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어슴푸레한 찻집 안에 손님은 없었다. 허리가 굽은 늙은 점주가 카운터 안쪽에 앉아 밖을 감시하고 있다. 문에는 오픈이라는 문자가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남자가 표적인가요?”
나는 커피를 마시며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맞은편에 앉은 중개인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 주드 마커스를 처리해달라는 의뢰다. 의뢰를 맡긴 조직에서 일하던 남자로, 3개월 전에 극비 자료를 가지고 도망쳤다더군. 지난 3개월 간 그 조직도 열심히 행방을 찾았지만, 전혀 꼬리를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주드가 그 자료를 들고 외국으로 나가려고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그 자료가 다른 이들의 손에 들어가면 큰 문제가 된다. 의뢰주는 생포를 원했지만, 더 이상 우물쭈물 할 수는 없게 된 거지. 그래서 우리에게 의뢰가 들어온 거고.”
“그래서, 어디 있는지는 찾았습니까?”
“구체적으로 어디 있는 지는 우리 정보망으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독일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 그밖에 유용해 보이는 정보로는, ‘한나’라고 하는 연인이 있다는 것 정도다.”

■ ■ ■

한나에 대한 프로필을 받아보고 나는 조금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름에서부터 잠깐 떠오르긴 했지만, 그녀와는 같은 고아원 출신이었다. 물론 만나지 못한 지는 십 년은 넘었다. 의뢰를 받아들인 건 이 사실도 한 몫 했다. 낯선 것보다는 익숙한 것이 좋으니까. 중개인도 이 사실을 알고 나를 지명한 건지도 모르겠다.

밤이었다. 어딘가 저속한 느낌이 나는 네온사인들이 어둠을 밝히는 골목을 나온 순간, 기습처럼 바람이 불어왔다. 항구도시 특유의 바닷내음도 5월의 찬 공기에 희석되어 있었다. 이곳은 봄이 늦게 찾아온다. 그래도 5월이면 어깨를 떨며 걷는 일이 슬슬 질릴 시기다.
그림자에 잠긴 많은 인파를 되돌아보면서 큰길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내 발걸음은 밤시장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선명한 색을 띠고 있을 야채나 과일들도 지금은 둔탁한 빛을 띠고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익숙지 않은 독일어로 떠드는 소리에 머리가 멍멍한 것도 한몫했다.
“그만해요!”
어디선가 돌연, 그런 비명이 들려왔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의 발원지로 향했다.
살펴보니 2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에게 몇몇의 남자들이 시비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귀찮은 일에 얽힐 예정은 없었기에 나는 걸음을 돌리려 했다. 하지만 그 직전에 생각을 바꿨다. 얼핏 눈에 들어온 여성의 얼굴이 브레이크를 걸었던 것이다.
“뭐냐, 너는?”
덩치 큰 남자가 인상을 험악하게 일그러뜨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놈은 맷집이 꽤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왼손으로 주먹을 쥐고 덩치 큰 남자의 복부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반사적으로 남자의 허리가 접히자, 턱이 딱 때리기 좋은 위치에 노출되었다. 나는 남는 오른손으로 남자의 턱을 후려쳤다. 남자의 목이 훽 돌아가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기절한 듯 했다. 좀 더 싸울 각오를 했는데, 운이 좋았다.
한편, 주위는 순간적으로 조용해진 상태였다. 
덩치 큰 남자의 일행으로 보였던 마른 남자는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잠시 소강상태가 이어지나 싶더니, 마른 남자는 덩치 큰 남자를 부축하곤 사라졌다.
주위의 칭찬이라고도 야유라고도 해석되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아까까지 핍박받던 여성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예? 아, 괜찮아요.” 여성은 방금 생각났다는 듯이 머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당연한 일인걸요.”
나는 긴장을 누그러뜨리며 최대한 인상이 좋게 보이도록 표정을 바꿨다. 그 덕인지 그녀는 부드러운 표정을 띄웠다.
“관광객이신가 봐요?”
“네, 방금 이 도시에 와서 지금은 묶을 곳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묶을 곳 말이에요?”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라는 것 같았다.
“예약하신 곳이 있는 게 아니면, 지금은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모레부터 축제가 시작되니까, 어딜 가도 남은 방은 없을 거예요.”
“그래요? 그건 생각 못 해봤네요. 곤란하군요.”
나는 말끝을 흐렸다. 내가 그러고 있자 여성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저기……만약 괜찮으시면, 제 집에 오실래요? 실은 여인숙을 하고 있거든요.”
이후 얼마간 대화를 나누다가 여인숙으로 같이 가기로 했다. 나는 내심, 이렇게 간단히 해결됐다는 게 의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저희 통성명도 안 했네요. 저는 ‘한나’라고 해요.”
“모리스입니다.”
이름을 말했지만 나에 대해 떠올리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나는 걸으면서 전뇌에 저장해놓은 약도를 지웠다. 이제 필요 없다. 본인이 길안내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 ■ ■

