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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경 16개월 동안

2019.06.01 00:0006.01

16개월 동안

이나경


내가 건달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래로 세상은 늘 불황이었다. 단지 덜 불황인지 더 불황인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2010년에 나는 스물네 살이었는데 그때는 덜 불황에서 더 불황으로 바뀌는 과도기였다. 반짝 살아나던 경기 부양의 불씨가 금세 다시 꺼지려 하고 있었다. 그 여파는 우리한테까지 미쳤다. 꼬박꼬박 돈을 내던 상인들이 앓는 소리를 해대며 상납을 미루는 것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돈을 빼앗는 일 자체에는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유리를 깨거나 물건을 부수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하지만 아버지뻘 되는 작자들을 두들겨 패는 건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그들이 겁내는 게 내가 아니라 우리 조직이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내게 얻어맞으면서도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경멸했다. 때문에 나는 그들을 때리는 일이 내키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으스댈수록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짓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렇게 해서 푼돈이나마 걷히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힘만 빼고 말 뿐이었다.

이렇듯 예민한 시기에 宋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마 11월 말쯤으로 기억한다.

宋은 중학 동창으로, 나를 건달의 세계로 이끈 장본인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중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게 한 데 책임이 있다 뿐이지 직접적으로 조직에 발을 담그게 한 건 아니다. 그건 전적으로 내 선택이었다.

이따금 나는 또래 친구들처럼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면 어땠을까를 상상했다. 평범하게 사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손윗사람들 대신 하급생들 지갑이나 갈취하며 졸업만을 기다렸겠지. 변변찮은 직장을 얻어 변변찮은 월급이나 받으면서 시시하게 살았겠지.

결국 힘쓰는 일 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으니 일찌감치 생활 전선에 뛰어든 게 현명했는지도 모른다.

宋은 달랐다. 타고난 센스가 좋다고 할까, 아무튼 꾀가 많고 셈에 밝았다. 생김새도 제법 번듯한 데다 언변도 좋아 쉽게 호감을 샀다. 건달이 아니었어도 宋은 어디서 무얼 하든 잘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宋이 감옥신세를 지게 됐다. 2007년의 일이다. 폭행치사라고 하는데, 실제로 사람을 죽인 건 다른 간부이고 宋은 그를 대신해 자수했다고 들었다. 조직에선 환송회까지 열어주며 요란하게 배웅했었다. 그렇게 들어가 3년 만에 출소한 것이다.

우리는 시내의 한 주점에서 만났다. 아직 이른 저녁이라, 혹은 불황이라 가게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잘 지냈냐?”

宋이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얼결에 손을 잡자 찌릿하고 정전기가 일었다.

내가 대답했다.

“똑같지 뭐.”

사실 나는 그 상황이 의아하고 어색했다. 우리는 친구 사이가 아니었다.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퇴학의 원인이 되었던 패싸움 때 우리는 각각 다른 편에 있었다. 이후로 같은 조직에 몸담았다고는 해도 엄연히 소속한 계파가 달라 얼굴 볼 기회조차 드물었다. 어쩌다 길에서 마주쳐도 냉랭하게 지나칠 뿐이었다.

서로 치고받을 적에는 솔직히 무언가 통한다는 느낌을 받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금처럼 사적으로 만나는 건 상상도 못했었다. 그랬는데 느닷없이 불러내선 안부나 물으니 어안이 벙벙한 것이었다.

어쨌든 나도 왠지 안부를 물어야 할 것 같았다.

“나오니까 어때? 위에서 잘 챙겨줘?”

“챙겨줄 거 뭐 있나. 용돈이나 두둑하게 받은 정도지 뭐. 그거 받고 손 씻기로 했어. 위에서도 은근히 바라는 것 같더라고.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조만간에 가게 하나 낼 거야.”

“무슨 가게?”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사업이나 살짝 해볼까 하고. 실은 오늘 보자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야. 나랑 같이할 맘 있나 해서.”

내가 당황해 머뭇거리니 宋이 덧붙였다.

