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전자강아지

2019.02.11 17:4502.11

파리만 날리는 좁디좁은 편의점 안에는 적막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점심시간이었지만, 편의점 안에 있는 사람이라곤 계산대를 지키고 있던 현수뿐이었다. 때문에 지루해질 대로 지루해진 현수는 핸드폰을 꺼내들고 인터넷을 들여다보았다. 그는 유투브를 보다 네이버와 다음을 오갔다. 그리곤 개봉하는 영화들을 둘러보던 중에 우연히 어느 인터넷 기사를 보았다.

부쩍 성장한 로봇공학. 국내 자체 생산한 로봇 개, 우리 로봇산업을 짊어지다.’

흥미를 느낀 현수는 그 기사를 손으로 눌렀다. 그러자 동영상이 첨부된 기사 본문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동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속에 비친 말쑥한 차림의 아나운서가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에도 로봇 혁명이 찾아오는 걸까요? 화랑 로보틱스라는 회사에서 사족 보행 로봇을 선보였습니다. 마치 강아지처럼 행동하는데요. 이상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현수는 동영상을 전체 화면으로 바꾼 뒤, 로봇을 바라보았다.

그 로봇은 가느다란 네 발을 달고 있었다. 머리는 없었고, 전깃줄과 부품이 훤히 드러난 몸뚱이만 보면 저게 과연 움직일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수의 우려와는 달리 녀석은 놀랍도록 정교하고 규칙적으로 다리를 움직였다.

그 모습은 마치 진짜 개가 기계의 탈을 쓰고 달리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영상 속의 사족 보행로봇은 자리에서 펄쩍 뛰면서 두 발로 균형을 잡다가, 장애물로 가득한 컨베이어벨트 위를 뛰어다니기도 했다.

다음 장면에서는 사람들이 손으로 녀석을 옆으로 밀기도 했다. 그러자 녀석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중심을 잡았다.

, 잘 만들었는걸. 현수는 입술을 쭉 내밀고서 생각했다. 그는 로봇 개를 발로 차던 엔지니어들을 바라보았다. 로봇 개는 다시 네 발을 빠르게 버둥거리면서 중심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정말로 개가 중심을 잡는 것 같았던 지라, 현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편의점 정문에 매단 차임종이 울리자 그는 핸드폰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현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경찰에게 붙잡혀 교도소로 이송되는 그 순간까지도 그는 한참동안이나 로봇 개의 존재를 잊고 살았다.

 

세상에! 이런 썩을…….”

로봇 개에 관한 기사를 읽던 누군가는 목에 핏대를 새웠다. 그 누군가는 주체할 수도 없는 정의감으로 개처럼 행동하는 로봇 개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그리고 로봇 개를 학대하는 엔지니어들을 향한 주체 못할 악의적인 분노를 품었다.

누군가가 엔지니어들을 미워하게 된 이유는 딱히 없었다.

그저 개처럼 생기고, 개처럼 행동하는 로봇을 괴롭히는 것은 진짜 개를 학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일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너무도 동물을 사랑한 나머지 육식조차 거부감을 느끼던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논리였다.

오히려 누구보다도 올바른 정의를 따르지 않는 우매한 대중들이 문제였다.

누군가에게는 이런 무능한 만인을 깨우쳐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랬기에 누군가는 계속해서 인터넷에 글을 썼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볼 수 있을 만한 자극적인 내용을 첨가한 글과 사진들을 올렸다.

‘(심각)강아지 학대 사건 공론화가 절실합니다!’

누군가의 글은 인터넷 속에 흘러들었다. 하지만 잉크 한 방울로 바다를 물들이긴 쉽지 않았다. 몇 시간에 걸쳐 쓴 그 글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자, 누군가는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딱 한 명. 스쳐가는 열 명 중에 딱 한 명만 붙잡아도 누군가의 승리였다. 때문에 누군가는 쉬지 않고 자신의 글을 복사해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면서 계속 새 글을 올렸다. 트위터와 페이스 북도 예외는 아니었다.

글을 올리기 무섭게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SNS였다.

정의감에 불타는 누군가는 시시각각 올라가는 공감 수를 바라보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로지 앞으로 싸워나가야 할 전초에 지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연예인들과 수많은 운동가들의 SNS에 글을 올려 그들을 같은 편을 만들 생각이었다.

