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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멋쟁이 곽 상사

2019.06.30 00:1706.30

멋쟁이 곽 상사


내가 곽 상사를 알게 된 것은 20여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인터넷 장비 회사의 경기도 광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강원도 어디인가로 가서 한 동안 머무르며 일하고 와야겠다는 지시를 받았다.

“2주일 뒤에 파견을 가야 되는 거면 너무 심하게 갑작스러운데요. 거기다가 언제 다시 돌아 올 지도 모른다면서요. 한 달이 될 지, 반 년이 될 지, 3년이 될 지.”
“3년까지야 되겠어? 그때까지 사람 필요하면 사람 뽑겠지. 짧으면 석 달, 길면 1년 정도 아니겠나 싶어. 뭐, 나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길게 붙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속한 부서의 차장 밖에 없었는데, 차장을 붙들고 길게 말한다고 해야 무슨 수가 생길 리는 없었다. 그 사실은 나부터도 뻔히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흔히들 말하는 IMF 시대였다. 아침에 일어 나면 어떤 유명한 회사가 망했다더라는 소식이 무슨 스포츠 중계처럼 들리던 시절이었다. 길거리에 나가면 여름철 매미 우는 소리처럼 회사원들 곡소리가 들렸고, 빈 공원에 가면 멍하니 한숨만 푹푹 쉬는 양복쟁이들이 벗어 놓은 매미 허물 껍데기처럼 그득그득 널브러져 있었다.

그 와중에 가끔 정부에서 손을 뻗어 살려 주기로한 회사들은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모든 회사들이 정부 기관의 지시를 신전에서 내려온 신탁처럼 따르고 있었다. 하기야, 정부 공무원 하나 둘과 은행에서 나온 사람 서넛이서 커피 한 잔 하는 30분 동안 회의한 결과로 직원 1만명이 일하는 30년 역사의 회사가 망하게 될 지, 살려 둘 지가 결정되는 판이었다. 그 날따라 커피가 쓴 맛이면 괜히 기분이 나빠져서 어떤 회사는 망하고, 커피가 단 맛이면 회사가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어쩌겠는가? 공공기관에서 내려온 지시를 감히 우리 회사따위가 거스르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이 기회에 지방으로 사업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회사로서도 나쁠 것은 없었다. 정부가 정보화시대를 대비하기 위한 초고속인터넷 보급 사업을 한다고 요란하게 떠들 때여서, 인터넷 장비와 관련된 일을 할 기회는 제법 있어 보였다. 비록 우리에게 내려온 지시는 정보화 소외 지역으로 분류되는 어느 지방에서 인터넷 활성화를 위해 뭔가를 해 보라는 것으로 시작해서 얼토당토 않은 꼬인 내용으로 이어지는 이상하고도 막연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그런 작은 기회가 큰 사업을 위한 출발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2주 뒤 나는 동해안 북부에 있는 어느 해안 마을로 떠나게 되었다. 우선 고속버스로 근처의 도시까지 갔다가 거기에서 차를 빌려서 다시 내가 가야할 곳까지 떠나는 길이었는데, 태백산맥 고개길을 넘을 때 굽이굽이 움직이는 버스가 어지러워서 그랬는지 생전 안 하던 차멀미가 나서 꼬박 1박 2일 가량을 머리가 아파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가 보니 그곳 면사무소에 딸려 있는 회의실이 내 사무실이었다. 거기서 나는 그 지역 사람 몇몇과 함께 그 일대와 그 보다 더 북쪽 해안, 더 서쪽 산간 지역, 한참 더 북쪽으로 휴전선 근처 지역까지 드문드문 흩어진 마을들에 대해 인터넷을 보급하고 인터넷으로 고위 공무원들에게 그럴듯해 보일 만한 일을 이상한 지시에 맞춰 뭔가 해 보이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나는 그 지역 전문가로 정해져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과 함께 짝이 되어 일하게 되어 있었는데, “향토 정보화 시민 담당관”이라는 직함으로 나타난 나의 동료가 바로 곽 상사였다.

곽 상사는 당시에 이미 70세가 넘은 노인으로 당연히 상사도 아니었다. 까마득한 옛날에 군대에 있을 때 상사였다는 것을 이유로 주변 사람들이 “곽 상사님”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하나 같이 그를 “곽 상사”라고 불렀거니와, 그렇게 부르고 그가 대답하면 그 호칭이 괴상하게도 굉장히 잘 어울려 보였다. 나도 처음 몇 번은 “곽 담당관님”이라는 식으로 정식 직함을 불렀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곽 상사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 하시오. 도와 주겠소.”

곽 상사는 나를 만난 첫 날에 그 한 마디를 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곽 상사는 별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말만 없는 것이 아니라 표정도 없었다. 특별히 굳은 얼굴이라거나 불만이 많아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온화하고 친절한 느낌도 아니었다. 언뜻보면 살짝 멍청해 보이기도 했지만 고백하자면 그것은 내가 그 당시에 노인들을 무조건 무시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겉모습만 보면 곽 상사는 키가 큰 편이었고 야무지고 단단하다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곽 상사가 무슨 이유인지 당당하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는 태도를 가진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처음 만난 그날도 그는 아주 잘 다려 놓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때문에 사람까지 자신감 있어 보인다는 착각이 드는 것일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실제로 자신감이 있는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왜냐하면 막상 같이 일 해 보니 곽 상사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는 곽 상사의 첫 말과는 달리, 곽 상사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면 그는 그 말을 들었을 뿐 아무것도 도와 주지 않았다. 곽 상사는 갖은 핑계로 그 일을 해 주지 않았다. 나로서는 살던 집을 떠나 갑자기 낯선 먼 동네로 떠나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그만한 희생을 하는 무슨 보람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런 일도 벌여 보고 저런 일도 벌여 보고 싶었다.

이 지역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이 그 물건을 인터넷으로 바로 대도시의 소비자들에게 판매할 수 있도록 전자상거래 웹사이트를 만든다든가, 깊은 산골 마을에서도 어디가 어디인지 지도를 집에서도 살펴 볼 수 있는 웹사이트를 만들어 보여 준다든 지 하는 일을 나는 구상했다. 그러나 그런 일에 필요한 그 지역의 협조 사항을 곽 상사에게 요청하면 그는 이것저것 알아 보다가 결국 아무 일도 안 해주었다.

그가 하는 유일한 일이 있다면 내가 무슨 일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그 일을 해 줄 수 없는 이유를 열심히 조사해서 나에게 조목조목 밝히며 거절하는 것 뿐이었다.

“이번에 알아 보니, 통신 판매업 규정상 그런 일을 하면 불법이라고 하오.”
“내가 한 번 알아 보았는데, 그런 일을 하면 국가 기밀 정보 보호 지침에 위배된다고 하오.”
“그런 사업은 강원도 도청에서 관리하게 되어 있는데, 아직까지 도청에서 표준안이 나온 것이 없소.”

