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자오랑은 얼마 전 수수께끼처럼 남은 안드로이드 실종 건이 있었던 저택에 와있었다. 하녀들이 그를 안내한다. 깔끔하고 고요한 복도로 피곤해 보이는 얼굴의 남자가 자오랑을 맞았다.

 

[또 만났군요.]

 

자오랑이 귀에 붙어 있던 장치를 두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얼굴이 수척하군요.]

 

맞은편의 남자가 삐딱하게 서서 미소를 핀다.

 

[그럴 일이 있지요.]

 

하녀용 안드로이드들이 자오랑의 외투를 받으려한다. 허 훈은 그녀들을 막으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사건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리되지 않은 수염. 삐쭉 튀어나온 머리카락들, 헤쳐진 셔츠와 신경질적으로 걷어 올려진 소매. 허 훈은 느긋하게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상태가 아니었다. 자오랑은 태연하게 방문 목적을 알렸다.

 

[츠게루 나노하, 나노하 기업의 회장이 살해되었습니다.]

 

허 훈이 어깨를 흔들고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굳어있던 뼈들이 부딪힌다. 근육을 풀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서?]

 

자오랑은 눈썹을 있는 힘껏 찌푸렸다.

 

[저희 회사 제품이 실종된 저택의 사람과 친분이 있는 누군가가 살해당했다.]

[충분히 의심이 갈만하죠.]

 

[그게 허 씨 집안의 사람 짓이다?]

 

허 훈의 비협조적인 태도에도 자오랑은 물러서지 않았다.

 

[적어도 이 저택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허 훈은 그가 터무니없다고 생각하였다. 훈이 묻는다.

 

[증거는?]

 

자오랑이 제 가슴을 펴 외친다.

 

[제 직감입니다.]

 

어이없는 말과 당당한 태도. 허 훈은 웃음을 터뜨렸다. 짧고 간결한 그의 대답만큼이나 명확한 웃음 하나. 재미는 있지만 시간은 없었다. 동화 회사가 어떤 각본가를 데려갈지, 허 훈은 초조해하고 있었다. 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야 한다.

 

[증거도 없고 권한도 없는 당신들이 어떻게 사건을 조사하는지.]

[알만하군요.]

 

허 훈이 등을 돌린다. 하녀들이 자오랑을 밖으로 끌고 나가고 쉰 목소리가 허 훈을 붙잡으려 애쓴다.

 

[분명 저택에 요코가 있습니다!]

[그 안드로이드만 찾으면 범인을 찾을 수 있어요!]

 

허 훈이 하녀들에게 둘러싸여 끌려 나가는 자오랑을 내려다보며 말하였다.

 

[이 저택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요코는 여기 없어요.]

 

[범인을 찾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한거정과 함께 저택으로 왔을 때, 요코를 위해 지어진 허 씨 저택의 일본식 방에서 그가 지었었던 표정. 한거정의 물음으로 지어내었었던 표정.

 

[글쎄요.]

 

저택의 문이 닫히고 자오랑은 홀로 거대한 문 앞에 남겨졌다.

 

 

 

 

골목에서 골목으로 후미진 외딴 거리에서 아래로, 옆으로, 좁은 문과 다시 골목으로. 허 백은 잠시 떠 있던 취기가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이 여자는 날 어디로 데려가는 거지.

 

[걱정하지 말아요.]

[납치는 하지 않을 테니.]

 

멀뚱히 여자의 얼굴을 보던 허 백의 손이 그녀에게 잡혀 앞으로 끌려간다. 여자는 즐거워 보였다.

 

[정말 좋은 곳이에요, 장담할게요.]

 

둘은 도시의 아래로 길이 난 두더지 굴을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한 기업의 발밑과 복합 상가의 지하, 불법 시술소의 밑으로 익숙하게 달려가던 그녀는 한 저택의 공중정원으로 허 백을 끌었다. 어떻게 뚫어놓은 건지 정원의 밑으로 작은 굴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저택의 정원들은 아크릴 전광판으로 덮여 있어서.]

[이렇게 몰래 훔쳐 볼 수 있어요.]

 

허 백은 굴 아래로 정원의 발밑을 그대로 바라보고 섰다. 모임에서 만난 그녀의 목소리처럼 익숙한 풍경. 그녀가 말한다.

 

[여긴 당신의 정원이에요.]

[허 백 씨.]

 

허 백이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그녀가 허 백의 양팔을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인다. 허 백의 옅은 숨소리가 여자의 귓등으로 흐른다. 여자는 그의 숨을 세었다.

 

[대체 당신은 누구입니까?]

 

여자는 자신을 소개하는 대신 알 듯 말 듯한 이상한 말을 늘어놓았다.

 

[줄곧 당신을 보고 있었어요.]

[처음 저택에 온 순간에서부터 죽.]

 

허 백의 눈이 풀린다. 허 백은 허공으로 팔을 휘저었다. 몸이 떠오른다. 그때 그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괜찮아요.]

[아프지 않을 테니.]

 

허 백이 땅으로 고꾸라진다. 몸이 도시 위로 날아오른다. 입이 벙긋벙긋 말들을 내지만 자신은 들을 수가 없었다. 여자가 답한다.

 

[제 이름은 단이에요.]

[당신의 정원사이자 안식처.]

[수호자이자 열렬한 지지자.]

 

앞섶이 풀어 헤쳐진다. 단추와 끈들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진다. 중얼거리는 그의 입으로 따뜻한 물이 차고 넘치어 흐른다. 단이는 그의 몸 위로 몸을 흔들었다. 부풀고 채워지는 그런 밤을, 그녀는 원하였다.