머릿속에 신호음이 울렸다. 나는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독자적인 채널로 연결요청이 오고 있었다. 허공에 떠오른 패널을 조작해 연결요청을 수락했다.
상대는 중개인이었다.
「난처하게 됐다.」
그는 우선 그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죠?」
「클라이언트 쪽이 주드 마커스를 처치하기 위해 다른 동업자도 고용했더군.」
「저 말고도 다른 킬러를 고용했다는 건가요?」
한 인물을 대상으로 여러 업체에게 청부하는 것.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드문 일인 것도 아니다. 서로 경쟁하게 될 것이지만……알아둬야 할 일이긴 하나, ‘난처하게 됐다’니. 무슨 의미지?
「그게, 너보다 유명한 녀석이더군. ‘가린샤’라는 이름을 아나?」
「가린샤? 설마……?」
그 이름을 둘은 순간, 입안이 급속히 마르기 시작했다. 분명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다. 그 이름에 유명한 청부업자라고 한다면……. 어느 사이에 내 머릿속에서 ‘혹시나’는 ‘확신’으로 변해있었다.
「아마 네가 생각하는 녀석이 맞겠지. 어쨌든 가린샤보다 빨리 처리해주기를 바란다.」
그 말을 하고 중개인은 통신을 끊었다.
나는 심호흡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가린샤───그 이름을 들은 순간부터, 혈액의 흐름이 격렬해졌다.
감정이, 날카로워지고 있다.
그런가, 그 녀석이.
나는 여인숙을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막 카운터를 지나치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오던 한나와 마주쳤다.
“일어나셨군요. 잠자리는 어쩌셨나요?”
그녀가 밝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요즘 보기 힘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이렇게 웃는 사람은 잘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동시에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의 연인을 죽이러 온 것이다.
“좋던데요.”
“그렇군요.”
어제는 그대로 그녀의 여인숙에 묵었다. 그녀가 편의를 봐준 것도 있겠지만, 애초부터 값이 비싼 곳은 아니었다. 이층 건물로, 객실은 여덟 개 밖에 없고 샤워는 공용이었다. 이런 곳인데도 방이 거의 가득 찬 것을 보면, 곧 다가올 축제가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지를 볼 수 있다.
함부르크 항구 축제──내일부터 개최되는 50년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대의 항구 축제. 항구라곤 해도 바다 위에 떠있는 배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우주 개척시대를 기념하는, 바다 가운데에 연결된 궤도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백만이 넘는 관광객과 백 척이 넘는 비행선이 모인다는 축제다.
조사 결과, 주드는 한나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겼었다고 한다. 나의 예상으로는 해외로 도피하기 전에 반드시 한나와 접촉할 것이다.
그리고 마커스가 한나와 접촉하려면, 항구축제의 혼잡함을 노릴 것임이 틀림없다. 그랬기에 한나를 가까운 곳에서 감시하기 위해 한나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머무르는 게 처음 목표였다.