누군가의 글이 올라온 지 몇 시간 만에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곳곳에서 불쌍한 로봇 개에게 동정을 표하는 이들의 글이 올라왔다. 반면에 로봇은 로봇일 뿐, 학대도 뭣도 아니라는 인간 같지도 않은 글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하지만 글을 올린 누군가는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의 글을 읽지 않았다. 그저 반대하는 이들의 아이디를 차단했을 뿐이었다. 어차피 내 주장에 공감도 못할 정도로 지능지수 낮은 짐승만도 못한 것들과 말을 섞어봐야 뭐하랴?

이런 짐승들을 짓밟고 이기기 위해 누군가는 더 열심히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글을 올렸다. 어떤 때는 자극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또 어떤 때는 아는 것들을 조합해서 대충 유추한 내용을 인터넷에 글을 퍼 올렸다. 그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누가 보더라도 로봇 개가 학대당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시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는 위치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수많은 누군가가 쓴 글들은 빠르게 사회 곳곳으로 번져갔다.

그 동안 로봇 개는 뜻하지 않게 풍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사람들은 풍산이에게 동정을 보냈다. 실험실에서 태어나 엔지니어들에게 실험이란 명목으로 학대당하는 개라니. 이보다 더 끔찍한 시나리오가 어디 있으랴?

풍산이에 관한 글들이 빠르게 퍼져나가자, 이를 본 국회의원들은 앞 다퉈 SNS에 입장을 표명했다. 그들은 사람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물론, 풍산이라 부르는 것이 로봇이란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저 로봇이 아픔을 느끼지 않을 거란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사실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

국회의원이란 직업은 결코 잔인해선 안 되는 직업이었다. 바보를 바보라 부르면 아니 되었고, 개를 개라고 불러도 안 되는 직업이었다. 언제든지 공격을 받을 수 있었기에 정치적으로 계산된 언행만 해야 하는 이들이 바로 국회의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요란스럽게 목소리를 내는 다수의 대중 앞에서 눈물을 보여야만 밥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게 아무리 바보 같은 동정심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수많은 정치가들은 인기에 편승해 로봇 학대를 반대하는 글들을 앞 다투어 인터넷에 올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수많은 유명인들이 풍산이의 사태를 동물학대라 규정했다. 연예인, 지식인, 예술가 할 것 없이 그들은 풍산이를 살아 있는 개라 인정하며 슬픔을 나눴다.

누구도 풍산이가 강철로 만든 프레임과 유압프레스, 그리고 cpu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개처럼 생겼고 개처럼 행동하는 물체를 연구원들이 모질게 학대 했다는 점을 꼬집을 뿐이었다.

이런 비판이 계속 되자, 인터넷 속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소통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유 위에 장벽을 세웠고, 양 측은 자신들만의 동굴 속에 숨어 쑥덕거리기 바빴다.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과 같은 쑥덕거림은 결국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그들은 죄인을 벌하는 만인의 심판관이요, 신성한 천벌의 대행자였다.

인터넷에서 뻗어 나온 천벌을 직격으로 맞은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흉측한 모습으로 전락했다. 연구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성기가 작고 뚱뚱하며 못생긴데다가 역겨운 인성을 가진 악마가 된 것이다. 반면에 풍산이는 조롱과 욕설, 희롱을 통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소재로 포장되었다.

특히 이런 작업은 조회수를 올리고 싶은 기자들을 통해 이뤄졌다. 그들은 조금 더 자극적인 언어로 사람들을 끌어 모아 신문사에게 광고비를 안겨주었다. 그렇게 언론이 윤리대신 돈을 택하는 사이, 사회는 점점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사건이 세간에 조명을 받기 시작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풍산이에 관한 몇 억 건에 달하는 글들이 쏟아졌지만 정작 영양가 있는 글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은 서로를 향한 날선 욕설뿐이었다. 특히 성별과 연령대를 저격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주류를 이뤘다. 이렇게 찬성과 반대로 갈린 인터넷 속은 하루하루 진흙탕으로 변해갔다. 이에 정치권은 23명의 의원을 주도로, 이른바, 풍산이 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악의적인 이유로, 혹은, 폭력성을 발산할 목적으로 파손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겠다는 법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개인의 자유와 사생활을 거론하며 반대에 나섰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유 따윈 관심이 없었다.