곽 상사가 그렇게 설명하는 것 중에 70퍼센트 정도는 말이 되는 이야기였고 30퍼센트 정도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렇지만, 내가 “그런 이유로 이 사업을 시작도 못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30퍼센트를 지적하면, 곽 상사는 그 30퍼센트에 대해서 좀 더 알아 보기 위해서 다시 기다리라고 했다. 기다린 끝에 결국 그가 가져오는 대답은 항상 도와 줄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으며, 안 된다는 결론이었다.

게다가 곽 상사는 무슨 일이건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아주 느렸다. 간단하게 컴퓨터로 검색을 해서 처리할 수 있는 일도, 그는 찬찬히 서류를 뒤졌고, 쉽게 분류되어 있는 목록을 만드는 대신에 혼란스러운 자료들을 일일히 처음부터 하나하나 그때그때 읽어 나갔다. 그렇다 보니 일을 한 결과가 틀릴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일을 신중히 처리했고, 일의 결과를 낸 다음에도 다시 한 번 확인하느라 더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 게다가 그는 애초에 노인이었으므로 손 동작이나 걸음걸이부터가 빠릿빠릿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곽 상사는 아침 아홉시에서 저녁 여섯시까지 무슨 일을 천천히 계속 하는 것처럼 흉내내면서도 사실상 어떠한 일도 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었다.

나는 점차 화가 났다. 정부 기관의 지시 때문에 갑작스럽게 사는 곳이 바뀐 것도 불만스러웠는데, 정작 그렇게 하면서도 아무 소용도 없는 자리에 묶여 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힘이 빠졌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공공 조직의 일하는 방식인가 싶어 불만이 생겼다가 나중에는 사사건건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만 머리를 쓰는 곽 상사가 미워졌다. 보다 보니 곽 상사가 너무나 게으른 인간이라서 천성이 일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가만 보니 곽 상사는 결코 게으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제 시간에 출근했고 정확하게 여섯시가 되면 가방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갔다. 사무실에서는 항상 “이 일은 할 수 없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을 하기 위해 느린 속도지만 꿈지럭 꿈지럭 뭔가 업무를 해 나갔다.  퇴근 후에 그가 사는 모습도 하는 일 없이 늘어져 있기만 하는 늙은이는 아니었다. 그는 술을 좋아하지도 않고 어울려 놀러 다니는 것을 즐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유일하게 그가 간접적으로라도 삶의 즐거움과 관련된 행동을 남보다 많이 하는 것이 있다면 옷을 아주 정성스럽게 잘 차려 입는다는 점이었다.

그의 옷이 화려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남들이 입지 않는 비싼 옷을 차려 입는 것도 아니었다. 반대로 곽 상사가 입는 옷은 낡고 오래된 것들이었다. 70대 노인의 기준으로 본다고 해도 그의 옷은 유행이 한참 지나 있는 옛 시대의 유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옷을 매우 열심히 가꾸어 입었다. 그 때문에 오랫 동안 그를 보아 온 사람들은 반쯤 조롱으로 그를 “멋쟁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곽 상사는 자신이 입는 옷을 철저히 세탁해서 아무런 잡티도 없도록 아주 깨끗하게 관리했다. 헌옷 버리는 곳에 가면 동네마다 쌓여 있을 것 같은 옷이라도 그는 귀중한 보석을 닦듯이 너무나 소중히 말끔하게 관리했다. 보석을 닦는다는 비유는 특히 적당한 것 같다. 좋은 보석을 갖고 있는 부자가 보석을 갖고 있고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뻐서 보석을 닦는다는 잡다한 일도 좋아하듯이, 그는 옷을 세탁하고 깨끗하게 관리하는 일에서 깊은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는 다림질에 아주 공을 들였다. 다림질! 곽 상사의 다림질! 그가 다림질한 옷의 주름을 보면 전문 세탁 기술자가 예복을 잘 다림질한 모양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는 다림질에 긴 시간을 쏟았다. 매일의 중요한 일과로 자신이 옷을 철저히 다려서 모양을 잡는 시간을 잡아 두었다. 말은 안 했지만 그는 자신의 다림질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마저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직접 세탁하고 완벽하게 다림질한 옷을 입고 집에서 나섰으며 일터에 와 앉아 있다는 사실 만을 그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보였다.

나는 한 번 곽 상사가 집에서 다림질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내일 입을 자기 옷을 다리는 그의 표정에는 보람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그는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는 일도 없이 그저 옷의 주름과 다리미에만 집중하며 긴 시간 다림질을 했다. 아무 다른 생각 없이 오직 이 옷을 보기 좋게 다리겠다는 생각 단 한 가지만 하면서 긴 시간 작업을 했는데, 그러는 동안 그는 마음을 비우고 세상사를 잊으며 마치 무슨 명상이라도 하는 듯한 태도였다. 곽 상사를 싫어하던 나조차도 다림질 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는 그의 진지함과 기쁨이 나에게까지 번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용히 다른 생각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조용히 자기 옷을 다리고 있으면 그것만큼 평화롭고 아늑한 일이 있겠는가 하는 상상에 나조차 잠깐 빠질 정도였다.

그러나 결국 나는 언제나 구김이 잔뜩 가 있는 옷을 입고 허겁지겁 출근했고, 사무실에서 곽 상사를 볼 때는 속 터지기만 했다.

한 번은 내가 진지하게 이렇게 하면 아무 일도 못하지 않겠냐고 곽 상사에게 좋은 말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러자 곽 상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 왜정 때나 봉건시대 때야 세상에 글 읽을 줄 아는 사람도 몇 없었으니 나라에서 벼슬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아는 척 하면서 이끌어 갈 수 있었지. 벼슬하는 사람들이 제일 똑똑하고 뭐든 다 보통 사람들보다는 잘 알았으니까.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시오. 나도 그렇지만, 지금 관공서에 있는 사람들 중에 뭔가 결정하는 사람들 태반이 학교 다닐 때 ‘컴퓨터’라는 말도 못 들어 본 사람들 아닌가?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옛날 벼슬아치들처럼 다 아는 것인냥 이렇게 해야 잘 산다, 저렇게 해야 잘 산다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몰아갈 수가 있겠소? 잠깐 짧게 생각해 보고 이렇게 하는 게 맞다 싶어서 이리저리 다그쳐 봐야 오히려 일을 망칠 뿐이오. 그저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정말로 일 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길이오.”

