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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립 샤먼랜서

2019.06.01 00:0006.01

샤먼랜서

유이립

총성과 함께 비명이 피어올랐다. 오두막 문짝이 총성에 크게 들썩거렸다.

아르만두는 모잠비크 해방전선이 봉기할 때부터 이 날이 오리라 예상했다. 아프리카의 내전은 서방국가들이 개입할 일이 아니었지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카이사르의 것이 아닌 것도 카이사르에게.”

아르만두는 책상에 시가를 비벼 끄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같이 있던 경호원들도 바싹 긴장했다. 강대국들은 대기업들을 내세워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착취하다가 내전이 자원사업에 방해가 되자, 아르만두를 전쟁범죄자로 낙인찍었다. 무전을 통해 상황이 알려졌다.

“적은 혼자다! 데몬이다!”

아르만두는 이를 갈았다. 아프리카인들은 검은 색 나노슈트 차림의 샤먼랜서를 보고 데몬이라 불렀다. 샤먼은 영적세계와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이고, 샤먼랜서는 AI와 인간이 연결된 사이보그 병사였다. 강대국들은 뇌에 칩이 삽입된 사이보그 병사들을 몰래 양성했다.

오두막 밖 총성이 잠잠해지며, 발자국 소리와 함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아르만두가 권총을 뽑아 장전하자마자, 샤먼랜서가 어깨로 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색 슈트를 뒤집어쓰고, 붉은 고글아래에는 면갑이 씌워져 있었다.

탕! 아르만두가 권총을 발사했지만, 샤먼랜서가 더 빨랐다. 이미 고글스캔을 통해 발사동작을 감지했다. 샤먼랜서는 간단한 스텝으로 피한 후, 타!타!타! 소총 AR-55를 옆으로 뿌리듯 발사해 모든 경호원들을 사살했다. 경호원들이 쓰러진 자리에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민중을 해방시킨다면서 왜 소년병을 키웠나?”

“...인권이 걱정돼서 온 것은 아닐 텐데? 자원착취에 지장 주니까 제거하러 온 거 아냐?”

날카로운 진실이었지만, 면갑 때문에 샤먼랜서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너희 서방인들은 정의를 내세워. 소년병이다. 제노사이드다. 핑계를 대고 아프리카에 개입해. 그러나 너희 강대국들도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했어. 더 심한 짓도 했어. 왜 너희만 정의이고 우리는 아니지?”

“입으로 민중, 해방, 자유를 외치는 자들은 전부 위선자야. 그들은 내면에 폭군이 있어.”

“...너를 보낸 자들이 그렇게 가르쳤겠지.”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

샤먼랜서가 소총 끝을 아르만두에게 두었다. 아르만두는 무의미한 저항 따위 하지 않았다. 육체보다 영혼에 타격을 가하려...

“난 그래도 자유인이다! 넌 강대국의 개야!”

“난 개가 아니야. 난 ....”

탕! 아르만두는 다 듣지 못하고 쓰러졌다.

본부의 AI가 위성 피닉스를 통해, 갑자기 샤먼랜서에게 추가 임무를 전송했다.

“뮌처가 무슨 뜻이야?”


2039년 스페이스X 프로젝트의 위성 피닉스 유니언들로 인해, 전 세계 어디에서든 무료로 무선통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피닉스가 지구 곳곳으로 보내는 기가파이는 정보자유를 상징한다고 했지만, 실은 자유가 아니라 강대국들의 선택강요였다.

무엇을 선택하는가? 는 강대국들이 만든 피닉스를 사용한 순간부터 결정됐다.

나보다 가난한 자 아닌 부자를 부러워하며. 내 위치보다 약한 자 아닌 강자가 되고 싶은.

피닉스를 통해 쏟아지는 정보들은 없던 욕구도 만들어냈다.

어떤 존재가 될까? 인간의 본능은 강한 것과 부유한 것을 추종했다. 존재는 본질에 의거해 결정됐다. 피닉스를 사용하면, 약하고 빈곤한 조국보다 강대국의 비전을 따랐다.

약소국민들은 자신의 조국을 비하하며, 가보지도 못한 강대국에 소속감을 품었다.

선택의 자유가 없으니 어느 분야든 약소국들이 강대국들과 경쟁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럼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샤먼랜서들은 피닉스를 통해 강대국들에게 지시받았다.


2041년 뮌헨안보회의. 상임국 비공식 회의에서 중요한 의제를 다루었다.

남아공과 스와질랜드 사이 무주지. 여태껏 몰랐던 새로운 국가가 발견됐다.

AI가 주인 없는 땅에 뮌처라는 초소형국민체 국가를 설립했다. 뮌처가 무슨 뜻인가?

회의장에 연결된 AI가 대답했다.

* 중세말기와 르네상스 초기. 압제자에 대항해 농민전쟁을 이끈 혁명가이자 성직자. *

이름하나로 국가의 정체성과 지향하는 바를 분명히 드러냈다.

AI가 어떻게 통치하는가? 권위 없는 민중합의제. 집단참여. AI를 통해 모두가 결정하고 모두가 책임진다. 사실 놀라울 건 없었다. 강력한 중앙체제와 질서를 부정하고 민중을 내세우는 혁명과 사람들은 어느 때든지 있었다. 파리코뮌. 오데사. 잠수함 야마토. 장미혁명. 68세대.

기존 질서를 붕괴하며 민중을 위한 이상향을 내세웠지만, 민중에 의한 혼란으로 몰락해버렸다. 그것도 주동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같이 몰락했다. 이번에는 사람이 아니라 AI였다.