■ ■ ■

의식은 회상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면한 가장 큰 문제에 대해. 그 대상은, 물론 가린샤다.
그와는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정확한 연령은 모르지만, 아마 비슷할 것이다. 먼저 시설에 있던 것은 나였다.
그는 얼음 같다는 말이 어울리는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이들과 그다지 친해 지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먼저 다가가보기로 했다. 그것이 계기였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과묵한 성품이었다. 얼마간 지내보면서, 낯가림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과묵하다는 걸 알았다. 좋은 녀석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나쁜 녀석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고아원에서 잘 지낼 수 있도록 이모저모 도와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나뿐만 아니라 점차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늘어갔다. 가린샤에게는 특이한 매력이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엔, 나와 가린샤는 친구라고 해도 좋을 관계가 되어 있었다. 어떤 취미가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되었다.
나는 요리에 흥미가 있었다. 그는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눈에는 야심이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그런 일상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열다섯 살 때였다.
그 날, 나는 원장에게 호출되었다. 원장은 여러 장소에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러 장소’란 국경을 넘은 표현이다. 각국에 고아원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우리가 원장과 얼굴을 맞대는 일은 한 해에 서너 번 정도 밖에 없다.
나는 경계심을 품은 채로 원장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가린샤도 있었다.
그도 달리 들은 얘기는 없어보였지만, 우등생인 가린샤와 함께라면 꾸중을 들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생각이 일순간 떠올랐던 걸 기억한다.
원장은 처음 보는 남자를 한 명 대동한 채로 나타났다. 그리고 시작된 이야기는, 현실과 몹시도 동떨어진 것이었다.
우리에게, 살인 청부업을 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했던 것이다.
농담일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겠냐고, 원장은 그렇게 제안하고 있었다. 도저히 아이를 놀리는 기색은 아니었다.
이어진 이야기는, 구체적인 커리큘럼에 대한 것이었다. 이만큼의 기간에 이만큼의 훈련을 수료한다, 마치 상품의 출하 공정을 말하듯이 담담하게 설명했다.
결국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다. 원장은 마지막에 그렇게 말했다.
이윽고 암살자가 되기 위한 공부가 시작되었다. 가린샤도 있었다. 그가 어떤 경위로 결심했는지는 몰랐다. 나의 경우는 돈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식당을 차리는 데에는 큰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린샤와는, 이 시점에서는 아직 우정이란 게 존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하자.’ 사람을 죽이는 일을 배우면서도, 상대에게 그런 격려를 할 수 있었을 시기다.
하지만 가린샤에 대한 내 시선은 점점 바뀌어 갔다.
그것은 질투심이었다. 총화기, 근접 격투, 나이프, 상황 판단 능력──무수히 많은 항목에서 나는 그보다 뒤떨어졌다. 천재라는 말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라 생각했지만, 그때의 가린샤는 확실히 천재라고 부를만한 이해도를 보여주었다.
어쨌든 나는 그와 대립하게 되었다. 그것을 배려해주는 건지, 가린샤도 예전처럼 말을 건네 오지 않게 되었다.
이윽고 우리는 고아원을 나왔다. 사회생활을 하는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또 청부업자로서도 한 사람 몫을 한다고 인정받았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날, 가린샤는 나에게 말했다.
“이 일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길을 찾아봐.”
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해주었다.
“우리들은 이제 살인청부업자야. 등을 보이면 찔리는 직업이지.”
질투심에서였을까? 아니, 굳이 그게 아니었더라도 본질적으로 내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가린샤의 소문을 들었다. 그가 받는 보수는 나의 몇 배로, 평판도 좋았다. 소문이 들려 올 정도로 이름이 팔리고 있다. 패배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먼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이라 생각하고, 잊기로 하고 있었다.

