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복잡한 열의

2020.10.27 14:4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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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미안하다고 말할 용의는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무도 모르게만 하면, 그렇게 하면 누군가 상처받을 일도, 내가 사과해야 할 일도 없을 테니까. 사람은 항상 들었다 난 자리에 무언갈 남기고 간다. 체취, 머리털과 다른 몸에서 나 있다가 떨어져 나온 짧고 굵은 털들, 아무리 사라진 그 열기를 보존하려고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도 그 사람이 아니면 복구되지 않는 기묘한 온도, 홀로 거울을 바라볼 때 느껴지는 고독함, 굳게 닫힌 화장실에서 제 몸을 툭툭 털며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부끄러워하는 당신의 잔상들. 나는 내가 사랑했던 자들의 잔상과 기억에 더 많은 애정을 느낀다. 가끔은 짐승같이 끓던 성애적인 감정들과 그것을 내가 지배할 수 있다는 믿음과 동시에 그리움의 해소에 영원히 가닿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커지는 공허함에 이상토록 전율하고 또 절망한다. 눈물짓고 저주한다. 나는 복잡한 열의 속에 잠겨 또 누군가를 부른다. 

 

친구는 말했다. 우리의 첫사랑은 모두 이미지라고. 어쩌면 그렇기에 영원히 미안할 거라고도 말했다. 우리는 한 번도 그 대상을 직접 사랑해본 적이 없어서, 평생을 이미지로만 소비하며 그에 가장 가까운 또다른 존재들을 찾아갈 것이라는 저주섞인 운명을 말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굳이 알리지 않겠노라고, 내 감정과 생각을. 

 

한때 정말 사랑했던 이가 있었지. 매번 나보다 저만치 앞선 사람이었어. 아무도 호버보드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때, 강물 위를 위태롭게 날아다니는 사람 중 하나였지. 오직 철교를 통해서만 멀리 떨어진 육지들을 오고갈 수 있는 자동차와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나는 아무런 고민도 하지 않고 내 한달 월급의 삼분지 이를 차지하는 그 호버보드의 값을 치렀어. 그리고 고작 한달 동안 그걸 타고 돌아다녔어. 나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결국 그 사람한테는 호버보드를 타고 같이 돌아다니자는 말도 해보지 못했어. 지금은 그 기계 덩어리가 어디 갔는지도 몰라. 

 

나는 친구에게 고백했다. 

지금 그는 더 이상 내게 첫사랑도 아니고 흥미로운 존재도 아니야. 내가 그 사람 앞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을 따라잡고서 같은 보폭으로 걷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거든. 똑같아졌어. 어쩌면 원래부터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을지도 몰라. 내가 너무 무색무취였기 때문에 반걸음 앞선 그 사람을 사랑했던 걸지도 몰라. 그러니까 나는 정말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이 알려 하지도 않았고 사랑이라는 말이 뭔지도 몰랐던 거지. 친구는 말했다. 그치만 그 사람이 없었으면 네가 좇는 이미지도 없었겠지. 

 

비가 오는 날엔 귀만 예민해지는 것이 아니라 후각도 꽤 잠에서 깨게 된다. 눈만 조금 흐리멍덩해진다는 점이 마음에 꼭 든다. 잠시만 눈을 감아도 다른 감각들이 더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바를 잘 구현해주니까 말이다. 얼마 전에 기계를 하나 샀다. ‘그리워하는 무언가를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상품이었다.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건 아니고 사물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수집 및 삽입에 관련한 기술을 가진, 단순한 여흥용이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까. 그러니까 이건 소모품인데 세트 용품으로 하나를 사면, 사람 주먹크기만한 모뎀 장치 하나와 내가 하루동안 느낀 감정과 그리워하는 것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소형 칩이 담긴 알약 365개가 함께 동봉된다. 구매자는 매일 아침 그 알약을 삼킨다. 그럼 그 알약이 체내에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모두 모아 모뎀 공유기로 전송한다. 나의 기억 정보, 음식물을 소화시킬 때 일어나는 에너지, 뇌에서 전달하는 전기 신호 같은 것들을. 그리고는 장이나 뭐 어디 부근에서 소화되는 모양이지. 배변활동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라니까.

 

어쨌든 그렇게 약 30일 정도가 지나면 유의미한 정보들이 쌓인다고 한다. 이용자는 그 정보들 중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취사선택해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그게 사람이나 동물일 수도 있고 무생물일 수도 있겠다. 30일을 넘게 복용하며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게 둘 수도 있다. 그럼 내가 원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상은 훨씬 명확하고 뚜렷해지겠지. 선택된 정보의 모음들은 제품을 직접 제작하는 일명 ‘도자기 기사’들에게 보내지는데, 그들이 특수한 찰흙을 주물럭거리고 가마에 넣어서 적당한 온도로 구워내고 나면, 며칠 내로 구매자의 집 앞에 원하던 그 ‘무언가’가 배송되는 것이다. 웃긴 건, 그렇게 배송된 제품들은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다. 제품들마다 각각 다르지만 사람이나 동물을 본뜬 인형들은 대부분 15일 정도의 기한을 가진다고. 그럼 어떻게 되는데? 그냥 연기처럼 사라지는 건가? 평점이 5점만점에 4.9점을 달리고 있는 이 서비스에 아무도 리뷰를 달아 놓지 않았기에 나는 고객센터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죽는 건가요? 아니, 그러니까 그냥 기능이 정지되는 건가요? 아니면 연기처럼 사라져요? 물처럼 녹아버리나요? 사후처리에 대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나는 장마가 시작되던 어느 후텁지근한 여름 밤에, 그 제품을 주문했다. 선풍기가 달달거리며 돌아가던 단칸방에 수감자처럼 웅크려있던 나는 요란히 울리던 배송알람 때문에 잠에서 깨었다. 아파트 배송함에 고이 모셔진 택배 상자를 가지고 들어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며 설명서를 읽었다. 반드시 알약을 물이랑 먹어야한다는 사항은 없길래, 어젯밤에 먹다 남은 김빠진 콜라와 함께 들이켰다. 아침에 먹으라고 하긴 했지만 내가 눈을 지금 뜬 걸 어떡해. 비가 내리는 어둑하고 눅눅한 저녁일수록 기억은 더 잘 떠오른다. 그러니까 뭐, 더 효과가 있겠지. 공유기에서 알람이 뜬다. 정보를 수집중이란다. 그리곤 어설프게 웃음 짓는 이모티콘이 도트 모양으로 나타났다. 이거, 생각보다 싱거울지도 모르겠다. 내가 지금 그리워하는 게 뭘까. 어제는 누구랑 잤더라. 모르겠다. 지하철에서 오래도록 마주하던 사람이던가. 머핀을 먹던 와중에 주문번호를 헷갈려 나랑 메뉴가 바뀐 사람이었나. 혼재된 기억 속 강렬함은 많고 그리움은 없다. 애초에 기계가 그리움을 솎아낸다는 것 자체가 신빙성이 없는 것 같다. 이 기계를 구매하는 데 배송비 포함해서 삼십만원 정도 냈는데, 나도 요새 내 인생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이런 것에 돈이나 쓰고. 일도 없는데.

 

하릴없이 매일 쓰러지듯 잠들고 도끼에 의해 쪼개지는 듯한 머리를 안고 일어나는 날이 반복됨에도 언제나 꿈은 생생하다. 어제는 그런 꿈을 꿨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철교를 달려가는 그 사람의 뒷꽁무니를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쫓는. 그리움이 아닌 이상하고 복잡한 절박함과 열의를 가진 작은 생물이 되는 꿈을.

