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이제 미래는 없다

2020.10.17 02:4110.17

블라디미르: 자, 그럼. 갈까?

에스트라공: 그래, 가세.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作

 

내가 누구냐고?

누구긴 누구야. 침대에 누워서 눈만 껌뻑이는 병신이지.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이리 와줄 사람만 기다리고 있는.

언제나 다리가 문제였어. 항상 그랬지. 다리가 망가지는 데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어.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병원에 온 고등학생은 진통제를 놓을 때까지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지. 햄스트링이 찢어져 피멍이 든 아저씨는 그날도 재활치료를 받았고. 그래놓고는 이왕 다친 거 축구화 하나 새로 장만하겠다고 호탕하게 웃었어. 발목 인대가 늘어난 아가씨는 병원 앞에서 하이힐을 운동화로 갈아신었어. 뭘 훔치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야. 노부부는 나란히 앉아서 무릎 검사를 받았지. 할아버지는 소싯적에 공사장을 전전했고, 할머니는 고추 농사를 지었어. 연골이 남아날 수 없었겠지. 명준씨가 도착하기 전에는 앵커가 훈련병 하나가 다리를 다쳤다는 소식을 전했어. 훈련 중 사고가 발생했다더군. 고개 숙인 대변인을 두고 사람들은 수군거렸지. 결국, 그 훈련병은 다리 하나를 영영 잃었어. 담당의가 다리를 잘라버린 거지. 영수쌤이 그랬어. 그렇다고 사람 다리를 그렇게 쉽게 잘라버리냐고. 이상하게 그날따라 지팡이를 짚은 손이 어설펐어. 왠지 더 심하게 절뚝이는 것 같았지. 그 허벅지에서 근육을 잘라내는 수술에 나도 참여했었어. 대수술이었지. 서너 시간이 걸려서야 끝났으니까. 수술하면서, 우린 농담 삼아 그랬어. 차라리 뇌가 막히지 그랬냐고. 그럼 욕이라도 실컷 할 텐데. 영수쌤이 깨어났을 때는 아무도 그런 말을 하지 못했지. 그 눈을 보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어. 창훈쌤이 곱게 포장된 지팡이를 건넸을 때, 그때 그 눈이 아직도 기억나. 샅샅이 발린 제 몸을 보는 고등어나 갈치의 눈이었어. 영수쌤은 나지막히 그랬지.

“김 선생.”

내가 대답했어.

“네.”

“고마워요.”

명준씨의 눈은 달랐어. 영수쌤의 눈은 체념으로 가득했지. 말했잖아. 다 발라먹히고 앙상한 뼈만 남은 생선의 눈을 하고 있었다고. 명준 씨의 눈에는 날것의 공포가 들어 있었어. 구이가 아니라 횟감의 눈이었어. 비늘을 긁는 칼날을 보는 생선. 칼날에 붙어나는, 포가 떠진 살점을 보는 생선.

내가 달려갔을 때, 간호사들은 명준씨를 이미 침대에 옮겨 놓았어. 상미쌤은 명준 씨를 데려온 사람과 말하고 있었지. 어쩌다가 온 거냐. 어디를 다친 거냐. 신상정보는 물론이고. 그러나 그 사람은 아는 게 별로 없었어. 우리처럼 그날 처음으로 명준씨를 본 사람이었거든.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길래 데려왔습니다.”

그 사람으로서는 충동적인 선행을 저지른 셈이지. 유달리 봉사정신이 투철하다거나 의무감으로 무장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모르긴 해도, 그 사람은 그날 그 선택을 무척 후회했을지도 몰라. 그렇지 못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자기가 왜 죽어야 하는지는 몰랐을 거야. 명준 씨보디도 먼저 죽어버렸거든.

상미쌤이 그 남자와 말하는 동안에 나는 명준씨에게 물었어. 어디가 아프냐고. 명준 씨는 계속 그랬지. 아픈 데 없다고. 아픈 데 없다고.

