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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적멸(寂滅)의 경계에서

2019.02.24 22:3402.24

 

적멸(寂滅)의 경계에서

 

 

 


  “아빠. 왜 혼자 쓸쓸하게 이러고 있어?”

  묘는 누구도 찾지 않는 산허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벼랑 끝에서 발아래 도시를 힐끔 내려다보며 그렇게, 언제나처럼 처량하게, 아버지는 죽어서까지 당신의 성미를 버리지 못하고 불편한 모양새로 뉘어져 있었다.

  “엄마. 하라부지가 여기 계신 거야?”

  “그래. 이 안에 잠들어 계신 거란다.”

  그녀는 애써 미소 지으며 은미에게 답해주었다.

  “하라부지 춥겠다.”

  “응. 그렇겠구나. 많이 추우실 거야.”

  “실은 은미도 추워.” 

  은미가 그녀의 다리를 꼬옥 끌어안았다. 조그만 손이 떨고 있었다.

  “그래. 할아버지한테 절 두 번만 하고 내려가자. 우리 은미 할 수 있지?”

  “응! 은미는 착해!”

  은미는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무덤 앞으로 달려가 철퍼덕 엎어지듯 절을 했다. “하라부지,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세요!” 하고, 앙증맞은 목소리도 내었다. 그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옛 생각을 했다. 기억 속에서 그녀는 아버지의 목매단 시신 아래 주저앉아 편지를 읽고 있었다.

 

 

  미안하다 다애야. 시체는 불태워주기 바란다. 시체가 다 타고 뼈만 남으면 가늘게 빻아서 여기 발아래 깡통에 보관해 줬으면 한다. 먼 훗날 네 엄마가 죽으면 그 뼈도 같이 빻아서 깡통에 넣고 흔들어 섞어주렴. 누가 누구 뼈인지 아무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뒤섞이면 아무 곳이든 네가 원하는 곳에 묻어다오.

 

 

  그녀는 편지를 읽자마자 그대로 쓰러져 기절했다. 눈을 떴을 땐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자신의 눈물인가 했는데, 엄마가 곁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다애야.” 엄마는 아빠와 똑같은 말을 했다.

  장례는 빠르게 이루어졌다. 엄마는 아빠의 유언을 지켜주지 않았다. 시신을 화장하는 대신 이 산속에 가져와 묻어버렸다. 망설임 없이 신속하게. 딸이 볼까 무섭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는 내내 엄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녀에게 속삭였다.

  “미안하다 다애야. 엄마는 외로워서… 외로워서 그랬어.”

  외로움이 대체 무엇이기에.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아빠를 죽인 걸까?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3개월 만에 엄마를 재혼시킨 걸까.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내가 이렇게…

  “엄마!”

  갑작스런 외침소리에 놀란 그녀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은미가 그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은미야, 왜?”

  “나 절 다했어.”

  “두 번 했어?”

  “응! 두 번 했어.”

  그녀는 힘겹게 팔을 들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했어. 착하다, 우리 은미.”

  산 아래로 내려오니 자동차 한 대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어떤 자동차보다도 검고 긴 리무진이었다. 그녀는 수행원들을 향해 한숨을 내쉬었다.

  “좀 더 평범한 자동차는 없었나요?”

  “죄송합니다. 대통령님의 특별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그녀는 더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은미를 리무진에 태웠다. 그리고 자신도 리무진에 올랐다. 리무진이 출발하자 조수석에 앉은 수행원이 무전기에 대고 바삐 명령을 내렸다. 어디선가 똑같은 리무진 두 대가 더 나타나 그녀가 탄 자동차의 앞뒤를 감쌌다.

 

 


불과 1년 전의 일이다.

  어느 가을 저녁, 하늘에 또 하나의 달이 나타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는 그것이 거대 외계문명의 항성 간 우주선임을 밝혀냈다. 최초의 교신이 성공하고, 수천 종의 지적 존재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는 가장 먼저 그들의 이름을 물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이름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고 했다. 인류는 고심 끝에 그들을 ‘은하연대’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그들 모두의 활동 범위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은하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여러 은하’ 혹은 ‘우주’라는 단어 대신 ‘은하’가 채택되었다.

  둘째, 그들은 하나의 국가나 연방, 종족 같은 단위로 묶이지 않았다. 각기 다른 별에서 태어난 그들은 은하 전체 생명체들의 이권을 대변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의무나 권리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인류는 그들에게서 어떠한 사회 시스템의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느슨한 공동체적 규범 정도가 전부였다. 그래서 ‘제국’이나 ‘연방’, ‘정부’ 같은 단어 대신 ‘연대’라는 단어가 채택되었다.

  인류로부터 불릴 이름이 정해지게 되자, 그제야 준비가 되었다는 듯 ‘은하연대’는 이 별을 찾아온 목적을 밝혔다.

 

 


어느새 은미는 쌔액 쌔액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시계를 보았다. 탑승까지는 앞으로 열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더위를 느낀 그녀는 목에서 스카프를 풀어 손에 쥐었다. 이걸 선물해준 게 누구였더라? 엄마? 은정이? 아니면 석현 씨?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해냈다. 아, 내가 직접 샀구나. 홍대 앞을 걷다 충동적으로 구입했었지. 만오천 원짜리 치고는 참 괜찮다 그러면서.

  그러고서 생각해보니 지금 입고 있는 재킷도, 블라우스도, 스커트도, 구두도 전부 스스로 구입한 것들이었다. 심지어 브로치나 반지까지도 그랬다. 타인과 연관된 건 하나도 없구나. 그녀는 거기에 무의식적인 메시지가 있다고 느꼈다.

