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그 외투에 묻은 것은, 그리고 너의 얼굴에 묻은 것은, 그리고 아프다는 말을 삼켜 내장에 독이 다 퍼져버린, 다시 꿈을 찾아 떠나는 너의 뒷모습이 상실을 엎고 몸을 뒤틀어 크려고 애쓰는 어린 나무처럼. 네가 떠난 후 나의 마음에는 빈 허공이 휘이 뚫렸다. 어리고 작은 어깨가 외로워서 움츠려 떤다. 어딘가의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무엇인가가 강요한 침묵에 입을 꽉 틀어막고 어둔 방 안에서 혼자 울고 벽에 머리를 박는다.

 

 

 

 

난 죽음을 꿈꿉니다.”

 

그 사람은 내담자의 위치에 서 내담자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내담자는 말할까 말까를 망설이고 있다가, 상담사가 조금은 차갑게 계속 말하세요.’라고 하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애가 사라진 이후부터였을 겁니다. 그 애가…… 뒷모습을 보이며 떠났을 때.”

 

그 애는 어떤 모습이었죠?”

 

여자애였습니다. 외투를 입고 있었고…… 미지의 세계로 걸어가고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

 

내가 소년일 때였습니다.”

 

50대의 남성은 고개를 떨구었다.

 

솔직히 죄책감이 듭니다. 그 아이는 언제나 소녀입니다. 그 아이는 언제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떠올리면, 내가 몹쓸 인간이 된 기분이 듭니다. 30대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50대에 와서, 나는 여전히 그 모습들을 떠올리고, 그 모습들을 기억하고 있고, 그리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으흠.”

 

상담사는 아주 간단한 심호흡으로 대꾸를 대신했다. 남자는 또 한 번 말을 망설인다.

 

그러니까, 소년 때 사랑했던 사람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는 건가요? 그건 이상한 건 아닙니다.”

 

아뇨. 사랑보다도 나는…… 그녀가 사라졌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더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상담사는 반듯하게 고개를 숙인 뒤, 펜을 들어 무언가를 끄적였다. 남자는 창 밖을 보았다. 마치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앉아있는 죄수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여기 앉아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모습이 뇌리를 지배할 때면 늘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 세상에는 늙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

 

이 세상에는 늙지 않는 사람이, 있어요.”

 

남자는 자신을 보는 눈이 이상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는 듯, 싱긋 웃어보였다. 상담사는 힐끗 시계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매우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다 되었네요. 다음 상담에 계속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또 침묵에 대해서 생각한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입 밖에 내어놓곤,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든지 수십년. 그는 이번에도 역시 별 다를바가 없을까, 라는 생각에 암담해졌다.

 

거리의 바람은 싸했다. 낡은 외투가 미처 다 막지 못한 서늘함이 그의 피부에도, 가슴에도 배어온다. 예전의 그 아이가 한 말이 떠오른다.

 

고백할 게 있어.”

 

?”

 

소년은 그 때, 관계가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설핏 떨리는 눈빛을 하고 소녀를 보았다.

 

늙어서 죽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거에 대한 거야. 불사에 관한 거.”

 

소년은 픽 웃었다.

 

소설이라도 본 거야?”

 

아니, 내 얘기를 하는 거야.”

 

농담이면 그만하자. 재미없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언젠가는 이야기 해야하는 거니까. 노화가 일어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야. 유전자, DNA의 끝에 테로메아란 게 분열되면서 짧아지고, 짧아지다가 결국 다 닮아 없어지면, 그게 노화야. 그런데, 테로메아가 짧아지지 않게 되면 노화가 일어나지 않게 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나야.”

 

소녀가 말했고, 소년은 그 때, 분명히 인상을 가득 찌푸렸다.

 

이런 식으로 놀리는 거, 재미없다니까.”

 

난 늙지 않아.”

 

. 그렇다하자. 네 말이 사실이라 치면, 넌 몇 살이야?”

 

장단에 맞춰 놀아줄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소년은 짜증을 내면서도 그렇게 물었다.

 

마이너스살.”

 

, 재미없다니까.”

 

진짜야. 난 미래에서 왔어.”

 

?”

 

진짜야. 미래의 기술로, 난 그렇게 된 거야.”

 

그 순간, 사회의 상식 속에 놓여있던 소년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미친 게 아닌지, 진지하게 의심해보아야만 했다.

 

믿기지 않지?”

 

하고 소녀는 말한다.

 

소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물었다.

 

"왜 온 거지?"

 

"죽음이 궁금해서."

 

소녀는 대답했다.