그 말을 듣자 나는 더 이상 이 사람과는 말이 안 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 후로, 어떻게든 곽 상사를 따돌리고 일 하는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다른 길을 찾아 보자니, 이상하게도 곽 상사가 꽤나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곽 상사를 좋아하거나 그가 잘 되도록 일을 도와 주는 사람들이 그 지역에는 곳곳에 제법 많이 있었다. 말도 없고 할 줄 아는 일은 다림질 밖에 없는 그 노인을 두고 만날 때 마다 공손히 인사를 올리는 다른 노인들이 여럿 있었다. 곽 상사는 “향토 지원회 회장”이나 “해안 노인 교류회” 회장 등등과 같이 별 하는 일 없이 적당한 수당을 받는 자리에 몇 군데나 올라 가 있었다. 그것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곽 상사가 그 나이에도 일자리를 갖고 나와 짝이 되어 일하게 된 것도 결국 그 비슷한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은 그 지역에서 제법 평판이 좋은 군의원이 곽 상사에게 문안 인사를 하고 가면서 공손히 식사 대접을 하는 모습까지 보았다. 나는 너무 이상해서 그 군의원에게 직접 한번 도대체 왜 곽 상사에게 이렇게 공손히 대하는 지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 군의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께서 곽 상사님께는 항상 꼬박꼬박 인사드리고 잘 대해드리라고 당부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뿐입니다.”

나는 곽 상사에 얽힌 일 중에 무엇인가 크게 잘못된 일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나는 도대체 그가 무슨 이상한 일을 숨기고 있는 지 알아내 보겠다고 마음 먹었다. 어차피 할 일은 없었고, 설령 할 일을 생각해 낸다고 해도 곽 상사가 못하게 막아 버리는 것이 내 직장 생활의 전부였다. 철저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저 월급만 받아 내는 것이 곽 상사의 삶이라면, 그 곽 상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우선 나는 면사무소에 있던 노인들에 관한 기록을 찾아 보았다. 보훈 유공자 명단에 곽 상사의 이름이 있었다. 곽 상사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중 한 명이었다. 그렇지만 특별히 훈장을 받거나 표창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었다. 전쟁 전 부터 군인이었고, 전쟁 중에 계속 군 복무를 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까지도 살아 남았다. 그러다 제대 했다는 간단하고 재미 없게 보이는 이야기 뿐이었다.

조금 더 살펴 보니, 곽 상사는 무슨 독립군 단체 명단에도 있었다. 그 독립군 단체 입대일은 1945년 8월로 나와 있었다. 다른 자료를 조금 더 살펴 본 결과 나는 곽 상사가 실제로 독립운동을 한 적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중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던 단체들이 북적북적 한국으로 돌아 올 때, 이 단체들은 저마다 한국에 새로 생기는 정부에서 자신들이 큰 세력을 차지하기를 원했다. 개 중에는 가끔 잘만 하면 새로 생기는 나라 하나를 통째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야심가도 있었을 것이다. 세력 다툼을 위해서는 자기 단체가 크고 사람이 많다고  주변에 처음부터 과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자니, 전쟁이 다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 오는 길인 그 막판에 자기 단체에 가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든 급하게 가입시켜 주었다. 곽 상사가 입대한 독립군 단체도 그런 목적으로 누구든 독립군이 되고 싶다고 하면 바로바로 자기 단체 명단에 이름을 올려 준 곳인 듯 보였다.

그렇다면 애초에 곽 상사가 중국으로 건너간 까닭은 무엇일까? 나중에 독립군 단체 소속이 되긴 했지만 곽 상사는 독립운동과 관련해서는 아무런 공로도 훈장도 인정 받은 것이 없었다.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 보겠다고 다른 나라로 망명을 떠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얼굴을 한 번만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나는 정확히 알아낸 바가 없다.

그때 나는 아마 곽 상사가 어릴 때부터 간절히 대학생이 되고 싶었고 자신이 입학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은 대학을 찾아 중국땅으로 건너간 것이 아닌가 짐작했다. 정황은 있었다. 곽 상사가 대학을 졸업했다는 기록은 없었지만 중국에서 대학을 다닌 듯하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곽 상사를 이상하게 존경하는 동네 노인들 사이에서는 “곽 상사는 북경대학을 나왔다”라는 헛소문까지 돌았다. 그 헛소문은 곽 상사 스스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나에게 이야기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투에서 무엇인가 더 사연이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런저런 말들을 모아 본 결과, 나는 다음과 같이 추측했다. 어린시절의 곽 상사는 대학생이 부유함, 지성, 젊음, 어른스러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멋이 모두 하나로 합쳐져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에서 곽 상사가 대학생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중국땅으로 건너 갔다. 곽 상사는 이런저런 일을 하며 학자금을 모으고 중국 대학교에 입학할 방법을 몇 년간 궁리했다. 어쩌면 입학에는 성공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졸업할 만큼 꾸분히 학교를 다닐 돈을 벌지도, 중국 유학생활에 잘 적응하지도 못했다. 그러다 광복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먹고 살 길이 막막했던 곽 상사는 얼치기 독립군 단체에 급히 들어가 한국으로 돌아 온다. 그리고 그 독립군 단체가 대한민국 군대에서 자리 잡아 세력을 넓히는 바람에 곽 상사는 그 끈으로 얼떨결에 상사가 된다.

그게 그때 내가 곽 상사의 과거에 대해 추측한 전부였다. 급하게 대한민국 군대를 만들어야겠는데, 군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나 싸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고는 워낙 없는 판이니 계급장이라도 한 번 달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부사관도 되고 장교도 되었다. 그런 때에 운이 좋아 직업군인이 된 사람이 바로 곽 상사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각종 독립군 단체며, 만주군, 일본군 출신 인물들이 서로 한국군 안에서 자기 편을 많이 만들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었으므로, 곽 상사는 자기가 속했던 독립군 단체의 세 싸움에 따라 저절로 계급이 높아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곽 상사에 대한 내 혐오는 더 깊어졌다.

아무것도 할 줄 몰랐고 평생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 옷만 열심히 다려 입고 다니는 늙은이.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어째 그 사정을 알게 된 후부터 점점 화가 급히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나 초조한 느낌은 사라졌다. 무엇인가 포기한 마음이 몸 속으로 쫘악 들어 온 것처럼, 나는 곽 상사가 싫고 미우면서도 대충 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일을 하는 듯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을 차차 받아들였다.

돌아 보면, 지금은 그때가 좋은 시간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동쪽에서 바다 위로 해가 뜨고 해안을 따라 펼쳐진 하얀 모래톱에 햇빛이 비치면 아침부터 하늘이 아주아주 눈부시게 밝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날마다 시계 소리보다도 훨씬 먼저 일어 난다.

