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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괴이한 거울

고양이들이 우는 밤에

지현상

‘여긴 어디지?’

남자는 아무리 용을 써도 손가락 하나를 까딱할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날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감기지도 않는 눈동자로 상황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탁하고 지저분한 콘크리트 바닥 위로 핏자국과 커다란 뼈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다리뼈, 갈비뼈 등. 아무리 정신이 몽롱해도 저것들이 사람 뼈라는 건 확실히 구분할 수 있었다. 여긴 뭘 하는 곳일까. 시선의 중심부에서 커다란 냄비 같은 것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점이 그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돌리긴커녕 눈알조차 굴릴 수 없으니 주변에는 무엇이 있는지는 더욱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큰 문제는, 모든 것이 뒤집혀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이 뒤집혔을 리는 없으니, 그가 어딘가에 뒤집힌 채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이것도 꿈인가.

이번에는 그랬으면 싶었다. 분명 좀 전까지만 해도 더없이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데, 모든 게 부디 꿈이 아니길, 꿈이라면 평생 깨지 않기를 바랐는데…….

그래, 꿈일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정신도 몽롱하고 온몸에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으니 분명 꿈일 터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자 냄비에서 코를 찌를 정도로 달콤한 캐러멜 냄새가 퍼져 나왔다. 사방에 진하게 배어 있던 피 냄새를 덮을 정도로 강렬한 향이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시야 밖에서 누군가가 나타났다.

신비로운 은발과 깨끗한 피부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뒷모습만 보였기 때문에 그녀가 뭘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잠깐 냄비로 다가가는가 싶더니, 이내 손을 탁탁 털며 “흠, 뭐 이 정도면 됐겠지. 훌륭해.” 하고 중얼거렸다. 그리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깜짝야!” 여인이 불현듯 소리쳤다. 얼마나 놀란 건지 가슴을 다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녀가 입을 비죽였다. “뭐야 왜 눈을 안 감겨놨어. 진짜 놀랐네.”

놀라기는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러 의미를 담아,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여인을 바라봤다. 물론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니 여인이 그 마음을 알 턱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짜증 난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렸고, 이내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곤 약 10여 초가 지났을까. 여인이 시야에 다시 나타났다. 대신 이번에는 그 손에 빨간 소방 도끼 같은 것이 그 손에 들려있었다.

남자는 냄비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끼날을 보면서, 이미 뭔가 잘못되었지만, 뭔가가 더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인은 천사 같은 얼굴로 그에게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곤 딱 그의 앞에서서, 양손으로 도끼를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남자는 그제야 여인이 까만 비닐 우비를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검붉은 핏자국들이 사방에 묻어있는 우비였다. 설마, 아니지?

“설마, 깨어 있는 건 아니지?” 그녀는 그제야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남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한숨을 쉬며 다시 말했다. “걱정 마, 아프진 않을 거야.”

안돼! 제발! 남자는 몸을 움직이려 부단히 애를 썼다. 평생을 살면서 이만큼이나 삶이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항상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였건만, 눈앞의 죽음은 그렇게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도끼가 궤적을 그리며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그 순간, 남자는 부디 이 모든 게 꿈이길 간절히 기도했다.


“준호야, 사람들이 왜 자꾸 사라지는 걸까?”

준호는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던져진 질문에 어리둥절하게 주변을 바라봤다. 작고 아담한 사무실의 풍경이 평소보다 조금 더 어수선해 보였다. 온갖 문서들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보니 또 뭔가 일이 터진 듯했다.

막상 질문을 던진 서연은 준호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연신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준호는 소파에 늘어져 있는 체셔 고양이 ‘치즈’를 향해 또 무슨 일이냐는 듯 시선을 던졌지만, 치즈는 귀찮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나지막한 하품을 선보였을 뿐이었다. 준호가 되물었다.

“뭐라고요?”

“이 좁은 지역에서 근 석 달 동안 어린이 실종만 네 명을 넘었어.” 서연이 여전히 서류를 뒤적이며 대답했다. “접수된 신고 수 말고, 아직 못 찾은 애들 수가 말이야. 청소년이나 성인의 경우는 더 심각해. 좀 이상하지 않아?”

“지금…… 우리 동네 얘기하는 거 맞는 거예요? 지난번과 같은류의 사건?” 준호가 소파에 앉으며 다시 물었다.

“아니, 다행히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여기 얘기는 맞아. 이 좁은 동네 말이야.”

“음…….” 준호가 신중히 말을 골랐다. “솔직히, 실종사건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거든요. 그냥 들어서는 이게 평소보다 얼마나 심각한 수치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평소엔 한 달에 몇 명 정도 실종되는데요?”

“여기에서? 평소라면 거의 없지. 이건 아주 심각한 수준이야.” 서연이 말했다. “물론 실종 접수야 거의 매일 들어오지. 애들이 없어지면 주변이 통째로 난리가 나니까. 하지만 이 나라에서 1년 동안 접수되는 아동 실종이 약 4만 건 정도 되는 데에 비해 끝끝내 아이를 찾지 못하는 일은 20건 정도뿐이야. 그러니까 엄마 손을 놓친 아이가 ‘진짜’ 실종될 확률은 약 0.05%. 근데 이 좁은 도시에서 석 달 동안 결국 못 찾은 아이만 넷. 이제 이해가 좀 돼?”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난 건 아니지만 경찰도 낌새를 느끼고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어. 사실 정부가 나서서 조사한다고 봐도 되겠지. 문제는 사람들이 이게 아동 범죄에 국한된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까딱하면 애들을 납치하는 정신병자나 비슷한 부류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나 보던데…… 내가 보기에 그 ‘범인’은 애어른을 가리지 않아. 없어진 청소년들을 포함해도 애들보다 어른이, 그러니까 스무 살 넘은 젊은 애들이 더 많이 사라지고 있거든.”

“어어…….” 준호가 의아하게 서연을 바라봤다. “그런데 왜 아동 범죄에 중점을 둔다는 거죠?”

어느새 소파의 등받이 위에 치즈가 올라앉아 있었다. 치즈가 조소를 띈 채 대신 대답했다.

“그야 인간들은 보통 나이를 먹으면 어린애들보다는 판단력도 대처능력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어디서 뭘 하든 알아서 잘하고 있으리라, 제 몸 하나 지킬 수는 있으리라 보는 거야. 어리석어. 실제로 칼 든 살인마 같은 걸 마주했을 때 제 몸 하나 지킬 수 있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어?”

“그러니까 네 말은……. 성인이 없어지는 건 경찰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야?” 준호가 고양이에게 물었다.

“글쎄? 속마음이야 나도 모르지.” 치즈가 더 크게 비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성인 열 명 가까이 사라졌다고는 짐작도 못 하고 있을 거야.”

준호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치즈를 바라봤다. 그가 뭔가 대꾸를 하려는 찰나, 서연이 말을 받았다.

“치즈 말이 어느 정도 맞아. 실제로…… 성인의 경우 웬만해선 실종 접수를 받아주지도 않거든. 하루 이틀은 고사하고 일주일가량 연락이 안 돼도 어지간해선 접수조차 안 받아 줘. 애인이랑 싸워서 주변 연락 다 끊고 여행을 가버린 걸 수도 있고, 집에 처박혀서 잠수를 타는 걸 수도 있잖아. 그냥 가출일 수도 있고, 사회 도피일 수도 있지. 어쨌건 길을 잃어서 집에 못 올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대체로 스스로 실종되어 버린 거라 생각하는 거야.”

스스로 실종된다라. 준호는 말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서연이 계속 말했다.

“실제로 성인 실종자는 ‘단순 가출’로 무사 귀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끝내 돌아오지 않는 소수가 문제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해외로 도피를 하건 음지에서 생활하건, 하다못해 노숙자가 되어버리건 ‘가출’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사람이 또 대부분이지. 경찰의 판단이 마냥 잘못된 건 아니야. 작정하고 숨었거나, 진짜 무슨 일을 당한 거라면, 찾으려고 노력해봐야 실마리조차 찾기 힘들 테니까.”

“알아서 돌아오거나, 어차피 못 찾거나 둘 중 하나란 거군요.” 준호가 되짚었다.

“대충 말하자면 그런 거야.” 서연이 서류를 넘기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겠지만, 소득 없는 노력과 허무함이 반복되면 사람들은 지치기 마련이야. 그렇게 자리 잡은 안일하면서도 효율적인 대처법인 거지. 딱히 이 나라만 이런 것도 아니니 너무 부끄러워할 것 없어.”

“하여간 인간들이란.” 치즈가 꼬리로 소파를 툭툭 치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준호는 뭐라고 한마디 쏘아주려다 꾹 참고 서연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양이와 말싸움을 해봤자 무엇하랴. 서연은 검고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채 여전히 서류를 넘겨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보고 있자, 서연이 그제야 고개를 들고 준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곤 진저리치며 그에게 서류뭉치를 하나를 건넸다,

“뭘 멍하니 보고 있는 거야? 혹시 아는 사람 있는지 한 번 봐봐. 네 또래도 몇 명 있으니까.”

준호는 차근차근 서류들을 훑어봤다. 모두 열일곱 명. 낱장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사람들의 신상 정보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학창 시절의 생활기록부부터 자산 현황, 진료기록서, 가족등본, 근래의 카드 사용내역서 따위가 밑도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너무 방대한 양이라 한 번에 파악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도 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요.” 준호가 서류를 내려놓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정보를 얻는 거예요?”

