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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원경 피루엣

2021.01.01 00:0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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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루엣

갈원경

 

꽃이 사철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 있다지. 눈 쌓이는 한겨울에는 피같이 붉은 동백이 핀다지. 봄보다 일찍 매화가 핀다지. 이파리보다 먼저 노란 꽃이 담장을 흘러내리고 한낮 땡볕에 그곳만은 싱그러운 푸른 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지. 거기 한 사람이 산다지. 곱지도 않고 사람 눈길 모을 이유 하나 없는 그런, 나이를 짐작도 하기 어렵고 하고자 하는 이도 없는 그런 아낙이 하나, 거기 산다지. 작은 초가를 둘러싸듯 푸르고 붉은 꽃들이 피는데, 그 꽃을 제 피붙이인 듯 살뜰히 살피는 이가, 걸음걸음 꽃향기가 피어나는 기이한 이가, 거기 산다지. 

 

 

하나. 

그 집이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마을 사람 중에 아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래전에 빈집으로 버려져 있던 곳에 언제부터인가 타지에서 흘러들어온 한 여인이 거기 살게 되었다 했다. 주변 밭을 매는 모습에 농사라도 지으려나 걱정한 마을 사람들이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지만, 이 집이 지금처럼 되기 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는 마을 사람들 가운데 남아있지 않았다. 마을 밖은 아니어도 또 마을 집들이 모인 곳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언덕, 논농사는 애초에 지을 수도 없고 밭농사나 과일이나 좀 키울까 싶은 곳에 홀연히 꽃밭에 조그만 초가가 있었다. 마을로 들어오는 이들이 촌장 집을 지나서 또 한참을 들어와, 어디선가 꽃향기를 맡고 길이 점점 좁아지며 숨이 찰 무렵, 그 숨 끝에 짙은 향이 훅 들어오는 곳에 그 집이 있었다. 

“누구 계시오?”

누구든 그 집에서 그리 물으면, 어디선가 흰옷의 아낙이 덧치마에 손을 닦으며 나오곤 했다. 

“어찌 오셨소? 마을은 이쪽이 아니외다.” 

머리를 묶은 모습이나 볕에 그을린 얼굴 어딜 보아도 눈길을 끌 곳은 없는 이였지만, 마치 꿈처럼 꽃향기에 취해 있다가 대답을 못 하거나 하면, 아낙은 늘 그러하다는 듯이 옅게 한숨을 쉬었다. 

“차나 한잔 드시고 가실 요량이면 거기 앉으시오. 차를 내오리다.”

툇마루는 초가에 비해 널찍해서 길을 잘못 든 나그네는 거기 걸터앉아 세상과 따로 떨어진 것 같은 꽃밭에 취하기 마련이었다. 딱히 드문 꽃도 아니었다. 봄날이면 다른 곳처럼 진달래가, 여름의 초엽이면 참나리꽃이 피었다. 마을에도 드문드문 있는 그런 꽃들이 모여 있을 따름인데도, 그곳에는 그렇게 흐드러지게 핀 꽃과는 다른 향이 났다. 아낙이 차를 내오면 그제야 그 향이 밭에 핀 꽃이 아니라 찻주전자 속 꽃에서 나는 향임을 알았다. 겨울에 눈 풍경과 함께 설핏 비치는 향이 늦봄 한풀 꺾인 진달래와 나리꽃과 함께 났다. 

“무슨 차가 이리 향이 짙습니까.”
“소일거리 삼아서 꽃을 따다 차로 말리지요. 차나무에서 찻잎을 따다가 덖고, 꽃잎은 잘 거두어서 맑은 물에 손질해서 차로 만듭니다. 별일도 아니지요.”

나그네가 입에 대는 차는 세상의 향도 맛도 아니다. 꽃밭이 머리 가득 춤추고 입은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계절이 가득해 지금 이곳이 꿈인 듯싶다. 

“이 차를 좀 나누어 주실 수 있습니까? 값이 얼만지 모르겠으나, 적은 양이라도 제가 치를 수 있는 값이면.”
“그렇게는 하지 않습니다.”

아낙이 웃는다. 그 웃음은 처음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르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꼭 아낙에게서 번지는 것 같고. 세상에 흔한 그 모습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이 같다. 

“오시는 분들께는 차를 내어 드리고 있으나, 소일거리로 하는 것이지 파는 물건은 아닙니다. 차 한 잔 따뜻하게 드셨으면 기억으로 간직하시고 돌아가십시오.” 

