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방문>

 

초인종을 누른다. 낯선 이의 방문에 께름칙한 얼굴이 나올 거라 기대했지만 소년은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의식적으로 소년의 손목이나 목 같은 부위를 자세히 관찰하였다. 그런 시선 역시 아무렇지도 않았던 걸까. 소년은 몸을 비켜 문을 열어 주었다.

 

들어오실래요?

 

미코는 소년을 따라 앉은뱅이의 의자에 앉았다. 소년이 부엌으로 들어가고 주전자 끓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미코는 집을 죽 돌아보았다. 날카로운 물건이나 밧줄 같은 것이 널브러져 있지도 않았고 손목이나 목을 일부러 가리고 있지도 않았다. 미코는 안도의 숨을 내었다. 급하게 오느라 빈손으로 온 것이 민망해 병원 숙직실에서 챙겨 두었던 군것질거리들을 탁상 위로 조심히 놓아 두었다. 소년은 찻잔을 들고 미코의 오른편에 살며시 앉았다. 

소년이 둔 잔으로 따뜻한 김이 폴폴 거린다. 찻잎 냄새. 미코는 말들을 정리했다. 어른스럽게 무엇을 먼저 물어볼까.

 

왜 오셨어요?

 

미코는 어릴 적부터  조리 있게 말하는 재주가 없었다.

 

그게 다리도 다 안 나았잖아. 아침은 잘 먹나 싶고 또...

 

건장한 나이의 남자아이가 들으면 오해할만한 말이 두서없이 쏟아진다. 자신의 앞에서 옆 모습을 보이는 이 소년은 그런 오해들을 생각하지도 않는 것 같다. 무뚝뚝하게 답한다. 

 

아직 아프긴 한데 참을 만 해요. 아침은 거르게 되고.

 

다음은 어떤 말을 해야 되지. 그리고 이 아이에게 어떤 위로를 해야 되지. 머릿속이 복잡해지지만 정리는 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대화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코는 어른스러운 말을 차치하고서 자신이 묻고 싶었던 것들을 말하기로 한다.

 

너 혹시나 자해 같은 건 안 하지?

 

미코는 소년의 옆모습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혹시나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지. 소년은 웃지도 당황스러워하지도 않는다.

 

안 해요, 그런 거.

 

세상의 모든 농담이란 전부 빨아들일 것 마냥 소년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앉아 있다. 미코는 어쭙잖은 충고나 위로 같은 말을 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생각 그대로 말하였다.

 

그래, 하지 마 그런 거.

혹시나 도움 필요하면 전화해.

 

소년의 배웅을 거절하며 거리로 나온다. 그의 집은 모자가 살기에 작고 좁아 보였다. 누구 하나라도 사라지면 휑할 그 작은 공간에서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을 겪고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을 사람은 없다. 집을 나오는 문밖으로 상자들이 켜켜이 쌓여있다. 낡고 쓰지 않는 장난감과 물건들. 바래진 책들과 망가진 전자제품들. 아주 떠나버릴 듯 소년의 집은 제 속에 든 것들을 게워내고 있는 듯 보였다.

 

 

<10월의 그>

 

- 다음 장소로 가야 해요.

 

마사코는 마을의 큰 사거리가 있는 곳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 마사코 씨 거기에 가도 아무것도 없어요.

 

보도를 건너 있는 양복 집에서 인도를 따라 죽 걷는다. 마을의 동쪽, 조금 떨어진 곳까지 그녀는 걸었다.

 

- 마사코 씨 가서 무얼 할거죠?

 

시장이 나온다. 야채들에 묻은 흙 내를 가로질러 라면 가게의 깃발을 지나친다. 이제 곧이다.

 

- 이미 지나간 일이에요. 한참 지난 뒤에요, 제발.

 

전에 살던 옛집. 옛집에서 살던, 전에 그 가족. 

 

- 아무것도 없어요. 마사코 씨.

 

옛날옛날,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가족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며 즐겁게 살고 있었죠.

메시지가 멈춘다. 더는 보내오지 않는다. 그 존재도 알고 있었던 것이리라. 마사코가 향하고 있는 곳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그곳은, 그때 그곳은, 마사코와 그녀의 아들을 오래도록 잡아두었던 족쇄와도 같은 그곳은.

 

'오와히라 역'

 

전철 소리와 쇠 음. 역으로 전철이 들어오면 방송되던 짧은 음악. 변하지 않은 그때 그대로의 공기. 10월의 바람이 불었고 가을비에 젖은 낙엽 냄새도 났다. 그곳에서 그가 서 있었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경찰들이 청취하여준 사정은 부주의하게 넘어진 단순한 사고사였다. 

 

열차가 마사코의 얼굴을 스치며 지나간다. 이곳에 있었다. 이 자리에 서 있었다. 마사코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었다. 

눈물이 흘렀고 마사코는 눈을 꼭 감았다. 다시 과거로, 과거로 이동한다.

 

 

<빌려주세요>

 

선배 간호사가 건네어준 전화는 역에서 걸려온 연락이었다. 

 

- 저기, 부모님 되십니까?

 

네?

 

미코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깜짝 놀라 주위를 살피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무슨 소리시죠?

 

- 학생 하나가 몰래 전철을 타려 해서요.

 

미코는 어림짐작하여 보았다. 혹시 그 아이일까.

 

- 저기, 실례가 되었다면 이만 끊겠습니다.

 

아니에요. 거기가 어디죠?

 

미코는 병원 일도 내팽개치고 곧장 전철 역으로 달려갔다. 

 

소년은 역무실 간이 의자에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미코는 역무원에게 사정을 들으며 소년이 지불하지 못한 표값을 건네었다. 미코는 소년을 데리고 나온다. 

 

어디로 가게?

 

죄송해요.

 

아니, 그걸 묻고 싶은 게 아냐.

어디에 가려 한 거야, 어머니 찾으러?

 

소년이 고개를 가로 젖는다. 머리를 두 손으로 잡으며 미코는 엄하게 물었다.

 

그럼 뭐하러 가는 거야?

 

모르겠어요.

 

미코는 한숨을 내쉰다. 이대로 소년을 내버려 두기엔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미코는 소년의 표를 확인하고 곧바로 무인 발행기로 걸어갔다. 소년의 손을 잡고 이끈다. 이 아이가 무엇을 하려 하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전철이 들어오고 안내 음성이 역 내로 울려 퍼진다. 

 

안전선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미코는 저도 모르게 소년의 앞을 손으로 막으며 자신의 뒤로 감쌌다. 

 

가자.

 

두 사람은 전철을 올라 탔다. 행선지는 '오와히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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