애초에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감시하고, 범죄자도 아닌 이들의 지문을 채취해서 관리하는 국가에 자유가 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망각한 국민이라 할지라도 국가는 그들의 비위를 맞춰줄 의무가 있었다. (이미 법적으로 개돼지나 다름없다고 해도 말이다.) 안 그랬다가는 또 다른 문제를 들고 와서 피곤하게 짖어댈 터였다. 때문에 공영방송에서는 전 국민 대토론회까지 열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120분 토론의 김상익입니다. 오늘은 그간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풍산이 학대 사건에 대해 전문가 네 분을 모시고 토론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개요부터 확인해보도록 하죠.”

사회자 뒤편에 매달린 커다란 화면 위로 로봇 개를 발로 차는 엔지니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곤 이를 동물학대로 볼 수 있는지 묻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민들의 의견이 빠르게 지나갔다. 영상이 끝나자, 사회자는 고개를 끄덕이곤 전문가를 소개했다.

사회자 왼편에는 대한일보 편집장인 박범식과 카이스트 로보트로닉스 교수 정순혜 교수가 앉아 있었다. 이들은 학대가 아니란 의견을 표했다. 그리고 사회자 오른편에는 동물사랑실천목자연대 회장인 강백화 회장과 지난 해 초선의원이 된 하정은 의원이 앉아 있었다. 물론 이쪽은 학대가 명백하다는 입장이었다.

맨 처음 입을 연 쪽은 강백화 회장이었다.

저는 이것이 현대 사회의 무정함이 여실이 드러난 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강회장의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풍산이가 동물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실험 삼아, 재미 삼아 로봇을 학대 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순혜 교수가 반박에 나섰다.

로봇은 로봇일 뿐이죠. 결코 인격을 가진 생물이 아니거든요. 거기다 어차피 실생활에 투입이 된다면 그 정도 충격은 그냥 늘 겪게 될 겁니다.”

, 동물에 대한 학대가 늘 상 일어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사회자가 묻자, 정교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죠. 저는 환경적인 요인을 말하는 겁니다. 길가다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미끄러질 수도 있고, 차에 치일 수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설계상에서 이런 가벼운 충격은…….”

가벼운 충격이요? 가벼운 충격은 누구에 의해 정의된 개념이죠? 바로 인간의 기준으로 가벼운 거겠죠. 하지만 가여운 동물들에게는 죽을 수도 있는 충격입니다!”

강회장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정교수는 난감한 얼굴로 자신의 말이 그게 아니라 말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방청객석에서 쏟아지는 야유와 함께 묻히고 말았다. 그러자 반쯤 혼이 나간 정교수 대신 하정은 의원이 입을 열었다.

저는 이 토론에 앞서 과연 저 개를 학대한 사람들만의 문제인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런 폭력의 사슬이 사회 곳곳으로 이어져 있는 건 아닐지 우리 모두 성찰해 봐야 한다는 것이죠.”

이에, 박범식 편집장은 학을 때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죠. 항상 저의를 이야기 할 때는 사회 전반적인 상식을 통해 따져 봐야 합니다. 일단 연구원들이 학대 했다는 대상이 살아 있는 개가 아니죠. 그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박 편집장이 차분히 말하자, 강회장이 삐딱하게 말했다.

그럼 편집장님은 편집장님 가족들 사진을 고의로 훼손해도 별로 기분 안 나쁘시겠네요.”

기분이야 나쁘죠. 하지만…….”

, 기분이 나쁘신가요? 벌써 편집장님의 의견에 모순되네요. 본질적으로 사진은 편집장님의 가족들이 아니고, 가족들에게 위해를 끼친 게 아니잖아요. 그럼 기분 나쁘지 말아야죠.”

맥락이 다르잖습니까. 맥락이.”

그들은 1시간에 달하는 토론을 영양가 없는 말장난과 날선 설전으로 엉망이 되었다. 그러자 네 사람 사이에서 쩔쩔 매던 사회자는 자괴감이 서린 얼굴에 애써 미소를 띠웠다. 그리곤 네 사람에게 각자 생각한 대안을 물었다.

제일 처음 입을 연 사람은 강회장이었다.

풍산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딱 한 곳뿐입니다!”

강회장은 목에 핏줄을 세우며 역설했다.

풍산이도 자유로운 삶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니 풍산이를 자연 속으로 풀어 줍시다.”

