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母子>

 

미코는 눈치를 보았다. 여인은 소리가 나지 않게 찻잔을 내려 놓았다. 소리가 나지 않는다. 말들이 멈춰 움직이지 않는다. 

 

그 부부는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사고가 났으니까.

걱정이 되어서 찾아가 보았죠.

 

차분히 입을 여는 스바루의 어릴 적 이웃은 추억거리들을 꺼내듯 그리워하였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전까지는 누가 살았는지도 몰랐어요.

부끄럽지만요.

 

미코는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았다. 어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불편했고 신경이 쓰였다. 자신의 옆에 앉은 남자아이가. 불운하고 슬픈 과거를 가진 저 아이가. 얼른 다른 곳으로 데리고 가 단 것이라도 잔뜩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그럼 이제 그만.

 

저기.

 

스바루가 입을 연다. 그가 내민 첫 말이 미코는 두려웠다. 혹여 누군가를 원망하는 그런 말이라도 할까 봐. 저 인자해 보이는 여자분께 어떤 실례되는 말을 할까. 그럼에도 미코는 스바루를 말리지 않았다. 혹시나, 혹시나.

 

그 부부에 대해서 아는 게 있나요?

 

아내 분이 무척 상심해 하셨죠.

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여인이 보고 있는 곳으로 미코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으로 어떤 대답이 있을 것 같았다. 흐린 구름들로 낮게 울음소리가 들린다.

 

남편 되시는 분에 대해선 아는 게 없어요.

 

여인의 얼굴. 티 없이 맑고 온화한 그녀의 말들이 소년에게 닿았을까. 닿았다면 어떤 말들로 닿았을까. 스바루가 묻는다. 미코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성장기의 남자아이는 언제나 돌발 행위를 할 수 있으니까. 겁이 났다.

 

그 외에 아는 건 없나요?

 

네, 없네요.

 

여인은 짧게 대답하였다. 스바루가 몸을 일으킨다. 미코는 여인과 스바루 사이로 다리를 펴 손을 허우적거렸다. 

 

감사했습니다.

 

소년이 등을 진다. 등을 져 문으로 향한다.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미코는 지레짐작하였다. 여행은 계속되지 못하였다. 시간을 달리는 소년의 다리가 맥이 빠져 비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미코는 고민에 빠졌다. 어떤 위로를 해야 할까. 등이나 세게 때려 정신을 번뜩 차리게 해주어야 할까.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소년이 유영하는 곳으로 자신은 자맥질이나 할 수나 있을까. 어쩌면 저 혼자 깊은 곳으로 잠기는 게 아닐까. 미코는 성큼성큼 스바루를 따라잡았다. 그의 손목을 잡고 과자를 잔뜩 사는 것이다. 과자들을 입안 가득 씹으며 안 좋은 일은 훌훌 털어버리자. 목욕도 좋다. 뜨거운 물에 몸을 녹이면 불행도 함께 녹아 없어질 테니까.

 

아, 하나 아는 게 있네요.

 

여인이 밖으로 나가려는 두 사람을 붙잡았다.

 

아내 분이 우리 마을 역을 참 좋아하였어요.

매일 그곳으로 산책을 갔었답니다.

 

스바루가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계단을 내려간다. 미코도 서둘러 인사를 건네고 그를 뒤따라갔다. 

 

어디로 가게?

 

역이요.

 

가서 뭐하게?

 

모르겠어요.

 

이상한 생각하는 건 아니지?

 

스바루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간다. 미코는 소년의 곁으로 달려가 손목을 잡아 세웠다. 

 

말해줘. 이상한 행동하지 않기로.

 

소년이 대답한다.

 

안 해요. 그런 거.

 

그래, 하지마 그런 거.

 

미코는 묵묵히 소년을 따라갔다. 그가 가려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저었다. 깊은 곳으로 빠지지 않게. 그럼에 그녀는 알고 있었다. 결국 헤엄 치는 것은 소년이라는 것을. 빠진다 하더라도 결국 소년이라는 것을. 미코는 두 손을 쥐었다. 그녀의 걸음이 크고 활강하듯 넓어진다. 금방이라도 날듯이 소년의 뒤를 따라간다.

스바루는 오와히라 역으로 멈춰 선다. 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과 나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언젠가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되뇌어보았다. 신이시여 제 소원은. 들어줄 리 없는 뻔한 미신을 스바루는 습관처럼 입으로 소리를 내어 불러 보았다. 혹여 누군가 들었을까. 스바루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하염없이 서 있었다.