아낙이 일어나고 나그네는 머쓱해져 찻잔을 비운다. 달아오른 낯으로 마을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꽃 향을 맡고 그곳 차를 마셨구나 여겼다.

 

 

둘.

푸른빛이 짙어지는 초여름이었다. 청보리 푸른 잎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사월이 지나고 마을 곳곳 볕 잘 드는 곳이면 짙은 주홍빛 멧나리꽃과 연분홍 상사화가 드문드문 피기 시작했다. 언덕 초막으로 쉰은 넘은 나이의 아낙이 올라와 문을 열었다. 

“다인(茶人), 있는가?”
“정순 아지매, 어서 오셔요, 마침 진달래 차를 열어볼까 하던 차였는데.”
“올해 목련은 차로 안 빚었으려나?” 

툇마루에 걸터앉으며 정순이 웃었다. 

“다인 자네만 불러주는 이름이라, 들어도 들어도 낯서네.”
“아지매 이름자가 얼마나 곱소. 안 부르면 아깝지. …목련은 올해 어째 일찍 피더라니, 이레는 일찍 저물기 시작하기에 서둘러 차를 말렸지요. 목련으로 낼까요?”
“뭐든, 여름 저물녘에 봄 내음을 보는데, 뭔들 안 좋을까.”
“그럼 목련으로 하지요.”

정순은 꽃 향 속에 묻혀 그 속에 살지 않는 사람처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계절은 어디든 같이 흐르는데 한 걸음 물러서서 보고 있으면 여느 계절도 특별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넓은 그릇에 목련이 피었다. 정순은 꽃마다 다른 그릇에 차를 내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무를 깎은 넓은 사발이 목련과 참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향이 가득 퍼질 때쯤 다인은 넓은 사발에서 나무 국자로 찻물을 덜어 나무잔으로 옮겨 정순에게 건넸다. 꽃은 사발에 있으나 다향은 정순의 두 손 위로 깃들었다. 

“…올해로 삼 년이 되었네.”
“그리되었네요. 정순 아지매, 여기 처음 올라오신 날이 어제 같은데.”

“목을 매고 따라가려고 온 길이었지. 참 멋없는 사람이어서 살가워질 줄도 모르는 이라고들 했지마는. 농사철이면 서로 몸이 곤해서 안 아픈 곳이 없는데, 누운 자리에서 꼭 다리를 조물조물해주곤 했었지. 제 몸도 곤해서 꾸벅꾸벅 고개가 기울어지는데도 꼭 내 다리를 주물러 준 뒤에야 등을 바닥에 댔지. 남 보는 데서 정이야 냈겠냐만, 밥 독촉한 적 없고 무거운 거 들게 한 적 없고… 그런 이였네.”

정순이 언덕에 처음 오른 날. 신발은 어디서 잃었는지 버선발이 온통 흙물로 풀물로 젖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꽃밭 한 가운데였다. 아, 내가 정말 정신을 놓았구나. 이 계절에 꽃이라니. 그 사람이 없는 계절에 꽃이 있을 리 없는데. 

“정순 아지매 바깥사람이 정 깊은 걸 누가 모르려고요.”
“나 한 몸 남아서 뭐 하나, 기댈 곳도 기대는 곳도 없는데 따라가야지 했어.”
“아마도, 뭐하러 왔냐고 화를 내시겠지요. 그분은.”

다인은 제 몫의 차는 내지 않았다. 그저 삼 년 전 그날, 넋을 놓고 꽃밭 한가운데 서서 오열하던 이가 지금 이리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 여긴다. 꽃밭도 초막도 모르는 이가 없는 줄 알았는데 얼마나 바삐 살았으면 먼 마을에서 홀로 시집와서 그 긴 시간을 한 번도 꽃을 보러 차를 마시러 온 적이 없는 이였다. 서로 기댈 곳 없는 둘이 그리 살갑게 사노라 소문만 듣던 부부였다.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상엿소리가 들려 남은 이는 어쩔까 한 번도 본 적 없는 남은 이가 마음에 쓰이던 때였다. 

“벌써 삼 년인데, 아직 오라고 하질 않네 그이가.”
“명호 아재 아이들을 거두셨다면서요. 그 애들 그제 와서는, 정순 아지매 무슨 꽃 좋아하시냐 묻고 갔는걸요. 마음 쓰는 게 참 곱더이다.”