 

 

 

*

비가 내리면 가끔 연락이 오는 사람이 있었다. 데이트 어플에서 만난 사람인데, 몇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충동적이었지만 가볍지도 않았고 매너도 좋았다. 오늘 아침, 끼니를 떼우고 화장실에 앉아서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나서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 설마 내가 그 사람을 그리워하나? 적어도 잠자리는 아니겠지. 나는 그 사람과 나눈 대화가 좋았다. 부던히도 자신을 무해한 사람이라고 말하던 사람. 그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경계심에 날이 서지만, 새까맣고 둥그런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어쩐지 복잡한 애정이 잠깐 끓는 냄비처럼 올라오곤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볼 걸 그랬나? 괜한 생각이다. 

 

그런 사람도 있었다. 나는 부러 머리를 빡빡 민 남자에 대한 아주 위험하고도 보편적이라 할 수 있을만한 편견이 있는데, 마침 그 어플에서 아주 잘생긴 대머리를 보고 호감을 표시했다. 내가 가진 편견이란, 그런 외모를 한 사람일수록 괜시리 더 ‘섹시해보인다’는 것이었고 ‘예술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까’하는 것들인데, 이건 동양인 남성에 한한 이미지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 대머리는 자기를 아티스트라고, 아니 정확히는 ‘음악을 한다’고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때?’ 라는 느낌으로 씩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멍청해보이긴 한다.

 

그치만 그 때는 그 인간의 자신감이 부럽고 멋졌다. 채팅 상으로 몇 번 말을 주고받다가 그 대머릴 집 근처에서 만났고 술을 마셨다. 만나서 나눈 대화가 크게 흥미로웠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취기가 올라, 자기 배를 까서 문신 자랑을 하던 순간은 아직도 생각날 정도로 크게 웃었던 것 같다. 자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별로였고 동생 같이 느껴져서 거부했다. 그렇지만 그날 밤에 우리 집에 들이지 않았던 것을 조금은 후회했다. 언젠가부터 서로 헐떡이고 헐떡거리는 일들에 특별한 짜릿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지만, 옆자리에 누군가 없으면 이상한 외로움이 몰려와 잠에 들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머리의 감촉은 문득문득 그리워할 것 같다. 그러나 그 대머리의 주인은 별로 보고싶지 않을 것이다. 병인가? 아니면 그저 욕구불만인건지. 

 

오늘치 알약을 꿀꺽 삼켰다. 오늘 아침으로 딱 삼십번째 복용이었다. 그간 이 조그만 아몬드처럼 생긴 녀석이 대체 내 하잘 것 없는 뱃속에서 어떤 정보를 긁어모았을지 은근히 기대가 되기도 했다. 애초에 그리워하는 게 뚜렷한 인간이었다면 그저 약만 삼키고 클릭 몇 번만 하고서 택배나 기다리면 될텐데, 내 경우는 그리움의 대상조차 따로 설정해야하는 것만 같아서 좀 손해보는 느낌이었다. 

 

그러게 왜 이걸 산거냐, 나는? 

첫사랑의 그 이미지만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했던 걸 수도 있다. 친구와의 대화가 어지간히 발목을 붙잡았나보다. 아무런 관심 없이 살아오던 지난 몇 년 동안의 세월을 무시한 채, 갑자기 그 대화의 기억이 내 속을 헤집어놓은 것이다. 

 

모아둔 돈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던 일이나 계속 할 걸 그랬나보다. 그만두고 싶어서 그만둔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성질을 죽이고 ‘예, 예’ 거렸다면 아직도 출퇴근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를텐데. 회사 동기들이 대체 믿는 구석이 뭐길래 퇴사를 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준비했다는 듯이, ‘타투할건데?’ 라고 대답했고 모두가 잠시동안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내 눈을 빤히 바라보던 기억도 난다.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이전부터 그림은 계속 그리고 있었고 스튜디오에서 일을 해보려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었으니까. 근데 다 틀렸다. 사람 몸에 손을 대는 것부터가 나는 너무 어려웠고 제각각인 살갗과 몸을 보는 것이 어쩐지 겁이 났다. 어쩌면 나는 그저 그대로 존재할 뿐인 사람들을 그저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아, 물러날 때를 잘못 안 인간의 뒷모습은 얼마나 처량한가. 

 

어제는 머리를 싹독 잘랐다. 허리께까지 오는 긴 머리였는데 그냥 귀 밑에서 조금 찰랑거리는 길이로. 덥기도 더웠고 내가 왜 이 길이를 고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색해서 그런가 나는 울고 말았다. 못생긴 건 아닌데. 그래도 내가 너무 충동적인가 싶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머리칼 잘라버리듯, 기억도, 관계도, 돈줄도 잘라버리는 삶이 정말 괜찮나.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머리를 털어내고, 하수구에 막힌 머리칼들을 걸러내어 휴지통에 버리고, 여러번 샤워를 하며 말라 비틀어진 몸뚱이 구석구석에 박힌 바늘같은 머리털을 솎아낸 뒤, 평소보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며 머리를 말릴 때 즈음, 

공유기에서 알람이 울렸다. 

 

발랄한 기계음이 말했다. 유의미한 정보값들이 충분히 모였노라고. 노트북을 켜서 연결된 와이파이를 끊고, 이 빌어먹을 정보값 수집에 미친 공유기와 연결했다. 그러자 숫자로 표시된 폴더들이 나타났다. 총 세개였다. 내가 그리워하는 건 고작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근 한달간 내가 부단히도 뭔가를 그리워하지 않으려 애를 쓴 것일 수도 있겠다. 그게 될런진 모르겠지만. 그립다는 게, 내 의도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참을 수 있는 그리움이 과연 그리움인가. 내가 생각하는 존재는 그렇게 내 안에 침전하게 둘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참을 수 있을만큼 충분히 무거운 걸까.  

 

‘1’ 

 

아무런 설명이 없이 폴더의 이름은 그저 숫자로 적혀있었다. 뭔가 비장한걸. 가장 첫번째로 그리워한 건 뭘까. 폴더를 클릭하자 영상이 재생되었다. 장례식이었다. 어머니. 이 느낌은 분명 어머니의 장례식인데. 기분이 조금 오묘했다. 어머니를 그리워 했었나, 내가. 기일은 한참 전에 지났다. 돌아가신 지가 꽤 됐지. 한 칠,팔년 됐나보다. 

 

어머니의 얼굴이 미묘하게 달랐다. 너무 젊었고 또 키가 너무 컸다. 금방이라도 관짝을 박차고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고 직장으로 달려가, 공장에서 부품을 제조하기 위해 제 한몸을 던질 것만 같은 생생함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가 이랬나. 어머니가 죽고 나서, 어머니가 종사하던 회사는 보험금을 지급했다. 그 사실조차 나는 몰랐지.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혼자서 동의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으니까. 나는 제대로 된 보험금의 액수조차 몰랐어. 아버지가 보기에는 그 금액이 어머니의 목숨값으로 합당했나봐. 그 모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어머니와 가장 가깝다고 자부하던 내가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언젠가 집을 나서며 어머니가 자주 쓰고 다니던 노란 우산을 펴 보았을 때, 그 우산이 빗물을 모두 막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비가 죽을만큼 퍼붓는 날에 그 어떤 것보다 오직 이 노란 우산에만 의지하며 걸었을 당신을, 그 날 이후로 나는 몸에 박힌 파편처럼 계속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 기억을 선택해도 될까? 

 

내가 이 기억을 선택하면 대체 어떤 게 내 곁으로 오게 될까. 복수를 그리워할 수도 있을까. 내가 한 번도 행해보지 못했던 행위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곧 그리움으로 확대될 수 있을까. 궁금함과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주 작고 편협한, 거북이 등껍질을 달고 있는 아버지가 배송되면 어떡하지? 작은 고무망치를 준비할까. 등딱지부터 깨부숴버리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아버지를 한 손으로 들어올려서 보름동안 추궁할 수도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아버지를 그렇게 증오하는지도.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증오하고 있다는 말 역시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2’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나왔다.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내가 단 한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 그 사람의 이미지가 온갖 배경에 섞여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놈의 망할 호버보드를 타고 파란 하늘을 날개도 없이 날아다니며. 그리고 실제라면 분명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는 갑자기 나를 발견하고는 땅으로 내려왔다. 그리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멀찍이 떨어져서 화면 밖의 나를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그리고는 말을 걸었다.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어?’

