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12월 마사코 씨의 귀가>

 

마사코는 아이가 갔을 길들을 따라 아파트 단지로 달려갔다. 기억이 희미하다. 내가 어디에서 살았더라. 마사코는 아무 문이나 두드려 보았다.

 

무슨 일이신가요?

 

낯선 여자의 목소리. 말들이 튀어나온다. 

 

혹시 어린 남자애랑 같이 사는 여자 못 보셨나요?

 

모르겠네요.

 

툭. 끊어지는 통화. 마사코는 어림짐작으로 층을 올라 아무 호수로 초인종을 눌러 대었다. 그런 소란을 누군가는 반기지 않았을 터였다.

 

당신 누군데 아무 집이나 눌러대!

 

화가 난 목소리. 남자 하나가 마사코를 손가락질하며 고함친다. 복도로 고개들이 나온다. 모두 마사코를 보고 있다. 아파트 단지의 사람들이 한밤중의 소란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게.

 

버벅대는 말. 멀리로 경비원을 부르는 사람들. 변명을 해야 하지만 입이 얼어붙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되지. 작은 몸 하나가 사람들의 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아이의 얼굴. 마사코는 아이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 몸을 숙였다. 아이는 뒷걸음질 쳤고 마사코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스바루, 이모야.

집 호수를 잊어 버렸지 뭐니.

 

사람들의 의아한 표정들. 경비원이 마사코에게로 다가온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게, 이모인데 스바루네 집 호수를 까먹어서요.

 

경비원이 집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눈을 몇 번 굴리고는 한 마디를 툭 던졌다.

 

다음부턴 전화라도 하세요.

 

크흠. 경비원은 기침을 하며 뒷짐을 지었다. 마사코는 허리를 숙여 사과하였고 소란은 금세 조용해졌다. 마사코가 집으로 들어간다. 6여 년 전. 그녀의 집. 그녀의 도피처. 그가 떠나고 마사코에게는 조용한 집과 침묵만이 전부였다. 

 

엄마.

 

스바루가 엄마에게로 간다. 그런 소란이 있었는데도 그녀는 눈 하나 돌리지 않았다. 창으로 몸을 기울고 어깨가 늘어져 있다. 마사코는 그 여자에게서 스바루를 떼어냈다. 아이는 겁을 먹은 눈치였지만 엄마는 아이를 보지 않았다.

 

스바루.

 

마사코는 마사코에게서 떨어져 스바루의 팔을 붙잡았다.

 

나와 같이 살자.

 

아이가 눈을 바로 맞추지 못한다. 아이는 마사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창으로 댄 고개는 먼 하늘만을 보고 있었고 마사코는 스바루의 허리를 품으로 들어 올렸다.

 

엄마!

엄마!

엄마!

 

아이가 울부짖는다. 아파트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간다. 부부 하나가 위 층을 올려다보며 마사코를 가리킨다. 고함을 지르던 남자가 밖을 건너다본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단지 내로 가득 울려 퍼진다. 마사코의 걸음이 빨라진다. 경비원이 마사코를 불러 세우며 달려온다. 누군가 붙잡을까, 마사코는 내달리듯 단지를 빠져나온다. 달리고 달린다. 

 

엄마!

 

괜찮아. 내가 잘하면 돼.

 

엄마!

 

이제부터 라도 잘 키우면 돼. 밥도 잘 먹이고 옷도 잘 입히고 대화도 많이 하고. 

 

엄마!

 

그러면 돼, 그러면 돼. 내가 잘 키우면 돼. 

 

엄마!

 

나도 마사코니까. 내가 마사코니까. 내가 마사코여야 하니까.

 

엄마!

 

삐빅.

 

마사코는 자신이 쾌활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은 그저 매력 없고 친근하지도 않는 음침한 아줌마일 뿐이니까. 그녀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시간여행을 기회라고 생각하였다. 화목한 가정과 단란한 집. 지금이라도 만들면 된다. 어차피 조용한 아파트에 숨죽인 저 여자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니까.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여자이니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니까. 그때의 마사코란 그런 사람이니까.

 

어깨가 흠뻑 젖어있다. 울음을 다 울어 흐느끼는 남자애를 안고 있다. 호숫가에서 처음 만난 여자가 남의 집으로 침입해 아이를 납치하였다. 어떻게 보아도 마사코는 범죄자였다. 뒤로 자신을 좇는 달음질이 들려오는 것 같다. 마사코는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 쉬고 내뱉는다.

 

삐빅.

 

휴대전화를 열고 메시지를 확인한다.

 

- 그만 돌아가요 마사코 씨.

 

화면을 닫는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마사코는 보도를 건넜다. 스바루가 살던 자신의 옛 아파트로 부 터 멀리, 멀리 도망쳐 나온다. 