홀로 된 이가 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두 아들을 키웠는데, 갑자기 내린 비로 불어난 물살에 배가 뒤집혔고 어린 두 아들만 남았다. 마을에서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살펴보기로 하려는데 정순이 대뜸 아이들을 거두겠다 했다. 남은 거라곤 이불채 밖에 없는 어려운 살림살이라, 아이들은 제 몫의 이불과 함께 정순의 집으로 옮겨왔다. 큰아이가 열 살, 작은 아이가 일곱 살. 작은 아이가 태어날 때 어미가 떠났으니 낳아준 어머니를 기억도 못 하는 두 아이는 갑자기 아버지를 잃고 정순의 품으로 왔다. 

“그이가 말년 복을 주고 간 모양일세. 없던 자식이 다 생기고.”
“그 아이들에게 부모 복이 생긴 게지요.”

두 번째 찻잔을 비우고 정순은 가져온 보따리를 쓱 앞으로 내밀었다. 

“기훈이가 찰떡을 좋아해서 좀 찧었네. 내가 손이 오죽 커야지. 별맛 없어도 찻값이라 여기고 드시게.”
“진달래 차 드시러도 오셔요. 찻값이 아주 넘치네요.”

다인이 웃으며 떡을 받았다. 

“기훈이 기원이가 또 귀찮게 하거든 그냥 내쫓으시고.”
“여기 찾는 이가 뭐 그리 많은가요. 마을 사람들 누가 오든 다 반갑고 고맙지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주시고.”
“예에, 그러지요.”

정순은 일어나 꽃 향을 뒤로 하고 마을로 향했다. 신발이 벗겨지고 덧치마가 엉망이 되어서 올라온 삼 년 전 그날, 마을 사람들 말보다 앳된 다인은 꼭 오래전 잃은 막내아우 같았다. 정순은 꽃향기 속에 서 있는 다인이 저세상에서 온 사자 같아서, 다인을 끌어안고 오열했다. 나 좀 데려가게, 나 좀 데려가게 우는 자신을 다인은 말없이 토닥이다가, 차 한잔하시라고 초가로 이끌었다. 목련꽃 새하얀 이파리가 꼭 막내아우 마지막 길에 입힌 치맛자락 같고, 남편이 두르던 머리끈 같고, 혼롓날 소매에 얹은 흰 포 같았다. 그 차를 보고 또 한참을 울다가, 정신이 아득해지려는데 다인이 찻물을 입으로 흘려 넣어 주었다. 꽃내음이, 따뜻한 기운이, 자신을 살렸다. 정순은 또 한 해 살아보기로 했다. 제 아비도 아닌 정순의 지아비 떠난 날을 챙기며 정순이 좋아하는 꽃을 묻는 두 소년과 한 해 더 살아보기로 했다. 

 

 

셋.

누가 다인의 이야기를 옮겼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웃 마을 사람이나 한 번씩 들렀을까 사람이 있을 때보다 없을 때가 더 많은 곳에, 새로 꽃향기가 마을로 내려오면 가끔 한 명씩, 몇 명씩 올라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오던 곳을, 낯선 이가 찾은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은은하게 광택이 도는 옷깃도 관리들이나 입을 법한 옷이었고 네 사람이 한 사람을 계속 살피는 것도 마을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벼슬아치들이 저런 옷을 입겠지, 앞에서는 못 할 말을 뒤에서나 나누는데, 낯선 이는 처음부터 ‘꽃으로 차를 만드는 여자’를 물었다. 이웃 마을 사람이라면 사철 꽃피는 꽃밭을 이야기했을 터였다. 사람들은 늘 다인의 차를 마셔왔으므로 꽃으로 차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드문 일인지도 몰랐다. 다만 다인의 차가 대부분 꽃으로 만든 것은 사실이어서, 사람들은 언덕의 다인의 초가를 알려주었다. 

비단신으로 걷기에는 나쁜 길이었으나, 가마를 타기에는 더 나쁜 길이었다. 낯선 이는 얼굴을 연신 찌푸리며 언덕을 올랐고 그를 살피는 이들은 길을 미리 살펴 편히 걸을 수 있을 방법을 찾아놓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다인은 일찌감치 소란스러운 길의 소리를 듣고 대청에 나와 꽃밭으로 오는 다섯 사람을 보고 있었다. 제 발걸음을 살피느라 다인이 나와 있는 것을 알지 못한 이들은 집 앞에 와서야 고개를 들어 다인을 보았다.

“여기가, 꽃으로 차를 만드는 이의 집인가?” 

숨을 고르며 개중 가장 귀해 보이는 이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주인을 부르게. 내 그 신기하다는 꽃을 맛보러 왔으니.” 

