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내가 사는 곳은 경기도 삼송동에 있는 블랙홀 오피스텔이다. 삼송동 변두리에 지어진 오래된 오피스텔. 마을버스조차 오지 않아서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가야하는 곳이다. 어째서 이런 외진 곳에 오피스텔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한 나는 알바를 하게 되었고 높아지는 월세에 점점 서울에서 밀려나 이곳 삼송동까지 오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매물을 보고 처음 이 건물을 찾아왔을 때의 느낌은 솔직히 말하면 좋지 않았다. 건물에 가까워질수록 모든 것이 음침하고 검게 변해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변의 나무들도 앙상하게 말라붙어 마치 수많은 손들이 땅속에서 뻗어 나와 건물을 할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괴이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내가 블랙홀 오피스텔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월세가 터무니없이 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억누르며 계약을 해버리고만 것이다.

내가 입주한 615호는 복도 끝에 있는 집이다. 복도 끝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문 앞을 지나다닐 걱정 없이 마음껏 문을 열어 놓을 수 있는 정말 좋은 위치이다. 물론 이제는 문을 절대 열어놓지 않긴 하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지방에 계신 부모님에게는 비밀이다. 부모님은 내가 서울의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줄 알고 계신다. 집주인이 월세를 갑자기 올리지만 않았어도 최소한 서울에서 살기는 했을 텐데. 그렇다. 나는 어떻게든 서울에서 버텼어야했다. 이곳 블랙홀 오피스텔이 어떤 곳인지 알았다면 말이다.

이상한 일은 입주를 한지 몇 주 후부터 일어났다. 늦은 밤 알바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즉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가운데 위치한 608호와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에서 내린 나는 낡고 어두운 복도를 따라 조용히 걷고 있었다. 복도의 한편으로는 창이 나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칠이 벗겨지고 온갖 독촉 고지서가 붙어있는 문들이 늘어서 있었다. 문들은 저마다 다른 디자인이거나 색이 달랐는데 아마도 오랜 세월동안 제각각 리모델링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게다가 복도를 걸을 때면 종종 숨을 참곤 했는데 벽의 갈라진 틈으로부터 이상한 썩은 냄새가 배어나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문 앞에 도착하는 시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복도 끝에 살다 보니 이런 단점이 있구나!’라고 피식 웃으며 말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같은 일이 되풀이되었다. 분명 기분 탓으로 돌리기엔 체감시간이 너무 길었다. 길어봤자 30초도 안될 거리가 2분, 3분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한 가지 묘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체감시간이 늘어나는 날이면 언제나 601호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반대편 복도 끝에 있는 601호의 문이 열려있을 때마다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었다. 601호를 찾아가 볼까 생각도 했었지만 막상 찾아가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어 그만두기로 했다. 게다가 칙칙하게 변색된 복도 끝에 문이 반쯤 열려 있는 모습은 정말 음산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그쪽을 쳐다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이상한 우연의 일치가 계속되자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경비아저씨를 찾아가기로 했다. 물어보면 뭐라도 알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경비실은 지하 주차장에 있었는데 차가 없었던 나에게 지하주차장은 관심 밖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나는 한동안 지상에서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하 주차장을 생각해냈고 혹시나 하며 내려가 봤더니 바로 거기에 경비실이 있었던 것이다. 경비실은 지하 주차장의 가장 구석진 곳에 있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것인지 주차장 역시 어두웠고 어딘가에서 자꾸만 알 수 없는 소음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다른 세상에 들어온 것 같아 무서워졌다. 빠른 걸음으로 어두컴컴한 곳을 가로질러 경비실에 노크를 하고 들어간 순간,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우선 엄청난 악취에 숨이 막혔다. 경비실은 청소를 거의 하지 않은 듯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고 벽은 곰팡이로 검게 변해 있었다.

 

“저기요, 615호인데요, 물어볼게 있어서요.”

 

뚱뚱한 나머지 터지기 직전의 근무복을 입은 경비아저씨는 반응이 없었다. 아저씨는 험악한 얼굴로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적어대느라 정신이 없었고, 땀을 얼마나 많이 흘리는지 몸에서 버터가 흘러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경비아저씨를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저기 615호 인데요. 궁금한 게 있어서 여쭤 보려고요. 601호말이에요, 혹시 누가 사는 지 알 수 있을까요?”

                  

그러자 아저씨가 넋이 나간 듯 대답을 했다.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듯 뭔가를 휘갈겨 쓰면서 말이다.

 

“6층...... 살아. 그렇지, 6층에...... 거기 살지, 601호. 살고 있어.”

 

“네? 죄송하지만 누가 사나요?”