  지루해진 그녀는 아무 생각 없이 스카프로 매듭을 만들기 시작했다. 길게 꼬아 한쪽 끝과 끝을 어긋 지어 통과시키고, 끝까지 쭉 잡아당겨 팽팽해질 때까지 힘을 준 다음, 완성된 매듭을 두어 번 잡아당겨 마무리했다.

  “잘 매듭지으셨나요?”

  수행원 하나가 물었다. 그녀는 깜짝 놀라 스카프를 감추었다가, 그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아버지의 묘소에 잘 다녀왔느냐고 물었던 것이었다.

  “글쎄요. 오히려 매듭을 풀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차가 십분 정도 더 달리자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깝다면 가까운, 멀다면 멀다고 할 만한, 교외의 작은 저수지 옆에 집이 한 채 세워져 있었다. 리무진은 그 앞에 멈춰 섰다.

  “여기인가요?”

  그녀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수행원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모친께서 이곳에 살고 계십니다.”

  “그밖에는요?”

  “그밖에?”

  “뭐 강아지라던가, 고양이라던가, 자식이라던가, 남편이라던가…”

  “아무도 안 계십니다. 모친께선 혼자 생활하고 계십니다.” 수행원은 머뭇거리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법적으로도요.”

  그녀는 아직 잠이 덜 깬 은미의 손을 잡고 현관 앞에 섰다. 초인종을 누르려는데 문이 열렸다. 십 년 만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몸을 돌려 거실로 향했다. 그녀는 은미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

  모녀는 꼼짝 않고 서서 한참 동안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어떻게 살고 있는 건지, 어디가 어떻게 변한 건지, 아픈 데는 없는지... 그저 눈빛으로만 서로를 꼼꼼히 보듬었다. 이윽고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부탁드려요. 엄마.”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은미는 엉거주춤 넘어질 듯 앞으로 걸음을 옮기다 할머니의 품 안에 쏘옥 안겼다.

  “이름은 은미라고 해. 민. 은. 미. 나이는 다섯 살. 생일은 오월 십이일. 한글은 다 뗐구, 요즘은 알파벳도 간간히 읽어. 구구단은 아직 오단까지밖에 못 외웠어.”

  은미는 처음 보는 할머니의 품이 그리 싫지만은 않은 듯, 쪼로로 등 뒤로 걸어가 할머니의 다리 뒤로 숨었다. 그러고선 빼꼼 고개를 내밀어 엄마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이제껏 할머니와 살아왔던 아이가 제 어미와 처음으로 대면하는 장면이라 여길 것만 같았다. 사실은 정반대인데. 그 모습을 보니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은미는 지금을 꿈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마치 꿈처럼 지나갈 수만 있다면 그녀로선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렇게 꼭 떠나야겠니? 가끔 전화하는 것 말곤 몇 년 동안 살아있는 기척 한번 제대로 안 냈으면서.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선 니 애를 던져놓고 떠나겠다는 거니. 꼭 이래야만 하겠어?”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눈썹이 서글픈 모양새를 하며, ‘미안해요 엄마.’ 그렇게 소리 없이 말할 뿐이었다. 엄마는 딸의 그런 표정을 바라보기 힘들어 그만 딸의 가슴 속에 얼굴을 파묻었다.

  “왜 네가 떠나야 해? 왜! 왜!”

  “난 괜찮아 엄마.”

  “이것아… 네가 무슨 죄가 있다고. 세상 천지 널린 게 똑똑한 사람들인데, 하필 네가 왜 저 먼 곳까지 가야 하냔 말이다!”

  “은하연대에서 날 지목했어. 내 능력이 필요하다면서. 나도 그걸 원했고.”

  “꼭 우주로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잖니. 석현 청년도 기다리겠다고 했다며? 아주 끝난 건 아니라고 그랬잖아. 응? 다애야...”

  그녀는 어머니의 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창밖을 보았다. 한 낮의 푸른 하늘 가운데, 새하얀 달 반 조각이 느슨히 흘러가고 있었다.

  달 아래에는 또 다른 조각이 떠 있었다. 갑작스럽게 하늘에 나타나 이제는 당연한 풍경의 일부가 되어버린 또 하나의 달. 그것은 마치 달의 나머지 반쪽이 떨어져 나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둘을 가져다 붙이면 꼭 맞을까?' 입술이 소리없이 중얼거렸다. 완전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반쪽으로 보이는 달은 사람들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 사실은 홀로 완전한 둥근 별이니까.

  “엄마, 그거 알아? 우주인들 중엔 암수를 가진 생물이 없대.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가 사랑해주지 않아도 충분할 만큼, 스스로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대. 어떤 환경이든, 어떤 시대든, 진화의 단계가 어느 수준에 다다르면 모든 생물은 더 이상 연인도, 가족도 만들지 않게 돼. 그게 이 우주의 정상적인 흐름이고, 자연의 올바른 섭리라는 거야.”

  그녀는 다시 한번 하늘을 보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우주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외로워지고 있었다.

  “너무 멀거든. 별들이 서로를 사랑하기엔,”

  그녀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별안간 가슴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았다. 엄마가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은 탓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그 남자 때문은 아닌 거니?”

  “응. 석현 씨는 조금도 상관없어. 그리고 은정이도, 은미도… 그리고 엄마도. 그저 나는…”

  외로워지고 싶을 뿐이야. 그녀는 남은 말을 애써 뱃속 깊은 곳에 감추었다. 이별할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줄 필요는 없으니까.

  “할머니…”

  은미가 제 할머니의 바지를 잡아당겼다. 엄마는 딸을 안은 팔을 풀고 바닥에 앉아 은미를 품 안에 끌어당겼다.

  “그래, 불쌍한 것. 이리 할미 품에 오렴. 옳지. 착하다.”