다인이 설핏 웃었다. 

“꽃으로 차를 만드는 이를 주인이라 부르시는 거라면, 나리의 눈앞에 있습니다. 이 초막에서 혼자 지낸 지 여러 해가 되었지요.”

사내는 다인을 보고, 큼, 목을 골랐다. 

“차의 예법은 본시 대국의 것인데, 이곳에 듣도 보도 못한 차가 있다고 하도 말이 들리기에 먼 길을 왔더니, 살림하는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니.” 
“돌아가시겠습니까?” 

네 사람의 남자들이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다인의 말이 먼저 나왔다. 

“대국이 어딘지 이몸은 알지 못하옵고, 이 땅을 떠돌다가 꽃이 피는 곳에 몸을 뉘었을 뿐 예법에 대해서도 들은 바가 없으니 살림하는 손으로 말리고 덖은 차라 흥미를 잃으셨으면 돌아가시는 게 옳겠지요.” 

다인은 할 말을 다 한 듯 돌아서서 정짓간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섯은 다인이 들리지 않는 소리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사내가 다인이 있는 정짓간으로 급히 들어왔다. 

“귀한 분이시오. 어렵게 여기까지 걸음하셨으니, 예법은 차치하고 차 한잔은 내어 주실 수 있지 않겠소.”

다인은 말간 눈으로 사내를 보았다. 

“흙더미에서 밭 일구는 이들이 한숨 돌리고 가시라고 만드는 차입니다. 귀한 분께는 격이 맞지 않을 듯 합니다만.” 
“…일찍 아버님을 여의시고 엄한 조부님 아래에서 큰 숨도 못 쉬고 자라신 분이니 이해해 주시오. 내가 사과드리리다.”

다인은 남자를 물끄러미 보았다가, 찻물을 올렸다. 

“차의 종류는 제가 골라도 괜찮겠지요?”
“그리 하시오. 어떤 차가 있는지도 우리는 모르니.” 
“그럼 나가서 쉬고 계십시오. 늦여름 꽃도 향이 짙으니 볼 것이 아주 없는 풍경은 아니실 겝니다.” 

남자가 정짓간을 나서고 잠시 후에 다인은 한 사람 앞상으로 제격일 소반에 주전자와 그릇과 작은 병을 받쳐 나왔다. 세공이 정밀하지는 않아도 다리는 곡선으로 깎았고 오래 기름을 먹여 반질하게 윤기가 나는 소반을 대청에 내려놓고 다인은 더운 물을 흰 대접에 부었다가 휘이 돌려 물을 비웠다. 작은 병을 열어 톡 톡, 물을 비운 대접에 꽃송이 두엇을 떨구었다. 노란 꽃잎이 하얀 대접 위에 놓인 위로 다인이 더운물을 부었다. 천천히 여름 향을 뚫고 국화향이 짙게 퍼지기 시작하며 물기를 머금은 꽃잎이 하나씩 대접 위로 떠올랐다. 다인은 대접의 찻물을 작은 찻잔으로 옮겨 담아 귀한 분 앞에 놓았다. 

“소국(小菊)입니다. 작년에 피었던 추국(秋菊)이지요. 가을이 오려면 아직 멀었으니 이른 정취를 조금 느껴 보십시오.” 

옥색 도포자락을 갈무리하며 귀한 분이라 불린 남자가 찻잔을 받았다. 한 사내가 뭔가 말을 하려는 것을 만류하고 찻물을 입에 머금었다. 다인의 말대로 짙은 가을향이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국화를 모두 소국이라 부르지만 짙은 노란 색의 국화는 그중에서도 특히 작아 엄지손톱만한 크기였는데 그 작은 꽃이 우러낸 향은 이 집을 채울 듯이 짙었다. 남자는 천천히 한 모금, 한 모금을 말없이 머금어 넘기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여름꽃의 향기는 더이상 없고 온 사방이 가을이었다. 

“나는 여름이 싫네.”

차를 다 비우고 그가 말했다. 다인은 말없이 들었다. 

“윤오월 더위는 끔찍하지. 의관을 갖추고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고, 목이 수시로 타오르는 날씨라네. 해는 또 얼마나 긴지. 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은 그저 햇살이 내게 그대로 덤벼드는 것 같지. 그런 여름이, 얼마나 싫은지 모르네.” 

윤오월이 있었던 것은 이미 십 년도 훨씬 넘은 일이나, 다인은 말하지 않았다. 

