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소설가가 된다는 건 끝내주게 즐거운 일이다. 대다수의 소설가들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소설을 써서 먹고사는 삶이 너무 행복했던 것을. 사실 이 ‘먹고산다’는 부분이 중요한데, 아마 내 말에 반대했던 많은 소설가들도 소설만 써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면 생각을 달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단순히 먹고사는 정도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수준으로 성공한 내 경우엔 소설가로 산다는 게 당연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런 삶이 지속되었다면 좋았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이제 그런 복 터진 소설가로서의 인생과 작별을 고했다. 스릴러 장르의 신이라 불리며 책을 내는 족족 국내외 베스트셀러를 만들던 소설가 두미르로서의 삶은 이제 없다.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맹렬하게 소설을 쓰며 열정을 불태운 결과로 얻은 것은 소설 쓰기에 대한 무기력증이었다. 물론 부와 명예를 손에 넣고도 여전히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는 소설가들도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한다. 어찌나 빠른 속도로 신작들을 쏟아내는지, 그들이 장착한 ‘소설 엔진’은 죽음에 이르러야만 비로소 꺼질 것처럼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작가들을 소설 쓰는 기계라고 조롱하기도 한다. 비슷한 주제나 소재를 우려먹는다는 비판도 있다. 젠장. 그래도 나는 그들이 부럽다. 미치도록 부럽다. 나는 그들이 기계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일 거라고 믿는다. 밥 먹고, 잠자고, 볼일을 보는 인간 말이다. 다만 그들은 아이언맨의 아크 원자로 같은, 남다른 엔진을 장착했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걸 소설 엔진이라고 부른다.

내가 장착했던 엔진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 나도 한때는 미친듯이 달리던 시절이 있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보면 어느 순간 가속도가 붙어 버려서 내 손가락의 움직임을 내 의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던 시절… 내가 왜 머릿속 아이디어보다 키보드 얘기를 먼저 하는지 의아할 것이다. 고백하건대 창작욕은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책상 앞에 앉는 데서 시작하는 거다. 무엇을 쓰겠다는 의지가 신체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소설 엔진의 유일한 기능이다. 이렇게 허탈할 정도로 단순한 장치가 고장나 버리면 아무리 머릿속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밖으로 풀어 놓을 재간이 없다.

아무튼 그리하여, 등단 20년 만에 나는 절필 선언을 해 버렸다. 글을 쓰지 않는 고통보다 글을 쓰는 고통의 크기가 더 크다면 그만두는 게 맞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내 곁에 두 사람, 남편 김유신과 나의 오랜 친구 허사장이 내 선택을 응원해 주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꿈꾸던 삶이 있었던지라, 나와 함께 해외를 떠돌며 살아 볼 생각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남편도 프리랜서 개발자여서 우리 부부는 비교적 자유로운 업무 환경 속에서 일하며 지내왔지만 결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일주일 넘게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긴 여행을 떠나지 못했던 건 순전히 나 때문이었다. 일단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하면 환경 변화에 굉장히 예민해지는 데다가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쓰는 스타일이다 보니 어디로 떠난다 해도 내겐 득 될 게 전혀 없었다. 남편은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해외 이런저런 나라에서 살아 보기를 무척 바랐다. 일 년이고 이 년이고 집을 렌트하고 현지 시장에서 장을 보고 그 나라 사람들을 사귀는 삶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동경해 왔다. 나는 뭐든지 빨리 돌아가는, 24시간 안 되는 게 없는 서울의 삶에 평생을 길들여진 사람이라 낯선 땅에서 적응해 내며 사는 게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한껏 들뜬 남편의 모습을 보다 보니 소설을 쓰지 않는 텅 빈 시간을 생경한 경험으로 채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은퇴 기념으로 그동안 배려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졌다. 긴 여행을 기꺼이 함께하겠다는 의지와 그에 필요한 여행 자금을 모두 대겠다는 배포면 충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갈 곳은 정했고?”

절필 선언 기념으로 허사장이 와인 한 병을 들고 찾아왔다. 사실 그런 건 다 핑계일 뿐, 허사장은 종종 우리집에 술을 마시러 들렀다. 얼큰하게 취한 날은 손님방에서 자고 가기도 했다. 나는 부러 더 허사장의 술잔을 빨리 채워 주곤 했는데 다음날 아침 허사장이 끓여 주는 해장국이 워낙 별미이기 때문이었다.

“난 호주나 캐나다가 좋은데, 유신옹은 유럽에서 두루두루 살아보자고…”

슬쩍 남편을 쳐다보며 말했다. 유신옹은 허사장과 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다. 우리 둘보다 고작 세 살 위지만 남편은 어딘지 모르게 행동거지가 노인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뭐랄까. 젠틀한 노신사 같은 느낌?

“유럽도 좋지. 옮겨다니는 재미가 있겠네.”

허사장이 와인 한 잔을 비우며 말했다.

“유럽까지 가서 바리바리 짐 싸서 이사다녀야 하는 거야?”

“짐을 적게 가져가면 되지. 운전도 내가 다 할 텐데 뭐.”

내가 조금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묻자 남편이 달래듯 말했다.

“기간은 얼마나 되려나. 일 년? 이 년?”

허사장의 질문에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볼 뿐 누가 먼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뭐야. 그 정도도 대중없이, 그냥?”

“어, 뭐. 응.”

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남편은 외려 그래서 더 좋다는 듯이 벙긋 웃어 보였다. 그런 남편의 표정에 허사장이 반응하며 말했다.

“좋겠다. 나도 그렇게 훌쩍 떠나 보고 싶네.”

“같이 가자니까.”

“내 사정 알면서.”

허사장은 일 년 전에 사업을 정리한 뒤로 여전히 백수 신세였다. 십 년 이상 버텨 온 일인 출판사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직원 한 명 없는 회사였다고는 하나 그동안 출간한 책도 꽤 되었고 책을 고르는 안목도 있어서 출판사를 믿고 책을 사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다만 그 수가 너무 적은 탓에 인건비 뽑기도 어려운 날들이 태반이었다. 결국 허사장은 자기 자신을 해고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여전히 허사장을 허사장이라고 불렀다.

“친구 뒀다 뭐해.”

남편이 넌지시 말했다.

“유신옹, 말은 고맙지만 회사 힘들 때 얘가 도와준 게 얼만데 나도 염치가 있지. 됐어.”

허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널 도와준 게 아니라 투자한 거지.”

“근데 한푼도 못 건졌잖아.”

“왜,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이 덕분에 나왔는데.”

그동안 해외에서는 유명하지만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르 소설들을 실컷 읽을 수 있었던 건 다 허사장의 열정과 헌신 덕분이었다. 나는 훌륭한 번역가를 구하는 일에 몇 번 나섰을 뿐이었다. 돈 많은 탐독가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럼, 더 읽어 볼래?”

“응?”

“소설 말이야.”

