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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야옹 하고 운다

노말시티

     - 킬러 I -     

뻥!

맨손으로 풍선을 쥐어 터뜨릴 수 있는지. 팔을 쭉 뻗고 고개를 돌린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겨우 터뜨리는 거 말고.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치 뽁뽁이를 눌러 터뜨리듯 자연스럽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터뜨리기.

이런 걸 설명해 주는 게 도움이 될까. 풍선은 폭탄이 아니다. 폭발하면 사방으로 파편이 날아가는 폭탄과는 달리 풍선이 터지면 표면의 고무 재질들은 안쪽으로 쪼그라든다. 그러니 풍선이 터지더라도 고무 조각이 날아와 눈에 박히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시끄럽고 요란한 소리만 날 뿐. 그러니 팔을 쭉 뻗을 필요도, 고개를 돌릴 필요도, 인상을 찌푸릴 필요도 없다. 그냥 손 안에 쥐고 꾹 눌러 터뜨리면 된다. 당신에게는 그 어떤 피해도 가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풍선이 사라질 뿐.

살인도 마찬가지다.

동맥을 자르면 길어야 일 분 안에 생명이 사라진다. 피를 보고 싶지 않다면 경동맥을 압박하는 방법도 있지만 아무래도 완력이 필요하고 타겟이 반항하게 되면 일이 더 지저분해질 가능성이 많다. 굳이 덩치 큰 남자들을 상대로 그런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기습으로 경동맥이나 쇄골하동맥을 노리거나 아니면 슬쩍 허벅지 동맥을 그어 버리는 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심장에 칼을 꽂는 쪽을 선호한다.

풍선이 터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는 없다. 생명은 서서히 사그라진다. 하지만 숨이 끊어지기 직전, 반짝 하고 생명이 마지막 빛을 태우는 순간이 있다. 풍선이 터져 나가듯. 죽어 버린 사람의 영혼이 파편처럼 튀어 당신에게 묻는 일은 없다. 풍선이 그렇듯. 피. 그거야 닦으면 그만이고. 나는 그렇게 생명을 터뜨리는 과정을 내 손 안에서 오롯이 느끼기 위해 심장에 칼을 꽂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어려울 건 없다. 물론 눈치 채이지 않고 접근해서 칼날을 심장에 가져다 대는 데 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도 사람들이 진짜로 어려워하는 건 그 칼날을 박아 넣는 일이다. 풍선을 눈앞에서 터뜨리지 못하듯이. 그걸 할 수 있는 것만으로 나는 킬러가 됐다.

참. 먹고 살기 쉽지.

아니.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 킬러들조차 굳이 심장에 칼을 찔러 넣는 나를 미친놈, 아니 미친년 취급한다. 나쁠 것 없다. 남자 놈들 사이에서 살아남기에 미친년이라는 평가는 꽤 쓸만하다. 어차피 난 킬러다. 킬러. 사람을 죽이는 사람. 킬러라는 말이 미친년이라는 말보다 듣기 좋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 말로 미친놈이겠지.

단 한 번도 의뢰에 실패한 적이 없는 킬러. 타겟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굳이 심장에 칼을 꽂아 넣는 변태, 미친년. 독사. 불여우. 또 뭐였더라. 얼음 공주? 날 그렇게 불렀던 놈이 누구였더라. 짝눈이었나. 그 놈의 가슴에 칼날을 박아 넣었었지. 칼날이 갈비뼈를 덜그럭하고 쳤을 때의 표정이 참 볼 만 했는데. 이런 미친년! 그래. 그렇게 불러야지.

그게 내가 먹고 사는 방법이다. 목표물에 접근해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심장에 칼을 꽂는다. 몇 번이나 실패해도 다시 써 주는 남자들과는 다르다. 핑계. 핑계. 그 자식들이야 말로 참 쉽게 먹고 살지. 단 한 번만 실패해도 난 이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 업계. 그게 참 더럽지. 킬러는 의뢰로 먹고 산다. 그리고 의뢰는 뚜쟁이들에게 들어온다. 킬러에게 직접 들어오는 의뢰는 드물고, 무엇보다 위험하다. 의뢰자 입장에서는 킬러를 특정할 필요가 없다. 특정하려 한다면 분명 의도가 있는 것이고 그건 대체로 뒤끝이 좋지 않다. 의뢰자는 누가 킬러인지 모르고 킬러는 누가 의뢰자인지 모른다. 그래서 뚜쟁이가 필요하다. 업계. 업계에서 나에게 일을 주지 않으면 난 먹고 살 수 없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뚜쟁이들은 열이면 열, 내 몸을 요구했다. 신뢰를 쌓아야 한다나. 더러운 놈들. 그래. 뭐 아까워서 안 준 건 아니다. 더럽긴 했지만. 어차피 난 킬러다.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일을 하는 킬러. 하지만 몸을 주는 건 지는 거다. 그래서 안 된다. 그런 놈들이 한 번이라도 같이 잔 여자들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다니는 지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 자식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 없지만 그 생각들이 모여 소문이 되고 평판이 된다. 대신 난 다른 방법을 택했다. 내 가슴 아래쪽으로 칼을 찔러 넣어 갈비뼈를 치는 걸 보여 주고 나서야 그놈의 신뢰가 쌓였다.

약해지면 끝이다. 한 번 약점을 보이면 그때부터는 갈비뼈 정도로 극복이 안 된다. 그래서 난 실패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한적한 골목. CCTV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 키는 조금 크지만 마른 체형. 하지만 꼭 필요한 근육들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걸 옷 위로 드러난 몸의 윤곽과 움직임으로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짧은 머리. 곱상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눈. 아마도 그걸 가리기 위해 썼을 안경. 허리춤에 덮인 자켓 위로 몸이 아닌 기다란 무언가가 슬쩍 도드라진다. 조용히 어스름한 모퉁이의 그림자에 숨어 목표가 다가오는 걸 기다린다. 목표는 서서히 다가온다.

야옹.

갑작스런 고양이 소리에 목표도 나도 잠시 숨을 죽인다. 나는 두리번거리는 목표의 시선을 피해 소리 없이 몸을 좀 더 깊은 그늘로 밀어 넣는다. 다행히 고양이는 나와 반대쪽에 있었다. 목표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다가가지 않고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맞춘다. 목표의 눈빛은 보이지 않는다.

냐아옹.

목표가 고양이 소리를 낸다. 고양이는 흠칫하고 몸을 떨었지만 다가오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목표가 다시 한 번 고양이 소리를 냈지만 마찬가지. 목표는 재킷 안쪽으로 손을 가져간다. 나도 마른 침을 삼키며 품 안에 있는 칼날을 한 번 쓸어 본다. 목표가 재킷에서 꺼낸 건 무언가가 들어 있는 둘둘 만 지퍼백이다. 목표는 지퍼를 열어 과자처럼 생긴 알갱이들을 바닥에 뿌린다. 목표가 다시 한 번 고양이 소리를 내지만 고양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답도 하지 않는다. 목표는 결국 다시 일어나 지퍼백을 챙겨 넣고, 골목으로 다가온다.