“가을이 온 것 같아 좋구먼. 한 잔 더 주게나.”

다인은 한 잔을 더 덜어 남자의 잔으로 옮겼다. 스물 대여섯쯤 되었을까. 그가 한 잔을 더 청하는 모습에 그를 살피던 이들이 안심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분들도 한 잔 하시지요.”
“아니, 우리는 괜찮소. 그저 물이나 주시겠소? 향이 짙어서 마시지 않아도 마신 것 같소.”

다인은 다시 정짓간으로 들어가 한 뜸 식힌 물대접을 남자들에게 건넸다. 

“잘 마셨소. 무례했던 것은 부디 용서하시게. 찻값은 이 사람이 치를게요.”

남자가 일어났다. 다인이 손을 저었다.

“여기 오는 분들 땀이나 식히고 가시라고 만드는 차인지라 누구에게도 찻값은 받지 않습니다. 꽃을 값을 받고 드리지도 않고요. 다만 먼 길 오셔서 다시 차를 드시기는 어려울 터이니 차는 못 드리지만 이걸 가지고 가십시오.”

다인이 잘 접힌 종이를 건넸다. 남자는 종이를 펼쳐, 누이와 어머니가 쓰던 글자로 적힌 것을 찬찬히 읽었다. 

[ 국화꽃을 송이째 떼어 바람 잘 통하는 그늘에 말립니다. 잘 말린 국화를 맑은 물에 가볍게 씻습니다. 끓는 물에 소금을 약간 넣어 씻은 국화를 데친 후 바로 맑은 물에 헹구어 다시 그늘진 곳에 말립니다. 충분히 말린 차는 습기가 차지 않도록 병에 잘 봉합니다. 차는 한 잔에 한 송이면 충분합니다. 팔팔 끓인 물을 한소끔 식힌 후에 꽃잎이 떠오르면 드십니다. ]

다인의 글씨가 남자의 누이의 글씨를 닮았다. 남자는 종이를 잘 접어 품에 넣었다. 

“고맙소. 소국이 피면 꼭 만들어 달라 하리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처음 올 때 찌푸린 얼굴이 완전히 펴져 남자는 진 발밑을 아랑곳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 뒤로 그가 다시 초막을 찾는 일은 없었으나 다인은 그가 돌아간 다음 날 새벽 보름이 조금 지나 꽤 이지러진 달빛 아래 국화차를 우려 기도를 올렸다. 십 수 해 전, 윤오월 어느 날 원망스럽게 세상을 뜬 어떤 이를 위한 차였다. 

 

 

넷.

세 번의 계절이 또 지나고 때늦게 내린 눈이 반쯤 녹은 아래에 발그레한 매화가 이 탐스럽게 피기 시작하는 초봄이었다. 언덕에는 새싹이 자라기 시작했고 다인은 집 뒤 텃밭에는 채소를 심고 꽃밭에는 봄꽃이 하나둘 봉우리를 맺었다. 사람들은 실려오는 꽃향기로 봄이 가까웠음을 알았다. 청년이 초막을 찾은 것은 그 무렵이었다.  

“차를 마시러 왔소.”

청년은 다인에게 그리 말하고 대청에 앉았다. 지난 여름 초막을 찾아왔던 이와 어딘가 닮은 모습이라고 다인은 여기지만 비단 옷을 걸친 것은 같아도 그와 함께 찾은 이는 없었다. 

“찾으시는 차가 있으신 모양입니다만.”
“지난여름에 귀한 이가 왔을게요. 잔뜩 무리를 끌고 왔겠지. 그 사람이 마신 차를 주시오.”

귀한 이라는 말에 다인은 곧바로 닮은 얼굴의 그 사람을 떠올렸다. 네 명의 동행과 함께 한 것이 ‘잔뜩 무리를 끌고’ 온 것은 아니겠지만, 이 마을과 옆 마을 사람, 그리고 그들이 데리고 온 이들 외에 낯선 이가 온 것은 그때 뿐이니 청년이 말하는 이는 그 사람일 터였다. 다인은 그날 그때처럼 물을 끓이고 흰 사발에 소국을 톡톡 떨어뜨리고 더운 물을 부었다. 

“드시지요. 그분이 드신 차입니다.”
“나를 놀리시오? 이게 무슨 차란 말이오? 향이 가득해서 천지가 가을이다 하더니, 꽃이 떠 있어서 꽃인 줄 알지 향이라곤 기색도 없지 않소! 저기 핀 매화가 차라리 향이 짙거늘.”