“오래 산 만큼 정보처가 많거든. 나이는 괜히 먹는 게 아니야.” 서연이 대답했다.

나이라. 준호는 허허 웃으며 서연을 바라봤다. 서연은 안경을 벗어들고는 피곤하다는 듯 살짝 눈을 비비고 있었다. 서연은…… 창백하리만큼 하얀 피부와 검고 긴 생머리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겉보기로는 20대 초반쯤이나 됐을까 싶은 아름다운 미인이었다. 진한 화장만 지운다면 10대 후반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허나 그녀의 나이는 무려 253세.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숫자였다.

하기야, 말하고 날아다니는 고양이도 있는 판인데 불가능할 것도 없긴 하지. 준호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자 서연이 다시 말했다.

“쭉 읽어보면 알겠지만, 없어진 사람들은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나이도 성별도 모두 다르고, 심지어 개개인의 혈액형이나, 병원 기록, 족보까지도 겹치는 게 거의 없지. 경제력도 천차만별이야. 굳이 따지자면 전부 초등학생 이상 서른 살 미만이라는 정도일까.”

치즈가 꼬리를 곤두세웠다. “전부 젊고 싱싱한 육체라는 거로군.”

“그래. 그거 하나가 공통점이지. 그걸로 뭘 할까 싶은 거야. 생각 나는 게 몇 개 있긴 하지만…….”

“장기 밀매인가요?” 준호가 물었다.

“아, 나는 그건 생각도 못 했네.” 서연이 아차 싶은 표정으로 준호를 바라봤다. “그래,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그게 가장 유력할지도 모르지. 흠. 그것도 끔찍한 일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런 거라면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범인을 찾아서 처리하기가 좀 더 수월할 테니 말이야.”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게 있어요?”

“물론이지. 세상엔 생각지도 못한 게 가득 차 있어. 특히나 싱싱한 육체가 대상이라면 더더욱. 그 생명력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고, 제물이나 실험 대상으로 쓰고자 하는 걸 수도 있지. 어쩌면 인간의 ‘고기’ 자체가 필요한 건지도 몰라. 만약 이런 이유 중 하나라면, 뭐가 됐건 꽤 귀찮은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서연은 탐탁지 않다는 듯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딱히 우리 쪽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쯤 되면 나서줘야 되긴 하겠다만 말이야.”


그들은 각자 흩어져 조사를 시작했다. 서연은 물론 치즈마저도 나름의 방법이 있다며 혼자 움직이는 것을 선호했는데, 아직은 상대가 인간이기는 한 것인지 아니면 귀신이나 괴물 같은 종류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니 그게 효율적인 방법이긴 했다. 방법이 서로 다른 만큼, 자신들이 잘 찾아낼 수 있는 정보의 종류도 달랐으니 말이다.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한담.’

준호는 떠밀리듯 사무실을 빠져나와 텅 빈 하늘을 바라봤다.

늘 이런 식이었다. 말하자면 준호는 ‘이쪽 세계’에 막 발을 들인 초짜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치즈도 서연도 그에게 뭐든 하나하나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편은 아니어서, 준호는 대체로 직접 방법을 찾고 부딪혀가며 대부분을 익혀가는 중이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없어진 사람들이 평소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지, 혹 없어진 사람들과 연 닿을 데는 없는지 알아봐 달라 일을 받았으니 그런대로 다행인 편이었다. 하지만 글쎄. 일단 서류만 봐서는 딱히 문제랄게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대체로 경제 상황이 끔찍하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고, 금융사에서 뽑아낸 소비 패턴을 보자면 나름 놀러도 다니고 문화생활도 충분히 즐겼던 것 같았다. 굳이 실종자 중 형편이 가장 좋지 않은 사람을 뽑자면 한 초등학생을 짚을 수 있었는데, 그 아이 역시 생활기록부를 보아선 별다른 문제가 있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연 닿을 만한 사람이라. 준호는 서류를 뒤적이며 고민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실종자도 있으니 출신 학교를 참고하여 주변에 연락을 뿌려보면 한둘 정도 입질이 올 것도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대뜸 남에게 연락해서 ‘요새 실종된 누구를 아느냐’고 물어보기도 좀 뭣하고, ‘그런 친구 아는 사람 주변에 없느냐’고 물어보기는 더 뭣하다는 거였다. 이쪽 세계의 불문율 중 하나가, 일반인들에게 오해받지 않을 평범함과 자연스러움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일일이 안부를 묻는 척 접근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술이라도 한잔 기울이면서 화제를 몰아가야 할까. 아니,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이미 실종된 사람이 열일곱. 그렇게까지 여유로운 사건은 아닌 것 같았다.

준호는 어린아이들의 정보를 훑던 중에야 그럴 법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자주 보는 친구 중에 초등학교 선생님이 한 명 있었다. 다행히 친구의 학교에는 실종 학생이 없었지만, 그라면 분명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았다. 친구가 늘 말하듯 ‘교직’이란 생각보다 생태계가 무척 좁고 소문이 빠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다행히 친구는 준호의 갑작스런 저녁 약속을 흔쾌히 수락했다. 장소는 예전부터 자주 가던 횟집으로, 가게도 조용하고 취기도 빨리 오르니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그만한 곳이 드물었다.

서론은 평범했다. “어쩐 일이래?” 하고 묻는 친구에게, 준호는 “그냥 갑자기 회도 생각나고, 얼굴 본지도 꽤 됐다 싶어서. 야, 벌써 두 달은 된 것 같은데. 요새 별일 없지?” 하고 대답했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부드럽고 흥겹게 흘러갔다. 한동안 못 만난 만큼 밀린 이야기가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회 한 접시가 사라지고 두 번째 국물 요리가 반쯤 사라질 무렵 자리의 분위기는 거의 최고조에 다다랐다. 준호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야 근데 요새…….” 준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애들 사라지고 있다는데 진짜야?”

“뭐야,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 친구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같이 일하는 분 중에 경찰 쪽에 연이 있는 분이 계시거든, 근데 경찰 쪽에서 자제분이 몇 살이냐고 묻더니, 초등학생이라니까 요새 좀 흉흉하다고 자제분 조심하라고 했다는 거야.”

“우리한테는 그렇게 말조심하라고 하더니, 경찰 쪽에서 말이 새고 있어?” 친구가 약간 어이없다는 듯 술잔을 들며 말했다.

준호가 순발력 좋게 건배를 제의했다.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자 친구가 다시 말했다.

“그래, 사실 네 명인가 없어졌지. 지금 비상이야. 이게 쉬쉬해도 될 일인가 싶긴 한데…….”

“뭐야, 요새 정말 애들이 없어져? 근데 어떻게 아무도 몰라?” 준호가 놀란 척 되물었다.

“아니, 그…… 딱 없어졌다기보다는, 조금 애매하거든.” 친구가 준호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이게 너무 어려서 가출이란 걸 할 만한 나이인가 싶기는 한데, 또 얘기 들어보면 가출할 만한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됐건 문제긴 하지만, 여튼 한 학교에서 네 명이 다 사라진 것도 아닌 데다가, 한두 명 가출해서 한동안 학교 안 오는 일, 흔치는 않은데 가끔 있거든. 뭐가 됐건 애들 안 나오면 학교가 뒤집히는 일이긴 한데, 납치범이 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아직 이렇다 하고 범죄가 벌어진 것도 아니니 상황이 좀 애매하잖아? 조심스러운 거지, 주변에 알려져 봐야 학교 측에선 좋을 것도 없고……. 이래저래 언론에서도 아직 잘 모르니 아는 사람도 적은 거지.”

“아하.”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취기가 오른 친구의 말은 약간 두서가 없었지만 못 알 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뭔가…… 애들을 납치하는 범인이 있다면, 돈 말고 원하는 게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어떤 거?”

“가령…… 장기밀매라거나, 아니면 범인이 엄청난 변태라거나.”

“그런 거라면 찾아서 찢어 죽여야지.” 친구가 생각할 수도 없다는 듯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아마 아닐 거야.”

“어떻게 알아?”

“장기는, 사이즈가 일반 성인하고 많이 다를 텐데 효용이 없지 않을까? 그리고 변태 얘기는, 음……. 지금 없어진 애들 중에는 남자애도 있어.”

“야,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남녀 안 가리면 어쩌려고. 그리고 이식 상대도 어린이면, 사이즈 문제는 해결되지 않겠어?”

“아, 난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진 않다.”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아꼈다.

“근데 가출인지 아닌지 애매하다는 건 뭐야?”

“없어진 애들이 이래저래 좀 어려웠거든, 경제적으로 어려웠다는 게 아니라, 물론 그런 집도 있다곤 하지만, 가정사에 문제가 좀 있었지. 이혼가정이거나…… 부모가 알콜, 도박 중독 같은 게 있거나. 아동폭력으로 보호 감찰에 복지사 상담받는 집도 있었고.”

“으흠.”

준호가 괜스레 안주를 집어 먹으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자 친구가 목소리를 좀 더 낮추고 조심스레 말했다.