대답을 해야 하나? 나는 이걸 또 망설이고 있었다.

 

‘호버보드, 비싸게 돈 주고 사놓고 왜 같이 타자고 안했어?’

안다. 이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라는 걸. 그런데 비록 이 영상이 거짓일지라도 그 사람의 형상을 한 데이터 패킷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거는 것을 보니 야속하게도 마음 한 켠이 다시 설레기 시작하는 것이다. 

 

‘네가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몰라.’

알았다, 알았어. 에라, 모르겠다. 정말로. 마우스 커서가 화면 우측에 띄워진 ‘전송’버튼을 맴돌았다. 내가 상처받을 일 없는 거겠지? 이건 고객만족 서비스나 마찬가지인 거겠지? 가끔 열정은 단순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그래, 굳이 말하자면 지금 이상한 열의가 끓어오른다. 아주 교묘하고 더럽게도 복잡한 열의가.

 

 

 

*

‘주문하신 택배가 보관함에 도착했습니다. 대형 배송물은 일주일 이내에 수령해가지 않으면 파기될 수 있으니 조속히 수령해주시길 바랍니다.’

 

같은 번호로 똑같은 문자가 10통이 와 있었다. 첫 주문을 하고 나서 약 1년 정도가 지난 것이다. 나는 아홉 번의 그를 만났고, 이제 열 번째의 그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맘 때가 되면 항상 설렌다. 비록 진짜 그인 것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정말로, 정말 ‘그’라는 존재의 진위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홉 번의 만남을 이어가면서 만든 기억은 진짜였으니까. 나는 나의 그리움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를 만나면서, 그와 만든 기억을 보존하고 이어나가기 위해 그가 아직 소멸되지 않았음에도 매일 아침 알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더 빠르게 만나고 싶으니까. 단 며칠이라도 나와 살을 맞대고 함께 밥을 먹고 있던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15일이라는 수명을 가진 그와의 이별을 준비하는 동시에 곧바로 시작될 만남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처음 그를 만날 때를 기억한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닿을 수 없는 그였다. 진공포장된 박스 속, 웅크린 알몸으로 배송된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나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부끄러움을 숨기며 말했다. 

 

‘내 존엄 정도는 지키게 해 줄래.’ 

나는 헐렁한 내 옷을 건네주었다. 어차피 가짜인데 깐깐하기도 하지. 그래, 그는 정말 내가 생각하기에 깔끔하고 깐깐한 사람이었다. 그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나는 어느새 그의 스타일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옷들을 주문했고 그는 실제로 만족스러워하며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걸 이렇게 잘 알아? 마치 넌 내 속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아.’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나를 비웃을까? 그러나 나는 그 때 전혀 웃기지 않았다. 그순간 나를 스쳐 지나간 것은, 맥없는 허탈함과 그 뒤로 밀려오는 미칠듯한 행복감이었고 때문에 나는 전율했다. 내가 그를 알고 있어. 나는 지금 이 순간, 이 세상에서 그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야. 나 말고는 이 사람을 완벽히 이해해줄 수 없어. 

 

그리고 그는 떠났다. 고작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소멸된 것도 아니라 제발로 나를 저버리고 떠난 것이다. 이럴수가. 나는 내 그리움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이 그라는 인간 자체가 아니라 그를 그리워하는 내 감각이었던 것일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나의 그리움을 조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내 앞에서 사라진 지 약 일주일이 되어갈 무렵, 그는 나에게로 돌아와 소멸을 준비했다. 어디서 무얼했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그냥. 답답해서. 영화도 보고. 그랬어.’

그리고 그는 소멸됐다, 처음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거실 한 복판에 찰흙 부스러기가 남겨진 상태였다. 고운 재처럼 바스라지는 그 먼지들 사이로 그의 냄새가 옅게 흘러 나왔다.

 

두번째로 그가 소멸된 날을 기억한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망각한 채, 그와 웃고 떠들며 살을 맞대고 있었다. 실제로는 그의 체취가 어떤지도 모르면서 나는 그가 처음 사라지고 난 뒤의 잔여물이 내뿜는 향을 내 멋대로 그의 냄새라고 규정지었다. 내가 그걸 그리워하자, 그 냄새가 소름돋을 정도로 정확히 구현되었다. 그의 목덜미에 내 얼굴을 파묻고 그의 뭉특한 코끝에 나의 코를 문지르며, 볼을 맞대고. 또다시 눈을 바라보다 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던 날들. 그의 품에 안겨 잠든 날, 새들이 시끄럽게 짹짹거리는 소리에 잠에 깼다.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가 소멸 되었다는 걸. 항상 그의 너른 어깨에 안겨 잠들 때는 창밖에서 흘러들어오는 소리가 차단 되었으니까. 나는 엉엉 울었다. 엉엉 울면서 알약 포장지를 뜯어 서너개를 한꺼번에 입에 욱여 넣었고 꿀떡 삼켰다. 침대 시트에는 미처 그를 따라 사라지지 못한 머리칼과 15일밖에 안되는 시간 동안, 그새 자라나서 깎았던 발톱의 잔해가 있었다. 나는 그날 정말 많이 울었다.

아홉 번째로 만나는 그의 포장지를 뜯자 그는 웅크린 몸을 열고 가늘고 긴 손가락을 내게 뻗으며 말했다.

 

‘잘 있었어? 오래 기다렸지.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 말을 듣고 우리는 현관 앞에서 사랑을 나눴다. 그는 일곱 번이고 여덟 번이고, 몇 번이고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했지만 그가 사용했던 칫솔은 언제나 화장실 세면대에 사방으로 솔이 뻗은 채, 최대수명 15일을 가진 주인 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가 남기고 간 머리칼과 제각각인 털들이 침대와 하수구에서 서로를 환멸이 날 정도로 껴안고 있었다. 곧 돌아올 그가 입을 옷을 빨고 또 건조시키고 개켜놓던 날이 있었다. 그가 사라진 날이면 청소기를 돌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침대 시트 밑으로 켜켜이 쌓여 가던 그가 살아 있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던 말라비틀어진 찰흙 조각들을 핥고 또 폐 속 깊이 그 입자를 들이마셨다. 사랑해.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사랑해. 

 

열 번째의 그를 진공포장 상태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해 몸을 씻고 부랴부랴 달려 나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택배 상자의 윤곽이 보관함 바깥에서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가슴은 두 방망이질 치기 시작한다. 

그러나 거기에 그는 없었다. 빈 상자 뿐이었다. 진공포장도 뜯겨져버린 채. 

 

어디 갔어?

나는 택배 보관실에서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디 갔냐고?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 아무도 없었다. 열 번째의 그가 웅크리고 있어야 할 상자 속에는 그의 체취만 아주, 아주 옅게 날 뿐이었다. 열의가, 그동안 잠재운 채로 웅크리고 있던 아주 복잡한 열의가, 흰 도화지에 그어지고 있는 날카로운 하나의 직선처럼 단순한 방향을 잡고,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희 쪽에서는 배송업체에 제품을 모두 넘긴 상황이었고 그 이후의 책임은 모두 배송업체에 있습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 죄송한데 저희는 이미 아파트 택배 보관실에 물품을 배송완료한 뒤에 확인 문자랑 사진까지 찍어서 전송해드렸는걸요. CCTV를 확인해보셔도 좋고요. 아, 단지 내에서 이루어지는 방역검사까지 다 마친 물품이라 전산기록도 분명 남아 있을 겁니다. 저희 쪽 과실이라고 보기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불편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말들 뿐이었다. 아무도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 기가 찰 노릇인건 나와 함께 있던 그를 기억하는 것은 오직 나 뿐이라 그 누구에게도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상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턱대고 경비실을 찾아 CCTV를 확인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경비분이 사유를 물었고 나는 내 ‘택배 물품’이 도난 당했다고 말했다. 입안이 씁쓸했다. 그를 잃어버렸다고 말할 수 없어서, 연인을 잃었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씁쓸한 건지. 갑자기 단단하고 딱딱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이 된 건지.