“그냥 길 가다가 갑자기 넘어졌대요.”

상미쌤이 그랬어. 나는 명준씨의 다리를 여기저기 짚어가며 물었지.

“제가 어디 만지는지 알겠어요? 말해줄래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명준씨도 그저 그런 환자라고 생각했어.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거나 아예 느껴지지 않는데도 괜찮다는 환자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또 인정하기도 싫어서 튀어나오는 기계적인 부정.

“자, 지금 제가 어디를 누르고 있죠?”

“모르겠어요.”

“지금은요?”

“모르겠어요.”

두어 번 더 짚는데 명준씨의 목소리가 점점 이상해졌어. 뭐라고 해야 할까. 재채기나 기침을 참는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았지. 명준씨는 온몸에 힘을 너무 많이 줘서 바들바들 떨었어. 눈을 부릅뜨고 있었지. 목은 뻣뻣했어. 절대 내려다보지 않겠다는 듯이. 어떻게든 날 보지 않겠다는 듯이.

“선생님. 저 지금 걷고 있는 거 맞죠? 지금 누워 있는 거 아니죠?”

마치 도깨비의 다리를 주무르고 있는 느낌이었어.

우린 할 수 있는 검사라면 뭐든 했어. CT, MRI, 초음파. 피도 뽑고 EEG도 써 봤어. 주변 병력도 세세하게 조사해봤지. 하지만 두 달이 지나도록 우리가 명준씨의 가족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었어. 모든 의료진이 노력하고 있다. 꼭 원인을 밝혀내어 치료해 드리겠다. 명준씨 어머님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우시더군. 학교 간다던 아들내미가 왜 일어나지를 못하냐고. 명준씨 어머님은 명준씨가 다쳐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셨어. 누가 때린 거라고. 명준씨가 한사코 아니라고 말렸는데도 친구와 지인들을 찾아다니셨지. 그리고 꼭 두 달째 되던 날, 명준씨는 병원을 옮겼어. 전원(轉院) 수속 다음 날, 병원에는 법원에서 보낸 통지서가 왔지. 고소장이 접수됐다고 그랬어. 병원에서 환자를 완전히 망가뜨렸다고. 그래. 구급차로 옮겨지던 명준씨가 떠올라. 그때 명준씨가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두 눈이랑 오른손뿐이었어.

이상하지. 계속 명준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되묻게 돼. 그렇게 누워서 뭘 느꼈을까. 뭐가 느껴졌을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했을까. 왜 자기한테 이런 시련이 닥친 거냐고 저주했을까. 아니면, 절박하게 기도했을까.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처럼? 명준씨가 그랬어. 배가 계속 더부룩하다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도 자꾸 안에 그대로 있는 것 같다고. 그 말을 하기 전에는 우리 농담에 희미하게라도 웃었었는데. 관장을 했는데도 그럴 리가 없다고 했지. 아니라고, 지금 나올 것 같으니 모두 나가 달라고. 명준씨는 두 시간을 울었어. 화장실에서. 혼자. 나와서 한 첫마디가 그거였어. 저 좀 살려줘요. 그때도 구급차 안에서 그 생각을 했을까. 눈만 보고는 알 수 없었어. 눈은 마음의 거울이라는데. 아무래도 그건 헛소리일지도 몰라.

명준씨가 그렇게 다른 병원으로 옮겨지고 나서 우리는 모두 일상으로 돌아갔어. 일상이라 해 봐야 환자들을 보는 거였지만. 하지만, 다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말은 안 해도 알 수 있었어. 상미쌤도, 창훈쌤도, 심지어 영수쌤도. 도대체 뭐였을까, 그건. 병원을 상대로 고소했다는 기사를 놓고 과장이 하는 말을 들으면서도 그 생각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어. ALS? 파킨슨? MS? 길랑-바레? 루푸스는 아니었는데. 옮겨간 병원에서는 무슨 병인지 알아냈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어. 아마도 우리가 했던 검사를 전부 다 다시 했겠지. 그리고 당황한 거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런 이상도 없었던 거야. 차라리 뭐가 잘못된 거였다면 좋았을 텐데. 차라리 우리 기계가 고장난 거였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무도 죽지 않았을 텐데.

