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수색견The Searchdog

2021.04.12 23:0304.12

“이제 다시 움직여야 합니다. 목표물이 멀어집니다.”

 

재이는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재이의 이상형에 가까운 멋있는 중저음이었지만 하필 그 멋진 목소리를 저런 놈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그러나 그 놈의 말에 반박할 정보가 없는 재이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이 모래는 습기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 달라붙는 걸까.

그 놈은 재이가 일어나는 소리를 들었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재이가 허겁지겁 따라붙었다. 말이 허겁지겁이지 땡볕에 지친 10대 소녀 재이의 동작은 사실 그리 빠르지도 못했다. 햇볕을 막기 위해 두건을 둘렀지만 모래에 반사되는 빛만으로도 재이의 얼굴은 다섯시간 만에 흙빛으로 탔다. 갈색 이마는 땀으로 번들거렸다. 무릎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었지만 발바닥은 모래알로 따가웠다. 이런 곳에서 저 놈은 어떻게 다섯시간 째 똑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었다.

물론 재이가 그 대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저 놈은 원래 사막과 숲, 초원을 가리지 않고 움직이는데다가, 재이와는 달리 네발로 걷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놈과 같은 부류를 ‘수색견’이라고 불렀지만 재이는 그 놈을 개라고 불러주기 싫었다.

몇십걸음만에 다시 지친 재이가 잠시 멈춰 서서 허리를 세우자 그 놈이 곧바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게 사막 스키가 필요할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입도 안 움직이고 가슴에 달린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오는 게 더 재수 없었다. 재이는 미간에 힘을 주고 말했다.

 

“나도 스키를 빌릴 돈이 없다고 했잖아. 그쪽이 고용료를 깎아주지 않는 한.”

“저를 못 따라올 것 같으면 고용을 하지 말았어야죠. 지금 당장 걷기 시작하지 않으면 요금 절반을 환불해드리고 의뢰는 취소하겠습니다.”

“어디 감히 개새끼 주제에!”

 

코를 벌름거리며 그놈을 노려보는 재이의 눈에는 적대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 놈은 욕을 먹고도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재이는 더 화가 났다.

 

“이 이상 지체하면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5초안에 움직이든가, 의뢰를 취소하십시오. 5, 4, 3, 2……”

“어디서 협박질이야! 빨리 움직이기나 해.”

 

재이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놈은 아직도 불만이 남은 모양이었다. 앞을 보고 걸어가면서 예의 그 스피커로 말했다.

 

“자꾸 소리를 지르고 발을 세게 구르면 지렁이가 꼬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경로는 안전지대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통행수칙을 잘 지킬 때의 이야깁니다. 조용히 따라와 주세요.”

“길 좀 안내한다고 니가 무슨 내 선생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통행수칙도 모를 것 같아?”

“아신다면 이제 조용히 좀 해주시지요.”

 

지렁이는 정말 지렁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저 놈을 정말 개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인간은 유전자 조작기술을 통해서 많은 생물을 인간에게 쓸모 있는 방식으로 바꾸었고, 수색견은 그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지렁이는 그런 식으로 변이된 것은 아니었다. 지렁이를 지상최강의 맹수로 만든 것은 종을 불문하고 여러 동물에 감염되며 숙주의 유전자에 무차별적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어떤 바이러스였다. 특히 생식세포에 돌연변이를 일으킨 경우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질의 생물이 나타나기도 했고, 그 와중에 희박한 확률을 뚫고 몸길이가 10미터에 달하는 지렁이 같은 괴물이 탄생했다.

지금 저 개는 바로 그 지렁이가 재이의 발걸음 소리에 반응해서 이쪽으로 올지도 모른다며 마치 사람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재이는 어이가 없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춘 개가 나타난 지는 이미 10년이 넘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인간적인 동작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져봤자 발성도 조음도 안 되어서 스피커를 통해 뇌파로 말하는 주제에.

 

“너 한번만 더 그렇게 사람 흉내 내봐라. 내가 그냥……”

“잠깐만요!”

 

그 놈이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 아니 합성음을 냈다.

 

“뭐야?”

“조용히 하세요.”

 

이번엔 갑자기 합성음을 낮추었다. 재이는 저도 모르게 긴장되어 허리를 숙이고 역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뭐냐고.”