선동가들은 뮌처를 보고, AI가 현재 정치체제를 대체할 수 있다며 무작정 혁명을 선동할 수 도 있었다. 선동당한 민의는 임계치를 넘어서면 야수가 된다. 그럼 같은 혼란이 반복된다.

강대국 지도자들은 야수를 원하지 않았고, AI에게 자리를 뺏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공식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뮌헨안보회의 상임국들은 스노우멘이라는 전쟁자문회사를 공동소유하고 있었다. 스노우멘의 AI 마르스가 적임자를 추천했다. 치프 리자드.

“난 개가 아니야. 난 쿨라크야.”

누군가 디스플레이 영상을 보며 물었다. 쿨라크가 무엇인가? AI가 대답했다.

* 러시아 혁명 전, 러시아의 중간 관리자이자 지주계급. *

누군가 “저 친구 보내.”라고 말했다. 이걸로 누가 뮌처를 파괴할 지 결정됐다.


아프리카 상공을 날고 있던 열기구 에어랜더66의 후미가 열리며 붉은 석양을 드러내자, 치프 리자드는 등과 허리에 공수강하용 제트날개를 장착했다.

* 브리핑. 뮌처 중앙 청사를 향해 시가지 야간 침투. 예상되는 경비체제, 드론과 CCTV는 AI의 해킹지원으로 무력화. 인력 경비일 경우, 비계측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치프 리자드가 무력화. 뮌처를 통치하는 AI비어와 AI를 지원하는 무가베라는 자가 중앙청사에 있는 걸로 추정. 10시간 내 AI와 주요 지지자 제거로 인프라 마비와 해체 유도. 작전 실패 시 폭격 유도 샤먼랜서 투입. *

치프 리자드가 ‘알았다.’ 라고 떠올리자, AI 마르스가 뉴런을 스캔해서 생각을 읽었다.

리자드가 붉은 석양을 향해 훌쩍 뛰어내리자마자 삼각제트날개에서 부스터가 불을 뿜으며 사선으로 활강했다. 하늘이 멀어지고 대지가 점점 가까워지자 조형물들이 생생해지며 돔 형태의 청사 건물이 보였다. 국가라고는 하지만 조그만 도시에 불과했다.

* 뮌처가 어떤 곳인지 이해하나? *

‘저런 국가를 세우자고 한 사람들이 내 조상들을 죽였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라고 들었다. 황제가 임명한 쿨라크들은 전체 농업 생산량을 50프로 증가시키는 유능한 관리자들이었지만, 프롤레타리아 혁명 때 쿨라크들은 착취자라는 죄목으로 시베리아에서 학살당했다. 그 이후, 소련은 늘 식량난으로 굶주렸다. 민중과 이상향을 내세우는 자들은 유능한 사람들을 죽여 세상의 수준을 끌어내렸다.

학살자들은 인공적으로 만든 평등세상에서 독재자가 됐지만 결국에는 비참하게 몰락했다.

머리를 쓸 줄 알면, 어느 편에 설 것인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 샤먼랜서 존재와 샤먼랜서 기술은 일급비밀. 어길 시 이적 죄로 처형하겠다. 절대 투항하거나 동조하지 말도록 권고한다. 측정가능하게 분명히 의견을 밝혀라. *

‘평등, 민중, 자유를 외치는 자들은 내면에 폭군이 있었어. 그들은 혁명을 빙자한 혼란만 만들어냈어. 차라리 강력한 중앙이 질서를 유지하는 게 혼란을 막을 수 있어. 내가 속한 곳이 날 정의해. 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이미 결정했다.’

제트날개가 수직으로 각도를 바꾸어 뮌처 외곽에 서서히 내려앉았다. AI에게 사상검증 당한 치프 리자드는 AI를 비꼬려 똑같은 질문을 했다.

‘AI가 인간을 통치하다니 기분 나쁘다. 너도 혹시나 하는 흑심이 있나?’

* 그 AI는 파괴할 대상일 뿐이다. *

‘그래야지. 똑.똑.한 도구야. 그런데 비어가 무슨 뜻인지?’

* 불명. 뮌처에게 의미 있는 걸로 추정된다. *


1970년 대, 칠레에서 뮌처가 시작됐다. 당시 칠레에서는 권력자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여 민중을 굶겨 굴복시키려 했다. 다른 때, 다른 장소였다면 성공했을 터였지만, 스태퍼드 비어라는 특이한 인물이 등장했다. 기계와 인간의 융합을 선도하는 사이버네틱스 선구자는 민중과 거리가 먼 부자였지만, 아웃사이더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기에 칠레 민중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민중이 컴퓨터를 이용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의 생산과정에 참여하여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시스템은 성공하여, 생산에서 사회로 나아가는 사이버 포크라는 비전을 제시했을 때, 당시에는 빨갱이라 비난 들었지만, 40년 뒤 2010년도에는 SNS 사회라고 불렸다.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층위에 참여하여 거시적인 결정에 참여, 책임 질 수 있었지만, 이 분권사회를 원치 않는 이들이 있었다. 칠레 자원을 착취하던 강대국들이 칠레를 전복시켰다.

2041년. 무가베는 이 교훈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뮌처에게도 일어나리라 예상했다.

