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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네 번째 피해자

2018.03.23 19:0003.23

  커피 메이커가 내는 도로록- 도로록- 하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컵을 준비했다. 딱 필요한 만큼의 낡은 가구들이 단조롭게 배치된 방에 커피향이 자욱해,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주체 못할 기분을 느꼈다.

  가슴 부근이 열기가 가득한 수증기 같은 것으로 채워지는 기분. 이것은 행복감일까.

  티 세트를 찬장에서 꺼내는 김에 밀크와 설탕도 준비하려고 했지만, 문득 이제 그 둘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이제 없다. 내가 눈치 좋게 준비해두는 의미가 없다.

  어느 새인가 커피 메이커가 잠잠해져 있었다.

  커피를 따르면서 나는 솟아오르는 김을 응시했다. 김은 차가운 겨울 공기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그 광경이 묘하게 불가사의한 것으로 느껴져서, 나는 커피메이커를 내려놓고도 당분간 그 광경을 주시했다.

  갑자기 기억 하나가 자극된다. 커피향 탓일까?

  뿌연 김 속에서 유진의 모습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

  

  S건설회사 사장의 집에 주치의로서 고용된 것은, 대략 3년 정도 전의 일이었다.

  S건설회사는 한국전쟁 이후 설립되어 단기간에 큰 부를 쌓은 회사다. 시간이 흐르며 전성기 때에 비하면 규모는 꽤 작아졌지만, 지금도 그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는 곳이다.

  각설하고, 그곳 사장의 막내딸인 김유진이 병약한 몸이라, 주치의 자체는 전부터 고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오기 전까지 주치의를 맞고 있던 의사가 고령에 접어들며 그만두게 되어 대신할 의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원래라면 나 같은 평범한 의사가 이런 곳에서 주치의를 하게 될 일은 없겠지만, 마침 그만둔다는 전 주치의가 나의 은사였다. 그 분이 후임으로 나를 추천해 주셨던 것이다.

  다시없을 이야기에 나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사장의 자택은 산속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무성히 자라있는 곳을 얼마간 들어가야 나오는 곳에 있었다. 거의 사람이 지나가지 않는 듯한 길이라 사고라도 나면 위험하겠다 싶었다.

  얼마간 달리자 갑자기 시야가 열리며 상당한 크기의 저택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화의 한 장면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저택이었다.

  벽돌을 쌓아 만든 건물외벽은 주위의 나무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서양의 옛 건축 양식이었다. 나는 무심코 감탄의 한숨을 흘렸다. 그런 후 새삼 새 직장의 무게감을 의식했다.

  큰 철문 앞에서 일단 정차해서 인터폰을 눌렀다. 저택에서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연배의 남성이 나와 나를 맞이했다,

  안내에 따라 차를 세우고 50대 남성, 즉 이곳의 집사를 따라 저택 안을 안내받았다.

  저택 내부도 훌륭했다. 호화로우면서 집 전체의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얼마간 걷자 고용주인 차은혜 사장님과 대면했다.

  연령은 4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기품이 있고 예의가 발랐지만 동시에 그녀에게서는 딱딱한 돌처럼 엄격한 분위기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고용주는 몇 년 전에 남편을 사고로 잃고, 그 이후 이 집을 혼자서 지켜 왔다고 한다.

  대충 인사를 끝마치자, 나는 이번에는 사장님에게 안내를 받아 저택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간 걷자 사장님은 하나의 문의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김유진의 방일 것이다.

  사장님은 몇 차례 노크를 하고는 문을 열었다. 나는 사장님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찻잔을 기울이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있었다.

  “어라? 그쪽 분은 누구에요?”

  투명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충격을 받았다. 일순간, 눈앞이 흐려져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느낄 정도였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단언할 만큼의 큰 충격.

  한 눈에 반했다고 말하면 적당할까.