목표가 나를 발견한 건 겨우 두 걸음 정도 떨어진 위치였다. 목표는 재빨리 눈을 빛내며 몸을 뒤로 피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몸을 숙이며 뒤로 물러나는 목표의 움직임을 이용해 그대로 반대쪽 벽으로 밀어 붙였다. 무릎을 쓰지도 못할 만큼 바짝 몸을 붙이고는 그대로 솟구쳐 오르며 칼날을 심장에 가져다 댄다. 끝났다.

목표물에 접근해서.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심장에 칼을.

야옹.

목표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시선의 옆으로 소리가 난 쪽을 훑는다. 아까의 고양이가 언제 다가왔는지 나와 목표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상관없었다. 나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고 심장에 칼을.

꽂지 못했다.

처음으로.


     - 킬러 II -     

소문은 빠르다. 목표가 습격을 받았으나 살아남았다는 소문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업계에 쫙 퍼졌다. 다행히 실패한 킬러가 누구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나를 연결한 뚜쟁이가 그나마 입이 무거운 덕분이었다. 특별히 나에게 호의가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가치가 있는 정보를 공짜로 넘기지 않을 뿐.

“천하의 불여우가 손이 미끄러질 때가 다 있네. 슬슬 고깃집 차릴 때가 됐나.”

바텐더가 글렌피딕 18년산을 스트레이트 잔에 따라 내 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마리오. 내게 불여우라는 이름을 붙여 준 장본인이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미친년보단 낫지. 콧수염에 살짝 늘어진 볼살. 언뜻 보면 그냥 사람 좋은 바텐더처럼 보이지만 계산이 칼 같기로 유명한 뚜쟁이다. 킬러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뚜쟁이가 애초에 사람이 좋을 리는 없다. 마리오는 한때 그 자신이 유명한 킬러였으며 조직 싸움에서 밀려 손가락을 잘리지 않았다면 여전히 한가락 했을 거라는 소문이 있다. 킬러보다 뚜쟁이가 더 체질에 맞았는지 원래 이 바를 거점으로 뚜쟁이 일을 하던 사람을 몰아내고 자리를 차고앉은 게 삼 년 전이었다. 애초에 이 바닥 소문은 믿을 게 못 되긴 하지만 눈빛만 봐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감은 온다.

“아직 삼일 남았잖아. 언제 도장 찍을 지는 내 맘이야. 내가 계약 어긴 적 있어?”

“이틀이야. 열두 시 지났으니까. 어제 찍으러 갔었잖아. 왜 그냥 왔어?”

“영업 기밀이야.”

확실히 어제 그 목표는 좀 이상하긴 했다. 내게 평범한 사람의 살인 의뢰가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정도 싸구려는 아니니까. 보통 사람을 죽여 줄 아마추어들은 널렸고 그 편이 뒤끝이 없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래야 마리오가 남겨 먹을 돈이 많았다. 나를 썼다는 건 목표도 어느 정도 기술자라는 뜻이었다. 업계 사람이거나.

하지만 그 목표는 달랐다. 자기 가슴에 칼이 겨눠졌는데 고양이 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나. 내가 한참을 머뭇거리며 칼을 밀어 넣지 못하고 있는데도 반격이나 도망은커녕 꼼짝 못하고 날 보고 있질 않나. 허우대는 멀쩡했는데 완전 허당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일반인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 이 쪽 업계에 꼭 몸 쓰는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니까. 조금 머뭇거리긴 했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이대로 칼을 박아 넣기만 하면. 눈을 똑바로 보고.

야옹.

갑자기 그 사람의 생명을 눌러 터뜨릴 자신이 없어졌다. 처음으로. 더 이상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칼을 거둬들이고, 다시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어 사라졌다.

“뭐 하는 놈이야. 그 놈.”

“전해 준 정보가 전부. 왜 이래. 새삼스럽게.”

마리오가 건네 준 USB 메모리에는 목표의 사진과 거주지, 주요 이동 경로가 들어 있었다. 신체적인 특징과 주의 사항들도 몇 줄 있었다. 이름 같은 건 없었다. 죽이려는 이유는 더더욱 나와 있지 않았다. 어제 그 목표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수소문 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여자라는 걸 눈치 채지는 못했는지 내가 지목 당하지는 않았다. 보통 남자들에 비하면야 덩치가 작지만 킬러들 중에 왜소한 사람들도 꽤 있다 보니 눈에 띌 정도는 아니다. 소문을 듣고 그게 나였다는 걸 안 건 마리오가 유일할 터였다.

“그 놈이 습격한 사람을 찾아 다녔다며. 그게 누군지 정도는 말해 줄 수 있는 거 아닌가.”

“입을 다물 거면 양쪽으로 다물어야 공평하지.”

“10프로. 그리고 내 정보를 입 다무는 걸로 10프로 더.”

“각각 20프로. 비싸면 둘 중 하나만 사던가.”

“15프로.”

“싫으면 말고.”

스트레이트 잔을 비우고 마리오에게 밀어낸다. 승낙의 의미다. 마리오는 한 쪽 입술을 끌어 올리며 잔을 다시 채웠다.

“확실히 해둘 게 있는데. 그 40프로는 이번 계약 미스나도 받아 낼 거야. 물론 떼먹을 일이야 없겠지만.”

마지막에 힘을 주어 말한다. 뚜쟁이에게는 킬러도 고객이다. 킬러의 능력이 뛰어날수록 뚜쟁이도 저자세가 된다. 40프로에서 양보하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어제의 실수로 내 가치를 낮춰 잡았다는 뜻이다. 잔을 다시 내미는 마리오의 검지가 없는 게 새삼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마리오는 40프로를 돈이 아니라 다른 식으로 받아내려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러운 놈. 얕잡혀 보이면 끝이다.

“걱정 마. 좀 갖고 놀다가 도장 찍을 테니.”

“갖고 놀아?”

“귀엽게 생겼던데. 딱 내 스타일이야. 어차피 죽일 거 상관없잖아.”

“하. 강간이라도 하게? 웬일이야. 네가.”

목표를 죽이기 전 제 욕구를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킬러들이 종종 있었다. 아예 그걸 조건으로 거는 의뢰자들도 드물지만 있었다. 내가 그런 걸 역겨워 하고 아마추어라며 비웃었던 걸 마리오는 익히 알고 있었다.

“저급한 새끼들. 내가 개돼진 줄 알아? 제대로 해야지. 제대로. 올라타서. 절정일 때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을 거야.”

스트레이트 잔을 다시 한 번 비우고 탕 소리를 내며 테이블에 내리쳤다. 마리오의 눈빛이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 바텐더는, 아니 뚜쟁이는 다시 한 번 잔을 채우며 말했다.

“넌 정말 제대로 미쳤어. 이건 내가 사는 거야.”


     - 타겟 I -     

날 죽이려는 사람이 나타났다. 살인 청부의 세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고, 언젠가는 나 역시 그런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상상도 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상상과 직접 칼이 겨눠지는 느낌은 달랐다. 순식간에 칼끝이 가슴에 닿았고 피할 방법도 없었다. 꼼짝없이 죽는다고 생각했을 때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칼이 심장에 박히면 살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몇 십 초다. 그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 봐야 고양이를 보는 것 밖에 더 있을까. 나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이를 악물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온 몸이 마비된 듯 뻣뻣했다. 칼이 들어오는지 아닌지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저 고양이는 날 데리고 가려는 저승사자일까.

