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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누나 노릇

2019.07.01 00:0007.01

누나 노릇

이나경

이것은 뱀파이어 이야기가 아닙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그것이 내가 의도한 건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동생에 대한 나의 감정은 꽤 복잡한 편입니다. 오랫동안 나는 동생을 미워했어요. 동시에 애틋하게 여겼고요.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생을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애틋하면서도 미워했고 그리워하는 동시에 지긋지긋해 했다는 식으로 순서를 바꿔도 무방하겠습니다만, 요는 내가 동생의 전화를 달가워하지 않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통화 버튼을 눌렀고 또 번번이 후회했어요.

그날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용건이야 들을 것도 없었지요.

“조금만 더 빌려줘. 나중에 한 번에 갚을게.”

나는 이제 거절하기로 마음을 정했었습니다. 어차피 더 이상 줄 돈도 없었으니까요.

“저번에 줄 때 적금까지 깬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 없어? 형편 되는 만큼만 줘도 되는데.”

“내 형편도 지금 말이 아니야.”

수화기 너머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왠지 동생 옆에 누가 있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지만 내색하진 않았습니다.

“저기 누나….”

동생이 머뭇거렸습니다.

“뭔데?”

“우리 만나자.”

“진짜로 없다니깐.”

“돈은 됐어. 할 말이 있어서 그래. 만나서 내가 다 설명할게.”

그것은 뜻밖의 제안이었습니다.

그동안 대체 무슨 돈을 어디에 쓰는지 물어도 동생은 대강 얼버무릴 뿐이었습니다.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나보다, 어디서 사고라도 쳤나보다, 짐작하고 넘어갔지만 다달이 돈이 나가는 사고가 무엇인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그 찜찜함을 해소할 기회를 준다 하니 내가 어떻게 거절했겠습니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왔습니다. 그 집에서는 숨이 막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언제나 아들만 챙겼습니다.

나는 원래 쌍둥이였다고 합니다. 예정대로였다면 남매가 태어났겠지요. 그런데 출산 직전에 아이 하나가 그만 죽어버린 거예요. 세상에 나온 건 나뿐이었습니다.

어린 내게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했다면 그건 계집아이였어야 했다!”

어린 내게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 아들을 죽였다!”

이를테면 나란 인간은 날 때부터 이미 저주를 받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정말로 뱃속에서 내 형제를 죽이고 나왔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사실이면 덜 억울하겠지요.

동생이 태어나고부터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더 이상 나를 미워하지 않게 됐어요. 그보다는 아예 관심을 거두어버렸습니다. 어느새 나는 ‘없는 자식’이 되었더군요. 아들, 아들, 오로지 아들. 그들에겐 아들밖에 없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동생은 퍽 귀여웠습니다. 그만하면 얼굴도 귀여웠고 하는 짓도 귀여웠습니다. 모두가 그 애의 비위를 맞춰주었습니다. 그 애는 누구의 비위도 맞출 필요가 없었지요.

나는 동생을 볼 때마다 밀고 할퀴고 때리고 물어뜯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습니다. 동생만 없으면 식구들의 관심이 내게 집중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어리석진 않아요. 나는 그저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분풀이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하지만 동생에겐 아무 잘못도 없지요. 나도 그것을 압니다. 그래서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동생도 내게 잘못이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애가 뭘 어쩌겠어요? 그저 응석받이일 뿐인데요.

아무튼 나는 계획했던 대로 고등학교 졸업식 날에 집을 나왔습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동생의 중학교 졸업식 날이기도 해서 식구들은 모두 중학교에 가 있었습니다. 나는 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식탁에 메모를 한 장 남기고 얼른 나왔어요.

메모는 앞으로 알아서 살 테니 찾지 말라는 내용이었는데, 사실 그런 게 없어도 식구들은 나를 찾지 않았을 거예요. 메모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나를 버렸듯이 나도 그들을 버리겠다는 선언문이었어요.

이후로 한동안 친구네 자취방에서 얹혀살았습니다. 친구는 대학교에 다녔고 나는 편의점에 다녔지요.