■ ■ ■

여인숙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바구니를 든 한나와 우연히 마주쳤다. 시장에 들렀다 온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장바구니에 시선을 주었다. 투명한 재질이기 때문에 내용물은 뻔히 보였다.
“책이네요?”
“전자책도 읽지만,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는 맛은 또 다르거든요.”
“클래식한 취미네요.”
이 시대에 실물로 된 책을 읽는 다는 것은, 기계로 해도 될 농사를 직접 흙부터 쟁기로 파는 수고스러움과 비슷하다.
관광객을 가장할 수 있도록 중간에 서점에 들러 샀다.
“그러고 보니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자영업입니다. 음식점을 하고 있어요.”
몇 차례나 써먹었던 거짓말이기에 어색함 없이 흘러나왔다.
“어머, 대단하세요. 젊어보이시는데, 벌써 음식점이라니.”
“저보다 한나 씨가 대단하죠. 저야 종업원을 여럿 두고 있지만, 한나 씨는 혼자서 여인숙을 꾸려 가시는 걸요.”
“아뇨, 별 말씀을…….”
그녀는 분에 넘치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흔들리는 금발 너머로, 엘베강이 흐르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로는 변함없이 혼잡한 상태였다. 같이 걸으니, 한나의 어깨가 몇 번이나 부딪쳐 온다. 그때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해오니까, 어쩐지 이쪽이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중에도 부딪쳐온다. 다음에도 몸을 부딪쳐오면, 과감히 어깨를 끌어당겨 볼까하고 생각했다.
그런 나의 생각을, 오랜 시간을 거슬러 떠올라온 가린샤의 말이 조소했다. ‘이 일은 너와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불필요한 정이 생겨선 안 된다. ‘거봐, 내가 그럴 줄 알았지’라는 결말로는 갈 수 없다. 그녀가 다시 어깨를 부딪쳐 왔지만, 나는 그저 앞만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색을 느낀 것은, 인파가 줄어드는 장소로 나왔을 때였다. 묘하게 사람의 밀도가 줄어드는 듯이 느껴지더니, 다음 순간에는 본 적이 있는 멤버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어제는 신세를 졌어.”
턱에 시퍼렇게 멍이 든 덩치 큰 남자가 다른 이들을 대표하듯이 말했다. 전에 같이 있었던 마른 남자도 있고, 그 외에도 동료로 보이는 몇 사람이 같이 있었다.
“너희는…….”
솔직히 말해, 의외였다.
“어제 당했던 걸 배로 갚아주마.”
남자는 시시한 말을 하며 거리를 좁혀 왔다. 한나가 두려운 듯 내 쪽으로 다가왔다.
덩치 큰 남자가 크게 발을 구르며 나를 덮쳐왔다. 다음 순간, 나는 봉투를 녀석에게 집어던지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방에서 서로 마주보고 앉았다. 상처를 입은 나를 그녀가 치료해주기로 했던 것이다.
“모리스씨는 정말 단순히 음식점 경영자이신 거예요? 믿을 수 없어요. 격투기라도 배우신 게 아닌지.”
“가게를 경영하다보면 시비가 붙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뭐, 저런 녀석들에게는 익숙합니다.”
그녀는 내 왼손에 붕대를 감았다.
한나의 방은, 객실과 다를 것 없는 소박한 곳이었다. 주방이나 가구등이 있기 때문에 늘 쓰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만, 대체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고지식함이 없으면 여인숙을 경영하는 건 힘든 건지도 모르겠다.
방을 둘러보던 중, 탁자 위에 놓인 한 장의 홀로그램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두 명의 남녀가 어깨를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이었다. 둘 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저 분은 남자친구인가요?”
나는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예, 맞아요.”
“축제를 같이 보낼 연인이 있다니, 부럽네요.”
그러자 영상의 정지 버튼을 누른 것처럼, 한나의 손이 딱 멈추었다. 그것은 일순간의 일이었다. 이후 평정을 가장했지만, 눈가에 드리운 그림자까지는 감추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뭔가 사정이 있나 보군요.”
“아니요, 아니에요.”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실은……돌아오지 않아요.”
“돌아오지 않는다니요?”
“예, 반년 전에 만난 이후로 어느 정도 연락이 되다가 행방을 감췄어요. 직장에도 연락해봤습니다만, 그런 남자는 고용한 적이 없다고 들어버려서…….”
“뭔가 짐작 가는 건 없나요? 그가 갈 것 같은 장소라던가, 지인의 집이라던가.”
“그이는 별로 자기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한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연기를 하는 것처럼도 보이지 않는다. 주드가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었는지, 그런 정보는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겠지. 올바른 선택이다. 나에게도 연인이 있다면 그처럼 나 자신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음 대사를 말해야 할 것인지에 몇 초의 침묵을 소비했다. 불필요한 질문이다. 이런 걸 물어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경고하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확실히 해야 한다고 외치는 자신도 있다. 본업에 충실하려면 전자 쪽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당길 방아쇠에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여전히 기다리고 있으신가요?”
나는 물었다. 경고하는 자신의 목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게 되어 있었다.
대답은 금방 나오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겨우 어제 만난 손님에게 이런 것까지 말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예, 그이라면 꼭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그이와 같이 살았던 집이니까요. 모리스씨께 빌려드리고 있는 곳이 그이가 쓰던 방이었어요. 그래서 그 방에서 소리가 날 때면, 그이가 돌아온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곤 합니다.”
나는 바닥을 응시했다. 맡은 일을 포기할 정도로 무책임하게 굴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는 한나를 봤다. 그녀의 연인을 죽여야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도 함께 그것을 저주할 것이다.