야옹.

아니었다. 난 아직 살아있었다. 칼끝은 여전히 가슴을 살짝 누르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일을 처음 해 보는 초짜들은 칼을 꽂기 직전에 망설이다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그런 걸까. 서서히 고개를 킬러 쪽으로 돌렸다. 검은 복면과 그림자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킬러는 칼을 물리고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죽이지는 않고 겁만 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고양이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잠갔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자 서서히 이성이 돌아왔다. 누가, 왜 내게 그런 짓을 한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유는 하나 밖에 없었다. 아버지. 살인 청부 업계의 대부로 불린다는 아버지와 연관된 일이 아니라면 내게 그런 짓을 할 이유는 없었다.

아버지와는 어렸을 때부터 따로 살았다. 아버지는 가끔 비밀스럽게 날 찾아왔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저 정장 차림의 건장한 아버지가 멋져 보였다. 처음 아버지가 킬러 일을 한다는 걸 눈치 챘던 건 중학생 때였다. 철없던 그때는 나도 아버지를 따라 킬러가 되고 싶었다.

뭘 해야 하는 지도 모르면서 체육관에 다니며 운동을 하고 살인에 대한 책을 탐독하던 나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고양이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한 달 후, 킬러가 되고 싶으면 그 고양이를 죽이고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다. 처음 보는 차가운 얼굴이었다. 물론 나는 고양이를 죽이지도 못했고 아버지를 찾아가지도 않았다. 킬러가 되겠다는 꿈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나를 비밀스럽게 찾아왔지만 다시는 그런 차가운 표정을 짓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아버지는 이제 더 이상 만나지 않는 편이 좋겠다며 명함을 하나 건네주었다. 혹시라도 곤경에 처하게 되면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게 팔 년 전이고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평범한 대졸 무직이 된 나는 명함의 존재조차 잊고 살았다. 어제 그 일이 있기 전 까지는.

명함의 주소는 어느 골목 구석에 있는 허름한 바였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문은 열려 있었다. 안에서는 콧수염에 볼살이 살짝 늘어진 사람 좋아 보이는 바텐더가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를 본 바텐더는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내가 찾아올 거라는 걸 예상 못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줬던 명함을 내밀자 바텐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바텐더는 콧수염을 꼬며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도련님을 공격한 사람은 누구였죠? 얼굴을 봤습니까?”

“아... 잘 모르겠어요. 너무 갑작스러웠고 또 어두워서...”

“덩치는 어느 정도였나요? 신체적인 특징은 없었습니까?”

“덩치는... 저보다 작았던 건 확실합니다만... 어두운 톤의 헐렁한 운동복 차림이었고요. 특별한 점은 기억나질 않네요. 아, 그리고, 심장을 향해 정확히 칼을 겨누더군요.”

“...그렇군요. 그것만 가지고 어떤 놈인지 알아내긴 무리겠네요.”

바텐더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하나 꺼내 얼음을 담았다. 위스키를 따르려고 하는 걸 얼른 말렸다.

“아, 낮부터 술은 조금. 그냥 물 한 잔이면 됩니다. 그보다... 아버지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물론입니다. 도련님을 공격했다는 건 그만큼 직접 손을 댈 방법이 없다는 의미기도 하니까요. 문제는 도련님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간 경로겠죠. 당분간은 내부 단속을 철저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텐더는 얼음물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일단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아낼 때 까지 도련님께 경호원을 하나 붙이는 게 좋겠군요. 같이 다녀도 티가 나지 않을 사람으로 제가 하나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한 가지만 약속하시죠. 어제 있었던 일과 이 명함, 그리고 저에 대해서는 절대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시면 안 됩니다. 그 경호원에게도요.”


     - 킬러 III -     

내가 지금까지 무사히 킬러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평상시의 모습이 전혀 킬러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다시 말하면 평상시의 모습으로 킬러 일을 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내 의도와 어긋나 흘러가 버린 어제 밤의 대화 끝에 마리오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목표의 경호로 나를 추천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 대화의 흐름 상 나는 제안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마리오에 따르면 그 사람은 어떤 조직 보스의 숨겨진 가족이다. 잠수해 버린 보스와 조직원들을 끌어내기 위해 그 가족을 죽이려는 경쟁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은 확실한 일처리를 위해 프로의 솜씨를 원한다는 게 마리오의 짤막한 설명이었다.

“갖고 노는 건 나쁘지 않아. 의뢰자의 구미에도 맞을 것 같고. 하지만 도장은 확실히, 깔끔하게 찍어야 해. 조직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으면.”

일이 많이 번거로워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래도 마리오의 인맥 덕에 목표에 접근할 수고를 던 건 다행이겠지. 게다가 애인을 위장한 경호라니 갖고 노는 척을 하기도 좋고. 어떻게 해서든 침실로 끌고 들어가서 심장에 칼을 박기만 하면 이 해프닝은 끝이다.

그러니까. 그게 문제다.

나는 한 번도 남자를 침실로 끌고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뭐? 너 뭐라 그랬어?”

“그러니까, 남자랑 자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은미. 하나 밖에 없는 친구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내가 밤에 나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묻지 않는 유일한 친구다. 남들에게 밝히기 꺼려지는 일이라고는 짐작하는 모양이지만 짚고 있는 쪽은 영 반대다. 내 질문에 뜨악한 표정을 짓는 은미를 보며 나는 한숨을 쉬고 다시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사귀고 싶은 남자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은미는 그제야 반쯤만 납득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는 의자를 당겨 앉으며 몸을 기울여 속삭인다.

“어떤 사람인데? 뭐 하는 사람이야? 진지하게 만나 보려고?”

한참 나에게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던 은미는 내 질문에 다시 한 번 뒷목을 잡았다.

“그렇게 하면 이틀 안에 같이 잘 수 있어?”


     - 타겟 II -     

“안녕하세요. 김민혁 씨 맞으시죠? 소개 받은 나지윤이라고 해요.”

인사를 하며 다가온 사람은 뜻밖에도 여자였다. 같이 다녀도 티가 나지 않을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그게 내 또래의 여자일 줄은 몰랐다. 살인 청부 쪽 일을 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한 여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굽이 별로 없는 구두인데도 걸어오는 폼이 영 어색했다. 선입견 때문일까, 얼굴은 예쁘장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는 눈빛이 유난히 날카로웠다.

“아, 예. 김민혁입니다. 반갑습니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며 인사했다. 지윤. 아마도 가명이겠지만. 그 사람은 성큼성큼 걸어와서는 의자를 빼 주려는 나의 움직임을 가볍게 제지하고 털썩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일어날 때와 마찬가지로 어색하게 다시 자리에 앉았다.

“놀라셨나요? 당분간 김민혁 씨 경호를 맡을 거예요. 하루 24시간 내내. 애인으로 위장하는 거니까 티 나지 않도록 적당히 행동 하세요.”

“아... 네. 감사합니다.”