“강요하는 건 아니야. 일이랄 것도 없이 그냥 취미 삼아 하면 되는 거라…. 관심 있으면 같이 하자고.”

“야, 혹시 보증을 서 달라는 거면….”

“아냐, 아냐. 밑천은 충분해. 너는 그냥 시간만 내주면 돼.”

나는 궁금했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데 왜 나를 찾아왔을까? 어디 으슥한 데로 데려가 해코지라도 하려는 걸까?

그래서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누가 나 담그라고 시켰냐?”

“김장 하냐? 담그긴 뭘 담가. 곧이곧대로 좀 들어.”

“다른 꿍꿍이 없는 거 맞지?”

“나 손 씻었다니까.”

“하지만 왜 나를…?”

宋이 말했다.

“너는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입이 무거우니까.”

나는 그를 보았다. 그도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주점에선 청승맞은 발라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 하자.”

마침내 내가 대답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는 무슨 사업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하기로 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날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다. 주로 술을 마셨고, 간간이 대화했으며, 드물게는 농담도 주고받았다. 살아온 궤적이 닮아 말이 통했고, 그러면서도 꽤 달라 지루하지 않았다. 텅 빈 주점을 나와서도 우리는 늦가을의 스산한 밤거리를 묵묵히 거닐다가 새벽 어스름이 깔릴 무렵에야 헤어졌다.


새해가 되도록 宋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역시나 일이 잘 안 풀렸나보다, 갓 출소해 의욕이야 넘쳤겠으나 모름지기 사업이라는 게 의욕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법이지, 그냥 술이나 한 번 얻어 마신 걸로 만족하자. 나는 그렇게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정작 일이 잘 풀리는 건 나였다. 신년 들어 운수가 트이려는 모양으로, 보름도 되기 전에 수금을 마친 것이다. 따라서 나머지 보름은 놀고먹을 작정이었다. 나는 주로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문득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宋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이것저것 세팅하느라 해가 바뀐 줄도 몰랐다. 이제 다 됐으니 오후에 잠깐 들러.”

宋이 구상했다는 소위 괜찮은 아이템이란 060 음성정보 서비스였다. 그 중에서도 성인 전용 서비스였다. 사무실이라고 해서 찾아간 그의 오피스텔은 전혀 사무실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냥 집이었다.

나는 내심 실망했다. 060 서비스라면 누가 봐도 사양산업이었다. 키스방이나 안마방이었다면 차라리 해볼 만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속내를 읽은 듯 宋이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이게 다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가 말했다.

“걱정 마. 확실하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으니까. 부지런히만 하면 다달이 이천씩 버는 건 일도 아냐.”

짚이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아는 체를 했다.

“그러니까 성매매 같은 거지?”

“응?”

“폰팅으로 성매매 알선하는 거잖아.”

“야, 그건 불법 아니냐.”

“그럼?”

“난 그냥 꼼수만 좀 부리려는 거고.”

점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메뉴라고 해봐야 폰팅 아니면 야설 따위를 읽어주는 게 전부일 것이다. 정보 이용료는 더하거나 뺄 것도 없이 30초에 700원. 그런데 이걸로 월수입 이천만 원이 보장된다? 허면 딴엔 대단한 꼼수일 것이 틀림없었다.

宋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여기서는 더 볼 게 없고, 나랑 어디 좀 가자.”

그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호젓한 국도를 누비던 차가 무인 모텔의 주차장에서 멈추었을 때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뭐야? 모텔에를 왜 와?”

“여기가 우리 작업실이야.”

宋의 설명은 이러했다. 모텔 객실에서는 전화를 외선으로 돌릴 수 있고, 사용에 제한이 없다. 그러니 밤새 전화를 걸기만 하면 된다. 열두 시간을 묵는다 치면 이론상 100만 원가량의 수익이 들어온다. 하룻밤 동안 말이다. 그야말로 놀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꼼수라면 확실히 대단한 꼼수였다.