 

 

 

<子母>

 

마사코는 여름을 살갗으로 느꼈다.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볕을 받는다. 메시지. 마사코는 숨을 들이 쉬었다.

 

- 이제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걷는다. 똑바로 눈을 뜬다. 마사코는 주눅 들지 않았다. 자신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 아이인지 늙은 어른인지. 그 무엇이었던지 그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다. 말해주고 싶다. 그녀는 자신이 빌었던 소원을 보기 좋게 구겨 하늘로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스바루는?

 

- 곧 만나실 거예요.

 

내려 간다. 가게들을 지나고 공터를 지난다. 그녀의 다리가 세차게 바람을 가른다. 가슴으로 공기가 부풀어 오른다. 말해주고 싶다. 길을 내달리며 마사코는 소리 질렀다.

 

진짜 소원을 빌래.

 

- 얼마든지요.

 

내 진짜 소원은 스바루에게 말하는 거야.

정말 미안하고 미안했다고.

 

달리는 바람으로 마사코의 몸이 붕 떠오른다. 잔뜩 부푸는 옷감 밖으로 바람들이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그리고 그 아이가 무얼 하든지 이해할 거야.

그 아이가 날 떠난다고 해도

 

날아가듯. 비행하듯. 내리막길로 날아보지 못했던 새가 막 날갯짓을 하듯.

 

난 다 이해할 거야.

내 진짜 소원은 스바루에게 말하는 거야.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고 있다. 자전거를 모는 그 아이는 다가오는 차량을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차가 그를 덮치려 한다. 마사코는 다리를 한껏 벌려 힘껏 소년에게로 몸을 굴렸다. 그녀의 몸이 소년이 탄 자전거와 부딪힌다. 자동차가 경적을 울리며 빠르게 지나가고 소년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넘어져 있다. 마사코는 몸을 벌떡 일으켜 손을 뻗었다. 소년이 마사코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마사코는 소년을 바라보며 크게 외치었다.

 

난 괜찮아!

 

스바루가 뒷걸음질 친다. 어색하게 고개를 숙이며 서둘러 자전거를 몰았다. 상점가의 유리로 그녀의 모습이 비친다. 세일러복과 치마. 짧은 단발에 씐 분홍색 머리띠. 어린 여학생이 된 마사코는 몸을 둘러보았다. 무릎이 까지고 양팔에 멍이 들어 있다. 

 

아얏.

 

- 잘 하셨어요.

 

이제 다 된 거야?

 

- 네, 마사코 씨.

 

스바루를 태운 자전거는 금방 멀어졌다. 무릎을 어루만지며 마사코는 하늘로 허리를 죽 폈다. 하고 싶은 말은 정했다. 그 아이가 어떤 선택을 해도 그녀는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마사코는 눈을 감았다. 삐빅. 마사코는 휴대전화를 열었다. 

 

- 스바루군에게 가지 않습니까?

 

가야지.

 

- 그렇군요. 그렇죠.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 흔들리고 삐걱거려도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자.

 

- 무섭지는 않으신가요?

 

무서워.

 

- 용기를 내신 거군요.

 

마사코는 스바루가 넘어간 도로를 향해 선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꼭 전해야 할 말이 있으니까.

 

- 마사코 씨.

 

응?

 

- 새로 빈 소원이 훨씬 멋있군요.

 

응.

 

돌아가자. 돌아가자 나의 계절아. 나의 시간들아. 나의 파도들아. 부수고 깨져왔던 것들이 나를 반기는 곳으로. 이제는 흐르고 흘러가자. 내가 마땅히 품어야 하는 곳으로. 마사코는 소원을 빌었다. 스바루에게 말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솔직하게 내 마음을 전할 수 있게 해주세요. 

 

난 괜찮으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렴.

언제든 너를 기다릴 테니까.

 

시간들이 마사코에게로 모여든다. 마지막 여행이 끝났다. 그리고 마사코 씨의 여행이 새로운 장을 열려 한다. 그녀는 그 새로운 장의 시작을 반갑게 맞이하고 싶었다. 그 이가 원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을까. 그녀가 감은 눈을 뜬다. 시간들을 넘어 마사코가 눈을 뜬다.

그녀는 오와히라 역에 남아있었다. 저녁노을이 지는 철도 옆으로 남자 하나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그 이. 나의 가을. 경찰도 없고 사고 경위도 없었던 저녁의 사이로 마사코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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