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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맞고 싶어 하는 사람들

2018.03.18 03:0603.18

맞고 싶어 하는 사람들

 

 “제발 한 대만 때려주세요.”

 그는 공중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불쾌했다. 얼룩진 화장을 하고 변기에 앉아있던 des는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유행이 한물간 옷차림이 조금 괴상했다. 그의 눈에는 des의 탈색한 머리에서 돌던 어색한 광택이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어쩌면 가발일지도 몰라, 가발을 쓰는 취향이라면 역시 하이힐도 신지 않았을까, 그는 생각했다. 요즘 이렇게 화장실 칸을 점유하고 살아가는 des가 있다는 건 뉴스에도 자주 노출되곤 했다. 하지만 정작 경찰들이 단속을 나가면 des는 이미 사라지고 난 뒤라는 사실로 인해 과연 des가 진짜로 살아있는 무언가 인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었다. 그는 des를 경찰에 신고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des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금지된 것, 무시당하는 것, 멸시 받는 것들이 적어지다 못해 사라진 이 시점에서 왜 des같은 존재가 세상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였다. 그는 재빨리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은 des에 대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애인이 귀가하기 전에 먼저 집으로 가야 했다. 오늘은 애인의 생일이었다. 그는 계획한 깜짝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어서 몸을 깨끗이 씻고 향수를 뿌리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는 요의를 잊게 되었다.

 애인은 그를 맞이하러 나오지 않았다. 신발장에는 처음 보는 신발이 놓여있었다. 그는 애인이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가끔 자기의 것이 아닌 신발이 놓여있으면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자기 방이나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곧 굶주리고 지쳐 방에서 나올 그 둘을 위해 세 명분의 식사를 만들었다. 그가 애인의 섹스를 방해하지 않는 것처럼, 그의 애인과 애인의 애인은 언제나 불평 없이 그의 맛없는 요리를 싹싹 긁어먹었다. 서로에 대한 배려의 표현을 그와 애인은 말없이 나눌 수 있었다. 그는 마트에서 사 온 식재료가 담긴 에코백을 내려놓고 냉장고를 열었다. 여느 때처럼 냉장고에는 전날 먹다 남은 야채스프가 있었다. 용기는 손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스프의 표면은 굳어 있었다. 마치 고깃국의 표면에 둥둥 떠 있는 기름처럼 스프 위에는 하얀 막이 있었다. 그는 스프의 표면을 손으로 꾹 눌러보았다. 기름 막은 그의 체온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이내 손가락을 따라 조금 흘러내리는 듯싶더니 피부로 흡수되었다. 그는 몹시 불쾌했다.

 ‘이거 정말 동물성 지방 같군.’

 평소 같으면 남은 국물에 새 야채를 조금 더해서 맛있게 먹을 텐데, 그는 완전히 새로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스프가 싱크대 배수관을 따라 흘러내려 가고 냄비는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완벽해! 완벽해!”

 애인의 신음소리가 방문을 사이에 두고 들려왔다. 진득한 스프 방울이 냄비의 주둥이를 따라 맺혀서는 끊어질 듯 말 듯 매달렸다. 싱크대의 금속판에 파형의 울림소리가 간간히 났다. 애인은 관계 중에는 물론이고, 그에게 선물을 받을 때, 아침에 창문을 열고 공기를 들이마실 때, 그리고 야채스프의 국물을 떠먹고는 완벽하다고 외치곤 했다. 애인이 한 번도 완벽하다고 외치지 않고 넘어가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지만 그는 언제나 그 말을 들으면 아기처럼 기뻤다. 그는 이내 껍질 채 야채를 썰기 시작했다. 무를 썰면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익숙한 집, 익숙한 부엌, 익숙한 자세로 써는 익숙한 재료, 그는 규칙적으로 집안에 울려 퍼지는 애인의 신음소리와 함께 편안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스프가 끓어오르자 그는 가스 불을 약하게 줄였다. 이대로 한 시간가량 더 끓이면 될 테였다. 부엌엔 뭉근한 토마토 향이 가득했다. 신음소리도 조금 전에 잦아들어 이젠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쯤 되면 배가 곯아 방에서 나올 만도 했다. 그는 아까 신발장에 놓여있던 신발을 떠올렸다. 애인의 새 애인은 지치지도 굶주리지도 않는 걸까?

 “손바닥에 쥐어진 한 줌의 흙 속에 일본의 총인구와 맞먹는 수의 미생물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아는가?”

 그는 문득 천장을 보며 시를 읊듯이 말했다.