“쉿.”

 

재이는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작은 바람 소리 외에는 사방이 고요했다. 원래 이 사막에 움직이는 것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거의 없을 뿐,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저리 뛰어요!”

 

그 놈이 갑자기 머리로 왼쪽을 가리켰다.

 

“뭐냐고!”

“지렁이!”

 

그리고 그놈은 반대로 오른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재이도 뛰려했지만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는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다섯걸음을 달렸을 때 무릎이 제대로 접히지 않으면서 몸의 균형을 잃었다. 앞으로 넘어지며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맨살이 바닥에 닿았다.

그놈은 재이가 넘어지는 것을 보고 잇몸을 드러내며 으르렁 소리를 냈다. 다음 순간 그 놈의 가슴에 달린 작은 상자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그 자리에서 펄떡펄떡 뛰기 시작했다.

 

“계속 뛰어요!”

 

그리고 개는 자기가 떨어뜨린 상자에서 잽싸게 멀어졌다. 이제 재이에게도 땅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몇초가 더 지나자 땅이 흔들려 걸음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재이는 인간의 앞발이 손으로 진화한 것이 이렇게 원망스러운 적이 없었다.

 

“넘어져도 손은 짚지 말아요!”

 

그 놈이 높이 뛰어오르며 말했다. 그 때 사막의 모래가 폭발했다.

폭발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쾅!’소리가 나고 아까 상자를 떨어뜨린 지점에서 사방으로 사람 키의 몇 배는 되는 높이까지 모래먼지가 치솟았다. 그러나 재이는 그것이 폭탄이 터진 결과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재이는 넋이 나가 모래먼지가 가시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징그럽게 생긴 커다란 원통이 꾸물꾸물거리고 있었다. 이제 어째야 한단 말인가. 재이는 시선을 개에게 옮겼다.

그 놈은 마치 사냥에 나선 맹수처럼 몸을 낮추고 지렁이를 응시했다. 하지만 개가 지렁이를 사냥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재이와 그 놈이 모두 움직임을 멈추자 지렁이도 제 자리에서 흔들거리기만 했다. 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개가 살짝 목을 세웠다. 사람이 뭔가를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다시 볼 때의 움직임이었다. 꼬리에도 힘이 빠졌다. 뭔가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모양이었다. 잠시 이빨만 드러내고 있던 그 놈이, 다시 고개를 낮추고 꼬리를 뒤로 뻗었다. 그리고 뒷다리를 살짝 쪼그리는 듯 하더니 지렁이 쪽으로 폭발적으로 뛰쳐나갔다.

지렁이의 머리가 개에게 돌아갔다. 그 놈은 순식간에 달리는 방향을 바꾸어 지렁이의 오른쪽으로 돌았다. 지렁이의 머리가 그 놈을 따라갔다. 그 놈이 지렁이와 거리를 좁히자 지렁이가 몸을 구부려 입을 땅 쪽으로 향했다. 지렁이가 머리를 쳐박은 것과 그 놈이 도약한 것은 거의 한 순간이었다.

그 놈이 머리로 지렁이의 목을 들이받았다. 맨땅에 머리를 박은 지렁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이쪽저쪽으로 돌렸다. 그때 갑자기 지렁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놈은 지렁이한테서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폭발음이 들렸다. 이번엔 진짜 폭탄이었다. 사방으로 날리는 것은 모래가 아닌 지렁이의 잔해였다. 재이의 턱이 힘없이 내려갔다. 이런 광경은 난생 처음인데다, 이 사막에 올 때에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재이는 넋을 놓고 있었다.

 

“지렁이는 잡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네요. 거리가 더 벌어졌습니다”

 

그때 그 놈이 다가오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재이는 정신을 차렸다. 그놈의 억양에서 딱히 원망하는 투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재이 스스로도 지렁이를 불러들인 게 자기 자신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지렁이는 소리로 목표물을 추적하는데, 특히 잘 반응하는 것은 동물의 가죽이 직접 모래바닥에 닿는 소리다. 재이가 발을 구르며 지렁이의 주의를 끌고, 맨손으로 땅을 짚었을 때 결정적으로 지렁이를 끌어당긴 것이다. 재이는 더 이상 그 놈에게 불평할 수 없었다.