  깨끗한 물을 빚어 만든 듯한 투명하도록 흰 피부와, 그 흰 피부를 감싸며 내려앉은 검은 물결 같은…….

  “얘는, 정말! 또 그 컵을 꺼낸 거니?”

  옆에서 사장님이 야단을 치는 듯 소리를 높였다. 그 탓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유진은 쀼루퉁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쁜 컵인데 찬장에만 놔두긴 아깝잖아요."

  "그러다가 실수로 깨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니. 기념품이니까 다시 돌려놓으렴.”

  유진은 마지못해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 행동이 생각 외로 어린아이 같아서, 나는 무심코 웃었다.

  유진은 그런 내 행동을 눈치 챈 건지 다시 나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 그쪽 분은 누구시죠?”

  "새로운 의사 선생님이셔. 김현식 선생님.“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인사만으로는 조금 심심한 것 같아, 나는 이어서 “좋은 컵이네요.”라고 말했다.

  거짓말을 한 건 아니다. 아버지가 골동품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어느 정도 안목이 있었다. 컵은 아주 훌륭했다.

  유진은 일순간 저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라는 표정을 띄웠다가, 큭큭 하며 소리죽여 웃기 시작했다.

  "김유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릴게요."

  유진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바라봤다.

  깨끗하게 흘러내리는 까만 머리카락과 뽀얗게 하얀 피부가 단정한 느낌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실제로 본 사람 중에서는 가장 아름다운 것 같다.

  내가 다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던 탓에, 유진이 의아해하며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드릴게요, 유진씨."

  나는 웃었다.

  

  +++

  

  첫날 중에, 나는 사장님의 장녀인 김유정과도 대면했다.

  역시 자매구나 싶게 유정도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다만 유진과는 다르게 활발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었다. 취미는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라고 한다. 재벌가의 장녀라는 이미지에는 부합하지 않는 이미지였다.

  반면 유진의 경우는 철부지긴 하지만 ‘양갓집 규수’라는 말이 가장 적당했다.

  그녀는 내가 미리 들었던 대로 병약했고, 아름다웠다. 게다가 총명하고, 문학에 관해서는 특히 조예가 깊었다.

  내가 그녀와 그 나름대로 친해졌을 무렵,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읽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요."

  유진은 운동을 거의 할 수 없다.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빈혈증상을 보였다. 가만히 앉아서 책 읽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다만, 이것은 나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살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나는 책 자체는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읽어보고 싶었던 책에 대한 얘기를 듣거나 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고, 그걸 접점으로 그녀와의 거리를 줄여갈 수도 있었다.

  그녀와 내가 그리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것도 기뻐해야 할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우리들은 책을 통해서건, 치료를 통해서건, 서서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취미나 기호부터 시작해, 자기도 눈치 채지 못하는 버릇까지도.

  버릇이라 하면, 우선 그녀는 의외로 단맛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그녀의 방에 커피를 가지고 가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그녀는 언제나 설탕과 우유도 달라고 했다. 그것도 상당한 양을 원했다.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커피에다가 집어넣는 것을 보면 약간 기가 질린다.

  나는 기본적으로 블랙커피만 마시지만, 설탕 정도는 가끔씩은 넣어 마신다. 그래도 우유만큼은 딴 세상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쓴 걸 왜 마셔요?"

  그녀가 나에게 물었고, 나는 너야말로 어떻게 그렇게 단 걸 마실 수 있냐고 되돌려주었다,

  그녀는 커피 한 잔에, 각설탕을 여덟 개는 넣는 식습관이 있었다. 나쁜 버릇이다. 물론 밥을 적게 먹는 대신 설탕으로 칼로리를 섭취하는 셈이기도 하고, 또 몸에 안 좋다고는 해도 분명 그녀의 병은 이런 것과는 관련이 없는 영역이긴 하다.