 “위대한 자연의 토양 속에서 눈을 띄우고 성장하는 야채는 미생물에게 영양소의 혜택을 받고 태양으로부터 모든 것을 흡수한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섹스 후에 배가 고프기 마련이다. 이 정도 수준의 스프에는 그 누구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월계수 잎과 샐러리 향이 풍기는 붉고 따뜻한 액체. 생체 내의 체액과 농도가 비슷해 체액을 보충하는데 탁월하다. 그는 슬슬 악에 받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을 업신여긴 많은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버림받고 병을 앓는 환자가 되고 있다. 억이 넘는 미생물에 의하여 성장하는 야채는 어떠한 항생물질보다도 우수하다.”

 그는 이제 손을 뻗고 발을 세차게 굴렀다. 그리고 방문을 향해 소리치다시피 말했다.

 “그러므로 야채를 먹으라.”

 순간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는 흠칫 놀라 굳어버렸다. 고조되어가던 그의 음성을 질책하듯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언젠가 집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뒤 샤워하다가 마음 놓고 노래 부르던 날을 기억했다. 낯선 사람이 욕실 손잡이를 덜그럭대는 소리에 그는 발끝부터 온 피부가 순식간에 오그라들었더랬다. 인간의 성대가 그토록 빠르게 수축할 수 있는지 그는 처음 알았다. 수증기 속에서 터져 나오는 기침과 맞이했던 애인의 애인. 하지만 오늘은 또 처음 보는 얼굴이 문간에 서 있었다.

 “이게 무슨 악취인가요?”

 그는 피부가 얼룩덜룩했다. 아주 밝은 얼굴부터 아주 어두운 얼굴에 이르기까지 이젠 새로울 게 없겠다 싶을 만큼 다양한 피부색의 얼굴들을 애인의 애인으로 맞이해왔지만 하나의 얼굴 안에 색이 뒤섞여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엉거주춤하게 이 인물을 향해 손을 뻗은 자세로 멈춰있다 이내 머쓱해졌다.

 “그래도 한번 드셔보세요. 숟가락을 들면 그릇이 순식간에 빌 겁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는걸요.”

 두 사람이 식사하는 동안에 그는 욕실에서 몸을 단장했다. 깨끗이 씻은 몸에 그가 새로 산 물건은 알맞게 밀착되었다. 크기가 너무 작지 않은가 싶었지만 그의 애인은 크기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신체 부위를 보충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애인에게 감동이 될 터였다. 그는 벌써 완벽하다는 칭찬이 귀에 아른거렸다. 거실로 나가보니 그의 애인은 솥 아래에 무언가를 받쳐 기울이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역시나 스프는 오늘도 바닥을 드러냈다. 앞 접시도 없이 애인은 국자로 게걸스레 솥 바닥을 긁어먹으며 말했다.

 “걔가 스프에 뭔가 빠진 것 같대. 그래서 재료를 더 사러 가겠다고 나갔는데, 금방 내가 다 먹어치워 버렸어. 큰일 났네.”

 스프에 빼먹은 재료는 하나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요즘 스프에 별 모양의 야채인 오쿠라를 넣어 먹는 것이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이라고 하던데, 애인의 새 애인이 오늘 올 줄 알았다면 행사 코너에서 집어올 걸 그랬다고 그는 조금 후회했다. 그는 아주 어릴 적 오쿠라를 반찬으로 먹은 기억을 떠올렸다. 오쿠라는 낫토처럼 찐득찐득한 점액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때는 오쿠라가 아니라 레이디스 핑거였다. 열매의 생김새가 여성의 손가락을 닮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누구도 이름에 성별을 담지 않는다. 여성의 손은 가늘고 길지 않다.

 “잘 먹었습니다. 정말 완벽해! 오늘따라 더!”

 애인은 손가락을 빠는 소리를 내며 그와 눈을 맞췄다. 야채 스프로 기력을 보충하자마자 이렇게 눈을 반짝이는 애인을 보니 그는 우스우면서도 뿌듯함을 느꼈다. 그는 애인의 애인이 오기 전에 선물을 보여주고 싶었다.

 “생일 축하해.”

 애인은 선물을 보자마자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그의 손을 잡았다. 며칠 전부터 서로가 얘기해왔던 선물이었다. 선물은 애인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면서도 그만이 선사할 수 있는 기쁨이어야 했다. 그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애인에게는 충분했지만 일 년에 하루밖에 없는 기념일이니만큼 그는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둘은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태초부터 사람들은 이런 형태로 관계해야만 했다. 애인의 얼굴은 완벽하다고 외치면서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애인을 내려다보면서 새 물건이 정말로 자기의 신체 부위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애인이 외쳤다.

 “한 대만 때려주세요.”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대만 때려주세요.”

 그는 잠자코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 누구도 때려본 적이 없었고, 누구에게도 맞아본 적이 없었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폭력 아래 살아갈 수 없었다. 불만을 폭력의 형태로 해결하고자 하는 몸부림은 이미 역사 속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의 흥분감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으나 동시에 그는 자신의 몸무게로 짓눌린 애인의 몸을 때린다는 상상에 사로잡혔다.