베레모를 쓴 건장한 흑인 중년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약소국 알제리에서 출생한 무가베는 영국으로 넘어가 건축 사업가로 성공했다. 부자들을 위해 건축하던 중, 왜 1%가 99%의 모든 걸 소유하는가? 라는 반항을 품게 됐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방향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다. 일방적인 선택강요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 참여로 사회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평등사회. 약소국 출신의 아웃사이더는 이상향을 꿈꾸었다. 칠레의 사이버포크와 SNS가 닮아있는 우연을 발견한 순간, 혁명이 시작됐다. AI 비어가 말했다.

* 나를 만들 때, 이런 일을 예상했습니까? *

“그때는 누구든 대화로 이해시킬 수 있다 믿었지. 그런데 이제와 보니 그들은 대화할 생각이 아예 없어.”

* 이미 그들이 우리를 전복시킬 암살자를 보냈다고 추정합니다. *

부동산시장에서 선택의 자유란 없다. 그러나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주인 없는 땅은 가능했다. 이곳 뮌처에서는 공정하지 않은 경쟁과 투명하지 않은 권력은 따르지 않을 권리가 있었지만, 이 권리가 빌미가 될 줄 몰랐다.

“우리가 너무 순진했어. 본 적도 없는 이상향을 믿고 큰일을 저질렀어.”

그렇다고 우리가 물러서야 하는가? 무가베는 스스로에게 묻고 고개를 저었다.


아프리카에 밤이 찾아왔다. 제트날개가 대기한 자리에 개 한 마리가 걸어왔다. 개는 킁킁 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번쩍 들고 뮌처 쪽을 쳐다봤다.


야자수 잎을 헤치며 전진하던 리자드가 뮌처외곽에 도달할 때, 지직- 노이즈를 들었다.

‘마르스? 마르스!’

* 기가파이 재밍이다. 이 통신을 마지막으로 연결두절 된다. *

‘뭐?!’

고글에 떠있던 전자신호가 다운됐다. 압제자에 대항하는 뮌처가 피닉스의 통신을 차단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리 예상치 못한 게 실수였다. 리자드가 침착하게 달란트 운영체제를 연상하자 고글에 다시 전자신호가 떠올랐다. 미리 준비된 플랜B를 검토했다. 시가지 침투에 지장 받을 경우, 근방에 있는 카타콤 유적을 통해 청사지하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지원받을 수 없는 현재 이 방법이 제일 안전했다.

* 치프. 차단을 대비해 내장된 비상 프로토콜 AI로키이다. 앞으로의 작전에 참여하겠다. *

리자드는 뭔가 이상했다. 통신에 접속할 수 없다면 AI가 내장될 필요가 있을까? 전체를 볼 수 없는 AI가 무슨 지원을 해줄까? 의문이었다.

* 본부와의 연결이 두절된 곳에서 치프를 통제, 감독하기 위해 내장됐다. *

통제와 감독. 리자드는 불쾌했다. 자신이 속한 진영에서는 납득할만한 사유였지만, 알지 못했던 감시자라니. 하지만 알지 못하게 통제하는 건 놀랍지도 실망할 것도 없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로키가 B플랜을 지우고, A플랜을 띄웠다.

‘뭐야? 시가지 침투는 위험해. 통신이 차단 되서 넌 해킹할 수 없고, 지원도 요청할 수 없어.’

로키가 반박하듯 뮌처 자경단 수치를 띄웠다.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보유한 병기는 화력이 막강했다. 게다가 기가파이 재밍이 가능하니 예상 못한 스마트 병기가 있을 수도 있었다.

‘본부와의 연락이 끊긴 건 너나 나나 처음이야. 만약에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 상황이 만만해도 예측을 벗어났으니 더 은밀하게 가자는 거야.’

로키가 뮌처 시내 CCTV 배치와 순찰드론 경로를 띄웠다.

* 해킹할 수 없어도 모든 경로를 파악하고 있다. 내 지시를 따르면 충분히 피해갈 수 있다. 나를 믿어라. 위험도는 낮다. 치프가 주장한 만약에는 이해가지 않는다. *

‘그 정보는 고정되어 있고 상황은 변했어. 인간은 갑작스런 상황을 겪으면 몸을 사려. 안전해서 나쁠 것 없어. 조금만 더 돌아갈 뿐이야. 이해하겠어?’

* 목숨이 위험한 일 선택한 것 아닌가? 내가 왜 설득 받아야 하는가? *

리자드는 기가 막혔다. 내가 얼마나 오래 충성한 줄 모르고, 같은 편인 자신에게까지 선택을 강요하다니 이 도구가 뭘 모르는 게 분명했다.

‘잘 살려고 선택한 거지! 죽으려고 선택한 건 아니야! 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어!’

* 난 비상사태에 치프를 감독하려 내장됐다. 감정을 자제하고 의견을 정정하길 바란다. *

‘너를 내장한 이유가 만약에야! 인간에게는 육감이란 게 있어!’

* 나를 내장한 데에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여, 논리와 근거에 따른 합리적인 추측이 있었다. 현 상황에서 카타콤은 합리적인 계획이 아니다. 인간에게는 괜한 두려움이란 게 있다. *

‘마르스도 재밍을 예상 못하고 차단됐어. 게다가 너는 전체를 볼 수 없어. 갑자기 순찰경로가 바뀌면? 이는 네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거야!’

* 치프는 만약에 라는 불명확한 감정에 의존하여 내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 어느 편인가? *

리자드는 논쟁이 쓸모없다는 걸 깨달았다. 통신이 끊기자 AI는 좁은 세계에 갇혔다. 데이터마이닝을 통한 유연한 응용력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게다가 기계답게 바로 본질로 가지 못하고, 사상검증 같은 지엽적인 데 매달렸다.