  주치의로서는 말려야겠지만, 병세에 대해 약간의 호전도 기대할 수 없는 방법을 이유로 들어 그녀의 몇 없는 즐거움을 빼앗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인생이 씁쓸하기 때문에 단 걸 먹어줘야 하는 거예요."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얼버무리듯이 대답했다.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중에 인생의 쓴 맛을 더 느끼다 보면 블랙도 달게 느껴질 거야."

  "어휴, 선생님도 완전 아저씨네요."

  유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그 후에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그래도 지금은 전만큼 씁쓸하지는 않아요."

  "왜?"

  내가 그렇게 되묻자 그녀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

  

  주치의가 된 후로 일 년 정도 흘렀을 무렵, 이 저택의 장녀인 유정과 독대할 일이 생겼다.

  부르기에 찾아갔지만, 짐작 가는 용건은 없었다. 나는 유정의 방에 있는 소파에 앉아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반대편 의자에 앉아있고, 우리 둘 사이에는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상황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나는 소파에 기대고 있던 등을 떼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유정씨, 무슨 일이시죠?"

  내가 먼저 물었지만, 그런데도 그녀는 다소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며 뭔가 말하기 시작하려 했던 입을 다시 다물었다. 평소에 매사를 시원시원하게 처리하던 유정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다시 조금 기다리자, 유정은 망설임을 정리한 듯 입을 열었다.

  "유진이 말예요."

  "네."

  유정은 나의 눈을 응시했다.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인 눈동자였다.

  "유진이가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그녀의 직접적인 말에, 나는 순간 숨을 멈추었다. 그 이상의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게, 유정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나는 그저 유정이 말을 이어가길 기다렸다.

  유정이 입을 열었다.

  “유진이는 예전부터 이성으로서의 남자를 만날 기회가 없었으니까, 지금까지 누굴 좋아하는 것도 본 적이 없어요. 아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쭉 그랬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러니까, 라며 유정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혹시 선생님이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둔 게 아니라면, 저희 유진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나는 한층 더 말을 잃었다.

  여러 가지 감정이 가슴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머릿속이 정리가 되지 않고 복잡했다. 그랬기에 말을 꺼내기 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그건, 저보고 유진이와 결혼하라는 건가요?"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그녀는 의문스러운 기색을 띈 눈으로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제 착각이 아니라면, 선생님도 유진이를 좋아하시는 것 아닌가요?”

  ──나는 대답을 고민했다. 그 탓에 유정이 다시 입을 열기 전까지 침묵이 흘렀다.

  "물론 어머니는 반대하실 지도 모르지만, 제가 설득한다면 허락하실 거예요. 그러니까 선생님,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유진이가 좀 더 행복해졌으면 해요."

  그렇게 말하는 유정을 보며, 나는 그녀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한 동생을 봐왔기 때문에, 어느 샌가 유정에게 유진은 동생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똑바로 유정의 시선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사실 처음부터 대답은 정해놓고 있었다.

  "꼭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

  

  나는 유진에게 먼저 청혼했다. 유진도 그것을 받아 들여 주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사장님은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와 이야기한 대로 유정은 사장님을 설득하려 했으나, 사장님은 뜻밖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에 더해, 이대로 결혼할 생각이라면 나를 해고할 거라고까지 말했다.

  사실 이 부분은 큰 상관이 없었다. 일이 이렇게까지 진행된 이상,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해고될 거라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사장님도 딸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만, 나 같은 별 경력 없는 의사 나부랭이를 가문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회사를 키우고 가문의 입지를 키우는 것, 그것이 사장님의 우선적인 목표였기에, 딸의 결혼을 사업적인 카드로 보고 있는 것이다.

  괜스레 의대에 같이 지원했다가 공대로 전향한 친구들 생각이 났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저기 선생님.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렇게 말하는 유진의 표정이나 음성이 평소와 다르게 밝아서,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유진이 말하는 ‘죽음’은 남다른 어두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유진이 나를 불렀다. 나는 아차 싶었다. 또 생각에 잠겨 멍하게 보였으리라.