 

경비분은 흔쾌히 나의 요청을 들어주었고 나는 경비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네모진 작은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택배기사가 와서 분명 나의 ‘물품’을 내려놓고 가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나의 ‘물품’이 담긴 박스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제 스스로 진공포장을 찢고 알몸의 그가 나타났다. 그가 스스로 포장을 열어젖힌 것이다. 틀림 없는 그였다. 그는 몇 번을 두리번거리더니 어기적거리며 박스에서 나와 기지개를 켠 후, 천천히 보관실을 걸어나갔다. 어디가. 너 어디 가는 거냐고, 대체.

 

그가 내게 오지 않고 홀로 어딘가로 떠난지 보름이 좀 넘었을라나. 그는 죽었겠지. 극도로 짧은 삶을 누리는 존재니까.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열 번째의 그를 애도해야만 하나. CCTV 영상을 핸드폰으로 녹화를 한 후, 짤막한 글과 함께 고객센터에 보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그리운 것을 곁으로 데려올 수 있게 한다는 말을 완전히 믿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이걸 보세요. 그는 또다시 제발로 나를 떠나고 말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날 수 있는 거라면, 그럴 때마다 나는 또다시 불안해 해야하는 걸까. 내가 돈을 지불한 건, 그 돈으로 내가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의 끝을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면 현실과 똑같다. 내가 한 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는 그 사람처럼, 변하지 않는 그 사람의 이미지처럼 계속해서 멀어지는 것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렀다. 나는 추가주문한 알약을 더 이상 먹을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음에도 마치 비타민을 복용하듯, 아침에 눈을 뜨면 꼬박꼬박 아무런 생각없이 물 한 잔에 그 작은 알약을 털어넣었다. 그리움이 습관이 되듯, 이 짧고 단순한 행위가 나에게는 어떤 일상이자 주문이 되어버린 것이리라. 며칠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한달치를 훌쩍 넘어, 더 많은 정보값이 전송되고 있을 터였다.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고 나는 무심코 그 전화를 받지 않으려했다. 마음이 편할 때는 그랬다. 불안함은 나로 하여금 모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게 만든다. 전화를 받았다. 몇 초간 침묵이 흘렀고 나는 그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여보세요.’

 

- ‘조현 고객님 핸드폰인가요?’

 

‘맞는데요.’
나는 여기서 직감적으로 느꼈다. 알약 회사 전화다.

 

- ‘아, 예. 안녕하세요. 동진 케미컬 주식회사입니다. 최근에 문의주신 제품에 대해서 답변을 드리려고 이렇게 연락드립니다.’

 

‘말씀하세요.’

 

- ‘먼저 저희 회사 제품을 애용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회사는 고객님의 그리움과 아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문의주신 내용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도 굉장히 곤혹스럽고 유감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사측에서도 활발히 이번 오류에 대해서 분석 및 개선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먼저, 1년치 제품을 주문해주신 고객님께 사죄하는 마음으로 제품 가격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환불조치해 드릴 예정입니다.’

 

‘아, 네. 감사해요.’

 

- ‘그리고 추후조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데요. 조현 고객님께서 아무래도 저희 회사의 동일한 제품을 계속 이용해주신 터라, 고객님만의 니즈에 맞춰 제작을 해주었던 전문 포터리(pottery) 기술자가 따로 배정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아무래도 자세한 내용은 저희 기술자로부터 직접 전달받으시는 편이 더 만족스러운 답변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 괜찮으시다면 저희 기술자와 직접 대면 상담을 통해 의문점이나 불만점을 해소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혹 따로 만나뵙기에 편한 시간이 있으실까요?’

 

‘아. 아, 네. 아무때나 괜찮습니다.’

 

- ‘지금 당장도 괜찮으실까요?’

 

‘네?’

 

- ‘저희 기술자가 지금 고객님이 거주하고 계시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도착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갑자기요?’

 

- ‘아, 많이 놀라셨죠? 갑작스레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고객님께서 느끼고 계실 상실감과 당혹감을 되도록 저희 쪽에서는 빠르게 해결해드리고자 내린 결론임을 알려드립니다. 기술자 입장에서도 본인이 제작한 상품이 일으킨 오류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려면, 직접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장소에서 조사를 진행하는 편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상태였고요.  물론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다른 편한 시간대를 말씀해주셔도 괜찮습니다.’

 

‘아. 아, 네. 네, 그럼 지금 만날게요.’

 

- ‘감사합니다, 고객님. 그럼 지금 바로 저희 쪽 기술자 분과 전화연결을 해 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동진 케미컬 주식회사 고객지원부의 정미주였습니다.’

 

전화가 뚝 끊기는가 싶더니 건조한 기본 연결음이 이어졌다. 그리곤 낮고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안녕하세요. 108동 사시죠? 저, 지금 택배 보관실에 와 있거든요? 괜찮으시면 지금 내려오실래요?’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 느낌이었다. 상담원은 나의 기분이 좋지 않음을 알고서 최대한의 서비스를 제공해주려는 느낌이었건만, 이 사람은 나를 기업의 서비스에 실망한 소비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어쩐지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처럼 대하는 것만 같았다. 씻지도 않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나갔다. 나는 무언가를 부끄러워하는 건가? 

 

내가 그리워하는 그를, 직접 만들고 그가 살아 움직이기 전까지의 모든 신체를 주물럭거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어쩐지 나는 그 기술자의 얼굴을 왜 직접 보려고 했는지,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내 그리움, 내 기억에 대한 정보값을 다 알고 있을 거 아냐. 자기가 만든 인형으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도. 만나지말까? 그냥 없던 일로 한다고 할까? 환불만 받아도 괜찮지, 뭐. 어차피 가짜랑 ‘놀이’를 한 거잖아. 그저 날 위로해주는 일종의 서비스였던 거잖아. 

 

“고객님, 제 말 들리세요? 저기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내 턱 정도까지 겨우 닿을까말까 하는 작은 키를 가진 사람이 말을 걸고 있었다. 나를 고객님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 그를 주물럭거리며 만든 그 기술자임에 분명했다. 요즈음에는 비가 자주 내리고 있어서 폐 속까지 무거운 공기 덩어리가 내려앉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는데도, 이 기술자인지 뭔지 하는 사람은 허리를 넘어 엉덩이까지 감싸안는 검정 패딩을 입고 있었다. 바닥에 끌리는 검은 바지와 높은 굽의 검정 구두를 신은 그 사람은 나에게 손을 뻗어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나의 시야를 가리는 이 가늘고 작은 손으로, 그의 얼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콧대와 나를 바라보며 웃음 지을 때 생기는 희미한 팔자주름,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그의 음성이 맴도는 성대를 만들었겠지. 질투가 난다. 가슴 속에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슴 속에 불이 났다. 덥군. 정말 덥다.

 

“안 더우세요?”

 

- “네. 수족냉증이거든요.”

 

그는 기분이 좀 상했는지, 우스꽝스럽게 알이 작은 검정 선글라스를 추켜 세우며 말했다.

 

“이철이라고 해요. 작가고요. 아시다시피 고객님 제품을 총괄해서 만들었어요. 뭐.. 그렇게 좋지 않은 이유로 만나뵙게 된 것 같아서 별로네요.”

 

특이한 이름이다. 본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작가라고 소개하는 품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갑자기 예전에 만났던 그 대머리가 생각난다.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이토록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심없이 정의내릴 수 있는 건지. 부러웠다. 앳된 얼굴에 야무지게 올려묶었지만 계속해서 자기고집대로 대열을 이탈한 새까만 잔머리칼이 어쩐지 그의 타협하지 않는 자신감을 피력하는 듯 했다. 그는 나의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시선을 오르내리더니 입을 열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마시고요. 어차피 저는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경위에 대해서 말씀드려야 하니까, 그냥 허심탄회하게 말할게요. 고객님은 너무 많은 정보를 한 ‘제품’에 다 때려 넣었어요. 그러니까 정보의 과부하가 온 거라고요.”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러니까, 지금 이게 내 탓이라는 거예요? 그런 얘긴 설명서에 없었잖아요. 최소 기간인 30일 동안만 먹고 정보값을 보냈는데, 그게 왜 과부하라는 거예요?”