강회장이 말하자, 장내는 싸늘해졌다. 풍산이를 지지하는 이들도 붕산이가 고철덩어리라 생각하는 이들도 침묵을 지켰다. 한순간이나마 강회장, 자신도 자신이 내뱉은 깜짝 발언을 후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진영논리가 잔뜩 얽혀 있는 사안에서 힘을 가지려면 어떻게든 자극적인 말과 개념을 재생산 해낼 필요가 있었다. 논리야 어떻게든 우겨넣으면 그만이었고 말이다. 강회장은 침묵을 틈타 목청을 높였다.

압니다. 제 주장이 이상해 보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이미 동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살아 있는 동물들을 괴롭히는 것으로도 만족을 못해서 동물과 비슷하게 생긴 풍산이를 만들어내서 학대를 하고 있죠. 그리고 아시다시피 이런 가학적인 성향은 곧 범죄자를 양산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이코페스들이 동물을 죽이는 것부터 살인을 시작하죠. 그러니 우린 속죄를 해야 합니다.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서라도, 아니,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풍산이를 자연 속에 풀어주어야 하는 겁니다.”

거 무슨 말도 안 되는…….”

정교수가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방청객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하나같이 똑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소리쳤다.

교수란 놈이 동물 학대를 찬성하는 거냐?”

동물들은 자유로이 돌아다니면 안 되냐?”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정교수는 발끈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겁니까? 저건 로봇이에요! 모터와 센서를 통해 동물의 행동을 모사한 알고리즘대로 행동을 제어하는 기계란 말 입니다! 저게 자연적으로 태어난 생물입니까?”

어쨌든! 기계든 뭐든 일단 동물처럼 행동하는 거 아냐! 그럼 그게 동물과 다른 게 뭔데?!”

동물처럼 행동하는 물체를 괴롭히는 게 잘한 일이냐?! 이 나쁜 놈아!”

교수는 곧장 동물보호가들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교수의 주장은 야유와 고성 속에 파묻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사회자가 나섰다. 그는 스텝들에게 방청석을 조용히 시켜 달라 말한 뒤에 계속 토론을 진행했다.

그럼, 계속 토론을 이어가도록 하죠. , 일단 풍산이를 산에 풀어놓자고 하셨는데, 전력문제도 있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있으신가요? 그러니까, 풍산이가 입도 없고, 딱히 먹을 수 있는 음식도 없는데, 강백화 회장님. 방안 생각하셨나요?”

바이오메스와 같은 에너지원을 이용해서 풍산이에게 전력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태양광도 좋겠죠.”

이에 정 교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보세요. 태양광이 만능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바이오 메스? 그걸로 로봇을 굴리겠다는 건 그냥 로봇에게 공장을 짊어주는 거나 다를 바 없어요.”

정 교수가 반론하자, 방청객석에서는 또다시 야유가 터져 나왔다. 정 교수는 방청석을 쏘아보았다. 그의 얼굴에선 모멸감이 일었건만 방청석에서는 웃음보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사회자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디보자, , 하 의원님 의견은 어떠신가요? 어제 뉴스에서는 음, 풍산이를 위해서 사물 학대 방지 법안을 다른 12분의 의원님들과 함께 발의하셨다하셨는데요. 이제는 로봇 학대 방지법을 마련하실 거라고요?”

그러자 정장차림의 하정은 의원은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

. 여야 할 것 없이 이번 사건에 관한 국민적인 관심을 확인 했고요. , 사물 학대 방지 법안은 아마도 가뿐히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어떤 내용인가요?”

모든 전자기기에 카메라와 지압센서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하는 법안이죠. 만일 누군가가 기계를 손으로 때리거나 부수려는 시도를 하면 자동적으로 경찰에 신고가 접수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의원이 미소를 지으면서 말하자 반대 쪽 의견을 표명한 박범식 편집장이 말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아니, 어떻게 각 가정에 카메라를 달 생각을 합니까? 당장 독재체제를 만들자는 거요?”

독재라뇨! 이 민주주의 사회에 독재는 무슨 독재입니까?”

하의원이 쏘아붙이자, 방청객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그러자 어깨가 으쓱해진 하의원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우리는 물건을 소중히 여기라 배웠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물건을 우습게보고 있죠. 이는 그냥 좌시할 문제가 아니죠. 특히 몇몇 조사에 따르면 연쇄살인마나, 성범죄자들의 경우 범죄를 저지르기 며칠 전부터 물건을 향해 공격성을 보였다는 조사도 있습니다.”

물건에 공격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그렇죠.”