  엄마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뺨을 부볐다.

  “애가 가엾지도 않니? 요 조그만 게 평생 엄마도 없이 자라게 될 텐데 넌 엄마가 돼서 가엾지도 않아? 응? 다애야. 다시 한번 생각하렴. 부탁이야…”

  그녀는 은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은미는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그 조그만 입으로 나쁜 투정하나 부리지 않고, 눈물을 그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를 올려다보고만 있었다. 하나뿐인 내 아이 은미. 착한 은미. 네 잘못이 아닌데. 네 잘못은 정말 하나도 없는데. 미안해. 이렇게 못나고 이기적인 엄마여서 정말 미안해. 그녀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나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아.”

  “다애야…”

  “잘 있어, 엄마. 잘 지내렴, 은미야.”

  “얘야 가지 마. 제발 날 두고 가지 마.”

  그녀는 거세게 저항하는 어머니의 팔을 뿌리치고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현관을 나섰다.

  “엄마… 어디가?”

  등 뒤에서 은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목놓아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엄마도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자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을까 해서 뺨을 한번 훔쳐보았지만, 의외로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그녀는 도망치듯 다시 리무진에 올라 출발해 달라고 외쳤다. 

  ‘엄마… 어디가?’

  아이의 목소리가 고막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손 닿는 곳마다 푹 푹 허물어지는 시트의 사치스러운 감촉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는 왜 아이를 버리면서까지 이 짓을 하려는 걸까. 스스로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저 아이가 허공을 휘젓던 손짓이, 울음소리가, 호기심 가득했던 눈빛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될 뿐이었다.

  “랑데부 포인트로 향하시겠습니까?”

  수행원이 물었다.

  “아뇨. 아직 한군데 더 들러야 할 곳이 있어요.”

  “원하는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마음의 준비를 마친 듯, 차분하게 목적지를 알렸다.

  “은정이를 만나고 싶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리무진이 출발했다. 선행된 지시에 의해 도로는 깨끗이 비워져 있었고, 리무진은 막힘 없이 도로를 질주했다.

  그녀는 창밖으로 은하연대의 우주선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달과의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다. 공전궤도의 차이 때문이었다. 우주선은 달과 비슷한 크기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우주선은 달보다 훨씬 가까운 궤도에 위치했고, 그만큼 더 빠르게 지구를 일주했다. 달은 한동안 하늘에 남겠지만, 우주선은 이제 곧 머리 위를 지나쳐 반대편으로 사라져갈 예정이었다. 앞으로 두 바퀴. 그녀는 마음속으로 횟수를 헤아려보았다. 그게 앞으로 그녀에게 남겨진 시간이었다.

  리무진은 어느샌가 서울 시내로 진입해 한강을 따라 강변북로를 지나고 있었다. 왼편으로 스쳐 가는 63빌딩에는 그녀를 응원하는 수십 미터짜리 대형 현수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궁금해졌다. 그녀는 수행원들을 향해 물었다.

  “혹시 제가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는 알고 계신가요?”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부탁드려요. 아는 만큼이라도 좋아요. 사람들이 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한 사람이 입을 열었다. 이제껏 운전 하느라 한 번도 목소리를 낸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제가 과학은 잘 모릅니다만… 아무튼 이 우주라는 게 점점 팽창한다더군요. 허블인지 후블인지 하는 양반이, 그 뭐시기 망원경도 이사람 이름이라던데, 아무튼 그 양반이 백년도 전에 증명을 했다나요.”

  “그래서요?” 그녀가 재촉했다.

  운전기사는 으흠, 하고 한번 목을 가다듬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헌데 이것이 상식적으로 보면 중력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지구도 태양에서 멀어지지 않는 거고, 달도 지구를 도는 거고, 저기 저 우주선도 지구 위에 떠 있는 거 아닙니까.”

  “맞아요. 잘 이해하고 계시네요.”

  그녀는 마치 중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처럼, 친절하게 맞장구쳐 주었다.

  “흐흠, 그니깐 별들이 서로서로 잡아당긴다 하면 처음엔 멀어지다가도 나중에는 다시 점점 모여들어야 맞는 거지요. 그래서 결국에는 끌어당기는 힘 땜에 점점점점 가까워지다가 꽝, 하고 부딪쳐서 다시 원래처럼 한 점으로 모여야 하고 말입니다.”

  “맞아요. 어떤 과학자들은 별들의 팽창속도가 점차 느려질 거라 생각했어요. 결국 완전히 멈춰서고 나면 다시 수축하기 시작할 거라고요.”

  “네. 근데 희안하게 실제론 그렇지가 않다고 하더라고요.”

  “1998년에 초신성 폭발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결과 과학자들은 오히려 팽창이 점차 가속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별들은 우주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서로에게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점차 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게 돼요.”

  “테레비에서는 암흑 에너지인지 그런 게 있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그 에너지가 서로를 밀어낸다고요. 요전번에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유명하신 과학자가 나와서 하는 말이 참 가슴에 와닿았는데, 그 뭐더라, 우주는 점점 외로워질 거다 어쩐다 하는 거였지요. 젊은 양반이 덤덤하게 그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어찌나 소름이 돋던지.”

  “네. 우리는 점점 외로워질 거예요.”

  그녀는 멀리 사라져가는 두 번째 달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어허!”

  호통 소리에 깜짝 놀라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단호한 뒷모습이 그녀를 꾸짖고 있었다.

  “그래서 그걸 막으려고 저기에 올라타시는 거 아닙니까. 막- 중하신 책임을 짊어지신 분이 함부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닙니다. 부정 탑니다.”

  “그런가요?”

  “암요.”

  막- 중하신 책임이라… 저 사람들의 눈엔 내가 그런 존재로 보이는구나. 그런 거 전혀 아닌데. 