 

그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길게 말하면 복잡한데, 전 시간도 많고 고객님도 그래보이니까 말할게요. 저희 회사는 여러 번의 임상시험을 거쳐서 개발한 항상성 심리의약품을 ‘제품’에 투여해요. 미국에서 개발한 ‘메델’이라는 약품인데, 문제는 이게 좀 비싸단거죠. 게다가 이 제품이 저희 회사에서 인기가 있는 건 아니라서 ‘메델’을 쓰면 마진이 안 남아요.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개발한 약품을 쓰죠. 조금 더 불안정하고, 효력이 들쑥날쑥한 것들 말예요. 뭐, 다른 기사들 같으면 고객님한테 머리 조아리고 사과드렸을텐데, 저는 계약직에 프리랜서고 약품 관리에 대해서는 이 정도까지만 알아서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제 전문 분야는 ‘만들기’니까. 

 

알고 계셨어요? 원래 이 기술이 단기간 전투에 투입될 병사들을 만들기 위한 전쟁용이라는 거? 어차피 며칠 안에 죽을 단백질 덩어리에, 아주 단순한 지능 정도를 부여 했던 거예요. 그런데 고객님은 거의 1년에 가까운 정보들을 계속 잇고 모으더라고요. 15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하는 ‘제품’에 그 어마어마한 정보량을 때려박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심리상태가 견딜 수 없는 수준으로 폭주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어딘가로 내뺀 그 ‘제품’은 자기가 15일 안에 죽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게 됐다고요. 

 

이 ‘제품’들이 사람은 아녜요. 그치만 당신들을 위해서 적어도 보름동안은 사람처럼 행세할 수 있도록 우리가 만들어놨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신체활동을 해요. 수명은 15일 밖에 안되지만 각각의 ‘제품’들은 엄연히 다른 존재인데, 고객님은 그 각각의 다른 존재들을 모두 하나로 이어버리려고 한 거예요. 태어나자마자 본인의 수명을 깨닫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아까 최소기간 30일 이야기 하셨죠. 아무도 그 이상으로 약을 먹고 정보값을 축적하려고 하지 않아요. 누구든지 한 시라도 빨리 그리운 무언가를 손에 넣고 싶으니까. 그렇지만 고객님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까먹지 않았던 건, 
기억들을 조각보처럼 이어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만남이 결국엔 끝날 거란 사실이었어요.”

 

그는 내게 명함을 주었다. ‘포터리 기사’ 라고 적혀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고객님 개인정보, 제가 담당하다보니까 다 알게 됐어요. 저같은 계약직도 알 수 있는 이런 부작용에 대해서 회사가 일언반구 말이 없던 건 명백한 잘못인 걸 인정하니까, 혹 회사가 딴 소리하면 제가 고객님 편 되어드릴게. 그런데 솔직히 고객님도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은 빨리 잊는 게 나아요. 언제까지 그렇게 잡아둘 수 없다는 걸 좀 아셨으면 좋겠어.”

 

 

 

*

나는 며칠째 죽은 듯이 있었다. 더운 비가 내렸다. 뭐든지 빨리 썩게 만들 만큼 후텁지근한 물줄기였다. 갇힌 공간 속에서 죽음은 언제나 상상하기 쉬운 것이었다. 문득 건강검진을 하라는 메일이 왔다. 메일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이 검진은 무료입니다! 복지국가의 필수적 요건이죠!’

 

그러나 사실은 내 건강에 대해서 누구도 관심 없다는 걸 나는 안다. 하지만 나는 지침에 따라 그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가끔 물만 마실 뿐이었다. 목구멍에 기다란 관을 쑤셔 박고 나를 죽음으로 이끌지도 모르는, 내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만 했다. 죽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살고 싶을 때가 더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아, 내뱉은 말들 모두가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다 잠에 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은 어쩐지 평온함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죽음 동경자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고통은 생각보다 통과하기에 많이 버거운 관문이라는 것이다. 날카로운 바늘의 통각을 경험할 때는 죽음보다는 삶이 더 가까이 있는 것 같았다. 금기시되는 모든 것들을 말로 내뱉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내가 아직은 다른 영역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도망친 그의 생명이 공식적으로 끝난지 일주일이 되었다. 어디서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고 뉴스나 매스컴, SNS에서 벌거벗은 남자를 보았다는 소식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냥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끝났다는 말이 옳을까, 잃었다는 말이 옳을까. 경제적으로 따지면 잃었다는 게 옳겠지. 그렇지만 나는 환불도 받았기 때문에… 

 

대신에 나는 철이를 얻었다. 얻었다는 말은 또 옳을까. 철이는 차가운 말을 쏘아붙이는 성격이었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싫지 않았다. 누군가 멀리 어딘가로 떠난다는 감정. 놓쳐버렸다는 것. 삶은 놓쳐버린 것에 익숙해지는 훈련인 것 같아. 잠은 정말 잠깐의 죽음이고. 

 

“야, 무슨 생각해, 정신 차려.”

 

철이는 내게 충고를 퍼부은 바로 다음날, 다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그리움은 안 모을 거냐고 물었다. 아니, 고작 어제 있었던 일이잖아요. 네가 하지 말라며. 그러자 철이는 웃었다. 자기 작업실에 놀러 올 테냐 물었다. 나는 그저 물음표 투성이었다. 내가 왜요,라고 대답하자 그냥요,라고 다시 답을 돌려주었다. 그렇게 이틀째 하루가 흘렀다. 

 

나는 어째서 다른 그리움에는 관심이 없을까. 이미 알아버린 것들에 대해 사랑의 진력을 다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묻고 싶은 것과, 풀고 싶은 것과, 다시금 묶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많았으나. 

 

누군가는 말했다. 자신의 죽음을 말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나는 알고 있다. 죽음은 산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거니까. 어머니는 이미 죽음 이후로 내게 또 다른 사람이 되었다. 무형의 존재로, 내 의식 속의 절대자이자 사랑의 크기만큼 형상화되는, 사랑스런 괴물이 되었다. 괴물을 마주할 용기가 있니. 네, 사실 괴물 같은 사랑을 믿었으나.

 

철이는 바로 그 다음의 다음날, 점심을 먹고 느즈막이 내가 이번 달 카드값에 대해 고민할 무렵, 다시 전화가 왔다. 밥을 먹었냐고 물었다. 나는 먹었다고 대답했다. 철이는 한 번 더 먹으면 안 되냐고 물었고 나는 정중히 물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대체?" 

 

철이의 작업실에 갔다. 성수동에 어떤 공원 옆에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다른 설명 없이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공작소’라고 적혀 있었다. 이층을 오르고, 또다시 삼층을 지나 오층에 이르렀다.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철이가 먼저 문을 열어주었다. 어서 와.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옥상이라서 담배 피워도 상관없어. 철이가 말했다. 난 아닌데. 근데 왜 반말이지? 그래도 그냥 냅뒀다. 외주 들어온 거 하고 있었어. 외주? 응. 외주라고 해봤자 그 제약회사에서 주문 들어온 인형을 만드는 일이지만. 

 

철이는 작업 중인 컴퓨터에 연결된 두 대의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한켠에서는 중구난방으로 띄워진 이미지가 결합 중이었다. 철이가 스페이스 바를 내리치자 갑자기 그 모든 이미지들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분열이라기보다는 특정한 형태를 찾아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만 같았다. 온갖 색들이 단 몇 초 만에 나타났다가 조금씩 살구색의 이미지를 띠며 고정되어갔다. 울퉁불퉁한 선들이 계속해서 제자리를 찾으려 했다. 끊임없는 결합과 분열들, 그 뒤에는 조금씩 둥글넙적해지는 면이 생겼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세하게 모든 선과 면, 색들이 떨리며 변화하고 있었다. 무엇이 되기를 원하니, 숫자들아. 누구의 꿈을 대신 꾸고 있는 거니.