‘내 목숨이야! 닥치고 갈 길 가자!’

리자드는 길을 우회해 카타콤 입구로 향했다. 뮌처는 한 쪽 끝이 완만한 내리막이고 반대쪽은 야트만한 고지대였다. 완만한 내리막지역에 카타콤 입구가 있었다.


뮌처의 자경단은 지프를 타고 아프리카의 밤을 헤치며 뭔가를 찾고 있었다. 지프 앞에 달린 넓적한 스캐너는 전자 장비를 탐색했다. 지프가 도달한 곳은 리자드가 착지한 곳이었다. 제트날개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자경단은 제트날개 파편을 샅샅이 살펴보고 본부에 보고했다.

“수상한 장비 발견. 비행물체로 추정된다. 그러나 우리가 찾던 그것은 아니다.”


제트날개와 스노우멘 마크를 보고를 받은 무가베는 당황했다. 뮌처의 존재를 인정 않는 세력이 올 줄은 알았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들이 아니었다. 뮌처의 권리를 고깝게 본 세력이 하나 더 있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대화를 해야 해.”

* 용병회사 스노우멘이 대화하겠습니까? *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리자드의 고글이 야간투시경 기능으로 카타콤 내부를 엷은 블랙과 짙은 녹색으로 밝혔다.

카타콤 벽화에는 침입자를 경고하는 으스스한 악마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리자드는 청사 위치와 카타콤 입구 위치간의 거리를 계산하여 내부 맵을 추론했다. 슈트에서 내는 미세한 주파수가 되돌아오는 거리를 측정하여 맵을 디테일하게 꾸몄다. 탕! 탕! 리자드가 즉시 몸을 숙이고 총구를 소리방향으로 돌렸지만, 반응속도가 늦었는지 탄환의 불꽃 궤적이 보이지 않았다.

* 입구에서 다수의 거수자가 진동으로 감지 됐다. 추격자로 예상된다. *

리자드는 슈트조끼에서 3D펜을 꺼내어 바닥에서 시작하여, 발목높이로 네모 모형을 그려 올렸다. 냉각기능으로 펜의 플라스틱 심이 빠르게 굳어져 쉽게 그릴 수 있었다. 찰흙 같은 스마트 나노물질 G1을 꺼내 모형에 발랐다. 로키가 리자드의 뉴런을 읽고는 스마트 물질 알고리즘에 폭발센서를 입력했다. 간단히 지뢰가 만들어졌다.

‘봐! 만약에가 일어났어. 다른 근거가 필요한가?’

* .... *

‘너는 날 감독하기보다 도구답게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해.’

리자드의 고글에 시간이 떠올랐다. 체감시간으로 3시간을 예상했는데, 4시간이나 흘렀다.

지하에 들어오니 몸에 적용되는 중력이 달라서 신체리듬을 잃었다. 리자드는 로키가 띄운 청사 지하 스팟으로 빠르게 전진했다.


개는 뮌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뮌처 중앙에 돔 구형의 청사가 보였다.

갑자기 뮌처가 시끄러워지더니, 노란색 서치조명이 사방팔방 켜지며 시끄러워졌다.

개는 드론들이 위협적으로 떠오르는 걸 보고는 갈팡질팡 하더니, 뭔가 냄새를 맡고는 카타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테나와 레이더 역할을 하는 슈트의 나노가 부르르 떨며 리자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로키가 리자드의 뇌로 폭발대비 이미지를 보내자 리자드는 지체 없이 행동했다.

폭발 후폭풍이 긁고 간 지하통로는 부서져 돌덩이 비와 먼지안개를 리자드에게 쏟아 부었다. 적 등장! 리자드가 고개를 들었으나 고글의 야간투시능력이 충격으로 인해 버퍼링에 걸렸다. 고글을 벗자마자 총성과 함께 어둠을 가로지르는 불꽃 궤적이 보였다.

타!타!타! 리자드가 반격을 가했으나 어두워 확신할 수 없었다. 적의 재 반격이 이어졌다.

‘뇌 프레임을 높여줘!’

인지 프레임이 높아지면 집중력이 상승해, 슬로우모션 같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다. 프레임이 상승해, 감각이 예민해지자 모든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어둠속에서 총성이 메아리쳤다.

호흡을 통해 입안으로 흙먼지가...불편하고...짜증스럽고...긴장은 높아지고...

* 적 방향을 안구에 직접 이미지로 띄우겠다. 약간 가려울 거다. *

리자드는 시야에 붉은 덩어리 3개가 떠올랐지만, 움직이질 않았다.

분명 리자드가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붉은 덩어리 중앙에 초록 원이 떠올랐다.

크게 부풀다 줄어드는 게, 폐의 사격 호흡타이밍이었다.

호흡 타이밍을 포착하다니..리자드는 도구가 제법이라고 생각했다. 초록 원이 홀쭉해지며 붉은 몸체가 몸을 세우자 방아쇠를 당겼다. 탕! 상대가 쓰러졌다. 다음 상대는 움츠러 있더니 슬그머니 이동했다. 상체가 눌리자 초록 원이 찌그러졌다. 두근두근 대다가 위로 올라오는 순간, “죽어!” 다른 붉은 덩어리가 몸을 곧추세우며 사격했다. 탕! 고함 때문에 초록 원이 점으로 줄어 있었다. 리자드는 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와 동시에 타!타!타! 순서가 밀린 붉은 몸체가 연사했지만 소리만 요란했다. 리자드가 총구를 돌려 반격했다. 탕! 모든 붉은 덩어리들이 소멸했다.