그는 자기 소유의 전화번호를 꾹꾹 눌러 몇 가지 설정을 하고는 수화기를 엎어 놓았다.

“이걸로 끝. 옆에서 쉬면서 안 끊어졌는지 가끔 확인만 해주면 돼.”

“진짜 간단하네.”

그때 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宋이 말했다.

“자, 지금부터 나는 맥주 캔이나 깔까 하는데 너는 어떡할래? 오늘은 첫날이니까 조촐하게 개업식이나 할까?”

“여기서?”

“돈은 벌어야지.”

宋이 턱짓으로 수화기를 가리켰다. 우리가 노닥거리는 동안에도 사업은 번창하고 있었다. 30초에 700원씩.


나는 宋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우선, 폰팅 메뉴는 유명무실하다. 구색을 갖추려고 메뉴에 넣긴 했으나 따로 인원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연결 중이라는 안내만 나오도록 설정돼 있다. 결국 고를 수 있는 건 야설 메뉴뿐이다.

다음으로, 모텔에선 가급적 눈에 띄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특별한 용건이 없다면 방에서 나오지 않으며, 프런트에서 퇴실 전화가 걸려오기 전에 일찌감치 방을 비우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한번 다녀간 모텔은 절대로 다시 가선 안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방문한 모텔의 리스트를 공유했다.

처음 몇 번은 수화기 옆에서 밤을 지새웠다. 혹여나 통화가 끊기진 않을지, 프런트에서 눈치를 채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모텔을 전전하는 나날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긴장이 풀어졌다. 일은 아주 순조로웠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쉽고 안전하고 확실하게 목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첫 달에 2,200만원을 벌었다. 그 중 절반인 1,100만원이 내 몫이었고, 나머지 절반을 떼이는 것에는 불만이 전혀 없었다.

“이제부터가 문제야. 지금쯤 난리 나서 모텔들끼리 정보 공유하고 있을 테니까.”

宋이 말했다.

“소문이 퍼졌어도 아직 다른 동네에선 심각하게 생각 안 할 거야. 그러니까 지역을 옮겨야 돼. 허를 찌르는 거지. 이번 달에 나는 인천에서 지내다 올 건데 너는 어디 있을래?”

“그런데 나는 여기 상가에서 수금해야 되는데….”

“꼭 한 달 내내 가 있을 필요는 없어. 출퇴근을 해도 좋고 아예 일을 끝내고 남는 날만 해도 좋고. 형편 맞춰서 하면 돼. 어차피 네가 하는 만큼 가져가는 거니까.”

그가 강조했다.

“명심해. 일정은 자유롭지만 장소는 아니야. 월 단위로 옮겨 다니는 거야.”

다음 달에는 1,000만원밖에 못 벌었다. 하지만 그 다음 달에는 1,600만원을 벌었고, 그 다음 달에는 3,000만원을 벌었다. 둘째 달부터는 아예 수금을 다른 후배에게 맡겼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외주를 준 것이다. 덕분에 수입은 조금 줄었지만 부업으로 버는 돈이 훨씬 많았으므로 개의치 않았다.

나는 낯선 동네에서 낮 동안 한껏 빈둥댔다. 만화방이나 오락실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때로는 수족관이나 동물원 같은 데를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노을 질 무렵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과자 두 봉지를 사서 미리 봐두었던 모텔에 들어가 다음날 오전 열 시까지 스스로 감금했다.

일상은 평화로웠고 생활은 안정적이었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행복했다.

그런 나날이 언제까지고 계속되면 좋았으련만 행복은 얼마 가지 못했다. 실은 반년밖에 못 갔다. 사고가 터진 게 여름이었으니까.


南은 싹싹한 녀석이었다. 내가 자기보다 고작 한 살 많은데도 南은 열 살쯤 많은 큰형 대하듯 내게 깍듯했다. 덩치는 산처럼 큰 주제에 헤헤거리며 웃을 때에는 꼭 아이 같았다.