그런데 재이에게 다가오는 그 놈의 발걸음이 이상했다. 네 다리로 종종걸음 하는데 몇걸음에 한 번씩 왼쪽 뒷다리를 배 쪽으로 당겨 올리고 있었다.

 

“또 재촉하는 거냐. 근데 너 그 다리 다친 거 아냐? 아까 지렁이랑 싸우다가 그런 거야?”

“지렁이에게 폭탄을 삼키게 만들었는데 원격작동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근거리 작동을 하려고 접근하던 중 지렁이의 이빨이 다리에 스쳤습니다. 걷는데 약간의 불편은 있지만, 고용주께서만 잘 따라와 주신다면 목표물을 놓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대로 계속 걸으면, 그, 조금 아플텐데.”

 

재이는 왠지 그 말을 하기가 망설여졌다.

 

“통증은 어쩔 수 없지만,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급발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가 우려된다고 하여도 당장 치료할 방법도 없고요.”

 

재이는 뭐가 고민되는 듯 입을 씰룩거렸다.

 

“앉아.”

“네? 시간이 없습니다.”

“앉으라니까.”

 

재이가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이 지체 때문에 목표물을 놓치게 된다면 의뢰비는 환불해드리지 않습니다.”

“이 새끼가 진짜! 빨리 치료해서 빨리 그 놈 잡으라고!”

“일단 지시대로 앉겠습니다.”

 

그 놈이 앉자 재이가 다시 말했다.

 

“옆으로 누워. 그래야 치료를 하지.”

“치료를 한다고요?”

“누워.”

 

그놈이 왼쪽으로 누워 다친 다리를 앞으로 뻗었다. 재이는 그놈의 옆에 앉아 외투 안쪽에 달려있는 주머니 중 하나를 밖으로 꺼내 입구를 조이는 끈을 풀었다. 주머니에서는 붕대와 스프레이가 나왔다. 재이가 스프레이를 그놈에게 뿌리자 그놈은 ‘끼잉’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소독약이야. 소리내지 마.”

 

그 놈은 대꾸하지 않았다. 이제 붕대를 감을 차례였다. 재이는 그놈의 다리를 가운에 두고 무릎을 벌려 꿇어앉았다. 그 놈의 다리를 들어 올리는 손은 의외로 부드럽게 움직였다. 붕대를 감는 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빠른 동작이었다.

 

“지렁이 이빨에 세균은 없나?”

“온갖 것을 먹고 다니니까, 있을 겁니다.”

 

재이는 주머니에서 다른 통을 하나 꺼내 손바닥에 털어 알약 하나를 집었다.

 

“항생제야. 먹어.”

 

재이가 알약을 손바닥에 얹어 그 놈에게 내밀자 그 놈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는 손이 없습니다.”

“입으로 먹어.”

 

그 놈은 잠깐 재이를 쳐다보더니, 말없이 약을 입으로 빨아들였다. 약은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치료가 능숙하시군요.”

 

재이는 주머니에 다시 약품을 챙기며 대답했다.

 

“빨리 가기나 하자. 늦었다며.”

 

그 놈은 붕대를 감은 다리를 바닥에 몇 번 구르더니, 곧 목표물의 냄새를 찾기 시작했다. 걸음걸이는 여전히 불편해보였지만 확실히 방금 전보다는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가시지요.”

 

개가 향하는 길은 지렁이를 만나기 전과 마찬가지로 해를 바라보는 방향이었다.

 

“그런데, 지렁이가 또 나오진 않겠지?”

“지렁이는 덩치가 커서 식사량이 많은데, 사막엔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한 마리 한 마리가 넓은 영역에서 사냥하고 웬만하면 서로 침범하지 않습니다. 하나를 잡았으니 한동안 다시 마주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아직도 지렁이를 불러들인 책임을 느끼고 있어 재이의 목소리가 약간 수그러진 채였다.

 

“너, 이름이 썬더였나?”

“맞습니다.”

 

어린아이가 지은 것 같은 이름. 아마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수색견 양성 회사에서 고객친화 정책이랍시고 추진하는 일 중에 하나였다. 사실 썬더는 꽤 잘생긴 개였고, 자라면서 어린이들한테 많은 인기를 얻었을 것 같았다.