창 바깥을 보면 텔레비전에서 애국가 나올 때 자주 나오는 바다 위 일출 모습과 꼭 같은 풍경이 매일매일 보인다. 여유롭게 아침 시간을 보낸 뒤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에 나가서, 몇 분을 기다리면 정확히 8시 55분에 곽 상사가 출근한다. “안녕하십니까?” “출근길에 덥진 않았소?” 서로 대답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 인사를 건내고 저녁 여섯시까지 근무를 한다. “먼저 나가 보겠소.” 곽 상사가 퇴근하면 나는 5분 정도 사무실 뒷 정리를 하고 나간다. 밤샘도 없고 야근도 없고 회식도 없고 내일까지 급하게 준비해야 하는 자료도 없다.

퇴근길에 들어선 후에도 아직 하루는 많이 남았고, 나는 바닷가에 나가 낚시나 해 볼까 생각하며 이리저리 거닌다. 파도가 치는 맑은 물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정말로 아이 손바닥 만한 작은 물고기들이 열 몇 마리씩 떼를 지어 하얗게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다. 그러다 수평선 위로 하나 둘 별이 뜰 때 쯤 다시 집으로 돌아 와 소설 책을 몇 장 읽으며 쉬다가 잠에 든다.

내가 곽 상사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들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병원에 입원해야 할 일이 생겼소. 큰 일은 아니오.”

내가 걱정이라도 할 것처럼 그는 그렇게 말했다. 노인들에게 흔히 생길 법한 평범한 문제 때문에 병원에 가게 될 것이고 아마 1주일 정도 후에는 다시 정상 출근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나에게 곽 상사의 휴가는 도대체 그가 출근하는 것과 출근하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곽 상사는 자신이 말한대로 그 다음날 부터 출근하지 않았다. 예상했던대로 내가 사무실에 나와서 해야 하는 일은 곽 상사가 있으나 없으나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0에 0을 더해도 0이고, 0에서 0을 빼도 0이라는 간단한 계산을 온 몸으로 다시 느껴 볼 기회일 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루 동안 곽 상사 없이 혼자 사무실에 있자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차피 사무실에 같이 머물면서 나누는 이야기도 별로 없었고, 같이 하는 일은 더욱더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없으니 어쩐지 더욱더 할 일이 없는 느낌이 들었다. 모르긴 해도 곽 상사가 사무실에 있는 동안 나는 그를 보며 “저 답답한 늙은이는 도대체 뭘까”라는 불만을 마음 속에서 이런 저런 말로 많이 읊조렸던 듯 싶다. 그리고 그렇게 그를 욕하는 마음을 하루 종일 품고 있는 것도 나름대로 두뇌를 사용하는 일인만큼 그게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런데 곽 상사가 없이 혼자 사무실에 있으니 그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로 더 막막히 지루한 느낌이었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퇴근 후 나는 정말로 해변에서 낚시를 해 보겠다고 생각했다.

해변 끝 편에는 조그마한 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소문에 100세가 넘었다고 하는 머리가 하얀 할머니가 머물면서 무슨 물건이든 다 팔고 있었다. 나는 100세가 넘었다는 말까지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아주 건강한 할머니였다. 소문대로라면 조선 왕조 시대에도 살아 왔던 할머니인데 그보다 10분의 1밖에 안 될 것 같은 어린이들에게 “핑클 빵 새로 나온 것 먹어 봤니? 효리도 있고, 유리도 있고.”라면서 설명하는 장면은 신기해서 기억에 남았다. 덕분에 나는 그 가게에 낚시 도구도 팔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잠깐 출타 중. 곧 돌아옵니다.”

그런데 굳이 해변을 한참 걸어 끝까지 갔더니 가게 창문에 그런 말만 적혀 있고 문은 닫혀 있었다. 주인 할머니가 자리를 비운 듯 했다.

나는 거기까지 간 것이 아쉬워서 그 앞을 서성이며 할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다.

“주인 할머니 기다리는가?”
“예.”
“요 앞에 나가신 것 같으니, 금방 오실 거요.”

주인 할머니는 오지 않고 그런 말을 하는 동네 다른 노인만 가끔 그 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그 덕분에 조금만 기다리면 주인 할머니가 올 듯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그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만 그 앞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다.

“아직까지 기다리고 있었나?”

할 일이 없어서 파도가 밀어 닥치는 것이 몇 번이나 되는 지 계속 헤아리고 있었는데 몇 백인가 몇 천인가 되었을 때 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나타났다. 멀리서 걸어 오는 것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마치 마법으로 땅에서 솟아나듯이 나타난 느낌이었다.

“뭘 사려고 하는데?”
“낚시 할 때 필요한 걸 사려고 하는데요. 낚시대하고, 낚시줄하고. 또 뭐가 필요하지요?”

주인 할머니는 갖가지 물건이 꽉꽉 차 있는 가게 속을 이리저리 뒤졌다. 그런데 그날 따라 낚시 바늘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곽 상사 한테 낚시 바늘은 빌려 달라고 하면 어떤가?”

그리고 그게 계기가 되어 나는 그날 저녁 주인 할머니와 곽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할머니는 가게에 있는 냉동 돼지 고기를 사면, 어차피 자기도 오늘 고기가 좀 먹고 싶으니 그걸로 음식을 만들어 저녁 상을 차려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랑 같이 저녁을 먹고 가자고 제안했다. 괜히 곽 상사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해져서 점심도 굶었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아주 괜찮게 들렸다. 그냥 집에 들어가 봐야 할 일도 없다는 생각도 새삼 들었다. 사람 말 소리도 없이 파도치는 소리만 계속 들으면서 다시 긴긴 바닷가 모래판 길을 걸어 혼자 집에 간다면, 심심함이 아주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처음에는 할머니로부터 곽 상사의 잘못이나 곽 상사의 나쁜 점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 내 보려고 했다. “곽 상사, 그 사람 참 이상한 사람 아닙니까”로 말을 던지면, 분명히 거기에 걸맞는 곽 상사의 험담이 술술 퍼져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들지 않았다. 할머니는 무슨 다른 이야기를 하려다가 멈칫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너무 이야기가 길어질까봐 망설이는 듯 보이기도 했다.

대화가 점차 없어졌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바다 쪽을 보니, 낡은 가게 평상에 앉아 있을 때 보이는 바다 위의 달이 너무 밝은 느낌이 들어 신기했다. 그러고 있자니, 또 여기까지 와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이게 뭐 하는 짓인지, 하는 복잡한 생각이 막 밀려 들었다.

“막걸리도 파시나요?”