다음 해에는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화장품 회사에 납품할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어 파는 회사였는데, 나는 만드는 업무도 파는 업무도 아닌 허드렛일을 맡았습니다. 편의점 시절에 비해 수입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으나 덜 불안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조금 큰 회사로 옮겼습니다. 주머니 사정도 한결 나아졌어요. 그때부터 나는 혼자 지낼 집을 구했습니다. 친구는 더 있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가 좋았습니다. 아무에게도 의지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동생이 대학에 붙었습니다. 기숙사에서 지내게 됐다더군요. 나는 가끔씩 동생을 불러 밥도 먹이고 용돈도 줬습니다. 동생이야 과외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에서 생활비도 받으니 더할 나위 없이 풍족했겠지만, 요컨대 내 도움은 필요 없었겠지만, 나도 딴에는 누나 노릇이라는 걸 좀 해보고 싶었나 봐요.

회사를 옮길 때마다 내 생활은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적금도 들고 보험도 들었어요. 가볍게 연애를 할 정도로 여유도 생겼고요. 한때는 고양이를 주워 기른 적도 있습니다. 다시 금방 집을 나가버렸지만요.

그러는 사이 동생은 군대에 갔다 왔습니다. 휴가 중에 두어 번쯤 만났는데 어쩜 그렇게 자기 얘기만 하던지…. 어쨌든 까맣고 탄탄하고 꽤 듬직해졌습니다. 적어도 겉보기로는 그랬어요.

제대한 뒤로 동생은 복학하는 대신에 시험을 준비하겠다고 그러더군요. 무슨 고시라고 하던데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동생은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나는 동생을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그러니까 전역한 다음부터요. 우리는 늘 전화 통화만 했어요. 예전처럼 밥을 사주겠다고, 용돈을 주겠다고 꾀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단히 각오했구나 생각했지요. 달리 의심이나 했겠어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 그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동생은 내게 전화해 대뜸 돈을 요구했어요. 동생은 아무 것도 묻지 말라더군요. 나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돈을 보냈습니다.

한두 달에 한 번 꼴로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번번이 통화 버튼을 눌렀고 또 번번이 후회했어요.

어느덧 나는 30대가 되었습니다. 괜찮은 사람을 만나면 가정을 꾸릴 셈으로 돈도 적잖이 모아두었었지요. 하지만 이제는 없습니다. 동생에게 줘버렸어요. 아무 것도 묻지 않고요.


우리는 호프집에서 만났습니다. 월요일의 주점은 한산했습니다. 시끌시끌한 대학생들이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고 구석엔 직장인 둘이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논쟁하고 있었어요. 대학생 중 하나가 최근에 실연을 당했는지 이따금 고성이 들렸는데 대화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사실은 주변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오랜만이야 누나”

“너 괜찮아…?”

나는 동생의 모습을 보자마자 충격을 받았습니다. 까맣고 탄탄하고 듬직하던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군대 가기 전의 희멀건 샌님으로 돌아왔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어요.

세상에…. 동생은 나보다도 늙어 보였습니다. 피부는 생기를 잃어 거무죽죽했고, 몹쓸 병이라도 앓는 듯 눈자위와 볼살이 움푹 꺼져 있었어요. 이도 몇 개 빠졌는지 발음이 쉭쉭 새더군요.

고시 생활이 길어질수록 폐인이 된다지만 이건 그런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책상 맡에 오래 앉아있다고 그렇게 될 리 없었어요.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동생은 조금 겸연쩍어 하더군요. 오는 길에 벌레에라도 물렸는지 팔뚝을 벅벅 긁어대는 통에 피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오늘 보자고 한 건, 저기, 다름이 아니라, 누나, 저기 말이야.”

“괜찮으니까 말해봐.”

“부탁이 있는데 절대로 어려운 부탁은 아니니까 부담 없이 들어줘.”

“아무리 사정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당장에 이번 달 월세도 밀리게 생겼다.”

동생이 손사래를 쳤습니다.

“돈 얘기가 아니야.”

“그럼 무슨 얘긴데?”

“좀 이상하게 들리긴 할 텐데, 흠흠, 누나가 나한테 피를 좀 나눠줄 수 있을까?”

이럴 수가! 동생의 말은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어요. 왜 이상하게 들릴 거라고 했을까? 그 말이 더 이상했습니다.

“알았어. 피라면 얼마든지 줄게. 그런데 많이 안 좋아?”

“좀 급하긴 해.”