허사장이 와인잔을 흔들며 말했다. 어쩐지 말투가 제법 의미심장했다.

“괜찮은 소설을 찾아 헤매는 건 이제 나도 지쳤어. 대신 괜찮은 소설이 먼저 찾아오도록 만들 수는 있지.”

나는 남편과 눈빛을 교환하고서 계속 말해보라는 듯이 허사장에게 미소를 건넸다.

“내 힘으로는 부족했어. 출판사도 영세하고 좋은 소설들을 끌어당길 힘이 없었지. 그치만 넌 달라.”

흥미를 보이는 내 표정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허사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한국 장르 소설의 대가, 두미르. 절필 후 후진 양성을 계획. 실력 있는 후배 작가들에게 출판의 길을 열어…”

“잠깐”

남편이 끼어들었다.

“출판사를 다시 한다는 거야? 미르랑 같이?”

“꼭 그런 건 아니고.”

허사장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물론 책을 내려면 구색은 갖춰야겠지만, 평범한 출판사는 아니지. 중요한 건 공모전이니까.”

“공모전?”

“두미르의, 두미르에 의한, 두미르를 위한 공모전.”

허사장은 씩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와인병을 들었다. 빈 잔에 와인이 한두 방울 떨어지다 말았다. 우리는 다른 병을 땄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확실히 취한 밤이었다. 상상에 취한 밤.

그날 밤 우리가 나눈 대화는 여행보다 더 나를 설레게 했다.


허사장의 제안은 간단했다. 일 년에 한 번씩 내 이름을 걸고 공모전을 하자는 거였다. 상금은 내가 원하는 액수로 정하면 되고 출판 쪽이야 자기가 전담할 테니 문제 없다면서, 두미르라는 이름의 파워가 있으니 처음에만 투자하면 적자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자신했다. 나는 허사장의 이야기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뜩이나 절필 후 독서에 매달리던 참이었다. 그나마 소설을 쓸 때는 다방면에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었는데 내 소설을 그만 쓰게 되자 이상하게도 오직 소설만이 읽고 싶어졌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소설을 다 읽어 치우겠다는 듯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다 보니 사들이는 권수도 만만치 않아서 백 평이 넘는 집인데도 걸을 때마다 발에 채이는 게 책이었다. 그래도 갈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렇게 기가 막힌 제안을 들었으니…. 나는 왜 진즉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공모전이나 출판업으로 돈을 벌 생각은 전혀 없었다. 돈이라면 이미 넘치도록 많았다. 정말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이라면 한푼도 받지 않고 출간해 주리라. 나에게 중요한 건 내가 양껏 읽을 수 있는 내 취향의 소설들이었다. 공모전을 열면 그런 소설들을 실컷 읽을 수 있을 터였다. 소설들이 제발로 나를 찾아올 테니까.

이런 생각으로 잔뜩 부풀어 있는 마음이 여행 따위에 틈을 허할 리 없었다. 첫 거점인 런던에서 머무는 삼 개월 동안 나는 도통 내가 머무는 곳의 정취를 즐기지 못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어떻게 공모전을 꾸릴지 고민하거나 미친듯이 전자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프랑스였다. 런던에서 파리까지 무슨 수로 이동했는지도 그저 희미하게만 생각날 뿐이다. 그렇게 파리에서 또 몇 달을 보내던 어느 날, 이차선 도로 너머 에펠탑이 빛나는 밤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남편이 말했다.

미르 넌 돌아가.

나는 당황해서 눈만 끔뻑거렸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라고.

남편이 담담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정말?

그래.

혼자 어떡하려고?

뭘 어떡해. 좀 더 돌아다니다가 갈게.

나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만 달싹였다.

괜찮으니까, 가.

남편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 정말…

그때 가지 않겠다고 해야 했을까?

정말 고마워.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다고 해야 했을까?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나는 남편의 팔을 힘주어 감싸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 정확히 삼 일 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홀로 올랐다.


“한 달에 한 번씩 내가 원하는 주제를 올릴 거야. 매달 주제별로 마감하고 연말에 당선작을 뽑는 거지. 어때?”

“매달 마감을 한다고?”

“응.”

허사장이 한숨을 쉬며 내 천진한 생각을 꾸짖듯 말했다.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여행에서 돌아온 나를, 허사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맞이해 주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우리집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짰다.

“그건 미르 너나 가능한 거지. 어떻게 공모전 주제를 보자마자 한 달 만에 책 한 권을 써?”

한창때인 작가가 그것도 못 쓴다고? 나는 그런 작가가 쓴 소설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속도감과 광기가 묻어나는 짜릿한 소설이 필요했다.

“그럼 단편으로 하든지. 다섯 편 정도 모아서 단편집으로 만들면 되잖아.”

“난 장편을 읽고 싶단 말이야.”

물론 평소라면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읽어 댔지만 이번엔 달랐다. 한손에 두툼하게 잡힐 멋진 원고를 상상하기만 해도 침이 꿀떡 넘어갔다. 이건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공모전이 아닌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무조건 장편. 대신 주제는 일 년에 한 번씩 모아서 올릴게. 매달 정해진 날짜에만 접수하고.”

“왜 꼭 매달 작품을 받아야 해? 차라리 연말에 몰아서 받는 게 편할 텐데.”

“그래야 일 년 내내 꾸준히 읽을 수 있지.”

내가 뭘 모른다는 듯이 허사장을 나무라자 허사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그래. 아예 그 컨셉을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은퇴한 소설가를 구해주세요. 새로운 소설에 목말라 발버둥치고 있습니다!”

“아직 세상에 선보인 적 없는 날것 같은 소설! 생각만 해도 신난다.”

나도 허사장의 장단에 맞추어 마치 피를 탐하는 드라큘라처럼 입맛을 다시며 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은퇴한 괴짜 소설가로서의 내 캐릭터가 마음에 쏙 들었다.

“상금 액수는 2천으로 하고, 인세는 보통 상금을 초과하는 수익이 났을 경우…”

“상금 3천으로 하고, 인세는 그냥 지불하자.”

“그냥? 1쇄 수익에서 상금 금액만큼 공제하고 주는 게 대부분…”

“좋은 작품이 다른 데 안 가고 나한테 오게 하려면 더 좋은 조건을 내걸어야지. 소설 쓰는 것도 노동이야. 노동을 받쳐 주는 건 보상과 성취감이라고.”

“그러다가 적자 볼 수도 있어.”

나는 그저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 순간 내가 가장 (그리고 오직) 걱정했던 부분은 적자가 아니라 응모작들의 수준이었다. 혹여 만족스러운 작품이 하나도 없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매달 접수된 작품 중에 몇 편 골라서 내가 작성한 심사평을 이메일로 보낼 거야.”

“이메일로?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게 아니라?”

“그럴 필요 있나? 내가 지적한 부분들을 고쳐서 다시 응모할지도 모르는데.”