애인을 가장한 경호. 확실히 이 사람과 같이 다니는 건 경호원을 대동한 걸로 보이진 않을 듯했다. 이 사람은 대체 누굴까. 원래 경호가 전문일까. 아니면 역시 킬러? 바텐더는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지켜준다는 사람을 만나니 조금 안심이 되기는 했다. 이틀 전의 그 일 이후로 집 밖으로 나온 건 어제의 그 바와 오늘 이 카페가 유일했다. 정신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덜 불안하겠다는 생각에 씻고 대충이나마 꾸미고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허름한 모습으로 나오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게 어이없으면서도 우스웠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저... 커피 뭐 드실래요?”

“알아서 시켜 주세요. 전 그런 거 잘 모르니까.”

“아... 네.”

사실 그렇다. 이 이상한 관계를 불필요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저 사람은 적당한 거리에서 날 지켜주면 되는 거고.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 띌 정도로 어색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고. 난 날 노리고 있다는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이 정리 될 때까지 살아남으면 되는 거고.

문득 나는 아버지처럼 킬러가 되고 싶다는 환상에 빠져 있었던 예전 기억들을 떠올렸다. 지금 앞에 있는 이 사람은 기르던 고양이를 죽였을까.

“저... 뭐 좀 물어봐도 돼요?”

“그러세요.”

“킬러세요?”


     - 킬러 IV -     

은미의 조언은 결론적으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는 도움이 됐다. 남자를 침실로 끌고 들어가는 건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건 알았다.

무슨 방법을 써서든 그 남자 방에 같이 가서. 경호를 한다는 이유가 있으니 어렵지 않은 일이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샤워를 하고 나와. 그게 끝이야? 응. 끝이야. 술을 좀 마시면 더 좋고.

카페에 앉아 있는 남자. 이름이 김민혁이라지.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이 남자를 침실로 끌고 들어가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사람의 심장에 칼을 꽂을 수 있을까.

예전이라면 고민하지 않았던 일이다. 눈앞에서 풍선을 터뜨리듯 그렇게 사람들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어왔다. 물론 쉬웠던 건 아니다. 그래도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고 해 왔다. 이틀 전,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 김민혁을 제외하고는.

얼굴이나 몸매나 특별히 빠지는 데 없이 준수하다. 옷을 잘 입는 지 그런 건 내가 관심 없어서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빛이 번쩍번쩍 나는 외모는 아니다. 잘생겨서 못 죽였다기엔 납득이 안 된다.

고양이. 고양이 때문이다.

재킷 안에 칼 대신 고양이 먹이가 담긴 지퍼백을 넣고 다니면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 고양이에게 덤벼들지 않고 쪼그리고 앉아서 고양이 소리를 내는 사람. 다가오지 않자 먹이만 조금 뿌려 놓고 돌아 서는 사람. 심장에 칼이 꽂히려는데 고양이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사람.

그런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지 궁금했다. 심장에 칼을 꽂아 버리면 영영 대답을 듣지 못할 것 같아서. 처음으로 살인에 실패했던 그 날, 집에 돌아와 곰곰이 그 순간을 되짚으며 만들어 낸 답이다.

“킬러세요?”

하지만 대화는 내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간다. 뭐 급할 건 없다. 아직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그런 건 왜 물어요?”

“곤란하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 보단 나을 것 같아서요. 제가 알면 안 되는 건가요?”

“상관없어요. 어차피...”

이틀 안에 죽을 테니. 벌거벗은 채로. 진짜로 절정에 달했을 때 찌를 지 그냥 옷만 벗겨 놓고 찌를 지는 아직 고민 중이에요.

“...이 일 끝나면 서로 볼 일 없을 테니. 맞아요. 그거.”

“아 네... 사실 그게... 저도 킬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운동도 열심히 했었어요. 유도, 합기도, 뭐 그런 거. 비웃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도 이론은 꽤 빠삭해요.”

“풋. 이론이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삐져나왔다. 남자의 얼굴에서도 긴장이 좀 풀렸다.

“어디 한 번 풀어 봐요. 그 이론. 저도 좀 배우게.”

“에이. 현업이신 분 앞에서 어떻게... 놀리지 마세요. 그냥 농담 한 거예요. 책 몇 권 읽은 게 단데요 뭐.”

“그럼 왜 그만 뒀어요. 킬러가 되고 싶었다면서.”

“그게... 고양이를 못 죽여서요.”

남자의 표정이 살짝 진지해졌다. 내 얼굴에서도 웃음기가 가셨다. 고양이. 또 고양이다. 남자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눈을 오른쪽 위로 치켜뜨고는 이마를 살짝 긁으며 말했다.

“고양이도 못 죽이면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니. 웃기죠?”

“고양이는... 저도 안 죽여 봤어요.”

“아 네... 그렇죠. 고양이를 죽여 달라는 의뢰자는 없을 테니.”

고양이를 죽일 수 있을까. 풍선을 터트리듯 아무렇지 않게 심장에 칼을 꽂아서. 못할 거야 없겠지. 나는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유난히 맛이 썼다.

“이제 우리... 어떻게 해야 하죠?”

나는 미리 생각해 둔 답을 했다.

“집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많은 번화가가 안전해요. 길거리는 말고. 통유리로 된 가게 안쪽 자리가 좋죠. 이 근처에 사람 많이 몰리는 집들 아시는 데 없어요? 전 잘 몰라서. 돈은 걱정 마세요. 내가 비용 처리 하면 되니까.”

일반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나라는 게 좀 우스운 일이지만. 그리고 비용 처리 같은 건 없다. 백수라던데 무슨 돈이 있겠어. 싸구려만 돌아다니긴 싫으니까.

이왕 갖고 노는 거, 제대로 갖고 놀아야지.


     - 타겟 III -     

왜 킬러가 되고 싶었을까.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중학생의 치기였다는 게 맞겠지. 그래도 난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와 같은 나쁜 사람. 그럼 아버지와 함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아무리 그래도 고양이를 죽일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가져다주신 고양이. 내가 죽이지 못했던 그 고양이는 나와 오 년을 더 살고 죽었다. 고양이가 죽었다는 걸 알고 반쯤은 멍해진 머릿속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이렇게 죽을 고양이였다면 그냥 내가 죽이고 킬러가 되면 좋지 않았을까. 동시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한동안 내 손으로 고양이를 죽인 듯 죄책감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나니 또 잊고 살긴 했지만.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가끔 만나는 길고양이는 그 고양이를 닮았다.

사실 칼에 찔릴 뻔 했던 그 골목을 밤에 다시 지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날 경호한다는 이 여자는 굳이 유명한 집들만 골라 번화가를 돌다가 이 시간이 되고 나서야 집으로 가자며 날 앞장 세웠다. 연인 사이로 보이는 게 목표였다면 아주 성공적인 하루였다. 게다가 이 여자, 지윤은 집까지 24시간 내내 붙어 있겠다고 했다. 나로서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방이 지저분한 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오늘 수상한 사람은 없었나요. 미행이 붙었다거나...”

“없었어요. 가는 길에 편의점 없어요? 맥주라도 몇 병 사가지고 갈까요?”