재이는 썬더가 혹시 1세대 수색견인지, 즉 인간의 소유물로서 살아본 적이 있을지 궁금했다. 하필 이렇게 아무도 없는 사막으로 수색을 나왔는데, 1세대라서 인간인 나를 싫어하고, 수틀렸을 때 나를 버리고 도망치면 어떻게 하지?

아니, 수색 계약으로 먹고 사는 이상 자신의 직업적 평판을 위해서라도 재이를 버리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썬더는 이미 지렁이를 끌어들인 재이를 구해주지 않았는가. 그러나 좀 더 생각해보면 지렁이와의 싸움은 썬더 자신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어차피 그 정도로 가까워진 이상 썬더 혼자서라도 몰래 도망치기란 불가능했다.

 

“너는 몇 세대지?”

 

썬더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재이의 질문에 대답하는데 2초 이상이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1세대입니다.”

“그럼 너도 인간을 싫어하나?”

 

첫 질문을 듣고 다음 질문을 예상한 것인지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싫어하는 인간도 있습니다.”

“그럼 좋아하는 인간은?”

“딱히 없습니다.”

“그래도 널 키웠던 사람이나, 고용주들 중에 괜찮은 사람들도 있지 않았어?”

 

썬더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재이가 당황하는 참에 썬더가 다시 말했다.

 

“저를 학대하지 않거나, 약속한 돈을 제 때 주거나, 반말을 쓰지 않는 사람도 가끔 있기는 하더군요.”

 

썬더가 말을 마치고 다시 걸어가자 재이는 괜히 눈을 흘겼다. 썬더의 말에 속이 뜨끔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존대를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재이는 입속으로 욕설 비슷한 말을 중얼거렸다.

 

“네가 일만 제대로 하면 잔금은 약속대로 지불할 거다.”

“알고 있습니다. 이미 돈은 에스크로 계좌에 들어갔잖아요.”

 

네가 제 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법과 금융제도에 따라 알아서 챙겨받는 거라는 말투였다. 썬더의 인간에 대한, 혹은 고용주에 대한 충성심을 알고 싶어 말을 걸었던 재이는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다리도 그렇게 깔끔하게 치료해줬건만. 그나마 부드러워졌던 재이의 말투에 다시 날이 섰다.

 

“그 에스크로는 내가 의뢰완료 승인을 해야 돈이 나가는 거 알지?”

“고용주님도, 제 가슴에 카메라와 마이크가 달려 있고 모든 상황이 녹화되고 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의뢰완료 여부는 제삼자들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불합리한 이유로 의뢰완료 승인을 늦추신다면 상당한 손해배상을 감당하셔야 할 겁니다.”

 

썬더는 평소에 이런 대화를 많이 해본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킁킁대고 걸으면서 저렇게 긴 대사를 물 흐르듯 처리할 수는 없었다.

 

“허, 내 지시에 불응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건가?”

“저는 의뢰받은 일을 완료할 것이고, 완료하고 나면 돈을 받을 거라고 얘기하는 것뿐입니다.”

“이 개가 진짜 따박따박 말대꾸는!”

“쉿.”

 

갑자기 썬더가 다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뭐?”

 

재이가 호통을 치려는 차, 썬더가 한쪽 뒷다리를 들어올렸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시킬 때와 비슷한 동작이었다. 묘하게 모욕적이었지만, 수많은 훈련과 실전을 겪은 자 특유의 권위가 그 동작에 담겨 있었다. 재이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썬더가 응시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기자, 온통 황금색인 사막의 가운데에 검은 점 하나가 보였다. 움직이는 점이었다.

 

“설마 저게?”

“거리는 500미터 정도입니다. 우리한테 목표물이 보이니까 놈이 고개를 돌리면 우리도 보일 겁니다. 외투의 위장모드를 켜기를 권장해드립니다. 물론 소리도 안 내게 조심하고요.”

 

계속 냄새를 맡던 썬더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추적대상자만 쳐다보던 재이는 이를 깨닫지 못했다. 썬더는 재이의 주의를 끌기 위한 어떤 신호나 소리도 없이 갑자기 말했다.

 

“저의 역할은 목표물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의뢰인께서도 대상자를 눈으로 보고 추적하실 수 있으니, 저는 여기서 의뢰를 마친 걸로 하겠습니다.”