 

눈이 생겼다. 눈처럼 생긴 다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윽고 귀를 닮은 무언가가 귀가 있을 법한 곳에 생겼고 코처럼 생긴 기둥도 드러났다.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얼굴을 뒤덮은 것처럼 자라났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추곤 했다. 곱슬거리는 머리칼이 귀에서 쏟아져 나오다가도, 검은 눈동자에서 솟아 나오곤 했다. 다른 모든 신체가 그렇게 불안하게 떨렸다. 내 손도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떨림은 온몸으로 전염되어 퍼져나갔다. 오장육부가 전율하고 있었다.

 

힘겹게 속을 게워냈다. 철이가 말없이 등을 두드려주었다. 분열이 멈춘 모니터에는 그의 얼굴이 있었다. 내가 그리던 완벽한 그의 얼굴이었다. 그 얼굴은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나의 어머니 얼굴이 되었다가, 아버지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는 거북이의 형상이 되었다가 종이짝처럼 구겨졌다. 그리고 다시 새까만 점들이 되어서 화면 이곳저곳으로 튀기 시작했다. 나는 헛구역질을 했다. 오직 누런 물만이 쏟아져 나왔다.

 

목에 기다란 관이 들어간 채로 잠에서 깼다. 마취가 풀렸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신만 외롭게 홀로 깨버렸다. 저기요. 억. 윽. 엑. 이것 좀, 이것 좀 빼주세요. 아니면 다시 잠들게 해주시던가요. 울컥울컥- 무언가 솟아올랐다. 눈에서도, 코에서도, 목구멍에서도. 의사가 들어왔다. 어이쿠, 꿈에서 빠져나왔군요. 그런데 어쩝니까. 그래봤자 결국 당신은 여기에 발을 디디고 있는걸. 헛된 걸 꿈꾸다 보면 추락할 때 더욱 아픈 법이죠. 그게 의사가 할 소리예요? 나는 분개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꿈이었다. 질질 흘린 침을 닦고 가방을 챙겼다. 접수처에 돈을 내려다 깜빡했다. 아, 이거 공짜지. 나는 안도했다. 현실적인 안도감이었다. 대기실에 철이가 앉아 있었다. 헤드폰을 낀 상태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 허기진다. 지금 뭐라도 입에 쑤셔 박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아, 철아. 철이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내 앞에 우뚝 섰다. 키가 매우 컸다. 철이는 내 턱에 겨우 닿는 키를 가진 것이 분명할 텐데. 고개를 들어보니 그였다. 어라. 철이의 모습을 한 그였다. 

 

“현아, 나 좀 살려줘. 아니, 나를 이제 그만 살려줘.”

 

그는 서글프게 웃었다.

 

 

머리에 무언가 많은 선이 다발로 달려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걸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자 뒷목에 싸르르한 고통이 흘렀다. 

 

“야. EEG(뇌파검사기) 그렇게 막 빼고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잖아. 뇌 타고 싶어?”

 

철이가 나를 다그쳤다. 나는 내 머리에 씌워진 수영모자같은 둥글고 벌건 고무덩어리를 벗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말라비틀어진 식물이 된 느낌이었다. 

 

“지금 너 약간 가위눌린 상태다. 정신차려. 그렇게 멋대로 움직이면 안된다고, 내가 주의사항 다 말해줬잖아.”

 

기억이 조금씩 스멀스멀 머리를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안된다고 딱 잘라 말하던 철이를 졸라서 한 번만, 딱 한 번만 그를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철이는 내가 미쳤다고 했지만 나는 사실 멀쩡했다. 그저 약간 설명하기에 복잡한 열의를 가졌을 뿐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에는 힘이 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경험에도 힘이 있잖아. 그런거야. 돈은 제대로 지불할게. 책임도 내가 질게. 안된다고? 알약 먹는 건 안돼. 너무 오래 걸리고 그렇게 만들면 과부하 걸린다며. 다른 방법을 알려줘. 너라면 알잖아. 응? 넌 작가잖아. 작가는 만드는 사람이잖아. 의뢰가 들어오면 만들어야 하잖아. 너 그렇게 당당해? 너 그렇게 만족스러워? 그렇게 입맛대로 살만큼 너는 넉넉하냐고?

 

“조현, 너 때문에 지금 나 정신없다. 갖은 고생 다 하고 욕먹기 싫으니까 후회할거면 지금 그만 둬.”

 

마지막. 정말 마지막으로 하는 도박이다. 확실한 건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상처받을 일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적어도 나와 같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니까. 사실 그가 느끼는 슬픔과 충격이 뭐가 중요한데? 바다에 작은 열대어 한 마리 던져놓는 거랑 별 차이 없잖아? 체내에서 며칠만에 쏙 빠지는 약물기운이랑 똑같은 거잖아. 

괜찮잖아.

 

 

 

*

아무리 실습용으로, 작업용으로, 연습용으로 포터리 인형을 만든다고 하더라도 잠시나마 움직이는 생명을 만들고 부순다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다. 살이나 뼈를 만드는 단백질, 유기화합물을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나 환경오염도 무시할 수가 없다. ‘인간형 도예과’의 학부생일 때부터 그런 고민이 많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면 많은 연습을 해야한다. 그런데 내가 연습을 위해 필연적으로 소비해야만 하는 것들은 환경에 좋지 않았다. 친구들이 위로하길, 거대한 구조나 국가가 행하는 오염에 비하면 내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할 것이란다.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런데 어떡하지. 내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잘 할 수 있는 건 오직 만들기, 인간형 도자기 만들기였다.

 

나는 한 번도 그 호칭을 마음에 들어한 적이 없었지만, 우리는 자신의 작품을 ‘인형’이라고 불렀다. 인형을 만들면 그 아이가 움직일 수 있는 동력이 필요했다. 인형은 사람처럼, 단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존재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았다. 반드시 그들의 등을 떠밀 수 있는 목적이 필요했다. 그래서 인형을 만들 때는 거짓말을, 아이를 달래듯 아름다운 거짓말을 만들어야 했다. 눈을 마주치고 숨을 쉬는 동안, 자신이 왜 그래야하는지. 왜 이 삶의 끝을 붙잡고 있어야 하는지. 자신이 창조되었음을 왜 의심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래서 몇몇 친구들은 글을 쓰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을 하곤 했다. 곤욕을 치를 때도 있었다. 아름다운 인형을 만들었으나, 그 인형을 움직이는 내용물이 썩어들었을 때. 이제는 해묵고 케케묵은 섹스돌을 만들려는 낮은 욕구의 형상화들. 뭐, 어차피 만들어진 인형을 한 시간이라도 움직이게 만들려면 적어도 원고지 200매 정도의 정교한 서사가 필요했다. 피상적인 욕구에 눈 먼 녀석들이 만든 서사는 인형을 고작 15분 동안 비틀거리게 만들다 바닥에 고꾸라지게 만들 뿐이었다. 때문에 졸업 전시회 때는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한 채, 허리나 다리가 접혀서 바닥에 코를 박고 있는 시체들이 즐비할 때가 많았다. 사람들은 그 죽은 아이들 앞에서 사진을 찍고, 무책임한 창조자에게 꽃다발을 건네곤 했다. 