  나는 유진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알고 있다. 유명한 고사다. 하지만 유진이 갑자기 그런 말을 꺼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물어도."

  "그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들려주세요."

  그 자리의 기묘한 분위기도 있어서인지 나는 유진에게 떠오르는 대로 말해주었다.

  “──그건 말 그대로, 죽어서 이름을 남길 수 있다는 거겠지.”

  “에이, 그건 같은 말 반복하는 거잖아요.”

  유진이 핀잔을 놓으며 툴툴거렸다.

  “저는 가끔 제가 죽기 전에 세상이 멸망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해요.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세기말이기도 하고요.”

  “어머니가 밉기도 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결혼을 허락해주셨을 거예요.”

  “왜 저는 언니와 다르게 이렇게 몸이 약하게 태어난 걸까요?”

  그 당시 나는 유진의 어두움에서 일종의 파멸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굳이 유진을 케어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부의 감정으로 기울어가는 그 공간과 시간이 나는 썩 싫지 않았다.

  

  +++

  

  사장님이 돌아가셨다.

  괴한에게 습격당했다고 한다.

  그녀는 한 달에 한 번, 시외의 한식당에서 회사의 중진들과 저녁식사를 가진다.

  회식자리긴 해도 그리 오래 이어지는 건 아니었기에, 낮이 긴 여름이라면 아직 날이 밝을 때에 귀가하는 일도 있었다.

  그랬기에 귀가가 늦어지는 것을 다들 걱정스레 생각했고, 곧 괴한에게 습격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옆구리를 예리한 칼날로 찔려 쇼크사 했다고 한다. 식당을 나와, 자신의 차를 타기 직전의 일이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경찰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범인을 특정할 만한 어떠한 요소도 발견되지 않았다. 동기를 가진 사람을 꼽자니, 사업에서의 알력이 많았던 만큼 이 사람도 의심스럽고 저 사람도 의심스럽고 해서 큰 의미가 없었다.

  상을 치르는 것도 큰일이었으나, 그 이후에도 큰 문제가 닥쳐왔다.

  회사를 누가 운영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친인척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20대 초중반인 유정과 유진 밖에 없었다. 전쟁으로 친인척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때는 전문 경영인이라는 것도 없었기에, 당연히 자식이 물려받아야 한다는 얘기가 중론이 되었다. 그런 터라 회사는 장녀인 유정이 잇게 되었다. 사장님의 재산과 권력을 모두 계승하게 되었기 때문에, 경찰은 그녀가 범인인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허나 그녀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기 때문에 그 혐의는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나의 고용주도 유정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와 유진이 결혼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이 조금이 지나고 나서의 일이었다.

  

  +++

  

  결론만을 말하자면, 유정의 경영 수완은 뛰어났다.

  사장님이 돌아가신 후로, 솔직히 이대로 망하는 게 아닐까 우려되던 회사였으나 유정의 활약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물론 한 번의 큰 타격을 입은 이후로, 전체적으로 쇠약해진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유진은 이전과 다르지 않은 생활을 이어가 있었다.

  결혼했다고는 해도, 내가 의사고 그녀가 환자인 것에 변화는 없었다. 나는 사양했지만 유정은 나에게 급료를 지불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 유진이는 행복해 보여요. 선생님 덕분이겠죠. 그러니까 이건, 그 감사 표시라고 생각해주세요.”

  유정은 그렇게 말했다.

  

  +++

  

  유정이 죽었다.

  교통사고였다. 저택으로 오는 구부러진 길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중, 핸들을 잘못 움직인 탓에 주로를 이탈해 비탈길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즉사는 아니었지만, 사람이 그리 다니지 않는 길이라 발견될 때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발견되었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첫 번째 발견자로서, 그리고 의사로서의 나의 진단이다.