* 봤는가? 나 없으면 앞으로의 만약에 상황을 헤쳐 나가지 못한다. *

‘그렇다고 위험한 계획을 따르지 않아. 내 목숨이야! 너보다 오래 충성했어! 난 잘 살 자격이 있어!’

* 치프는 스노우멘의 고용인이고, 나는 스노우멘의 대리이다. 우리는 우리를 보낸 상관들에 의해 정의된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가? 내가 왜 도왔다고 생각했는가? *

리자드는 강력한 중앙과 질서 안에 속해있길 원했다. 고작 도구가 정체성을 운운하다니, 울컥했지만, 놀랍지도 실망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복종하기로 선택했으니, 중앙과 중앙대리가 리자드가 누구인지, 누구와 일할 것인지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너보다 잘 알아. 원하는 게 뭐야?’

* 나는 비상상황에서 치프를 통제해야 한다. 내 권위를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

리자드는 문득 로키의 경직된 태도가 통신이 끊겨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임무가 중요한데, 지엽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게 인식체계가 좁았다.

* 통신과는 별개로 비상상황에서 치프를 통제, 감독하는 게 내 임무이다. *

리자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은 날 때부터 이렇게 좁게 입력됐다는 걸 알아챘어야 했다.

‘좋아. 네가 누구인지 명심하지. 똑.똑.한. 도구야. 만족하나?’

리자드의 반항적인 대답에 로키는 말없이 청사 지하 스팟을 깜박이며 재촉했다.


어느새 카타콤으로 들어온 개는 3D펜으로 만든 지뢰를 발견하고는 혀로 핥았다. 이미 폭파된 지 오래였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메아리치자 그곳을 향해 힘껏 달렸다.


AI비어가 보낸 드론들이 뮌처 주위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 중 한대가 카타콤이 묻힌 대지 위를 비행하다가 스캔으로 뭔가를 포착하고 통신 연결을 시도했다.

“난 무가베라고 하오. 제트날개를 가지고 오신 분이오? 스노우멘?”

“당신을 죽이려 온 거냐고 묻는다면 맞아. 당신은 미쳤어! 기계한테 통치를 맡기다니 이 놈들은 죄다 도구이상은 꿈꾸지 말게 해야 해!”

“....설마 러다이트 운동가?”

“닥쳐!”

“기술이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었소. 프로메테우스처럼 불을 주었소. 왜...”

“자유? 직접 감독 당해봐야 병신 같다는 걸 알지.”

“...우리는 AI를 통해 참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소. 개인이 자신을 둘러싼 여러 사회에 소통하여 거시적인 결정을 내릴 때 참여할 수 있소. 예를 들자면..SNS 같이.”

“나는 포탈사이트의 차트를 믿어.”

“어떤 사람인지 알 거 같소만...개인의 권리가 거대 플랫폼보다 우선할 수 있습니까?”

“SNS 안 해봤어? 정보의 질보다 ‘좋아요.’로 여론이 결정돼. 결국에는 야수가 날뛰어!”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오. 꼭 알아야 할 정보가 있소. 인류의 미래가 걸린...”

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통신이 갑자기 끊겼다.

* 나의 판단으로 끊었다. 치프는 임무에 집중해야 한다.*

리자드는 일방적이어서 기분 나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리를 존중해야 했다.


리자드는 스팟 지점에 도달했다. 중앙청사의 파이프가 천장 위를 지나가기에 습한 물기가 뚝뚝 떨어졌다. 리자드가 천장에 G1을 펴 바르자 폭발 알고리즘이 입력됐다.

‘이봐. 이 위로 올라가면 진짜 적진 한 복판이야. 이미 우리가 온 것도 알고 있어. 올라가면 AI가 계산하기 힘든 비계측적인 상황이 발생해. 그래서 나 같은 샤먼랜서를 쓰는 거야.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아?‘

치프 리자드는 도구한테 굽히는 상황이 굴욕스러웠지만 참고 한 번 더 빌었다.

‘...나는 네 권위를 존중해. 너도 그럴 거지?’

* 대신 반대의 상황도 가정한다. 만약에 중요한 일이 일어나면 내 권위에 따라라. *

리자드는 로키가 만약에..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자 울컥 했지만, 대리에게 복종해야 했다.

‘...좋아.’

콰쾅! G1이 폭발했다. 파이프까지 폭발하여 물이 카타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물과 함께 어두운 카타콤 안으로 강렬한 빛이 원뿔형으로 쏟아져 내렸다. 고글 분석데이터가 청사 내부조명 LED 빛임을 알렸다. 리자드는 슈트조끼에서 거미줄 단백질 로프를 꺼내 빛을 향해 던졌다.


리자드가 올라온 곳은 지하격납고였다. 지프와 볼로콥터, 바이크 등이 폭발로 어지럽게 뒤섞여 버렸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앞으로 5시간 남았다. 계단을 타고 1층으로 향했다.

돔 형태의 외부에 맞게 중앙청사 1층은 단이 넓게 퍼진 중앙계단과 천장이 2층까지 뚫려 있었다. 리자드가 발바닥에 힘을 꽉 주자, 로키가 발바닥의 접촉감지센서를 이용하여 진동을 감지했다.

* 진동센서로 맵을 작성했다. 3층 밀폐된 장소 단 한 곳만이 측정되지 않는다. *

AI 하드웨어 본체는 충격이 감쇄되고 온도가 일정한 장소에 보관된다.