 

경비아저씨는 대답 대신 정신 나간 사람처럼 뭔가를 중얼거리고만 있었다. 이 사람이 정말 경비가 맞나? 도대체 이 오피스텔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나는 역겨운 공간에서 빨리 나가고 싶었다. 곰팡이가 핀 벽에 둘러싸여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한테까지 곰팡이 포자가 달라붙는 것 같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긴 601호에 누가 사는지 안다고 뭘 할 수 있겠나 싶었다. 몇 번을 물어보아도 이해할 수 없는 말만 하기에 결국 포기하고 나가려는데 그때 경비아저씨가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내뱉었다.

 

“누르지 마, 초인종.”

 

며칠 후, 경비아저씨의 기이한 한마디로 인해 오히려 호기심이 자극된 나는 601호 앞에 섰다. 알바를 쉬는 날, 간만에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601호의 문이 닫힌 것을 보고 문 앞까지 와 본 것이다. 나는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문에 귀를 대보았다. 누군가 집에 있다면 보통은 티비나 라디오를 켜놓았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외출했을 수도 있고, 자고 있을 수도 있다. 초인종이나 한번 눌러볼까? 갑자기 누가 나오면 뭐라고 하지?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천천히 초인종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때 갑자기 602호에서 어떤 아저씨가 튀어나오면서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황급히 손을 거두었고 아저씨는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뭐야, 놀랐잖아. 601호 살아요? 당신이 주인이에요?”

 

“아, 아니요.”

 

“그래요? 가족? 친구?”

 

“아뇨, 저는 615호에 사는데요. 그러니깐 그게.......”

 

나는 ‘복도를 걸을 때마다 이상하게 시간이 오래 걸려서 따지러 왔어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장바구니에 축 늘어진 대파만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아저씨는 나에게 별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601호 때문에 화가 많이 나있었다.   

 

“아, 그래요? 미안해요. 제가 몇 달 전에 이사를 왔는데 601호 때문에 아주 미치겠어요. 조용하다가도 어느 때는 갑자기 쿵쿵거리고 악을 쓰고 말이죠. 도대체 왜 그러는지.”

 

그 얘기에 나는 얼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요? 누가 사는데요?”

 

“보통은 빈 집인 것 같은데, 어떤 때는 아저씨, 아줌마, 애들 소리까지 들리기도 하고 말이에요.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싸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저 집에서 사람이 들락거리는 걸 본 적이 없단 말이에요.”

 

“한번 찾아가서 얘기해보지 그래요? 이왕 온 김에 저도 같이 있을 테니까 얘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과감하게 초인종을 누르는 거죠.”

 

나는 초인종이란 말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씩 웃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놀랐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지 알지 못했다. 이 세상에는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정말 이런 짓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장난을 치고 싶었을 뿐이다. 집집마다 붙어 있는 초인종이,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존재의 심각한 위기를 불러온다는 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어쨌든 나는 속으로 심술궂은 미소를 지으며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저씨에게서 뜻밖의 반응이 돌아왔다.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이었다.

 

“그, 그게 그러고는 싶은데...... 문이 가끔 열려 있기도 해요. 그런데 그때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랄까...... 아무튼 좀 그래요.”

 

문 뒤에 반쯤 숨은 채 얘기하던 아저씨는 문을 닫고는 황급히 벗어나려 했다. 나는 아저씨를 붙잡으며 따지듯이 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601호에 가보신 거예요?”

 

질문을 받는 순간 아저씨가 멈칫했다. 지금도 그 순간 아저씨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공허하게 대답하던 모습을.    

 

“전에 문이 열려 있을 때 따지러 갔다가 안을 살짝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었어요. 집이 비었다는 게 아니라...... 암흑이었어요. 완전한 암흑.”

 

이상한 말을 남긴 채 아저씨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버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601호를 바라보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기분이 이상해진 나는 밥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섰고 무심결에 복도를 둘러보다 문득 이상한 점을 알게 되었다. 601호에 가까워질수록 벽 여기저기에 손자국, 발자국이 많아지고 있었다. 심지어 천장에까지 손자국이 있었고 손톱으로 긁은 듯 길게 끌린 흔적까지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난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601호의 문이 열리지나 않을까 연신 뒤를 돌아보며 말이다.

이후 한동안 별 일 없이 지내긴 했지만 불안은 점점 더해갔다. 암흑뿐이었다는 602호 아저씨의 마지막 한마디가 머릿속에 박혔는지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마다 601호 쪽을 보며 문이 열렸는지 확인하게 되었고, 어쩌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방으로 들어간 날에는 밤새도록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늦은 밤 귀가를 하고 있었고, 어둡고 냄새나는 복도를 걸을 생각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좀 달랐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순간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601호 쪽을 돌아보니 복도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나오라고! 도대체 왜 이렇게 시끄러워! 누가 사는지 얼굴이나 좀 보자!"