  유정이 죽은 날은, 사장님이 죽고 나서 일 년 하고 반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유정은 미혼이었으므로, 본래라면 회사는 유진이 이을 예정이었으나, 유진은 그걸 거부했다. 동시에 남편이었던 나도 거부했다. 우리는 유정의 유산만을 일부 상속받았고, 결국 회사는 다른 사람이 잇게 되었다.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에 누가 물려받았는지는 이름조차 기억하고 있지 않다.

  사장님 때와 같이 역시 경찰이 수사를 했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던 듯 하다. 그렇게 사고로 처리되고 종결되었다.

  그렇게 끝나는 듯 했지만, 다만 유정의 죽음에 유진은 생각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유진은 원래 병약했던 데다, 정신적인 충격이 겹친 탓에 앓아 눕는 일이 많아졌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도, 대화를 나누던 중에 문득 기운을 잃고는 “미안해요.”라고 말하며 침울한 기색에 잠기기도 했다. 남편으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꽤 불안정하게 되어 있었다.

  남겨진 유산만으로는 전처럼 생활을 유지하기는 어려웠고, 결국 고용인들도 해고하게 되어, 저택에는 나와 유진만이 남겨졌다.

  그렇게 유진은, 나를 제외하고 일가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

  

  그런데. 말할 필요도 없이, 사장님과 유정을 죽인 것은 나였다.

  나는 사장님이 한 달에 한 번씩 회식자리를 갖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죽이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목격자의 여부뿐이었지만, 늦은 밤이었고 어두웠기 때문에 변장을 하고 있으면 그다지 리스크가 없었다.

  결혼을 방해하는 사람이 더 이상 결혼을 방해하지 않게 되는 것. 그것은 그녀의 목적이었고, 나는 거기에 협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실행범은 나였지만, 주범은 그녀였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사장님의 죽음으로 유진은 비탄에 잠겼다. 그녀에게는 그 역할이 적당했다.

  

  그리고 유정을 살해하는 것은, 사장님에 비하면 비교적 간단했다.

  나는 그녀의 취미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오토바이의 브레이크를 고장 냈다. 저택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은 아래로는 경사가 가파르고, 길이 구불구불하다. 내가 처음 저택으로 향했을 때에도 느낀 사항이었다.

  그녀에게 사고가 일어났다고 해도 의심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고, 발견이 늦었다고 해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길 주변에는 나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고로 위장해 죽이는 데에 꽤 적절한 환경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유정도 죽어, 유진은 한층 더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이것으로 두 개의 ‘죽음’이 유진의 이름을 수식했던 것이다.

  나는, 만족했다.

  

  그러나 바로 그 유진은 자신의 죄의 무게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인지, 점점 불안정해져갔다.

  그녀는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도, 양심적인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밥을 잘 넘기지 못하게 되었다. 약과 커피만 입에 데었다. 그 정도만으로 당분간은 괜찮았다. 문제였던 것은 육체적인 부분보다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참을 수 없었는지, 이전부터 있었던 혼잣말을 하는 습관이 더 심해졌다. 자책과 사죄의 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을 보며, 유진이 한층 더 깊은 곳까지 가라앉아가는 걸 느꼈다. 곧 돌아올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정신에 한계가 오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녀는 비극의 주인공이란 역할에 어울렸다.

  

  ──그리고 유진도 죽었다.

  경찰은 독극물을 통한 자살이라고 판단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두 명의 육친을 잃은 그녀가 자살하는 것은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녀가 독극물을 섭취할 때 물을 마시기 위해서 사용한 것이 사장님의 기념품이었던 찻잔이었던 사실도, 자살이라고 하는 견해를 보충해주었다. 죽은 육친의 기념품으로 자살. 흔히 있는 스토리다.

  단지, 부자연스러운 점은 하나 있었다.

  검시 결과, 그녀가 복용한 독극물은 복용 후 수십 분이 지나야 녹는 캡슐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죽는다면, 보통은 적어도 편하게 죽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계속 의식해야 한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했다고 해도 무서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독극물을 직접 섭취하지 않고 일부러 캡슐로 복용했던 것이다.