그러자 정교수는 학을 때면서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그럼, 차문을 세게 닫는 사람들이나 핸드폰을 험하게 쓰는 사람들이 범죄자가 될 거란 소립니까?”

그럼 아닙니까?”

하의원이 되묻자, 박 편집장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아니죠. 물건은 물건입니다. 사람도 아니고, 생물도 아닙니다. 그저 도구죠. 다음엔 뭡니까? 자판기를 위한 노동법이라도 제정할 건가요?”

그럼 폭력성을 보이는 게 잘하는 짓이란 겁니까?” 강 회장이 입을 열었다.

물건이라고 해도 그것을 향해 폭력성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반사회성이죠. 더군다나 인간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는 사물을 향해 폭력을 가한 사람이 동물을 사물화 시켜 학대를 할 수도 있죠. 더 나아가 이는 살인까지 이어질 겁니다. 사람마저 사물화시킬테니까요.”

그러자 정 교수는 조소를 감추지 않고 말했다.

사물화라니. 그런 말이 있기는 합니까?”

모르면 공부를 하셔야죠!”

강회장이 쏘아붙이자, 하의원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교수님 공부가 부족하시네요. 그리고 사물화된 시각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애들이 폭력성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겁니까? 그런 예비 범죄자들의 폭력성을 다음 세대에게까지 물려주길 바라는 겁니까? 저는 싫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물건을 향한 공격성은 법적인 잣대로 제단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 편집장과 정 교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 항변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을 펼치기도 전에 사회자가 그들의 반론을 막아섰다. 방송 시간이 다 된 것이다. 사회자는 1시간이 조금 넘게 진행된 감정싸움을 마무리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미래 세대인 애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사건이 잘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로봇이건 생명이건 평등한 삶만이 우리를 가치 있게 바꿔줄 테니까요.”

토론회가 끝나자 사람들의 평가는 양극으로 갈렸다. 영양가 없는 토론에 대한 혹평과, 기발한 아이디어라는 호평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특히 강회장이 남긴 말은 사람들의 조롱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다음날부터는 누구도 강회장의 말을 조롱할 수 없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이 강회장의 말에 좋아요 버튼을 누른 덕이었다. 이 사실은 수백 건의 동물보호 칼럼과 함께 36개의 주요 언론에서 기사화 되었다.

정치권이 한쪽으로 기울자, 화랑 로보틱스 사는 풍산이를 강회장이 운영하는 동물사랑실천목자연대에 풍산이를 넘겼다. 그들은 회사에 떨어질지도 모를 사회적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동물단체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따를 수밖엔 없었다.

그들은 곧장 예비 부품과 배터리를 넘겼다. 거기다 수석 엔지니어까지 파견했다. 물론 수리비용은 전액 사측이 지불하는 선에서 끝이 났다. 상황이 급격히 바뀌기 시작하자, 풍산이가 로봇일 뿐이라 주장하던 이들은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세상에. 정부가 나서서 로봇 개를 보호하자고 할 줄이야.

하지만 누구도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격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의 목소리가 줄어들 때마다 풍산이는 점차 생명을 얻었다. 인터넷 속에서 풍산이는 살이 붙었고, 서서히 머리와 꼬리가 자라났다. 이제 풍산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개들보다도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개가 되어갔다.

 

결국 강회장의 주장은 현실화되었다.

토론회가 끝난 뒤에 시작된 풍산이 해방운동을 시작합니다!’라고 적힌 국민청원 덕분이었다. 일주일도 안 되서 40만 명이 동의를 했고, 정부에서도 발 빠르게 답변을 남겼다. 그들은 풍산이가 야생으로 돌아갈 지역은 DMZ로 결정했다. 혹시 모를 사람들의 악의적인 손길을 피하기도 좋았고, 어떤 면에서는 북한과의 평화 공존을 상징하기도 했다. (적어도 정치권인사들과 평론가들은 그렇게 여겼다.)

그리고 마침내, 풍산이 해방식은 세금과 동물사랑실천목자연대의 협조 하에 차차 준비되었다. 우선, 그들은 새로운 부지를 선정해야 했다. 물론, 판문점에서 풍산이를 풀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북한의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때문에 주최 측은 강원도에서도 외진 지역에 새로운 부지를 선정했다. 우선 땅값이 쌌고, 평창과도 가까워서 동계올림픽 이후 버려진 주변 상권을 살릴 수도 있을 거란 계산에서였다. 그리고 편의성을 갖추기 위해 주위를 개발하기로 결정했다.