그러다가 막걸리 사발을 두 번쯤 비우고 났을 때, 할머니는 곽 상사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나하나 들려 주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내가 짐작한대로 곽 상사는 광복 때 급하게 무슨 독립군 단체에 들어간 것이 운이 좋아서 갑자기 직업 군인으로 자리 잡은 사람이 맞았다. 총 한 번 쏘아 본 적이 없는데 하사가 되고 중사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애초에 군인이 된 것도 대단한 애국심이 있다거나 적과 맞서 싸우는 일에 무슨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대학생이 되어 보겠다고 중국까지 건너 왔는데 모아 놓은 돈은 모두 날리고 살 길은 막막한데, 군인이라면 그래도 나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직업 아닌가? 그나마 기회가 생겼을 때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곽 상사는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곽 상사는 군대에서 별 인기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한다. 훈련에도 작전에도 큰 재주가 없었던 데다가, 당시 군대에서 출세하려면 미군 고문관으로부터 뭘 배우거나 지원을 잘 받는 것이 중요했는데 곽 상사는 중국어를 좀 알았을 뿐 영어에는 약했다. 그래서 밑천도 없이 하사, 중사가 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같은 출신의 다른 군인들에 비해서는 진급도 느린 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곽 상사가 딱 한 가지 잘 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다름 아닌 군복을 잘 세탁하고 잘 다려 입는 일이었다. 곽 상사는 그때부터 자기 군복을 깨끗하고 멋지게 입는데 정성을 많이 기울이기로 유명했다. 본인이 그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군복 세탁과 다림질을 강조했다.

곽 상사가 세탁을 강조하는 정도는 지독할 정도였다. 아무렇게나 입어도 상관 없을 것 같은 병사의 낡은 군복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그 나름대로 깨끗하고 멋지게 관리하는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 곽 상사 앞에 병사들이 집합하면 언제나 군복의 어디가 더럽다거나, 바짓단의 어디가 제대로 다림질 되어 있지 않다거나 하는 지적이 길게 쏟아졌다. 곽 상사가 직접 복장에 대한 검열을 하는 시간이 되면, 병사들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세탁과 다림질에 힘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곽 상사는 상의의 작은 주름이나, 바지 선의 약간 뒤틀린 각도까지 일일히 지적했다.

곽 상사는 병사들이 입고 있는 옷의 상태가 완벽할 때까지 지적하고 또 지적했다. 옷차림이 완벽해질 때 까지 그는 훈련도 할 수 없다고 했고, 행군도 할 수 없다고 했다. 휴식도, 식사도, 수면도 연기했다. 그 에게 군인으로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은 군복을 잘 갖춰 입는 것이었다.

“군인의 기본은 군복이다. 군복도 갖춰지지 않았는데 무슨 임무건 시작이라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온갖 처참한 꼴을 보고 온갖 사람답지 않은 일을 하게 된다. 그럴 때, 사람답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옷을 잘 다림질하고 세탁하는 것 같은 사소한 일상을 사람답게 하면서 생각을 가다듬는 버릇을 날마다 잘 갖추어야 한다.”

곽 상사는 그런 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곽 상사를 싫어했다. 사격도 못하지, 영어도 못하지, 체력도 별 볼일 없는데, 어찌저찌 때를 잘 만나 상사가 된 인간인데, 자기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옷 세탁 밖에 없으니 그것만 강조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옷도 안 입고 뭘 하나? 군인이 군복을 제대로 입는 것도 못하면서 무슨 훈련을 하고 작전을 하나? 일단 옷부터 똑바로 입고 모든 일을 시작한다.”

이 시절 갑자기 새로 생긴 대한민국 국방군에 들어온 군인들 중에는 위력적인 총을 쏘아 보고 이국적인 먼 곳에 싸우러 나가는 모습에 대한 환상과 모험심에 빠져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였으니, 세탁이나 강조하는 곽 상사는 인기가 없을 수 밖에 없었다. 동료나 장교들도 곽 상사를 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병사들은 곽 상사가 세탁과 다림질을 강조하는 것이 다른 상관과 어딘가 다르다는 점은 다들 깊게 느꼈다. 보통 이 시절 군대의 간부들이 병사들에게 옷을 깨끗이 세탁하라거나 다림질을 철저하게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저 병사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일 때가 많았다. 자신의 사소하고 작은 명령에도 병사들이 철저히 세세하게 복종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간부들은 군복의 작은 구김이 큰 문제라면서 소리를 지르곤 했다.

그런데 곽 상사가 세탁을 강조하는 것은 그와는 달랐다. 곽 상사는 정말로 잘 다듬어지지 않은 군복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싫어했다. 그리고 다림질이 잘 되어 있고, 깨끗하게 잘 세탁이 되어 있는 군복일 수록 깊은 가치를 진심으로 느끼는 듯 했다. 훈련 후 땀에 절고 진흙 범벅이 된 군복을 잘 씻고 다려서 깨끗한 멋진 제복으로 만들어 가는 일을 곽 상사는 마치 귀금속을 세공하거나 조각품을 빚는 일처럼 여기는 듯이 보일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한번은 대통령이 인근 부대에 찾아 왔을 때 곽 상사가 통솔한 병사들을 보고,

“이 병사들은 옷 맵시부터가 정말 정예병 같구만.”

이라고 한 마디를 한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잠깐 둘러 보고 가는 길에 누가 총을 더 잘 쏘는 지, 누가 더 참호전에 능숙한 지를 알아 볼 방법은 없다. 그러나 옷을 깨끗하게 입고 있는 병사들은 눈에 뜨였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이 시절은 대통령이 뜻 없이 중얼거린 한 마디도 옛날 임금님의 고귀한 옥음처럼 떠 받들던 때였다. 대통령이 떠나고 나니,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이 모두 곽 상사에게 찾아 와서, “복장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라고 배워가려고 했다. 결국 그 일 한 번 때문에 곽 상사는 상사로 진급했고 군복이 갖춰지지 않으면 무슨 훈련이건 시작도 하지 않으려 드는 엄한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꿋꿋이 군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국전쟁이 발발 한 후, 곽 상사는 초창기 전투에서 동료와 부하 병사들을 많이 잃었다. 그의 소속 부대 자체가 아예 궤멸되어 해체 되고, 전혀 다른 부대로 재편성 되었다고 한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곽 상사가 다부동 전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한데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그런 저런 전투 중에 곽 상사는 소대장이 되었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황이 바뀐 뒤에는 동해안을 따라 전진하는 부대인가, 그 지원 후미 부대인가에 합류하여 주문진 근처 어디쯤에 배치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 초 인민군에게 빼앗겼던 지역을 빠르게 되찾으면서 그 지역 군인들과 시민들 사이에는 이상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도 남한에 있고, 남한이 인구도 더 많고, 여러 분야의 인재도 더 많다. 그런데 왜 전쟁이 일어나자 그렇게 맥없이 우리가 북한에 당했을까? 질 때 질 수야 있겠지만 어떻게 사흘만에 서울이 빼앗길 정도로 아주 철저하게 패했을까?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다. 우리 중에 사실은 북한 편을 들고 있는 배신자들이 있어서 그 배신자들이 우리를 내부에서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런 별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이라거나 “무슨 일이든 이유가 있어야 생길 수 있는데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지 않나?”라면서 굳게 믿는 사람들이 갑자기 늘어 났다.