 

얼마 전 얘기를 나눴던 602호 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온갖 욕설과 함께 쉴 새 없이 601호의 벨을 눌러대고 있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아저씨를 말려야할지 잠시 고민했지만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물론 601호에 누가 사는지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긴 했지만 다툼에 휘말리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고는 함께 601호에 쳐들어가자고 소리를 지를까봐 얼른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나까지 소동의 주역으로 오인하게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 맥주와 과자로 가득 찬 비닐봉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최대한 빠른 속도로 걸었다. 하지만 활짝 열린 두 귀는 소란스러움에 집중하며 혹시라도 문 열리는 소리가 나지는 않는지,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하지는 않는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 내가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가며 601호 쪽을 흘깃 보았을 때도 아저씨는 여전히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술을 마시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복도에서의 소동을 잊기 위해 시끌벅적한 액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웅장한 사운드가 방을 휘감으며 주인공들이 난리를 피웠지만 정작 나는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602호 아저씨가 과연 601호 사람을 만났을지 자꾸만 신경이 쓰여 영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지로 영화를 보며 급하게 맥주 3캔을 들이키고 4번째 캔을 따는 순간, 갑자기 인터폰이 울렸다. 나는 불안감을 느끼며 벌떡 일어섰다. 인터폰 화면을 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망설였다. 문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아무도 없는 척 하고 싶었지만 어쩌면 영화소리가 너무 커서 항의하러온 옆집사람인지도 몰랐다.

나는 결국 문을 열기로 했다. 호기심이 이긴 것이다. 그리고 현관으로 걸어가 과감하게 문을 연 순간, 나는 아주 놀라운 것과 마주치고 말았다. 허공에 떠 있는 눈알 두개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것은 겁에 질린 듯 제각기 사방으로 눈을 굴리고 있었고 그 뒤로 길게 늘어난 얼굴, 팔, 다리, 손가락이 허공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해야겠다. 그건 분명 602호 아저씨였고 아저씨는 치즈처럼 수십 미터 늘어나 복도전체에 걸쳐 부유하듯 떠 있었던 것이다. 허공 속의 눈알 역시 길게 짜부라지며 제 모습을 잃어가고 있었고, 아저씨의 팔, 다리, 얼굴 모두 길게 늘어나 수 미터 늘어나 있었다. "웨......그어아......" 아저씨는 뒤틀어진 입으로 뭔가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괴이한 신음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실처럼 나풀거리는 손가락은 벽과 천장을 애처롭게 긁어 대며 알 수 없는 힘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저씨의 발끝이 601호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601호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아저씨의 몸이 서서히 집안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마치 길게 늘어진 콧물을 천천히 들이키는 것 같았다.

나는 어쩔 줄 모른 채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혹시라도 움직인다면 601호의 힘이 나까지 덮쳐버릴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생각이 폭주했다. 아저씨는 초인종을 눌렀어. 분명히 그것 때문이겠지? 경비 아저씨의 말이 옳았어. 그런데 나는 여기에 이렇게 계속 있어도 괜찮은 걸까? 내가 몸을 반쯤 복도에 내놓은 채 얼어붙은 사이, 아저씨의 몸 대부분이 빨려 들어갔다. 해초줄기처럼 흐느적대던 아저씨는 마침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실오라기가 되어 601호 안으로 사라졌고, 순식간에 문이 닫혔다.

 

*

 

"으악!"

다음날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흥건하게 땀에 젖은 몸을 일으키다가 나는 순간 비틀거렸다. 두통이 심하게 찾아온 것이다. 겨우 맥주 4캔에 숙취라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겨우 이 정도에 숙취가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내가 어제 상당히 피곤했었나보다 생각하며 가스레인지에 라면 물을 올렸다.

잠시 후 라면 물이 끓으며 냄비 밖으로 물이 튀기 시작했지만 나는 소파에 앉아 어젯밤 일을 생각하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어젯밤 그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실제로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분명히 그 일을 목격했다. 하지만 문을 닫고 침대에 누운 기억은 없다. 애초에 술에 취해 해롱거리다가 침대에 누워 잠들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이 꿈이란 말인가? 나의 머릿속은 두통과 혼란으로 가득 찼고 생각하면 할수록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도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있었다. 방안을 비추는 햇빛마저 위화감이 들 정도로 갑자기 이 건물이 낯설게 느껴졌다. 앙상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이 건물에서, 사람이라고는 거의 마주친 적이 없는 이 오피스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나는 일단 602호로 가보기로 했다. 직접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다.