“수술 날짜는 잡았어? 그나저나 너는 입원 안 하고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거야?”

“뭐?”

“병명이 뭔데? 이참에 속 시원히 얘기해봐.”

“아….”

동생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나는 그것이 웃음을 참는 표정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헌혈해달라는 줄 알았어? 그런 게 아니야. 내가 직접 피를 뽑겠다고.”

“뭐? 직접? 왜?”

그제야 비로소 이상함을 느꼈고, 나는 뒤늦게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동생의 대답은 나를 더욱 당황케 했습니다.

“내가 마실 거거든.”


우리 부대에 나보다 반년 늦게 들어온 후임이 있었는데 고문관이었어. 어리바리했다는 뜻이야. 근데 나랑 동갑이더라고.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내가 그 후임한테 좀 상냥하게 대했거든? 그래봤자 덜 갈구고 PX에서 냉동만두 몇 번 사준 정도였지만, 걔는 그게 되게 고마웠나봐. 말년휴가 때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말이야.

밖에서 만난 그 친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더라. 내가 오히려 어리바리했지. 알고 보니 걔는 소위 ‘좀 사는 집’ 자식이었어. 자기가 사겠다면서 데려간 클럽은 척 보기에도 비싼 데였는데, 나는 이래도 되나 하고 눈치를 보는데 정작 걔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로 가서 앉더라고. 우리는 춤도 추고 술도 마셨어. 처음엔 좀 어색했지만 환경이 사람을 바꾸는지 나중엔 나도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 사교계의 거물이라도 된 양 거들먹거렸어.

우리는 완전히 의기투합해서 거의 주말마다 만났어. 둘이서 강남 일대를 누비며 온갖 클럽을 섭렵했어. 돈은 매번 그 친구가 냈는데, 한 번은 내가 사겠다고 했더니 버럭 성질을 내더라. 섭섭하게 왜 이러냐며 한사코 자기가 사겠다는 거야. 다행이었지.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할 금액이었거든.

그러다 하루는 자기가 뭘 구해왔대. 그러면서 빨간색 알약을 꺼내더라? 새로 나온 각성제라는데 완전 뿅 간다는 거야.

알아. 그때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 했어. 하지만 누나도 알다시피 나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잖아?

“아니, 완전 뿅 가는 건 부차적인 거야. 이거 한 알이면 온몸에 활력이 넘쳐. 살아있다는 느낌이 장난 아니라고!”

걔는 그렇게 말하면서 막무가내로 내 입에 각성제를 넣었어.

반강제로 그걸 삼켰으니 나는 당연히 겁이 났지. 약간 메스꺼운 느낌이 들어서 게워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에 갑자기 말도 안 되는 변화가 일었어. 아,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까! 내 평생 그렇게 황홀한 기분은 처음이었어. 나를 압박하던 모든 것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고. 쇄도하는 감정의 해일에 완전히 휩쓸렸어. 그러면서도 나라는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거야. 쿵쾅거리는 게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인 줄 알았는데 내 맥박 소리였어.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어.

이후로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약을 먹었어. 한동안 아무 문제도 없었어.

그러다 하루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목소리가 심각했어. 자기 아버지가 알게 돼서 재활원에 가게 됐대. 그런데 그 재활원이라는 곳이 외국에 있대. 얘길 들어보니 거의 쫓겨나는 거나 마찬가지더라. 걔도 참 불쌍한 애야. 아무튼 그런 이유로 일이 년쯤 못 보게 됐으니 남은 약이라도 내게 다 주고 가겠대.

걔는 약 열두 알을 주면서 전화번호도 하나 적어줬어. 약이 부족하면 이리로 연락하라면서.

그렇게 떠나갔어.

내게 남은 건 열두 알뿐이었어. 그게 얼마나 갔겠어? 금세 동이 났지. 어쩔 수 없이 나는 전화를 걸었어. 허스키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더라. 처음엔 잔뜩 경계하더니 내가 친구 이름을 댄 다음부터는 태도가 좀 누그러졌어. 그렇게 서른 알을 샀지. 그 다음에도 서른 알. 서른 알씩 꼬박꼬박.

돈도 꼬박꼬박 나갔어. 집에서 받는 돈으로는 모자라서 여기저기 돈을 빌렸어. 누나한테도 말이야.