결국 그러다 보니, 그 모든 의견을 대표하여 어느 장군 하나가 이런 명령을 내렸다.

“적군에게 점령 당했을 때, 그 적군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한 자는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역죄로 처벌할 것.”

그러니까 이때 사람들 중 장군을 비롯한 몇몇은 그런 명령을 내려서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지금 따져서 그 책임을 캐내어 분명히 묻는 것이 아주 중요하고 그것이 똑똑히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나쁜 사람을 처벌하고, 착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어야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떻게든 나라를 유지해 나갈 수가 있다. 나쁜 일 중에는 반역만큼 심한 것이 없는 만큼, 그에 대한 처벌은 나라의 근본이다.”

그 말을 믿는 사람들은 군대 내부 뿐만 아니라, 군대 밖에서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도, 정치인들도 그런 말에 많이들 동조했다. 곧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이 일대 마을 곳곳에서 인민군 점령시에 협력한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를 처벌하기 위한 작전이 차곡차곡 세워졌다.

“그런데, 우리 동네, 이 동네 근처가 제일 골치. 제일 문제였어.”

가게 할머니는 그 대목에서 그렇게 이야기했다. 말 그대로, 그날 내가 술을 마시며 앉아 있던 그 마을 근처가 가장 상황이 심각한 곳이었다.

우선 애초에 그 근방 마을에 광복 전부터 사회주의 사상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는 말이 있었다. 그렇다 보니, 1948년 시작된 제1공화국에서 반공 운동을 고작 몇년 열심히 했다고 한들, 관심이 있던 사상이 완전히 머릿속에서 사라지기는 어려웠다. 그 와중에 덜컥 전쟁이 일어났는데, 공산당들의 군대가 3일만에 서울을 무너뜨렸다고 하니 정말 공산주의자들이 더 유능하고 우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기는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전쟁 전에 인민군들이 무자비한 악당들이라고 정부에서 줄기차게 선전했던 것이 이 지역에서는 거꾸로 효과를 미쳐 버렸다.

“북한의 괴뢰군들은 정말 잔인하고 무서운 놈들이어서, 걸핏하면 사람들을 다 죽이고, 조금이라도 자기들의 공산주의 사상을 신봉하지 않으려는 기색을 보이며 악랄하게 고문하다가 처형한다.”

그런 이야기를 인민군에 대한 적개심을 강조하기 위해 퍼뜨리려고 애를 쓰고 공을 들인 것이 한국전쟁 직전, 직후까지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가 도는 상황에서, 막상 정말로 인민군이 동네에 들어 오자 상황이 아주 이상해져 버렸다는 이야기다.

정말 인민군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을 거슬리게 하면 다 끔찍하게 고문당하고 죽을지도 모른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인민군에게 최대한 잘 보여야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다고들 생각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인민군이 우리 동네에 해코지를 하지 않도록 아예 처음부터 환영을 하러 나가자고 나섰다. 며칠이 지나고 나니, 마을 사람들이 인민군 지나는 길에 모두 모여들어 만세를 하며 환영하는 행렬이 생겼다.

그 이상한 기분으로 두려움에 떨며 만세를 부르던 장면을 기억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일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만세라는 것은 영원히 상대방의 세력이 이어지기를 기원하며 기쁨을 표현하는 말 아닌가? 그렇게 강한 표현으로 적에 대한 충성과 지원을 표현했다는 것은 반역 의사를 가장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지휘부에서는 그런 결론을 내렸고, 결국 이 일에 휘말린 사람들을 모두 그 죄에 맞게 처벌하라는 명령이 일선부대로 하달 되어 내려 왔다. 그러니까, 이 인근 마을 사람들을 전원 총살하라는 뜻이었다. 

이러한 지시를 그대로 기꺼이 이행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처음에는 연대장이 전화를 걸어 먼저 확인 연락을 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멋 모르고 인민군 환영 행사 몇 번 참석한 일로 다른 처벌도 아니고 총살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돌아 오는 대답은 그런 의심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자원이 넉넉하고 여유롭게 재판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 중 아닌가?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 모든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절대 대한민국을 배신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죄를 지은 사람들은 엄하게 벌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뒤에서 배신하는 반역자들 없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다. 분명히 죄를 지은 죄인들이 있는데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그냥 편하게 지내게 한다면 국가의 정의가 어디에 있겠는가?”

명령이 대대에 내려 갔을 때, 대대에서 역시 아무래도 이런 명령은 이상하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대대에서도 다시 상부로 문의 연락이 갔다. 그러나 명령은 그대로였다.

“지금 인민군들도 후퇴하면서 자신들의 사상에 반발하는 주민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우리의 적은 자신들의 사상을 더 굳건히 하기 위해 작은 배신을 한 사람이라도 엄벌에 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만 관대하게 배신자를 용서하고 살려 둔다면 같이 겨루어 싸울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국가에 대한 반역자는 그에 맞게 처벌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일이 그 즈음 되자, 상부에서는 빨리 명령에 따른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명령불복종이나 반역자에 동조한 죄를 물어 그 부대의 지휘관 또한 처벌하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결국 한 소대가 일을 맡아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이런 인기 없는 일을 좋아할 소대장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므로 다들 이 임무는 맡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임무는 돌아 돌아서 결국 가장 인기 없고 무능한 것으로 소문나 있던 소대장에게로 떨어졌다.

바로 다름 아닌 곽 상사였다.

이미 연대에서 마을 사람들을 어느 학교 운동장 안에 다 모아 놓고 가두어 둔 뒤였다. 곽 상사의 소대는 가두어 놓은 마을 사람들을 넘겨 받았다.

가게 할머니는 그때 자기가 겪은 일을 말 해 주었다.

“그때, 거기 있는 어떤 졸병 하나가 나한테 그러더라고. 이제 내일 되면 저 군인들이 당신들 다 죽일 거니까, 오늘 밤에 죽기 살기로 도망 가 보라고.”

아닌게 아니라, 곽 상사의 소대원들 중에도 다음 날이 되면 사람들을 모두 죽일 거라고 생각하고 갈등하며 초조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명령을 어길 수는 없었다. 만약 “나는 못 죽이겠다”고 거부하거나 부대에서 도망친다면 자신까지도 반역자로 몰려 같이 처형당할 것이 뻔했다.

병사들은 소대장인 곽 상사가 “명령이니까 어쩔 수 없다. 마음 굳게 먹어라.”라거나, “전쟁 중에 사람 몇 십 명, 몇 백 명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큰 폭탄 하나만 떨어지면 눈 깜짝할 사이에도 그 만한 사람들이 죽는다.”라는 등의 말을 할 거라고 짐작했다. 그런 식으로 말해서, 자신들의 죄책감을 덜어 주거나, 혹은 임무를 꿋꿋이 완수할 수 있도록 다짐을 하게 해 줄줄 알았다.