  죽을 때까지의 수십 분,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떤 생각이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단 한 명 남겨진 저택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있는 나는, 내 등 뒤까지 포함해 이 방 전체를 느낄 수 있다. 나의 감각은 더욱 확장되어, 저택 전체가 손끝에 만져질 듯 느껴진다. 이 저택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 사실에, 커피의 향기와 함께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저택 안에서, 나는 찻잔을 응시했다. 어딘가 공허한, 채워진 기분.

  모순된 감정이지만, 나는 지금 내가 안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알고 있다.

  나는 달성감을 느끼고 있다. 목적하던 대상을 얻고 목적이라는 동력을 잃었다.

  말할 것도 없이, 유진을 죽였던 것도 나다.

  유정을 죽인 사람이 나라는 것을 유진은 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같이 지낸 기간이 길면 알게 모르게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자신이 사랑하는 언니를 죽였으니까 몹시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나에게 있어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나는 처음부터 사장님, 유정, 유진, 이 세 명을 살해할 생각으로 하고 있었다. 사장님을 죽이고 유진과 결혼했던 것도, 유진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목적을 위해서였을 뿐이다.

  나는 그것을 처음으로 보았을 때, ‘이름을 남길 수 있는’ 존재가 될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유진과의 대화중에 그 방법도 깨달았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얘기하자면 이름을 남기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진을 살해한 방법. 이것은 극히 단순하다.

  유진이 언제나 복용하고 있던 약을 바꿔치기 했을 뿐이다. 녹는 데에 수십 분이 걸리는 캡슐도 내 재량으로 얻을 수 있는 물건이었다.

  굳이 녹는 데에 수십 분이 걸리는 캡슐을 쓴 이유는, 만일 독이 즉시적으로 작용할 경우에는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유진이 사장님이 기념품으로 갖고 있던 그 찻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지 않고 손에 넣고 있었다면……혹시나 떨어뜨려 깨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십 분이나 여유가 있으면 그런 가능성은 줄일 수 있다.

  

  나는 커피를 따른 찻잔을 내려다봤다.

  물을 빚어 만든 듯이 투명하도록 흰 피부와, 그 흰 피부를 감싸며 내려앉은 검은 물결 같은 꽃무늬.

  요염한 검은빛과 하얀 피부가, 놀랄 만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 빛은 내가 지금까지 본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골동품에 대해 안목이 높다고 자부하고 있던 나를 매료시켰다.

  이 찻잔의 가장 첫 소유자는 사장님.

  그 다음은, 찻잔이 포함된 사장님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정.

  세 번째는, 그런 유정의 유산을 물려받은 유진.

  그렇다.

  나는 이 찻잔에게 한 눈에 반해, 사랑하고, 헌신했던 것이다.

  이 찻잔의 소유자들을 죽이는 것에 의해서, 이 찻잔의 이름을 남기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네 번째의 소유자는 나 자신이다.

  나는 유진을 죽일 때 썼던 것과 같은 약을 먹었다.

  나와 관련된 이 저택의 일가 전원이 죽었다. 경찰이 나를 의심하지 않을 리가 없다. 개개의 죽음으로는 눈치 채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이 단기간에 세 번이나 일어나면 당연히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나는 겉으로는 유진의 뒤를 따라 자살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때 사용한 컵이 지금까지 세 명의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나의 죽음과 함께 이 찻잔은 한층 더 영원한 것이 된다.

  나는, 웃었다. 이 이상 만족스러울 수 없을 정도로 환하게 웃는 얼굴로 컵을 바라봤다.

  천천히 커피를 마저 마시고, 컵을 내려놓았다.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달성감과 자기파괴적인 만족감이 섞여 들어간 목소리로, 분명 내 마지막 말이 될 한 마디를 내뱉었다.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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