“아빠가 술 먹고 애랑 엄마를 팬다거나, 술값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해봐. 영화나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그런 설정. 그거 은근히 주변에 있는 일이더라. 외간 남자나 여자를 집에 들이는 집도 있었다는 것 같고, 다 소문이긴 하지만, 아빠가 딸애한테 몹쓸 짓을 했다는 가정도 있었어. 그러다 보니 애들을 그리 소중하게 여기는 집들이 아니니까, 애들이 없어졌어도 막 집에서도 난리를 치며 찾지도 않았고…… 하여간 문제가 많아. 얘기를 들어보면 나 같아도 뛰쳐나갔을 것 같다 싶더라.”

준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본 생활기록부에는 딱히 그런 얘기들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았었다. 이혼했다는 기록은 한 명 정도 있었나? 아니다. 정확하게는 그마저도 생활기록부가 아닌 주민등본에서,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만 살고 있다는 기록을 보고 추측한 것뿐이었다.

“그런 것도 다 기록에 남나?” 준호가 은근슬쩍 물었다

“어떤 걸? 가정환경 같은 거? 에이 설마.”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나중에 취직할 때 생활기록부 보는데 많다. 그렇게 멀리 안 봐도 다음 학년 선생이나 중학교 선생들도 기본적으로 생활기록부 보고 애들 판단하는 거고. 한번 잘못 써놓으면 애들 인생 망칠 수도 있어. 그럼 평생 원수지는 거지. 그리고 그 생활기록부를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냐. 바로 그 학부모야. 애 자체가 정말 심각하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 이상 웬만하면 안 좋은 얘긴 안 쓰지.”

아하. 준호가 추임새를 넣었다. 친구가 다시 말했다.

“어쨌든 우리 학교 애들은 전부 멀쩡히 학교 잘 다녀서 다행이야.”

“아. 너네 학교에는 실종된 애들 없어? 다행이네.” 준호가 짐짓 모른 척 말했다.

“그래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지. 진짜 납치범이 있는 걸 수도 있고. 어쨌든 없어진 학교 얘기 들어보니까 완전 난리 났더라. 우리 학교에서도 나름 범죄 예방 교육도 하고, 안내문도 나눠주고는 하는데 별일 없길 빌어야지.” 친구가 대답했다. 안주를 집어 먹는 친구의 얼굴에서 복잡한 의미를 담은 씁쓸한 미소가 스쳐 갔다.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꽤 오래 이어졌다. 어쨌건 친구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실종된 학생들의 학교생활은 딱히 순탄치 않았던 듯싶었다. 왕따까지는 아니지만, 마냥 인기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이들……. 비교적 친구들 사이에서는 티를 내지 않던 한 아이는, 되려 가정환경이 정말 끔찍할 정도로 비참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친구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준호는 생각에 잠겨있었다. 학교는 이미지 관리차 쉬쉬하는 분위기라. 한기와 불쾌함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것이 오랜만에 잔뜩 들이부은 술 때문인지, 새삼스레 깨달은 사회의 냄새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잘생긴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골목의 난간 위에 살며시 내려앉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늘에서 연기처럼 스르르 나타났다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치즈’라 불리는 이 고양이는, 사무실에서와는 전혀 다른 기품있는 표정으로, 자신의 부드러운 털들을 다시 한번 단정하게 정리한 뒤 천천히 난간 아래를 바라봤다.

아래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햇빛을 쬐며 앉아있었다. 각각 회색과 갈색 줄무늬를 가진 암컷 고양이들로, 치즈가 보기에 회색은 초면 갈색은 구면이었다. 갈색 고양이가 치즈를 보더니 반갑게 눈을 깜빡였다.

“안녕 아가씨?” 치즈가 난간을 가볍게 뛰어내려 암컷 고양이들에게 다가갔다.

“안녕. 오랜만이네.” 갈색 고양이가 꼬리를 세우고는 야릇한 어투로 대답했다.

“어어, 이분이 그…… 맞지?” 회색 고양이가 넋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치즈는 본의 아니게 지역에서 가장 서열 높고 유명한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동네 고양이들의 서열 따위엔 관심이 없는 그였으나, 그를 집고양이라 무시하는 수컷 고양이들의 질 낮은 모욕을 참지 못한 탓이였다. 치즈는 거슬리는 모욕을 들을 때마다 정중하게 결투를 신청했고, 아주 손쉽게 고양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물론 고양이들은 기본적으로 귀신이나 투명한 존재들을 쉽게 감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치즈는 아예 몸 자체를 연기처럼 만들어 사라져 버릴 수 있었으니, 이는 보통 고양이들이 당해 낼 수 없는 종류의 능력이었다. 대결이 시작되면 고양이들은 치즈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우연히 치즈가 있는 곳에 발톱을 들이민다 해도 연기처럼 변해있는 치즈에게 이렇다 할 타격이 들어갈 리 없었다. 모든 결투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끝이 났다. 사실 처음부터 이 근방에 치즈를 이길 수 있는 고양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지금 회색 고양이가 치즈를 빤히 바라보는 이유를 서열에 대한 소문 때문만이라 단정할 순 없었다. 잘 관리된 윤기 나는 털과 뚜렷한 얼굴선, 그리고 날아다니는 고양이라는 점에서 그는 이미 지역의 암컷 고양이들 사이에서는 알아주는 유명인사였으니 말이다.

치즈가 우아하게 주변을 맴돌자 갈색 고양이가 물었다.

“어쩐 일이야? 이런 대낮에 이런 누추한 곳까지.”

“좀 흥미가 당기는 일이 있어서.” 치즈가 말했다. “혹시 요근래 이상한 인간 본 적 있어?”

“인간?” 갈색 고양이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인간들이야 항상 이상하지.”

“물론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수상한 인간 말이야.” 치즈가 부드럽게 웃으며 꼬리로 갈색 고양이의 목을 간질였다. “이 부근에서 인간들이 자꾸 사라져서, 귀찮지만 좀 도와줘야 할 것 같거든.”

“괜스레 항상 바쁘네.” 갈색 고양이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정말 별달리 특이한 걸 본 적은 없는걸.”

“그래?” 치즈가 별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혹시 뭔가 이상한 게 보인다 싶으면 얘기해줘. 귀신 같은 것들도 좀 기가 세다 싶으면 말해주고.”

“특별 한 건 못 봤어도 내가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해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생각 없어?” 갈색 고양이가 갸르릉 소리를 내며 치즈에게 다가섰다.

“끌리는 제안이지만, 지금은 조금 바빠서.” 치즈가 피식 웃으며 난간 위로 뛰어올랐다. “일단 기억은 해두지.”

“기대하고 있을게.” 갈색 고양이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치즈는 바람을 살피며 도약을 위해 몸을 웅크렸다. 그가 하늘로 사라지려는 찰나, 그를 빤히 바라보던 회색 고양이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저기……, 저 요새 날아다니는 인간들이 있다는 얘길 들었어요.”

치즈가 몸을 멈추고 회색 고양이를 빤히 바라봤다. “날아다닌다고? 어떻게?”

“저도 건너건너 들은 거라 잘은 몰라요.” 회색 고양이가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흐음.” 치즈는 자세를 고쳐 선 뒤 부드럽게 회색 고양이와 눈을 맞췄다. “그 얘기 좀 더 자세히 해 줄 수 있어?”

회색 고양이의 이야기는 정말 그것으로 끝이었다. 요근래 하늘을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을, 동네 놀이터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옆 동네 수컷 고양이에게 들었다는 거였다. 그 수컷 고양이는 직접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본 것 같다고도 얘기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고마워.”

치즈는 감사의 표시로 회색 고양이의 얼굴을 살짝 핥아 준 뒤 빠르게 옆 동네로 날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회색 고양이가 말했던 수컷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근방의 적지 않은 고양이들이 사람들이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나 실제로 봤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양이들이 대답했다.

“가끔 밤에 나타나.”

“북쪽으로 가던걸요?”

“한 번 보기야 했지. 하지만 그뿐이야. 얼마나 자주 날아다니는지야 나도 모르지. 하루종일 하늘 만 보고 있는 것도 아니고.”

“짝을 지어서 날아다니던데.”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래? 난 남자만 두 명 날아다니는 걸 봤는데.”

“아냐. 난 한 명 밖에 못 봤는걸?”

등등. 진술을 서로 약간씩 엇갈렸지만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그들’이, 근래의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수상했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생각에 잠긴 치즈는 몇 번이고 꼬리로 바닥을 내리쳤다.

치즈는 사방을 돌아다니며 밤새도록 고양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전통적인 체셔 고양이의 수사법에 따라, 적어도 그가 날아다니는 사람들을 혹은 이상한 뭔가를 찾고 있다는 소문이 온 동네 고양이들에게 퍼질 수 있도록 말이다.


다음 날 아침, 준호는 서서히 차가워지는 늦가을의 날씨를 느끼며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서연은 아직도 서류에 집중한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큰 소리를 낸 것도 아니건만, 서연은 다 보고 있다는 듯 준호가 들어서자마자 질문을 던졌다.

“어때? 뭐 좀 알아본 것 있어?”

“대단한 걸 알아 온 건 아니고요. 친구 중에 초등교사가 한 명 있는데 만나보고 왔어요.” 준호가 대답했다.

서연이 초등교사라는 말에 고개를 들고 눈빛을 반짝였다.

준호는 약간 부담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없어진 학생들의 가정사가 썩 좋지 않았었나 봐요. 대놓고 티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알게 모르게 말이죠. 그래서인지 학교생활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었고요.”