전화가 온 건 엉뚱한 병원이었어. 명준씨 때문에 고소당했다는 뉴스를 봤다고 했지. 그리고 자기 병원에도 비슷한 환자가 있다고 했어. 나흘 전에 입원한 환자가. 명준씨를 우리 병원으로 데려온 사람이었어. 어깨를 움직일 수 없다고 했다더군. 정확하게는, 계속 기지개를 펴고 있는 느낌이라고 그랬대. 축 늘어져 있는 팔을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대. 분명 느낌이 왔대. 그리고 전화한 당일 아침에 그 환자가 다른 증상을 호소한 거야. 목을 돌릴 수 없었어. 의사가 고개를 왼쪽으로 밀어도, 오른쪽으로 밀어도, 목에는 돌렸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대.

그 전화가 왔을 때, 나는 병원에 없었어. 수진이랑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었지. 세발자전거는 확실히 느렸어. 조금 타는 것 같더니 금방 싫증을 냈지. 내가 타는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떼를 썼어. 자기는 큰 게 좋다고. 자기한테는 큰 게 맞는다고. 앉으면 페달에 발도 안 닿으면서. 몸이 아직은 작다는 걸 확인하고 나니 애가 시무룩해지더군. 그래서 수진이를 태우고 두어 바퀴를 돌았어. 태워달랄 때는 언제고 높이가 훌쩍 높아지니까 수진이는 내 손을 꼭 잡았어. 또, 무섭달 때는 언제고 반 바퀴밖에 안 돌았는데 조금 더 빨리 달리라고 재촉했지. 공원은 넓었고, 그래서 한 바퀴 도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지. 바람이 좋았어. 기온도 딱 맞았고. 차 근처에 와서 내리라고 하니 수진이가 한 바퀴만 더 돌자고 했어. 그럴까 싶어서 이번에는 반대로 자전거를 몰았지. 다리 아래쯤에 왔을 때였어. 전화벨이 울리더군. 그래. 상미쌤이었어. 대뜸 명준씨 얘기를 했지. 두 번째 케이스가 나왔다고도 했고. 묘하게도 우리는 모두 들떠 있었어. 안 그런 척 했지만 들떠 있었다고. 드디어 원인이 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 나는 바로 수진이 엄마에게 연락했어. 화를 냈지. 당연했어. 그날 하루는 내가 보겠다고 했으니까. 수진이 엄마는 의사라는 족속은 믿을 수가 없다고 비웃었어. 그럼 이번엔 변호사를 사귀라는 농담을 하진 않았어. 사귈 때는 자주 하던 말이었는데. 사법연수생을 사귀라거나, 대기업 연구원을 사귀라거나. 심지어는 재벌가 아들이랑 사귀라거나.

그날은 전화의 연속이었지. 병원마다 전화를 걸고, 명준씨 같은 환자가 있는지 물어보고, 그걸 정리하고. 전화 받는 사람들마다 반응은 똑같았어. 마비 환자야 많죠. 우리도 나름 큰 병원이에요. 그럼 내가 물었지. 원인을 모르는 환자는 없냐고. 없다는 병원이 태반이었고, 있다는 병원은 검사가 안 끝난 경우가 태반이었지. 남은 병원은 총 세 곳이었어. 세 곳, 세 케이스. 명준씨까지 포함하면 총 네 케이스. 그게 겨우 수도권만 포함한 수치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렸지. 저녁 늦게 상미쌤은 명준씨를 케어하고 있는 병원 담당의와 싸웠어. 정확하게는 전화를 받지 않는 명준씨의 어머님과 싸운 거지. 우리는 아무도 명준씨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 지금도. 아직까지도.