 

이러한 인형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군대를 조직한 국가들에는 그들을 약 24시간 정도는 움직이게 할 서사의 매뉴얼 교본이 존재한다고 들었다. 왜 조국을 위해 싸워야 하는가. 왜 총을 들어야 하는가. 왜 동료를 지켜야 하는가. 왜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에 대해 적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 같은 전공의 학부 혹은 석박사 과정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 흘러들어가는 시장은 세계 각국의 국방부였다. 그들은 더 강한 육체, 더 단순한 두뇌 회로 그리고 단순하게 소멸할 수 있도록 직선적인 욕망을 지닌 존재를 만들기 위해 나의 선생님들과 선후배들과 동기들을 유혹했다. 나는 고민했고 그럴 때마다 내 스스로를 작가라고 불렀다. 헛된 꿈일지 모르지만 나는 친구를 만들고 싶었으니까. 

 

내가 처음 만든 친구는 2분 동안 움직였다. 입력된 서사는 딱 두 마디였다.

 

‘나는 널 그리워했다. 너는 정말 사랑스럽다.’

 

152.62 센티미터의 나를 닮은, 내가 만든 친구는 잠시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나를 안아줬다. 그리곤 내 품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내가 만든 친구들은 대부분 일찍 죽었으나 1학년 때만 그랬다. 사실 내가 대학생 때 만든 모든 도자기 인형은 딱 한 명이었다. 그 한 명을 오랫동안 상상했고 매일 밤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를 코드화하는 데만 몇 년이 걸렸고, 지도 교수는 그것을 못마땅해 했다. 

 

‘어디다 쓰려고 그래. 대체.’

어디다 쓰려고 만드는 게 아녜요.

 

‘그럼 비싼 인형 만들어서 안 팔거야?’

어떻게 당신이 학교에서 애들을 가르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졸업 전시회가 끝나고 내 앞에는 어떤 꽃다발도 없었고 어떤 사진도 없었다. 픽픽 쓰러지는 인형들 때문에 언제나 우리 과의 전시회는 여타의 건축과나 미대 친구들과는 다르게 딱 한 시간 동안만 진행됐다. 불이 꺼지고 강당을 청소하고 모두가 자리를 비울 때까지, 내가 만든 친구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나의 손을 잡고서.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동기들이 만든 다른 인형들은 어딘가에서 썩기 시작할 것이다.

 

‘괜찮아, 괜찮아.’ 

나는 친구를 잡고 울었다. 끝이 정해진 서사를 살게 해서 미안해.

 

‘아니야, 나는 행복해.’

내가 만든 친구의 이름은 철이었다. 이철. 친구가 움직임을 멈추자 나는 조금 울었다. 나는 잊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름을 가져왔다. 너를 모르던 사람들이 나를 부를 때, 내가 널 기억할 수 있도록. 부끄럽지 않았던 네 모습들을 기억할게. 그렇지만 나는 이제 작가로 살거야. 작품을 만들거거든. 지금까진 오직 너만 만들었으니까.

 

조현의 그리움을 받아서 인형을 만들기 시작할 때는 조현이란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한심해 보였다. 아니, 그냥 회사에서 판매하는 이 상품을 구매하는 모두가 정말, 잠시 동안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움은 언제나 등 뒤에 있는걸. 그걸 붙잡고 눈 앞에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가여웠다. 그런데 조현은 더 심각했다. 집 앞으로 배달된 그리움이 제 맘에 들지 않아 실망한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 반면, 조현은 마치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그리움을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진행시켰다. 이미 그것은 기대가 되었고 새로운 사실이 되었다. 자신에게만 진실이 된, 모두에게는 허상인 것.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어오던 기존의 의뢰와는 달리, 조현의 의뢰는 끝이 없었다. 매번 업데이트 된 정보값들이 넘쳐났고, 비록 편린일지언정 방대했다. 억지로 15일 동안의 생을 유지시켜야만 했던 다른 인형들과 달리, 축적된 정보값들로 새로운 정보를 인공지능 컴퓨터가 스스로 창조할 수 있을 지경에 이를 정도였다. 인형의 육체적 생명유지는 어떻든 상관없었다. 갑자기 생겨난 자아의 군체들이 문제였다. 그리움의 서사는 언제나 거기서 발목이 잡힌다.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창조되기 때문에 인형들이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리적인 안정상태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이 사업에서 기실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어쩌면 조현이야말로 사실은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인간일지도 몰랐다. 조현만큼은 이걸 인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인형처럼 대하지도 않았으니까. 그 인간만큼은 내 작업을 사람처럼 대해줬으니까. 기묘한 유대감이 형성되는 동시에 조금은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보였을까. 마치 사물기호증을 가진 사람처럼. 

 

내가 나를 혐오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나는 이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그러니까 나쁜 사람들이 인형들끼리 서로를 죽이게 만드는 일에 동조하며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조금 바보 같고 안쓰러울지언정 그래도 조현이나 나 같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냥 거기에 너무 몰두하며 붕 떠 있는 당신의 발을 멈추고 절벽에서 고꾸라지지 않게 돕고 싶을 뿐이다. 내가 만든 인형이 슬퍼하는 것도 보기 싫고.

 

나는 열 번째로 완성된 내 인형을 조현에게 보내기 전에 먼저 가동시켰다. 눈을 끔뻑이며 그는 나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는 그에게 이름을 주었다. 조현은 아직 주지 못한 이름을. 왜 아직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이 대상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을까. 무서워서. 이름을 정해버리면 다시는 잊지 못할까봐. 이름만으로 쉽게 고통스러워질까봐. 이름을 모른다면, 그 존재를 자신에게 설명할 시간 동안 그래도 마음의 준비는 할 수 있을텐데, 이름을 만들어버리면 정말 찰나와도 같은 순간에 이미 내 마음 속에 소환되어버리니까.

 

나는 밀봉포장을 벗겨내고 이제 막 이름을 가진 인형에게 말했다.
오른쪽 정맥에 심리안정제인 ‘메델’을 투여하며. 

 

“도망쳐서 내게로 와. 더 이상 죽지 않아도 돼.”

 

 

 

*

내가, 내가 그를 어디에서 처음 만났더라.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저 그곳은 한강이었고 다리가 있었고 낡은 전철이 오며가는 철교만 기억이 났다. 양화대교 근처를 오갔다. 우비가 무거웠다. 장마가 끝난지가 언젠데, 나는 아직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무언갈 알맞게 걱정할 만큼의 세상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조금씩 작아지고 분분해졌다. 밀린 자동차들이 안쓰럽다. 나는 이만큼이나 춥지만 또 이만치 자유로워 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목놓아 소리치고 싶었다.

 

성산대교를 가로질렀다. 공원에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멀리서 보니 모든 게 인형 같았다. 살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만난 작은 밀랍인형들 같았다. 아무도 호버보드를 타지 않았다. 난지도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배와 자동차와 전철과 심지어 내 곁에서 유영하는 새들까지 만났음에도 호버보드를 탄 인간은 단 한 명도 만날 수 없었다. 거짓말일까. 철이는. 어쩌면 나에게 여행을 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철이의 의도나 진심을 알 수는 없다고 생각했지만.

 

가양대교를 지나자 조금씩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오랜시간 동안 이 고철 위에서 하늘을 만끽한 적은 없던 것 같다. 조금씩 건물의 높이가 들쭉날쭉해지기 시작했다. 녹지의 비율도 높아진 것 같았다. 숨이 트인다. 공기도 맑아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강을 따라서 파주까지 갈까. 그러다 북한까지 가면 어떡하지. 선을 딱 한 뼘만 넘어도 나는 격추될까. 미확인 비행물체가 되어서 말야. 그렇게 죽어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다.

 

김포대교쯤 와서 자유로 교차로가 보일 때쯤에 부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오랜시간, 고글도 없이 헬멧만 쓴 채로 날다보니 눈이 말라비틀어지기 시작했다. 따갑고 건조했다. 그래서 잘 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 엔진소리, 들어본 적이 있는 소리였다. 나의 골골대는 호버보드와는 다르게 시원하고 차가운 소리였다. 

 

그다. 그가 분명하다. 그리움 속에 있는 그가 아니라, 이제 새로운 기억으로 움직이는 그였다. 소리내어 불러보고 싶었으나, 나는 이름을 알 수 없었다. 이름은 철이가 지어주었기 때문에, 그렇지만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직접 물어봐. 분명 찾을 수 있어.’