  어느새 우주선은 지구의 뒤편으로 사라져 완전히 보이지 않았다. 오후 2시의 강렬한 햇살이 가리워져 진짜 달도 모습을 감추고 없었다. 사라진 달처럼 그녀의 임무에 대한 대화도 자연스럽게 끊기고 말았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기사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다른 질문을 꺼내 들었다.

  “지금 만나 뵙는 분과 어떤 사이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은정이요?"

  은정이. 은정이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반사적으로 답했다. 

  “친구… 예요. 은정이는.”

  그냥 대답하지 말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중학생때무터 알고 지낸 사이에요. 대학도 같은 곳에 합격해서 4년 동안 수업도 함께 들었죠.”

  “단짝 친구로군요.”

  “전 항상 그 아이의 옆에 붙어 다녔어요.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편이었거든요.”

  은정이는 정말로 나에게 친구였을까? 은정이도 나를 그렇게 생각했을까?

 

 


어린 시절 그녀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을 싫어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의 섬세한 속마음을 열어 보이기까지 조금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물론 가끔은, 그녀가 기나긴 시간의 강을 건너올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번 마음을 열게된 사람들과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영혼의 단짝이 될 수 있었다.

  은정은 그런 영혼의 단짝 중 하나였다. 그녀와는 신기할 정도로 잘 맞았다. 모든 관심사가 겹치고, 쌓아온 지식도 비슷해서, 긴 말을 건네지 않아도 손쉽게 이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상대였다. 학교에서도, 방과 후에도, 주말에도, 그녀는 일상의 거의 대부분을 은정이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엔가 사랑에 빠졌다.

  같은 대학에 입학하기로 결정된 날, 그녀는 은정이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선뜻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대학 생활이 시작되면서 수업이 나뉘고, 점차 얼굴을 마주 보는 시간이 적어지게 되자 고백할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 겨울이 찾아올 즈음. 그녀는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은정이에게 고백했다. 복학을 앞둔 선배가 그녀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차마 얼굴을 보며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어려운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읽은 표시가 뜨자마자 곧바로 전화가 왔다.

  “미안해 다애야.”

  은정은 단 여섯 글자로 그녀의 세계를 무너뜨렸다.

  “어째서야?”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마음은 알고 있었어. 좋아해 보려고 정말 많이 노력도 해봤고. 하지만 난 네가 연인으로 느껴지지 않아.”

  은정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다정했지만, 또한 확고했다.

  “다애야. 네 잘못이 아니야.”

  “왜 내가 자책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네 목소리에서 느껴지니까.”

  은정이는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것은 가슴이 통째로 뜯겨나갈 만큼 아픈 일이었다. 그런 말을 하게 만든 것이 자신인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통화를 마친 그녀는 침대에 앉아 무릎을 끌어안고 떨었다. 이상하게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얼마 뒤 은정은 다른 남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전공의 대학원으로 진학했고, 각자 다른 연구소에 취직했다. 연락은 계속되었지만 서로 얼굴을 보는 일은 많지 않았다.

  취직하고 얼마 후, 은정은 사귀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결혼식엔 가지 않았다.

 

 


“도착했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수행원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호텔입니다. 한은정 씨 댁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요.”

  “알겠어요.”

  호텔 안으로 들어서자 직원이 그녀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주어졌으면 했지만, 엘리베이터는 도중에 멈추는 일 없이 최상층을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은정이가 보였다.

  “안녕.”

  은정은 반가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잘 지냈니?”

  그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았다. 테이블엔 홍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손수 준비한 모양이었다. 은정은 그녀를 부드럽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매끈한 입술에서 달콤한 말이 흘러나왔다.

  “머리가 많이 자랐네. 염색도 새로 했나 봐. 전엔 좀 더 옅은 갈색이었는데.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정말 예뻐. 치마도 잘 어울리고.”

  “5년이나 지났으니까.”

  그녀는 두 손을 아플 정도로 꼬옥 쥐었다.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네 기사를 읽고 있었어.”

  은정은 그렇게 말하며 신문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사진과 함께 1면 전체가 그녀의 기사로 되어 있었다.

  “타이틀이 <The One Who Walk Away from Earth>라니, 기자가 꽤 센스가 있어. 8면엔 네가 르귄의 팬이라는 이야기도 쓰여있더라. 사실 이거 1면부터 8면까지 전부 네 기사로 채워져 있어.”

  “그래…”

  “얘는, 어색하게 왜 이래.”

  은정은, 마치 한 번도 헤어짐이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동안의 아픔은 착각이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젊은 시절의 기억은 좋게든 나쁘게든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얘가 오랜만에 만나니 감을 완전히 잃었구나? 잔뜩 얼어가지곤. 그럼 긴장도 풀 겸 일 얘기나 해줘.”

  “일?”

  “언론에서 가르쳐 주는 건 말이 이랬다 저랬다 너무 모호해서 말이야. 나도 애 낳기 전까진 물리학도 나부랭이였잖냐. 핵심 관계자의 좀 더 전문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거지.”

  그녀는 조금 망설이다가, 설명을 시작했다.

  “별로 전문적이랄만한 이야기가 없어. ‘은하연대’의 기술 수준은 우리보다 월등히 앞서있어서 기초적인 부분부터 아예 이해가 안 되거든. 그러니 다들 필사적으로 소설을 쓰는 거지.”

  “암흑에너지를 차단하러 간다는 얘기는?”

  “그게 공식적인 방문 이유야. 그들이 어떤 이론을 기반으로 우주를 바라보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우주의 팽창에 대해서는 놀라우리만치 심플하게 설명할 수 있어. 이 우주에 ‘적’이 존재한다는 거지.”