허사장이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그렇게 할 거라는 공지만 올리지 뭐.”

“그리고 내가 직접 접수받을 거니까 꼭 필명으로 보내라고 하고. 아는 작가면 곤란하잖아.”

“그러네. 연락처는 이메일만.”

그제야 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미르 공모전. 표면상 출간에 목마른 작가 지망생들이나 기존 작가들에게 시장의 문을 열어 준다는 취지였지만 사실 그 이면엔 내 구미에 맞는 따끈따끈한 소설들을 원 없이 읽어 보겠다는 욕망이 드글거렸다.

그렇게 두미르 공모전이 시작되었다.


작품 수준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공모전을 열고 나서야 나 두미르 이후 장르 문학 시장에서 이렇다 할 베스트셀러 작가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귀신이 씐 것처럼 밤낮없이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 곳곳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 걸까. 단순히 글을 쓰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게 아니라 매혹적인 이야기를 지어내고 싶어서 몸이 달아오른 사람들. 그들은 나의 충실한 소설가들이었다.

두미르 공모전 홈페이지를 만들고 친한 기자 두어 명에게 소식을 전하자 바로 반응이 보였다. 공모전 첫해이니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허사장의 말에 요청이 오는 대로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 공모전 정보 사이트에만 소식이 올라가도 효과가 없지 않았을 테지만 이왕이면 좀 더 그럴듯해 보이는 게 좋으니까 나도 최선을 다해 홍보에 임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7월 1일 첫 달 접수일에 무려 99편의 작품이 들어왔다. 허사장은 한 달 내로 99편을 다 읽어 내는 건 무리라며 공지를 띄우자고 했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래 봤자 하루에 서너 권이잖아. 걱정하지 마. 충분해.”

그리고 내 말이 맞았다. 시간은 충분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한 권, 아침 겸 점심으로 식사 후 한 권, 저녁 식사 전까지 한 권,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잠들기까지 한 권을 더 읽었다. 술맛보다 책 맛이 더 좋아서 술을 거르는 날이 점점 더 많아졌다. 애주가로서의 본분도 망각한 채 소설들을 읽어 치운 나는 정확히 25일 만에 읽을거리가 떨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어때? 이제 시작인데, 소감이?”

99권의 응모작을 모두 읽어 낸 날, 허사장과 함께 와인을 땄다. 소설을 쓸 적에는 잠들기 전에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주 술잔을 들곤 했다. 머릿속에서 계속 이야기를 굴리다 보면 이야기 스스로 굴러갈 동력을 만들어 내는 바람에 억지로 멈추게 하지 않으면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럴 땐 역시 술이 최고였다.

소설 읽기에 빠져 사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나에겐 소설을 읽는 행위가 술을 마시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한 달 치를 다 읽어 버린 지금, 나는 다시 술이 필요했다.

“형편없는 것도 꽤 있지만 그건 또 그거대로 재밌어. 조금만 손보면 아주 괜찮을 거 같은 작품들도 있고. 일단 걱정했던 것보다는 훨씬 좋아.”

소설 엔진이 수명을 다한 것일 뿐 소설에 대한 감은 여전한 터라 내 눈엔 정확히 어디를 어떻게 더하고 빼고 고쳐야 할지가 빤히 보였다.

“다행이네. 그럼 말일까지 심사평 써서 보낼 생각이야?”

허사장이 술을 따라 주며 물었다.

“응. 지금 골라 놓은 건 아홉 편이야. 볼래?”

“나중에. 요즘은 소설이 머리에 안 들어온다. 골치 아픈 일이 많아서.”

허사장은 독신이었지만 부모님과 자매들을 둘러싼 가정사가 복잡했다. 평생 애증의 관계였던 아버지가 근래 몸이 안 좋아지신 것도 허사장을 괴롭히는 문제 중에 하나였다. 나는 다 이해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일독을 권하지 않았다.

“가끔은 부럽다. 소설가 두미르의 인생이.”

와인잔에 남은 술을 한입에 비워 내며 허사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괜한 소리.”

“왜, 좋잖아. 그토록 좋아하는 소설 원 없이 쓰고 원 없이 읽고, 돈도 많이 벌고…”

나는 와인잔을 흔들며 그 안에서 찰랑이는 붉은 색 와인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가끔 내 인생이 실체 없이 느껴지기도 하는 걸.”

“실체?”

“그래. 허사장 말대로 매일 쓰고 읽고 쓰고 읽고, 그것밖에 없잖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그래서 내가 불행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외려 소설을 쓰지 않았다면 불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몰입의 쾌감과 쏟아지는 찬사를 누리며 느끼는 성취감 사이에 생겨난 작은 구멍에서, 그렇게 바람이 빠지듯 허탈한 순간을 맞이할 때가 있었다.

“그런가.”

“난 친구도 자기밖에 없잖아.”

“그건 그렇지.”

허사장이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용케 결혼은 했어.”

“아, 그건 소 뒷걸음질치다 쥐잡은 격으로. 운칠기삼이랄까.”

“에이, 그건 아니지.”

“그런가?”

“그럼. 운이 9할이잖아.”

“맞네.”