“서류에는 그런 얘기 없었잖아?”

“좋지 않은 얘기는 웬만하면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다더라고요. 그리고 수준이 좀 애매했나 봐요. 아동학대는 분명하지만, 신고되어 기록에 남은 적은 없는, 뭐 그런 상태 말이에요. 그래서 학교 측에서도 실종보다는 ‘가출’이라는 개념으로 밀고 있나 봐요.”

“없어진 애들 중에 초등학교 2학년생도 있지 않아? 그 나이 애들도 가출을 해?”

“글쎄요. 좀 말이 안 된다 싶기는 한데, 요즘 애들은 성숙이 워낙 빠르기도 하고……. 또, 학교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실종보다는 가출이 이미지 관리에 더 좋다는 것 같아요.”

“하, 정말이지…….” 서연이 혀를 차며 한탄했다. “어쨌든 결론은 없어진 애들이 생각보다 힘들게 살고 있었다 그런 거지?”

“네. 일단 건너건너 확인한 이야기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것 같아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어린 애들조차 그랬다면…….” 서연이 인상을 쓴 채 책상 위의 서류들을 뒤적였다. 따로 분류되어 파일철에 담겨있는 서류들은 얼핏 보아도 전날보다 양이 세 배는 많아 보였다. 서연이 파일철 하나를 골라내 준호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이거랑 관련된 것 같단 말이지.”

“이게 뭐죠?”

준호가 의아한 표정으로 파일을 받아들었다. 서연은 열어보라는 듯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했다.

준호는 뭔가 끔찍한 사진이라도 나오려나 싶어 마음을 졸이며 파일을 열었다. 하지만 안에는 묘한 색상의 액체가 담긴 유리병 사진이 가득할 뿐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각 액체의 효능과 가격, 거래 경로 따위가 적혀있었다.

“사랑의 묘약……? 이라고요?” 준호가 서류를 넘기며 되물었다. “진실의 술, 최음 향초……. 이게 다 뭐예요?”

“대충 넘기지 말고 자세히 읽어봐.”

“어……, 네.” 준호가 다시 서류를 앞으로 넘기며 대답했다. “사랑의 묘약……. 효능 기간 약 1년. 나누어 마신 두 사람을 자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아니, 그거 말고.” 서연이 말을 끊었다. “만드는 재료를 봐봐. 뭔가 이상한 것 없어?”

“음.”

준호는 말을 멈추고 재료를 눈으로 훑었다. 하나같이 이상한 것들뿐이었다. 비둘기의 자궁, 참새의 간, 토끼의 신장, 엉겅퀴, 수탉의 꼬리털, 수컷 알라우네(만드라고라)의 뿌리, 스스로 죽은 자의 심장…….

“스스로 죽은 자의 심장?”

“그래, 바로 그거야.” 서연이 말했다. “거기에 있는 약들은 모두 인간을 재료로 쓰는 약들이야. 대표적으로 심장으로는 사랑의 묘약을, 눈알로는 투명해지는 물약 따위를 만들지. 그런데 인간을 재료로 쓰는 건 무척 까다로운 일이야. 웬만한 인간은 재료로 쓸 수 없거든. 스스로 삶의 의지를 저버린 육신만이, 저런 희한한 약을 만드는 재료로 쓰일 수 있어.”

“으음…… 어째서 그렇죠?”

“글쎄? 세상에 정말 신이란 게 있다면, 그 신이 악취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서연이 묘한 미소로 말했다. “살 의지를 포기한다는 건 자신의 육신을 포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러면 우습게도 그 ‘육신’ 또한 그 사람을 배신해 버리지. 평소에는 온몸이 자신의 주인만을 위해 똘똘 뭉쳐 살아가지만, 주인이 자신들을 버릴 경우, ‘육신’ 또한 주인을 버리고 세상에 좀 더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자신의 형질을 변화시켜버리는 거야. 그러면 그제야 남들이 뜻대로 그 부분 부분을 쓸 수 있게 되는 거지. 신기하지 않아? 사람마다, 처한 환경마다 다르겠지만 우울 속에서 매일 죽음을 고민한다면 그렇게 몸이 변하는데 보통 1년이 채 걸리지 않을 거야. 성격이나 삶의 경로조차도 훅훅 바뀌는 어린애들은 그 기간이 더 짧을 테고……. 아니다. 기간의 문제를 떠나서 애들은 본인의 주관이 뚜렷하지 않으니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위험할 수도 있겠다. 나이가 어릴수록,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을 기준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판단하잖아? 부모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했다면, 그 아이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지금 굳이 이런 얘기를 하신다는 건……” 준호가 불안한 얼굴로 말을 골랐다. “실종된 사람들이 해부되어 재료로 쓰였을 거라 보시는 건가요?”

“애석하게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 이 근방에서 사람들이 사라진 세달동안 동안 보여준 약들이 국내에 꾸준히 유통되고 있었어. 말했다시피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거든. 생각해봐. 재료라는 건 항상 신선도가 무척 중요하잖아? 이것도 마찬가지라고, 심지어, 요즘같이 보는 눈이 많은 세상에선 누가 자살을 했다 쳐도 냉큼 달려가서 장기를 빼 올 수는 없단 말이야. IMF 기간에도 이런 약의 공급율은 조금밖에 변하지 않았었어. 이런 꾸준한 유통은…… 누군가 미리 수를 쓰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 자살할 법한 사람들을 미리 선별해 놓는 걸까? 그리곤, 뭘 어떻게 하는 거지?”

비교적 무덤덤하게 말을 이어가는 서연과 달리 준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네 의견이 어느 정도 맞았네. 장기 밀매라. 인간을 물건 취급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서연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성인은 그렇다 쳐도 실종된 어린애들마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을 것 같진 않아요. 그리고…… 납치나 살해를 당했다면 그건 자살이 아니잖아요.”

“나도 그 부분을 잘 모르겠단 말이야. 하지만 스스로 죽는다는 의미가 문자 그대로 직접 목숨을 끊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닌 거든, 계속 나쁜 생각을 하면 몸의 형질이 변한다고 얘기했지? 그런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다면 아마 다를 바가 없을 거야. 아이들은…… 아마 네 말대로 스스로 ‘진짜 죽음’을 택하진 않았겠지. 그게 뭔지도 제대로 모를 테니까.”

서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깐 준호의 눈치를 살폈다. 그녀는 본인의 눈썹을 매만지며 천천히 다시 말했다.

“평소에 우리는……. 사실 이런 약품의 제조를 딱히 제제하지 않아. 물론 공식적인 거래는 불허하고 있지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의 시신까지 우리가 보호해 줄 의무는 없다고 보거든. 하지만 이번 사건은 아직 죽지 않은 자를, 아직 스스로 최종 선택을 하지 않을 자를 죽여가며 약을 만들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여.”

“세상에.” 준호가 신음했다. “여긴 대체 어떻게 되먹은 세계에요?”

“우리 세계만 그렇겠어? 옛부터 인간들은 알게 모르게 이렇게 살아왔어. 그냥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도 더한 일이 많았지.” 서연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가능성이 높다 뿐 확실한 건 아니야. 아직 의문점이 있잖아. 생각해봐. 우리 가설대로라면 범인은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을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 흔한 예로 자살카페라는 거 알아? 거기엔 죽고 싶다고 외치는 사람은 가득한데, 실제로 정말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삶이 외롭고 힘들어서,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밑바닥의 공감을 위한 카페랄까. 죽고 싶다고 매일 말하고 어렴풋이 생각은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 죽음이 무섭고 삶에 미련을 가진 사람들이란 말이야.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지. 그들 중에서 정말 죽고 싶은 자들을 구별해 낸다는 건 전혀 쉽지 않은 일이야.”

“으흠.” 서연이 말을 마치자 불현듯 치즈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치즈의 머리가 스르르 나타나는가 싶더니 곧 온몸 전체가 모습을 드러내 공중을 떠다녔다. “어쩌면 그럭저럭 죽고 싶어 보이는 사람들은 일단 다 죽여보고, 쓸만한 재료만 취하는 걸지도 모르지.”

“그 정도까진 아니길 바라야지.” 서연이 말했다. “언제 도착한 거야?”

“뭐, 조금 전에. 어쨌건 우리의 실종자들은 결국 산산이 조각나 약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거군. 하여간 인간들이란. 동족에게까지 손대는 버릇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하군그래.”

치즈가 푹신한 방석 위에 자리 잡으며 옅게 비웃었다.

“미안하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서연이 치즈에게 양손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거 굉장히 의미 없는 사과로군.”

“뭐 어쩔 수 있나. 나라도 사과해야지.” 서연이 그만 하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래서, 뭐 좀 알아낸 것 있어?”

“우선 누군가 투명한 상태로 밤하늘을 날아다닌다는 것. 도시 북쪽에 거처가 있을 거라는 것. 그리고 사람을 하나씩 홀려가는 범인이 아마 젊은 남자라는 것.”

치즈가 방석에 볼을 기대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날아다니는 남자라고?”

서연이 되물었다.