■ ■ ■

바다 위에선 입항 퍼레이드가 진행 중이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영화가 떠오르는, 흰 선체를 가진 몇 백 척의 비행선이 바다 위로 착륙하고 있었다. 이 풍경을 영상으로 남긴다면, 우주개척 시대의 초창기를 대표할만한 영상이 나오겠지.
하늘에는 비행선이 떠있고 육지에는 사람이 흘러넘칠 정도로 모여 있다. 2킬로미터가 넘게 이어지는 노점들이 호객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큰 소란이 며칠이고 계속 된다는 것이니까, 터무니없는 축제다. 그나마 5년에 한 번 열린다는 게 다행이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빌딩의 옥상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래쪽에서는 한나가 숙박객인 노부부에게 길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가지고 온 저격총을 조립했다. 이미 점검은 모두 끝마친, 금방이라도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총이다. 바람도 그다지 불지 않는다.
축제 기간 중에 주드는 접촉해올 것이다.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그때는 그때다. 아니, 다시 시작하기 보다는 더 이상 내가 나설 자리는 없을 것이다. 경쟁 상대가 너무 우수하다. 나보다 가린샤가 먼저 주드를 처치하겠지. 그의 명성은 높아지고, 나에 대한 평가는 낮아질 것이다.
그때, 시야 한 구석에서 무엇인가가 빛났다. 반사광 같다──라고 생각한 다음 순간, 콘크리트에 튕겨난 도탄이 뺨을 스치고 뒤를 잇는 총성이 고막을 두드렸다.
“……!”
빗나간 듯 했다. 운이 좋았다. 나는 재빠르게 몸을 숙였다.
가린샤의 모습이 뇌리를 스쳤다. 그가 쏜 것일까? 그러나 미심쩍다. 그라면 한 번에 맞췄을 것이다. 가린샤 정도의 초일류가 쓰는 전뇌와 의체라면 실패할 저격은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레귤러가 끼어들었을 수도 있지만, 이 타이밍에 그런 게 생겼다는 건 우연이 지나치다.
나는 저격지점으로 달렸다.

탄도를 역산해서 추적한 결과, 도착한 곳은 방치도니 빌딩이었다.
여태까지 봐온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이 도시의 일각에는, 사람의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았다.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왼손의 붕대 너머로 차가운 그립의 감촉이 느껴졌다. 상처 때문에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애초에 붕대도 과했다.
권총의 잠금장치를 풀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갔다. 아무래도 이곳은 빌라였던 것 같다. 문들이 늘어서있고, 복도에는 빈 깡통이라든지 음식 쓰레기가 널려 있었다.
이윽고 5층에 도착했다. 이곳이 최상층이지만, 색적에 걸리는 건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분명 도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 있기는 했다.
위화감을 알아챈 것은, 복도를 얼마간 걷고 있을 때였다. 냄새가 났다. 비릿한, 피의 냄새가 어디에선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의 현관문이 열려 있었다. 발소리를 죽인 채 접근해, 총구를 앞으로 향하고 뛰어들었다.
아무도 없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생체반응은 없었다.
자세를 풀고 방안을 살폈다. 방안에는 여러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아는 사이도 있었다. 시장에서 덤벼왔던 덩치 큰 남자와 그 일행들이다. 전원이 미간과 흉부에 구멍이 뚫린 채였다. 모잠비크 드릴이라는 사격법이다. 원래는 반드시 머리에까지 쏠 필요는 없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체의 기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사살이라는 행동에 뇌의 파괴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이정도 숙련도라면, 당연히 프로의 솜씨다.
나는 시신 중 한 구 앞에서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녀석이 저격총을 갖고 있었다. 이 녀석이 나를 쐈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어서 다른 남자들도 조사했다.
탄피는 하나. 나를 저격할 때 쓴 한 발 뿐이다. 다른 이들이 총을 뽑을 틈도 없이 당했다.
그때 배후에서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되돌아본 순간, 양손이 목을 감아왔다.
“죽어!”
“큭!”
나는 반사적으로 남자의 팔을 풀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갖고 있던 권총을 남자의 허벅지에 대고 쐈다.
남자의 안색이 크게 바뀌며 손에서 힘이 빠졌다. 재빠르게, 비어 있는 쪽의 손으로 주먹을 쥐고 남자의 얼굴에 내다꽂았다. 신음을 흘리며 남자가 뒤로 물러났다.
기침을 하면서 나는 자세를 추슬렀다.
“누구냐, 너는?”
“히익! 쏘, 쏘지 말아줘!”
“질문에 답해. 너는 누구지? 왜 나를 공격한 거지?”
“그, 그냥 저 녀석들이랑 동료일 뿐이야!”
나는 시간을 들여 녀석을 추궁했다. 녀석이 이 도시에서 활동하는 건달이라는 것, 그리고 자기가 잠시 볼일을 보러 갔을 때 누군가가 와서 동료들을 모두 죽이고 간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 있었다.
왜 나를 죽이려 했는가.
“뮐러가 시켰어.”
“뮐러?”
“우리들에게 일을 맡긴 녀석이야. 여자 하나를 데려가는 일이었는데, 너를 노린 건 네가 몇 차례나 방해를 해서 그런 거였어.”
“그 여자는 여인숙 주인을 말하는 건가?”
남자는 긍정했다.
과연.