 

 

 

자오랑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택의 빈 곳을 찾으려 고개를 빼어 걸었다. 높다랗게 세워진 철창 사이 작게 난 구멍으로 자오랑은 머리를 집어넣고서 있는 힘껏 몸을 밀어 넣었다. 화단으로 가려진 구멍으로 팔을 휘적거리던 그는 몸을 늘어뜨려 숨을 내쉬었다.

 

앳되어 보이는 안드로이드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서 자오랑을 바라본다. 자오랑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양팔을 뻗었다. 소녀가 호기심으로 그에게 다가간다. 그녀의 발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진다.

 

우드득.

 

쉿.

 

자오랑이 검지를 대어 소리를 죽이자 안드로이드, 그 소녀는 총총 걸어와 얼굴을 들이대었다. 그녀의 눈이 차가운 유리 속에서 자오랑을 관찰한다. 자오랑은 두 팔을 뻗으며 휘적거렸다. 소녀가 주위를 살핀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총총 왔던 길로 사라진다. 자오랑은 체념한 얼굴로 허리에 끼인 철창을 잡고 힘을 주었다. 끙끙거리는 그의 신음이 옅게 화단의 너머로 깔린다.

 

한참을 버둥거리는 그에게로 소녀 안드로이드들이 우루루 모여든다. 그녀들은 제 자매의 허리를 잡고서 자오랑의 팔을 잡아 끌었다.

 

[千万!]

(제발!)

 

반질거리는 새 철창으로 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자오랑은 풀밭에 고꾸라진 채 두 손을 모아 감사함을 표현했다.

 

[谢谢, 谢谢]

(고마워, 고마워요.)

 

소녀들이 제 아래에 있는 인간 청년을 둘러보며 키득거린다. 그녀들을 따라온 한 안드로이드가 팔을 휘적거리며 똑바로 선다. 그녀들이 자오랑을 둘러싼 채 앞을 본다.

 

좀 더 늙은 얼굴의 하녀 안드로이드가 화단으로 다가와 그녀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자오랑은 숨죽여 그들의 대화를 들으려 하였지만 통역기를 켜두지 않았다. 살며시 귀로 손을 대어 통역 장치를 두드린다.

 

쉭.

 

낡은 기계음. 나이 든 하녀 안드로이드가 고개를 기울인다. 자오랑은 숨을 막고서 눈을 꼭 감았다. 소녀가 몸을 기울여 그를 가린다.

 

[저희는 이제 주방 일을 도우러 가야 합니다.]

 

[저택 업무를 방치하는 건 곧 폐기를 의미해요.]

 

소녀들이 묵묵히 말들을 들으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늙은 하녀의 발자욱이 소녀들의 발자욱 사이사이로 움직여 자오랑의 숨의 곁으로 선다. 그는 입을 막고서 소리를 죽이려 하였다. 그를 처음 보았던 소녀 안드로이드가 살짝 뒤를 돌아보았고 자오랑과 시선이 마주친다. 자오랑과의 시선을 시작으로 그녀가 한 발 앞으로 늙은 안드로이드의 눈을 가렸고 소녀들이 일제히 그녀를 따라 늙은 하녀 안드로이드의 시선과 몸을 뒤로, 뒤로 밀려나게 했다. 소녀들이 저들끼리 키득거렸고 늙은 하녀는 빈 화단 앞에서 몸을 돌리었다.

 

자오랑은 저택 안드로이드들의 눈을 피해 몸을 낮추고 벽에 몸을 붙였다. 그는 먼저 요코가 있었던 일본식 방으로 가기로 하였다. 문을 열고 작은 방으로 들어간다. 장지 하나를 더 열고 숨겨진 큰 방으로 들어간다. 소지품들이 어지럽혀 있었다. 누군가 먼저 온 것일까. 화장품과 거울, 빈 편지지와 속옷들. 벽을 더듬는다. 자오랑의 고개가 문 너머 다른 곳을 향한다.

 

그의 직감이 강하게 이끌린다. 그의 방으로, 허 씨 집안의 차남. 허 백의 방으로. 자오랑은 다시 몸을 낮추고 발소리를 죽이며 간신히 허 백의 방에 접근하였다. 문을 살며시 열고 소리가 나지 않게 닫는다. 침대와 간소한 탁자. 제목도 모를 책들이 빼곡한 책장. 자오랑은 벽의 사방으로 두드리고 더듬었다. 이 방도 분명.

 

달칵.

 

[对!]

(그렇지.)

 

벽의 한 틈새가 열리고 앞으로 쓰러진다.

 

[怎么回事?]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벽의 틈새는 기다란 굴로 이어져 있었다. 주머니에 있던 전화기를 꺼내 손전등을 킨다. 빈 굴로 바람하나 불지 않는다. 자오랑은 침을 삼키고 굴로 들어간다.

 

아래로, 아래로.

 

막힌 곳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다시 아래로.

 

먼지 가득한 흙더미를 짚으며 눈을 찌푸렸다. 자오랑은 네 개의 굴이 뚫린 작은 공간에서 하나의 굴로 들어온다. 자신이 들어온 굴에 손으로 표시를 하며 주위를 둘러본다. 맞은편의 굴로 작은 빛이 새어나온다. 자오랑의 직감이 위험 신호를 울렸다. 도망쳐야 한다. 자오랑이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빛이 새어나오는 작은 굴로, 저택의 밑으로 몸을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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