청년이 버럭 소리쳤다. 

“그때 드셨던 차는 이 소국이 맞습니다. 습한 여름과 마른 초봄이 향이 퍼지는 것이 같지는 않겠으나. 한 번 드셔 보시지요.”

다인이 찻잔을 건네자 청년은 벌컥, 차를 마시고 소리나게 소반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청년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소반에 놓인 병을 열어 소국을 쏟아부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물색도 그대로이고 향도 없는 이것이 그때의 차라? 네가 나를 우롱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냐!” 

다인은 사발 위로 가득히 피어나는 소국을 망연히 보고 있었다. 그해의 가을 소국을 전부 따서 말렸다 씻어 다시 소금물로 쪄내어 말려 하나하나 곱지 않은 잎을 추려내어 만든 국화차였다. 지난 가을에 새로 만든 국화차는 시렁에 있으나 매년 피는 국화가 같지 않고 매년 만들어지는 국화차도 같지 않았다. 

“이 가득한 향을 맡지 못하신다니, 이 향이 나리의 향이 아닌 모양이지요.”

다인의 말에 청년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네가 사람을 함부로 평하고 다르게 대한 것이 분명하다. 시골 촌부들이 모두 네 다향을 이야기하는데, 감히 내게 향 없는 차를 낸 것이 나를 우롱한 게 아니냐! 이 땅에 가장 높다는 이가 네 차를 칭찬한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사람을 가려 차를 내고 부귀를 욕심내는 것이 아니면 왜!” 

다인의 입가에 설핏, 한숨이 스쳤다. 

“차를 만들어 생계를 꾸린 적 없고, 차로 부귀를 꾀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오시는 분께 그분이 드시고자 하는 차를 내었습니다. 오지 않은 계절을, 이미 지난 계절을 느끼고 한숨 쉬어 가시라고 차를 만듭니다. 꽃으로도 만들고 이파리로도 만듭니다. 꽃이라고 다 차가 될 수 없고 차라고 다 꽃도 아닙니다. 제가 무엇을 위해 나리를 우롱하겠습니까?” 

“그래도 이것이!”

다인이 일어나 정짓간으로 들어가, 한 아름 작은 병들을 들고 나왔다. 한여름의 짙은 풀잎 내음, 가을 낙엽을 태우는 것 같은 고소한 향, 소복이 쌓인 눈 아래 핀 난초 향, 병을 열 때마다 다른 향들이 하나씩 하나씩 공기로 퍼졌지만 청년의 노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건 또 무슨 수작이냐. 이 병들이 다 무엇이냐?”
“……나리, 여기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있습니다.” 
“모두 차를 우려라. 네 말이 맞으면 다향이 날 테니.”

다인이 모든 차를 우려 청년에게 건넸으나 청년은 매번 찻잔을 소리내어 소반 위로 내려칠 뿐, 노기는 짙어지기만 했다. 다인은 청년이 또 병을 쏟아버릴까 바로 병을 닫고 소반 아래로 내려놓았다. 냄새를 못 맡는 병도 있겠으나 눈을 맞은 매화의 향을 이야기한 것을 보면 청년은 그런 것은 아닐 터였다. 청년이 벌떡 일어나 검을 빼들었다. 비단옷 허리띠 옆에 맨 칼이 장식인 듯 화려하더니 날이 푸르게 서 있었다. 다인은 자신의 눈 바로 앞에 뾰족하게 서 있는 푸른 날을 남의 일인 듯이 보았다.

“여기서 널 베고 가야 더 이상 계절을 거스르는 차가 있다느니 우롱하는 말이 퍼지지 않겠지. 죄인의 피를 받은 자가 나보다 더 귀한 섬김을 받는 것도 분한데, 이 시골 촌부까지 나를 우롱하는 것을 어찌 두고 가겠느냐?”

“나리를 제가 어찌 우롱하겠습니까. 말씀대로 그저 촌부인 것을. 다만 나리, 이녁이 사철 꽃을 돌보고 차를 빚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다 압니다. 이녁 하나를 베고 가는 것은 쉬우나, 소문이 바람을 타고 퍼지겠지요. 비단옷을 입은 높은 분이 어느 날 다녀간 후에 제가 사라졌다고. 그 모든 무게를 어찌 견디시겠습니까?”

청년은 한참 다인을 노려보더니 칼을 거두었다. 다인은 언제나 사람들이 다녀간 후에 그러하듯이 소반을 닦고 찻물이 우러났던 그릇을 씻어 놓고 대청에 걸터앉았다. 어지럽게 사철 향이 번지던 것이 점차 옅어지고 초봄의 풋풋한 향이 다시 돌아왔다. 

