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겨울에서>

 

아침 햇살이 반짝인다. 마사코는 눈가를 비볐다. 좁은 방과 쌓인 책들. 다리를 베고 누운 아이. 시간대가 바뀌지 않았다. 마사코는 돌아가지 않았다. 무언가 할 일이 남은 걸까. 바닥으로 팽개친 휴대전화를 집어 전원을 켰다. 보지도 않고 치워둔 간밤의 메시지가 허공으로 메아리 치고 있다. 

 

- 스바루가 기다리고 있어요.

 

마사코가 창으로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앉는다.  햇살이 온 얼굴에 흩뿌려진다. 삐빅. 새로운 메시지.

 

- 어제는 말이 심했어요.

- 죄송해요.

 

마사코는 전화 너머의 존재에게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아직 할 일이 남은 거야?

 

눈을 감고 있으면 다른 시간대로 이동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정말 바깥 세계는 정지해 있는 상태인 걸까.

 

- 스바루를 집으로 데려가야죠.

 

경찰서로 가야 할까?

 

- 그러셔도 되죠.

 

좋아.

 

마사코는 일어나 몸 주인의 방을 휘 둘러보았다. 냉장고는 없었고 부엌이 따로 있지도 않았다. 스바루를 깨워 등에 업는다. 좁은 방에서 나와 근처 식당으로 들어간다. 돈을 쓰면서 두 손을 모았다. 원래 주인에게 할 사과를 남기고 싶었지만 해괴한 일이라며 믿지도 않을 것이다. 잘 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짧은 고백을 마치고 마사코는 스바루와 함께 밥을 먹었다. 

 

집으로 가면 뭐할 거야?

 

몰라요.

 

엄마가 놀아주지는...

 

마사코는 말을 얼버무렸다.

 

아, 같이 놀 친구들은 없니?

 

네.

 

마사코는 저 스스로 민망하였다. 다 알고 있다. 그때의 자신이 스바루를 챙길 수 있는 상태가 아니란 것 즘은. 자주 집을 옮겼던 탓에 스바루가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것 즘은.

 

엄마가 꼭 밝아졌으면 좋겠다.

 

네.

 

스바루의 표정. 화사한 햇살 탓인지 아이의 얼굴이 환해 보였다.

 

그럼 스바루는 엄마랑 뭐 하고 싶어?

 

음.

 

무얼 하고 싶어 했을까. 그때의 스바루는 대체 어떤 가정을 꿈꾸었을까. 어떤 집을 꿈꾸었을까. 아이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대답을 놓았다. 그 말들이 마사코에게는 너무도 아픈 것들이었다.

 

엄마랑 같이 밥 먹고 싶어요.

같이 잠자고 싶어요.

같이 목욕도 하고

같이 공원에도 가고 싶어요.

 

그것보다 더 좋은 게 없을까?

 

전 그걸로도 충분해요.

 

정말?

 

응.

 

마사코와 스바루는 집으로 돌아갔다. 거리를 걷는 그들에게 순경이 다가와 묻는다.

 

실례합니다만 이 근처에서 유괴 사건이 일어나서요.

 

스바루가 마사코를 올려다본다. 마사코는 숨기지 않았다.

 

이 아이에요. 제가 데리고 나왔어요.

 

순경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마사코는 순순히 자수하였다. 정말 원래 몸 주인에게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순경을 따라 경찰서로 들어간다. 순경의 전화 몇 통과 신분 확인. 순경이 아이의 아파트로 간다. 마사코가 물었다.

 

아이 엄마는 오지 않는 건가요?

 

그러니까 확인하러 가는 겁니다.

 

툴툴대는 순경이 자리를 뜨고 마사코는 스바루와 조용히 시간을 세었다. 어린이 프로그램의 노래. 언젠가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였던 노래 몇 곡. 그리고 호숫가에서 김을 불며 내었던 노래. 마사코도 띄엄띄엄 따라 불렀다.

 

차원을 넘어 시공간으로 -

우주특급 전대 우리는 영웅 -

무서울 것이 없는 무적의 영웅 -

 

같은 구절들이 쉼 없이 반복한다. 아이가 알고 있는 구절만이 돌림노래가 되어 경찰서를 채운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난로 위로 놓아둔 주전자에서 쉰 소리가 힘차게 뿜어져 나온다. 아이가 웃으며 노래를 부른다. 마사코가 장난치듯 가사를 바꾸어 부른다.