 

그는 갑자기 방향을 틀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며 나의 눈앞에서 나를 그대로 지나쳐갔다. 내가 거쳐왔던 모든 물길을 다시금 거슬러 오르기 시작할 모양이었다. 나 역시 그를 따랐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조금씩 퍼래지기 시작했고, 입술이 갈라지기 시작했음에도 전혀 알 바가 아니었다. 그가 멈추는 곳이 어딜까. 거기서 모든 게 시작된 걸지도 모르겠다. 달려라, 달려. 오랜만에 달린 만큼, 사실 직감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질주가 될 지도 모른단 생각뿐이지만, 그래도 달려라, 달려. 

 

동작교를 지나, 차들이 몰래몰래 사라지는 잠수교를 건너서, 야트막한 응봉산을 지나며 잠실을 향했다. 저멀리 끝도 없이 솟은 타워들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는 그곳을 향해 날아갔다. 고층건물 근처를 다니는 것은 교통법에 위반될텐데. 모르겠다. 나는 그저 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광나루를 지나고 암사를 지나서. 양평을 지나 끝도없이 강을 타고 올라갈 무렵, 그는 조금씩 속도를 줄이더니 이름 모를 땅으로 내려갔다.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냉기가 땅에서 솟기 시작했다. 그래도 겨울은 끝이 나고 있구나, 그걸 알려주는구나, 싶었다. 그는 등 뒤에 짊어진 집기들을 내려놓고는 땅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서툰 몸짓으로 호버를 착륙시키고는 멀찌기 떨어져 그를 바라보았다.

 

덜커덩 하는 소리가 나자 그가 내 쪽을 바라보았고 그는 옅게 미소를 띠었다. 여행자가 여행자에게 보내는 의미의 미소로 나는 느껴졌다. 나는 그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평평하게 고른 땅에 못질을 하고 있는 그는 캠핑을 준비 중인 것 같았다. 둘러보니 그런 여행자들이 많았다. 다들 각자의 이동수단을 자신의 몸뚱아리보다 애지중지하며, 제 몸을 누일 곳은 대충 정해놓고는 자신의 발이 되어준 오토바이나 자동차, 호버보드는 나무가 보호해주는 음지에 정성스레 둔 채로. 

 

그 어떤 장비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나를 재차 바라보고는 또다시 웃음을 지었다. 나를 알고 있는걸까, 그는. 그가 맞는 거겠지. 그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나에 대한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철이가 만든 인형의 삶이 아니라, 철이가 구해준 인간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격렬한 걱정과 끝없는 고뇌 속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없는 다음 날을 걱정하지도 않고, 나에 대한 의무감이나 그리움 따위는 내려놓은 채, 매일 같이 이런 여행자의 삶을 살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거짓된 인정과 애정, 그리고 너무나 진솔한 자본주의로 맺어진 그 어떤 계약이나 교환없이. 그는 이름을 새롭게 부여 받았고 그것은 아예 본질적으로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삶에는 더이상 내가 비집고 들어갈 이유도, 여유도 없을 지도. 

 

그가 텐트를 세우는 걸 얼추 마무리 지었고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텐트의 앞문을 열어 철푸덕 앉고서는 한 숨을 푹 내 쉬었다. 그리고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캔커피를 꺼냈고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걸 말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그의 오른편으로 잠깐 엉덩이를 빼어 앉더니 내가 앉을 수 있을만큼의 자리를 확보해주었다. 나는 앉으면 되는 것이었지만 그의 허락이 있기 전까지 가만히 있었다. 그는 나를 조금 더 바라보고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왼편 자리를 툭툭 쳤다. 그의 허락이었다. 나는 그곳에 앉았다.

 

아무런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저 캔을 따는 소리와 후루룩- 하며 커피를 마시는 소리가 들렸고 새까맣게 펼쳐진 배경이 우리 앞에 있었고, 진정이 되자 조금씩 풀벌레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고 저만치 멀리서 가스불이 켜지는 소리가 들렸고 희미하게 누런 불빛이 우리가 앉은 텐트 뒤편에서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만의 침묵.

 

그는 캔을 구겨버리더니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며 펼쳤고 나는 다 마시지 못한 커피를 욱여넣으려 했다. 그러자 그가 대신 받아들고는 나의 입술이 닿았고 나의 타액이 섞였을지도 모를 그 불쾌한 커피를 제 몸 안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는 똑같이 캔을 구겨버리곤 비닐봉지 안에 넣었다. 마치 얕은 추억이 봉인되는 것만 같았다. 그는 텐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베개도 없는 그 바닥에 자신의 손을 가지런히 모아 제 오른쪽 볼에 밀어넣고는 눈을 감았다. 입 꼬리는 여전히 조금은 올라간 상태였다.

 

저 옆에 누워서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그의 살갗에 한 번 더 닿고는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촉감만으로 내 몸에서 터져나올 탄성을 들려주고 싶었다. 보고싶었다는 말로는 도저히 설명도 되지 않을 그 감정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서 온 몸에 열이 나기 시작했다. 죽음과도 같은 저 바깥의 어둠으로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어둠 속에는 분명 죽음 이외에 생동하는 삶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내가 소속되고 싶은 당장의 세계는 바로 이 세모진 공간 안에 불빛도 없이 진동하고 있는 차갑고 울퉁불퉁한 땅 위이자 그의 옆이었다. 

 

사랑한다고, 사랑이 뭔지는 몰라도 그렇게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준다면 너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겠어. 내가 주장하는 것이 너에 대한 소유도, 너를 창조해냈다는 권능도, 네가 떠난 것에 대한 분노와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도 아님을 네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너는 이미 우주가 되었고, 사실 그 우주는 나로부터 기인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만들었을지라도 끝없이 팽창하는 세계, 나 또한 이렇게 내 자신조차 알 수 없는, 비록 평평할지라도 끝도 없이 펼쳐진 평원과도 같은 우주를 안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음을, 나도 너에게 영원히 닿지 못할 것임을, 합일될 수 없음을, 그렇기 때문에 사랑이란 말을 섣불리 혀를 굴려 내뱉을 수 없음을, 책무와 책임에 대해서 태어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네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동시에 너를 구속하고 속박하고 싶은 이 마음을, 너 역시 나를 그렇게 묶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내 목을 마음껏 졸라줬으면 하는 마음을, 팔과 다리를 자른 채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끝없이 각자의 내장을 갉아먹고 싶은 이 마음을.

어떻게.

 

 

눈이 뻑뻑했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나는 웅크린 채로 일어났다. 눈물을 흘렸는지 눈가 근처에 마치 달팽이가 훑고 지나간 것처럼 축축한 흔적들이 길을 트고 있었다. 그는 없었다. 텐트를 놓아둔 채로. 새들이 울었고 점멸하던 빛들은 온데간데 없고 텐트를 가르고 나를 녹여버릴 것만 같은 밝은 빛만이 일렁였다. 텐트의 지퍼는 굳게 잠겨진 채였다.

 

문을 열고 나가자, 어젯밤에 칠흑이라고 생각했던 그 어둠이 품고 있던 것은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고요하게 흐르고 있던 한강의 한 지류였다. 그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아무런 확인도 받지 못했고 아무런 이름도 알지 못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하릴없이 매일 쓰러지듯 잠들고 도끼에 의해 쪼개지는 듯한 머리를 안고 일어나는 날이 반복됨에도 언제나 꿈은 생생했다. 어제는 그런 꿈을 꿨다. 끝날 것만 같은 트랙을 달려가는 그 사람의 옆모습을, 동경하는 관객처럼 관중석에 앉아 눈으로만 쫓는. 그리움이 아닌 이상하고 복잡한 절박함과 열의를 가졌으나, 이제는 트랙 위에서 끝없이 뛰어가는 작은 생물을 바라보는 타인이 되는 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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