우리는 잔을 부딪히며 깔깔 웃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 나는 나의 복 받은 삶에 감사하며 다시는 엄살을 피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홉 편에 대한 심사평을 모두 작성해서 이메일로 보낸 후, 8월 역시 7월과 똑같은 패턴으로 보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라 한 달 내내 집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고, 하루 한 번 샤워와 두 번 식사를 챙기는 것으로 일상의 리듬을 이어나갔다. 운동은 전혀 하지 않았지만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몸이 찌뿌둥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거의 똑같은, 인견 잠옷 위에 얇은 가운을 걸치고 안경을 추어올리며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차림새로 집안 곳곳을 뒹굴며 소설을 읽었다. 8월에 접수된 응모작은 총 55편이었다. 전달보다 내가 내건 주제에 걸맞는 작품이 많이 보였다. 사랑의 파국, 배신, 복수, 범죄 등을 다룬 이야기들. 아무래도 7월엔 기존에 써 둔 작품으로 응모한 경우가 많았던 듯했다. 다소 급하게 쓴 느낌은 있지만 초고의 생생함이 그대로 드러난 소설들 덕분에 8월도 흥미진진하게 보낼 수 있었다. 때로는 노련함보다 아직 농익지 않은 어설픈 기량이 더 마음을 움직일 때가 있다. 20년 전에 썼던 내 소설도 비슷했다. 성급하고 기교가 없었다. 하지만 절정기의 작품보다 그 시절의 작품을 더 좋아해주는 팬들도 많았다. 나 역시 나의 초기 작품들을 유난히 아꼈다. 일단 한 번 능숙해지면 다시 어설퍼지기란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처음처럼 반짝이는 실수를 거듭 해내고 싶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9월이 왔다. 9월 1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메일함을 열었다. 총 33편. 허사장이 예상한 대로 점점 응모작 수가 줄다가 막판이 되어야 다시 늘어날 것 같았다. 서른세 편이라면 한 달 동안 아주 여유 있게 읽어 낼 수 있을 터였다. 느긋한 마음으로 응모작들을 인쇄하기 시작했다. 프린터 세 대가 열심히 돌아갔다. 와인 대신 포도주스를 따른 잔을 한 손에 쥐고서 가장 빨리 출력된 원고를 집어 들었다. <8976킬로미터>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나는 레이지 보이 소파에 몸을 파묻고 앉아 소설을 읽어 내려갔다. 처음 몇 장은 문장이 좀 거슬렸다. 문체가 단조로운 데 비해 한 문장 한 문장 힘이 너무 들어가 있는 터라 술술 읽히질 않았다. 마치 독자가, 그러니까 내가 초반만 읽다가 별로라며 내팽개칠까 봐 걱정된 나머지 부러 자기 능력을 애써 과시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곧 사건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이야기가 문장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8976킬로미터는 서울에서 파리까지의 거리였다. 소설의 주인공은 십 년차 부부. 이야기는 외국계 회사에 다니던 남편 A가 갑자기 파리로 발령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부인 B는 얼마 전 자기 회사를 설립하여 한창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철마다 파리와 서울을 왕복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번번이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1년 넘게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가 A는 파리에서 새로운 여자 C를 만난다. A가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동안 B의 사업은 승승장구한다. A는 C와 함께 파리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어진다. 그러자면 돈이 필요하다. A는 자신의 부인을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8976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8976킬로미터>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었다. 살해 동기는 돈이나 치정. 가장 가까운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을 끝까지 배제해선 안 된다. 정교한 트릭을 쓰진 않지만 대범하게 힌트를 던져 놓고 독자의 추측을 몰이하는 스타일도 비슷했다. 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고 했던 욕심이 이도 저도 아닌 소설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쳐내도 될 곁가지 에피소드를 너무 많이 만들었고, 보란 듯이 배치한 힌트를 숨기려고 결코 수습하지 못할 미끼들을 마구 던져 놓는 우를 범했다. 이야기는 점점 혼돈을 몰고 왔고 거듭되는 혼돈은 짜증을 불러일으켰고 그러다가 저절로 맥이 풀려 버렸다. 결국 막판에 이르러서는 다시 이야기가 문장에 잡아먹히게 되었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소설이었다.

다른 원고를 하나 더 볼까 하다가 영 기분이 내키지 않아서 와인을 땄다. 유난히 떫은 맛의 레드 와인이었다. 탄닌 함량이 높은 묵직한 와인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남편의 취향이었다. 입 안에 와인을 한 모금 머금고 생각했다. 프랑스에서 와인은 실컷 마시고 있겠네. 와인 취향이나 좀 바꾸고 왔으면. 나는 시간을 확인하고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씻고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할 법한 시간이었다.

- 봉주르~!

5분 뒤 메시지 창에 부은 눈으로 양치질을 하는 라이언 이모티콘이 떴다.

- 이제 일어났어?

- ㅇㅇ

- 오늘 외출 예정?

- 응. 오늘부터 위워크로 출근.

- 아, 오늘부터구나.

- (컴퓨터 앞에서 불꽃이 튀도록 미친 듯이 일하고 있는 라이언 이모티콘)

- 저녁에 영상 통화 할까?

-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잖아. 지금은 나 늦어서 안 되고 내일 아침에 하자.

- 아니야. 알람 맞춰 놓으면 돼. 그쪽 시간으로 7시 어때?

- 저녁까지 일할 수도 있어서. 하다 보면 어떻게 될지 몰라. 그냥 내일 아침에 하자.

- 그래 그럼.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남편은 파리에 홀딱 반해 버린 듯했다. 그곳에 더 머물 요량으로 현지에서 가볍게 할 만한 일을 찾다가 무슨 레스토랑의 홍보 앱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서로 떨어져 지낸 지도 벌써 반년이나 되었다. 남편은 언제든지 내가 돌아오라고 하면 바로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차마 먼저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그 여행을 얼마나 기대했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하고 얼른 돌아오라니, 그것도 오직 나를 위해서. 둘이 함께했던 여정에서 도망치듯 혼자 빠져나온 사람이 할말은 아닌 것 같았다.

문득 <8976킬로미터>의 결말이 떠올랐다.

남편과 영상 통화를 하던 B는 로라제팜이 든 와인을 마시고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대로 실종된다. 남편 A가 파리에서 C와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동안 B의 시체는 바닷속 깊이 잠들어 있다. 시간이 흘러 C가 임신을 하고, 만삭인 C의 배를 어루만지며 행복해하는 A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동틀 무렵 수면 위로 떠오른 B의 시체 가까이로 저편에서 어선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나는 잔에 와인을 가득 붓고는 꿀꺽꿀꺽 삼켜 냈다.

이 소설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설마 나를 아는 사람이 의도하고 쓴 글일까.

에이, 설마.

나를 아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 남편이 파리에 있다는 정보는 쉽게 얻을 수 있을 터였다.

내 입으로 내가 떠들었으니까. 공모전 홍보를 위한 인터뷰에서 말이다.

그럼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이런 설정을 택한 걸까.

어떻게든 심사위원 눈에 띄어 보려는 궁여지책이었을까.

와인을 한 병 더 땄다.

식탁 의자에 앉아 저쪽 거실 소파 위에 놓여 있는 <8976킬로미터>의 원고를 쏘아보았다.

A는 어떻게 8976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B를 죽일 수 있었을까.

공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B의 유일한 혈육이자 평생의 골칫덩이인 망나니 남동생 D.

B는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다.

어쩌면 B에게 가장 애틋한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남동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D는 매형의 꼬임에 넘어가 누나를 살해한다.

약에 취해 기절한 누나의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바닷속으로 던져 버린다.

언제나 우리의 심장을 찌르는 칼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비극이었다.

하지만 <8976킬로미터>는 결코 좋아할 수 없었다.

새로 채운 술잔을 비우자 내 몸이 바닷속 깊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9월엔 보름이 지나기도 전에 33편의 응모작을 모두 읽어 냈다. 여유롭게 심사평을 쓰다 보니 당초 의도했던 5편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나머지 작품들에 대한 심사평까지 작성하게 되었다. 딱 하나, <8976킬로미터>만 빼고 말이다.

나는 <8976킬로미터>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노력했다. 유난히 남편이 그리워 잠 못 이루는 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B의 시체를 떠올리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엔 그럭저럭 그 기분 나쁜 소설을 생각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부디 10월에는 잡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매력적인 소설들이 많이 접수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하지만 10월 1일 메일함에 접수된 응모작 수는 겨우 11편.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모처럼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 들어오긴 했는데 그다지 참신한 느낌이 들지 않아 더욱 아쉬웠다.