 

차원을 넘어 시공간으로 -

우주특급 전대 스바루는 영웅 -

무서울 것이 없는 우주의 영웅 -

 

스바루도 지지 않겠다는 듯 큰 목소리로 가사를 바꾸어 부른다. 노래가 엉망진창이 되어 겨울을 데운다. 스바루와 마사코의 얼굴을 닮은 우주 영웅이 세상으로 내리는 눈 사이를 날고 있다.

 

드르륵.

 

경찰서의 문이 열린다. 초점 없는 눈동자. 축 처진 어깨. 늘어진 입술. 사시사철 입고 있었을 검은 옷. 마사코가 순경에게 끌려 오듯 경찰서로 들어 온다. 마사코는 일어나 모자 사이를 비켜주었다. 순경이 경찰서로 막 들어온 마사코의 신분을 확인하며 질문을 던졌다. 마사코는 어떤 대답도 말하지 않는다. 가족관계가 증명이 되고 나서야 순경은 모자를 경찰서에서 풀어주었다. 마사코의 손에 이끌려 아이가 돌아간다. 눈이 내리고 있었고 시야가 멀었다. 금방 이라도 지워질 듯 눈바람으로 아이가 떨어진다.

 

신고는 아이의 엄마가 했나요?

 

어쩌면 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마사코는 혹시나 하였다. 혹시나, 혹시나.

 

아니요, 주민 분들이 신고하셨습니다.

아이의 어머님 되시는 분은 모르고 계셨던 것 같고요.

 

눈으로 거리가 회색이 되었다. 하얗게 물들기까지 마을은 밤도 낮도 아닌 색에 갇혀 있어야 한다. 겨울은 고요한 계절이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얼어붙은 채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야 하니까.

 

- 이제 가요, 마사코 씨.

 

마사코가 눈을 감는다. 알지만, 다 알고 있지만. 마사코는 스스로 견뎌 내 보기로 하였다. 잔뜩 얼어붙은 겨울의 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진다.

매미소리가 들려 온다.

 

 

 

<끝여름에서>

 

문이 열린다. 스바루는 뒷걸음질 치며 부딪히지 않게 몸을 기울여야 했다. 문에서 나온 상대도 깜짝 놀란 듯 짧게 비명을 질렀다.

 

어맛!

 

주름이 잡힌 여인. 하늘하늘한 원피스 위로 점퍼를 입은 여인이 스바루를 보며 말하였다.

 

괜찮아요?

 

스바루는 금방 사과를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미코가 황당하다는 듯 실소를 흘린다. 스바루가 발간 뺨을 내놓고서 모른 척 고개를 휘 돌렸다.

 

저기로 가봐요.

 

그래, 가보자.

 

스바루의 옛집 근처에 있는 구멍가게 하나. 문은 닫은 상태이다. 나무로 된 벽은 오래되어 썩었는지 판자이 덧붙여져 있고 유리에는 금이 가 있다. 보기에도 문을 열 것 같지는 않았다. 미코가 허리에 손을 짚는다. 

 

어때?

 

모르겠어요.

 

맥이 빠지는 대답이다. 미코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다음 장소로 가자!

 

두 사람은 공원으로 갔다. 공원의 호수에도 가보고 안쪽으로 들어가야 볼 수 있는 분수대도 가보았다. 스바루는 그 어느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립다거나 좋았다거나, 슬프다거나 하는 감정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영원히 알 수 없는 걸까.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스바루는 풀 수 없는 난제를 만난 것 같았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미코는 스바루의 표정을 흘깃 쳐다보고는 무심히 말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병원에서 대화한 사람은 누구야?

 

봇이요.

 

봇?

 

스바루와 미코는 공원의 벤치로 가 앉았다. 가을바람이 일었다. 여름이 간다. 

 

네. 그 사이트에는 일대일로 대화할 수 있는 로봇이 있어요.

뭐, 원래는 딱딱하고 똑같은 대화 밖에 할 수 없었지만요.

 

미코는 병원에서 소년을 대신해 주고받았던 대화를 떠올렸다. 로봇이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행복이라니, 행복해지잖느니.

 

로봇이었어?

 

네. 그런데 로봇 같지가 않았어요.

 

맞아. 확실히 로봇은 아니야.

 

그 봇은 자신을 천사라고 불러 달라고 했어요.

 

천사?

 

말도 안되죠?

 

이상한 봇이네.

 

스바루가 다리를 휘적휘적 흔들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참 이상하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사이트에 들어갔어요.

막상 들어가고 보니 진짜 사람이랑

대화하는 게 덜컥 겁이 났죠.

 

스바루는 봇이랑 대화하는 방을 만들어 저 혼자 말을 하였다. 봇이 할 줄 아는 말은 간단한 대답 뿐이라 줄곧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잔뜩 써서 보냈었다. 그리던 어느 날, 봇이 새로운 메시지를 남겼다. 대답만 할 수 있던 봇이 먼저 보낸 글귀는 이제껏 보아왔던 말들과 달랐다.