■ ■ ■

「뭐? 뮐러라고?」
나의 설명에 중개인은 소리를 질렀다.
「네, 분명히 뮐러라고 말했어요.」
「뮐러는 주드의 친구다. 동료이기도 했지. 그가……아니, 그래서인가. 그래서 반년간이나…….」
폐허에서 얻을 수 있던 정보는 이렇다.
이번 의뢰의 가장 중요점인 극비 자료를 훔친 것은, 뮐러라고 하는 남자다. 그러나 그 혼자서는 자료를 유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주드를 이용하기로 했다. 다만 어째서 주드가 거기에 협력했는지는 알 수 없다. 돈에 혹해 주드 스스로 원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뮐러와의 우정이 판단력을 흐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대외적으로는 주드가 시선을 끌고, 뮐러는 그를 뒤에서 봐주고 있다──그것이 표면상의 체재라고, 폐허에서 남자는 말했다.
즉 주드는 냉정히 따지자면 본질적으론 중요한 사람은 아니다. 그를 죽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그를 죽인다면 뮐러가 더욱 깊숙이 숨어들 위험이 있다.
「지금 확인한 바에 따르면, 뮐러는 장기 휴가 중이라는 모양이군요. 그동안 주드와 빈번히 접촉했다고도 하고요.」
「젠장…….」
중개인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윽고 결의한 것처럼 그는 말했다.
「방금 의뢰인과 연락했다. 뮐러도 죽여라. 보수는 배로 내겠다더군.」
이번에는 내 쪽이 입을 다물 차례였다. 옅은, 초조감이 마음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주드도 죽입니까?」
「당연하지. 그러니까 보수를 몇 배로 지불한다고 한 거니──」
「주드는 관계없습니다.」
나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이용당했을 뿐인데, 굳이 번거롭게 죽일 필요가 있습니까?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다가 둘 다 놓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중요한 일이다. 주드도 완전히 무관계하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 의뢰 내용을 우리의 편의에 맞게 해석해서, 만약 문서가 유출된다면 그때는 우리들 선에서 책임질 수 없게 된다.」
나는 반박할 수 없었다.
통화가 끝났다.
나는 그 자리에서 머리를 움켜쥐었다. 두 개의 감정이 내면에서 서로 대립한다. 결국, 이성과 감성의 문제다. 프로의식을 중요시하느냐, 어느새 생겨버린 동정심을 중시하느냐.
내 본심은 분명했다. 주드를 공격하고 싶지 않다. 주드를 기다리는 한나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이 본심이다.