11월 1일. 응모작 수는 7편. 7편에 대한 심사평을 모두 작성했는데 메일을 보내 놓고 보니 그냥 내가 다시 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12월 1일. 응모작 수는 3편. 출력하는 데도 게으름을 피울 지경이었다. 12월 3일이 되어서야 3편 모두 인쇄를 마쳤다. 집안 곳곳에 다시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1월 1일. 메일함을 열어 보지도 않았다. 연말에 남편과 크게 싸운 바람에 내내 술독에 빠져 살다가 새해를 맞이했다. 겨울은 길고 외로웠다. 폭염이 끝나자 혹독한 추위가 찾아왔다. 도저히 밖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있었다면 함께 종종 외출했을 것이다. 남편이 내 곁에 있었다면…

그때 현관문 번호키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집에 찾아올 만한 사람이라고는 허사장밖에 없었다. 나는 캐시미어 가운을 몸에 두르고 안경을 벗으며 현관 쪽을 향했다. 허사장이 우리집 비밀번호를 알긴 해도 오기 전엔 항상 연락을 주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내 이럴 줄 알았다.”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집에 들어선 사람은 남편이었다. 내 꼬락서니와 달리, 남편은 열두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 같지 않게 말쑥한 차림새였다.

“울고불고, 술만 마셔 댔지?”

한숨이 묻어나는 말투였지만 눈빛엔 애정이 담겨 있었다. 눈꼬리의 주름마저 젠틀하고 다정해 보였다.

나는 남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와락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들었다.

“그냥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하면 되잖아. 그 한마디가 뭐 그렇게 어렵다고.”

남편이 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맡는 남편의 체취가 몹시 정겨웠다. 공모전이고 뭐고 이제 하루 종일, 일 년 365일 남편과 함께 있고 싶었다. 다시 떠난다고 하면 그곳이 어디든 나도 따라가리라.

그 순간은 진짜로 그렇게 생각했다.

1월 1일 메일함에 도착한 단 한 편의 원고를 읽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번 달에도 접수된 게 없다고? 1월에도 한 편도 안 왔다고 하지 않았어?”

허사장이 피곤한 얼굴로 물었다. 아버지 병세가 더 심해지셔서 밤낮으로 간호하느라 몸이 축난 듯이 보였다. 안색이 어찌나 안 좋은지, 다크써클이 광대뼈를 누르고 내려올 것만 같았다.

“응. 두 달 연속 제로.”

나는 움푹 패인 눈을 비비며 소파에 몸을 묻는 허사장을 바라보며 거짓말을 했다. 2월엔 응모작이 없는 게 맞았지만, 1월은 아니었다.

“6월 1일 마감이니까, 마지막 두 달을 기대해 봐야지. 지금까지는 좀 어때? 괜찮은 작품 있어?”

“당장 출판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원고 꽤 많아. 근데 뭐랄까. 딱 이거다 하는 게 없어.”

그동안 읽은 원고 중에 내 신경을 곤두서게 했던 작품은 <8976킬로미터>와 <등뒤>밖에 없었다. <등뒤>는 1월의 유일한 응모작이었다. 서울에서 연쇄 살인이 일어난다는 설정으로, 어두운 골목길을 홀로 걷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는 살인마와 범인을 쫓는 여자가 주인공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추격자 역시 떳떳한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여자는 피해자 중의 한 명을 팬이라는 명분으로 쫓아다니던 스토커였다. 그래도 피해자들의 공통점도 없고 사건이 발생하는 지역 또한 이렇다 할 패턴을 보이지 않아 그야말로 사건 해결이 오리무중인 상황에서 여자의 활약은 눈부셨다. 하지만 그녀 역시 막판인 연쇄 살인마의 희생양이 된다. 그리고 여자가 자신을 미끼로 내던지면서까지 잡으려 했던 단서 덕에 살인마는 결국 체포되고 만다.

소설은 제법 흥미진진했다. 주인공이 모두 악인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문제는 피해자 중에 한 명이 나라는 사실이었다. 직업이 소설가임은 물론이요, 인상착의나 성격, 말버릇, 기호 등 모든 면이 나와 똑같았다. 나는 묻지 마 살인 사건에 대한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에 나올 배경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스산한 골목길에서 등뒤에 칼을 찔린 채 죽는다. 범인은 뒤에서 한 팔로 내 목을 쥐어 당기며 등뒤로 칼을 찔러 넣는다. 찌를 땐 빠르게 뺄 땐 느리게, 반복해서. 나는 끔찍하게 난도질당한다. 내 시신에 대한 묘사는 기가 찰 정도로 자세했다. 다시 읽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다.

글쓴이가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밖에, 달리 생각할 도리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가장 불쾌해할지 염두에 두고 쓴 소설이었다. 글쓴이는 범인을 소설가의 남편으로 설정했다. 부인을 신물난 나머지 없애 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 자신의 증오를 철저히 숨긴 채 부인과 세상 사람들을 속이는 남자.

범인은 소설가를 죽이기 전에 예행 연습을 한다.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할 희생자를 찾는다. 그리고 소설가를 죽이고 나서 다시 또 살인을 한다. 무작위의 살인 사건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세 번째 살인을 하는 순간 범인은 깨닫는다. 자신은 그 행위를 멈출 수 없으리라는 것을. 누군가 자신을 죽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소설가를 스토킹하던 여자가 그 역할을 해 주길 바랐다. 그 여자 역시 나를, 아니 소설 속의 소설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이고 싶은 충동에 빠지던 정신병자였는데도 불구하고.

“정 맘에 쏙 드는 게 없으면 당선작 없음으로 할 수밖에 없지 뭐. 이건 두미르를 위한 공모전이잖아?”

“아냐. 1회부터 그럴 수는 없지. 6월까진 뭐가 나오겠지.”

씁쓸했다. 나를 위한 공모전이랍시고 일을 벌였는데 내가 죽는 꼴만 계속 보게 되다니.

“어쨌든 상금 내건 건 모두에게 나눠주는 한이 있더라도 쓸 거야. 아니, 책 출간을 안 하면 더 보태서 줘야 하나. 아무튼 성의는 보여야지.”

“그래? 혹시 모르니까 나도 응모해야겠네. 원고료라도 좀 받게.”

허사장이 웃으며 말했다. 눈 주변이 워낙 검어서 웃으니까 더 기괴해 보였다.

“그래. 허사장도 한때 글 쓰고 싶어했잖아.”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거들었다.

“어우, 그게 언제 적이야. 20년도 더 된 얘기다.”

허사장은 손사래를 치며 소파에 더 깊숙이 몸을 묻었다.

나는 싱겁게 웃어 보이며 심란한 마음을 감추었다.

여자는 1인 출판사를 운영했다.

그러니까, <등뒤>의 스토커 말이다.

소설 속의 소설가, 바로 나를 스토킹하던 그 여자.

나는 조심스레 허사장 옆에 앉으며 생각했다.

남편한테 살해당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그 여자 때문에 죽었을 것이다.