“술이요? 지금 이 상황에 술을 마셔요?”

“난 안 마셔요. 민혁 씨 마시라고. 어차피 제정신으로 깨어 있어도 도움 되는 거 없으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굳이 마실 이유도 없잖아요?”

“몇 병 사 놔 봐요. 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남녀가 같이 밤을 보내러 가면서 술도 안 사가지고 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아요?”

결국 나는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들고 나와야 했다. 결론적으로는 잘한 일이었다. 골목에서 또 그 길고양이를 만났으니까. 나는 맥주를 사러 갔다가 눈에 띄어 같이 집어 온 고양이 사료를 품에서 꺼냈다.

냐아옹.

나는 쪼그리고 앉아 불러 보지만 고양이는 제자리에서 쳐다만 볼 뿐 다가오지는 않는다. 사료를 꺼내 봐도 다시 한 번 고양이 소리를 내 봐도 마찬가지다. 이틀 전 그때처럼.

“지윤 씨. 좀 앉아 봐요.”

나는 목소리를 낮춰 옆에 멍하니 서 있는 여자를 부른다. 여자는 내가 인상을 쓰며 손짓을 하고 나서야 내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는다.

“한 번 불러 봐요. 제가 하니까 안 오네.”

여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목소리는 얼른 나오지 않는다. 고양이도 재촉하듯 소리를 낸다. 야옹. 인형처럼 꼼짝 않고 있던 고양이가 포기했는지 몸을 뒤로 빼며 도망가려 하자 여자가 다급하게 외친다.

야옹.

도망가려던 고양이가 멈췄다. 야옹. 화답한다. 여자가 다시 한 번 목소리를 낸다. 이번에는 좀 더 제대로 된, 정말 고양이 같은 목소리다. 고양이가 한 발 앞으로 내딛는다. 여자의 눈이 동그래지며 입이 살짝 벌어진다. 여자는 얼른 사료를 한 움큼 집어 앞으로 내밀어 본다. 그 동작이 너무 갑작스러웠는지 고양이는 가늘게 한 번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아, 이번에는 오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제가 할 때 보다는 낫네요. 고양이가 좋아하는 체질인가 봐요. 고양이, 좋아하세요?”

여자의 얼굴은 어느새 차갑게 굳어 있었다. 여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전 저보다 빨리 죽는 것들에게 정 안 줘요.”


     - 타겟 IV -     

고양이를 만났던 골목에서 집까지 여자는 표정이 굳은 채로 별 말이 없었다. 내가 모퉁이의 어스름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오지 않을지 열심히 두리번거리는데도 여자는 주변을 둘러보는 기색조차 없었다.

원룸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모습을 바라보는 여자의 눈길이 왠지 날카롭게 느껴졌다. 반나절 동안 여자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는 동안 우편물이 몇 통 와 있었다. 이 여자와 집 안까지, 24시간이라고 했으니 잠까지 같이 자는 게 과연 잘하는 일일까 잠시 고민이 되었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었다. 어쨌든 나는 누군가에게 습격을 당했었고, 지금으로서는 이 여자 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저, 방 정리 좀 할 동안 잠깐 밖에 계실래요? 너무 지저분해서...”

“장난해요? 지금 방이 지저분한 게 문제예요?”

여자는 그대로 현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욕실과 옷장들을 체크해 보더니 창문의 잠금 장치를 확인하고 커튼까지 쳤다. 나는 방안에 널린 옷가지들과 음료수 캔, 비닐봉지들을 주워 정리했다. 바닥에 적당히 이불을 깔면 침대에 한 명, 바닥에 한 명, 두 명 정도는 잘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여기, 방음은 잘 돼요?”

여자가 벽을 통통 두드려 보며 말했다.

“뭐, 원룸이 다 그렇긴 하지만 그럭저럭요.”

“흠. 정리하고 있어요. 전 샤워 좀 하고.”

“네? 샤워요?”

“왜요? 욕실 쓰면 안 돼요?”

“아니, 안 될 건 없지만...”

“갈아입을 옷, 뭐 편한 거 없어요?”

허둥지둥 트레이닝 복을 챙기는 동안 여자는 거침없이 옷을 벗어 냈다. 속옷 차림의 모습이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허벅지에 채워진 검은 칼집에 눈길이 갔다. 반질하게 닳은 손잡이를 당기면 나타날 시퍼런 칼날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제야 자신이 킬러라는 여자의 말이 실감났다. 여자가 트레이닝 복을 채가고 나서야 나는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지윤은 본업이 킬러고 지금은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나를 지켜주고 있는 사람이며 허벅지에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끊었을 칼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욕실 문 밖으로 들리는 물소리는 내 상상력을 자극했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떨쳐내려 아까 집어 왔던 우편물들을 집어 들었다. 고지서들 사이로 주소가 적히지 않은 하얀 봉투 하나가 눈에 띄었다. 광고지인가 싶어 열어보니 종이 몇 장이 떨어졌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사진. 바로 지윤의 사진이었다. 의미 없는 알파벳들이 나열되어 있는 한 줄짜리 쪽지도 같이 나왔다. 인터넷 주소였다.

느낌이 이상했다. 황급히 노트북을 열어 쪽지의 주소를 입력했다. 심장이 걷잡을 수 없이 뛰는 바람에 몇 번인가 오타가 났다. 겨우 제대로 된 주소를 적고 엔터키를 누르니 잠깐의 로딩 후에 음성 파일이 하나 재생되었다. 나는 재빨리 옆에 놓여 있던 이어폰을 끼웠다. 아직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음성 파일은 두 사람의 대화였다. 내 스타일이야 ... 상관없잖아. 여자의 목소리였다. 남자의 목소리는 너무 낮아 잘 들리지 않았다. 다시 여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또렷하게 들린 건 마지막 부분이었다. 절정일 때 심장에 칼을 박아 넣을 거야. 음질이 아주 좋지는 않았지만 그 부분만큼은 똑똑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음성 파일의 여자 목소리는 어딘지 익숙했다. 그 역시 지윤이었다.


     - 킬러 V -     

이게 뭐하는 짓이지.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맞으며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확실히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민혁을 죽이지 못했던 그날 밤, 분명 내 안의 무언가가 틀어졌다.

지금까지 내가 심장에 칼을 꽂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이 업계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는 죄가 없는 사람도 있었겠지. 애초에 사람을 죽이는 일에 더 더럽고 덜 더러운 일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죄 지은 자를 심판하는 정의의 사도도 아니다. 그건 그냥 풍선을 터뜨리는 일이다. 민혁이 무고한 일반인이라고 해서 찌르지 못했던 건 아니다. 심장에 칼을 들이댔을 때는 애초에 그 사실을 몰랐다.

더 이상한 건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마리오에게 적당히 둘러댄 건 그렇다고 쳐도, 오늘 하루 종일 민혁과 돌아다니며 한 일들은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감정을 끊고 킬러로서 살아왔던 그 동안의 내가 아니었다. 낮 동안은 평범한 사람처럼 돌아다니기도 했지만 어디까지나 위장을 위해서였고 진심으로 그걸 즐겁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즐거워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냥. 여행 같은 거라고 생각하자.