“뭐?”

“저는 돌아가겠습니다. 부디 목표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아니, 야! 그런 게 어디 있어? 당연히 저 놈을 잡아야 의뢰 종료지.”

“저는 전투견이나 경호견이 아닙니다. 추적을 마쳤으면 제 일은 끝입니다.”

“추적이 끝났다고 누가 그래? 이렇게 가다가 또 저 놈이 시야에서 사라질 수도 있잖아.”

“한 번 찾아낸 놈을 놓치는 건 의뢰인 분의 사정이죠. 다시 의뢰하여 주시면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스마트밴드에 개인 연락처 남겨드릴 테니 오늘 중에라도 놓치면 바로 의뢰 주십시오.”

 

그리고 썬더는 바로 뒤돌아서 척척 걷기 시작했다. 자기가 치료해준 부위를 보니 재이는 더 화가 났다.

 

“야이…… 당장 안 돌아와?”

“그렇게 소리치다가 들킵니다.”

 

썬더는 재이를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화나지만 맞는 말이었기에 재이는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썬더를 직접 쫓아가자니 언제 대상자를 놓칠지 몰랐다. 썬더의 야속한 발걸음은 빠르기도 했다. 재이도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결국 재이는 소리치지도 못하고 발을 한 번 구른 뒤 대상자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

 

종종걸음에 발자국의 행렬이 길어지고 있었다. 모래를 밟는 사각거리는 소리와 사막의 바람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재이는 마음이 급했지만 뛰어서 쫓으면 기척을 들킬 위험이 있었다. 다행히 대상자의 걸음이 느리니 계속 걸어가면 되었다. 오히려 썬더와 함께 다닐 때보다 더 여유가 있었다.

그런 상황이 되자 어이없게도 재이의 눈에 사막의 풍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래바람이 불면 시야 전체가 노래졌지만 바람이 멎으면 거짓말같이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바람이 부나 안 부나 미세먼지로 가득 차고 수십층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땅의 윤곽이 하늘을 잘라내는 선을 그렸다. 고개를 조금 젖히자 선이 아래로 내려가 파란 면적이 넓어지며 본래의 위용을 드러냈다.

재이는 탁 트이는 시원한 느낌을 기대했지만 생각만큼 시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묵직한 하늘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재이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하늘이 이렇게 커다랗다는 게, 사막이 이렇게 넓다는 게 어떤 안도감을 주었다. 아직 인간은 세상을 모두 점령하지 못했다는, 아마도 저 파란 하늘만큼은 앞으로도 영원히 점령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재이에게 뜻 깊었다. 재이는 아주 잠시 눈을 감았다.

한동안 그대로 서있고 싶었다. 하지만 대상자는 느리기는 해도 꾸준히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재이도 다시 눈을 뜨고 꾸준히 움직이며 천천히 거리를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을 걸었을까, 어느새 대상자와의 거리가 100미터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재이는 배낭에서 헬멧형 스코프를 꺼내어 썼다. 스코프가 재어준 정확한 거리는 95.6미터였다. 스코프의 확대 기능을 사용하여 보니 대상자의 걸음이 그리 빠르지 않은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등에 배낭을 멨지만 자꾸 배낭이 흔들리거나 흘러내려 몇 걸음마다 자세를 추스르고 있었다. 재이는 그 모습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욕설이 나올 뻔 했지만 가까스로 입술을 깨물며 삼킬 수 있었다. 재이는 걸음을 더 빨리 했다. 조금 집중해서 발 딛는 순간의 세기를 조절하면 소리를 너무 키우지 않으면서도 더 빨리 갈 수 있었다.

이제 대상자와의 거리는 50미터로 줄어들었다. 제이는 자신의 배낭에서 기역자로 꺾인 짧은 금속 막대를 꺼내들었다. 잠시 자리에 서서 막대를 양손으로 들고 대상자를 겨누자 스코프가 정확히 겨눠졌는지를 알려주었다. 재이는 대상자의 다리를 노렸다. 하지만 정말로 레이저를 쏴 다리 한 부분을 증발시킨다면 대상자는 곧바로 자리에 넘어질 것이었다. 재이로서는 위험한 일이었다. 결국 고민하던 재이는 대상자를 불러세우기로 했다.