봄이 되자 남편은 종종 외출을 하자고 고집을 부렸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양재천에서 노닐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알록달록 꽃들이 가득한 아침 고요 수목원에도 다녀오자고 속삭였다. 4월의 대부분이 미세먼지 때문에 외출을 꺼리게 되는 날씨였지만 남편은 밖으로 나돌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이다. 어디가 딱히 티가 나게 아프진 않았지만 내 몸을 세상 밖으로 꺼내 놓을 자신이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겨우내 나는 악몽에 시달렸다. 쇠사슬에 칭칭 감긴 채 바닷속 깊이 가라앉거나 등뒤에 차가운 칼이 꽂히는 꿈. 익사당하는 꿈을 꾸는 날은 언제나 숨을 참고 잠을 자다가 정말로 죽을 것 같은 상태에 이르러서야 깨어날 수 있었고, 칼에 찔려 죽는 꿈을 꾸는 날은 번번이 침대 시트를 땀으로 흠뻑 적셔 놓고 한기에 몸서리치며 일어났다. 그렇게 잠에서 깨고 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남편이 가자고 하는 곳 어디든 따라가겠다던 다짐은 침울한 기분 아래 그대로 묻혀 버렸다.

3월도, 4월도 접수된 작품은 없었다. 텅 빈 메일함을 보며 외려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공모전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건지 또 내가 죽는 소설을 받아 보게 될까 봐 겁이 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등뒤>를 읽고 나서, 나는 <8976킬로미터>의 작가와 <등뒤>의 작가가 같은 사람이라고 확신했다. 문장이 좀 더 다듬어지고 복선을 다루는 기술이 나아졌지만 <등뒤>는 분명 <8976킬로미터>를 쓴 사람의 작품이었다. 서로 다른 이메일로 보내고 필명도 바꾸어 냈지만 두 작품은 똑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악의라는 이름의 악취 말이다.

“혹시 말이야.”

어느 날 남편이 내 눈치를 살피며 말을 걸어 왔다. 손에는 원고가 들려 있었다. 거실에 쌓여 있던 원고 중에 하나인 듯했다.

“혹시 이거 때문에 그래?”

“뭘?”

“악몽 말이야. 요즘 꾸는 악몽.”

남편이 내민 손에 들린 원고는 <등뒤>였다.

“이거 읽다가 깜짝 놀랐잖아. 여기 나오는 소설가, 이름만 다르지 누가 봐도…”

“나, 나지.”

남편은 내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침착하다고 생각했는지 도리어 자기가 대신 분통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니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해? 해도 정도가 있지. 읽다가 소름 끼쳐 죽는 줄 알았네.”

“근데 그건 어떻게 찾아 읽었어?”

“그냥, 심심해서 아무거나 잡히는 대로 읽었지. 설마 이거 말고 또 있어?”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서도 죽는 거야? 이렇게 잔인하게?”

“어느 쪽이 더 잔인하려나. 잠든 채로 쇠사슬에 묶인 채 물에 빠져 죽는 거랑 골목에서 칼에 찔려…”

“그만.”

남편이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내 말을 막았다.

“왜 말 안 했어?”

“내가 과민 반응 한다고 생각할까 봐…”

“한 편이면 몰라도, 이건 분명하잖아. 왜 혼자 고민했어.”

남편이 다가와 양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잠자코 남편 품에 안겨 코끝에 맴도는 체취를 즐겼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 잠시 머뭇거리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설마 허사장이 장난친 건 아니겠지?”

<등뒤>에 나오는 스토커의 직업을 보고 하는 소리 같았다.

“설마. 아니겠지. 이건 장난치고 너무 심하잖아.”

내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자 남편은 스스로 대답을 하며 머리를 흔들었다.

나는 남편 품을 파고들며 생각했다.

그래. 내 오랜 친구가 공모전 진행을 도와준다는 사실, 그 친구가 출판사 사장이었다는 사실 모두 내가 인터뷰에서 떠들어 댔던 내용이잖아. 누구나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소재로 써먹었을 수 있어.

“어떤 놈인지, 완전히 미친 또라이네.”

남편이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나를 달래 주려고 나긋이 던진 말이었다. 나는 남편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문득 집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으면서 남편을 붙들고 있는 내 자신이야말로 스토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히 미친 또라이는 내가 아닐까.

어쩌면 전부 다 내가 쓴 걸지도 몰라.

나는 두 편의 소설 모두 내 안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무서웠다.


5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응모작이 몰려들었다. 5월엔 25편, 6월엔 50편이었다. 덕분에 쓸데없는 생각에 빠지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남편도 집에만 있는 게 지루한지 종종 원고를 찾아 읽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원체 소설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 이야기에 빠져 있는 얼굴이 어쩐지 조금 낯설게 보였다.

- 당선작은 언제 알려 줄 거야?

마지막 접수일이 지나고 허사장이 메시지를 보냈다.

- 발표가 8월 1일이니까, 7월 15일까지 결정하면 될까?

- 그 정도면 여유 있지.

- 더 빠를 수도 있어. 나도 여유 있거든.

- 그러다 체한다. 천천히 읽어.

나는 뚱뚱한 토끼가 게걸스럽게 밥을 먹는 이모티콘을 보내 놓고는 읽던 원고를 다시 집어 들었다. 5월에 접수된 응모작들은 이미 다 읽었으니 이제 남은 건 6월에 접수된 50편뿐이었다. 되도록 6월 내에 모든 심사를 끝내고 싶었다. 7월 1일부터는 제2회 두미르 공모전을 노리는 작품들이 들어올 테니까.

정신없이 원고를 읽다 보니 날이 저무는 줄도 몰랐다. 침침한 눈을 비비며 거실로 향했다. 남편은 원고를 읽다 말고 잠이 든 모양이었다.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곯아떨어진 남편의 무릎 위에 원고가 조금 흐트러진 채로 놓여 있었다. 나는 남편이 깰까 봐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 옆에서 환한 불빛을 쏟아 내고 있는 노트북을 잠자기 모드로 돌려 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건 내가 쓰던 글쓰기 프로그램의 첫 화면이었다. 나는 남편이 그 앱을 사용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자유롭게 개요를 짜고 다양한 방식으로 챕터를 정리할 수 있어 방대한 분량의 글을 쓸 때 유용한, 그야말로 전문가를 위해 만들어진 앱이라 남편이 쓸 일은 없어 보이는데 이상했다. 물론 글을 써 보려는 거라면 이상할 것 없지만 남편은 평생 블로그는커녕 단문을 올리는 SNS조차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남편이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뜨더니 놀란 듯이 황급히 노트북을 덮었다.

“아, 깜짝이야.”

남편이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뭐야. 내가 더 놀랐잖아.”

“깜빡 잠들었나 봐. 세상 모르고 잤네.”

“노트북에 뭐 숨겨 둔 거라도 있어? 뭔가 수상하다.”