초등학교 때 유도선수였던 南은 엉덩이뼈가 골절돼 운동을 할 수 없게 되자 불량의 길에 빠졌다. 이후 중학교 2학년 때 패싸움에 참전했다가 나를 본 것이다. 당시 내가 제법 활약하긴 한 모양으로 그날 南은 나를 보고 반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나를 따라서 건달이 됐는데, 나보다도 더 대책 없었다. 열여덟 살에 아빠가 된 것이다.

아이가 생겼으니 이참에 마음잡고 어디 목공소에라도 들어가 착실히 기술을 배웠으면 좋겠다만 그런 말을 내가 해봐야 설득력이 있을 리 없었다. 南은 착실히 사무실에 출입했다.

南이 맡는 일은 만만한 노점상을 찾아가 자릿세 운운하며 행패를 부리는 수준의 잡무였다. 그는 내색은 않았지만 워낙에 불규칙적인 업무라 벌이가 시원찮았다. 생계를 책임지는 건 미용사인 아내였다.

그래서-그래서는 아니지만-나는 南에게 수금을 맡겼다.

“믿고 맡겨도 되겠어? 노점상 뒤엎는 거랑은 차원이 달라.”

“걱정 마십쇼, 형님. 실망하시는 일 없을 겁니다.”

사실 노점상 뒤엎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자릿세와 다르게 보호비 명목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 단지 해이해질까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우려와 달리 南은 맡은 임무를 꽤 잘해냈다. 깐깐한 상인들에게서도 척척 돈을 거두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나는 상납하는 걸 뺀 나머지 수입에서 절반을 南에게 주었다. 노점상 때보다 크게 늘진 않았어도 그 정도면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달 용돈벌이는 됐을 것이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8월에 나는 수원에 머물고 있었다. 사고가 일어난 날 나는 영화관에서 영화 세 편을 연달아 봤다. 무더위에 시원한 곳을 찾다 보니 그렇게 됐다. 질리도록 영화를 보고 나와 냉면 집에서 거하게 배를 채운 뒤 일찌감치 모텔에 들어왔다.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은 채 팬티 바람으로 침대에 누워 얼린 생수병을 배에 살살 문지르자니 졸음이 쏟아졌다.

정신이 든 건 전화벨 소리 때문이었다. 머리털이 쭈뼛 섰다. 프런트에서 전화가 왔나? 그러나 모텔 전화기가 아니었다. 내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였다.

“혀, 혀혀, 형님.”

南이었다.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여기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뭐라고? 크게 좀 말해봐.”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그러니까 그게….”

그가 말했다.

“사람이 죽었어요.”

문구점 주인은 쉰 살 먹은 여자로, 그녀는 평소 바락바락 악을 쓰며 내게 맞서곤 했다. 아들이 대학에 갔는데 서울에서 지낼 생활비를 보내려면 지금 버는 수입으로도 빠듯하다는 것이었다. 하도 물고 늘어지는 탓에 나도 진력이 나서 일 년에 두세 번쯤은 모른 척 넘어가주기도 했다. 물론 그런 사정을 南은 몰랐다.

“그 아줌마가 죽었다고?”

“아, 아뇨…. 그 아들이요.”

南이 저녁 9시쯤 문구점에 갔을 때 주인 여자는 없고 웬 말갛고 앙상한 청년이 가게를 보고 있었다. 슬쩍 물어보니 그 집 아들이라고 한다. 방학이라 그런지 문구점엔 손님이 없었다.

주인 여자 때문에 매번 애를 먹던 南은 이번엔 얘기가 조금 수월할까 싶어 한껏 예의를 갖춰 보호비를 요구했다. 아들은 정중히 거절했다. 그래서 그를 몇 대 때렸다. 그런 뒤에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네가 잘 모르나본데 다달이 내오던 거라고, 말하자면 세금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들은 자기 엄마 이상으로 강경했다. 그래서 몇 대 더 때렸다. 다시 몇 대 더. 그랬더니 갑자기 픽 쓰러져 숨을 안 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어디냐? 병원이야?”