여인숙으로 돌아왔다. 소파에 걸터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한나가 돌아왔다.
한나가 나를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어머, 괜찮으세요? 또 다치셨나요?”
“네? 어떤?”
한나는 내 왼손을 가리켰다.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 눈치 채지 못했다. 붕대에 붉은 얼룩이 번져 있었다. 폐허에서의 일 때문에 상처가 벌어진 것일까.
“혹시 또 싸우신 건가요?”
“아니요, 그…….”
“잠시 와주세요. 붕대 갈아드릴게요.”
나는 한나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나는 의자에 앉아 서랍에서 구급상자를 꺼냈다.
나도 근처에 있던 의자를 끌어 당겨, 그녀와 마주 보듯이 앉았다.
“모리스씨는 요리를 하는 분이지요? 손은 소중히 해야죠.”
그녀는 왼손에 있던 붕대를 벗겨내고 상처를 소독했다. 그리고 약을 발랐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새살이 돋아나는 게 보였다. 그녀는 붕대를 꺼내 손에 감아주었다.
한나가 붕대를 정리하던 중, 벨소리가 울렸다. 나는 전뇌를 쓰고 있기 때문에, 이 방안에 전화기가 있다면 한나의 것일 것이다.
예상대로, 한나가 전화기를 들었다.
나는 침을 삼켰다.
한나가 어떤 대인관계를 맺고 있는지, 상세히는 모른다. 평소의 다정한 모습처럼, 여러 사람들과 친분이 있어 자주 전화를 받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여인숙을 운영하는 만큼 예약을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능성은 다양하다. 하지만 직감은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한나는 여보세요, 라고 말한 후 여인숙의 이름을 말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쪽을 바라보았다. 직감이라고 해야 할지, 공기가 바뀌는 기색을 느꼈던 것이다.
“주드……? 정말로 주드야?”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그 이름을 몰라야 할 나는 무반응을 가장했지만, 뇌리에는 전류가 튀고 있는 기분이었다.
전화를 받는 한나의 표정은, 점차 부드럽게 웃는 얼굴이 되어 간다. “주드”라고 이름을 불렀을 때, 거기에는 확인 이외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방을 나왔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조금 새어나왔다.
“응, 괜찮아. 아무도 없어.”
나는 문을 닫았다.
잠시 후 한나가 방에서 나왔다. 통화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연인과의 통화라기에는 조금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복도의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나는, 주위를 확인하고 한나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의자 아래쪽에 붙여둔 녹음기를 챙기고 방을 나왔다.
방으로 돌아가며 귀 뒤쪽의 포트에 꽂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두 명의 남녀의 대화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왔다.