“이러다 비번도 알려 달라고 하겠네. 사생활은 존중해 줍시다.”

“흥. 난 다 알려 줄 수 있는데. 꼭 거기서 선 긋더라.”

내가 눈을 흘기자 남편이 검지로 내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대신 여기 비번 잠그고 있으면서.”

소설 집필에 빠져 살던 시절엔 확실히 그랬다. 세계를 만드는 존재는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 그럼 지금은? 소설을 쓰지 않는 지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긴 아예 잠금 장치가 없거든?”

나는 내 머리를 만지며 헤실거렸다.

그러자 이번엔 남편이 눈을 흘겼다.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는 마지막으로 읽은 응모작이었다. 처음 제목을 본 순간부터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 원고를 멀리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불길한 느낌 때문에 어찌해도 읽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피하고 또 피하다가 다른 원고를 모두 읽어 버린 7월 1일, 무거운 마음으로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의 첫 장을 펼쳤다. 소설의 시작은 이러했다.

‘여자는 자신을 잡아먹은 아버지의 배를 가르고 다시 태어났다. 두껍고 질긴 뱃가죽을 찢자마자 여자는 자신의 동생들을 먼저 세상으로 내보냈다. 그들은 아버지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온 여자의 혈육이었다. 형제자매를 모두 구한 뒤 여자도 마침내 아버지의 몸속을 빠져나왔다. 핏물을 뒤집어쓴 여자를 보고 핏덩이 같은 동생들이 경의를 담아 여자의 이름을 불렀다. 세상의 시작을 부수고 스스로 처음이 되신 우리의 어머니, 크로노스여…’

그리스 신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은 제멋대로 이야기를 비틀었고 절묘하게 상황을 끼워 맞췄다. 다소 장황한 듯하지만 비정한 비극의 톤이 한결같이 유지되는 것은 큰 장점이었다. 작가가 흔들림 없이 집요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내면 독자는 거기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작가의 일관된 에너지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글쓴이가 <8976킬로미터>와 <등뒤>의 작가라는 것을 진즉 눈치챘음에도 말이다.

몇 달 사이 새로 써 낸 작품일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만큼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는 전작들보다 훨씬 세련되고 안정적이었다. 몇몇 단락은 어찌나 인상적인지 질투도 일었다. 심지어 공공연히 나를 빗댄 광기 어린 묘사에서조차 불쾌감보다 짜릿함을 느낄 정도였다. 자식을 잡아먹은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 나온 크로노스의 자식이 다시 자식을 잡아먹는 크로노스가 되는 과정. 소설 속 크로노스는 바로 나였다. 소설의 뱃속에서 자라고, 그 뱃가죽을 찢고 나와 소설가가 되고, 다시 꾸역꾸역 뱃속으로 소설을 집어삼키는 괴물.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의 끈질긴 외침은 그거 하나였다. 내가 괴물이라는 것. 스릴러의 신? 웃기지 마. 넌 소설을 먹고 소설을 토하는 괴물일 뿐이야. 실체 없는 삶을 사는 보잘것없는 인간. 언젠가는 네가 잡아먹은 젊은 피의 소설들이 너의 배를 가르고 나와 너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나는 소설 속의 내 소설이 소설 속의 나의 경쟁자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꼴을 보며 손을 떨었다. 내가 그 능력에 감탄해 마지않던 문단의 신예가 송곳 같은 문장으로 내 소설을 비판하고 더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내 명성을 조롱할 때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까지 대놓고 잔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젊은 소설가는 나를 마주하고도 전혀 조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눈빛은 싸늘했고 미소는 삐뚤어져 있었다. 그리고 입을 다물지 않았다. 마치 이 세상에 소설가가 자기밖에 없는 양 떠들어 댔다. 사람들은 젊은 소설가가 무슨 말을 해도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당연했다. 모두 내 배를 누가 찢어발겼는지 똑똑히 보았으니까. 젊은 소설가는 내 시체를 밟고 일어설 터였다. 마치 얼마나 우뚝 설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이 빳빳이 고개를 쳐든 그를 보다가 나는 주름 하나 없는 그의 매끄러운 목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내가 그 젊은 소설가를 죽인 걸까? 아니면 그저 혼자 망상에 시달리는 걸까.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 소설의 화자가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슴을 졸이며 책장을 넘겼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이야기의 힘에 떠밀려 발을 헛디디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땀이 흘러내린 등줄기가 선득선득 시려 왔다.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읽어 내고 책장을 덮자 순간 온몸에 한기가 밀려들더니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공기에 베일 듯이 쓰라린 통증이었다. 뼈마디가 쑤시고 속이 울렁거렸다. 지독한 몸살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의 내 행동을 정확히 예상하고 있었다. 소설 속 화자는 내가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순정적인 면모를 보이다가 미쳐 가는 나를 찬찬히 관찰하기도 하고 마지막엔 나를 위해, 아니 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살인을 한다. 나는 끝까지 그를 믿고 싶었다. 화자를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소설을 끝까지 읽어 나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소설 속의 나는 소설 속의 화자에게 철저히 배신당하고 말았다. 그는 젊은 소설가를 죽이고 나에게 누명을 씌웠다. 소설 속의 화자는 바로 내 남편이었다.

남편의 노트북을 열었다. 생각나는 대로 비번을 입력했다. 남편의 생일도 내 생일도 아니었다. 결혼기념일도 아니었다. 차량 번호도 아니었고 핸드폰 뒷자리도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소설 속 화자의 목소리는 남편의 목소리 그 자체였다. 머릿속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치 귓가에 대고 소설을 읽어 주는 것처럼 숨소리까지 생생하게 내 안을 파고들었다. 확인해야 했다. 남편이 이 모든 소설을 쓴 건지 확인해야 했다. 어쩌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파리에서부터였을까? 파리에 홀로 남겨져서 나에 대한 원망을 담아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혹은 이제 이 일을 그만두라고 내게 경고를 보내는 걸까? 그도 아니라면, 소설 속에 진실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남편은 나를 증오하고, 내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아무리 해도 비번은 알아낼 수 없었다. 점점 정신이 몽롱해졌다. 목덜미가 욱신거렸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노트북을 바닥으로 집어던졌다. 그때였다.

“뭐하는 거야?”

남편이었다. 잠시 슈퍼에 다녀온 듯이 남편의 손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나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입술을 달싹여 보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게 무슨…”

남편은 내 얼굴과 부서진 노트북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이 썼어?”

나는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남편을 향한 걸음이 아니었다. 소파 위에 놓인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 원고를 향한 걸음이었다.

“당신이 쓴 거야?”

원고를 집어들고 물었다. 그건 정말 질문이었을까. 떨리는 목소리에 분노가 서려 있음을 나 자신도 이미 자각하고 있었다.

“무슨 말이야? 그게 뭔데?”

남편이 다가와 원고를 넘겨 받았다.