물론 약을 끊으려고도 해봤지. 진짜야.

약을 먹으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인데, 약효가 떨어지면 진흙탕으로 곤두박질을 쳐. 그게 문제야. 약을 끊으려면 이 진흙탕에서 견뎌야 하는데 내가 나약한 걸 어쩌겠어….

그런데 있지, 한번은 대머리가 묘한 얘길 하더라?

응? 대머리는 판매자야. 아까 말했잖아. 허스키한 목소리로 전화 받던.

아무튼 무슨 얘기였냐면, 이건 부자들이나 먹는 약이래. 나처럼 가난한 인간은 결국엔 피나 빨아먹게 돼 있다는 거야.

나도 지금 누나처럼 어리둥절했어. 무슨 소리야? 피를 빨아먹는다니?

약에 포함된 무슨 성분이 혈액에 들은 성분이랑 같대. 그래서 중독자들이 피를 마시면 얼추 약효 비슷한 게 난다는 거야. 그러면서 나더러 정 돈이 없으면 식구들 피라도 빨아먹으래.

그렇게 된 얘기야. 이제 알겠지? 돈이 없으면 누나 피라도 나눠달라고.


나는 기가 막혔습니다.

“피는 안 줄 거야. 대신에 이렇게 하자. 너도 해외에 있는 재활원이라는 델 가. 그거라면 내가 빚을 내서라도 돈을 마련할게.”

“아냐 누나….”

“당장은 어렵겠지만 그게 맞아. 몸이 나으면 어디든 취직해서 돈 갚아. 기다려줄게.”

“그런 게 아니라니까.”

동생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나는 그것이 괴로워하는 표정이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어요.

“내가 거짓말했어. 사실 재활원 같은 건 없어.”

“네 친구 간 데 있잖아. 비싸서 그래?”

“그 고문관 새끼가 나를 속인 것 같아. 내가 너무 늦게 깨달았어. 애초에 내 인생 조지려고 작정하고 찾아왔던 거지. 자기는 먹는 시늉만 하고 장단을 맞춰주다가 내가 폐인이 되니까 나를 버린 거라고.”

“무슨 소리야? 둘이 친했다며?”

“안 친했어. 전역하고 친해졌지. 그나마도 가짜였지만.”

“아까는 군대에서 네가….”

“아니야. 나도 남들이랑 똑같이 대했어. 가끔은 더 심하게 갈군 적도 있지. 걔 때문에 징계도 받고 휴가도 깎였으니까. 그래도 말년엔 많이 참았는데 그 새끼 마음에 앙금이 남아 있었나봐. 말하자면 이건 복수야. 부자 새끼가 돈으로 나를 망쳐놨어.”

나는 다시금 기가 막혔습니다.

“그건 그거고 재활원은 재활원이지. 내가 알아볼 테니까 재활원에 가.”

“알았으니까 오늘은 피나 좀 줘. 나 진짜 급해.”

“도대체 피를 어떻게 달라는 거야? 손목이라도 그으라는 거야 뭐야?”

“아니야. 아니야.”

동생이 말했습니다.

“누나가 다칠 필요는 없어. 주사기로 빼면 돼.”

“그걸 누가 해? 네가 해? 해본 적 있어?”

“할 수 있을 거야.”

있을 거야? 동생의 대답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내 머릿속에 희한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나는 집을 나온 뒤로 한 번도 묻지 않았던 것을 물었습니다. 기어이 묻고야 말았습니다.

“아버지랑 어머니는?”

“엄마아빠가 뭐?”

동생이 팔뚝을 긁었습니다.

“어떻게 지내?”

“잘….”

“너 아버지랑 어머니한테도 달라고 했지? 돈도 받았고 피도 받았지?”

동생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어요.

그들은 아들이 해달라는 건 다 해줬습니다. 돈으로 안 되면 피라도 줬을 거예요. 그런데 동생은 왜 나한테까지 찾아와 피를 달라고 할까? 그거로는 모자랐을까? 아니면 그들이 더 이상은 못 주겠다고 했을까? 그게 아니라면… 더 이상 줄 수 없게 됐을까?

“솔직히 털어놔.”

과연 숨기는 게 있는 모양으로, 동생은 맥주를 벌컥 들이켰습니다. 나는 동생이 대답할 때까지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결국 동생은 실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생은 나약하거든요.