 

 

 

 

매연이 따갑다. 남자는 아주 먼 과거를 생각하며 하염없이 걸었다. 자신도 믿지 않았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였지만, 나중에는 자꾸 엉뚱한 소리를 뱉는 통에 성질을 내고 말았다. 짜증을 가득 풀어냈지만, 소녀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미래에서 왔다라고. 그 말만을 계속 했다. 그럴수록 소년은 점점 난처해졌다.

 

미래에서 왔다고 했다. 그 곳의 인구는 매우 적으며, 늙지 않는다고 한다.

 

불로불사가 만들어졌다는 말이다.

 

소녀는 말했다. 자신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소년은 처음에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문득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녀가 소속된 곳이 아무 곳도 없다는 현실을 어느 순간에 볼 수 있게 되었다.

 

소녀는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집이 명확하지 않았다. 소속된 곳은 아무 곳도 없다. 그러나 깨끗하고 완벽했다.

 

자신을 휩쓸고 간 혼란을 겪고 나서 소년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물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무어냐고.

 

나는 늙지 않기 때문에 이 곳에 3년 이상은 있을 수 없어. 정체가 의심받거든. 그리고 그 3년이 다 되어가. 사실 이 말을 하는 건 금지된 일인데…….”

 

떠나?”

 

.”

 

떠나야만 하는 사정이 있다면 그런 이상한 말로 현혹하지 말고 그냥 떠나줘.”

 

미안해. 하지만 네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

 

제발.”

 

소년은 한숨을 쉬며,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라는 듯, 소녀를 보았지만 소녀는 외면했다. 그녀는 말을 할 듯 말 듯 망설이다가 말을 뱉는다.

 

부탁이 있어.”

 

부탁?”

 

우린 결핍된 존재야. 아무 것도 채워지지 못하고 있어.”

 

그녀의 눈은 슬퍼보였다.

 

 

 

 

상담은 세 차례나 이루어졌지만 중년의 남자는 뚜렷한 마음의 위안을 얻지 못한 채, 상담가를 마주하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기억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다 털어놓을만한 시간이었다.

 

미래에서 왔단 말이죠.”

 

상담가는 종이에 무언가를 적는다.

 

그 부탁이 뭡니까? 소녀가 했다던.”

 

늙은 후에 이별한 장소에 다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약속한 날짜는 지났습니다만.”

 

떠난 장소요?”

 

아직도 꿈을 꿉니다. 그 애가 떠난 장소와 그 아이가 입고 있던 옷, 잠시 뒤돌아볼 때 지었던 표정까지 생생합니다. 그 곳은 초원이 끝나고 산이 시작되는 지점이었지요. 온통 푸른 그 속에서 갑자기 시공이 일그러졌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졌어요. 사라졌다기보다는 그 시공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군요. 자신의 세계로 돌아간 겁니다. 그게 미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미지의 세계는 어쩌면 다른 차원의 세계일 지도 모르고 우리의 머릿속으로는 상상이 되지 않는 그런 곳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그 사람을 기억 속에서 포장해놓지 않습니까?”

 

포장이요?”

 

주원씨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은 매우 완벽해보입니다.”

 

완벽이요? 아닙니다. 그녀는 그 존재가 결핍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랬습니다.”

 

.”

 

그래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제가 볼 때 주원씨의 기억은 많이 왜곡되어 있는 것 같아요. 환상 속에 있는 것같아요. 그래서 떠난 그 곳에 늙은 이후 오라고 하던가요?”

 

. 50이 넘으면 그 때.”

 

가보셨습니까?”

 

가보지 않았습니다.”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거기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현실을 직시하셔야합니다.”

 

중년의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는, 두려워서 그 곳에 가지 못했다. 이 모든 게 거짓이라면, 그는 거짓을 품고 수십년을 살아온 셈이 된다. 그 것은 그 것이 현실이었다는 것보다 더 혹독한 말이었다. 상담사는 그가 아마 이 말을 듣기 위해 이 곳에 왔으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같이 가봅시다.”

 

상담사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상담사와 주원이 그 초원에 도착했을 때, 그 곳은 텅 비어있었다. 초목과 꽃, 벌레와 새, 그들만의 공간인 듯 인기척은 전혀 없이 풀내음이 짙게 났다. 낮이어서 초록빛이 더욱 선명히 주변을 덮고 있다.

 

상담사 선생님.”

 

주원은 상담사를 불렀다.

 

내가 죽음을 꿈꾸는 이유가 무언지 이야기 했던가요?”

 

아니요.”

 

그녀가 죽음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흐음.”