손이 이상하다는 건 그날 밤늦게서야 깨달았어. 너무 바빴던 탓에 처음에는 뭐가 이상한지도 몰랐지. 환자들 보랴, 명준씨랑 유사한 케이스 찾으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어. 그 와중에도 응급환자는 계속 들어왔지. 교통사고는 예사요, 추락, 실족, 뇌졸중, 심장발작, 고열, 절단 등등등. 사람만큼이나 다친 곳도, 원인도 제각각이었어. 그래서 저녁을 열 시쯤 허겁지겁 먹고 의자에 눕다시피 앉으니까 그때 느낌이 오더라고.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엄지손가락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어. 마디는 잘 움직이는데 옆으로 펴지지 않았지. 힘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없었어. 엄지맞섬근이 마비된 거야. 손끝에는 분명 힘이 들어오는데, 쿡쿡 찌르면 느낌도 오는데, 펴지지를 않았어. 말도 안 된다고 머릿속으로 생각하면서 실제로 움직이지 않는 손을 보니 어이가 없었지. 더욱 이상했던 건 뭔가가 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야. 그것도 선명하게. 움직이지 않는 그 자리가 묵직했지. 묘하게 따뜻했어. 가볍게 위아래로 살짝 눌리는 느낌이 말이야. 아직도. 지금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 정확히는, 말할 수 있을 때는 말하지 않았고 말하지 못할 때는 말할 필요가 없었어. 감각이 있다는 느낌과는 별개로 그 ‘마비’는 팔을 타고 위로 퍼져나갔어. 손목이 굳어버리고 팔뚝에는 옷감이 스치던 느낌이 그대로 남았지. 그리고 곧, 팔꿈치가 굽혀지질 않았어. 그때는 감출 수가 없었지. 감춰서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우리 병원만 해도 쉰 명 가까이 되는 환자들이 그 병 하나를 이유로 입원해 있었으니까.

전염병이라고 그랬어. 미국인이었던 것 같아. 그래. 그 미국인이 방송에 나와서는 전염병일지도 모른다고 했지. 환자와 접촉자들을 격리해야 한다고 그랬어. 사람들은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지. 세계적인 석학이라는데 틀리겠어, 생각한 거지. 우리는 아니었고. 전염병이라면 어떻게 퍼진 걸까. 바이러스? 박테리아? 곰팡이? 아니면, 프리온 같은 단백질? 사람마다 진행 속도도 다르고 병원체도 없는 전염병이 있을 리가. 그건 마치 골절상이 전염된다는 말 같은 헛소리였어. 외국의 한 방송국에서는 우리나라가 초동대응에 실패했다고 했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 명준씨는 첫 케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이 금방 밝혀졌거든. 두 번째, 세 번째도 아니었지. 147번째 환자였어, 명준씨는. 말이 돼? 전세계에서 146명이 원인불명의 마비 증상으로 쓰러지고 있는데 아무도 그걸 몰랐다니.

하지만 우리도 대안이 없었어. 전염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럼 뭐냐는 질문에 부딪혔어. 당연히 설명할 수 없었지. 전염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들이민 환자 간 접촉 사례들은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첫 23명의 환자를 설명할 수 없었고. 결국, 정부는 병원과 환자들, 접촉자들을 격리하기로 했어. 병원 주변으로 간이 외벽이 세워지고 소위 말하는 ‘방역’ 요원들이 문 앞에서 출입하는 차량들을 소독했지. 그러다 약품을 대던 운전기사가 입원하고, 약물을 뿌리던 요원이 입원하고, 그들의 동료와 상관이 입원하고, 그들의 가족들이 입원했어. 우리에게 사건의 경위를 물었던 조사관들도 입원했지. 전염병 대응 매뉴얼을 왜 지키지 않았는지, 왜 첫 사례를 보고하지 않았는지 캐묻고 돌아가서는 다시 구급차를 타고 돌아왔어. 살려달라고 했어. 명준씨처럼. 그들이 묻어버린 사람들이 아직 말할 수 있을 때 부탁했듯이.