 

청년은 달포가 지나 초막으로 다시 찾아왔다. 처음 올 때처럼 비단옷 차림이 아니라 잔뜩 구겨진 광목옷에다 늦봄에는 벌써 벗어야 했을 솜옷을 덧입고 허리띠에 매었던 검도 없이 허위허위 비틀거리며 올라왔다. 다인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청년의 걸음걸음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악취가 함께 올라왔다. 형형하게 빛나던 눈동자도 탁해졌고, 갓 스물을 넘은 듯 하던 청년은 달포 사이에 수년은 세월을 먹은 듯 헤쓱해졌다. 

“……살려주시게, 살려주시게.”
“어쩐 일이십니까, 나리.”

다인은 청년의 옷이 그리 더럽혀져 있지 않음을 바로 보았다. 얼굴이 헤쓱하고 몸도 여위었으나 붉은 기가 도는 몸 어디에도 더러워진 부분이 없었다. 어디서 나는 악취인지 세상에서 이런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나 다인은 기억을 더듬었다가, 얼굴을 찌푸렸다. 십 수년도 전의 일, 영문 모르는 병이 돌아 약한 이들부터 앓아누웠던 때. 온 사방에 울음소리가 들리던 그때. 한 집에 한 사람은 앓는 이가 있다고 할 정도로 병이 퍼졌다. 병이 옮을지 모르니 무덤을 만들면 안 된다 해서, 불당에서 시신을 모아 태웠다. 온 세상이 울음으로 가득한 해였다. 그 해는 꽃도 피지 않았다. 아니, 피었지만 누구도 꽃의 향을 느낄 수 없던 해였다. 그때 불당에서, 마을에서, 곳곳에 퍼져있던 그 냄새가 청년에게서 났다.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프지 않네, 아무 데도 아프지 않아. 하지만 이 냄새가, 이 냄새가 사라지질 않아. 무엇을 먹어도, 몇 시간을 물에 들어가 있어도, 어느 의원도 원인을 모르네. 여기서 나와서 집에 돌아간 그 순간부터 점점 짙어져서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도 내 집에서 냄새를 맡고 멀리 돌아가네. 살려 주게.” 

“제가 의원도 아닌데 어찌 나리를 구하겠습니까.”

“죽어가는 이 살리는 셈 치고, 제발 차를 주시게. 내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을테니, 자네가 고른 차를 마시면 분명히 이 냄새가 가실 게야. 분명 그럴 게야. 살려 주게.”

“…일단 앉으시지요.”

잠시 후에 다인은 달포 전과 같이 소반을 들고 왔다. 소반 위에는 주전자 하나와 찻잔만이 놓여 있었다. 다인은 주전자를 기울여 풀잎색을 띠는 차를 찻잔에 부었다. 

“드시지요.”

청년은 아무 말 없이 찻잔을 들이켰다. 첫입은 썼으나 따뜻한 풀잎향이 목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 몸이 따뜻해졌다. 봄의 한가운데에 있으나 아무리 더운 음식을 먹어도 추운 기운이 사라지지 않더니, 한 모금 차에 봄이 몸으로 스미는 듯했다. 

“올해 갓 딴 쑥으로 만든 쑥차입니다. 꽃으로만 차를 만드는 게 아니라서요. 예로부터 해독에 좋은 차이고 몸을 따뜻하게 한다고 해서 드려 봤습니다. 어떠십니까?”

“봄이로세. 겨울이 다시 온 것처럼 추위가 사라지질 않더니.”
“다행입니다.”

“자네가 나를 원망해서 내가 이리된 것인가?” 

청년이 물었다. 다인이 조금 웃음지었다.

“제게 그런 힘이 있으면 이 초막에서 차만 만들고 있으려고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그저 이곳에서 차를 만들고 농사를 짓는 촌부입니다. …허나 나리, 제가 한 가지는 알지요. 원망하는 마음이 갈 곳을 잃으면 늘 마음의 주인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을요. 마음이 얼음장 겨울인데 봄이 올 리가 있겠습니까. 사방이 봄기운이어도 마음이 겨울이면 몸도 겨울을 지낼 밖에요.”

청년은 고개를 숙였다. 다인은 차 한잔을 더 따랐다. 청년이 다시 차를 들이켰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게지, 자네는.”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말씀하신 적도 없고, 이 촌부에게 그런 것을 알려줄 이도 없습니다.” 