“아직 그 문구점입니다. 병원엔 데려갈 것도 없이 바로 죽어 버려서요.”

나는 시계를 보았다. 12시 45분이었다.

“언제 죽었다고 했지?”

“9시 반쯤에요.”

“세 시간도 더 됐잖아. 넌 거기서 여태 뭐하고 있는 거야?”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정신 바짝 차려, 이 새끼야. 누구 온 사람 없어? 아줌마는?”

“아뇨. 아무도 안 왔어요.”

나중에 듣기로 주인 여자는 무슨 병에 걸려 입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 집에 와 있던 아들이 대신 가게를 보았다는 것이다.

“일단 네 흔적 말끔히 지운 다음에 열쇠 찾아서 문 잠그고 나와. 아무도 모르게 해야 돼. 나도 금방 갈 테니까 집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나야말로 가서 뭘 어떡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정신없이 옷을 주워 입고 모텔을 나왔다. 택시를 잡아타고 두 시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南은 집 앞 전봇대 옆에 서 있었다. 투실한 몸집이 희붐한 조명 아래선 퍽 왜소해 보였다. 나를 보자 그는 얼른 담배를 비벼 껐는데, 발밑에 이미 꽁초 몇 개비가 있는 걸로 보아 집에 안 들어가고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린 듯싶었다.

“안 들켰지?”

“네. 새벽이라 상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열쇠 줘봐.”

“어쩌시려고요.”

“수습해야지. 너는 이제 집에 가.”

“아, 아뇨! 저도 돕겠습니다.”

“일없어. 내 구역이니까 내 책임이야. 너는 네 애나 잘 돌봐. 이참에 정신 차리고 어디든 취직하라고.”

“하지만….”

南을 보낸 뒤에 잠시 공원을 거닐었다. 새벽 공기가 선선했으나 나는 가슴 한 편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폼 잡을 땐 좋았지만 뒤늦게 막막해진 것이었다. 책임지겠다고 한 건 후회 없었다. 다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 사태를 수습할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처음에 나는 거의 체념한 상태였다. 경찰서를 찾아가 자수하는 모습밖에 안 그려졌다. 감옥에선 얼마나 살게 될까? 애초에 내가 죽인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죽이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하면 참작해줄까? 宋이 폭행치사로 3년형을 받았으니 나도 그쯤 받을까? 돈을 뜯으려다가 그렇게 됐으니 경우가 다른가? 온통 그런 생각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기묘한 불안감이 엄습했고, 동시에 무언가 번뜩였다.

먼저, 불안감은 전화에 관한 것이었다. 모텔에서 나오기 전에 전화를 끊은 기억이 없었다. 늘 하던 대로 제대로 끊었으면 다행이지만 그런 걸 챙길 상황이 아니었으니 모를 일이었다.

다음으로, 여행용 캐리어를 본 기억이 났다. 문구점 구석 자리에 큼직한 걸로 두어 개 있었다. 전에는 생뚱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마치 유사시에 시신을 운반하라는 계시로 느껴졌다. 시체를 숨기는 것이 내가 떠올린 최선의 수습 방법이었다.

먼저 나는 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폴더를 열어 다급히 宋의 번호를 눌렀다. 지금 宋은 부산에 있지만 바로 깨워서 출발시키면 퇴실 시간 전까지는 무리 없이 수원에 도착할 터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도무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날 내가 南을 문구점에 보내 시체를 숨기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는 실수했을 것이다. 어디엔가 필시 자신의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걸 망쳐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날 나는 계속 폼을 잡고 있었다. 내 구역은 내 책임이라고 거들먹거려놓고 그걸 곧바로 번복하는 건 뭐랄까, 모양이 빠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문구점에 보낼 순 없었다.

대신에 나는 南을 수원으로 보냈다.

“잠깐 나와 봐. 네가 해줄 일이 있다.”

“뭐, 뭐든 시켜만 주십쇼.”