 

“거기 서! 레이저로 겨누고 있다!”

 

대상자가 우뚝 멈춰섰다. 대상자의 배낭이 흔들렸다. 이번엔 재이의 입에서 진짜 욕설이 나왔다.

 

“손 들고 천천히 뒤로 돌아!”

 

사실 재이는 사람을 총으로 겨눠본 적이 없었다. 손들고 뒤로 돌라는 것은 영화에서 많이 들은 대사였다. 물론 재이가 생각하기에도 합리성 있는 말이기에 따라한 것이기는 했지만. 그런데 상대방은 손들고 뒤로 도는 게 합리적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젠장!”

 

재이는 총을 한손으로 들고 휘두르며 쫓아갔다. 대상자는 재이가 도망가는 자신을 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재이가 진짜 쫓는 것, 대상자의 배낭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서로 알고 있엇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팔이나 다리를 겨눠 쏘려고 했지만 달리는 상대를 맞추는 것은 아무리 스코프의 도움이 있더라도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기본체력으로는 10대 소녀인 재이가 성인 남성인 대상자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스코프가 보여주는 상호간 거리가 어느새 60미터로 늘어났다. 달리면 달릴수록 숫자는 점점 더 커질 뿐이었다.

재이는 답답했다. 그를 멈춰 세울 유일한 방법은 면적도 크고 상대적으로 고정된 몸통을 쏘는 것이었지만 배낭 때문에 불가능했다. 이대로는 대상자를 놓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아까 썬더는 대상자를 놓치면 다시 추적을 의뢰하라고 했지만 더 이상 수색견을 고용할 돈도 없었다. 재이는 있는 힘을 다했지만 다리는 오히려 느려졌다. 재이는 자꾸 무릎에 걸리는 부츠를 벗어던졌다. 그러나 체중 분산이 제대로 안 되면서 오히려 발이 모래 속에 파묻히기만 했다.

 

“씨발!”

 

재이의 얼굴에서 떨어지는 땀방울에 눈물이 섞였다.

 

“씨발, 씨발!”

 

스코프의 숫자는 곧 세 자리가 되려고 했다. 모래에 파묻히는 발바닥이 뜨거웠다. 풀썩,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손바닥에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리가 풀려 넘어진 것이다.

 

“어허엉.”

 

재이는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하지만 재이의 몸과 정신은 생각보다 강했다. 어느 새 땅을 짚은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저 놈도 사막을 뛰고 있는 건 마찬가지다. 집중력을 잃으면 재이처럼 넘어질 수도 있다. 어쨌든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재이는 잡힐 리 없는 대상자를 향해, 그가 넘어지길 비는 것처럼 손을 뻗었다.

대상자가 넘어졌다. 기적이었다. 재이는 놀라서 멈춰 섰지만 잠시 뿐이었다.

 

“그래, 씨발! 거기 기다려!”

 

재이의 다리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120미터까지 벌어졌던 거리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한참이 지나도 대상자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엉켜 발버둥치는 것 같았다. 그 상대방의 정체를 확인하는 순간 재이는 작은 탄성을 질렀다.

 

“하.”

 

대상자의 다리를 물고 있는 것은 썬더였다. 대상자는 썬더를 물리치려 했지만 엄청난 고통과 싸워가면서 허리를 숙여 자기 무릎을 물고 있는 개를 건드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이는 계속 달려갔다. 대상자의 배낭은 어느새 옆에 떨어져 있었다. 마침내 옆에 도착한 재이는 대상자의 어깨를 밟아 더 이상 썬더를 때리지 못하게 했다. 대상자는 이미 힘이 다 빠졌는지 신음만 흘렸다.

썬더가 대상자의 무릎을 놓자 가슴에서 원통모양의 덩어리가 떨어졌다. 썬더가 그것을 입으로 물어 대상자의 가슴에 놓자 원통이 둘둘 풀리면서 대상자의 가슴과 팔에 띠를 둘렀다. 포박 과정은 2초만에 끝났다.

재이는 배낭과 썬더를 몇 번 번갈아 쳐다보았다.

 

“고, 고마워!”