그런데 곽 상사는 그런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 소대원들에게 너무도 익숙했던 이런 말을 했다.

“내일은 민간인 대상 작전이 있다. 그런만큼 군인다운 모습을 잘 보이지 않으면 안 되니, 특별히 군복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잘 다림질 해서 입고 오도록 한다. 알겠나?”

병사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이 마당에도 군복 주름을 따지는 것이 정상인가? 곽 상사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전쟁통에 이곳저곳을 따라 다니다가 아예 맛이 가버린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는 병사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바뀐 것은 없었다. 몇몇 마을 사람들은 학교에서 도망칠까 말까 생각한 사람도 있긴 했지만, 결국 형제를 두고 혼자 갈 수가 없어서, 친구 누구를 두고 혼자 갈 수는 없어서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다들 남아 있었다.

아침에 자주 생기는 바다 안개가 육지 쪽까지 들어 와서 마을 사람들이 갇혀 있는 학교까지 들어 왔다.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괜히 그날은 안개가 더 짙고 더 축축해 보였다.

“모든 장비를 완벽히 갖추고 집합한다.”

곽 상사는 소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대로 그의 병사들은 군복을 차려 입고, 철모를 쓰고, 총을 매고 총알을 준비했다. 장비를 완벽히 갖추라는 뜻은 무기를 잘 준비하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소대원들은 이제 곧 곽 상사가 총살을 지시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합을 마치자, 곽 상사는 또 평소와 똑같은 말을 길게 늘어 놓기 시작했다.

“군복을 잘 차려 입는 것은 오늘 같은 때에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지금 그 군복 모양은 뭔가? 등에 다림질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등 뒤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선이 하나도 살아나지 않는다. 이렇게 옷을 입고 군복을 입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지금 안개 너머로 5분만 걸어 가면 곧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수십명이 있었다. 그런데 곽 상사는 태연히 빨래와 다리미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대놓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나왔다.

그렇거나 말거나, 그런 일로 곽 상사는 몇 시간을 소모했다. 그러더니, 이제 점심시간이 되었다며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특별히 어려운 임무에 수고 하고 있으니까, 소대 특별보급으로 오징어가 들어간 주먹밥을 준비했다. 소대원들은 그 차림 그대로 시간에 맞춰 주먹밥을 만들러 간다.”

그러더니 그 병사들을 이끌고 학교 뒤편의 뜰로 갔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푸지게 먹자고 이야기했다.

병사들이 뒤뜰에 가 보니, 그 지역 마을 사람들이 장터에서 팔기 위해 만들어 놓은 오징어 젓갈이 커다란 항아리에 담겨 몇 개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온갖 잡곡을 섞어 지은 밥이 커다란 천을 깔아 놓은 것 위에 가득 쌓여 있었다. 밥만 해도 소대원들 전체가 저녁까지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이었는데, 항아리 안에 든 젓갈은 더 많아 보였다. 게다가 그런 항아리가 하나도 아니고 몇 개가 있었다. 저 젓갈을 다 먹으면 너무 짜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는 병사들이 여럿 있었다.

병사들이 모여들자, 곽 상사는 젓갈 항아리 하나를 밥이 놓여 있는 천에 들어 부었다. 바닥이 온통 붉은 오징어 젓갈로 가득해졌다. 마치 젓갈로 된 늪이 생긴 듯 보였다.

“대원들은 손발을 깨끗하게 씻고, 저 속에 들어가 직접 주먹밥을 만든다. 저 밥을 모두 젓갈 주먹밥으로 만들어야 하므로 신속히 행동해라.”

그리고 곽 상사는 그렇게 명령했다. 배는 고팠으므로 병사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런데, 국물이 질척거리는 젓갈판에서 주먹밥을 만들겠다고 요란을 떨고 있으니, 자연히 붉은 젓갈이 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병사들의 군복은 지저분해졌다. 옷이 한참 더러워졌다 싶었을 때, 곽 상사는 뒤늦게 이렇게 말했다.

“군복에 더러워지면 안 되니, 각별히 유의하라.”

그 말을 듣고 병사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싶어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는 병사를 보고 곽 상사는 다시 말했다.

“군복이 더러워지면 되겠나? 안 되겠나?”

병사는 곽 상사를 쳐다 보았다. 곽 상사의 표정은 아무 변화가 없었다. 곽 상사는 다시 말했다.

“군복이 더러워지면 어떻게 되겠나? 다시 세탁하기가 얼마나 오래걸리고 어렵겠느냐 이 말이다.”

병사는 오징어젓 판에서 밥을 움켜쥐어 주먹밥을 만들려고 했다. 빨간 오징어젓 국물이 곽 상사의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군복 상의에 튀었다. 병사는 놀랐다. 처음에는 상의의 튄 자국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뭐라고 잔소리를 들을 지 겁이 났다. 그런데 잠시 후 고개를 들어 곽 상사의 얼굴을 보았을 때, 기이하게도 그의 표정은 여전히 아무 변화 없이 그대로였다.

그제서야 몇몇 눈치 빠른 병사들은 일이 어떻게 되어 가는 지 알아 챘다.

병사들은 온몸에 마구 오징어젓을 튀기며 주먹밥을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들이 오징어젓을 다루는 방법은 격렬하고도 신명났다. 열심히 세탁한 옷 곳곳에 시뻘건 국물이 스며들 수록 병사들은 더 열성적으로 움직였다. 어떤 병사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주먹밥을 제조하겠다며 오징어젓에서 뒹굴기도 하고, 오징어젓 속에서 헤엄을 치기도 했다.

그런 방식으로 오후 내내, 모든 소대원들이 군복 상하의가 오징어 비릿내 속에서 완벽히 그 멋이 말살될 때가지 열심히 주먹밥을 제조했다.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는 그때 누가 오징어 젓갈 속에 수류탄을 던져서 오징어 젓갈이 터져 날아가 비처럼 떨어지는 것을 소대원들 다같이 맞고 있었다고도 한다.

오후가 되자, 주먹밥을 만드는 임무는 완전히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곽 상사는 말했다.

“이런 모습으로는 절대 아무런 작전도 할 수 없다. 모든 소대원들은 자신의 복장부터 우선 갖춘 후에 다음 임무를 수행하기 바란다.”

병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곽 상사의 명령을 수행했다. 그렇지만 곽 상사의 기준도 그 어느때보다도 엄격했다. 비릿내가 깊숙이 스민 옷을 완벽하게 세탁하고 다시 원래대로 만드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힘든 일이었지만, 고생고생해서 그럭저럭 군복 모양을 갖추게 해도 곽 상사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곽 상사는 조금의 흠만 있어도 가차 없이 잘못을 지적했고, 사정 없이 병사들을 질타했다.