“그래. 이미 목격자가 꽤 되던걸?” 치즈가 말했다. “물론 남자가 범인이라고 콕 짚는 증언이야 없었지. 하지만 남자 여자가 쌍을 이뤄서 날아가거나, 남자 둘이 함께 날아가거나, 심지어 남자 혼자 날아다니는 걸 봤다는 증언은 많지만, 여자 둘이, 혹은 여자 혼자 날아갔다는 얘기는 들을 수가 없었어. 그렇다면 뻔하잖아? 범인이 사람들을 한 명씩 홀려서 계속 날라댄 거라면 남자가 범인이겠지.”

“목격자라뇨?” 준호가 물었다.

“당연히 인간을 얘기하는 건 아니야.” 치즈가 대답했다.

“날아다니는 남자라니. 설마…….” 서연은 인상을 찡그린 채 다시 물었다. “범인으로 추정된다는 그 남자. 용모는 어떻데?”

“글쎄. 인간의 입장에서 보자면 꽤 훌륭한 편이라더군.” 치즈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서연은 허를 찔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말했다.

“지금 피터팬이 떠오르는 건 나뿐이야?”


“안녕 얘들아?”

아름은 오늘도 쪼그려 앉아 고양이들에게 인사했다. 그녀의 작은 원룸 앞 좁은 골목에는 언제나 그녀를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잔뜩 있었다. 오늘은 다섯 마리나 되는 고양이들이 그녀를 향해 눈망울을 빛내고 있었다.

아름이 간식을 꺼내 앞으로 내밀자, 고양이들은 앞다투어 그녀의 손을 향해 달려들었다.

“괜찮아 너희 다 먹을 만큼 충분히 있어.” 그녀가 작게 얘기했다.

물론 고양이들이 말을 알아 들을 리는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 한 마리가 급한 마음에선지 발톱을 세워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 피가 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옅은 생채기가 몇일은 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름은 그마저도 그러려니 받아들이며 고양이들을 위해 간식을 계속 손에 올렸다.

주변 주민들은 그녀가 고양이들을 챙기는 걸 반기지 않았다. 그녀 탓에 계속 고양이들이 근처에 모여들어선 밤마다 울어대고, 쓰레기 봉지를 헤집는다는 것이었다. 아름은 자신의 행동이 주변 주민들을 불편하고 불쾌하게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고픈 고양이들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미 한밤중에 몰래 숨어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건 그녀에게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였다.

어쩌면 그녀의 삶을 잡아주는 게 고양이들뿐이기 때문일까. 그녀는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중에는 그녀를 반기고 사랑해주는 이가 없었다. 이 고양이들만이 자신을 반겨주는 유일한 존재들이었다. 사실 그녀보다는 그녀의 손에 담긴 먹을 것을 기다리는 거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고양이들의 예쁜 눈빛에 위안을 받았다.

간식이 다 떨어지고서야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그리곤 불조차 켜지 않은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며 공허함에 눈시울을 붉혔다.

아름은 가끔 자신의 우울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깊이 고민했다. 아마 2년을 넘게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일 년 전쯤부터였을 것이다. 그를 너무 사랑해서였을까. 이성적으로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감정은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았다. 벌써 스물네 살이나 먹었는데……, 젠장 할. 사춘기 때도 이보다는 덜 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더 이상 쓸모없는 사람인 것만 같아서 서서히 삶에 의욕을 잃고 있었다. 타고난 감수성이 오히려 독이 되어 그녀의 몸을 갉아 먹고 있었다.

2년을 만나는 동안 남자친구는 신기하게도 그녀의 전부가 되어있었다. 그를 만나느라 가족과도 친구와도 멀어진 탓에 기댈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 거대한 축을 잃은 지금, 그녀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사실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는 그럭저럭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모두가, 그녀와는 동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차라리 죽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아름이 얼굴을 감싸 쥐며 생각했다. 그녀는 요즘 이런 생각에 빠져 살고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있는데 불현듯 깜빡이며 방안의 불이 켜졌다. 아름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주변을 둘러봐도 방안에는 그녀뿐이었다. 며칠간 정리를 안 해 여기저기 걸려있는 옷가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도 그대로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뿌연 안개 같은 것이 방안에 가득하다는 거였다.

그녀는 손으로 안개를 휘저어보며 어리둥절하게 침대에 앉아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창문에서 똑똑하고 작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름은 홀린 듯 일어나 창문을 바라봤다. 창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창문이 스르륵 저절로 문을 열었다. 약간 차가운 공기가 훅하고 들어오고, 다시 탁 소리를 내며 창문이 닫혔다. 놀란 아름은 자신의 볼을 세게 꼬집어 봤다. 아픔이 느껴지지 긴 커녕 살짝 멍하게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아, 꿈인가. 그녀가 생각했다.

“안녕?”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자 웬 잘생긴 남자 하나가 침대에 앉아있었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너무 오랜만이지? 잘 지냈어?”

아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를 빤히 바라봤다. 너무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라서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하지만 분명 당황스러워야 맞을 텐데, 어쩐지 그립고 안도되는 느낌이었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는 것도 같았다. 가까스로 숨을 들이켜자 방안에 가득한 안개가 그녀의 폐 속으로 더 깊이 빨려들었다. 안개가 폐를 채우는 만큼 그녀의 감정도 울컥 치밀었다.

그녀는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손을 마주 잡았다. 남자는 아름을 끌어당겨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는 남자의 손길에, 아름의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취한 듯 정신이 흐릿했다. 남자에게 달콤한 뭔가를 받아 받아 먹었던 것도 같은데……. 아름은 어느 순간 홀린 듯 창문을 열고 나와 남자와 함께 밤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 사이로 차도의 불빛이 빠르게 흘러갔다. 아름은 멍하니 두 눈을 꿈뻑이다가, 자신의 손을 꼭 쥐고 함께 날고 있는, 이름도 모르는 아름다운 남자에게 멍청히 물었다.

“이건 꿈이야?”

“글쎄. 어땠으면 좋겠어?” 남자가 되물었다.

“꿈이라면…….” 아름이 말을 흐렸다. 그녀는 반쯤 졸다시피 꾸벅거리고 있었다. 한참 만에야 어렴풋이 정신이 든 그녀가 다시 대답했다. “꿈이라면…… 깨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 내가 깨지 않게 도와줄게”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아름은 뜬금없게도 자신을 보고 울어대는 고양이들을 본 것 같았다. 안돼, 오늘 간식은 다 떨어졌어. 아름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이렇게 관리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무슨 말인지 이해 안 돼? 괜히 겁먹어서 살려달라느니 하면 안 된단 말이야!”

“어차피 지금 데려오지 않았으면 혼자 죽었을 거야. 방에서 약이라도 먹고 뻗어 버리면, 대체 시체는 어떻게 들고 올 건데? 그럼 어차피 못 쓴다고. 일단 데려왔으니까 다음에 써보고 약빨 안 받으면 그냥 버리면 되잖아.”

“다음에 써보고? 꼬맹아. 넌 내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이니? 지금 남은 것도 한참 작업해야 한단 말이야!”

“나도 쟤 데려오느라 하루 종일 얼마나 고생한 지 알아? 냄새나는 집에 숨어있는 것도, 가스 마시면서 맨정신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 아니라고. 어쨌든 일단 데리고 왔으니까 그냥 좋게좋게 좀 쓰자.”

아름은 시끄럽게 티격대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어디에 누워있는 건지 사방은 어두운 데다가 온몸이 차갑고 뻣뻣했다. 입에는 텁텁한 모래가 묻어있었다. 그녀는 한참 만에야, 자신이 포장도 안 된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팔과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팔은 등 뒤로 꺾여있는 데다 다리는 고스란히 포개진 채 무릎과 발목이 묶여있는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지? 공포에 휩싸인 그녀가 소리를 질렀으나, 애석하게도 재갈까지 물려있는 그녀의 입은 “으읍! 으읍!‘하는 정체불명의 신음만을 흘려 낼 뿐이었다.

하지만 아름의 신음이 옆방까지는 무리 없이 도달한 것 같았다. 옆방에서 티격대던 소리가 뚝 끊기고, 누군가가 그녀가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그 중 더 키가 큰 쪽이 벽을 더듬어 탁! 하고 불을 밝혔다.

붉은색 전구에 불이 켜지자 조금은 주변이 분간되었다.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조금 전까지 함께 하늘을 날던 잘생긴 남자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생전 처음 보는, 게다가 여태껏 본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여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약간 난처한 표정으로 여자는 불쾌한 표정으로 아름을 바라봤다.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아름이 남자를 향해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주변을 보고 놀라 숨을 삼켰다. 그녀는 창문 하나 없는 넓은 방구석에 엎어져 있었다. 아무것도 깔려있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 위로는 붉은 핏자국이 도배 되다시피 물들어있는 데다 방 한쪽 구석에는 썩은 살점이 붙은 큼지막한 뼈다귀들이 잔뜩 늘어져 있었다. 벽 둘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계와 덩어리들이 위협적으로 서 있었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뒤집힌 채로 그녀의 눈앞에 매달려있는 시체였다.

시체는 바지와 셔츠로 보이는 천 조각이 없었다면 사람이라곤 생각지도 못했을 몰골로 늘어져 있었다. 팔과 다리가 하나씩 없는 것은 고사하고, 그 얼굴이, 그 머리가 너무도 충격적이고 기괴한 상태로 방치되어있었다. 눈알 없이 텅 빈 눈두덩과, 무언가에 찍혀 버린 듯 반으로 갈라진 턱이, 피범벅이 된 채 괴물처럼 벌어져 아름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도 꿈인 걸까. 꿈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하고 더 없이 실감 나는 꿈이었다.