  “적? 우주의 팽창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일종의 공격이라는 건가?”

  “그래. ‘적들’의 ‘우주’에 대한 공격. 우리를 흩어놓고 흩어놓아 최후의 하나까지도 완전히 혼자가 되도록, 보다 외로워지도록. 낙지를 토막 내는 것처럼 우리를 잘게 토막 내는 거지. 어쩌면 ‘은하연대’는 이 우주를 하나의 유기체나 유일신 같은 거로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

  거짓말이었다. 은하연대가 진실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낸 이 기만을 그녀는 수백 번도 넘게 써먹었다. 사람들은 매번 그녀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다.

  “그 ‘적’을 상대할 병사로, 하고많은 인류 중에 널 대표로 뽑은 거야? 하필 너를? 벌레 한 마리도 제대로 못 잡을 사람인데.”

  “'강함'에 대한 기준이 다르거든. 두 팔로 휘두르는 폭력 같은 건 이 넓은 우주에선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해.”

  서로에게 닿을 리 없으니까. 무슨 짓을 하든.

  “그들은 다양성을 원해. 다양한 문화. 다양한 경험. 어떤 상황에서도 해답을 도출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하거든. 그들은 적들과 대화를 시도할거야.”

  “대화?”

  “너처럼 둔감한 애는 평생 모를 거야. 그게 가장 폭력적인 수단이라는 걸.”

  쌀쌀맞은 말을 뱉고서, 그녀는 후회했다. 나란 인간은 끝까지 질척거리는구나. 이제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는데. 자괴감이 뼛속까지 침식했다.

  “거짓말이지?”

  은정이 말했다.

  “뭐?”

  “지금 했던 이야기. 전부 거짓말이지?”

  “응. 거짓말이야. 역시 들켰네.”

  은정은 살포시 미소를 보였다.

  “넌 남한테 상처 주는 말 같은 건 못하는 사람인걸. 누가 그런 거짓말을 믿겠어?”

  “70억 인류가 모두 그렇게 믿고 있는데?”

  “전부 바보야.”

  “맞아. 바보들이야.”

  거짓말처럼 긴장이 풀렸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진짜를 말해줘.”

  그녀는 결국 진실을 털어놓았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정부에서도 최고 극비 사항일거야. ‘은하연대’가 몇 사람에게만 알려줬거든. 그러니까 어디에도 말하면 안 돼.”

  은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숨을 한번 들이켰다. 그리고 말했다.

  “그들은 350년 정도로 본대. 인류의 남은 수명 말야. 350년 안에 우리가 서로를 쏴 죽이고 멸종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겉으로는 인류에게 경험을 쌓아주겠다고, 1만5천 년 후에 다시 돌아와 모두를 우주로 이끌 지도자를 돌려주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인류라는 멸종위기종을 보존하려는 것뿐이야.”

  “그럼 저건 움직이는 동물원인 거네.”

  “응. 사실 은하연대는 우주가 확산하는 걸 막을 생각이 없어. 그들은 타인의 온기를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그들은 홀로 완전하거든. 그 누구의 감정도 착취할 필요 없이, 그 누구의 육체도 탐할 필요 없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그저 우주를 떠돌 뿐이야.”

  “넌 그렇게 되고 싶은 거구나.”

  “응. 그렇게 되고 싶어.”

  그녀는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은정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옆에 섰다.

  “아. 저기.”

  은정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우리 집이네. 어휴 지긋지긋한 아파트. 관리비는 더럽게 많이 나오지, 애들은 크는데 빚은 쌓이기만 하지, 우리 윗집은 얼마 전에 새로 이사 왔는데 아들만 넷이래. 남자애 넷이 모이면 얼마나 거대한 소음이 만들어지는지 아마 넌 상상도 못 할 걸. 아무튼… 난 오히려 니가 부럽다. 거긴 적어도 대출 이자는 없을 거 아냐.”

  “야.”

  “아… 그 우주선 이용료 같은 거 막 노예처럼 약정 걸어서 할부로 갚아야 되고 그런 건가?”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두 사람은 한참을 깔깔거렸다. 한번 옛 추억 이야기가 시작되자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끝날 줄을 몰랐다. 학창시절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웃을 일이 많았었다는 사실도.

  “있잖아.”

  “응?”

  “나, 아직도 너 사랑해.”

  그녀는 한 호흡을 쉬고서 이어 말했다.

  “그냥 그 말을 하고 싶었어. 그래서 왔어.”

  “그럼 왜 떠나려는 건데? 나는 여기 있는데, 넌 왜 수만 광년이나 떨어진 곳으로 떠나려는 거야?”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은정도 더 이상 그녀를 붙잡지 않았다. 은정은 끝까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꾹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눈에 보여서, 그리고 고마워서, 그녀는 더욱 미안해졌다.

 

 


호텔을 떠나자마자 시계를 보았다. 네 시간이나 흘러 있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리무진을 향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나누셨습니까?" 수행원 한 명이 그렇게 물었다. 운전을 맡은 그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그 얘긴 묻지 말았으면 해요.” 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수행원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리무진이 출발했다. 

  잠시 후, 그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 치마는 절대 입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굉장히 확고했었던 것 같아요. 스무 살이 넘도록 한 번도 입은 적이 없었으니까.”

  “부모님이 강요하시진 않던가요?”

  “네. 오히려 원하셨죠.”

  “좋은 부모를 두셨네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녀는 잠시 뜸을 들였다.

  “어차피 저에 대해 다 알고 계실 테니 그냥 얘기할래요. 은정이와 잘… 되지 않은 이후로. 저는 여자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때부터 화장도 배우고, 머리도 기르기 시작했죠. 처음으로 치마도 샀어요. 처음 치마를 입었을 땐 묘한 흥분도 있었어요. 짧은 치마를 입을 때면 사람들이 모두 절 쳐다보는 것만 같았거든요.”