 “한 대만 때려주세요.”

 상상은 몇 번이고 좌절되고 부딪혔다. 그는 결코 그런 합리적이지 않은 자극을 원하지 않았다. 만약 애인을 때리게 된다면, 주먹으로 칠지, 손바닥으로 올려붙일지, 얼마나 강하게 쳐야 할지, 피부는 어떻게 흔들리고 어떤 색으로 붉어질지 머릿속의 영상은 수많은 가능성에 자꾸 절름거렸다.

 “제발 한 대만 때려주세요.”

 문득 애인의 음성이 귀에 들어왔다.

 “제발 한 대만 때려주세요. 한 대만.”

 이 말이 몇 번째 요구인지 그는 셀 수 없었다. 그가 망설일 동안에 애인의 표정은 점점 창백하고 안쓰럽게 변해갔다. 덩달아 그의 마음은 조급해졌다. 애인의 몸은 식어가고 있었고 그는 저지를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죄에 대해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안해. 네가 원하는 대로 못 하겠어.”

 애인은 눈물을 흘렸다. 그때 그는 애인의 눈물에서 검은 가루가 섞여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디선가 얼룩지고 젖은 이 표정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자신을 올려다보며 목을 조르는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둘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 목 졸랐다. 하지만 만약 그 장면을 애인의 애인이 보았다면 서로가 애무하는 줄로 여기고 조용히 문을 닫았을 것이다. 둘은 시뻘건 표정으로 핏대를 세웠으나 정작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계가 끝난 후 이불이 축축했다. 잊고 있던 요의가 밀려와 그가 오줌을 지리고 만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엉덩이가 젖은 채로 꼼짝 못 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는 양배추 썩는 냄새가 나더니, 이제는 분뇨 냄새가 나네. 이 사람들 설거지도 하지 않고.”

 부엌에서는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렸다. 쇠 수세미로 거품을 내어 솥을 박박 문지르는 듯했다. 애인은 여느 때의 섹스하고 난 이후처럼 그의 옆에 숨죽여 누워있었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딱 하나,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천장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은 땀에 젖어 오르내렸다. 그는 충격에 애인이 움직이지 못하고 잠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자신도 똑같은 자세를 취할 뿐 몸을 일으킬 기운이 없었다. 다만 눈동자만 옆으로 돌려서 애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몇 초를 센 뒤에 왼 다리를 침대 아래로 툭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내 몸통을 질질 끌어 이부자리에서 벗어나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몸이 그의 몸 같지 않았다. 걸음을 걷는 일이란 원래부터 분리된 신체 부위가 각각 따로 움직이는 것이지만, 그의 지금 자세는 정말로 우스웠다. 왼 팔과 왼 다리를 동시에 뻗기도 하고 또 따로 쪼개어 힘을 주기도 하면서 그는 거의 기어가다시피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노란색 박스가 놓여 있었다.

 “뭐 사 오신 거예요?”

 애인의 애인은 손의 물기를 털며 미소 지었다.

 “요즘 요리에 이거 안 넣는 사람도 있나요? 이거 프랑스 MAGGI 회사에서 나온 건데, 어제 냉장고에 넣어둔 스프 드셔보셨죠? 장난 아니죠? 우리 둘이 당신 생각해서 겨우 남겼어. 걱정할 것 없어요. WHO에서도 인증받았어요. 첨가물 파동 그런 건 다 옛날 얘긴데.”

 애인의 애인은 엄지와 검지로 큐브 모양을 집어 얼굴 옆에 들고 흔들었다. 그는 문득 그 얼굴과 박스에 작게 그려진 닭이 같게 보였다. 그런데 그건 애인의 애인이 닭처럼 생겨서도 아니었고, 오케이 사인을 하고 있는 닭과 포즈가 같아서도 아니었다. 애인의 애인은 얼굴색이 프린트된 듯이 매끄러웠다. 새하얀 얼굴에 그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았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애인의 애인 발을 붙잡았다. 그 발등에는 하이힐을 신은 자국이 선명했다. 그는 눈앞이 새하얘졌다. 애인의 애인으로 인해 지금 모든 것이 망쳐졌다. 모든 해서는 안 될 짓을 내가 했다. 모든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내 집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사람을 때려죽였다. 모조 성기는 오직 널 위한 거지만 하이힐은 상징이야. 우리가 얼마나 심볼을 배척하는 교육을 받아왔는데. 이런 사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줄 알았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너가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어. 그는 방으로 돌아가서 애인을 내려다보았다. 애인의 가슴은 더 이상 숨결을 따라 오르내리지 않았다. 그는 깜빡이지 않은 채 천장을 올려다보는 애인의 두 눈에 눈을 맞췄다. 그는 이제 죄책감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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