이 남자를 보세요. 이 사람이 그 글을 쓴 사람입니다. 22세기 대표적 극작가이자 중앙정부 혁파운동가였던 ‘세르게이 연’, 이 얼굴을 보신 적 있으신 가요? 움푹 펜 볼과 거친 헝클어진 머리에 턱수염. 짙은 눈썹 아래 깊은 눈. 딱 격동기 지식인이죠. 하하. 이 분 사진이 로봇 안에 왜 있냐고요? 당연히 뮤지컬 로봇의 소유자였으니까 그렇겠죠.

 

3.

  글쎄. 이분의 소유품이었다는 것만으로 가격이 오를까요? 흔하디흔한 뮤지컬로봇이? 아. 보관상태가 좋은 최상급이긴 합니다. 그건 인정해요. 화내지 마시길. 다만 우리 문학사의 미스터리가 아니었다면 이 로봇은 절대 3400 달란트는 받을 수 없을 거란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이 사진은 로봇에 저장된 세르게이 연의 마지막 사진이에요. 아니 아마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분의 마지막 기록일 겁니다. 근데 잘 보세요. 눈에 눈물이 맺혀 있잖아요. 무엇이 이 위대한 극작가를 울기 직전의 감정까지 가게 했을까요? 어떤 심정으로 뮤지컬 로봇을 작동시켰길래? 슬플 때 혁명가는 어떤 노래를 들었을까? 궁금하지 않으세요? ‘미스 사이공’의 ‘아이 스틸 빌리브’? ‘레미제라블’의 ‘아이 드림드 어 드림’? 다행히 이 로봇에는 자신이 플레이한 리스트가 파일형식으로 남아있어요. 제가 좀 집요하거든요. 자. 사진이 만들어진 시각은 2149년 4월 19일이네요. 그리고 그 시각 플레이시킨 노래는,, ‘사랑을 비를 타고’의 ‘싱 인 더 레인’이에요. 의외인가요? 어쨌든 전 한동안 이 노래를 계속 들을 것 같군요.

  2149년이면, 모든 화폐가 블록체인에 고정되는 신 브래튼우드 시스템이 주창되던 때죠. 중앙정부 혁파운동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기고요. 같은 해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자 신 미래파 극작의 최고로 꼽히는 ‘미래여, 화성으로’를 발표합니다. 그곳의 붉은 표면처럼 혁명의 불꽃이 처음 일어나던 화성식민지를 배경으로 신분이 다른 두 남녀가 공간이동장치를 불법 탑승해가며 사랑을 나누다 비극적으로 죽는다는 이야기죠. 지금 보면 너무 프로파간다 같지만,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설정이었어요. 위대한 극작가는 그 작품 초연날인 5월 18일 날 자택에서 병사합니다. 19세기 질병인 폐병이었습니다. 자살인 것이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날짜입니다. 초연 직전까지 글이 나오지 않아 모두 애를 태웠거든요. 그러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뮤지컬로봇을 작동시키며 눈물을 흘렀을 때는 자신의 최후의 걸작 ‘미래여, 화성으로’를 한창 집필 중이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겁니다. 이 사실이 왜 중요하냐고요? ‘미래여, 화성으로’는 마지막 합창의 마지막 네 마디 가사가 없어요. 그래서 그 부분은 그냥 허밍으로 처리한 상태로 초연을 하거든요. 하지만 작곡가를 비롯해 마지막 네 마디 가사를 봤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억측이 넘쳐나고요. 최고의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심리가 아직도 들끓는다고요. 물론 지금은 공연이라는 문화 자체가 없어졌지만, 예술은 영원하잖아요. 가상현실이 모든 것을 체험하게 하고.

  그 뮤지컬의 마지막 가사가 이 뮤지컬로봇하고 무슨 상관이냐고요. 세르게이가 자신의 연인 히로세 료코에게 합창의 마지막 부분 가사를 너와 나만 아는 장소에 써놓았고,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겠다고 적어 보낸 편지가 이번세기 초에 발견되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히로세 료코가 남긴 일기나 기록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혀 없기에, 아쉽게도 둘만 아는 장소에 관한 단서는 전혀 없는 상태죠. 그 부잣집 막내딸은 입이 무거웠거든.