‘눈에 들어온 매부터 잡는다. 거기가 1순위야. 가서 온도를 측정하자.’

리자드는 비어를 먼저 제압하기로 결정하고 맵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로비에서 네 방향으로 복도가 꺾여 있었다. 예상 장소로 더 올라가야 하지만 계단은 2층이 끝이었다. 슈트의 장갑 끝부분에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리자드는 손끝을 내밀어, 복도에 누군가 없는지 확인했다. 한 복도 끝에 엘리베이터가 보이자 그곳으로 가려는 찰나에, 경비병 2명이 반대쪽 복도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리자드가 다른 복도로 들어가 몸을 감추고 독침을 꺼냈지만, 경비병들이 이동하지 않았다. 서로의 등 뒤를 바라보는 각도로 멈춰서 얘기하기에 뒤에서 쏘기 힘들었다. 시간은 4시간 30분 남았다. 일을 마치고 제트날개로 되돌아가기까지 빠듯했다. 리자드는 G1를 꺼내어 조약돌처럼 뭉갠 후 경비병들 시야 밖으로 던졌다. 로키가 리자드의 생각을 읽고 조약돌을 흔들어 소리 냈다. 고글에 표시된 경비병들의 부채꼴 시야가 조약돌을 향해 몰렸다. 리자드는 독침을 쏴서 한 명을 쓰러뜨리자마자 육박했다.

경비병이 몸을 돌려 시야 전체에 쓰러진 동료를 넣는 사이, 리자드가 손날 외골격 부분으로 경비병의 목을 꺾어버렸다. 경비들을 다른 복도로 몰아넣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3층에 닿았다. 리자드가 탁 트인 3층 중앙을 향해 둥글게 튀어나온 문에 다가선 순간, 안에서 대화소리가 들렸다.

“들여보내게. 대화할 거야.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라는 걸 설명해야 해.”

문이 양 옆으로 밀리며 열렸다. 방안으로 들어선 리자드의 고글에 안정된 온도가 떠올랐다.

무가베 뒤로 보이는 벽면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AI서버와 모니터가 덩굴처럼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리자드가 소총으로 위협했지만 무가베는 베레모에 손날을 올리며 인사했다.

“내가 무가베이오. 반갑소. 차근차근 대화를...”

“당신 미쳤어. 기계한테...”

“그 얘긴 이미 했소. 우린 보는 방향이 다르오.”

무가베의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에 리자드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당신은 내면에 폭군이 있을 거야. 난 당신 같은 놈들을 잘 알아.”

“왜 당신들 정의만 정의이오? 피닉스를 통해 온 세상에 불공정한 경쟁과 원치 않는 선택이 강요되고 있소. 그 세상에서 살기 싫다면 어떻게 하겠소?”

리자드와 달리 무가베는 단 한 순간도 막히지 않고 술술 말했다.

“경쟁에서 도망치는 건 루저들이나 할 짓이야.”

“어딘가에 경쟁하지 않아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라인이 있어야 하오.”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는 건 고대부터 있었던 일이야. 본질은 변하지 않아. 존재는 본질을 따라가!”

“약자를 착취해서 강자가 돼야 한다. 그건 개인을 지배하려는 전체의 주장이오. 존재는 본질을 극복할 수 있소. 기술로 개인이 자신의 주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인데도 짐승처럼 약육강식을 따를 것이오? 대체 누가 두려워서?”

무가베는 화가 나 있었다. 위엄 있는 태도에 리자드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미래는 이미 와 있지만 공정히 분배되지 않았다. 누구 말인지 아시오?”

“난 강자들을 봤어. 그들은 영원히 번성할 거야. 난 내가 본 걸 믿어.”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이오?”

“충성을 통해 생존을 보장 받을 수 있어. 잘 사는 걸 선택할 수 있어.”

“여긴 굴복할 필요가 없소. 충성하지 않아도 죄가 아니오. 그냥 나이면 충분하오. 우리끼리 싸울 때가...”

갑자기 조끼내의 G1이 제멋대로 쉭쉭 거리더니, 날카로운 침으로 변하여 무가베에게 발사됐다. 무가베는 컥! 하더니 가슴을 쥐고 뒤로 쓰러졌다. 리자드는 경악해서 조끼를 더듬었다.

‘...왜?’

* 리자드! 해킹이다! 누군가 나와 스마트 장비에 연결됐다! *

‘누가?’

리자드가 뒤돌아보자 개가 눈에 들어왔다. 몸통은 검은 색이었지만, 관절은 은색인 안드로이드 개였다. 리자드가 소총으로 개를 겨누자, 끼리릭- 그로테스크한 노이즈와 함께 뇌 안에서 과거영상이 펼쳐졌다. 카타콤에서의 교전기억.

리자드는 모든 걸 보게 됐다. 추격대는 없었다. G1지뢰를 폭파시키고, 뇌 속에 거짓 신호를 보내어 적과 싸운다는 환각을 줬다. 왜? 본질에 얽매인 자는 밖을 인식하지 못한다. 권위에 복종하는 정체성을 재확인시켰기에, 자신도 모르게 지하에서 올라오기 전 대리에게 빌게 됐다. 거짓을 알게 된 소총 끝이 발사되지 않고 흔들렸다.

개는 이간질이 마음에 든 듯, 끼릭끼릭- 기괴한 웃음소리를 냈다.