가끔은 기분 전환도 필요하다. 며칠 정도 전혀 다른 사람처럼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게 일하고 얽혀 있다는 건 마음에 걸리지만. 그냥 며칠 즐기다가 마지막에 심장에 칼을 박아 넣기만 하면 나는 다시 내 삶으로 돌아간다.

그게 꼭 오늘일 필요는 없겠지. 아직 하루 남았잖아.

샤워를 마치고 민혁이 건네 준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고 묶어 올렸던 머리를 다시 풀고 화장을 지워낸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화장을 다시 조금 해야 하나 싶을 때 문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킬러의 감각이 살아났다. 문에 다가가 귀를 대고 바깥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삐리릭. 도어락이 잠기는 소리였다.

재빨리 욕실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방에는 민혁이 없다. 신발도 없다. 몸싸움이 있었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나가 원룸 복도를 살핀다. 저편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달려갔지만 늦었다. 엘리베이터는 내려가기 시작한다. 한달음에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한 시간은 엘리베이터 보다 빨랐다. 문이 열리자, 민혁이 깜짝 놀라 나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은 없다.

“지윤 씨?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해요!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몰라요?”

“아... 상황이... 아니 그러니까 별로 심각하지 않은 것 같아서... 분리수거나 하려고...”

민혁의 손에는 빈 캔이 들어 있는 비닐 봉투와 폐지 뭉치가 들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가요. 같이.”


     - 킬러 VI -     

민혁이 분리수거장에 캔과 고지서 봉투들이 섞인 폐지를 버리는 동안 나는 집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모퉁이 어스름 근처에서 다시 그 길고양이를 보았다. 고양이는 모퉁이 너머 어딘가를 바라보며 털을 잔뜩 곧추 세우고 있었다. 누군가 있다. 나는 민혁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한 다음 칼을 꺼내들었다. 번득이는 칼날을 본 민혁이 흠칫 몸을 움츠렸다.

“여기, 뒤로 돌아가는 길 있죠?”

“네. 건물 타고 돌면 바로예요.”

“민혁 씨는 지금 당장 올라가서 불 끄고 문 잠그고 있어요. 벨 눌러도 문 열지 말고. 암호는... 야옹야옹. 알았죠?”

“...조심해요.”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나는 민혁이 짚어 준 방향을 따라 건물을 타고 돈다. 한 바퀴 돌았더니 그새 고양이는 사라지고 없다. 대신 검은 그림자 하나가 건물 기둥에 몸을 숨기고 고양이가 있던 자리를 살펴보고 있다. 반대쪽에 내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는 듯하다.

그림자가 몸을 빼내고 건물 위를 올려다본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 나이가 좀 있어 보인다. 오십대 중반 정도. 시선을 따라가 보니 민혁의 방 위치다. 불은 아직 켜져 있다. 굼뜨기는. 그림자가 고양이가 있던 모퉁이를 지나 건물 입구로 다가가려 할 때 순식간에 뒤를 덮친다. 입을 막고 경동맥에 칼날을 댄다. 남자는 쉽게 포기한다. 항복의 표시로 양손을 어깨 위로 올린다. 떨지는 않는다.

“당신 누구야?”

천천히 막았던 입에서 손을 뗀다. 소리를 지르지는 않는다. 대신 짧은 한숨이 흘러나온다.

“역시 불여우... 실력은 소문대로네.”

“너 뭐야?”

대답이 없다. 목에 댄 칼날의 날을 세운다. 핏방울이 한줄기 칼날을 타고 흐른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은 아니다. 대답 대신, 남자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살기가 없어. 살기 없이 칼질을 해서 미친년이라는 소리를 듣는 건가? 아니면, 오늘은 날 죽일 생각이 없는 건가? 말해 봐. 넌 누구 편이야?”

“누구 편? 난 그런 거 몰라. 너야 말로 뭐하는 놈이야?”

“누구 편인 줄 모른다면 내가 누군지 말해 줘 봐야 소용없어. 쉽게 말하지. 민혁이를 죽일 건가?”

죽여야 한다. 죽일 계획이다. 하지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이 사람, 적어도 살인을 의뢰한 쪽은 아니다. 나는 목에서 칼을 떼고 녀석을 구석으로 밀어 낸다. 녀석은 피가 흐르는 목을 붙잡으며 돌아선다. 얼굴이 조금 낯이 익다. 이런 사람을 직접 만났을 리는 없는데.

“날 알아보나? 흑묘라고 들어 봤는지 모르겠네. 요즘엔 워낙 금방 세대가 바뀌어서.”

그래. 흑묘. 물론 들어봤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있다. 마리오의 손가락을 자른 장본인. 지금은 그 자신 역시 조직 싸움에서 밀려 잠적해 버린 전설적인 킬러.

“알아보는 눈치군. 그래, 내가 그 퇴물이지. 옛날 얘기는 집어 치우고. 단도직입적으로 난 민혁이를 살리려는 쪽이야. 이제 난 대답을 다 한 것 같은데. 말해봐. 넌 어느 쪽이지? 살리는 쪽이야? 아니면 죽이는 쪽이야?”

둘 다. 난 살인 의뢰를 받았고, 경호 의뢰를 받았고, 그리고.

“당신이 경호 의뢰를 했어?”

“의뢰... 난 그런 건 안 해.”

“그럼 누구지? 경호를 의뢰한 건 누구고, 살인을 의뢰한 건 누구야?”

“...정말 아무 것도 모르는군. 하나만 말해 주지. 마리오를 믿지 마.”

“자! 둘 다 동작 그만!”

골목 저쪽에서 누군가 외쳤다. 축축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다. 입이 가려진 민혁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목에는 칼이 겨누어져 있었다. 칼을 겨누고 있는 것도 아는 얼굴이다. 짝눈. 날 놀리다가 가슴을 찔렸던, 그 놈이다.


     - 타겟 V -     

내게 몸을 피하라고 말한 뒤 지윤은 날렵하게 건물 반대쪽을 타고 돌아 순식간에 모퉁이로 사라졌다. 나는 손에 들린 종이봉투를 열어 사진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았다. 지윤이 확실했다. 음성 파일의 목소리까지 지윤의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이 봉투를 보낸 사람의 의도는 확실했다. 지윤을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사실 이틀 전 날 습격했던 사람이 지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이미 하고 있었다. 오늘 하루 종일 함께 보내면서 봤던 지윤의 몸집, 행동, 동작은 묘하게 그 킬러와 겹쳤다. 아버지가 내게 그 명함을 건네 준 건 팔 년 전이었다. 아버지가 지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도움을 줄 사람 역시 온전치 못할 수도 있었다. 그 바텐더와 날 공격했던 킬러가 한 통속이라면. 그 킬러가 지윤이라면.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윤이 예뻐서, 라고 말하면 내가 미친놈이겠지. 그냥 그 사람이 날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설령 지윤이 이틀 전의 킬러가 맞더라도. 이미 한 번 날 해치지 않았던 적이 있는 사람이니까.