■ ■ ■

「여행 준비를 하고 그 카페로 와.」
「무슨 일이야?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는지, 그 정도 이야기해줘.」
「지금은 그런 여유는 없어. 뮐러라고 기억하고 있지? 그와 같이 셋이서, 지금부터 곧바로 이곳을 뜰 거야.」
「뭐? 잠시만. 갑자기 그런 말을 해도…….」
「나는 한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생각해. 이건 우리들 장래에 필요한 일이야. 안전해지면 전부 설명할게. 그러니까 지금은, 말하는 대로 해 줘. 부탁이야.」
「그런…….」
통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해안대로는 이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공연이 준비되고 있다.
나는 전처럼 빌딩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저격총을 꺼내서 설치했다.
스코프에 비친 오픈 야외 테이블의 한쪽 측면에, 한나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옆에는 여행 가방이 있다. 준비에 걸린 시간은 약 1시간. 그동안 짐을 쌓는 것과 여인숙을 운영할 사람을 불러오는 등, 떠날 준비를 착실히 마쳤다.
주드나 뮐러를 기다리고 있자니, 배후에서 소리가 났다. 문을 여는 소리였다.
옥상문은 분명 잠갔을 텐데──.
누굴까. 나는 반쯤 확신을 갖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상대에게, 준비해둔 말을 꺼냈다.
“너라면 올 줄 알았어. 카페를 향해 저격을 한다면 역시 여기가 제일 좋은 자리지.”
가린샤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가린샤, 네 표적이 주드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원흉은 주드가 아니야. 뮐러다. 돈 받고 사람을 죽이는 입장이지만, 굳이 주드까지 죽일 필요는 없다고 봐.”
내가 내뱉은 말은, 의뢰인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런 말을 나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내뱉었다. 나 자신에게는 프로의식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 다르다. 추가 의뢰를 맡는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먼저 받은 의뢰만. 극비자료의 유출을 막는 것만 수행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내 안에서 매듭을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가린샤였다. 나 혼자 하는 거라면 지금 내뱉은 말을 적당히 포장해, 중개인과 의뢰인에게 설명하는 것으로 끝난다. 어느 정도 불이익은 있겠지만, 선택할 수 없는 선택사항은 아니다. 어쨌건 사람 한 명의 목숨보다는 가벼운 패널티다.
그러나 같은 의뢰를 수행중인 사람이 있다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뮐러만 저격할 거라면, 나는 너에게 양보해줄 수도 있어. 아니, 이미 이런 제안 자체가 너에게 많이 양보하고 있는 거야.”
가린샤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마 안에는 분해된 총이 들어 있을 것이다.
양손이 자유로워진 그는,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더니 담배 하나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신 후, 희뿌연 연기와 함께 그가 말했다.
“내가 의뢰받은 건 주드를 죽이는 거다. 극비 자료 같은 건 관계없어.”
“아니, 폐허에 있던 남자들을 처리한 건 너다. 내가 했던 것처럼, 너도 그 녀석들로부터 뮐러에 대한 정보를 캐냈을 거야. 그건 즉, 주드를 죽이는 것만이 의뢰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지 않은가?”
“이봐, 모리스. 너는 의뢰 내용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야. 이 일은 우리 좋을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모르진 않을 텐데.”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음을 굳히기로 했다.
옛 친구로서 다소나마 융통성을 보여줄지도 모른다고, 경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을 자책했다. 그에게 있어 이것은 사무적인 일이다. 애초에 인정이나 사정에 휘둘린다면 이런 일은 못해먹는다.
그런 걸 잘 알고 있기에,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는 방법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유감이군.”
이렇게 된 이상 할 수밖에 없다.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고아원을 나온 그 날부터, 이렇게 될 거란 예감은 쭉 있었다. 그저, 조금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을 뿐이다.
가린샤도 달리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
“전에 말했을 거다. 이 일은 너와 어울리지 않아.”
“분하지만, 네가 옳았어. 솔직히 한참 전부터 질릴 대로 질렸었거든. 어쩌면 나는 굳이 한나가 아니었어도 이랬을 지도 몰라.”
서로 마주 본 채로, 가린샤는 조용하게 나를 노려보았다. 눈썹 하나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앞으로 취할 행동을 예측하게 만드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총을 가진 남자가 두 명. 하나의 사냥감을 두고 싸우고 있다.
서로가 상대의 거동에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리고 잠시 후,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폭죽이었다.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가, 우리 두 명에게도 불을 댕겼다.
가속화한 전뇌가, 찰나의 순간을 세밀하게 쪼개어나갔다. 그래서 원래라면 눈으로 쫓을 수 없었을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내가 막 홀스터에서 총을 꺼내고 있을 때, 가린샤는 이미 나를 향해 총을 겨눈 채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과연 빠르다. 아니, 태평하게 감상을 말할 때가 아니다. 속도에 있어서는 완패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왜냐면 나는, 이미 한두 발 정도는 맞아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우리 둘 다 죽겠지. 아마 가린샤도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첫 번째 착탄이 내 쇄골을 꿰뚫었다. 그러나 강화 의체를 사용하고 있는 몸은, 그 정도 충격으로 사격지점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나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그 순간, 시야에 비친 무엇인가가 나의 시선을 빼앗았다.
아.
나는 탄식을 토해냈다. 어째서 지금 눈에 들어와 버린 걸까.
왼손의 붕대다. 그녀가 감아 준 붕대가, 몇 백 분의 1초를 나에게서 빼앗아 갔다.
차탄이 정확히 신경계의 중요부분을 끊어내며, 나를 완전히 무력화 시켰다. 쓰러지는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폭죽 소리의 잔향이 사라졌다.
“어째서 공격하지 않은 거지?”
그렇게 말하며 가린샤가 다가왔다. 나는 쓰러진 채로 그런 그를 올려다보며, 허탈하게 대답했다.
“……그런 거, 부끄러워서 말할 수 없어…….”
가슴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어갔다. 옥상의 콘크리트 위로 불규칙하게 피가 번져갔다. 마치 가슴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동귀어진 같은 건 내 멋대로의 희망사항에 불과했단 걸 자각했다. 아마 방아쇠를 당겼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겠지. 가린샤 녀석, 이정도 사격이 가능하면서 잔챙이들을 상대로도 반드시 세 발을 사용했던 건가.
흐려져 가는 의식 너머로,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에게 부탁했다.
“부탁해, 주드는 놓아줘. 한나는 그를 쭉 기다리고 있었어. 세상에 한두 명 쯤은, 자신의 운명에 감사하는 사람이 있어도 괜찮잖아.”
가린샤는 대답하지 않고, 일과를 끝낸 것 같은 표정으로 저격총을 꺼내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옥상의 구석으로 다가가, 카페를 가만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의식이 잠시 끊어졌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가린샤는 스코프를 들여다보고 있었──
──다. 주드와 뮐러가 나타난 걸──까? 멀리서 폭죽 소리──가 울려 퍼──진다. 다양한 언어로 떠드는 관광객들의 소리──도 귀를 울린다.

이윽고 공기가 크게 진동했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총성. 이정도 소란이면 저런 총성 따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으로부터 손을 놓았다.
가린샤가 누구를 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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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면 장르만 의식하느라 제목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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