그래. 그들은 환자들을 묻었어. 사지를 움직일 수 없고 동공마저 멈춰버린 사람들을. 심장마저 굳어버린 사람들을. 그들의 기준이었지. 전신이 마비되고, 동공이 풀리고, 심장이 멈추고. 처음에는 차출된 군인들이 묻을 구덩이를 파고 사람들을 옮겼어. 그러다 그 군인들까지 마비됐지. 처음에는 총 50명이 들어왔었어. 방독면을 끼고 방호복을 차려입은 그들은 세 명씩 조를 나눠서 한 번에 한 조가 2분간 구덩이를 팠어. 구덩이를 모두 파고 나서는 47명이 돌아갔지. 마비된 두 명과 조원 한 명이 병원에 남았어. 그리고 다음에는 40명이 들어왔어. 이번에는 31명이 돌아갔지. 그리고 25명이 들어왔고. 다음에는 12명이 들어왔고. 그리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어. 아무도 나가지 않았고. 그때부터는 의사들이 환자를 묻고 환자들이 환자를 묻었어. 묻는다고? 아니야. 그건 매장이 아니지. 위를 흙으로 덮어야 매장이지. 그래. 그건 매장도 아니야. 그건 투기야. 배출이고.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 명색이 의산데. 사람 살리는 게 업인데 입 닥치고 있었어. 우리도 묻었거든. 내가 아직 팔이 굳어가고 있다는 걸 들키지 않았을 때, 온몸이 마비되고 동공이 풀리고 심장이 멎은 환자가 나왔어. 팔을 들어보라는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고 청진기를 댔는데도 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 맥박은 짚이지 않았고 숨을 쉬지도 않았어. 가슴에 귀를 대도 심장 뛰는 소리 한 번 안 났어. EEG는 그래프를 계속 그리고 있는데도 기계는 계속 삐-소리를 냈어. 아무도 CPR을 시도하지 않았지. 전기신호가 흐르고 있는데도 심장이 멎은 것이니 소용이 없을 거라는 식으로 합리화한 건 창훈쌤이었어. 그것마저도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겨우. 그냥 무서웠던 거야. 그런 합리화도 못할 만큼 무서웠던 거야. 우리 전부. 굳어버릴 것 같아서. 죽을 것 같아서. 굳어가는 걸 아는 나는 왜 무서웠냐고? 달랐거든. 어렴풋이 예상하던 최후와 실제로 보는 그 끝은 너무 달랐거든. 수진이 생각이 났어. 수진이는 괜찮은 걸까. 그날 그 환자를 묻고 전화를 했었지. 괜찮다는 말을 듣고, 괜찮다는 말을 하고 솔직히 기뻤어.

그 환자를 어떻게 처분할지를 두고 우리는 투표했어. 이 병동에 있는 모두가 모였지. 마흔 명쯤 되는 의사들. 그 두 배 정도 되는 간호사들. 환자의 뇌는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불쑥 나왔어. EEG 신호는 있었으니까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지.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 기기를 머리에 꽂으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 의견은 자연스레 묵살당했어. 발언자조차 입을 다물었다고. 이건 살인이라는 비난의 목소리. 죽은 사람을 어떻게 또 죽이냐는 옹졸한 옹호. 당신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공격이 가장 기억에 남아. 내가 당신을 묻을지도 모르고, 당신이 나를 묻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기억에 남아. 그리고 그 대답도 잊을 수 없어.

“최쌤은 저렇게 돼도 계속 살고 싶어요?”