“이런 식으로 세탁을 하면 원래 천의 물까지 빠지지 않겠나? 군복을 잘 세탁하고 다려 입는 것은 군인이 나서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기본이다. 도대체 이렇게 해서 언제 군복을 입고 다시 작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때 곽 상사의 태도는 조금의 거짓도 없고 과장도 없어 보였다고 한다. 발효된 해산물 냄새로 더럽혀진 군복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단호히 멈추도록 하는 그의 태도는 진솔함 그 자체가 우러나오는 대단히 성실한 모습이었다.

그런 식으로 곽 상사는 작전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서, 며칠이고 세탁과 다림질을 하도록 했다. 그때만큼은 곽 상사의 세탁 명령에 전 소대원이 성심으로 따라주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변에서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 지 연락이 오면, 곽 상사는

“피복에 문제가 있어 도저히 작전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다. 현재 작전 태세를 준비하기 위해 작업 중이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투는 더할나위 없이 진지하고 정직하게 들렸다.

계속해서 질질 끄는 듯이 시일이 지연 되자, 나중에는 지휘부에서 운전병 한 사람을 보내어 지프를 타고 곽 상사가 있는 곳에 찾아 가 보도록 했다. 그 운전병은 장군과 그 참모의 명령으로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지 알아 보라는 지시를 받았다. 만약 곽 상사가 반역자들에게 동조하고 있는 것 같거든 즉각 보고하고, 인근 부대에 그를 처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라는 명령도 그 운전병은 동시에 전달 받았다.

그런데 운전병이 곽 상사의 소대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장면을 보았다.

그가 본 것은 모든 것이 엉망인 전쟁 중인 나라에서는 결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세상에서 가장 멋진 군복을 입은 병사들이었다.

얼마나 공을 들여 몇 백 번이나 세탁을 하고 얼마나 공을 들여 몇 천 번이나 다림질을 했을 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병사들의 옷은 아름다웠다. 핏줄기와 화약 냄새로 찌든 걸레 같았던 군복이 지금은 마치 기사들이 차려 입는 정갈한 예복 같아 보일 정도였다.

놀란 운전병에게, 곽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다시피, 지금 군복이 엉망이라 도저히 민간인 대상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그나마 참아 줄 정도지만 비린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수준 아닌가?”

운전병은 한참 동안 말 없이 병사들의 옷을 봤다가 곽 상사의 얼굴을 봤다가 했다. 그대로 가려다가도 몇 번 다시 돌아 왔다고도 하고, 곽 상사에게 뭐라고 몇 번 말을 하려다가 말을 멈추었다고도 한다.

결국 병사는 그냥 지프를 타고 돌아 가려고 했는데, 지프의 시동을 걸다 말고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금 공습이 워낙 치열한 시기이니,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은 작전상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시일이 오래 소요되더라도 걸어서 원대로 다시 복귀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운전병은 터덜터덜 걸어서 돌아가는 길에 나섰다고 한다.

이틀인가가 지나 운전병이 채 복귀하기도 전에 명령을 내린 장군은 다른 자리로 가게 되었다. 몇 가지 정치적인 문제도 함께 겹쳐, 장군의 역할은 이제 미군 쪽의 인물이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장군이 내렸던 명령도 모두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고 한다. 곽 상사 역시 곧 연대의 편제 자체가 바뀌면서 아예 다른 부대로 편성되어 완전히 다른 임무를 받게 되었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서, 나는 그 이야기가 정말이냐고 몇 번이나 되물었다. 그러면서 만약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나중에라도 곽 상사가 무슨 표창을 받지는 않았냐고 물었다.

“4.19 혁명 나고 나서, 곽 상사한테 훈장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나왔지. 그런데 곽 상사가 그랬다던데, ‘군인이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훈장을 받을 수는 없다’고. 그래서 자기가 거절했다던데.”

곽 상사의 얼굴과 말투를 아주 생생히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게 결코 그가 직접 했을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런 멋진 말은 아무래도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후로 곽 상사를 딱 하루 더 만날 수 있었다. 곽 상사가 병원에 머문 시간은 그의 예상보다도 훨씬 길었다. 때문에 그의 휴가는 한참 더 연장 되었고 내가 그를 만날 수 있는 날은 그만큼 줄어들었다. 동시에, 무슨 지방자치단체 사업 비리가 터져 나오면서 갑자기 우리가 투입되어 있는 인터넷 관련 사업도 일제히 중단되어 버렸다.

그 사업을 정치인들이 부정부패와 비리를 위해 악용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말이 나오면서, 전국 각지에 퍼져 이런저런 일을 하던 사람들도 이곳저곳에 끌려 가서 조사를 받고 신문을 당했다. 이러저러한 일은 규정에도 맞지 않는데 왜 일을 벌였냐는 식으로 검찰에 붙들려서 조사를 받는 사람은 허다했다. 내 동료 중에 한 명은 나중에 풀려나긴 했지만 잠깐 구속되어 구치소 창살 안에서 살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사업 기간 동안 아무 일도 한 것이 없었으므로 아무 조사도 받지 않았다.

사업 철수로 그 지역을 떠나기 바로 전날, 곽 상사는 퇴원하고 사무실로 출근하여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근무를 했다. 그 날도 곽 상사의 출근, 업무, 퇴근은 아무 다를 바가 없었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곽 상사는 “그 동안 낯선 동네 와서 고생했다.”는 유의 평범하고 뻔한 소리 말고는 별다른 말이라고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특이한 말이라고 굳이 꼽아 보자면 딱 한 마디 하는 말이 있기는 있었다. 그때 곽 상사는 어쩔 수 없이 늙었으며 또한 병 든 것이 낫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얼굴만은 생생한 힘이 샘솟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그 말은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기억난다.

“그런데 바지는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자네, 앞으로 셔츠는 좀 똑바로 다려 입고 다니면 안 되겠나?”

- 2019년, 동작동에서
 

댓글 6
  • 너울 19.06.30 01:23 댓글

    정말 있을 법한 영웅에 대한 미담이에요.

  • 너울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06.30 10:55 댓글

    매번 읽고 좋은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필하십시오.

  • Cherry 19.06.30 02:17 댓글

    별로 할 줄 아는 건 없지만, 기본을 지킬 줄 아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몫을 해낸 자. 곽oo

  • Cherry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06.30 10:51 댓글

    이야기 나온김에 써두자면, 곽상사라는 이름은 이름을 뭘로할지 트위터에서 투표 받은 결과대로 해 본 것입니다.

  • No Profile
    윤새턴 19.07.06 00:41 댓글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일관한 사람이 그것을 관철한 끝에 훌륭한 일을 해낸 이야기군요.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식으로 읽으면 기분이 묘합니다.

  • 윤새턴님께
    No Profile
    글쓴이 곽재식 19.07.06 11:15 댓글

    고장난 시계 비유 좋아보입니다. 읽고 감상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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