602호의 벨을 눌러보았지만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주말 점심이니까 벌써 외출했는지도 모른다. 불안감은 해소될 길이 없었고 나는 그저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무의미하게 몇 번 더 벨을 눌러보다가 나중에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지나치게 상냥한 목소리가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아, 615호 청년?"

 

경비 아저씨가 나를 부른 것이었다. 일전에 경비실에서 봤을 때, 횡설수설하던 것을 기억한다면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이 있었다. 예전의 버터에 젖은 듯한 모습과 달리 아주 깨끗하고 멀쩡했던 것이다. 뚱뚱한 몸은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경비 아저씨는 상냥하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왔다.

 

"602호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네, 602호 아저씨가 어젯밤에 술 취해서 복도에서 소란을 피우던 걸 봤는데요, 잘 들어가셨나 궁금해서요. 출퇴근 하다가 마주치면서 좀 친해졌거든요."

 

나는 602호와 친분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안 그러면 이 상황을 어떻게 납득시킨단 말인가. 경비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어젯밤에 소란이 있긴 있었죠. 602호 분이 601호에서 나는 소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나 봐요."

 

"그럼 어떻게 됐는지 아시겠네요? 601호 분과 얘기가 잘 됐나요?"

 

허겁지겁 묻는 나의 질문에 경비아저씨가 웃으며 대답했다.

 

"아유, 그럼요. 얘기가 잘 돼서 좋게 끝이 났죠. 이웃끼리 서로 배려하는 거니까요."

 

잘 끝났다고? 역시 내가 꿈을 꾼 걸까? 하지만 나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취해 한참 동안 문을 발로 차고 욕을 해대는데 이렇게 조용하게 끝났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에 잠겨 있는데 경비 아저씨가 내 표정을 읽었는지 놀랍게도 답을 해주었다.

 

"실은 아까 전에 602호 분이 601호로 찾아갔어요. 어젯밤에 난리친 게 미안해서 사과하러 간다고 말이에요. 물론, 601호 분도 잘못한 게 있으니까 서로 사과하고 대화로 잘 풀고. 그러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602호 아저씨가 601호에 있다는 건가요?"

 

네, 그래요. 한번 확인해보시던지요."

 

확인해보라는 경비아저씨의 말투에 순간 비웃는 듯한 감정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 바람에 오기가 생긴 나는 601호에 가보기로 했다. 물론 벨을 누를 생각은 없었고 단지 반발심에 걸음을 옮긴 것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을 고백한다. 게다가 경비아저씨가 얘기 중에 소름끼치게도 눈이 살짝 뒤집히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런 바보짓을 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정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 이상함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말았다.

그리고 내 인생을 뒤바꾼 아주 우스꽝스럽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내가 601호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뒤에 있던 경비아저씨도 함께 움직이면서 그 거대하게 부푼 배로 나를 들이받은 것이다. 두통으로 어지러웠던 나는 황망하게 앞으로 튕겨나가 넘어지다 그만 601호의 벨을 누르고 말았다. 허우적대느라 벨을 누른 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무릎을 짚고 일어서며 경비아저씨에게 화를 냈다.

 

"아, 조심하셔야죠. 넘어졌......"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무도 없었다. 경비아저씨가 없어진 것이다. 복도는 음침했고 텅 비어 있었다. 문득 익숙한 멜로디가 귀에 들어왔다. 그렇다. 나는 601호의 벨을 누른 것이었다.

 

*

 

  진즉에 이사를 했어야 했다. 그동안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어서 이 집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바보같이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운명이 아직 내 편이었을 때 빠져나와야 했다. 애초에 이렇게 불길하며 터무니없이 값이 싼 월세를 붙잡는 것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자들이 달콤하고 손쉬운 미끼에 걸려드는 법이다. 바로 나 같은 인간 말이다.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제는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615호 내 집에 도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벌써 한 달이 넘도록 집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악에 바쳐 내달리고 있었지만 달팽이보다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한참 걸렸다.

다시 한 번 얘기를 하자면 이렇다. 나는 경비 아저씨 때문에 벨을 누르게 되었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601호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불길한 기분에 사로잡힌 나는  이 지긋지긋한 건물을 빠져나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우선 필요한 짐만 챙겨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PC방 같은 곳에서 머물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이 모든 일들이 착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기가 막히게 불행한 타이밍들이 겹치고 겹쳐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존재하고 있었다. 약간만 사태를 외면한다면 모든 것이 알아서 지나갈 것이고 나는 다시 아늑한 침대에 몸을 던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안이한 생각조차 제대로 해 볼 겨를도 없이, 더러운 복도에서 가장 허름한 옷차림으로 나는 최후의 순간을 맞게 되었다.     