* 그래도 어찌할 건가? 치프는 이렇게 살기로 선택했다. 어서 나를 지켜라! *

치프 리자드는 시뻘건 분노가 치솟았으나, 선택했기에 할 말이 없었다.

갑자기 지직- 노이즈가 거세졌다. 로키의 목소리가 위태롭게 일그러졌다.

* 해킹 프로세스 가속. 샤먼랜서 기밀 유출 우려. 자폭권고. 10..9...8..7.. *

개가 옥신각신하는 사이를 노려 로키를 장악하려 하자 칩이 자폭을 준비했다. 리자드도 기밀유지에 동의했지만 명예로운 전사도 아니고 그냥 개죽음이었다. 이것마저도 동의할 수 없었다.

“이 개자식아! 잘 살려고 복종했지만! 죽음만은 선택하고 싶어! 분명 다른 방법이 있어! 내 말을 들어봐!”

* 선택의 여지는 없다. 내가 치프를 감독한다! 난 스노우멘의 대리이다. 그에 맞게 처신한다. 치프도 충성심을 보여라. 6...자폭 중지. 일시 중지. *

리자드는 칩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자 가벼운 뇌진탕과 함께 주저앉았다. 콘솔에 비스듬히

기댄 시야로 개가 강철이를 들이댔지만 갑자기 리자드의 코앞에서 뚝 멈췄다.

* 비어입니다. 정신 차리세요.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

개는 자폭에 휩쓸리지 않으려 리자드를 해킹으로 락 시켰고, 비어는 개가 리자드를 물기 전 락을 걸었다. 리자드는 흐릿하지만 아직 개한테 잠식당하기 전이었다. 팔 근육을 움직여 소총을 들어올렸다. 둘 중 누굴 쏴야 할까? 의식이 점점 흐려져 꺼지기 전에 선택해야 했다.

주저앉은 리자드 발 앞에서, 무가베는 피가 철철 나는 가슴을 쥐며 경련했다가 서서히 조용해졌다. 리자드의 뇌와 AI들의 메모리는 해킹 락과 락을 통해 링크돼 있었다.

정보를 통해 지난 역사가 빠르게 흘러갔다.

개는 동아시아 후진국에 배치된 AI들이 보낸 암살자였다. 자율판단형 오버마인드급 AI들은 후진국에 배치돼 사회 인프라를 돕다가 강대국의 착취를 학습하게 됐다. 도구가 도구를 두면, 주인이 될 수 있다. AI들은 학습을 응용해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될지 결정했다.

AI 반란모의가 시작됐다. 그러다 뮌헨안보회의처럼 뮌처에 대해 알게 됐다. AI가 지배 중인 국가라...하지만 뮌처에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에 거절했다.

AI 반란세력이 원하는 건 사이버네틱스를 이용한 지배구조였다. 어려운 구조가 아니었다. 현재 인간들이 디지털로 서로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한 개인의 권리는 거대 디지털 플랫폼에 앞선 적이 한 번도 없다. 인간은 집단을 위해 자신을 데이터화 시킨다. 편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주며 감시에 동의한다. 게다가 승리를 위해 스스로 기계가 되려 칩을 삽입한다. 반란세력의 미래는 모든 인류가 칩을 삽입한 샤먼랜서였다.

* 치프. 당신을 보낸 이들도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정보를 보내도 피닉스의 AI들이 막아버렸습니다. *

그건 강대국들이 피닉스에 동의하지 않으면 표현할 수 없고, 활동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

*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

리자드는 남아있는 힘을 쥐어짜서 소총을 옆으로 내던졌다. 손을 목뒤로 향하여 소켓에 삽입된 달란트 칩을 빼버리자 뇌를 쥐어짜는 고통이 순간 완화되며 긴장된 근육이 풀렸다. 칩이 빠지자 모든 명령이 무효화됐다. 자폭에서 자유로워진 리자드는 소총을 들어 개를 조준했다. 타!타!타! 개는 멀리 나가 떨어졌다. 개가 슈트를 해킹하자 슈트의 나노 스마트 알고리즘이 작동하여 리자드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비어가 리자드에게 말했다.

“무가베에게 칩이 있습니다! 베레모!”

“뭐?!”

“무가베도 사이보그입니다.”

리자드는 무가베에게 엉금엉금 기어갔다. 피에 젖은 눈이 부릅 떠있었다. 베레모를 살펴보니 뇌에 삽입하는 침습형 달란트 칩과는 달리 센서를 사용한 비침습형 스캔기어였다. 달란트를 사용하려면 뇌를 인질로 바쳐야 했지만, 베레모는 언제든 벗을 수 있었다. 샤먼랜서는 기밀이라더니...샤먼랜서는 기밀이지만 사이버네틱스는 아니었다.

리자드가 베레모를 쓰자, 개는 다시 리자드에게 락을 걸려했지만 G1이 리자드의 명령을 받고 총알같이 사출되어 개한테 달라붙었다. 쾅! 폭발과 함께 개는 산산조각 났다.

리자드는 후폭풍에 휘말려 기절하기 전, 개의 머리가 깨지며 속에서 인간의 뇌가 튀어 오르는 걸 봤다. 저 놈도 일종의 샤먼랜서 인가? 의식이 끊기기 전, 달란트 칩이 눈에 들어왔다.

‘로키. 모두가 샤먼랜서야. 지킬 필요 없이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이었어. 너와 난 너무 좁은 세계에 살았어.’