  말씀드렸죠. 저는 어제 하루 종일 이 뮤지컬로봇을 작동시켰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뮤지컬 로봇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도 150년 이상 된 물건이었는데, 어린 시절 선물로 받은 것이죠. 아버지가 어린 시절 향수에 산 것인데, 저에게도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 오래된 뮤지컬 로봇을 버리지 못할까요? 왜 이 로봇은 모든 이에게 추억으로 남아 이렇게 많이 살아남은 걸까? 버튼을 눌러볼까요? 신이 납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시간을 기록하네요. 우리 두 사람의 얼굴도 찍혔겠죠? 오페라 유령의 ‘팬톰 오브 오페라’에요. 좋아하는 곡입니다. 잠시 이대로 두죠. 하하. 이 로봇에 가장 많이 찍힌 것은 세르게이 연과 히로세 료코 두 사람이에요. 둘은 자신들의 혁명이 끝이 나고 있음을 알았어요. 하지만 환희에 찬 작품을 남겨 동지들을 절망에서 구하고 싶어 했어요. ‘미래여, 화성으로’는 두 사람 자신의 이야기에요. 세르게이 연이 죽은 후, 히로세 료코는 화성행 로켓에서 일부러 몸을 분사시켜 자살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화성을 둘만의 장소로 생각하고 뒤졌지만,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어요.

  세르게이 연과 히로세 료코의 마지막 네 마디는 이대로 사라진 것일까요? 무려 100여 년간 최첨단의 기술이 두 사람의 발길이 닿은 모든 곳을 뒤졌는데 없었으니. 아. 노래가 멈췄군요. 좋아요. 저는 이제 남은 곳은 단 한군데라고 생각합니다. 이 뮤지컬로봇의 중앙접합부 뚜껑을 열면, 로봇 이름을 적어두는 조그만 쪽지가 있습니다. 고려다이아몬드가 나름 20세기 아날로그 스타일로 디테일한 기획을 한 것이죠. 이름을 적어두면, 버튼 대신 이름을 불러도 작동이 되도록요. 물론 그렇게까지 해서 거기 뭘 적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전 그곳이 세상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연인의 둘만의 장소. ‘미래여, 화성으로’의 마지막 네 마디가 적힌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힘겹고, 가난한 생활에 낭만이 머물 수 있는 휴식처! 부르주아의 예술이라 비판받던 뮤지컬로 혁명을 꿈꾸던 몽상가들에게 값싸게 현실을 잊게 해주던 긍정적인 친구! 입이 다물어지지 않으시죠? 제가 잘못 집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확인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초전도열차 비용까지 대가면서 의뢰인을 모신 것은 이런 이유입니다. 저는 이 기계를 분해할 권리까지는 없기 때문이죠. 같이 열어봅시다. 이 뮤지컬 로봇 안에 무엇이 있는지. 진짜 3400 달란트 가치가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쪽지에 무슨 말이 적혀있는지 확인해 보자고!

 

4.

  의뢰인이던 k는 거기서 그냥 뮤지컬로봇을 들고 골동품가게를 나왔다. 다방면에 빠삭한 그 노회한 감정가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일단 k는 22세기 극작가 ‘세르게이 연’의 직계 후손이었으며, 단순히 감정가를 높게 받기위해 그 골동품가게에 간 것은 아니란 점이다. 또 실제로 세르게이 연의 죽음에 관해 여러 소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는 히로세 료코의 낭만적인 자살 덕에 가려진 잡스런 이야기들도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끈질기게 돌던 소문은 이런 것이었다.