헐레벌떡 튀어나온 그의 표정엔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수원역 부근에 무지개 모텔이라는 데가 있거든. 주소 보낼 테니까 거길 좀 다녀와. 아침 10시까지 갈 수 있겠지?”

“수원역….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좋아. 거기 510호가 내 방이거든. 5층 10호. 방에 들어가면….”

말하면서도 나는 내 주문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릴지 걱정됐다.

“들어가자마자 수화기를 확인해서 잘 놓여 있으면 상관없는데 혹시 잘못 놓여 있으면 제대로 끊어.”

南이 잠시 기다리다가 물었다.

“그 다음에는요?”

“그냥 그거면 돼. 10시 전까지 해줘.”

당연히 그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南이야 어쨌든 시키는 대로 할 테니 나는 입을 다물어도 무관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가 통화중인 수화기를 귀에 가져간다면, 거기서 흘러나오는 교성 섞인 음담패설을 듣는다면, 그땐 이상하게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에 대해 심각하게 오해할 것이 분명했다.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그게 걱정됐던 것이다.

그래서….

“야, 내가 실은 宋이랑 하는 게 있거든.”

급박한 중에도 나는 南에게 정색하고 사업 얘기를 했다. 설명을 들으며 南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고, 어떤 대목에서는 감탄하기까지 했다. 내가 그랬듯이 그도 시야가 트이는 기분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는 전화기 바로 놓는 임무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우리는 비장하게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다. 새벽 공기가 선선했으나 나는 문구점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땀으로 흥건했다.

작업은 순조로이 진행되어 동이 트기 전에 나는 대학생의 시신을 캐리어에 담는 데 성공했다. 문구점을 나올 때에는 꼼꼼하게 문을 잠그기까지 했다. 캐리어 바퀴가 아스팔트를 구르는 소리가 마치 시체의 신음소리처럼 신경을 건드렸지만 태연한 척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제일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이다. 오는 길에 행인 몇 명과 마주쳤지만 다들 자기 휴대폰만 들여다보기 바빴다.

이제 시체만 처리하면 끝이다. 낮 동안에 차를 빌리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한 뒤에 자정에 나갔다 오면 된다. 깊이, 아주 깊이 파묻을 것이다.

마침 南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잘 해결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비로소 긴장이 풀려 네모난 시체 가방 옆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캐리어도 시체도 잘 처리했다.
그 과정에 약간의 소동이 있긴 했으나 이 이야기와는 상관없으니 생략하겠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南이 나를 찾아왔다. 이유야 들을 것도 없었다. 전화 사업에 자기도 끼워달라는 것이었다. 060 이하의 번호만 알려주면 당장이라도 돕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야. 사장은 내가 아니라고.”

“그래도 말씀을 전해주실 순 있지 않습니까? 형님, 저도 좀 끼워주십쇼. 딸내미 크는 게 정말이지 하루가 달라요. 벌써 내년이면 초등학교 입학하는데 자식새끼한테만큼은 모자란 것 없이 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래, 말은 해볼게. 그렇다고 너무 기대하진 말고.”

“꼭 좀 부탁드립니다.”

그의 말마따나 사실 宋에게도 손해는 아니었다. 손해는커녕 이익이었다. 직원이 늘면 그만큼 벌어오는 돈도 많아지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宋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던 것이다.

“너는 배신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제일 입이 무거우니까.”

나를 찾아왔을 때 그는 그렇게 말했었다.

南을 소개하면 그러나 내 스스로 그 믿음을 깨버린 꼴이 된다. 물론 南이 전화 사업을 알게 된 건 내가 경솔한 탓만은 아니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주말에 나는 宋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간 있었던 일들을 소상히 털어놓았다. 시신을 땅에 묻은 이야기까지 전부. 宋은 끝까지 차분하게 들어주었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기왕 그렇게 됐으니 그 녀석도 우리 일에 끼워주면 너한테도 좋을 것 같은 그런….”

“그게 꼭 그렇지도 않아.”

宋이 말했다.

“돈이야 더 벌고 싶지.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순 없잖아.”

“배를 가르다니?”