기권표가 24장, 반대표가 1장 나왔어. 과반이 넘었으므로 우리는 병원 뒤뜰을 팠지. 사람들이 별로 볼 일도 없는 외지고 좁은 곳이었어. 그곳을 파고 사람을 묻고 다시 덮었어. 눈에 안 띌 곳을 찾는다고 한 게 그 자리였는데, 다행히 군인들은 훨씬 넓은 공원을 선택했지. 그날 얘기는 누구도 꺼내지 않았어. 반대표를 던진 영수쌤도.

아까 영수쌤이 옆에 앉았을 때 말이야, 그때 물어보고 싶었어. 왜 반대표를 던졌냐고. 그럴 수가 없었지. 이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거라고는 눈알 두 개, 심장이랑 횡경막, 그리고 새끼손가락 하나가 전부니까. 웃기지 않아? 가장 먼저 굳은 게 오른손 엄지손가락인데, 오른손 새끼손가락은 아직 움직일 수 있다니. 겨우 마지막 한 마디뿐이지만.

영수쌤은 사람 묻은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 물끄러미 날 한참을 바라만 봤지. 그러더니 자기 왼손을 나한테 들이댔어. 엄지와 약지가 움직이지 않았어. 나머지 손가락 세 개가 주먹을 쥐는데, 엄지와 약지만 움직이지 않았어.

“김 선생.”

나는 대답할 수 없었지.

“나는 얼마나 남았을까?”

“하루? 한 주? 한 달? 아니면, 일년?”

그러더니 입을 내 귀에 바짝 가져다 댔어.

“듣고 있냐, 승준아?”

“정말 죽이고 싶다. 널 죽이고 싶어.”

그러더니 그랬지.

“수진이 잘 있더라. 오늘 아침에 연락 왔어. 아빠 찾더라.”

나는 울었어. 눈물이 흐르진 않았지. 아마도. 눈앞이 흐려지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눈물이 나진 않았을 거야. 그래도 울었어. 성대를 떨 수도 없고 눈물을 흘릴 수도 없지만, 어쨌든 울었어. 아직도 손에 느낌이 있어. 아주 조그만 압력이 느껴져. 아주 소소한 온기가 느껴져. 수진이겠지. 수진이일 수밖에 없지. 그때 알았어. 영수쌤이 날 죽이고 싶다고 했을 때. 자전거에서 수진이가 날 잡은 바로 그 시간이 도장처럼 쾅 찍힌 거야. 지금 귀에 맴도는 영수쌤의 지팡이 소리처럼. 그 소리가 내 귀에 남은 것처럼. 그 온기가 느껴져. 그 온기가.

만일 이렇다면 어떨까? 이 병이란 녀석이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똑같은 신경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는 거라면? 근육이 멈춰버린 시점에서, 몸의 모든 기능이 멈춰버린 바로 그 시점에서 발생한 신경 신호만을 반복해서 뇌에 보내고 있는 거라면? 그러면 내 몸에 남은 수진이의 손바닥도 영수쌤의 지팡이도 설명할 수 있어. 그거라면 모두 설명할 수 있어. 이렇게 병신이 되어서야 그 쉬운 걸 깨닫다니. 이걸 알려줘야 해. 이걸 말해줘야 해. 눈알을 굴려서라도 어떻게든 알려줘야 해. 하지만 영수쌤이 방금 왔다 갔잖아. 아까 체크도 다 했던 것 같은데. 금방 누가 올까? 와야 하는데. 제발, 눈이 움직일 때 와야 하는데.

잠깐만,

당신이 느껴져. 지금 날 붙잡고 있잖아. 내 팔을 붙잡고 있잖아. 앞에 아무도 없는 걸 보니, 이건 병 때문이야. 누가 내 팔을 잡았던 거야. 다시, 기억을 떠올려 보자. 당신은 내 팔을 잡았었어. 양손으로. 누가 그랬을까? 누구지?

누구지, 당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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