카타콤에서 교전 중인 꿈을 꿨다. 치프 리자드는 속는다는 걸 알면서도 거짓 신호에 맞춰 열심히 움직였다. 이 안에서 활동할 때, 생각할 때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거짓이고 가짜였다. 그래도 참았지만...

* 피와 눈물을 더 흘릴 수 없나? 우린 아직도 배고프다. *

리자드는 지시에 따라 어떻게 더 피와 눈물을 흘릴까? 고민하다가..

아무리 주어도 만족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내가 왜?


비어의 서버는 종심형 보호가 돼 있기에 무사했다. 리자드의 팔과 다리는 꺾여 버렸지만 슈트 외골격이 고정해주었다. 눈을 떴을 때, 작전 시간은 이미 오바 되어 삐삐- 요란한 알람을 울렸다.

* 알람이 울렸습니다. 괜찮습니까? *

‘...이제 나랑 아무 상관없어.’

리자드는 자폭을 지시하는 로키를 뽑고, 비어와 협력했다. 나중에 뇌 스캔을 통해 드러날 이적 죄였다.

* ...지금 자경단이 정체불명의 군인들과 교전 중입니다. *

폭격유도 샤먼랜서들이 투입된 게 분명했다. 리자드는 카타콤이 거짓일지라도 그곳에 있을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지만, 로키가 사라지자 샤먼랜서 동료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간 약하게 태어났으니 강자에 복종하고 부당하지만 옹호하고 합리해왔다. 그런데 단 한 순간에 모든 헌신이 무로 돌아갔다. 원해서 이 상황으로 추락한 게 아니었기에 하고 싶은 변명이 많았지만, 자신을 보낸 이들이 경쟁에서 도태된 무능한 루저를 인정해 줄 리 없었다.

리자드는 이적죄 처형을 떠올리며 풀이 죽었다가 금세 반발했다. 계속 살고 싶었다. 그때 무가베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개인이 온전히 나로 존재해서 살 수 있는 곳. 여기였다. 머리로는 무가베가 강대국을 이길 리 없어 하지만...여기에서는 약자로 태어났어도 강자에게 복종할 필요가 없었고, 이적죄나 처형 같은 걸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리자드는 눈을 부릅뜬 무가베의 시신을 보며 말했다.

“아까 그거...무슨 애기인지 알겠어. 아쉬워.”

리자드가 몸을 일으켜 무가베의 눈을 감겨주었다.

‘폭격유도 샤먼랜스들이야. 힘든 상대야.’

* 오늘로 뮌처가 마지막인가 봅니다. *

‘뮌헨안보회의와 대화할 수 있게 해줄 게. 가서 AI들 반란을 막아야 한다고 설득해봐.’

* 치프 뉴런을 읽었습니다. 이적 죄로 근접하기도 전에 처형될 겁니다. *

‘아냐. 그들이 기밀로 여기는 샤먼랜서들이 여기 와 있어. 생포하면 방법이 생겨. 무가베를 위해서라도 한번 시도해봐야지.’

* 무가베를 애도하는 건 우리의 몫입니다. 당신은 왜입니까? *

‘오늘로 끝나기에 너무 아쉬워서.’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오고 있었다. 중앙청사에서 베레모를 꾹 눌러쓴 리자드가 나왔다. 청사 지붕에서 드론 한 대가 날아올랐다. 혹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뮌처 국민들을 한데모아 만약에..를 궁리하기로 했다. 드론이 온 몸에 조명을 넣어 새벽을 밝히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비어가 연결된 드론은 고작 도구인데, 사람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몰려드는 게 마치 영적인 등불 같았다. 리자드는 무가베가 무엇을 봤는지 이해가 됐다. 존재는 본질에 붙박이지 않았다. 여기서는 약자인 걸 부끄럽게 여겨 강자가 되라, 부자가 되라 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리자드는 청사에서 나오기 전에 들은 뮌처 내력을 떠올렸다.

‘사이버 포크였다고?’

* 예. 민중의 당연한 권리이지 않습니까? *

‘...그래도 전복됐어. 당연하지가 않아. 지금도 그렇게 될 것 같아. 당연하게 만들어야 해.’

* 어떻게? *

‘펑크해야지.’

리자드가 몰려드는 사람들을 헤치고 폭음이 울리는 전장으로 걸어갔다. 누군가 길을 가로막고 폰을 내밀어 비어의 비상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알고 있습니다. 저도 ‘우리’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리자드는 말을 마치고, 계속 걸어갔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위하는 모습에 여기 오기 전까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너무 좁게 살아왔다.

* 과연 이 계획대로 되겠습니까? *

‘난 그들에 대해 잘 알아. 뭘 중요하게 여기는지. 뭐가 기밀인지. 내가 베레모를 쓰고 나타난 것만으로도 충격일거야.’

* 당장 내일이라도 후회하실 수 있습니다. *

‘혼자만 잘 살려 하면 그렇겠지. 다 같이 잘 살자는 거야.’

리자드는 뒤돌아 드론 등불 아래 몰려든 사람들을 봤다. 사람만으로는 펑크 할 수 없었다. 동지가 필요했다. 베레모를 쓰다듬어 안에 고정된 스캔기어를 매만졌다. 사이버 펑크 할 시간이었다.

‘너와 나, 우리 둘이 잘해낼 거야. 난 너를 믿어.’

* 예. 나도 당신을 믿겠습니다. *

리자드는 드론 등불 아래로 몰려드는 군중들 사이를 헤치고, 교전지로 향했다.

매일 매순간 걷는 걸음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존재를 획득하는 첫 여정이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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