주최 측의 결정에 강원도의 수많은 나무가 베어졌다. 행사장 진입로를 만들기 위해서 자연 암반을 폭파시키고 콘크리트를 들이 부었다. 거기다 DMZ주변에 창궐한 말라리아가 우려스러웠던 주최 측에서는 다량의 살충제를 뿌렸다. 당장 국무총리까지 와서 구경한다는 판에 누군가가 병에 걸렸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그야말로 역풍을 맞기 딱 좋은 소재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동식물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랴? 사람들은 풍산이가 자유를 얻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행사장을 완비 해야만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행사장은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완공되었다.

30인승 버스가 다녀도 멀쩡한 튼튼한 신작로가 입구까지 이어졌다. 입구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면, 수많은 의자들과 스탠드 좌석들이 계단형태의 관중석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물론 관중석을 태양으로부터 지켜줄 거대한 천막도 있었다. 관중석 주변에 서 있는 철제 지붕 골조를 따라 바싹 당겨진 천막은 바람결에도 끄떡도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특히, 가장 압권은 미관을 위해 인공잔디를 깔아 놓은 메인 행사장이었다. 운동장 세 개 분량의 거대한 무대는 로봇 개, 풍산이가 설 자리였다.

이 시설을 계획한 예술가들은 기자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저 인조잔디는 풍산이가 인간의 손에서 만들어진 인공적인 세계를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그리고 관중들과 풍산이의 교류를 위해 스탠드 좌석을 마련했죠. 국무총리께서도 오신다고 하셨는데, 저희 작품 속에서 함께 어우러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의 인터뷰가 짧게 끝나자, 행사장에는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동물사랑실천목자연대 소속 동물애호가들이 자리를 채웠다. 민간인들도 많았다. 아이들과 손을 붙잡고 온 부모들부터 연예인, 사회운동가들을 비롯한 각계인사들이 찾아왔다. 거기다 풍산이를 위해 특별히 초청된 군악대 소속 병사들이 악기를 내리고 리허설에 들어갔다.

가장 마지막에 행사장에 당도한 이들은 국회의원들과 국무총리였다. 그들은 연단아래, 풍산이가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신작로를 따라 풍산이를 보호조치 하던 동물 보호 협회의 차량이 진입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인공잔디 앞까지 후진해서 들어오는 화물차의 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화물칸이 열리자 화물칸 안에서는 네 발을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은빛 물체가 걸어 나왔다.

풍산이었다. 인터넷에서나 보던 풍산이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풍산이의 모습은 처음 언론에 소개되었던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이제 녀석에게는 재활용품으로 만든 머리와 꼬리가 달려 있었다. 깡통으로 만든 길쭉한 머리에 탁구공으로 만든 큼지막한 눈이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가벼운 머리를 굵은 스프링 목이 지탱해주었다. 풍산이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는 흔들거렸다. 그리고 엉덩이에는 부러진 안테나로 만든 기다란 꼬리가 하늘을 향해 바싹 올라와 있었다.

마치, 천문학적인 예산으로 찍어낸 싸구려 장난감을 보는 듯 했다.

하지만 외모가 어찌되었든, 풍산이는 천천히 까딱이는 머리를 흔들면서 잔디밭 위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녀석이 잔디를 밟기 무섭게 행사장에 참가한 군악대가 연주를 시작했다. 말쑥하게 치장한 풍산이를 본 사회자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곧이어 K-POP공연이 이어졌다. 신명나는 노랫가락과 함께 몇몇 초대가수들이 연달아 노래를 부른 뒤에, 본행사가 시작되었다.

,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풍산이의 자연 방생 이벤트가 펼쳐지겠습니다!”

수많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서 국무총리는 지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풍산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영리한 풍산이는 행사진행 순서에 맞춰 자신의 강철로 된 네 발을 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자아도 영혼도 없는 로봇인 풍산이는 자유를 향해 조금씩 다가갔다.

로봇은 네 발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면서 비포장도로를 거닐었다. 다리가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릴 때마다 스프링 목에 붙들린 강아지 머리와 꼬리가 흔들거렸다. 하지만 비무장지대의 무른 땅 때문일까? 풍산이는 자연을 앞에 두고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사회자는 개탄을 금치 못했다.