“봐봐, 벌써 깼잖아. 남은 재료 다 쓸 동안 마취를 시켜놓으라는 게, 그게 말이니?” 여자가 투덜댔다. “내가 쟤라면 지금 여길 보는 순간 살려달라고 싹싹 빌 거야. 그럼 아무리 싱싱해도 소용없다고.”

“아 진짜. 이러나저러나 못 썼다니까.” 남자도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정 그러면 내가 쓸 수 있게 만들어줄게. 고문이든 뭐든, 차라리 죽고 싶게 만들어버리면 되는 거 아니야?”

분명히 같은 목소리건만. 아름을 벌레 보듯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은 방안이나 밤하늘을 날면서 보았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아름이 벌벌 떨며 남자를 보고 있자 그가 아름의 눈앞으로 다가와 쪼그려 앉았다.

“여기서 좀 쉬고 있어.” 남자가 씩 미소지었다. “피차 서로 피곤한 일 만들지 말자.”


실종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범인이 어떤 자인지도 윤곽이 나왔건만 수사는 그 뒤로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 사이 범인은 성인 남자 하나를 더 데리고 사라졌어. 대체 어디일까.” 서연이 지도를 두드리며 이를 갈았다.

그들은 치즈의 조사를 바탕으로, 그러니까 고양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수사망을 조금씩 좁혀가는 중이었다. 의심되는 지역은 도시 북부의 몇몇 동네들. 그리 넓은 지역도 아니고 좁다면 좁다고도 할 수 있는 범위였지만, 그 안의 솟아있는 수많은 건물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답이 나오지는 않는 범위였다.

‘피터팬이라…….’

준호가 손에든 책장을 넘기며 되뇌었다. 서연은 범인을 피터팬이라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피터팬’이 마법처럼 현실에 나타났다는 게 아니라, 준호나 서연처럼 ‘동화’의 운명을 타고난 누군가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 가설은 범인이 약을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선별하고 있다는 가설과 맞닿는 부분이 있었다. 서연은 본인이 동화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을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는 것처럼, 피터팬의 운명을 타고난 자들은 나약하고 새로움을 갈망하는 자들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그 나약함을, 본인의 즐거움과 이기심을 위해 이용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가설에도 문제는 있었다. 범인이 진짜 피터팬이라 할지라도 그가 어떻게 약을 만들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약은 만드는 것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재능이나 마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본디 피터팬이란 마법 용품을 이용할 줄은 알아도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과는 심히 무관한 운명이었다.

그들이 생각한 해답은 간단했다. 동업자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피터팬은, 단순한 재료 수급책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처음에 준호는 의문점이 있었다. 그는 범인이 피터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피터 팬이라고 하면, 좋은 캐릭터 아니에요? 어린이들의 친구 뭐 그런 거?”

그러자 서연은 “성인이 돼서 피터 팬을 다시 읽어 본 적 있어? 어린이용 동화 말고, 제대로 된 원작으로 말이야. 피터팬 그 새끼는 완전 미친놈이야.” 하고 곧바로 되받아쳤다.

얼마나 심각하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까. 준호는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피터팬’을 사서 읽는 중이었다. 서점을 몇 군데나 들렸지만, 서연의 말대로 어린이용으로 각색된 책이 대부분이라 원작에 가까운 도서를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어쨌건 그는 서점을 세 군데나 들린 끝에 비교적 그럴싸한 책을 구할 수 있었고, 곧 서연이 한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책을 다 읽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피터팬이란 인물은…… 상습 유아 납치범에, 사람을 죽이고 과시하는 살인마, 본인의 감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희대의 사이코패스였다.

‘하기야, 동화에서 제대로 된 주인공이 있기야 하겠냐마는.’

준호 자신과 서연의 운명 또한 마냥 정상이라고는 볼 수 없지 않던가.

야옹-

준호가 딱 책의 막바지를 읽고 있을 무렵 사무실의 문 쪽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가 준호가 듣기에도 다급한 느낌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문을 긁는 소리도 들려왔다.

쿠션 위에 늘어져 있던 치즈는 어느새 문고리 위에 둥둥 떠 있었다. 치즈가 앞발로 문고리를 꾹 누르자, 양말을 신은 듯 발목 아래만 새하얀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두 고양이는 그들만의 언어로 재빠르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검은 고양이는 치즈의 주위를 돌며 한참을 울어댔고, 치즈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게 소리를 내었다. 서연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이 친구 밥 주는 사람이, 좀 전에 창문 밖으로 날아갔대.” 치즈가 대답했다.

검은 고양이는 ‘여인’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자마자 치즈에게 달려왔기에 여인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들은 우선 여인의 거처를 확인하기로 결정했고, 그곳이 길이 복잡한 원룸촌이라는 이야기에 오토바이를 이동수단으로 선택했다. 서연과 준호는 각자 치즈와 검은 고양이를 외투 안에 담고 여인이 살았던 장소를 향해 급하게 엑셀을 당겼다.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하지만 구석진 곳에 위치한 작은 빌라였다.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니었건만 원룸촌은 별다른 인기척도 없이 조용했다. 3층이라고 했던가. 여인이 살았던 방의 창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게 보였다.

“여기에 뭔가 목격한 다른 고양이는 없을까?”

서연이 치즈에게 물었다.

치즈가 검은 고양이에게 무엇이라 말을 걸자, 검은 고양이가 크고 구슬프게야옹하고 울어댔다. 그러자 곧 주차된 차량의 바퀴 아래와 돌담 위에서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사방에서 나타난 고양이들은 저마다 할 말이 있는 듯 제각기 야옹야옹 소리를 높였다.

“뒤로 돌아! 북쪽! 북쪽으로 갔대!” 치즈가 소리쳤다.

“어딘지 알아?” 서연이 물었다.

“아직! 일단 달려!”

치즈의 외침에 준호와 서연은 바퀴를 돌렸다. 준호의 품속에 있는 검은 고양이가 크게 울자 주변에서 다른 고양이들도 크게 울었다. 고양이들은 준호와 서연의 오토바이를 호위라도 하듯 그들을 따라 달리며 울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달리자 치즈가 방향을 지시했다.

“여기서 왼쪽!”

그건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분명 고양이들보다 오토바이의 속도가 빠를 텐데도, 주변에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검은 고양이의 울음에 맞춰 고양이들이 합창하듯 소리를 높였다. 자세히 보니 옆에서 달리던 고양이들이 뒤처지는가 싶으면, 또 다른 고양이들이 앞에서 붙어 그들 주위를 달리고 있었다. 강아지나 늑대의 하울링이 전염성을 가지듯 고양이들의 합창도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이 시끄럽다며 고양이를 욕하는 소리가 종종 들려왔지만, 그마저도 ‘야옹’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너무 큰길로 가면 안 돼. 사거리에서 우회전! 골목으로 가!” 치즈가 외쳤다.

준호는 그때야 깨달았다. 주변을 달리는 고양이들은 그들에게 여인이 날아간 경로를 알려주고 있는 거였다. 당장 목적지를 몰라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십여 분을 달리자 치즈가 “여기야!”라고 소리쳤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커다란 오피스텔 앞이었다. ‘유치권 행사 중’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을 달고, 붉은 락커로 몇몇 개의 욕이 적혀있는 그 건물은, 주변의 다른 아파트나 오피스텔과 달리 불 켜진 창문 하나 없이 휑 덩그러니 서 있었다.

오토바이가 멈춰 서자 준호의 품에 있던 검은 고양이가 빠르게 튀어 나가 오피스텔을 향해 달려갔다. 유리로 된 출입구의 손잡이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잠겨 있었지만, 고양이는 문 틈새로 마술처럼 미끄러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주위에서 달리던 고양이들도, 조금 뒤처져 늦게 도착한 고양이들도 건물 안으로 속속들이 들어갔다.

그리고 서연은, 당장이라도 자물쇠를 끊어 낼 기세로 품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애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막 제조된 약품을 유리병에 옮겨 담았다. 지금이 작업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향긋한 냄새와 청아한 색깔을 보고 있자면, 작업대에 어질러진 찌꺼기와 뼛조각을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람의 시체를 재료로 썼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사람을 죽이고 눈알이며 장기를 뽑아내는 일에 익숙지 않았다. 피비린내도 별로였고, 꿈틀거리는 장기들은 볼 때마다 비위가 상했다. 하지만 익숙지 않다뿐이지 못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이 작은 약병 하나가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고 생각하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는 고통이었다. 돈뿐이던가. 그녀는 스스로 만든 약으로 젊음과 아름다움까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남은 가족도, 별다른 삶의 의미도 없이, 홀로 방에 앉아 죽을 날만 기다리던 그녀에게, 남자들이 줄을 서는 아름다움과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사치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일주일간의 작업 끝에 오늘 만들어낸 약은 총 7개. 동업자인 민우에게 줘야 하는 물약 두 개와 자신의 것 하나, 계약을 위해 모아둬야 하는 하나를 제외하고서라도 총 호가 1억 원이 넘는 물량이었다.

약을 다 옮겨 담은 애영은 손을 씻으며 선반에 늘어선 붉은 물약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사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 스스로를 위한 아름다움의 명약이었다. 약은 사람을 죽여 나갈 때마다 하나씩 늘어났다. 그만큼 그녀의 아름다움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녀는 매일 한 번 씩 자식을 돌보듯 사랑스러운 눈으로 약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었다.