 

그 말을 한 재이는 결국 배낭 쪽으로 달려갔다. 재이가 덮개를 연 배낭 안에는 하얗고 꼬물거리는 작은 것이 하나 들어있었다. 강아지였다. 유전자 조작도 돌연변이도 되지 않은, ‘진짜 개’였다. 재이는 조심스레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사람보다 3도 높은 그 체온이 느껴지자 왈칵 눈물이 났다. 강아지는 재이의 품 안에서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열심히 엉덩이를 움직였다. 목소리는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재이는 강아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자신의 배낭에서 젖병을 꺼냈다. 입에 젖병을 물리자 강아지는 허겁지겁 안에 든 물을 빨기 시작했다. 어느새 썬더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그 녀석이었군요.”

“뭐?”

“아까 대상자를 발견했을 때 개 냄새를 맡았습니다. 분명히 우리가 쫓는 건 사람이었는데 말이죠.”

“어, 그래.”

 

재이는 썬더에게 뭔가 설명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재이는 어릴 때부터 개를 좋아했다. 두 달 전 부모님이 큰 돈을 써서 재이에게 순수한 개를 선물했다. 그리고 겨우 며칠 후, 그들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온 몸이 변형되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정말로 재이에게 그런 일을 설명할 의무가 있지는 않았다. 재이는 몇 번 입을 뻐끔거리다가 결국 그냥 다물었다. 묘하게도 썬더는 재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재이는 썬더의 인간적인 동작들이 정말 싫었지만 그 동작에서는 위로를 느꼈다. 가족이 없는 자들의 동질감일까.

한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아니 스피커를 작동한 것은 썬더였다.

 

“이제 진짜로 일을 마쳤으니,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 같이 가면 어떨까……요?”

 

재이의 대답에 썬더의 콧구멍이 살짝 커졌다가 다시 작아졌다. 강아지를 키우는 재이는 그 표정의 의미를 알았다. 짧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것은 웃음임이 분명했다.

그때 포박된 대상자가 절뚝거리며 재이와 썬더에게 다가왔다.

 

“야, 야… 이것 좀 풀어봐.”

“다시 자리에 앉지 않으면 무릎을 아예 끊어드리겠습니다.”

 

썬더의 조용한 협박이었다. 그러나 대상자는 기죽지 않고 말했다.

 

“야, 넌 돈 받고 일하지? 내가 너 이거 의뢰비 두 배로 줄게. 저 강아지만 나한테 주라.”

 

썬더는 말없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너도 요새 진짜 개가 얼마나 귀한지 알 거 아냐. 저런 강아지면 몇 천은 나와! 진짜 의뢰비 두 배, 아니 세 배 준다! 니네 어차피 돈이 최고잖아.”

“강아지를 드리면, 저 여자는 어떻게 하죠?”

“목격자 남는 게 싫으면 그냥 여기서 처리해버리든가. 나야 어차피 이런 일 해먹고 사는 사람인데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무, 무슨 미친 소리야!”

 

다급한 재이가 소리쳤다. 어느 새 강아지를 자신의 배낭에 넣었는지 양손을 자유롭게 하고 서 있었다. 여차하면 싸움이든 도망이든 할 태세였다. 하지만 수색견의 공격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처하더라도 자신과 강아지의 안전을 모두 확보하기는 어려울 터였다.

 

“꼭 미친 소리는 아닙니다. 재이씨의 의뢰는 종료했고, 원래 수색은 물건을 찾아서 확보하는 일도 합니다. 그 강아지라면 충분히 수색견이 맡을 만한 귀한 물건이죠.”

 

재이는 썬더의 말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무리 그래도 범죄는 안 되지!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게 너희 일 아냐?”

 

어느새 재이는 다시 반말로 돌아가 있었다.

 

“글쎄요, 지금 제가 목격한 광경은 강아지를 데리고 혼자 사막을 걸어가던 남자가 한 여자한테 그 강아지를 빼앗긴 것입니다만.”

“아니, 제발…… 그러지 마.”

 

이제 재이는 레이저총을 양손으로 앞으로 쥔 채 말했다. 썬더는 재이를 마주 응시했다. 아까 재이는 잠시 썬더의 표정을 읽었지만, 노련한 수색견이 업무 상태에 들어가자 그 얼굴에서 어떤 신호도 찾아낼 수 없었다. 남자는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그래, 다 맞는 말이네. 원래 저 강아지가 내 강아지야. 지금 의뢰할 테니까 강아지를 확보해서 나한테 줘.”