크로스 백안의 물건들을 뒤졌다. 지갑과 열쇠고리, 책들과 이력서 몇 장. 마사코는 이력서에 적힌 주소를 확인한다. 몸 주인의 집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삼거리에서 패스트푸드 가게와 목욕탕을 차례로 지난다. 상가들을 벗어나 주택들이 모여있는 거리로 들어간다. 주소를 따라간 곳에는 허름하고 좁아 보이는 건물이 있었다. 열쇠에 새겨진 호수로 문을 밀고 들어가 불을 켰다. 백열등이 깜빡인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밝은 등 아래에는 몸을 누울 수 있을 정도의 공간만이 밝혀져 있다. 어려운 한자가 빼곡한 책들이 쌓여 있고 복잡한 문제들이 찍힌 시험지들이 발에 밟혔다. 마사코는 스바루를 바닥으로 내려 놓으며 이불을 폈다. 

혼자 지쳐 새근거리는 아이는 눈을 감고 편히 누워 있다. 마사코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잘못되었다는 건 알아.

 

나도 알아, 안다고.

 

그래도 잘해 보고 싶어.

 

그 애가 뛰어내리기 전에

 

내가 막아줄 수도 있는 거잖아.

 

삐빅.

 

짧은 대답. 글자들과 문장 하나.

 

- 미래는 바꿀 수 없어요.

 

마사코는 목소리를 최대한 죽이려 애를 썼다.

 

넌 바꿀 수 있잖아.

 

- 안 돼요.

 

시간여행도 가능하니까. 미래쯤이야 별거 아니잖아.

 

- 불가능해요.

 

너라면 가능하잖아. 너라면, 너라면!

 

- 마사코 씨. 그만 돌아가야 해요.

 

절대 안 돼.

 

- 스바루 군이 기다리고 있어요.

 

스바루라면 여기 있어.

 

- 정말요, 마사코 씨?

 

내가 있을 곳은 여기야. 지금부터라도 잘하면 되잖아.

지금부터라도 잘 보살피면 되잖아.

 

- 저기 있는 마사코 씨는 내버려 두시게요?

 

어차피 신경도 안 쓸거야. 방치나 할 거라고.

 

- 맞아요. 마사코 씨.

- 마사코 씨는 스바루를 방치나 하였지요.

 

마사코의 손으로 휴대전화가 꽉 쥐어지고 그녀의 팔이 거칠게 올라간다. 집어 던질 듯 빛이 허공에서 반짝인다.

숨이 밭는다. 어디로 흘러야 할지 몰라 아무 바닥으로 흩어진다. 마사코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술을 물었다. 

 

삐빅.

 

메시지가 오지만 보지 않는다. 바닥으로 휴대전화가 나뒹군다. 마사코는 다리를 모았다. 지금부터 라면, 시간을 되돌려 얻은 이 기회라면 그 아이를 살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아이를 보살피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스바루는. 마사코는 방향을 잃고 만다. 마사코는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였다. 어디로 가야 할 지 그녀 자신도 몰랐다.

 

저기.

 

아이. 12살짜리 남자애. 어린 스바루.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길을 잃고 헤메는 마사코와 달리 어린 스바루는 자신이 돌아갈 곳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마사코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집으로 가고 싶니?

 

네.

 

그렇게 무관심한데도.

 

네.

 

엄마가 좋니?

 

마사코는 말을 하면서도 두려워 떨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귀를 막을까도 하였다. 무서웠다. 

 

네. 좋아요.

 

마사코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른다. 어디로 흘러야 할 지 모른다. 스바루의 곁으로 다가가 꼭 껴안는다. 함께 벽으로 기대어 밤을 보았다. 다른 누군가가 된 마사코는 스바루의 옆이 낯설었다. 다른 누군가의 손으로 감싼 스바루의 손이 낯설었다. 온통 낯선 남자아이에게로 마사코는 말하였다.

 

스바루, 왜 엄마가 좋니?

 

아이는 고심을 하는 듯 눈을 굴리었다.

 

엄마니까.

 

정말 좋니?

 

네.

 

그럼 행복하지 않아도 돼?

 

네.

 

행복하지 않으면 괴로운데도?

 

괜찮아요. 나랑 엄마면 되요.

 

밖으로 경광등 빛깔이 어지럽게 반짝인다. 바람이 부는 듯 창이 흔들거린다. 낯선 방과 낯선 몸 때문에 마사코는 스바루가 낯설었다. 그래, 익숙하지 않은 방과 몸 때문에. 분명 그것들 때문에.

 

집으로 보내줄 거죠?

 

마사코는 눈을 감았다.

 

그럼. 그럼. 이번 밤만 자고 일어나면 보내줄게.

그럼. 그럼. 이번 밤만 지나면 엄마에게 보내줄게.

그럼. 그럼.

스바루를 엄마에게 돌려 보내줄게.