그렇게 약들을 세고 있는데 주변에서 갑작스레 이질적이고 신경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애기 울음소리 같기도 한 그것은…… 고양이의 울음소리였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 고양이 따위 있을 리 없는 이 고층 건물 내부에서 들려왔다. 한두 마리 같지도 않았다. 갑자기 뭐지?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작업실을 나섰다.

“무슨 일이야?” 애영이 물었다.

민우는 거실 소파에 늘어져 눕듯 앉아있었다.

“나도 모르지. 좀 전부터 이래.” 그가 대답했다

덜컥덜컥, 그때 누군가 거처의 현관문을 잡아당겼다. 애영과 민우는 예기치 못한 불길함에 행동을 멈추고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문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덜컥덜컥, 또다시 문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문밖의 누군가가 거칠게 현관문을 뜯어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현관문의 문고리가 빠직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갔다. 그리고 웬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안으로 들이쳤다.

“안녕 범죄자들?” 들이친 여자가 차갑게 미소지었다.

“뭐야? 당신들 뭐야?” 민우가 잔뜩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세히 보니 여자와 남자의 손에는 작은 칼이 하나씩 들려있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역시 혼자가 아니었구나. 우선 몇 가지 물어보고, 내가 납득 할 수 있는 대답이면 아무 일 없을 거야. 미리 말해두지만 너희한테 묵비권은 없고, 내가 납득할 수 없다면 너희는 협회 재판소에 송치될 테지. 뭐, 대답하지 않겠다면 무력행사에 들어가겠어.”

저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런 위압감이 나오는지 애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자가 내뿜는 기운은 살벌할 정도로 진짜였다. 여자는 민우와 애영을 노려보다가, 애영의 뒤편에, 미처 닫지 않은 작업실 문 너머의 광경을 빤히 바라봤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일단 묻는 말에 성실히 대답해라.”

눈치를 보던 민우가 붕 뜨더니 창문 쪽으로 튀어 올랐다. 몸은 이미 반쯤 투명해져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민우보다 여자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그녀는 한 손으로 민우를 낚아채 옆에 있는 문을 향해 집어 던졌다. 쾅! 하고, 문이 박살 나며 민우가 안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공교롭게도 그곳은 그들끼리 ‘창고’라고 부르는, 빼도 박도 못 할 몹쓸 짓의 증거가 가득한 방이었다. 방 안쪽에 매달린 시체의 윤곽이 애영에게까지 어렴풋이 보였다. 여자가 혀를 찼다.

“그런데 너네 꼬라지를 보니 재판은 거의 확실할 것 같다.”

여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갯짓으로 애영을 가리켰다. 그러자 이번엔 여자의 뒤에 서 있던 남자가 딱딱히 굳은 얼굴로 애영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애영은 서둘러 방으로 도망쳐 문을 잠갔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지!’

애영이 발을 굴렀다. 행동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어디서 온 것인지는 몰라도 그들을 잡으러 온 자들인 건 분명해 보였다. 애영은 스스로가 저지르던 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여기서 잡힌다면 어떤 벌을 받게 될지 감조차 제대로 오지 않았다.

남자가 벌써 문에 도착했는지 문고리가 덜컥거렸다.

보통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그 흔한 나무문은 애영을 오래도록 지켜 줄 것 같지 않았다. 애영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꽉 막힌 방안에는 숨을 곳도 도망칠 곳도 없었다. 작게 뚫린 창문 하나가 외부로 나가는 단 하나의 통로였는데, 이곳은 3, 4층도 아닌 13층의 어마어마한 높이였다.

순간 애영의 눈에 민우에게 줘야 할 물약들이 눈에 띄었다. 투명해지는 약과, 하늘을 날게 하는 약이었다. 그녀는 순간 저 약들을 이용하면 이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영은 두 약을 집어 들고는 숨 쉴 틈도 없이 목으로 들이밀었다. 달콤한 액체가 혀를 감도는가 싶더니 몸이 살짝 뜨거워지고 가볍게 붕 뜨는 느낌이었다. 양손의 손가락도 조금은 옅어진 것 같았다. 능력들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는 잘 감이 오지 않았으나, 이런 상태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문밖의 남자가 연거푸 문을 차댔다. 문은 두어 번 만에 우지직 소리를 냈으나 단번에 부서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현관문을 뜯어버린 괴물은 민우를 집어 던진 여자인듯했다. 애영에겐 다행인 일이었다.

애영은 냉큼 창문을 열었다. 하지만 밖으로 몸을 던지려던 찰나, 선반 위에 진열해 놓은 아름다움의 명약들이 떠올랐다. 애영은 허겁지겁 약들을 쓸어 담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결국 문고리가 우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찰나의 순간 동안 애영과 남자는 눈빛을 마주했다. 방이 꽤 넓어서 둘 사이에는 그래도 몇 걸음 이상의 거리가 있었다. 헉 하는 순간의 정적 끝에 애영은 서둘러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남자는 달려드는 대신 애영을 향해 칼을 날렸다. 칼은 정확히 애영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놀란 애영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손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그리곤 본능적으로 손이나 팔에 칼날이 박힐 고통을 생각하며 잔뜩 움츠려 있었다.

그런데 웬걸. 몇 초가 지나도록 그녀의 팔에는 칼날의 날카로움이 닿지 않았다. 조심스레 눈을 뜬 그녀의 코앞에, 공중에 딱 멈춰져 있는 칼날이 보였다. 그 너머로 잔뜩 찡그린 표정의 남자도 보였다. 그는 무슨 이유에선지 애영에게 칼을 꽂기를 주저하는 것 같았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

애영은 기다렸다는 듯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뒤늦게 다시 날아든 칼이 다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찌릿하고 섬뜩한 감각이 다리를 훑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피가 나는 것쯤이야. 적어도 잡히진 않을 것이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뚱이가 머리카락과 함께 바람 위에 흔들렸다. 하얀 손가락은 흐릿해지다 못해 그녀의 눈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녀가 다리의 상처를 확인하는 사이에도, 그녀의 몸은 오피스텔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애영은, 곧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몸에서 약 기운이 조금씩 세어나감을 느꼈다. 몸도 점점 무거워졌다. 왜 이러지? 그녀가 비행을 처음 해 보았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다리의 상처로 약효가 빠져나가나? 그럴 리가 없었다. 그녀는 문득, 이번 약품들의 재료가, 도끼에 찍혀 죽기 전에 눈을 부릅뜨고 매달려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혹시나 남자가 움직이지만 못했을 뿐 의식이 있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살고 싶어.’

설마, 아니지? 약효가 부족한 건 아니지?

안돼! 제발! 그녀가 절규했다. 평생을 살면서 이만큼이나 삶이 간절했던 적이 없었다. 일순간 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색을 되찾았다. 그리고 몸무게도 돌아왔다. 그녀가 날개를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중, 약 13층 높이에서였다.


쾅!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일까. 끔찍하게 분해된 시체를 보고, 너무도 충격적인 그 장면에 또다시 정신을 잃고.

아름은 사방에서 을러대는 고양이 소리와 뭔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떴다.

꿈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녀는 여전히 콘크리트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아니, 아직도 꿈인 걸까.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 동떨어진 배경 속에서,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부서진 것은 아무래도 그녀를 가두던 나무 문인 것 같았다. 바닥에 엎어진 문짝 주위로 크고 작은 나뭇조각들이 널려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름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건, 그 한가운데 패대기쳐져 있는 끔찍한 남자였다. 아름을 데려온 바로 그 남자. 그는 왜인지 반쯤 흐릿한 유령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꿈인 걸까. 아름이 멍하니 생각하는 사이 남자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우적허우적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밖에는 처음 보는 긴 생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작은 체구의 그녀가 천천히 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의 손에는 20센티나 될까 싶은 작은 칼을 들려있었고, 가볍게 잡은 그 칼끝으로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는 잡혀있는 아름과, 끔찍하게 매달린 시체, 주변에 널브러진 수많은 잔해들을 보더니 무섭도록 얼굴을 찡그렸다.

“도망칠 생각은 접어두는 게 좋아.” 여자가 말했다. “아주 가관이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희 둘이서 이만한 일을 전부 벌였을 거라곤 생각할 수가 없어. 너희는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야. 너희 같은 초짜들이, 이렇게까지 인간성을 잃는 것도 모자라 약품의 제조법을 줄줄이 꿰고 있을 리가 없지.”

남자는 대답 대신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리곤 이내, 흐릿해지다 못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여자가 혀를 차며 입구를 막아섰다.

“허튼짓 하지 마라. 네가 먹은 약, 몸이 닿아있으면 효과가 없지? 넌 잡히는 순간 끝이야.” 여자가 말했다.

옆에서 쇠로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남자의 목소리가 공중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씨발!”

부웅, 하고 둔탁하게 공기를 가르는 소리도 들려왔다. 여자는 재빠르게 몸을 틀고는 여유롭게 뭔가를 튕겨냈다. 갑작스레 공중에서 도끼가 튀어나오는가 싶더니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처박혔다. 그사이 여자는 빠르고 정확하게, 공중에 두 번 검을 찔러넣었다.

이번엔 남자의 비명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다.