“누, 누나. 이건 정말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으니까 말해봐.”

“내가 실수했어….”

“죽였어?”

“아니야. 사고였어.”

동생이 말했습니다.

“이게 다 대머리 때문이야. 그 새끼가 피를 빨아먹으라고 하는 바람에 다른 방법은 생각조차 못 했어. 나를 세뇌시켰어. 아무튼 그래서 엄마 목덜미를 깨물어서 피를 빨아먹고 있었거든. 분명히 말해두는데 엄마는 허락했어. 그런데 아빠가 우릴 본 거야. 사정을 모르면 오해하기 딱 좋은 광경이지. 어떻게 봐도 모양새가 좋진 않잖아. 하지만 차분히 대화를 해도 됐을 걸 아빠는 갑자기 눈이 뒤집혀서는 식칼을 들고 달려들더라고…. 내가 어떡하면 좋겠어? 그걸 가만 두고만 봐? 한참 옥신각신하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두 분 다 칼에 찔려서….”

“그래서.”

목이 콱 메더군요. 내가 그들을 동정했다고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쉬운 대로 페트병에 피를 받아서….”

“피 얘기는 집어치워! 아버지랑 어머니 어떻게 했냐고!”

“쉬, 쉿! 목소리가 크잖아.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대답해. 어떻게 했어?”

“마당에 묻었어.”

이대로 두었다간 나도 그들과 같은 꼴이 될 것 같았습니다. 아니, 내 꼴을 보십시오. 이미 빨릴 대로 빨려서 앙상해진 내 삶을 좀 보십시오.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했다면 그건 계집아이였어야 했다!”

그렇게 말한 인간은 그가 끔찍이도 사랑하던 자식에게 살해됐습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대신해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네가 우리 아들을 죽였다!”

그렇게 말한 인간도 세상에 없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저 말은 일종의 예언이었습니다. 나는 동생을 죽이기로 했습니다. 동생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걸 알았거든요. 누군가를 위해 죽을 바에야 나를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게 낫지 않겠어요?

동생이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나를 보았습니다. 나도 동생을 보았어요. 나는 어렵게 입을 열어 동생에게 피를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동생은 반색했겠지요.

우리는 주점을 나와 한참을 거닐었습니다. 동생은 내가 이끄는 대로 비틀거리며 따라왔어요.

새벽 무렵에 나는 적당한 골목을 찾았습니다. 아니,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만 방황을 멈추고 싶었어요.

“여기서 해.”

나는 동생을 구석으로 잡아끌었습니다.

“여기서 엄마한테 했던 것처럼 해줘. 야만스럽게 빨아봐.”

“여기? 길가에서…?”

“뭐 어때. 아무도 없잖아.”

“알다가도 모르겠네, 정말.”

구시렁대면서도 동생은 못 하겠다는 말은 안 하더군요.

미로 같은 골목의 한복판에서, 달빛도 들지 않는 담장 아래서, 마침내 나는 동생에게 목덜미를 내주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한 누나 노릇이었어요.

우리는 곧 헤어질 연인처럼 꼭 안았습니다. 동생의 더운 숨결이 내 살에 닿았습니다. 나는 움찔했지만 거부하진 않았어요. 이윽고 메마른 입술과 축축한 혀와 뾰족한 이가 거의 동시에 내게 닿았습니다. 살이 찢어지는 아픔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몸을 떨었습니다. 비릿한 피 냄새를 맡으며, 정숙하지 못하게 춥춥 빨아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동생을 미워했습니다. 동시에 애틋하게 여겼고요. 지긋지긋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생을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 에코백에서 포크를 꺼냈습니다. 주점에서 가져온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으로 동생의 목을 힘껏 찔렀습니다. 확실히 하고 싶어서 같은 짓을 몇 번이나 반복했어요.

푹, 푹, 푹, 푹, 푹.

내 목에 매달려 있던 동생은 가냘프고 볼품없는 신음을 흘리더니 풀썩 쓰러졌습니다.

나는 한동안 동생의 곁을 지켰습니다. 옆에서 생명이 꺼지는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꿀렁꿀렁 쏟아지는 동생의 피를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러나 아무 맛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불쾌할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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