“당장의 이익을 꾀하다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얘기야. 지금 너랑 나랑 두 구역에서 진행하는 것도 실은 꽤 아슬아슬하거든. 알게 모르게 수사망이 좁혀지는 느낌이야. 그래서 나는 매일 목숨 걸고 도박하는 기분으로 모텔에 들어가고 있어. 그런 상황에 세 구역으로 늘리면 나는 그 부담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음…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나는 南을 만나 宋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잔뜩 기대하고 나왔던 南은 거의 울 듯한 표정이 되어 돌아갔다.

이 일은 이것으로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南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무서운 계획을 세워 나를 다시 찾아왔다. 2011년 11월이었다.


상가 수금 업무는 다시 내 차지가 됐다. 나는 수금을 마치고 월말까지 남는 기간에만 다른 지역의 모텔에 다녔다. 버는 돈은 대폭 줄었지만 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南을 만나지 못했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랐지만 소식을 전해 듣기로 다시 노점상들 협박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11월 중순에 南에게서 연락이 왔다.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예감이 썩 좋지 않았으나 어쨌든 우리는 약속을 잡았다.

“형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南은 안색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일은 아직 하고 계시죠?”

“그 얘기라면 이제 끝났잖아.”

내가 그의 수작을 사전에 차단하자 그는 못마땅한 듯 콧김을 씩 뿜었다.

“요새는 우리도 몸 사리느라 많이 안 번다. 그러니까 너도 이만 단념해.”

“형님은 참 속도 편하십니다. 이렇게 자꾸 이용만 당하는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서 쳐다보니 그가 내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형님. 버는 돈에서 반절밖에 못 받는다고 하셨죠.”

“그래.”

“형님께선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개뿔이나 보태주는 것도 없이 절반을 뜯어가는 게 우리가 장사치들한테 수금하는 거랑 다를 게 뭐냐고요.”

흠. 그런 식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나는 어떻게 대꾸해야 좋을지 망설였다. 그러자 南은 기세가 등등해져서 마구 쏘아댔다.

“그 새끼가 형님을 호구 취급하고 있는 거예요!”

“네가 뭐라 하든 상관없어. 하는 일에 비하면 지금도 엄청 버는 거니까.”

“왜 상관이 없습니까!”

南은 중국집 탁자를 쾅 내리쳤다. 어찌나 소리가 컸는지 카운터에 앉아 있던 화교 여자가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그를 보는 눈에 힘을 주었으나 그는 단단히 작심한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지금 이렇게 울분을 터뜨리는 건 형님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아서예요. 형님. 차라리 형님께서 사장하시죠. 제가 사장 자리에 앉혀드릴게요. 지금만큼만 일하셔도 지금보다 세 배 더 가져가시는 거예요.”

“계산이 어떻게 그렇게 되냐?”

“보세요. 형님 일하시는 건 전부 형님 몫이니까 두 배고, 제 몫의 절반을 형님 드리면 세 배 되지 않습니까.”

“네가 방금 절반이나 뜯어가는 건 불공정하다며.”

“저는 큰 욕심 없어요. 형님 밑에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나 하면서 살고 싶다고요. 돈이야 뭐 지금 형님 버시는 만큼만 벌어도 감지덕지죠. 그러니까 제 말은, 어차피 정원이 두 명이면 우리 둘이서 하자는 겁니다.”

“아니,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데? 죽이기라도 할 거야?”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승낙만 해주십쇼. 예?”

“됐어. 집어치워.”

그때까지 나는 宋을 배신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하여간 무슨 일만 벌여봐. 그땐 너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형님….”

“약속해.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고.”

“이렇게 강경하신데 저도 별 수 없죠. 네, 손 떼겠습니다.”

南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화교 여자가 TV를 보며 낄낄거렸다. 요리는 맛이 없었다.