청년은 두 잔째의 차를 비운 후에야 조금 편안하게 앉아 솜옷을 벗었다. 악취는 아직 남아있으나 청년의 눈빛은 처음보다는 조금 편해졌다. 

“쑥차 만드는 법을 알려 드리겠으니 돌아가셔도 드십시오. 피를 보아 원망을 깊게 하지 마시고, 마음을 겨울로 두지 마십시오. 그렇게 몸도 마음도 계절과 같아지시거든, 언제든 다시 오십시오. 올 봄꽃을 여럿 말려 두었으니 다시 오실 때는 봄꽃 향기 가득한 차를 내어 드리지요.”

“……고맙네. 그리 함세.”

다인은 방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을 있다가, 잘 접은 종이를 들고나왔다. 청년은 종이를 펼쳐 지난해에 이곳에 왔던 ‘귀한 이’와 닮은 모습으로 글귀를 읽었다. 쑥을 따서 어떻게 손질을 하고 어떻게 말려서 차를 만드는지, 어찌 보면 간단하고 어찌 보면 손이 많이 가는 일을 고전 명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곱씹어 읽었다. 

“다음에 또 옴세.”
“조심히 가십시오.” 

다인은 달포 전과 다른 모습으로 돌아가는 청년을 배웅하고는 막 이파리가 돋기 시작하는 목련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조만간 정순이 언덕을 찾을 터였다. 

 

 

다섯이고 하나 이전. 

아이가 이 마을에 온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태풍에 아비와 어미가 함께 탄 배가 뒤집혀져 일순간에 오갈 곳이 없게 되었는데 딱히 이름난 고기를 잡지도 못하고 큰 배를 만들수도 없는 바닷마을에 제 앞가림 하기 어려운 것은 모두 한가지라 누구도 아이를 거두겠다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곳에 한 여인이 왔다. 긴 여행길을 떠난 듯 단단하게 옷을 여미고 아무 것도 없는 바닷마을에 와 부모를 잃은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낯선 이가 마을의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 했을 때 몇몇은 안도했고 몇몇은 염려했으나 염려한 이들도 다른 길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여인은 남매에게 옷짐을 챙기게 하고는 함께 길을 떠나 마을로 왔다. 작은 초가에는 닮은 방이 둘 있어 여인은 남매에게 방하나를 쓰게 했다.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고 아이들이 자라 손이 조금 여물어졌을 때 여인은 아이들에게 차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목련은 꽃술에 독이 있으니 꽃잎만을 말려 차로 내야 한다. 이 고운 방울꽃은 뱀독보다 강하니 절대로 따지 말고, 차로 만들 생각도 하지 말아라. 예쁘다고 옆에 두지 말고 혹시 씨가 날아와 꽃이 피겠다 싶으면 꽃이 피기 전에 뿌리를 뽑아 태워라. 여인은 독이 있는 꽃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꽃이 이파리가 어디에 좋고 어디에 나쁜지 하나하나 익히게 했다. 

사내아이는 손이 더 여물어졌을 때 여인에게 크게 절하고 마을을 떠났다. 어깨가 넓고 곧아 어디 간들 제 앞가림은 할 소년으로 자라, 어느 날 마을을 찾아온 장사치 무리와 함께하기로 했다. 

여자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여인은 방에 누워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차를 청할 때 이제 여인 대신 여자아이가, 소녀가 차를 냈다. 

“여보게 다인, 어른은 어디 가셨소?”
“어른께서는 오늘 몸이 무겁다고 쉬고 계십니다.”

“여보게 다인, 오늘은 애기씨가 보이지 않는구려.”
“애기는 산에 과일을 따러 갔습니다. 해가 저물기 전에 오겠지요. 이제 손이 여물어서 제 몫을 한답니다. 애기가 만든 차 맛을 보시렵니까?”
“그거 좋지.”

그들은 애기씨였고 다인이었고 다인이었고 어른이었다. 고운 옷을 입고 떠났던 이가 돌아와 어른을 찾았다. 악취로 시달리던 청년이 냄새에서 벗어난 후, 애기씨가 건넨 차를 받았다. 아이는, 다인은, 그가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한다. 

마을 언덕에는 언제나 꽃이 핀다. 그곳에는 다인이 산다. 작은 초가를 둘러싸듯 푸르고 붉게 피어나는 꽃을 제 피붙이인 듯 살뜰히 살피는 이가, 걸음걸음 꽃향기가 피어나는 기이한 이가, 거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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