  세르게이는 그가 지닌 사상에 걸맞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고 애썼기에 그의 작품이 어떤 다른 작품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속상해했다. 때로 부당한 지적도 있었지만, 깊고 긴 서사의 역사상 예상치 못하게 닮는 것들도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영향 받은 작품에 대해서는 언제나 선선히 인정하고 존경을 표했지만, 그가 실수했을 수도 있는 대본도 있었다. 여성억압이 남아있던 시기를 배경으로 세 여성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내용의 대본이었는데, 지난 세기 거샜던 여성해방 담론을 끌어들여 자신들의 주장의 당위를 표현한 작품이었다. 뚜렷한 연출 포인트를 못 찾아 묻어둔 기획을 자율주행 자동차에 홀로그램센서를 연계하여 크게 돈을 번 한 재력가가 후원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세르게이는 그 재력가가 제안한 거대한 평원에 대규모 홀로그램 무대장치를 도입해보자는 아이디어와 그 이야기를 엮어보기로 한다. 그는 평소 좋아하던 스페이스 오페라를 뮤지컬로 만들어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우주모험서사 주인공의 직업으로 정신감응 대리운전사를 택했다. 그는 오래전 아는 후배가 쓴 정신감응 대리운전사가 된 카우보이가 지구표면을 유랑하는 내용의 대본을 읽은 기억이 잠깐 났지만, 직업만 같을 뿐 이야기는 전혀 다르기에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하고 넘겼다. 그리고 문제가 터져 나왔다. 마치 독지가처럼 세르게이의 작품에 호감을 표하던 투자자가 세르게이 몰래 정부기금을 투자금의 절반 넘게 끌어다온 것이다. 혁명가가 정부의 돈을 받다니. 이건 회유에 넘어가는 것 아닌가? 이미 극을 올리기도 전에 세르게이가 변절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당시 세르게이의 집에 놀러 왔던 그와 친분이 있던 배우 하나는 세르게이 연이 정부관계자를 만나기로 했다는 얘기를 세르게이 본인에게 직접 듣는다. 세르게이는 그 말단공무원은 그들의 작업에 호의적인 사람으로 정부 측 투자가 들어온 상황을 해결하려 가명서류작업을 해놨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그쪽이 먼저 만나자고 했고, 자신이 뭘 요구받거나, 요구한 적은 없다고 일관되게 해명했다. 이미 투자심사가 끝나 별 문제없을 테니 신경 쓰지 말란 말만 거듭 하더란 것이다. 최근 역사가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건 정부의 덫이었다. 세르게이는 프로젝트를 멈출 힘이 없었다. 이미 대여한 대지의 임대료와 대규모 무대장치들, 섭외된 배우들. 무대가 완성될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과 소문들. 여기 더해 깨진 창문에 돌이 날아들 듯 이번엔 욕망에 눈이 먼 세르게이가 자동차업계의 후원을 얻고자, 후배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썼다는 얘기가 나왔다. 세르게이 연은 억울했다. 정신감응 대리기사라는 직업이 아이디어로써 탐이 났다면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고, 전혀 별개의 빌드-업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라고 강변했다. 여성이 스페이스-드라이버가 될 만한 직업을 다 늘어놓고, 장단을 다 따져봤는데, 자연스러운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지, 대리운행시스템을 홍보해주려 급하게 넣은 것이 아니란 말이었다. 어쨌건 그 얘기들은 창작에 관련해서 사소한 양심도 지켜왔다는 그의 자부심에 큰 흠을 남겼다. 세르게이는 이중의 공격에 시달렸고, 여기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성격이상이, 침묵하면 수긍이, 차분히 설명하면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일단 소문부터 내는 사람은 당사자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소문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이 드러날까 제일 먼저 당사자를 공격한다. 그가 홀로그램장치를 완전히 배격한 마지막 대작을 준비할 무렵부터 이미 마지막 합창은 체제찬양의 내용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상황이었다. 물론 어떤 것도 당사자 말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k는 두려웠다. 세르게이 연이 활약하던 시대와 그가 발 딛고 있는 시대는 너무 멀고, 이해하기 힘든 면이 있었다. 혹시 소문이 사실이라면? 사라진 네 마디 가사가 세르게이가 정부에 투항하는 내용이라면? 그에게 소문처럼 욕망과 거짓으로 점철된 이면이 있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그저 억측할 뿐. 그 감정가 왼눈에 박힌 초정밀측정인공안구 역시 언제나 정확하진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여러 소문들을 알고 있으면서도 로봇을 열어보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그에게 진실은 무엇이든 상관이 없을 것이고, 결국 모든 것은 숫자로 수렴될 테니까. 열지 말아야할 진실도 있다. 그게 3400 달란트짜리 쪽지라도. k는 과거를 잊고 싶었고, 거리에는 차가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5