 

'행복해 지고 싶니?'

 

속는 셈 치고 답장을 보냈어요.

 

뭐라고?

 

그래, 라고요.

 

봇은 자신을 천사라고 소개하고는 기다려 달라 하였다. 행복을 찾아 줄 테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으라고. 봇이 정말 천사였는지, 누군가의 짖궂은 장난이었는지. 누군가 해킹을 해 사기를 칠 목적의 수상한 접근이었는지. 이제는 알 길이 없다. 그리고 엄마가 사라졌다. 엄마가 사라지면 내가 행복해 질 거라고 생각한 걸까. 스바루는 신발 끝을 바라보았다. 찝찝하다. 유쾌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메시지는 더 보내봤어?

 

아니요.

 

다시 그 사이트를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애초 부 터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누군가 해킹을 한 것이 분명했다. 천사라는 것이 있을 리가. 스바루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지금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러게.

 

미코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비라도 내리려는 걸까. 구름이 가득 껴있다. 이 아이는 무엇을 찾고 싶어 하는 걸까.

 

그래서 이 장소들을 찾으면서 무얼 느끼고 싶은 거야?

 

저요. 제 자신이요.

 

스바루가 미코를 똑바로 쳐다 본다.

 

엄마가 제 생각을 했었다는 그런 증거요.

 

그것참 어렵네.

 

미코는 기지개를 폈다. 정말 이상한 여행이다. 미코는 늘 그렇듯 있는 그대로 말을 하였다.

 

그런 건 엄마에게 물어 봐야지.

 

그렇죠.

 

스바루는 금방 고개를 떨구었다. 미코는 뒤늦게 스바루를 달래려 소년의 등을 밀었다.

 

자자, 축 처져 있을 시간이 어디 있어.

다음 장소로 가야지.

 

스바루의 목소리는 힘을 잃은 채 비실대었다.

 

갈 장소가 더 떠오르지는 않아요.

엄마랑 있던 기억은 좋은 게 없거든요.

적어도 아빠가 있었던 때라면.

 

미코는 스바루를 강제로 일으켜 등을 때렸다.

 

그럴 수록 더 열심히 찾아야지!

 

두 사람은 처음의 공장으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공원의 입구로 나이 든 여자가 보인다. 무거운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서 힘겹게 걷고 있다. 원피스 위의 점퍼. 스바루와 부딪힐 뻔했던 여인이다. 미코와 스바루가 여인에게로 간다. 짐을 하나씩 나눠 들고서 여인의 집까지 옮겨다 준다.

 

고마워서 어쩌나.

 

미코가 손사래를 쳤고 스바루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들어와서 차나 한잔 해요.

 

두 사람이 거절할 틈도 없이 여인은 두 사람의 손을 잡고 끌었다.

 

혼자 살아서 하루 내내 심심하답니다.

 

여인은 금방 주전자를 데워 차를 내온다. 호지차가 담긴 찻잔에는 투박한 꽃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남매인가 봐요.

 

미코는 어색하게 웃으며 넘어갔다. 스바루는 혀를 빼며 열을 식혔다. 차가 너무 뜨거웠다.

 

저도 당신네들만 한 아이가 있죠.

한 명은 오사카에 있고,

또 한 명은 해외에 있죠.

 

여인이 즐겁게 말을 재잘거렸고 스바루와 미코는 잠잠이 여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여인이 창을 본다.

 

아유, 옛날 그 부부도 아이를 낳았으면 딱 당신네들만 했을 텐데.

 

어떤 부부인데요?

 

미코는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주려 맞장구를 쳤다.

 

아시는지 모르겠네.

옛날에 이 마을 기차역에서 사고가 났어요.

남편 분이 상을 당하셨지요.

 

스바루의 얼굴이 굳는다. 미코는 침착하게 대화를 풀어 보였다.

 

혹시 아내 분의 이름이 마사코였나요?

 

네 맞아요. 그랬죠. 그립네요.

 

스바루가 긴장을 한 탓인지 손에 들린 찻잔이 흔들거렸다. 미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집에 아이도 있지 않았나요?

 

아니요.

 

여인의 다음 말. 예기치 못한 그녀의 대답. 미코는 채 말이 시작되기 전에 스바루의 귀를 막아주지 못하였다. 태엽이 돌아간다. 과거로 소년이 돌아간다.

 

그 집 아이는 없었어요.

스바루라고 그냥 아는 아이라고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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