宋의 소식을 들은 건 南을 만난 다음 달이었다. 뺑소니를 당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한다. 새벽에 진눈깨비가 내려 길이 미끄럽긴 했다. 어쩌면 연말이라 운전자가 술에 취해 있었을 수도 있다. 다른 많은 보행자들처럼 宋도 휴대폰을 들여다보느라 주변을 잘 살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는 南을 의심했다. 과연 우연일까? 南은 宋의 죽음에 책임이 없을까?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 만에 南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목소리가 떨릴까봐 걱정하며 전화를 받았다.

“소식 들었습니다, 형님.”

“그래.”

“앞으로 어떡하실 겁니까?”

“뭐를?”

“하시는 사업 말입니다. 자리가 하나 빈 것 같은데요.”

나는 숨을 고른 뒤 최대한 차분히 그에게 물었다.

“네가 그랬냐?”

그러자 희미하게 웃음소리가 들렸다. 히죽거리는 南의 얼굴이 그려졌다.

“압니다. 저도 제가 수상하다는 거 충분히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죽였다면 감히 형님께 이렇게 연락이나 했겠습니까? 의심은 거두시고 미래를 생각하시죠.”

“그래…. 알았다. 하자.”

그때 나는 조금 지쳤던 것 같다. 다 관두고 싶었다. 멀리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 대신 지금까지 하던 거 싹 엎어버리고 새로 세팅할 거야. 내가 연락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사장님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9시쯤 은행 사거리 용궁모텔로 와. 816호야.”

南은 내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었다.

“알겠습니다. 오늘부터 바로 시작하는 겁니까?”

“여기서 나 하는 것 보고 배워. 전화번호랑 그밖에 주의할 점 등등 다 알려줄게. 그런 뒤에 조촐하게 개업식이나 하자. 맥주는 있으니까 올 때 안줏거리나 좀 사와.”

“개업식을 모텔에서 해요?”

“돈 벌어야지.”

그가 호탕하게 웃었다.

南은 9시 정각에 딱 맞춰 도착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뺨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내게 장난스레 인사한 뒤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불현듯 그는 침대 옆에서 여행용 캐리어를 발견했다. 그걸 보면서도 그는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당장 그에게 닥친 일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의 뒤로 다가가 얼음송곳으로 그의 옆구리를 푹 찔렀을 때에도 南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던 것이다. 그는 옆구리를 감싸며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양손이 금세 뻘게졌다.

“왜… 왜…?”

그렇게 묻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신음이 새어나오는 것인지 분간이 안 됐다. 어쨌든 나는 할 말을 했다.

“내가 너 무사하지 못할 거랬잖아.”

“왜… 왜….”

나는 南의 몸에 구멍을 몇 군데 더 냈다. 송곳을 찌를 때마다 셔츠가 빨갛게 물들었다. 그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거렸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엔 뻐끔거리며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을 죽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캐리어에 넣는 건 두 번째였다. 그 덩치를 가방에 욱여넣기에 앞서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벌컥 들이켰다.

“걱정 마. 네 몫까지 벌어줄 테니까.”

그때는 진짜로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계획한 대로 되던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계획은 늘 어그러진다. 宋도 南도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계획은 엉망진창이 됐다. 홀로 전국을 떠돌던 나는 2012년 4월에, 즉 4개월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2011년 가을부터 사이버수사대가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宋이 말했던 대로 모텔에서 전화를 사용한 것은 범죄가 아니었다. 그걸로는 나를 처벌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잠을 잘 목적으로 투숙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판단이 적용되어 주거침입이 성립된 것이다. 나는 상습주거침입 혐의로 구속되었다.

결국 나는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죄목이 시시한 것치고는 형량이 과하다 싶지만, 4개월 동안 8천400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챙겼으니 나로선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내가 모텔에 다닌 기간이 실제로는 16개월이라는 사실을. 그 동안 모은 돈이 2억원 가까이 된다는 사실을. 宋과 일하던 시절에 벌어 숨겨둔 1억원가량을 반반 나누어 문구점과 미용실에 몰래 나눠주고 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복역을 마치고 나온 지금도 가끔씩 모텔에 묵으며 누군가의 060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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