 

안지도 않았다. 함께 붙들어 울지도 않았다. 낮에 만난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스바루가 그토록이나 익숙하지 않아 마사코는 함부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손만을 꼭 붙잡고 머리를 기대었다. 눈을 감으면 아침이 온다.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온다. 밝아오는 해로 아이는 집으로 간다. 마사코도 집으로 간다.

 

엄마에게 갈 거지?

 

아이는 작게 숨을 고르고 있다. 팔로 기대어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다. 스바루를 알지만 다가가지 않는다.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한 아이가 집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아이의 엄마는 창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경광등이 꺼지지도 않고서 요란하게 밤하늘을 지우고 있다. 

 

오로롱 오로롱 오로롱바이

오로롱 오로롱 바바노마고

 

아이는 엄마에게로 간다. 만남과 헤어짐에 무감각해진 사람에게로 아이는 간다. 마사코도 집으로 간다. 끊어질 듯 휘청이는 곳이라도 마사코는 간다. 

 

내가 죽거든 길가에 묻어주오

지나는 비가 꽃을 던져줄 것이니

 

아이가 가듯 마사코도 가려 한다. 눈을 감는다.

 

 

<스바루의 집>

 

미코와 스바루는 동네의 큰 직물 공장으로 갔다. 공책에서 아무렇게나 찢은 종이를 들고서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미코는 소년의 방법이 탐탁지 않았다. 종이 한 면에 적혀진 몇 개의 장소. 장소랄 것도 없는 추상적인 어떤 곳들. 스바루는 동네의 골목 어귀들을 돌고 큰 길가로 나와 고개를 들기도 하였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낡고 커 보이는 공장이었다. 

 

여기가 맞는 거야?

 

그게.

 

미코는 스바루의 종이를 뺏어 들고는 공장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로 말을 붙였다. 미코와 남자가 말을 주고받고는 멀리로 손을 뻗는다. 미코가 뛰어온다.

 

저기로 가면 있을 거래.

 

'개나리가 잔뜩 핀 공장.'

 

미코가 앞장서 걷는다. 대뜸 아침부터 문을 두드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던 스바루. 그 남자아이가 내민 것은 아무리 봐도 한 번에 찾아갈 수 있을 곳이 아니었다. 온통 알 수 없는 말만 끄적인 글들. 미코의 어리둥절한 모습에 스바루는 고개를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사진에서 본 장소들. 미코가 묻는다. 어떤 사진. 소년의 대답.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던 곳. 감상적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찾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미코는 스바루를 데리고 돈가스를 한 상 가득 주문하였다. 많이 걷기 위해서는 많이 먹어둬야 한다. 쉬운 길은 아니다. 얼마나 많이 걸릴 지 모르겠다. 미코도 영원히 이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스바루의 손을 잡고 힘차게 앞으로 끈다. 서두르면 될 일도 안된다지만 다녀야 할 곳이 많다.

 

여기는 어때?

 

미코가 이끈 곳. 여름이 끝나가는 8월의 끄트머리에서 개나리를 볼 수도 없지만 사진을 직접 들고 있던 것도 아닌 스바루는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스바루가 찬찬히 주위를 둘러본다. 물푸레나무들이 옆으로 기울어진 담장으로 공장이 세워진 장소. 사진 속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스바루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다른 곳으로 가봐요.

 

미코는 허리에 손을 짚으며 연신 발을 굴렀지만 스바루에게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좋아 가자.

 

다음 장소는 '낡은 구멍가게 같은 곳' 미코는 속으로 암담함을 느꼈지만 스바루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진지했었다. 이 아이는 진심이구나. 종아리가 아프지만 스바루의 걸음에 뒤처지지 않으려 다리를 놀린다. 오래되어 보이는 단층의 아파트와 색이 바랜 간판들. 스바루는 어릴 적 살던 집을 바라보고 섰다. 

 

제가 살던 집이에요.

 

미코가 머리를 꺾으며 길가를 살폈다. 어디에 봐도 구멍가게라곤 한 곳 뿐이었다. 

 

저기로 가면 뭐가 생각날 것 같니?

 

스바루는 이끌리듯 아파트의 계단을 올랐다. 아주 어릴 적이라 잊었다고 생각했던 곳이다. 스바루는 돌아가듯 어느 호수의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스바루?

 

지금 자신이 서있는 문이 어릴 적 그곳이었는지 알 수 없다. 기억의 구석 어디인가로 치워진 잡동사니들이 다가온다. 스바루가 5살이 되던 해에 기차가 한 남자를 덮으면서 부 터 집은 그 남자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밖에서 밤늦게 까지 놀고 있어도 자신을 찾지 않던 엄마. 아무리 기다려도 문이 열리지 않던 곳. 그곳에서 스바루는 엄마랑 겨울을 났다. 스바루가 기억으로 태엽을 감자 돌아가듯 소년이 선 과거의 문이 열린다.

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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