넘어지며 벨을 누른 601호에서 아무 반응이 없자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다가 집을 향해 후다닥 걷기 시작했다. 거치적거리는 슬리퍼 소리가 날카롭게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608호, 그러니까 엘리베이터를 막 지나쳤을 때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철커덕. 601호의 문이 열린 것이다. 등 뒤로 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지만 그것이 601호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뛰기 시작했다. 한 손으로는 카드키를 꺼내기 위해 허겁지겁 주머니 속을 뒤지며 말이다.

다음 순간, 촛불을 불어 끄듯 갑자기 소리가 사라졌다. 헐떡이는 나의 숨소리, 시끄럽게 울리는 슬리퍼 소리, 주머니 속에서 짤그랑 거리는 열쇠고리 소리까지 모두 사라졌다. 그제야 뒤를 돌아본 나는 601호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고, 더욱 절박하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곧바로 진공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시간이 급격하게 느려진 것이다. 나는 무릎이 시큰거리도록 땅을 박차고 있었지만 그 동작을 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집을 향해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고 속도는 계속해서 느려지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공포가 지루함으로 바뀌다가 다시 분노로 변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아마 602호 아저씨 역시 나와 같은 일을 당했을 것이다. 실제로는 몇 분 동안 일어난 일이었지만 601호의 덫에 걸린 아저씨에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

 

눈앞에 문손잡이가 보인다. 집에 거의 도착한 셈이다. 여기에 오기까지 도대체 몇 달이 걸린 것일까. 나는 수 주일의 시간 끝에 주머니 속에서 카드키를 꺼내는데 성공했고 이제는 문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시간이 전보다 더 느려졌기 때문에 최소 두 달 이상 걸릴 것 같았다. 또한 지난 시간 동안 이 사태를 빠져나갈 다른 방법이 없는지 생각해보았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주변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몇 주 씩 걸렸기 때문이었다. 중간에 다른 집에 도움을 요청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벨을 누르고 기다리는 동안 수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고 만약 그 집에 아무도 없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다. 602호 아저씨처럼 언제 빨려 들어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집으로 가는 것이다. 예전에 복도에서 시간이 길게 느껴지곤 했을 때도 언제나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움직임이 가뿐해졌기 때문이다. 601호의 이상한 작용은 오직 복도에서만 통한다는 것, 나는 그 한 가지에 희망을 걸고 이 진절머리 나는 슬로우 모션을 견뎌왔던 것이다.

다시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미쳐버릴 것 같다. 이제 조금만 더 움직이면 된다. 카드키와 문과의 거리가 불과 몇 센티 안 남았다. 나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움직이기 위해 온힘을 다해 팔을 뻗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발! 수 주일에 걸쳐 눈을 부릅뜨면서 카드키가 도어 록에 닿기만을 고대했다. 그런데 갑자기 복도가 아득하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카드키는 순식간에 다시 거리가 벌어졌고 복도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게 늘어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감각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개월 동안 얼굴을 간지럽혔던 땀방울의 느낌, 카드키를 잡고 있던 손가락의 촉감, 발톱이 빠지도록 땅을 박차던 발가락의 아픔까지 모두 사라졌다. 나는 실패한 것이다. 이 지옥 같은 상황을 빠져나가지 못한 것이다. 운이 나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정된 일인지도 몰랐다. 601호에 도사리고 있을 악마가 잠시 게임을 즐겼던 것이다. 나는 인간이 발을 들여서는 안 될 영역에 감히 발을 들인 것이고, 우주가 혹은 신이 지구에 놓아둔 한 조각 어둠 앞에서 장바구니를 들고 설쳐댔다. 나는 이제 끝장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압도적으로 내 몸을 덮쳐오는 어둠에 기이한 황홀함마저 느꼈다.

조명이 꺼지듯 서서히 시야가 사라지고 있었다. 생각도 말도 멈춰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내 몸이 허공에 떠오르며 길게 늘어나는 것을 보았고, 어느새 이쑤시개처럼 가늘어진 손가락에서 카드키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제 일어날 일은 하나뿐이다. 나는 601호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긴 시간에 걸쳐 지나쳤던 문들이 순식간에 다시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잠시 후 주변이 완벽하게 어두워졌고, 마지막으로 저 멀리 601호의 문이 닫히며 빛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렇게 이곳에 속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끝-

 

해수

박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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