  우습게도 신 미래파의 거대한 홀로그램 무대장치 실험과 감신감응이란 설정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후일 가상체험의 영역으로 흡수되는 단초가 제공했다. 시대를 선도하고자 했고, 바꾸고자 했던 열정이 위대했던 한 예술을 인간의 작은 뇌 속에 종속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뮤지컬은 결국 흔하디흔한 뮤지컬 로봇들만을 유산으로 남긴 채 물질세계에서 사라졌다.

  k에게도 뮤지컬로봇이 각별하던 때가 있었다. 외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들을 항상 옆에서 같이 들어줬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화려했던 옛 시절 뮤지컬 얘기를 해줄 때마다 그는 그 로봇을 품에 꼭 안고 있었고, 그런 k를 그의 외할머니는 푸근히 안아주곤 했다. 그리고 얘기 말미에는 항상 뮤지컬로봇을 작동시켜 놓았다. k의 외할머니 히로세 료코는 비밀을 지닌 뮤지컬로봇과 세르게이의 아이를 배에 품고, 50년 전 냉동보존 장치에서 깨어났다. 그 뱃속의 아이가 지금은 저 세상에 계신 k의 어머니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신분이 세탁된 그녀의 메모리가 혹시 유출될까 가족이 제대로 된 치료를 포기하는 상황이 되자 외할머니가 집착하던 시끄러운 뮤지컬로봇은 악몽 같은 기억이 되었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도 끝까지 외할머니의 수발 들었지만.. 덕분에 아버지 세르게이에 대한 안 좋은 비밀도 여럿 듣게 된다. 과거라면 전혀 믿지 않을 얘기도 그리 당당한 멋이 있던 외할머니가 혼미한 정신이 될 때엔,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혁명도, 혁명가 가족의 생활도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긴 지금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저 어떤 말 못할 그리움과 연민의 대상으로 남았을 뿐. 화롯불 앞에서 춤추는 뮤지컬 로봇, 가족들 모두 웃으며 그 뮤지컬로봇을 보는 장면이 k의 남은 가장 가슴 깊은 기억이다. 다른 골동품 상점에 가보기로 결정하고, 낯선 처마 아래에 잠시 몸을 맡긴 k는 세르게이 연과 꼭 닮았던 그의 어머니가 항상 자장가 대신 흥얼거리던 음을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비가 와서인지 한참 어린 시절 기억인데도, 갑자기 가사가 선연하게 떠올라서였다. 실로 긴 시간을 건너 온 기억이었다. 그는 여전히 뮤지컬 로봇을 품에 안고 있었던 것이다.

  “추억의 값어치를, 춤과 노래의 흥을 홀로그램이 대신할 수 있을까?”

 

  품에 안은 뮤지컬 로봇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란 k는 얼른 로봇을 놔줬다. 쪽지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들은 로봇은 비오는 거리 한복판을 나풀거렸다. 거리를 걷던 모든 사람과 안드로이드들이 뮤지컬 로봇의 춤과 노래에 걸음을 멈췄다. 싱 인 더 레인~ 싱 인 더 레인~ 유쾌한 선율이 빗물이 유리창에 번지듯 조금씩 거리에 번지자, 이름 모를 인파들 틈에도 몰래몰래 작은 미소가 퍼져나갔다. k만이 그대로 몸이 굳어 내리는 비를 맞을 뿐이었다. 그저 제 심장에 박힌 네 마디의 호출에 춤사위를 벌이는 로봇을 잊었던 어린 시절처럼 바라본 채로. 싱 인 더 레인. 그리고 미래여. 화성으로. 그리고 그렇게 삶은 이어졌다. 누가 감정할 수 있을까? 추억의 값어치를, 춤과 노래의 흥을 홀로그램이 대신할 수 있을까? 뮤지컬이여.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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