여자의 얼굴은 생각보다 앳된 미인이었으나, 그 눈빛만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웠다. 뭔가를 노려보는 것도 같았다. 여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허공에서 뭔가를 움켜잡았다.

“어떻게 하지? 사실 투명해지는 건 나한테 별 의미가 없거든. 자, 다시 말하지만, 우리 쪽에선 묵비권 같은 걸 인정해 주지 않아. 사람 목숨을 우습게 여기고 죄를 지었으면 합당한 벌을 받아야지. 게다가 그 외에도, 너희는 우리의 존재를 대중에게 노출 시킬만한 위험을 저질렀어. 이에도 책임을 물어야겠지? 다시 물을게. 뒤에 있는 건 누구야? 누가 너희들에게 묘약 제조법을 가르쳐줬지?”

“몰라! 모르는 사람이야!” 또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퍼져 나왔다.

“하, 모르는 사람?" 여자가 혀를 차며 조소를 품었다. "어쨌건 확실히 누군가 있긴 있다는 소리군. 그렇지? 외모나 목소리, 성별, 뭐든 아는 대로 말해.”

여자가 다시 물었지만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여자가 눈을 부릅뜨며 공중에 칼을 들이밀자 남자가 소리쳤다.

“어차피 죽고 싶어 하던 사람들이었어! 쉽게 가게 도와주고 남는 시체만 효율적으로 쓰겠다는데! 뭐가 나쁘다는 거야?”

“그건 너희 멋대로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여자가 바로 말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없어. 삶이 무서워서 도망치고 싶지만, 막상 죽으려고 덤벼들면 죽을 각오를 하기도 쉽지 않지. 너흰 선택 전에 강요를 한 거야. 게다가 아직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애들…… 그 애들까지 정말 죽고 싶었다고 딱 잘라 대답할 수 있어?”

여자는 치가 떨린다는 듯 공중을 걷어찼다. 퍽 소리와 함께 남자의 옅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너희한테 이런 걸 가르쳐준 사람이. 솔직하게 말한다면 정상 참작 후 형량에 반영하겠어. 너희가 만들고 있으니 잘 알 텐데. 진실만을 말하게 하는 약도 있다는 거, 어차피 입 다물고 버텨봐야…….”

띠리리링.

불현듯 공중에서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띠리리링…….

뭔가 타오르는 냄새가 강하게 퍼져 나왔다. 여자는 의아한 표정을 거쳐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그제야 아름과 눈을 마주했다.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공중에서 무언가가 폭발했다. 비릿한 피와 살 조각, 작은 유리와 플라스틱 파편 따위였다.


아름은 굉장히 찌뿌둥한 몸으로 침대에서 눈을 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간밤 길고도 끔찍한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출근을 하려면 일어나야 했다.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일어나 느릿느릿 샤워기에 몸을 맡겼다. 흠, 뭔가 이상했다. 오늘따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마음에 들었다. 부드러운 물살 속에 왠지 몸을 감싸던 찝찝함이 씻겨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늦지 않도록 종종거리며 집을 나섰다. 아침 날씨가 전일보다도 한결 싸늘해져 있었다. 하지만 춥다기보다는 정신이 좀 더 바짝 차려지는 느낌이어서 괜히 나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람. 아침이 상쾌하다니.

아름은 스스로 자문했다. 아! 어쩌면 오늘따라 유난히 많은 고양이가 그녀의 출근길을 배웅해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물론 녀석들은 차 밑에 숨어서 빤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고양이들은 원래 눈앞에 보이기만 해도 귀여운 동물이었다. 왜인지 오늘따라 더 예쁘단 말이야. 아름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길을 걸었다. 고양이들이 유독 더 많이 보이는 아침이었다. 심지어 자주 밥을 주는 검은 고양이 한 마리는 반갑다는 듯 그녀에게 ‘야옹’ 하고 인사까지 건넸다.

어라? 어젯밤 꿈에도 고양이들이 잔뜩 나오지 않았던가? 그녀가 생각했다. 아니다. 고양이를 봤다기보다는 사방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던 것 같았다. 마치 그녀를 걱정하는 듯한 수많은 울음소리를.

아름은 괜스레 오늘 저녁엔 좀 더 좋은 고양이 간식을 사 들고 와야겠다 생각하며 버스에 올랐다. 웬일로 버스가 한적한 덕에 그녀는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땡잡았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름은 시간을 때울 겸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인터넷에 접속하자 최상단 뉴스에 그녀의 동네가 언급된 것이 눈에 띄었다. 투신자살한 70대 노인, 의문의 추락지점……. 으, 뭐야. 아름은 제목만으로도 얼굴을 찡그리며 다른 이야기로 시선을 옮겼다.

평소의 그녀라면 아마 기사를 클릭하고, 괜스레 슬퍼하고, 공감하며, 스스로의 죽음을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의 아름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자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하지 않던가. 살아있는 동안 못해도 좋은 일이 한두 번은 더 있을 터였다. 그냥 죽어버린다고 생각하기에는 못 해본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억울한 것들이 또 너무 많았다.

그녀는 버스를 내려 도로를 걸어갔다. 서늘한 아침 공기가 왠지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은…… 어쩌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처음, 거의 일 년여 만에 느껴보는 것 같았다. 길고 긴 슬럼프가 끝이 난 것일까. 아름은 오늘, 유례없이 씩씩한 발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뭐야 비린내라도 나?” 서연이 준호를 쏘아보며 농담하듯 물었다.

“아뇨…… 그냥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요.” 준호가 맥없이 대답했다.

“딱히 맛은 없지. 비릿한 피 맛 딱 그래. 되게 맛없는 보약 먹는 느낌으로 먹는 거야. 살기 위해 먹는 거지.” 서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기운 내라. 상대에게 칼을 꽂지 못한 것도, 상대가 죽은 것도 네 탓이 아니야. 넌 할 만큼 한 거야.”

하하. 준호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연은 지금 사무실 소파에 앉아 혈액 팩에 빨대를 꽂아 쭉쭉 들이키고 있었다. 폭발에 휘말린 상처는 이미 다 나았건만, 그녀는 너무 무리했다며 끼니때마다 혈액 팩을 하나씩 챙겨 마시고 있었다.

“준호야.” 서연이 혈액 팩을 내려놓고는 그를 불렀다. “너는 나랑 만나기 전에, 너 스스로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어?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걸 쓸 수 있다는 생각 말이야.”

“어렸을 때야 그랬으면 좋겠다 정도는 생각해 본 적 있지만, 그런 쪽으론 없는 것 같은데요.”

“역시 그렇지?”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운명을 타고났든, 요즘 같은 세상에선 자기 능력을 인식하기가 쉽지 않단 말이야……. 헌데 걔넨 대체 어떻게 된 거였을까. 수준 이상의 마법 약 제조법은 알고 있는 주제에 자신의 운명이나 우리들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았단 말이야. 이건 누군가 의도적으로 걔들한테 필요한 정보만 주입한 게 분명해. 대체 누굴까? 누구길래 남을 그렇게 이용하다가,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린 거지?”

“핸드폰을 터트린 누군가겠지.” 치즈가 잠자코 그들을 지켜보다 불쑥 말했다.

“그래. 그게 누구냐 이거야.” 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감식반이 조사중이니 곧 뭐라도 나올 테지만…….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희생됐어. 뭔가 더 있다면 빨리 처리해야 해. 그나저나 치즈. 어제 걔네 보면서 뭔가 수상한 점 없었어?”

“어떤 의미로 수상한 점?” 치즈가 되물었다.

“왜 분명 둘이 피터팬도, 카타리나(헨젤과 그레텔의 마녀)도 맞긴 한 것 같은데,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쎄한 느낌이 들어서 말이야. 아무래도 이상해서. 고양이의 촉으로 뭔가 느껴지는 거 없었나 했지.”

“못 알아듣겠는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거야?” 치즈가 반문했다. “뭐, 모르겠어. 일단 난 크게 이상한 건 느끼지 못했으니.”

“으흠.” 서연이 의아하다는 듯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러고 보니 궁금한 게 있었어.” 준호가 말했다. “못 알아듣는 다니까 갑자기 생각 난 건데, 어제 그 검은 고양이 말이야. 달려가는 내내 뭐라고 말한 거야?”

“뭐, 친구가 납치됐어. 도와줘. 오늘 날아다니는 사람을 봤으면 어디로 갔는지 알려줘. 그런 얘기.”

“고양이가 생각보다 의리 있는 동물이구나.”

“물론이지. 그래서 이유야 어찌 됐건 고양이 밥 챙기는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되는 거야.” 치즈가 꼬리로 방석을 두드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거 조심해야겠는걸.” 준호는 그제야 웃음기를 되찾아 미소를 지었다. “혹시 나도 위험에 빠지면 치즈가 도와주는 건가?”

“글쎄. 내 밥을 챙겨주는 건 네가 아니라 서연인걸.”

“그럼, 내가 위험하면? 난 도와줄 거야?” 이번엔 서연이 물었다.

“네가 위험씩에나 빠질 일이 있나 모르겠다.” 치즈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어쨌든 난 귀찮은 건 질색이야.”

“하여간 솔직하지 못하긴.”

서연이 말했다. 그녀는 귀여워서 못 견디겠다는 듯 치즈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치즈는, 콧방귀를 뀌더니 상대하기 싫다는 듯 방석 위에서 스르르 모습을 감춰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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