  “꼭 제 딸 이야기 같군요.”

  “그런데 사실 잘 되진 않았어요. 결국 죽기로 결심하기까지 했었으니까요. 나름 세련되게 한답시고 수면제를 가득 집어삼켰죠. 목을 매고 싶진 않았어요. 가까운 사람이 그걸로 죽었었거든요. 근데 약을 삼킨다는 게 그리 쉽지가 않더라고요. 원래 알약을 잘 못 삼키거든요. 꾸역꾸역 넘기다 결국 구역질이 나서 토하고 말았어요.

  그래도 삼키는 데 성공한 양이 꽤 되었던지, 저는 꼬박 나흘 동안 잠들었어요. 잠에서 깨어보니 병원이었죠. 누가 옮겨다 준 건지는 모르겠어요. 간호사 말로는 어떤 남자가 절 응급실에 데려다 놓곤 말도 없이 떠나버렸다고 했어요. 오래된 원룸에 살았었는데, 현관이 가끔 멋대로 열리곤 했거든요. 문틈으로 보기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니 누가 달려 들어와서 구해줬던 모양이에요.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가족들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사정했어요. 대신 그 대가로 모임에 참석하기로 약속하고요. '아픔을 나누는 사람들'이라는, 자살을 실패한 사람들의 모임이었어요.

  요즘은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오고 그러니까 아마 한 번쯤 보셨을 거예요.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서 서로의 사연을 듣고 들려주고 하는 거요. 좀 나아진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나아질 수 있을까 희망을 품기도 하고, 아픈 사연을 나누기도 해요. 사실 정말로 아픔을 나눠 갖진 못해요. 아픔은 각자의 것이니까요.

  아무튼 어느 하루는 제 차례가 왔어요. 제 사연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온 거죠. 뻔뻔스럽게 듣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받았으면 내놓는 것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에 저도 어렵게 제 이야기를 꺼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너무 좋아서 미쳐버릴 것만 같은데 그 사람은 날 조금도 생각해주지 않더라. 그래서 수면제를 삼켰다. 줄여놓고 보면 참 한심한 이야기죠.

  그 때 한 남자가 끼어들었어요. 그깟 연애 한번 실패한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요. 세상에 사랑앓이 한두 번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예요. 참 나쁜 사람이죠. 자기가 더 불행하다고 증명해봐야 남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텐데.

  지금이라면 맞서서 싸웠겠지만, 그땐 아무 반박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에게 한마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거든요. 그 남자는 신이 나서 저에게 점점 더 심한 욕을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한 사람이 일어서서 그 남자 앞에 섰어요. 그 사람이 커다란 몸집으로 그 남자를 가려주니 좀 살 것 같았어요. 마치 그 사람이 절 지켜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그 사람이 무겁게 내려다보고 있으니 그 남자는 더 이상 한마디도 못하더군요.

  후우. 지금도 한 글자 빠짐없이 기억나요. 그때 그 사람이 했던 말이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요."

  그녀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소중한 마음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를 꺼내놓았다.

  "타인의 섬세한 부분을 그리 쉽게 말하지 말아 주십시오. 누구에게도 남의 아픔을 ‘그깟’이라고 말할 권리는 없습니다.”

  “굉장한 분이군요.”

  운전기사가 말했다.

  “네 굉장한 사람이에요. 석현 씨는 저 같은 건 절대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죠. 전 그 사람에게 너무 큰 잘못을 했어요. 그래선 안 됐었는데. 정말 그런 짓을 해선 안 됐었는데.”

 

 


시간은 낮과 밤의 경계에 걸려있었고, 고도를 낮춘 우주선은 이제 완연히 둥근 모습을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여의도로 가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우주선의 랑데부 포인트 말씀입니까?”

  “네. 이제 미련은 없으니까.”

  수행원이 크게 핸들을 꺾었다. 리무진은 텅 빈 도로로부터 벗어나 마포대교 위의 수많은 인파 속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들에 시선이 향했다. 좋은 이야기. 고마운 이야기. 나쁜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 슬픈 이야기. 싫은 이야기. 다들 제멋대로야.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지, 수행원 한 명이 위로를 건네었다.

  “다들 부러워하는 겁니다. 다애 씨가 인류를 대표하게 된다는 사실을요. 그 대가로 무얼 지불하는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정작 자신들에게 내놓으라면 내놓지도 못할 사람들이 그저 생떼를 부리는 겁니다.”

  쾅. 어디서 돌이 날아와 창에 부딪쳤다. 유리 위에 하얗게 흉터가 생겼다.

  “생떼치고는 정열적이네요.”

  그녀가 평했다.

  계속해서 물건들이 날아들었다. 물병. 달걀. 페인트. 심지어 탄환도 하나 앞 유리에 박혔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도 비싼 차를 보내준 국가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사는 침착하게 리무진의 속도를 높였다. 다리를 통과하고도 한참을 달려, 길게 늘어선 철조망을 두 번 통과하고서야 더 이상 물건이 날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석현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놀란 눈으로 차에서 내려 그의 앞에 섰다.

  “여긴 어떻게…”

  석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그녀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약혼자 자격으로 우겼죠. 친구 중에 청와대 행정관이 있기도 하고. 어떻게 어떻게 들여보내 주더라고요. 하하 뒤쪽이 더 위력적이었던 것 같지만.”

  “왜 여기까지 찾아왔어요…”

  “약혼자니까.”

  “결혼식 날 드레스 던지고 도망간 사람이 무슨 약혼자라고.”

  “내 맘인데요.”