, 풍산이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자연이 두려운 걸까요? 여러분의 응원이 필요한 때입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은 풍산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장하다, 풍산아. 넌 해낼 수 있어! 풍산아! 파이팅!”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 덕분일까? 걸음을 멈추었던 풍산이는 다시 수풀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곤 빠르게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녀석은 마치 원래부터 숲 속에 살았던 동물처럼 주저 없이 숲으로 들어가 자유를 쟁취한 것이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인터넷 속에서도 감동의 물결이 흘러넘쳤다. 수많은 사람들은 인간의 손에 태어난 기계로서 처음으로 자유를 얻은 풍산이를 응원했다. 그리고 녀석에게 밝은 미래가 찾아오길 바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행사가 끝이 나고, 많은 사람들이 입구를 향해 몰리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 뭐야? 돌아오네.”

장내는 수근 거리는 소리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수풀 속으로 사라졌다 돌아온 풍산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몇몇 이들은 눈물을 보였다.

, 사람에게 너무 길들여져서 도저히 자유를 찾아 가질 못하는 모양이네.”

아이고, 풍산아 왜 돌아왔어! 네 삶을 찾아 가! 제발!”

사람들은 아우성을 쳤지만 풍산이는 묵묵히 행사장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장내를 가득 채운 사람들은 모세의 명령을 받은 홍해처럼 서서히 갈라졌다. 하지만 로봇 개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시선 따윈 아랑 곳 하지 않았다. 그저, 장식용 머리에 나무껍질과 이파리를 잔뜩 매달고서 묵묵히 앞으로 향했다.

그 몰골은 누가 봐도 나무에 세게 부딪힌 뒤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도 저 개가 뭔가 새로운 감동을 안겨 주리라 믿고 있었다. 특히, 화랑 로보틱스의 이사들은 전국에 방송을 타고 있는 풍산이가 사고 한 번 제대로 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만약에 저 개가 짠한 장면 몇 개만 만들어만 준다면 당장 주문 전화가 빗발 칠 것이다. 그러면 회사는 동체만 조금씩 갈아 끼워 팔수도 있었다. 골드 에디션, 플래티넘 에디션, 동물애호가 에디션까지……. 아니, 굳이 로봇을 팔 필요도 없었다. 이대로 영화까지 찍게 된다면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를 터였다.

한편 국회도 안절부절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로봇 학대 금지 법안을 전 세계 최초로 입법 제안한 국회의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은 저 로봇이 무슨 사고나 치지 않을까 심이 우려스러워했다. 만일 로봇이 (사람을 공격하거나하는)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이 일에 앞장을 섰던 의원들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게 뻔했다. 때문에 그들은 곧장 화랑 로보틱스를 공격해야 한다고 여겼다. 로봇 개를 만들고, 인간과 동물의 생명 윤리에 심각한 피해를 준 회사라는 점을 강조해야 했다.

때문에 의원들은 하나둘 핸드폰을 들고 의원실에 전화를 넣었다. 그들은 불법합법을 가리지 않고 화랑 로보틱스에 관한 자료를 뒤지라고 지시했다. 사소한 일도 크게 부풀릴 준비를 하란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로봇 개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행사장과 도로 사이를 가로막은 철조망이 나타나자 로봇 개는 철조망에 머리를 들이박았다. 스프링에 달린 머리가 철조망에 짓눌려 기묘하게 뒤틀렸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숨을 집어 삼켰다. 하지만 사람들이 놀라건 말건 철조망에 걸린 로봇은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풍산이가 철조망 너머로 가고 싶어 한다 여긴 사람들은 서둘러 철조망을 철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행사장에는 철조망을 자를만한 도구가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손 놓고 풍산이가 고통 받는 (것 같은) 모습을 괴롭게 지켜볼 수밖엔 없었다.

아이엄마들은 아이들의 눈을 손으로 가려주었다. 몇몇 동물 애호가들과 연예인들은 과장된 몸짓으로 놀라움을 표했다. 기자들은 로봇 개의 이상행동을 속보로 내보냈다. 그들은 어쩌면 엔지니어들의 학대 때문에 로봇 개가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을 무렵.

풍산이라 부르던 로봇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센서와 제어장치가 시키는 대로 다시 몸을 180도 튼 다음 앞으로 몇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로봇은 다시 숲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로봇이 서너 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무섭게 동체 안에서 흘러나온 모터 소리가 서서히 머졌다. CPU를 식히던 쿨러가 멈춘 뒤에 마침내 허공에 반 쯤 올라온 앞발이 멈춰 섰다.