그보다는 그냥 지윤과 이야기하고 떠드는 게 좋았다. 설령 그게 독이더라도 조금만 더 맛보고 싶었다. 문득문득 보이는 날카로운 모습을 보면 지윤이 킬러인 건 확실해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보아왔기 때문에 그건 확실했다. 하지만 내게는 날카로운 가시로 덮인 부드러운 속살 역시 같이 보였다. 내가 킬러라는, 더러운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무엇보다, 지윤 역시 고양이를 죽인 적이 없었다. 나처럼.

고양이를 부르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지윤은 날 죽이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음성 파일의 목소리가 정말 지윤일까. 정말 지윤은 날 가지고 놀다가 죽이려고 한 것일까. 절정일 때. 절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갑자기 심장이 두근댔다. 미친놈. 나는 종이봉투를 폐지들 위에 던졌다. 동시에 목에 서늘한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조용, 조용히. 시끄러우면 피차 피곤하니까.”


     - 타겟 VI -     

녀석은 나를 지윤이 건물 반대쪽으로 돌아갔던 그 자리로 데려갔다. 거기에 지윤이 있었다. 그리고 지윤 앞에 한 남자가 목을 붙잡고 서 있었다. 어두웠지만 나는 그게 누군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아버지.

“이야, 역시 우리 불여우 실력은 알아 줘야 돼. 흑묘 형님을 바로 끌어내네. 이제 그 심장에 칼만 쑤욱 박아 넣으면 일이 아주 깔끔하게 끝나겠구만. 잘 하잖아. 그치?”

“민혁이는 놔줘! 우리와 상관없는 아이야!”

아버지가 소리쳤다. 날 붙들고 있는 남자가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상관이 없어질라면 어떻게 돼야 되겠소. 아 복수를 하긴 해야 되겠는데 비겁하게 숨어 있으니까 일이 이렇게 까지 된 것 아니오. 안 그렇소?”

“짝눈 이 자식, 끼어들지 마! 이건 내 일이야!”

지윤이 소리쳤다. 짝눈이 낄낄 거리면서 웃는 게 몸의 떨림으로 느껴졌다.

“그치 바뀌었지. 그 쪽이 작업해야 할 건 여기고, 내가 작업해야 할 게 저 쪽이고. 뭐 상관있소? 이 칼이나 저 칼이나 박히면 피나고 아픈 건 똑같으니까. 그냥 바꿔서 합시다, 뭐.”

차가운 칼날이 목을 짓눌렀다.

“안 돼!”

지윤과 아버지가 동시에 소리쳤다. 아버지가 앞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차피 목표는 나잖아. 나만 잡으면 되는 거 아닌가? 민혁이는 불여우에게 넘겨. 알아서 처리하도록.”

“어어, 거기서 스톱. 천하의 흑묘 형님을 제가 감당을 할 수가 있어야죠. 안 그렇습니까. 그냥 다 불여우한테 넘길랍니다. 불여우가 형님 심장에 칼만 딱 꽂아 주면, 난 이 녀석 넘겨주고 형님 손가락만 잘라 가면, 깔끔하죠 뭐.”

“읍! 읍!”

안 된다고 외치려고 했지만 거친 손에 짓눌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지윤을 향해 돌아섰다. 그러고는 뒷짐을 지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지윤이 서서히 아버지 쪽으로 다가왔다.

야옹.

고양이다.

짝눈의 고개가 돌아가며 순간적으로 팔 힘이 느슨해진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칼을 들고 있던 팔을 잡아 내려끌며 그대로 메친다. 빙글 하고 경쾌하게 몸이 돌아간다. 낙법을 배운 적도 없는 지 녀석은 어깨부터 바닥으로 떨어진다. 쿵. 아마 어깨가 부러졌을 테지.

아버지가 나에게 달려왔다. 지윤은 나에게 오려다 멈칫하고는 짝눈을 깔고 앉는다. 심장에 칼날이 겨눠진다.


     - 킬러 VII -     

“잠깐, 잠깐! 살려줘! 마리오가 어딨는지 말할 테니까, 은미, 네 친구! 어딨는지 말해 준다고!”

은미? 마리오의 눈빛이 떠오른다. 나를 백 퍼센트 믿는 눈빛은 아니었다. 이 개자식이. 칼을 세워 가슴에 내리찍었다. 빠직. 갈비뼈가 부러지는 느낌이 전해진다. 짝눈이 비명을 지른다.

“아악! 제발...”

“어서 말해. 하나 더 부러지고 싶지 않으면.”

“끄윽... 지금은 몰라. 전화... 번호를 알려줬어. 일이 틀어지면... 전화하라고...”

“...걸어.”

짝눈이 거친 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꺼내 든다. 어디론가 신호가 간다. 딸깍하고 연결음이 들린다. 나는 휴대폰을 뺏어 들고 외쳤다.

“마리오 이 자식! 너 뭐하는 거야? 감히 내 친구를 건드려?”

“어이, 불여우. 목표는 잘 가지고 놀고 있어? 언제 올라탈 거야? 아직 절정이 아닌가?”

“장난해? 은미 어딨어?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 하면 갈기갈기 찢어 줄 테니까!”

“내가 왜 건드리나? 동업자 친구를. 배신자면 몰라도 말야. 잘 대접해 드리고 있으니까 걱정 하지 말고 일 마무리하고 와.”

“너...”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 마리오를 속이면 어떻게 되는 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은미에 대해 알아내고 납치하는 것 정도는 열 번이라도 저지를 놈이었다. 난 정말 민혁을 죽일 생각이었던 걸까. 민혁을 죽이고 미친년이 되어 앞으로도 계속 마리오와 일할 생각이었던 걸까. 아니면 민혁을 죽이지 않고 배신자가 되어 평생 마리오와 조직에 쫓기며 살 생각이었던 걸까.

내가 머뭇거리고 있자 흑묘가 다가와 어깨를 짚었다. 내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휴대폰을 받아갔다. 민혁이 다가와 날 부축해 일으키려 했다. 나는 괜찮다고 손짓한 후 일어나 짝눈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짝눈은 신음을 토하며 옆으로 구르더니 재빨리 일어나 나를 한 번 노려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오랜만이네. 마리오.”

흑묘가 굵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리오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와 조용한 밤거리에 퍼져나갔다.

“이게 누구야. 대체 얼마 만입니까. 형님. 소식 한 번 없으시고.”

“본론으로 들어가. 힘 빼지 말고.”

“역시 시원시원 하십니다. 본론이랄 게 뭐 있겠습니까. 정산이나 좀 하자는 거죠.”

“정산할 게 뭐 있나. 다 가져가놓고. 내 모가지 하나 못 챙긴 게 그렇게 아쉬워?”

“모가지라뇨 형님. 섭섭합니다. 형님도 저 죽을 거 살려 주시고 딱 손가락 두 개만 가져가신 거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또 계산은 확실한 사람 아닙니까.”

흑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계산이 확실한 사람이 가족을 건드려?”

“그러게 그걸 불여우 짓으로 하려고 다 판을 짜 놨는데... 하여간 계집애들은 믿을 수가 없어요. 꼭 막판에 딴 생각을 해. 안 그렇습니까, 형님.”

“...손가락 보낼 테니까 지금 잡고 있는 사람 풀어 줘.”