 

주원은 풀내음을 음미했다. 상담사는 흘려들으며 앞에 서있었다. 시간은 고고히 흘렀다. 풀은 언제나처럼 흔들리고 바람은 언제나처럼 그 틈을 손살같이 지나간다. 일상의 무료와 같이 그 풍경은 변화가 없었다. 1시간 쯤 지나자, 상담가는 하품을 했다.

 

보세요. 주원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

 

상담시간은 완료되었어요. 숙제를 하나 낼까요? 여기에 오늘 계속 계세요. 현실을 직시한 후에 다음 상담을 진행해야만 해요. 오늘은 여기에 계세요. 여자아이는 오지 않을 거에요.”

 

주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여기에 있겠습니다. 먼저 돌아가보시지요.”

 

……. 그럼.”

 

상담사는 돌아갔다. 주원은 혼자 남아 한 시간 가량을 더 앉아있었다. 50살이 넘으면 여기에 오기로 한 약속. 그 것은 거짓된 것처럼 현실의 세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남자는 눈을 감고 귓가에 부는 바람을 느꼈다. 세상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만물이 흐르고 공생하며 순환하여 싹을 틔운다. 세상은…….

 

주원은 눈을 떴다. 한참을 앉아있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해는 기울어 노을이 지고 있었고, 먼지에 반사된 빛은 너르게 퍼져 초원을 쬐고 있었다. 풀빛이 노을에 물들어 흔들거린다. 남자는 문득 인기척을 느꼈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의아함을 느끼며 남자가 일어선 순간, 남자는 보았다. 예전과 똑같은 생김새의, 소녀였다.

 

와줬구나.”

 

……나는 꿈을 꾸면서 산 게 아니었어. .”

 

"늙은 모습이 멋있는걸."

 

"너는 내 인생을 망쳐버렸어. 너 덕택에 항상 죽음을 꿈꿨지."

 

"나는 당신이 죽길 바라지 않는데."

 

소녀는 웃었다.

 

"멋지게 늙기를 바랬지."

 

"불로불사라-."

 

주원은 허허 웃었다.

 

"아직도 죽음이 궁금해서 과거로 돌아왔어?"

 

"아니."

 

소녀는 웃었다.

 

"곧 돌아갈 테지만 그냥."

 

소녀의 웃음에 따라 주원도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싱긋 웃었다. 소녀의 나이는 알 수 없었지만 사춘기였던 것은 분명하다.

 

"당신이 궁금했어. 늙어줘서 다행이야."

 

"약속을 지키고 싶지 않았는데 용기내서 왔어."

 

주원은 생색을 냈다.

 

"그러니까 부탁 하나를 들어줘."

 

"지킬 수 있는 거라면."

 

"늙어서 죽고 나면 임종에 자리해다오."

 

"장례식장에는 가볼게."

 

"내가 미친 거라도 너를 볼 수 있다는 건 나쁘지 않군."

 

늙어버린 소년과 소녀는 마주보며 싱긋 웃었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추천 수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040 0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9776 0
2459 단편 흑백논리 후안 2018.08.16 40 0
2458 단편 한 터럭만이라도 너울 2018.08.15 87 0
2457 단편 비소가 섞인 달걀술 호넷시티 2018.08.12 46 0
2456 단편 유전 눈설기쁠희 2018.08.12 42 0
2455 단편 양념을 곁들인 마지막 식사 호넷시티 2018.08.10 52 0
2454 단편 프로키온이 빛나는 겨울 밤 호넷시티 2018.08.10 45 0
2453 단편 공터에 하차 맥인산 2018.08.04 63 0
2452 단편 가역거부귀(可逆拒否鬼) 맥인산 2018.08.04 67 0
2451 단편 상실형2 모르타 2018.08.02 102 0
2450 단편 사이버펑크 목이긴기린그림 2018.07.31 45 0
단편 타나토스 강서진 2018.07.31 38 0
2448 단편 개를 기르는 마녀 강서진 2018.07.31 24 0
2447 단편 원조맛집 너울 2018.07.30 112 2
2446 단편 공생 김성호 2018.07.19 26 0
2445 단편 친애하는 선생님께2 후안 2018.07.18 81 1
2444 단편 연애의 어려움 너울 2018.07.14 36 1
2443 단편 작명의 어려움 너울 2018.07.12 56 1
2442 단편 개를 키우는 이유2 후안 2018.07.10 67 0
2441 단편 문예부의 방석 목이긴기린그림 2018.06.30 34 0
2440 단편 남겨진 사람들 limzak 2018.06.30 16 0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4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