  그는 밝게 웃어 보였다. 새하얗고 가지런한 이가 보였다. 항상 바르구나 이 사람은. 항상 바르고 옳고 당당해서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

  “병원에서 처음 눈을 떴을 때도 그렇게 말했었죠. 내 맘인데요, 하고.”

  “것도 예의 없게 피 칠갑이 되어서 말이에요.”

  “내 피인데 뭐.”

  “다애 씨 그때 피 정말 많이 흘렸죠.”

  “그랬나요?”

  “응. 사람 몸에 피가 그렇게 많은지 처음 알았어요. 손목에서 콸콸콸 쏟아지는데 대체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손목을 꽉 움켜쥐고 냅다 병원까지 달렸죠.”

  “미안해요… 그땐 그냥…”

  “괴로웠지. 그 애한테 상처 준 자신이 싫어서,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져서, 근데 알약 삼키는 걸 잘 못해서 하는 수 없이 눈썹 다듬는 칼로 손목을 그었던 거잖아요?”

  “…미안해요. 지겹죠? 내가 너무 자주 이야기 했나 봐요.”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그때의 흉터가 뚜렷이 보였다.

  그녀가 팔을 감추려 하면 석현 씨는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부끄러운 일도 아닌데 뭘.’ 하지만 그건 부끄러운 일이었다. 타인에겐 부끄럽지 않아도 자신에겐 부끄러운 흔적이었다. 몇 번을 설명해도 석현 씨는 그런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그를 사랑할 수 없었다.

  “지금도 외로워지고 싶나요?”

  “네?”

  “우리 결혼식 날 말이에요. 지금은 외로워지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었죠.”

  “응…”

  “이제 충분히 외로워진 것 같아요?”

  그녀는 괜스레 고개를 돌려 멀리 하늘을 보았다. 우주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도착하는 데엔 앞으로 삼십 분쯤 걸릴 것 같았다.

  “글쎄, 잘 모르겠어요. 그땐 사랑받고 싶지 않았어요.”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걸요.”

  “아니, 그렇지 않아요. 나도 처음엔… 당신이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가 좋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녀는 주머니에서 스카프를 꺼내었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손안에 넣고 움켜쥐었다.

  “하지만 아니었어. 당신은 저 위에 있고, 나는 밑바닥에서 넘쳐흐르는 당신의 애정에 빠져 익사를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어요. 감정의 균형이 믿기지 않을 만큼 기울어져 있어서, 아무리 노력해도 저는 당신에게 받은 감정을 되돌려줄 수가 없었어요.”

  “한 번도 대가를 바랐던 적 없었어요.”

  “당신이 바라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니에요.”

  그는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두 손을 잡고, 자신의 마음을 최대한 부드럽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석현 씨. 당신은 내 눈물의 이유를 알기엔 너무 밝은 사람이에요. 나는 당신의 미소를 이해하기엔 너무 깊은 그늘을 가졌고요. 여기서 한 번 더 노력해본다 해도 우리의 진심이 서로에게 닿는 일은 없을 거예요.”

  “다애 씨 오랜만에 만나서 나 상처 주는 소리만 하네.”

  석현 씨는 그렇게 말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그는 상처 입는 법이 없었다.

  “미안해요. 한 번 내 목숨을 구해준 사람인데…”

  “두 번이에요.”

  그녀는 놀라 크게 눈을 떴다. 그리고 금세 이해했다는 듯 다시 쓸쓸한 눈을 했다.

  “그랬군요. 그럼 혹시 모임에 나왔던 것도...”

  “다애 씨를 돕고 싶었어요. 숨겨서 미안해요.”

  “아니에요. 고마워요. 정말로.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자리를 뜨려다 문득, 그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나, 아이가 있어요. 이름은 은미라고 해요.”

  “혹시…”

  “석현 씨 아이가 아니에요.”

  “몇 살인데요?”

  “다섯 살.”

  시기를 거슬러 헤아려보던 석현은 침묵했다.

  “그래요. 맞아요. 석현 씨와 결혼을 준비하던 그때에요. 은미를 가지게 된 건.”

  “다른 남자가 있었나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아이는 온전히 저만의 아이에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제 몸은 여자이기도하고 동시에 남자이기도 해요. 아니, 애초에 그런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죠. 전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거든요. 정소와 난소, 음경과 자궁을 모두 가진 채로 태어났죠. 부모님은 제가 남자로 살아가길 바랐어요. 로봇 장난감을 쥐어주고, 바지를 입히고, 태권도를 가르쳤죠. 가슴이 자라기 시작한 뒤로는 결국 포기하셨지만.”

 

 

  우주에서 통용되는 일반적 생물형태는 성별의 구분 없이 홀로 완전한 참 남녀한몸(True Hermaphrodite) 생명이다. 서로를 갈구하기엔 별과 별 사이의 거리가 너무나 멀기 때문이다. 은하연대가 말하길, 멸종해가는 인류 중 보존의 가치가 있는 정상생물은 그녀 단 한 명이라고 했다. 홀로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우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생명의 올바른 형태. 이 별에서 오직 그녀만이 ‘정상’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석현 씨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을 거예요. 수술을 했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여자로밖에 보이지 않죠. 하지만 전 포기하지 못했어요. 은정이를요. 그래서 몸속에 보이지 않게 남성성을 남겨두기로 결정했어요. 그런데 뭔가 수술이 잘못되었던 것 같아요. 1년 만에 은미가 생겼거든요.”

  “어쩌면 내 아이일 수도 있어요.”

  석현 씨는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더 서글픈 기분이 되었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요. 석현 씨, 정말 미안해요.”

  그녀는 석현의 손바닥 위에 스카프를 올려놓았다. 그는 눈썹을 치켜뜨고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물이에요. 가져요. 그리고 다신 내 생각 같은 거 하지 마요.”