민혁이 뭐라고 내뱉으려는 걸 흑묘가 손을 들어 막았다. 내가 흠칫 물러날 정도로 차가운 표정이었다.

“계산은 확실하게 해야죠 형님. 손가락은 형님하고 나하고 계산. 이 계집애는 불여우년하고 나하고 계산. 안 그렇습니까?”

후. 흑묘가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어디야? 만나서 정산하지.”

“역시... 형님이십니다. 옛날 거깁니다. 형님이 내 목숨, 살려 주신 곳. 바로 오십시오. 오래 못 기다립니다.”

전화가 끊겼다.


     - 고양이 I -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고양이를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딱 보면 안다. 그렇지 않고서야 길고양이 생활을 할 수가 없지. 그럼 왜 그렇게 경계하고 다가오지 않느냐고? 경계하는 게 아냐. 이 고양이님에게 걸맞은 예의와 절차를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지.

하지만 가끔은 내가 먼저 인간들 일에 끼어들 때가 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앉아서 인간들을 지켜보면 꽤 흥미로운 사람들이 보이거든. 알아 두는 게 좋아. 고양이는 모든 걸 지켜본다. 그러다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사람들이 운명의 장난으로 서로 스쳐 지나가고 꼬이는 걸 보면 몸이 근질근질해 진단 말이지.

저 세 사람이 그렇지. 나는 다급히 차에 들어가는 그들을 쫒아 얼른 뒷자리에 올라탔어.

야옹.

“어, 이 고양이...”

지윤이 나를 알아보는군.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아.

“고양이라니, 길조군. 시간이 없어. 바로 출발한다.”

시동이 걸리고 차가 움직인다. 이제 조용히 이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되겠군. 나는 편안히 몸을 말고 웅크린다.

“저, 흑묘... 선생님. 민혁 씨는 두고 우리 둘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위험할 텐데.”

“어디에 둬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요. 차라리 우리 옆에 있는 게 낫지. 그리고 저 녀석, 꽤 쓸만할 거요. 아까 보지 않았소? 보기보다 배짱도 두둑하고.”

“배짱이요? 고양이를 못 죽여서 킬러가 되지 못했다던데...”

“그건, 배짱으로 하는 일이 아니니까. 배짱은 다른 데 쓰는 거지. 맨손으로 풍선을 쥐어 터뜨린다던가 뭐 그런 거.”

저 흑묘라는 사람, 생각보다 말이 통할 사람 같은데. 감히 고양이의 이름을 빌려 쓰는 건 건방지지만 말이야.

“아버지, 그럼 제게 고양이를 죽이라고 하신 건...”

“네가 못 죽일 줄 알고 그런 거지. 킬러 같은 거... 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말이 통할 사람 같다는 건 취소다. 고양이를 그런 식으로 쓰는 건 용납할 수 없어.

“좋아요. 그럼 민혁 씨가 같이 한다고 해도... 겨우 셋이잖아요. 저 쪽은 조직 전체를 들고 나올 텐데.”

“그렇지는 않기를 바라야지. 이 흑묘를 우습게보면 안 돼요. 녹음 파일까지 갖고 있는 걸 보면 모르겠소? 내가 나서면 돌아설 사람이 꽤 될 거요.”

“녹음 파일요? 무슨 녹음 파일요?”

“아... 그러고 보니 민혁이가 말 안 했겠군. 사실 직접 만나기 전 까지는 당신, 불여우가 여전히 민혁이를 죽이려 하는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었소. 그래서 마리오와 대화한 내용을 몰래 민혁이에게 전해 줬지. 저 녀석이 왜 그걸 받고도 안 도망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민혁 씨, 무슨 대화를 말하는 거예요? 설마... 그거...? 그거, 들었어요?”

“아... 네. 뭐, 괜찮아요. 지윤 씨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었으니까...”

흠. 얼굴이 빨개지니까 딴 사람 같아 보이네. 귀여워.

“지윤이라... 본명이요?”

“...네.”

“좋은 이름이군.”

침묵이 이어진다.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가 나올 타이밍이라는 거지.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 왜 민혁이를 죽이지 않았지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건... 모르겠네요.”

“그리고 민혁이 너는, 지윤 씨가 킬러라는 걸 알면서도 왜 도망치지 않았지?”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핫핫. 그래. 모르겠지. 그렇게 모를 일이 벌어질 때가 있어. 나도 그랬지. 그 결과가 이 녀석이고 말야.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지.”

흑묘가 마른 침을 한 번 삼킨다. 하이라이트.

“돌아보면 후회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무엇보다 가장 후회스러운 건 이 애 엄마를 지키지 못했던 거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몰랐던 거지. 온 세상을 다 버리고도 지켜야 하는 게 뭔지 몰랐어. 이 가슴은, 가슴은 분명히 말해 줬는데 말야. 민혁아, 지윤씨. 두 사람은 그런 후회를 하면 안 돼요.”

어느새 차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항구인가. 바닷바람 냄새가 나네. 저 세 사람이면 분명 잘 해결하고 오겠지. 칼부림 하는 곳 까지 따라가고 싶진 않으니 그냥 여기서 기다려야겠어. 야만적이잖아 그런 거. 그리고, 결과가 뻔한 데 뭐.


     - 고양이 II -     

“냐아옹.”

저 녀석은 다 좋은데 고양이 소리를 영 못 낸단 말이야. 좀 더 성의를 담아서 해봐. 저 여자처럼.

“야옹.”

그래 그래야지. 이제야 움직여 볼 기분이 나네.

“희한하네. 왜 내가 부르면 안 오고 꼭 지윤 씨가 불러야 오는 거예요? 대체 비결이 뭐예요?”

“별 거 없는데. 그냥 고양이처럼 울어 봐요. 성의 있게. 마음을 담아서. 야옹 하고.”

“냐아옹.”

넌 안 되겠다.

“내가 보기엔 그게 그건데, 참. 그나저나 지윤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지윤 씨 보다 빨리 죽는 것에는 정 안 준다면서.”

“뭐, 미래는 모르는 거잖아요. 누가 먼저 죽을 지 어떻게 알아요. 이 고양이가 제일 오래 살고, 민혁씨가 제일 먼저 죽을 지.”

“내가 왜 죽어요? 말을 해도 꼭...”

“그건... 내가 오늘 죽여 버릴 거니까.”

지윤이 민혁을 덮친다. 침대로 밀어 넘어뜨리고는 번개같이 달려들어 입술을 덮친다. 옷 사이로 들어오는 민혁의 손을 찰싹 하고 쳐낸다. 입술을 겹친 채로 셔츠 단추를 풀어낸다. 그리고는 민혁의 심장을 그대로... 입술로 덮친다.

이런, 슬슬 비켜줘야겠군. 나는 얼른 침대에서 내려와 가구들을 타고 옷장 위로 올라간다. 천장 사이의 좁은 틈에서 빼꼼 고개만 내밀고 지윤과 민혁이 뒹구는 장면을 지켜본다. 음. 그래. 이건 좀 볼 만한 장면이네.

명심해. 고양이는 모든 걸 지켜본다. 야옹.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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