풍산이란 이름의 로봇은 그대로 정지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웅성이면서 풍산이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풍산이를 손으로 건드려보다가 녀석의 앞발을 손으로 툭 때렸다. 그러자 중심을 잃은 로봇은 앞으로 기우뚱거리다 자리에서 고꾸라지고 말았다.

로봇에 달린 배터리 수명이 다 된 탓이었다.

사람들은 빤히 풍산이를 바라보았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전기가 부족해서 로봇이 멈춰버렸노라 여겼다. 하지만 곳곳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오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처음에는 동물 보호 단체 주최 측에서 흘러나온 곡소리는 점차 동물 애호가들 사이로 번져갔다.

아이고, 풍산아! 풍산아!!!”

인간이 미안하다! 우리가 미안해! 풍산아!!!”

행사를 주최하던 강회장도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쳤다.

풍산아. 좋은 곳에 가렴. 풍산아! 아이고, 이걸 어쩌면 좋아. 풍산아!!!”

강회장이 연단에서 발을 동동거리다 무너져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국무총리까지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대자(사실 땀을 닦은 것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이 슬퍼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행사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것은 충전만 하면 다시 깨어날 로봇을 향한 의무적인 슬픔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기괴한 상황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못했다.

의문을 표하는 순간, 의문을 표했다는 이유만으로 쏟아질 비난을 감당할 재간이 없었던 탓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잠자코 로봇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 슬픔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었다. 그저 진짜처럼 보이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노곤하게 잠을 자던 현수는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시간은 벌써 세시였다. 어제 5시에 들어와서 지금껏 잔 모양이었다.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 얼굴을 닦고 샤워를 한 그는 옷을 갈아입고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핸드폰을 켜자 풍산이가 검색어 순위 1위를 꿰차고 있었다.

풍산이? 눈을 가늘게 뜬 그는 아주 예전에 학대 논란이 있었던 그 개 로봇을 떠올렸다. 그리곤 아무 생각 없이 검색어를 눌러보았다. 그러자 수 천 개의 기사들이 떠올랐다. 기사들은 모두 풍산이란 이름의 로봇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기사를 쭉 훑어보았다. ‘하늘로 떠난 로봇개. 풍산아 또 만나자.’, ‘DMZ의 비극. 5월에 통과된 사물 학대 방지법처럼 로봇 학대 방지 법안도 시급히 통과되어야.’, ‘잘 가, 풍산아. 인간의 기득권이 부른 참사.’, ‘비정한 대한민국. 풍산이를 살려내!’ 등등. 별 희한한 제목들과 자극적인 내용들이 인터넷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는 잠시 동안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핸드폰에 매달린 충전기 선을 잡아 빼면서 중얼거렸다.

병신들.”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작은 단칸방을 메아리치다 사라질 때 즈음에 가방을 집어 들었다. 하지만 가방을 집으려다 그는 실수로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현수는 천천히 대수롭지 않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핸드폰 액정 위에는 금이 가 있었다. 그는 인상을 구기면서 금이 간 액정을 매만졌다. 그러자 화면 위에는 112에 연결 중이란 글귀가 떠올랐다.

이건 또 뭐야? 그는 입술을 씰룩거리다 통화종료를 누르려 했다. 하지만 화면 속 버튼은 그의 손길을 거부하고 있었다. 액정이 망가져서 터치스크린이 망가진 걸까? 그나저나 왜 하필 경찰서로 전화가 걸린 거지? 그는 입술을 씰룩거렸다. 정말이지, 스마트폰다운 스마트한 오류가 아닐 수 없노라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오류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약 14분 뒤에 경찰들에게 둘러 싸여 서로 연행 될 터였다. 그리고 재판에 넘겨져 풍산이라는 거대한 슬픔이 광기로 변하는 순간을 맨몸으로 목도하게 될 터였다.

, 하는 수 없지. 전화가 연결되면 잘못 걸린 전화라고 이야기 할 수밖에. 현수는 가방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곤 잰걸음으로 빠르게 단칸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아르바이트를 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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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한지는 조금 됐지만, 이 사이트에 처음 올려보는 작품입니다. 아무 쪼록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ㅠㅠ

여러분의 댓글은 필자에게 큰 힘이 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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