  그녀는 석현 씨의 옆을 지나쳐 나아갔다.

  “다애 씨!”

  그가 소리쳤다. 그녀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다애 씨를 안고 병원에 달려가는 동안… 다애 씨 나한테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라고요. 다애 씨가 불행해지고 싶다고, 죽고 싶다고 아무리 말해도 나는 그 말 안 믿어요. 당신의 진심을 봤으니까. 그러니까 꼭 다시 돌아와요. 기다릴게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시 한 번 그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간 결심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그녀는 묵묵히 수행원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들은 굳은 표정으로 그녀에게 인사했다.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간은 2분 정도로 제한했고 질문도 받지 않겠다고 했으니 그냥 하고 싶은 말 몇 마디만 하고 내려오시면 됩니다.”

  경호팀장이 말했다. 그녀는 젖은 뺨을 닦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안 하면 안 되나요?”

  “그래도 저희 경호실 애들 오늘 밤에 술 한잔하면서 씹을 안주거리 하나쯤은 남겨주셔야죠.”

  웃으며 부탁하는데 당할 재간이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그녀는 연단 가운데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가만히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장내는 금세 조용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그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람의 선한 부분, 섬세하고 따스한 부분은 때때로 그를 참 고통스럽게 합니다. 조금만 더 악했다면, 조금만 더 냉혹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삶이 잔혹하다고 여기진 않았을 거예요. 그렇지 못하기에 우리의 삶은 아픕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정신의 그 섬세하고 유약한 부분이야말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양분이 됩니다.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만들고, 더 많은 기쁨을 주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그가 남들보다 더욱더 고통에 민감하고, 아파하고, 외로워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는 그런 착취가 싫었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보면서까지 기뻐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곳, 누구도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 먼 곳으로요.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러분이 무척 부럽기도 하지만, 가끔은 여러분이 정말로 가엾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기대했던 답을 듣지 못한 기자들에게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걸음을 옮겼다. 밖으로 나와 랑데부 포인트에 서게 되자 이제 남은 시간은 몇 분밖에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멀리서 커다란 007가방을 들고 뛰어오고 있었다. 수행원 한 사람이 말했다.

  “저 사람이 들고 있는 게 나노머신 주사라는 겁니다.”

  “먹지도, 늙지도 않게 해준다는 그거요?”

  “네. 그렇게 말하니까 꼭 성배라도 되는 거 같네요.”

  “부럽나요? 영생을 얻는 거.”

  “부러울 게 뭐 있습니까. 포르말린 용액 같은 건데요.”

  “…알고 계셨군요.”

  “감춰서 죄송했습니다.”

  “아니에요. 덕분에 하루를 편하게 보낼 수 있었어요. 고마워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주사를 집어 들고 팔에 찔러 넣었다. 은빛 액체는 순식간에 몸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보기와는 달리 아픔은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바늘을 찌를 때조차도.

  그녀는 크게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경호실 분들, 오늘 하루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 됐어요.”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나둘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들이 떠나가고 그녀는 혼자가 되었다.

  조용했다. 축구장 두 개만한 광장에는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혼자구나…”

  그 말은 누구를 향해 뱉은 말이었을까. 그 고민을 할 틈도 없이 머리 위로 새하얀 광선이 쏟아졌다. 광선이 사라진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잠시 후, 그녀는 우주선 안에 서 있었다. 그곳엔 벽과 바닥과 천장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은 유리보다 투명했다. 심지어 그녀의 발아래조차 투명했다. 저들은 이런 곳에서 살아왔구나. 홀로 외로이. 단 하나의 별빛도 놓치는 일 없이.

  나는 좀 더 혼자가 되는 일에 익숙해져야 해. 

  그녀는 자리에 앉아 무릎을 안고 몸을 동그랗게 했다. 이윽고 우주선이 가속을 시작했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압력이 육체를 짓눌렀다. 숨이 막혔다. 그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가속은 끝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런 생명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팔다리를 길게 펴고 천천히 몸을 젖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쏟아지는 별빛을 보았다. 수억의 별들이 홀로 빛나고 있었다. 혼자야. 이 막막한 공간 속에 나는 혼자야. 그렇게 생각하자 이상하게도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완전하게, 자신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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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3 단편 만우절의 초광속 성간 여행 노말시티 2019.04.12 0
2442 단편 포비아 돌로레스클레이븐 2019.04.01 0
2441 단편 사망보험금 목이긴기린그림 2019.03.29 0
2440 단편 다층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에 대하여 우르술라 2019.03.25 0
2439 단편 스타 조성제 2019.03.25 0
2438 단편 목숨줄 좀 주시겠어요 차원의소녀 2019.03.23 0
2437 단편 시간을 접으며 김성호 2019.03.16 0
2436 단편 나홀로 바젤 2019.03.11 0
2435 단편 상인의 딸 바젤 2019.03.11 0
2434 단편 네 이름을 말하라 노말시티 2019.03.05 0
2433 단편 보고 있다 Insanebane 2019.02.28 0
2432 단편 C 김성호 2019.02.26 0
2431 단편 쓰레기 줍는 남자 김성호 2019.02.26 0
2430 단편 차별금지법 김성호 2019.02.26 0
2429 단편 소설가의 소설가의 소설가의 문그린 2019.02.25 0
단편 적멸(寂滅)의 경계에서 우르술라 2019.02.24 0
2427 단편 하나님 아버지 복되신 동정 록모노 2019.02.22 0
2426 단편 채유정 진정현 2019.02.20 4
2425 단편 하늘을 달리다 바젤 2019.02.18 0
2424 단편 농장의 아이들 바젤 2019.02.18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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