“이거, 저번 같은 거야?”

“그래. 이번엔 날 죽이진 않았더라. 고맙게도.”

내 싸늘한 말투에 남편은 한동안 어이없는 표정만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걸 내가 썼다고? 그 소설들을 다 내가 썼다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아니지, 당연히.”

남편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당신 뭘 쓰고 있었어? 뭔가 숨기고 있었잖아.”

“그래. 소설을 써 보려던 건 맞아.”

역시 맞았다. 남편은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치만 그냥 끄적댄 거야. 아직 완성한 것도 하나 없다고. 여행하는 동안 읽을 게 없어서 웹에 올라온 소설들을 읽다가 나도 한번 써 볼까 했던 것뿐이라고. 우리 이야기를 소설에 쓸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어. 그것도 그렇게 잔인한 얘기를…. 도대체 어떻게 내가 그런 소설을 썼다고 생각할 수가 있어? 날 그런 미친 또라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순간 덮어놓고 남편을 믿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나는 끝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남편은 할말을 잃은 듯이 망연히 나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부서진 노트북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방문이 굳게 닫혔다.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버렸다.

나는 주저앉았고, 그대로 쓰러졌다.


- 당선작이랑 원고, 메일로 보냈어. 심사평은 작성하는 대로 보낼게. 며칠 안 걸릴 거야.

허사장에서 메시지를 보내 놓고 노트북을 켰다. 심사평을 쓰기 위해서였다. 제1회 두미르 공모전 당선작,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

- 메일 봤어. 당선자한테 연락 넣을게. 발표 전에 한번 만나 볼래?

- 아니. 이젠 허사장이 알아서 진행해 줘.

나는 스마트폰의 전원을 끄고 다시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 페이지에 덩그라니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은 결국 나를 떠났다. 파리에서 끌고온 캐리어에 다시 짐을 싣고 집을 나가 버렸다. 서로 떨어져서 시간을 가져 보자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남편은 더는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나는 남편이 내 믿음을 저버렸다고 여김으로써 남편의 믿음을 저버렸다. 이제 남편은 8976킬로미터나 떨어진 저 먼 곳에서 나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럼 여기 남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몸에 쇠사슬을 휘감고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걸까.

나는 뚫어져라 모니터를 응시했다. 키보드 위의 손가락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머릿속 생각은 미친 듯이 폭주하고 있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 말대로 내가 크로노스라면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 나와 크로노스가 된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당신은 어떤 사람이길래 이런 글을 쓸 수 있는가. 잔인하고 황홀하고 섬뜩하고 아름다운 이런 소설을, 어떻게 해야 쓸 수 있는가. 여전히 손가락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손끝에서부터 찌릿찌릿 전율이 흘렀다. 내가 썼어야 했다. 내가 써야만 하는 소설이었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내가 쓴 건지도 몰라.

노트북 옆에 놓인 원고를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정말 내가 쓴 소설인 걸까. 나는 내 안에서 나온 무엇을 쓰다듬듯 부드러운 손길로 원고를 매만졌다. 한없이 친밀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집어삼키고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소설. 사랑스러운 작은 핏덩이. 갑자기 속이 텅 빈 것처럼 허기가 졌다. 익숙하지만 그리웠던 공복증이었다. 꿈틀, 뱃속이 움직였다.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얹고 깊게 심호흡을 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시동이 걸렸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나의 소설 엔진이 피스톤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움직였다.

노트북 화면 가득 채워지는 글은 심사평 따위가 아니었다.

소설이었다.


<크로노스의 배를 가르고>의 작가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당선 메일을 보내도 회신이 없자 허사장은 당선자를 찾는다는 기사까지 내 보았지만 죄 허사였다. 이례적인 경우인지라 여기저기 수근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작가와 계약을 할 수 없으니 책을 발간할 수도 없었기에 공모전 자체에 대한 불신도 커져만 갔다. 결국 제2회 두미르 공모전은 무기한 연장되었고, 나는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상금을 응모자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것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혹시 죽은 거 아닐까?”

허사장이 물었다. 남편이 떠난 뒤로 우리는 전보다 훨씬 자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하지 못하고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허사장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니면 기억 상실증에 걸렸거나, 미저리에서처럼 감금당해 있는지도 모르지.”

그럴 수도 있었다. 그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내게 또 다른 자아가 있어서 나 자신도 모르게 소설을 썼다는 생각보다는 그 편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졌다. 허사장은 취기가 올라 다시 주절거렸다.

“어쩌면 소설이 세상 밖에 나오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그 소설을 쓴 이유는 따로 있는 거지.”

“어떤?”

“그건 나도 모르지. 난 너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가가 아니잖아.”

허사장은 내가 다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초고를 끝낸 작품이 있다는 것도. 그 작품을 자신과 함께 출간하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다.

“딱 소설 같은 얘기 아니야? 엄청난 작품이 있는데 작가가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영감 떠오르는 거 없어?”

“글쎄.”

나는 와인잔을 비우며 짐짓 무심한 척 대꾸했다. 혀끝에 떫은 맛이 진하게 남았다. 주방 구석엔 아직 남편 취향의 와인이 담긴 박스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우리는 이혼 소송 중이었다. 결혼 생활 내내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을 뿐 아니라 결정적인 이혼 사유 또한 전적으로 내가 제공했다는 주장을 하며, 남편은 내 재산의 절반을 요구했다. 변호사는 모든 상황이 내게 불리하다고 했다.

“잘 생각해 봐. 이거 아이디어로 집필하게 되면 나랑 책 내는 거다. 응?”

허사장이 흐흐 웃으며 말했다. 만약 허사장과 책을 낸다면 제작비나 홍보비는 모두 내가 투자해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럴 용의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허사장이 아니었다면 나는 공모전 같은 건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공모전 덕분에 내 소설 엔진이 다시 가동되었으니 허사장의 공이 없다고 보긴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허사장이 그 모든 소설을 써 보냈다고 해도 원망할 마음은 없었다. 심지어 남편이 쓴 것이라고 해도 더는 상관없었다. 허사장 말대로, 글쓴이가 누구든 자기가 썼다고 나서지 않는 이유는 이미 목적을 이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든 간에 나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쓸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니까. 이제 와서 무엇을 잃었고 어떤 상처를 받았노라며 엄살 피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설령 내가 완전히 돌아 버린 걸 깨닫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해도 결코 내 손으로 소설 엔진을 멈추진 않으리라. 이 모든 짓을 저지른 사람이 나인들 어쩌랴. 내게는 나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 제대로 죽을 때까지, 거듭해서. 그래야 다시 태어날 수 있으니까. 물론 백 번을 다시 태어나도 내 목적은 단 하나,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에 말하지 않았던가.

소설가가 된다는 건 끝내주게 즐거운 일이라고.

설마 아직도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소설가 말고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럴 리가 없다.

우리는 한배에서 나왔다.

크로노스.

나의 크로노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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