 

썬더가 천천히 고개를 남자에게 돌렸다.

 

“중요한 질문은 아닙니다만, 강아지는 데려가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도 갖다 주는 데까지가 내 일이니까 뒷일은 잘 모르지. 그런데 거기가 개공장이던가…… 그럴 걸.”

 

썬더는 다시 고개를 앞으로 해 재이를 보았다. 재이는 이제 총을 썬더에게 똑바로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썬더와 같은 수색견은 높은 민첩성을 갖도록 유전자조작과 훈련을 받았다. 총을 쏘려는 손가락의 움직임을 보고 반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재이같은 초보 총잡이의 상대가 아니었다.

 

“나, 나도 알아. 총이 있다고 무조건 이기지는 못한다는 거. 그래도…… 절대 안 내줄 거야.”

 

썬더는 여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의뢰를 완수하겠습니다.”

 

썬더가 뛰어 올랐다. 재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레이저총에서는 아무 발사음도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엇이 타는 소리나 냄새도 없었다. 역시나 빗나간 듯 했다.

재이가 눈을 떴다. 재이의 눈에 들어온 것은 썬더가 남자의 무릎을 다시 물고 있는 광경이었다. 남자는 커다란 비명을 질렀지만 썬더는 더 세게 이를 악물었다. 남자가 너덜너덜한 다리를 흔들다가 기절한 뒤에야 썬더는 무릎을 놓았다.

 

“야, 너, 이게 무슨……”

“의뢰를 완수했습니다.”

 

재이가 주저앉자 모래가 날렸다. 재이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썬더는 옆에서 차분히 설명했다.

 

“저 자는 통증과 과다출혈의 쇼크로 기절했고, 몇 시간은 못 깨어날 겁니다. 그대로 두면 아마 죽을 테고요. 지금 경찰에 신고하십시오. 사막에서 도둑을 붙잡았고, 그 자가 위독한 상태이니 긴급호송해달라고. 그렇게 하면 공짜로 편하게 도시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조사에 응하는 수고를 하셔야 할 테지만 어차피 저 놈을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재이가 눈물범벅이 된 얼굴에서 손을 떼고 물었다.

 

“아니, 너도 같이 가는 거 아냐?”

“이제는 정말로 의뢰를 완수했습니다.”

“아니, 그래도…… 너도 다시 걸어가기 힘들 테고……”

 

그때 재이의 배낭에서 끼잉 소리가 들렸다. 재이는 급하지만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배낭을 벗고 덮개를 열어 강아지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강아지는 힘겹게 자리에 서 있었다.

 

“별다른 상처는 없어 보이지만 아무래도 곧 탈진할 모양입니다. 경찰 신고를 빨리 하십시오. 응급의료가 필요한 사람과 강아지가 있다고요.”

“그래, 일단 알았어……요.”

 

재이는 스마트 밴드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드론 구급기로 오는 데에는 25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했다. 썬더는 재이가 통화하는 동안 잠시 강아지를 바라보았다. 강아지는 썬더와 같은 지능을 갖지 못했고, 썬더의 것과 같은 뇌파 조응 스피커 또한 가질 일 없을 것이다. 그리고 썬더처럼 사람의 의뢰를 받아 일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썬더처럼 혼자이지도 않을 것이다. 재이와 강아지에게는 최소한, 서로가 있다.

썬더는 걷기 시작했다. 강아지는 결국 다리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재이는 급히 통화를 끊고 강아지를 들어 안았다. 썬더가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재이가 급히 외쳤다.

 

“야, 아니, 이봐요!”

 

그러나 의뢰를 끝낸 썬더는 더 이상 재이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썬더!”

 

처음으로 이름을 불리자, 썬더의 발이 멈췄다.

 

“같이……”

 

썬더의 고개가 재이를 향했다. 그때 마침내 재이는 썬더의 표정을 완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재이가 입을 다물었다. 썬더는 재이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썬더의 등 뒤에서 석양의 붉은 빛이 모래밭에 비쳤다.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재이의 얼굴도 같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썬더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지평선을 향해 걸어갔다.

개의 그림자가 타오르는 사막을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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