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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시대의 사랑법

심너울

 


2005년 내가 첫사랑에 빠졌을 때는 작은 화면에 한점한점 수놓인 문자 메세지로 그와 연락했다. 한 문자에 100개를 초과하는 한글이 들어가면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우리 모두가 시인이 되도록 강요하는 환경이었다.

애끓는 감정을 100개의 글자 내로 제련하고 정련했다. 가끔은 그가 나와 같은 노력을 한 문자 메세지를 보냈다. 나는 그걸 틈날 때마다 열어 보면서 가슴 속에 연료를 충전했다. 당시 휴대폰의 저장공간은 말 그대로 핍진했는데, 문자 메세지를 딱 200개까지만 저장할 수 있었다. 문자 메세지가 용량을 꽉 채우면 삭제해야 새 메세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메세지들은 차마 지울 수 없었다.

3년 동안 나는 나만을 위한 그 아름다운 시들을 차곡차곡 보관했다. 안 그래도 팍팍한 휴대폰 저장 공간이 소중한 메세지들로 가득 찼다. 마침내 내 첫사랑이 끝났을 때, 200개를 저장할 수 있는 공간에서 130개의 공간은 보존된 그의 메세지로 차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 나는 가끔 첫사랑을 생각한다. 영원히, 내가 죽을 때까지 교복을 입은 활달한 청소년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겠지만 지금은 나처럼 어엿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가끔은 예전에 쓰던 휴대폰을 꺼내 중학생 시절의 내가 기를 써서 썼던 메세지를 보며 웃음짓기를 기도한다.

가끔은 궁금하다. 21세기가 오기 전, 삐삐를 썼을 때는 어땠을까?

내가 아주 어릴 때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 머릿속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은 느낌의 장면이 가득 찬다. 눈이 펄펄 내리고 어두운 도시, 후미진 골목, 그 속에서 삐삐를 품에 소중히 안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 집에 있는 전화기만 그리던 그는 집으로 빨리 뛰어가다 한 번 넘어지기도 한다. 엉덩이를 크게 찧었지만 모든 것이 우습고 기쁘다. 그럴 것이다.

살아본 적 없는, 돌아오지 않을 때를 기억하면서 지금 나는 내가 쥔 스마트폰을 바라본다.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을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이리저리 올리고 내린다. 친구, 가족, 동기, 동료들. 제각기 다른 수많은 삶의 모양이 프로필 사진 하나와 상태 메세지에 간결히 정리되어 있다.

그 삶의 형태 중에서 지금 내 관심을 모두 부여잡는 사람은 하나 뿐이지만. 애써 무덤덤하게 본명으로 저장해놓은 그의 이름을 본다. 언젠가 이 이름 뒤에 하트 모양 이모지를 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기대한다. 나는 친구 목록 창에서 현재 대화 목록으로 창을 전환한다.

그의 얼굴과 이름 옆에 빨간 2가 동동 떠 있다. 10분 전에 그가 내게 카카오톡으로 메세지를 보냈다. 이제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나는 대화를 확인한다. 10분 전에 인터넷 어딘가에서 동동 떠다니던 작은 사진 하나를 올렸다. 우습다고 적어놓았다. 사실 사흘 전에 이미 다른 친구가 보내 준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우습지가 않았는데, 갑자기 아이 같은 웃음이 내 얼굴에 흐른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가장 적당한 이모티콘의 웃는 모양을 고른다. 추가로 웃는 글을 남기고,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적당한 질문을 생각한다.

메세지를 받았을 때 이미 알고 있었다. 진동이 울리자 마자 스마트폰을 보았다. 그 얼굴과 그 이름이 보였다. 당장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기분. 10분은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긴 시간이었다.

대화창을 멍하니 바라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제 1을 생각한다. 문자 메세지, 삐삐, 1. 문자 메세지에는 수신 확인 기능이 없었다. 뭐 같은 통신사끼리는 그런 걸 설정으로 지원하기도 했었나? 하지만 나는 그런 기능 쓰지 않았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의 문자 메세지를 받으면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바로 확인했다. 답장은 좀 느지막히 보내긴 했지만.

삐삐는 어땠을까? 체험하지 않은 시간을 내 머리 속에서 다시 구성한다. 삐삐 신호를 일부러 늦게 받았을까? 아니다. 그랬을 것 같지 않다. 내가 아끼는 사람에게서 전화하라는 신호가 왔고, 전화기가 저 먼 어딘가에 있으면, 느지막하게 답할 여유가 없다. 달렸으리라. 그 시대를 살지 않아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때는 갔다. 카카오톡은 수신 확인 기능을 기본으로 제공한다. 예외는 없다. 대화에서 내 메세지 옆에 1이 있으면 아직 확인 안 한 거고, 없으면 확인 한 거지. 그가 내게 메세지를 보낸 것을 뻔히 알고 있지만, 1을 잠시라도 남겨놓기 위해 기다린다. 느릿느릿 답장을 보낸다.

기술 덕에, 15년 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많은 메세지를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이제 15년 전의 지연을 일부러 재현한다.

대화 창을 종료하지 않고 멍하니 보던 나는 문득 생각한다. 만약 지금 그가 다시 메세지를 보내면 어떡하지? 곧바로 수신 확인이 되겠지? 내가 대화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겠지? 어떤 생각이 들까? 내가 너무 절박한 것 같나? 아니, 절박하지 않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잠시 앱을 종료한다. 그에게 무슨 답장을 할지 우선 고민한다. 미지근하고 재미없는 내용만 떠오른다. 아니 난 스스로를 꽤 창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에게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시덥지 않은 농담에 더이상 웃지 않아도, 그만 웃어준다면 괜찮다. 나는 그 미소가 계속 보고 싶다.

나는 다시 대화창을 켠다. 생각해 놓은 답장을 타이프한다. 그가 이 답장을 받고 웃길 기대한다. 나는 기다리지만, 이왕이면 내 메세지의 1이 좀더 빨리 사라지면 좋겠다. 그 내 답장을 고대하길 바란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하나하나, 따박따박. 가상의 키보드를 누를 때마다 휴대폰이 가볍게 울린다.

긴장된 손으로 보내기 버튼을 누른다.

아, 그리고 나는 깜짝 놀란다.

가슴 속의 열정이 거침없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내 마음 속에 그의 얼굴이, 우아한 몸짓이, 조금도 놓치고 싶지 않은 그의 귀한 이미지들이 가득 찬다. 지금까지 그와 함께 보냈던 그 찬란한 순간들이 전부 번개가 되어 나를 스친다. 가슴이 과도하게 뛰는 와중에, 이제는 너무 뜸들이지 않겠다 하고 생각한다.

내가 방금 보낸 메세지 옆에는 1이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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